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6화. (196/250)

196화.

이든은 의회장 밖을 나서자마자, 황제가 있는 집무실로 향했다.

집무실에 들어서니 칼스테인 공작도 기다렸다는 듯이 함께 있었다.

들어선 이든을 본 황제가 반갑게 웃으며 이든을 자리에 앉혔다.

"이든 남작, 어서 와 앉으세요."

이든이 앉기 무섭게 황제가 찰나 고갤 갸웃거리다가 칼스테인 공작에게 물었다.

"아, 그러고 보니 이든 남작께서는 레온하르트 공작님의 제자셨다 들었습니다. 가문의 보검과 함께 그분의 성(姓)과 가문을 이어받으신 것이니 남작이 아니라 공작님이라 불러 드리는 것이 맞겠지요?"

혈육이 아니라 단지 유지를 잇는 것만으로도 가문을 계승한 사례는 현재도, 그리고 제국이 세워지기 이전에도 간혹 있던 일이었다.

칼스테인 공작이 고갤 끄덕였다.

"듣고 보니 폐하의 말씀이 맞습니다. 이든 남작이 아니라, 레온하르트 이든 공작이라 부르는 것이 마땅합니다."

"이로써 우리 제국도 공작이 다시 두 명이 된 셈이로군요."

황제가 해맑게 웃으며 입을 뗐지만, 이든의 반응은 시큰둥하기만 했다. 남작이니 공작이니 하는 것 따위 그에겐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미래를 논하는 것이었다.

마침 칼스테인 공작도 함께 있겠다. 생각을 정리한 이든이 입을 뗐다.

"폐하, 그리고 칼스테인 경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

"응?"

황제와 칼스테인 공작이 의아한 얼굴을 했다.

이든의 목소리가 어째선지 평소보다 더욱 진중하게 느껴진 탓이었다.

찰나 찾아온 정적 속, 황제와 칼스테인 공작을 집중시킨 이든이 재차 말을 이었다.

"전쟁을 준비하셔야 합니다."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립니까. 전쟁을 준비해야 한다니요?"

"말 그대로입니다. 아직 종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

난데없는 말이었지만, 칼스테인 공작은 알고 있었다.

이든이 허튼소리를 해 대는 유형의 사람이 아니란 것을 말이다.

그리고 조금 전 그가 말했던 끝나지 않은 전쟁이 무엇을 가리키는 것인지도 대강 알아들었다.

칼스테인 공작이 심각하게 굳은 얼굴로 물었다.

"자세히 말해 주시오. 아직 종전이 아니라니요?"

"……."

일순 바뀌어 버린 칼스테인 공작의 기도(氣道)에 황제마저 절로 긴장을 한 모습이었다. 그사이, 이든이 물었다.

"일단 본론에 들어가기에 앞서 여러분들께선 지난 전쟁의 배후가 누구인지 정확히 알고 계십니까?"

"배후…?"

지난 전쟁은 다름 아닌 벨라트릭스 왕국이 먼저 제국을 침범한 것으로 발생한 일이었다.

그러니 당시 전쟁의 배후라 한다면 응당 밸스커드 국왕으로 볼 수밖에 없었다.

하나, 이것은 말 그대로 표면적인 이유에 불과하다.

지난 전쟁이 정상적인 전쟁이 아니었다는 것은 함께 자리한 어린 황제조차 알고 있었다.

애초에 정상적인 상황이었다면, 벨라트릭스 왕국이 제국의 코앞까지 왔음에도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었고, 적군이 언데드 병사로 이루어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문제들이 아니었다면 아슬란 제국이 지금과 같은 큰 피해를 입고 제대로 회복도 못 하며 허우적거리지도 않았을 것이다.

칼스테인 공작이 물었다.

"이든 공작의 물음은 마치 배후가 밸스커드가 아니었다는 것처럼 들리오. 내 말이 맞소?"

이든이 고갤 끄덕였다.

"지난 전쟁의 배후는 밸스커드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진짜 배후의 하수인에 불과했었죠."

"밸스커드가 배후의 하수인의 불과했다…?"

밸스커드가 하수인에 불과했다는 얘기에 칼스테인 공작이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되묻던 그때였다.

이든이 난데없이 화제를 돌려 물었다.

"혹 여러분들께선 저에 관해 떠도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으십니까? 심안의 무사 이든이 죽음의 드래곤 데스 스타와 결전을 벌이고 장렬히 전사했다는 얘기 말입니다."

당연코 들은 적 있는 얘기였다.

그만큼 제국에 파다했던 소문아닌가.

물론 ‘드래곤’과 싸웠다는 비상식적인 얘기 때문에 과장된 이야기라며 믿지 않는 이들이 태반이었지만 말이다.

칼스테인 공작과 황제 역시 믿지 않는 부류의 사람 중 하나였다.

이든이 재차 말을 이었다.

"믿기지 않으시겠지만, 사실입니다."

"…뭣이?"

"제가 지난 3년이란 시간 동안 무사했었음에도 모습 한번 드러내지 않았던 이유…. 바로 데스 스타와의 결전에서 입은 부상을 회복하기 위해서였습니다."

"……."

재차 정적이 찾아왔다.

내내 듣기만 하던 황제는 대체 이게 무슨 소리냐는 표정으로 칼스테인 공작에게 시선을 던졌고, 황제가 보내는 시선에 칼스테인 공작이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며 입을 뗐다.

"그러니까. 이든 공작의 말은 그 데스 스타라는 드래곤이 지난 전쟁의 배후였다. 그 말인이오?"

"예, 당시 놈들의 언데드 군사부터 해서 말도 안 되던 기동력까지 전부, 놈의 흑마법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허… 흑마법의 근원지가 드래곤이었다니 그 무슨…."

너무도 믿기 힘든 얘기에 칼스테인 공작이 저도 모르게 헛바람을 집어삼키던 그때였다.

무언가 떠오른 걸까.

"잠깐."

칼스테인 공작이 일순 표정을 굳혔다.

"…근데 조금 전 말이오 아직 종전이 아니라 하지 않았소? 설마…?"

이든이 고갤 끄덕였다.

"놈이 아직 살아 있습니다."

"……!"

칼스테인 공작과 황제의 눈이 부릅 뜨였다.

물론 여전히 믿기 어려운 얘기인 것은 사실이지만, 어쨌든 당시 전쟁의 배후가 살아 있다는 것은 결코 좋은 징조가 아니었다.

칼스테인 공작이 재차 확인하듯 물었다.

"하지만…. 전쟁이 끝나고 삼 년 가까이 흐른 지금까지 아무 일도 없었지 않았소? 혹 착각한 것은 아니오?"

이든이 고갤 저었다.

"확실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당시 결전에서 저는 놈을 죽이지 못했습니다. 다만 쉬이 회복하기 힘든 큰 부상을 입혔을 뿐이죠."

"……."

"저 역시 그놈 못지않은 부상을 입었었습니다. 제가 지금에 와서 완전히 회복을 했으니, 데스 스타 역시 회복을 거의 끝내 가고 있을 겁니다. 그리고 그때가 오면 제가 나타난 것처럼…."

"그놈 역시 나타날 것이다…?"

"예."

배후가 드래곤이었다는 것도 까무러칠 일이건만, 놈이 아직 살아 있다는 소식은 대체 어찌 받아들여야 할지 감이 잡히질 않았다.

이든이 말을 이었다.

"제가 황금성 길드장에게 부탁해 뇌물까지 써 가며 레온하르트 영지의 영주가 되려 한 것 역시 그 이유 때문입니다. 놈이 반드시 돌아올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요."

칼스테인 공작은 비로소 이든이 왜 기를 쓰고 레온하르트 영지의 영주가 되려 했는지 이해했다.

평소 그가 알던 이든이라면 그런 것엔 일절 관심조차 없던 이였다.

그 정도가 얼마나 심했냐 하면 전 아슬란 황제가 반란군을 저지한 것을 빌미로 명예 작위를 주려 했을 때도 싫은 내색 풀풀 풍기며 기를 쓰고 거절하려 했던 것이 바로 그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전히 남아 있는 의문은 있었다.

칼스테인 공작이 곧장 물었다.

"하지만 여전히 의아한 것이 있소."

"모든 여쭤보십시오."

"일전 전쟁 때, 적의 본대가 레온하르트 영지를 노리고 진격해 온 것도 그렇고, 지금 이든 공작이 기를 쓰고 그곳의 영주가 되려는 것도 그렇소. 대체 레온하르트 영지에 무엇이 있길래 놈들의 본대가 그곳을 노렸던 겁니까. 그리고 공작께서는 왜 그곳을 지키려 하는 것이고요?"

칼스테인 공작의 의문은 당연한 것이었다.

본디 전쟁 중 침범을 강행하는 입장에선 적국의 수도를 노리는 것이 보다 큰 피해를 줄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이다. 하나, 당시 전쟁 때 놈들은 수도가 아닌 레온하르트 영지를 노렸다.

물론 칼스테인 영지와 지금의 듀크 영지를 제외한 남은 영지 역시 폐허가 됐을 만큼 심각한 피해를 입긴 했지만, 레온하르트 영지를 노린 본대와 비교하면 다른 영지를 노렸던 언데드 군단은 오합지졸에 불과했다.

그리고 이든은 적의 본대가 레온하르트 영지를 노린 이유를 알고 있었다.

바로 ‘레온하르트’ 때문이었다.

데스 스타, 이 미친놈의 삶의 목적은 자신을 제외한 모든 드래곤의 말살이었다.

그리고 레온하르트는 데스 스타를 제외한 살아남은 유일한 드래곤이었고.

하지만….

이것을 이들에게 어찌 설명한단 말인가. 이든은 알면서도 말하지 못하는 현실에 참으로 답답한 심정이었다.

하지만 그렇다 하여 내내 이 사실을 숨길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어찌 됐든 간에 레온하르트의 레어가 아슬란 제국의 영토 내에 있는 것은 사실이고, 데스 스타의 침공 범주에 제국이 포함될 수밖에 없는 상황. 이들은 지금의 일이 벌어진 배경에 관해 알아야 할 권리가 있는 것이다 물론 당장 말할 것은 아니었다. 레온하르트와 충분히 상의를 한 이후에 사실대로 말해 줄 생각이었다.

한참을 고민하다 생각을 마친 이든의 무겁던 입이 비로소 뒤늦게 떨어졌다.

"…지금 당장은 설명드릴 수 없지만… 나중에 꼭 솔직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

당장 대답을 회피하는 것이 이상하긴 했지만, 칼스테인 공작은 이든이란 사람이 숨김이 없고, 거침없으며, 솔직한 사내라는 것을 진즉에 알고 있었다.

그런 그가 당장 말할 수 없는 이유라면 분명 그럴 만한 사정이 있다고 여겼다.

그리고 이 생각은 황제 역시 마찬가지였다.

"알겠습니다. 대신 우리가 납득이 갈 수 있도록 나중에 충분히 설명해 주셔야 합니다."

"예. 폐하."

이든의 대답에 황제가 고갤 주억거리며 재차 입을 떼 화제를 돌렸다.

지금 당장 논의해야 할 중요한 사안이 남았기 때문이다.

"어찌 됐든 지금 당장 중요한 것은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재차 일어날 전쟁에 대해 논의를 하는 것이 옳겠지요. 안 그렇습니까. 칼스테인 공작?"

이는 칼스테인 공작 역시 동의하는 부분이었다.

"옳은 말씀이시옵니다."

칼스테인 공작의 시선이 재차 이든에게 닿았다.

"이든 공작."

"예."

"이든 공작께선 이미 이 사실을 진즉부터 알고 있었소. 분명 그에 따른 고민 역시 충분히 했을 터. 다음 전쟁을 위해 어떤 준비를 하실 생각이오?"

"데스 스타가 몸을 온전히 회복 이후 재침공을 노릴 때는 분명 초장부터 레온하르트 영지를 노릴 가능성이 큽니다."

"어째서 말이오?"

"일전 전쟁 때 저는 놈에게 치명상을 입히고, 계획을 저지시켰습니다. 아마 열이 잔뜩 올라와 있겠지요. 분명 저에게 복수하겠답시고 바로 레온하르트 영지로 전력을 다해 공격을 강행할 것이 분명합니다. 해서…. 레온하르트 영지에 힘을 최대한 집중시킬 생각입니다."

"힘을 집중시킨다? 어떤 힘을 말이오?"

"아슬란 제국의 힘, 엘프의 힘, 그리고 드워프 힘, 마지막으로 저의 힘까지 전부 말입니다."

"…그것이 가능…하오?"

아슬란 제국의 힘은 그렇다 치더라도 엘프와 드워프의 힘까지 빌린다니, 칼스테인 공작과 황제의 입장에선 쉬이 이해가 갈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하나, 이든은 이미 그때를 위한 초석을 다져 놓은 상태였다.

이든이 더없이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힘 있게 고갤 끄덕였다.

"저는 이미 이를 위한 준비를 해놓은 상태이니 충분히 가능합니다."

듣던 칼스테인 공작이 일순 떠올린 것을 중얼거렸다.

"그래서… 엘프의 눈물을…."

"예, 그것은 인간과 엘프 그리고 드워프가 다시 똘똘 뭉쳤다는 하나의 상징일 뿐입니다. 데스 스타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엄청난 놈입니다. 그리고 놈이 다시 나타난 순간, 제국을 넘어 대륙 전체의 위기를 가져올 것이 분명합니다. 놈을 막기 위해선 예전처럼 싸워선 안 됩니다. 모두가 하나가 되어 함께 맞서 싸워야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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