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8화. (198/250)

198화.

‘역시 살아 있었군.’

이든의 표정이 한껏 굳어졌다.

‘이능력’으로 데스 스타가 생존해 있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물론 예상했던 바이긴 했으나, 예상과 직접 확인한 느낌은 완전히 다른 법이다.

게다가 이든의 표정이 굳어졌던 이유는 한 가지 더 있었다.

조금 전 데스 스타를 천리안으로 살필 때, 놈이 자신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였다. ‘마치 나 보는 것 다 알고 있다’라는 식으로 말이다.

아무튼, 이든은 조금 전 일을 통해 확실히 깨달았다.

그 자신 역시 일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해지고 있긴 하지만, 아직 데스 스타에게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말이다.

그것을 알고 나니 조금은 조급해진 탓일까.

털썩.

이든은 곧장 바닥에 엉덩이를 깔고 앉고는 가부좌를 틀었다.

최대한 이른 시일 내로 드래곤 하트의 모든 기운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함이었다.

우우웅.

자연의 기를 일주천하여 단전에 넣는 것이 아닌, 드래곤 하트 내에 있는 기운을 그의 것으로 변환만 하는 과정이었기에 보다 적은 시간에 상당량의 마기를 단시간에 늘리는 것이 가능했다.

그렇게 다시 한참의 시간이 흐를 때였다.

문득 느껴지는 기척에 이든의 눈이 절로 떠졌다.

기척의 주인을 보던 이든이 곧장 아는 척을 했다.

"스왈로 촌장님,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본래 스왈로는 이든이 홀로 공터에 있는 시간 때엔 그를 찾아오는 법이 거의 없었다.

영주가 수련 중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방해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어째선지 오늘은 스왈로가 무릅쓰고 이든을 찾아온 것이다.

스왈로가 황급히 이든 곁으로 다가오며 입을 뗐다.

"영주님, 황궁에서 서신이 왔습니다."

"황궁에서요?"

듣던 이든이 제법 놀란 얼굴을 했다. 그가 레온하르트 영지의 영주로 정식 임명을 받고 난 이후 처음 받아 보는 황궁의 서신이었기 때문이다.

"바로 읽어 주시겠습니까?"

"예…!"

스왈로가 급히 품에 있던 서신을 꺼내어 뜯고는 안의 내용을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서신의 내용을 듣던 이든의 얼굴이 자뭇 심각해졌다.

"흠. 산적 토벌이라."

이든도 들어서 알고 있었다.

대륙 전반에 산적들의 수가 부채에 붙는 이자만큼이나 빠르게 불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특히 과거 영지였으나, 전쟁으로 폐허가 된 인근엔 몬스터보다 산도적들이 더 많다는 얘기도 들었다.

물론 레온하르트 영지엔 해당 없는 얘기였다.

레온하르트 인근에 있던 산채는 이든이 하루 날을 잡고 전부 소탕했기 때문이다.

당시 산채에 있던 산도적들은 우두머리를 제외하곤 겁만 주어 쫓아냈는데, 쫓겨나 도망가다시피 하던 산도적들이 타지로 옮겨 다른 산채에 투신했다면 이든의 악명 역시 그곳의 산도적들에게 널리 알려졌을 터.

이곳 주변에 빈 산채가 많다지만 듣는 귀가 있다면 놈들이 이곳에 다시 들어설 일은 없었다.

다만 문제는 다른 영토였다.

이곳이 안전해진 만큼, 다른 곳의 산채는 산도적들이 더욱 늘어난 셈이 된 것이니, 이로 인해 황실의 고민이 깊어지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서신을 읽던 내내 덩달아 수심 깊은 얼굴을 하던 스왈로가 물었다.

"어쩌실 생각이십니까? 황궁에서 이렇게까지 서신까지 보내 영주님께 도움을 요청하는 것을 보면 그만큼 다른 영지 역시 상황이 녹록지 않는다는 뜻일 텐데요."

"음."

제국은 전쟁이 남긴 상처를 딛고 재정비하고 힘을 다시 기르는 중이었다. 그 와중에 많고 많은 산채에 토벌을 나서기엔 부담이 되는 건 당연했다.

해서 서신에선 레온하르트 영지 역시 산채 토벌을 주기적으로 함께해 줄 것을 부탁하고 있었다.

영지 하나 추가됐다고 토벌이 큰 효과를 발휘하진 않겠지만, 어찌 됐든 일을 조금이라도 분담하게 되는 셈이었으니 부탁하는 황실 입장에선 나쁠 것은 없었다.

그 말인즉슨, 토벌에 자신들 역시 참여할지 말지 이든의 결정만이 남은 것이다. 이든은 고민할 것도 없다는 듯 말했다.

"황실의 부탁이니 거절할 수야 없겠지요."

하지만 스왈로는 영 내키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괜찮겠습니까? 다른 영지가 그런 것처럼 저희 역시 힘을 기르는 중이라…. 토벌을 나갈 여력이 될지 걱정입니다."

하지만 스왈로의 걱정과 달리 들려온 이든의 대답은 전혀 예상 밖이었다.

"다른 곳이라면 몰라도 힘을 기르기 위해서라면 저흰 무조건 참여해야 합니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스왈로가 곧장 되물었다.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힘을 기르기 위해 토벌에 참여한다니요?"

"미완성이기 때문입니다."

"미완성이요?"

들으면 들을수록 영문만 쌓여 가는 말이었다.

이든은 조금 더 알기 쉽게 설명을 하기 위해 먼저 질문을 던졌다.

"촌장님 생각에 영지의 병사들에게 가장 부족한 부분이 무엇인 것 같습니까?"

"부족한 부분이라…."

스왈로는 고민을 거듭했지만, 병사들의 부족한 부분을 딱히 찾지 못했다.

그의 생각엔 영지의 청년들로 이루어진 병사들은 부족함 없이, 오히려 과하다 싶을 만한 강도의 훈련들을 매일같이 충실히 소화해 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스왈로가 결국 고갤 저었다.

"잘 모르겠습니다. 병사들에게 딱히 부족한 부분이 떠오르지 않는데요. 그럴 것이 영지 내에서 실시 중인 훈련도 아무도 낙오 없이 잘 소화해 내고 있지 않습니까? 실력도 상당해졌고요."

"실력이라. 확실히 처음 만났을 때와 비교해선 상당히 나아진긴 했죠. 다만 그것이 실전에서도 그대로 적용이 될까요?"

"실전…이요?"

"현재 영지 내 청년들로만 이루어진 병사들은 실전 경험이 턱없이 부족합니다. 특히나 훈련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이후엔 도적들의 노략질 역시 끊기면서 실전을 경험할 순간이 전혀 없었죠. 훈련만으로 이전보다 기량이 올라갔다 판단하는 것은 성급합니다. 실전에서도 훈련의 결과 그대로 나오는지 확인해 봐야겠죠."

"아…. 그래서 영주님께선 이번 기회를 빌려 병사들의 실력이 정말 상승했다 볼 수 있는지 확인하실 생각이시군요."

"예, 어찌 됐든 간에 실전에서 가장 만만한 게 산적이니깐요."

"흠."

비로소 스왈로가 이해한 얼굴을 했다.

이든의 말대로 산적들은 우두머리를 제외하곤 사실상 오합지졸에 불과했다. 병사들의 기량을 확인하기엔 더없이 좋은 상대였다.

"그럼, 병사들에게 이를 미리 알려 둬야하는데, 언제쯤 출정하실 생각이십니까?"

"뭐, 시간 끌 것 있겠습니까? 내일 날이 밝는 대로 바로 출발하도록 하죠."

"알겠습니다."

"구성은 릴리 교관은 마을에 남고, 발리스타 교관은 출정에 투입. 마을 청년들 삼백여 명은 전부 출정을 하는 것으로 하고, 엘프 병사들은 현재 인원 중 백오십여 명만 추려 내 주십시오."

"엘프 병사들도 데려가실 생각이십니까?"

"혹여 몬스터들의 기습이 있을 수 있으니, 병사들 호위 개념으로 붙여 놓으려 합니다."

"아하."

함께 훈련을 받아 왔다지만, 엘프들은 마을 청년과 비교하면 실전 경험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특히나 숲의 일족인 만큼 몬스터의 기습에도 대처가 능숙할 터였다. 함께 데려가서 나쁠 것이 없었다.

그렇게 스왈로가 내일 있을 출정 준비로 바쁘게 뛰어다니는 사이, 이든 역시 개인 수련을 마저 마치곤 걸음을 옮겼다.

다름 아닌 몰린 대장 장인이 있는 대장간이었다.

***

드워프들에게 엘프의 눈물 원석 세공을 교육 중이던 몰린이 이든을  보고는 황급히 달려왔다.

"영주님, 오셨습니까?"

오는 길에 멀리서 몰린이 교육 중이던 소리를 진즉에 들었던 탓에 이든이 미안한 얼굴로 물었다.

"장인분들을 교육 중이셨군요."

"예, 엘프의 눈물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장인들을 데리고 직접 보여 주며 교육 중이었습니다. 한데 영주님께서 이곳까지 어쩐 일이십니까?"

"혹시 들으셨습니까?"

몰린이 고갤 끄덕였다.

"내일 토벌에 나가시는 얘기라면 지나가던 중에 듣긴 했습니다."

"해서 말인데, 갑옷을 하나 급하게 맞췄으면 합니다. 가능할까요?"

영지내에 주둔 중인 드워프의 수만 오십이다. 그들 전부가 달라붙는다면 갑옷 하나쯤은 뚝딱이었다. 멀린이 확인하듯 물었다.

"혹 영주님께서 입으려고 하십니까?"

"예, 맞습니다."

이든의 대답을 듣던 멀린이 씩 웃어 보였다.

"그렇지 않아도 일전에 병사들 것을 제작하면서 영주님의 갑옷 역시 제작해 놨었습니다."

"그랬습니까?"

"한번 입어 보시겠습니까?"

"아, 예."

멀린이 몇몇 장인들에게 눈짓하자 시선을 주고받은 장인 몇몇이 어디론가 달려가더니 만들어 둔 갑옷을 부위마다 하나씩 들고는 이든 곁으로 다가와 입히기 시작했다.

눈 깜짝할 새 입혀진 갑옷.

갑옷을 입은 이든이 놀란 얼굴로 물었다.

"저 지금 갑옷 입은 것 맞습니까?"

"예. 물론이죠."

"생각했던 것보다 움직임이 굉장히 편한데요?"

이든의 말대로 갑옷은 몸의 부위마다 움직임에 방해가 없도록 정밀한 기술로 만들어져 있었다.

하지만 놀라운 것은 거기에 그치지 않았다.

"무게도 입은 것과 차이가 전혀 없을 만큼 가볍고요. 원래 갑옷이란 게 다 이런 겁니까?"

몰린이 방긋 웃어 보였다.

"설마요. 영주님이 입으신 갑옷은 조금 특별한 겁니다. 미스릴로 만들어진 것이거든요."

"미스릴… 레온하르트 님의 검의 재료로 쓰였다는 그것 말입니까?"

"예, 맞습니다."

사실 이든이 레온하르트에게 받은 보검 역시 멀린 그가 만든 것이었다. 물론 지금보다 훨씬 젊은 시절에 일이었지만 말이다.

그때, 그 시절이 생각나서였을까. 몰린의 입가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그리고 이것도 한번 써 보시지요."

"음?"

"저기 영주님, 저희가 키가 작아서 그런데 잠시 무릎 좀 굽혀 주시겠습니까?"

"아, 예."

이든이 무릎을 굽히자 그사이 몰린이 발꿈치를 땅에서 떼 깡총 발을 들고는 이든의 머리에 무언가를 씌웠다.

"이건…."

이든이 자신의 머리를 가리키며 ‘이게 뭐냐’라며 손짓했다.

몰린이 이든의 머리에 씌운 것은 투구였다.

투구까지 쓴 이든의 모습을 본 몰린이 만족스러운 표정을 했다.

"투구입니다."

"투구요?"

"예, 갑옷은 다른 장인들에게 맡겼지만, 투구는 제가 손수 만들었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이든이 손을 더듬어 머리에 쓴 투구를 손으로 훑었다.

투구를 더듬던 이든이 고갤 갸웃거렸다.

투구의 모양이 단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투구가 상당히 울퉁불퉁하군요?"

"그럴 수밖에요. 레온하르트 가문의 상징인 드래곤의 얼굴 모양을 본따 만들었거든요."

"아…!"

사실, 이든은 드래곤이 어찌 생겼는지는 모르지만, 어떤 특정 형태를 본떠서 투구를 만든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는 충분히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투구 자체는 방어구를 만드는 작업에 불과하지만, 그것을 어떤 특정 형태를 본떠서 그 모양과 흡사하게 만드는 것은 예술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절대 쉬운 작업이 아닌 것이다.

이든이 짐짓 감탄한 얼굴을 했다. 몰린에게 고갤 푹 숙였다.

"감사합니다. 그냥 대충 만들어 주셔도 되는 것을, 큰 선물을 받고 가는 것 같습니다."

몰린이 뒷짐을 지며 갑옷과 투구를 쓰고 있는 이든의 모습을 훑었다.

가뜩이나 멋진 사람이 멋진 갑옷을 걸치니 마치 신화 속의 영웅을 보는 듯했다.

한참을 자세히 살피던 몰린도 이내 만족스러운 듯 고갤 끄덕였다.

"영주님께서 입으시는 갑옷입니다. 영주님의 모습이 곧 영지의 모습이 되는 것인데, 대충 만들 수 없지요. 부디 내일 있을 토벌에서 저희 장인들이 만든 검과 갑옷이 여러분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를 말씀이십니까. 더없이 큰 도움이 될 겁니다."

입고 있는 갑옷의 무게만 느껴도 알 수 있었다.

이것은 흡사 신물이라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이 신물을 만들어 낸 장인들이 병사들의 검과 방패 갑옷을 만들었다면 그 재료가 흔하디 흔한 철이라 한들 얼마나 훌륭할지는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이었다.

그렇게 이든이 드워프 장인으로부터 뜻밖의 선물을 받은 다음 날.

토벌을 위한 출정의 아침이 밝았다.

이른 아침부터 대열을 맞춘 채 늘어서 있던 병사들의 얼굴에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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