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화.
실로 전설이라 해도 손색없는 레온하르트 공작가(家)의 복귀는 황궁을 떠들썩하게 했다.
현재 심상치 않은 상승세로 세력을 키우고 있던 레온하르트 마을은 영지로서 승격이 기정사실화 되며 모두가 환영하는 분위기였지만, 그 영지의 관리인인 영주를 놓고는 잡음이 많았다.
잡음의 화두는 이것이었다.
과연 ‘이든’을 레온하르트 가문의 일원으로서 인정할 수 있냐는 것이었다.
결국, 황제의 정식 승인이 떨어지기 전, 이든의 영주 자격 심사를 놓고 황궁의 의회장은 관료 대신들로 북새통을 이루며, 이를 놓고 격렬한 논쟁을 벌이고 있었다.
"절대 안 됩니다."
한 대신이 단호하게 못을 박자, 맞은편에 있던 칼스테인이 물었다.
"어째서입니까?"
"레온하르트 가(家)의 핏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답을 듣던 칼스테인 공작의 눈썹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꿈틀댔다.
"레온하르트 가문의 핏줄은 아니더라도 그분의 유지를 잇고 있습니다. 저는 그것만으로도 그가 영주로서 자격이 충분하다고 생각됩니다만."
칼스테인 공작이 말하는 레온하르트의 유지.
그것은 이든이 보인 레온하르트 가문을 상징하는 보검이었다.
예로부터 기사들은 자신의 애검을 타인에게 주는 것으로 유지를 잇는다는 표현을 쓰곤 했다.
그리고 그러한 의식은 부모에게서 자식으로 혹은 스승에서 제자로 이어지는 것이 보통이었다.
칼스테인 공작 역시 정치인이기 이전, 한 명의 기사로서 유지를 잇는 사제관계가 혈통만큼이나 고귀한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 때문에 그는 레온하르트의 유지를 잇고 있는 이든이 영주로서 더없이 적합하다 여기는 것이었고. 하나, 칼스테인을 마주한 관료 대신들은 아무리 봐도 그의 생각에 반대하는 눈치였다.
"레온하르트 공작께서 말도 없이 종적을 감추신 지 이십 년이 지났습니다. 그리고 대놓고 말은 안 했지만, 여기에 자리하신 분들 모두 저와 같은 생각을 했을 겁니다. 그분께서 이미 유명을 달리하셨다고 말이지요."
"……."
관료 대신의 말에 반응을 보인 이는 없었으나, 조금 전 침묵은 무언의 긍정이라 보아도 좋았다.
그가 재차 말을 이었다.
"한데, 그분의 후손도 아닌 이가 난데없이 나타나 레온하르트 가문을 상징하는 보검을 들이밀고는 ‘내가 그분의 제자요’라고 말한다면 어느 누가 쉬이 믿을 수 있겠습니까?"
"……."
그 말인즉슨, 관료 대신이 말하는 바는 레온하르트의 가문을 상징하는 보검만으론 ‘이든’이 레온하르트 공작의 제자라는 것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혈육은 따로 증명이 필요 없지만, 사제관계는 이것이 문제였다.
증명해줄 수 있는 사람이 없으면, 누구도 인정해 주지 않는다는 것.
물론 공론화되어 누구나 아는 사제관계라면야 증명이 따로 필요 없었지만, 이든이 레온하르트 공작의 제자라는 것은 이곳에 자리한 모두가 처음 듣는 얘기 아니던가.
물론 이든이 영주로 임명되는 것을 찬성하는 칼스테인 공작조차 말이다.
‘난감하군.’
스승의 유지를 잇는 제자가 영주의 자릴 이어받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하나, 이를 증명해 낼 방법이 없으면 저 관료 대신들을 설득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워 보였다.
칼스테인 공작이 레온하르트 영지의 영주로서 ‘이든’을 정식 임명하는 것을 놓고 거센 반발을 보이는 대신들로 고민을 하던 그때, 또 다른 대신이 입을 떼더니 의견을 내놓았다.
"차라리 이건 어떻겠습니까?"
"……?"
칼스테인 공작의 시선이 목소리가 들려온 곳을 향해 움직였다.
칼스테인 공작과 눈이 마주친 대신이 재차 말을 이었다.
"그가 진짜 레온하르트 공작의 유지를 잇는 제자인지 아닌지를 놓고 고민하는 것보단 차라리 믿고 맡길 수 있는 새 후보를 추천하는 것이 어떨까 싶은데요?"
"……."
관료 대신의 의견을 듣던 칼스테인 공작의 표정이 찰나 굳었다.
‘본래 목적이 저것이었군.’
어째선지 저들이 기를 쓰고 이든의 영주 임명을 반대하는지 이유를 알아챈 것이다.
정치한다는 것들이 본래 저렇다.
말과 속이 다르며 자신의 잇속을 챙기기 위해 혈안이 된 자들이 대부분이다.
대놓고 반역을 도모했던 듀란드가 ‘칼’이라면, 저들은 제국을 조금씩 병들게 하는 병균 같은 존재들이랄까.
칼스테인 공작의 머리가 삼 년 사이에 하얗게 세어 버린 이유 중 하나가 이것이기도 했다.
제 잇속만 챙기기 바쁜 관료 대신들의 머리 굴리는 소리에 질려 버린 것이다.
하나, 칼스테인 공작 역시 나름 정치계에 발을 담근 지 어언 삼 년이다.
그가 애써 표정을 평소대로 하며 모르쇠로 물었다.
"이든이 아닌 새 후보 말이오?"
대신이 고갤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혹 추천하고 싶은 인물이 있소이까?"
"흠…. 글쎄요."
칼스테인 공작의 물음을 듣던 대신이 턱을 연신 매만지며 고민하는 척하더니 입을 뗐다.
"자리하신 모두 훌륭하신 분들이라 한 분만 콕 집어 말하기 어려우나, 그래도 무조건 한 분을 꼽아야 한다면…. 아, 카다비 경이 어떻겠습니까?"
"카다비 경 말이오?"
듣던 칼스테인 공작의 시선이 일순 자신의 바로 맞은편에 있던 카다비 후작에게로 향했다.
그와 눈이 마주친 카다비 후작이 능청스럽게 당황한 표정을 하며 손을 저었다.
"어허! 도리스 경,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저 같은 것이 위대한 레온하르트 영지의 영주라니요. 당치도 않습니다…!"
칼스테인 공작은 저 가증스러운 카다비 후작의 수준급 연기에 일순 웃음이 터져 나올 뻔했다.
하나, 그의 연기만 훌륭하다고 해서 극이 완성되는 것은 아닐 터.
주고받는 도리스 남작 역시 그 못지않게 능청스러운 표정을 하며 입을 뗐다.
"카다비 경, 그리 겸손 떠실 것 없습니다. 카다비 경께서 그간 황실을 위해 고생해 온 세월이 얼마나 됩니까!? 수도 다음가는 곳이던 듀란드 영지도 대마법사 듀크 후작께서 부임하시며 이제 듀크 영지가 되지 않았습니까? 한데, 카다비 경께서 레온하르트 영지의 영주가 되지 못할 이유는 또 무엇입니까?"
그와 뜻을 함께하기로 한 대신들이 맞는 말이라는 듯 연신 고갤 끄덕여 댔다.
도리스가 계속 말을 이었다.
"그리고 제가 알기론 듀크 후작과 카다비 후작, 두 분께선 마법사 아카데미 동기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닙니까?"
카다비 후작이 난데없이 헛기침하며 고갤 끄덕였다.
"크흠! 뭐, 듀크 경과 제가 같은 마법사 아카데미 출신으로 나름 두터운 친분을 자랑하긴 합니다만, 그래도 단지 같은 동기란 이유만으로 제가 어찌 영주 후보가 될 수 있겠습니까. 저는 영주의 그릇이 되기엔 한참 부족한 사람입니다."
칼스테인 공작은 카다비의 말을 듣고는 ‘과연…’이란 얼굴을 했다.
대마법사 듀크 후작과 동기 출신임을 부정하지 않으며, 친분까지 넌지시 언급하되 마지막엔 겸손으로 마무리한다.
참으로 말과 속이 다른 정치인의 표본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제대로 보여 주는 인간이었다.
그리고 도리스의 말을 신호로 해서 주변에서 카다비를 추종하는 말들이 한마디씩 꺼내졌다.
"카다비 후작님이라면 충분히 레온하르트 영지를 이끄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를 말입니까? 이제 카다비 경께서도 영주직을 위임받을 때가 되었지요."
"옳습니다!"
그리고 그 한마디, 한마디는 급기야 산불처럼 번져 의회장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그 모습에 얼음장 같았던 칼스테인 공작의 얼굴에도 일순 그답지 않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히 피어났다.
‘대체 어느 사이에….’
칼스테인 공작의 입이 그의 심정을 대변하듯 쩍 벌어졌다.
‘어느 사이에 저토록 많은 대신들을 설득시켰단 말인가…!’
대충 훑어 가늠만 해 봐도 카다비 후작을 추종하는 세력이 의회장에 모인 대신들의 구(九) 할에 가까워 보였다.
하루 사이에 저만큼의 세력을 규합하다니 무서우리만큼 빠른 행동력이 아닐 수가 없었다.
하나, 칼스테인 공작은 알고 있었다.
카다비 후작의 사람 됨됨이를.
칼스테인 공작이 봐 온 바로는 그는 영주 자리에 썩 어울리는 인물이 아니었다.
수도에 몇몇 유명 상단으로부터 꾸준히 뇌물을 받아 온 것으로도 모자라, 자신에게 꾸준히 상납하고, 아부하는 관료 대신들의 뒤까지 봐주는 것으로도 유명한 이였다.
황실의 중책을 맡는 관료로 보기엔 자격 상실인 인물이지만, 그런 그가 후작이란 작위까지 승승장구한 이유는 그가 뒤를 봐주겠다고 마음먹은 이는 확실히 봐준다는 것이다. 때문에 따르는 추종 세력 역시 제법 있는 편이었는데, 도리스 남작 역시 그중 하나였다.
그렇게 쌓아 온 인맥이 이런 순간마다 항상 위력을 발휘한다.
참으로 간사하면서도 무서운 이가 아닐 수가 없었다.
저런 이에게 레온하르트 영지가 넘어간다면 이제 막 다시 성장하기 시작한 영지의 앞날이 어찌 될지는 불 보듯 뻔한 것이었다.
‘이대로 흘러가게 두어선 안 된다!’
생각을 마친 칼스테인 공작이 재차 입을 열었다.
"하나, 자격만으로 따진다면 카다비 후작 못지않게 이든 남작 역시 레온하르트 영주에 더없이 적합한 인물이 아니외까?"
칼스테인 공작이 던진 말에 카다비 후작의 눈살이 찰나 찌푸려지는 듯싶었으나, 빠르게 평소의 웃는 상으로 돌아왔다.
카디비 후작의 옆, 도리스 남작이 고갤 갸웃거리며 물었다.
"공작님,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이든 남작이 영주에 적합하다니요?"
도리스가 던진 질문을 받은 칼스테인 공작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의회장의 이목이 자연스레 그에게 모였다.
칼스테인 공작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으며 더없이 무거운 음성이 새어 나왔다.
"다들 얼마나 됐다고, 그새 잊으신 겁니까? 불과 2년 전, 우리가 어떤 일을 겪었는지 말입니다."
"……."
일순 의회장에 정적이 감돌았다.
어찌 그 날을 잊겠는가?
여기 있는 모두가 기억하고 있었다.
영광으로 가득하던 아슬란 제국이 기울기 시작한 기점의 그날.
바로 벨라트릭스 왕국과 언데드 군단의 침공이 있던 그때를 말이다.
그리고 관료 대신 모두가 알고 있었다.
전시 상황 속. 모든 영지가 폐허가 되어 가던 절체절명의 그 순간, 이든 남작이 그 자신들을 위해 어찌 싸웠는지를 말이다.
떠도는 말에 의하면 당시 전쟁의 배후는 죽음의 드래곤 데스 스타였고, 데스 스타가 이 땅에 현신하여 제국을 불바다로 만들려 했으나, 이든 남작이 이를 막았다는 믿지 못할 이야기가 파다했다. 그것까진 믿을 수 없는 허황된 이야기라 치더라도, 이든 남작이 제국을 위해서 최전선에서 얼마나 고생했는지 모르는 이가 없었다.
"2년 전, 당시 이든 남작은 위기에 처한 우리 제국을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 뛰어다니며 목숨을 걸었습니다. 그뿐입니까. 적의 본대가 레온하르트 영지로 쳐들어왔을 때 가장 먼저 달려가 영지민들을 구한 것 역시 이든 남작입니다. 이든 남작이 아니었다면 그 많은 영지민들이 영지가 폐허가 된 와중에 살아남을 수 있었겠습니까? 어쩌면 지금의 레온하르트 영지가 있는 것은 당시 이든 남작이 목숨을 걸고 그들 지켜 준 덕분이겠지요. 그리고 그것을 알기에 레온하르트 영지민들이 지금껏 이든 남작을 따른 것 아니겠소?"
"……."
"물론 이든 남작이 어떤 사정으로 레온하르트 가문의 보검을 갖게 되었고, 레온하르트 가문의 성(姓)을 쓰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확실한 것은 그것을 제외하더라도 이든 남작은 레온하르트 영지의 영주를 맡기에 그 자격에 손색이 없다고 생각하는 바입니다. 경들의 생각은 어떻소이까?"
칼스테인 공작의 말이 먹혀든 걸까.
조금 전까지 카다비 후작을 찬양하며 떠들어 대던 관료 대신들의 얼굴이 일순 시뻘게졌다. 하나, 모든 이들이 창피함을 아는 것은 아니다.
도리스가 금세 표정을 정리하며 입을 뗐다.
"하면 칼스테인 공작님은 이든 남작에 비해 카다비 후작께선 영주를 맡기에 자격이 부족하다. 그 말씀이십니까?"
‘이자가…!’ 칼스테인 공작의 얼굴이 저도 모르게 구겨졌다.
상대가 답하기 곤란한 질문을 던져 분위기 반전을 꾀하려는 도리스 남작의 질문이 간사하다 느껴져서였다.
레온하르트 영주의 자릴 놓고, 대신들이 첨예하게 대립하던 그 순간이었다.
"그만들 하세요."
의회장의 문이 열리며 누군가 안으로 들어섰다.
그를 본 칼스테인이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입을 뗐다.
"폐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