189화.
오직 영지 내에 분점을 세운 길드에게만 ‘엘프의 눈물’ 사업권을 내주겠다.
돈의 흐름을 읽을 줄 아는 상인이라면 이것은 영지 내에 분점을 세우라는 강요라기보단 사업을 독점할 수 있는 일종의 기회인 셈이었다.
물론 이곳에 분점을 세울 계획이 전혀 없던 길드에겐 여전히 부담되는 제안인 것은 마찬가지였지만 말이다.
다만 이를 기회라 생각하는 이도, 그리고 여전히 부담으로 여기는 이도 지금이 아니면 이 사업권을 따낼 수 없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상인들의 고심이 깊어질 무렵.
이든이 입을 뗐다.
"그리고 이곳의 치안에 관련된 얘기입니다."
상인들이 들려온 목소리에 일제히 이든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
그가 계속 말을 이었다.
"여러분들께서는 지난 며칠간 이곳에 오는 길에 도적들이나, 몬스터의 기습을 받은 적이 있으십니까?"
"……?"
듣던 상인들이 고갤 갸웃거렸다.
지금에 돌이켜 생각해 보니 오는 와중에 그런 일을 경험해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니…. 오는 길에 도적들을 한 번도 못 봤네…?"
다른 상인 역시 맞장구를 치며 입을 뗐다.
"도적들뿐인가. 몬스터조차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지 않은가?"
"듣고 보니 정말 이상하군. 다른 곳도 아닌 이곳에 오는 길목이었는데 말이야…."
상인들의 반응이 이토록 일관된 것은 당연했다.
그들이 지나온 길이 그 악명 높은 레온하르트 영지로 가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레온하르트 영지가 수도에서 가장 먼 곳에 위치한 변방의 영지인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가는 길 숲 곳곳에 서식하는 몬스터들의 숫자 역시 상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뿐인가. 전쟁이 발발하기 이전에도 산도적들의 기승이 가장 심한 길 중 하나였는데, 전쟁 이후엔 상황이 어찌 악화하였을지 말하면 입만 아픈 상황이었다.
그래서일까. 대부분 상단이나 용병들이 목적지로 기피하던 이곳은 전쟁 이후, 사람들의 발길이 끊길 수밖에 없었다.
그런 악명 높은 길을 내내 걸어왔건만, 여기 있는 누구도 이를 눈치채지 못한 것이다.
이유는 간단했다.
유니콘의 호송 용병들이 오는 내내 극도의 긴장감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치 그 길이 원래부터 안전하다는 것을 알았다는 듯이 말이다.
그리고 그런 그들에게 섞여 온 상인들조차 이곳이 위험한 길목이었다는 것을 자연히 잊고 있던 것이다.
회관의 상인들이 뒤늦게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하던 그때, 이든이 입을 뗐다.
"저희 레온하르트 영지에서는 이곳에 치안과 관련된 여러분들의 불안감을 해결해 드리기 위해 가장 안전한 배송을 책임지는 유니콘 길드에게 유통권을 맡기고 있으며 더 나아가 저희 영지에서 자체적으로 주기적으로 토벌을 진행하여 어느 곳보다 가장 좋은 치안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점을 알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모든 말을 마친 이든이 다시 자리에 앉았다.
답변을 듣던 상인들이 서로 눈길을 주고받던 그때, 어수선한 상황 속. 크리스 지부장이 눈치 빠르게 먼저 입을 뗐다.
"지금쯤이면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충분히 드렸으리라 생각합니다."
"……."
일순, 정적이 찾아왔다.
크리스가 단상 위에서 씩 웃으며 말을 이었다.
"자, 그럼 엘프의 눈물 사업권에 관한 경매를 시작하겠습니다."
***
길었던 경매가 끝나고, 이든과 게럴드는 마주 앉아 차를 마시며 잠시 숨을 돌렸다.
그때, 차를 한 모금 들이켜던 게럴드가 먼저 말을 꺼냈다.
"서른 곳 중 열 곳이라. 생각보다 적군."
이든이 씁쓸히 웃었다.
"엘프의 눈물 사업권을 내주는 것이지만, 역시 다들 부담이 됐던 모양입니다."
"그럴 수밖에. 수도의 이름난 상단이 모였다지만, 사업권만 보고 덜컥 분점을 내겠다고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상단은 그리 많지 않네. 애초에 압도적인 자본금이 있는 상단만이 그런 과감한 결단이 가능하지. 하지만 이번 경매가 전혀 소득이 없다 볼 수도 없네. 다른 곳도 아닌 황금성 길드가 입찰을 했어. 이는 더없이 호재라 보네."
황금성 길드에 관해 게럴드에게 얼핏 듣긴 했지만, 자세히는 몰랐던 이든이 궁금한 듯 물었다.
"황금성 길드의 저력이 그 정도입니까?"
"이를 말인가. 황금성의 버핏 경은 제국을 넘어 대륙 제일가는 대부호일세. 전쟁 이전에도 그들은 수도 외 다른 영지에 절대 지부를 낸 경우가 없었어. 웬만큼 돈이 되는 사업권이 아니고서야 쳐다도 안 본다는 그가 이곳에 지부를 세우겠다고 결정을 내린 것일세. 필시 이에 관한 소식이 대륙 전역에 퍼진다면 곳곳에서 이곳 영지의 지부권을 놓고 다툼을 벌일 것이 분명하네. 그 말인즉슨 제국을 넘어 대륙 전체의 돈 줄기가 이곳을 향하게 될 가능성도 있다. 그 말인 셈이지."
"그리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텐데 말이죠."
조금은 밝아진 듯한 이든의 얼굴에 게럴드가 마주 보며 웃었다.
"아직은 먼 얘기일세. 일단 가장 중요한 것은 그 토대를 제대로 마련해 두는 것이겠지."
"맞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입찰에 참여한 상단에게 확실한 이득이 돌아가도록 해 주어야 합니다. 혹 괜찮은 의견 있으십니까?"
"흠. 확실한 이득이라…. 엘프의 눈물이 세간의 관심을 끄는 것은 당연한 것이니, 그 외에 자네가 그들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하나뿐인 셈이군."
"어떤 것 말입니까?"
"세금을 감면해 주는 것. 상인들에게 그보다 가장 큰 혜택은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일세."
이윤을 좇는 상인들에게 있어 세금에 관한 것은 언제나 중요한 문제였다.
큰 이윤을 남기는 상단일수록 내는 세금 역시 만만치 않을 터.
특히나 엘프의 눈물 같은 고가의 거래 품목 같은 경우엔 중간에 떼어지는 세금이 상당히 클 터였다.
그것만 조금 줄여 주어도 상단에게 돌아갈 이익이 눈에 띄게 커지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게럴드가 말을 이었다.
마치 이든의 다음 행선지에 관해 넌지시 알려 주는 듯한 물음이었다.
"그럼. 이제 수도로 가야 할 일만 남은 셈이군."
"예, 명목상 제가 영주로 있다곤 하나, 정식으로 임명된 것은 아니니까요. 어찌 됐든 간에 이곳이 제대로 된 영지로서 구실을 하고 있단 사실을 전역에 알리기 위해선 황제 폐하의 공표가 무엇보다 필요한 상황입니다."
"과연…. 그편이 확실하긴 하지."
게럴드가 턱을 매만지며 고갤 주억거리던 그때였다.
그가 자못 심각한 표정을 했다.
"한데 조금은 걱정이 되는군…."
"무엇이 말입니까?"
"황실에서 자넬 마냥 환영할지 말이야. 자넨 제국을 구한 영웅일세. 몇몇은 자네의 복귀를 환영하겠지만, 사람 사는 곳엔 언제나 시기와 질투가 존재하는 법이거든. 특히나 권력욕이란 이빨을 함상 숨기고 사는 관료 대신들이라면 더더욱 말일세. 그들이 과연 자네가 레온하르트 공작의 유지를 잇는다곤 하나, 이를 순순히 인정하겠는가? 더군다나 엘프의 눈물 수급이 가능한 현 영지를 소유한 자네를 말일세. 필시 욕심에 눈이 먼 자가 있다면 자네를 내치고, 자신이 그 자리에 앉으려 들 걸세. 행동까지 빠른 이라면 내가 상인들을 끌고 이곳에 출발한 순간부터 벌써부터 모략을 꾸미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지."
즉슨, 황실에 몇몇 이들에겐 이든이란 존재가 난데없이 굴러온 돌일 수도 있다. 게럴드가 말하는 속뜻은 이것이었다.
이든 역시 동의하듯 고갤 끄덕였다.
"확실히 그 점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겠군요."
상인들의 관심을 끌어야 한다는 산을 넘었나 싶더니만, 어째 더 큰 산이 기다리고 있다.
다 죽어 가던 마을을 영지로 되살리는 것이 이리도 어렵다.
하나, 이든은 언제나 방법을 찾지 않았던가.
게럴드가 넌지시 물었다.
"…혹여 말일세. 내 염려가 현실이 된다면 이를 해결할 방도가 있겠는가?"
이든을 향한 순수한 걱정도 있지만, 혹여 그가 영주로 정식 인정이 되지 않는다면 유니콘의 신사업이 큰 차질이 빚을 것에 대한 우려 역시 섞인 물음이었다.
대답은 곧장 들려왔다.
이든이 고갤 끄덕이며 입을 뗐다.
"물론 있습니다."
게럴드가 화들짝 놀라며 물었다.
"뭔가 그것이!?"
"까짓거, 제국으로부터 독립하면 그만입니다."
듣던 게럴드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서, 설마…. 독자노선을 걷겠다. 그 말인가?"
"예."
"그, 그러다간 제국의 눈 밖에 나는 것으로도 모자라 자칫 전쟁까지 날 수도 있네. 그걸 알고도 하는 소린가. 자네!?"
"알다마다요. 그리고 놈들은 뒤늦게 깨닫게 되겠죠. 데스 스타 못지않게 흉악한 놈을 적으로 둔 것을."
게럴드의 온몸에 절로 진땀이 배어 나왔다.
그가 아는 이든은 한다고 마음 먹은 순간, 앞뒤 가리지 않고, 무조건 실천하는 사내였다.
게럴드가 허둥대며 그를 달래듯 말렸다.
"자자, 일단 진정하고…. 분명 다른 방도가 있을걸세. 우리 같이 고민해 보세나. 응!?"
"…게럴드 님."
일순, 의미심장한 목소리로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게럴드가 마른침 한번 꼴깍 삼키고는 대답했다.
"으, 응…?"
"농입니다."
"……."
"제가 미쳤다고 설마 제국과 독자노선을 걷겠습니까?"
듣던 게럴드가 벙찐 얼굴을 하다가 이내 얼굴을 와락 구기며 육두문자를 내뱉었다.
"이런 미친!"
"뭡니까. 웃자고 하는 소리에 그 반응은. 설마 진짠 줄 아셨던 겁니까?"
"자네가 어디 보통 미친놈이어야 말이지."
"뭐요?"
"그리고! 이런 심각한 얘길 나누는 상황에 미치지 않고서야 그런 농이 나오는가!"
게럴드가 노발대발하며 소릴 질러 댔지만, 이든은 도리어 그의 반응이 재밌다는 듯 끌끌 웃어 댈 뿐이었다.
장난스럽게 웃던 이든이 일순 웃음을 멈추곤 그를 불렀다.
"게럴드 님."
"왜!"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
"저도 지금 당장 떠오르는 방도는 없지만, 잘 해결될 겁니다. 일단 그렇게 믿어 보자고요."
근거 없는 여유이건만, 이든의 저 자신감에 찬 얼굴을 보고 있자니 게럴드 그마저 덩달아 안심이 되는 것은 왜일까.
결국, 게럴드도 피식 웃었다.
"훗…. 하긴, 자네가 하는 일이니 어련히 잘되지 않을까."
"그렇다니까요."
"…하지만 그렇다 해도 앞으로 그런 농은 제발 좀 하지 말게. 듣는 사람은 수명이 단축되는 것 같으니까."
"쩝."
마지막까지 정색하는 게럴드의 반응에 이든이 내키지 않는 듯 입을 다시던 그때였다.
똑똑.
"영주님."
일순, 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스왈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오세요."
들어오란 이든의 말이 들려오기 무섭게 스왈로가 냉큼 들어서곤 말을 꺼냈다.
"얘기 나누시는 중에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그보다 무슨 일이십니까?"
"다름이 아니라 황금성의 버핏 경께서 영주님과 개인적으로 면담을 하고 싶으시다는 요청에…."
"버핏 경께서 저와 면담을요?"
이미 사업권에 대한 입찰은 모두 끝났건만, 자신과 따로 할 말이 있다는 듯한 버핏의 요청에 이든이 의아한 얼굴을 하던 그때였다.
일순 게럴드가 탄성을 터트렸다.
"옳거니! 그거일세. 그거!!!"
"그거라니요?"
이든이 의아한 얼굴로 되묻자 게럴드가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쳤다.
"이 사람아! 모든 대신이 자네가 영주가 되는 것에 찬성할 수밖에 없는 방법 말일세!"
"…뭐, 그럴듯한 방도라도 떠오르신 겁니까? 역시 전쟁이 답인가요?"
"…그냥 닥치고 듣기나 하게."
"……."
이든이 입을 꾹 다물었다.
게럴드가 말을 이었다.
"버핏 경에게 부탁하세나!"
"버핏 경에게요?"
"관료 대신 중에 버핏 경에게 뇌물을 받지 않은 자들은 손에 꼽네. 애초에 뇌물을 받지 않은 자들은 공신일 테니, 자네가 영주가 되는 것에 반대하지는 않을 터. 하나, 욕심에 눈이 멀어 반대하는 자 중 과연 버핏 경에 손을 거치지 않은 자들이 있겠나?"
"말인즉슨 그간 그들이 먹어 온 뇌물로 협박을 하자?"
"그렇네! 어떤가!?"
"……."
이든이 말이 없자 게럴드가 멋쩍은 듯 볼을 긁적였다.
"벼, 별론가?"
"아뇨."
일순 이든이 하얀 이를 드러내듯 씩 웃었다.
"아주 괜찮은 수였습니다."
이든이 곧장 스왈로를 향해 입을 뗐다.
"촌장님."
"예."
"지금 당장 버핏 경을 모셔와 주십시오. 그분과 진지한 얘기 좀 나눠 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