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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화. (201/250)

201화.

두 거구의 사내가 엄청난 기세를 풀풀 풍기며 마주 서니, 싸움터가 발 디딜 틈이라곤 없이 꽉 찬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거구의 사내 중 하나 오윈이 비릿하게 웃었다.

"스승? 네놈이?"

발리스타 역시 똑같이 비릿하게 웃어 보였다.

"그래, 문제 있음?"

오윈이 얼굴을 확 구겼다.

"어린놈의 새끼가 싸가지가."

"지는, 나이 먹고 산적질이나 하고 있는 주제에."

바득.

발리스타가 재차 비아냥대자 오윈의 이빨이 재차 갈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를 어찌나 세게 악물었으면 자칫 이빨이 남아나지 않겠다는 걱정마저 들 정도였다.

오윈이 심호흡 한번 하고는 마음을 다스렸다.

여기서 흥분한 꼴을 보이다간 자칫 마주 선 놈의 수에 말려들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오윈이 발리스타 뒤에서 수하들과 대치 중인 병사들을 바라보며 입을 뗐다.

"제법 수하들을 잘 가르친 모양인데, 잘 가르치는 것과 강한 것은 엄연히 다르지. 잘 가르친다고 가르치는 사람이 꼭 강한 것은 아니거든."

"마치 너처럼?"

"훗."

오윈이 실소하듯 피식 웃더니 말했다.

"뭐, 비아냥대는 것은 수준급인 듯하구나."

"그냥 네가 말발이 딸리는 거겠지."

"……."

애써 침착함을 유지하던 오윈의 눈이 재차 부릅 뜨였다.

비아냥댈 때마다 사람 속을 박박 긁는 것이 신경이 뒤집힐 지경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를 증명하듯 거대한 도끼를 쥔 오윈의 손에 힘이 바짝 들어갔다.

동시에.

우웅.

그의 손에 쥐어진 도끼에서 피어오르던 오러에서도 흉흉한 살기가 줄줄이 새어 나왔다.

오윈이 목소리를 깔며 말했다.

"뭐, 비아냥대는 것은 네놈의 자유지만, 일단 네놈의 그 주둥아리부터 찢어 놓아야 분이 풀리겠구나."

하나, 오윈이 예상하지 못한 것이 있었다.

속을 긁어 대는 발리스타의 말발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가 누구의 제자인가.

말발 신공 이든의 제자이다.

발리스타가 답했다.

"나는 네놈 면상."

"……."

"네놈 면상 볼 때마다 구역질이 나와서."

바드드득.

오윈에 입에서 이번엔 진짜로 이빨이 부서지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이미 발리스타의 말빨이 수준급이라는 것은 조금 전 대화를 통해 충분히 예상하고 있던 바였지만, 방금 했던 말은 그의 상식을 아득히 뛰어넘는 경지의 욕이었나 보다.

다른 욕도 아닌, 외모를 트집 잡는 욕이라니.

오윈의 인내심도 결국 한계에 달했다.

핏물이 주륵 새어 나올 만큼 이를 물던 오윈이 고막을 찢을 듯한 고함을 내지르며 달려들었다.

"이 시건방진 애새끼가 뒤지려고 아주 작정을 했구나!!!"

후우우우우웅!!!

오윈이 쥔 도끼가 줄기줄기 새어 나오는 오러로 잔상을 만들어 내며 발리스타를 향해 휘둘러졌다.

발리스타가 얼굴을 구겼다.

도끼에서 느껴지는 살기도 살기지만, 그 안에 담긴 힘이 산적 나부랭이치고는 그의 예상을 훨씬 웃돌았기 때문이다.

하나.

예상을 웃돌았을 뿐이지, 전혀 위협적으로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가 지금처럼 강해지기 이전부터 이미 그보다 더한 것도 질리도록 보지 않았던가.

그 와중에 발리스타의 시선이 찰나 이든을 향했다.

‘마치 저 인간처럼 말이지.’

카아아아앙!!!

거친 금속음이 사방을 찢어발기듯 굉음을 질러 댔다.

그리고 요란했던 소리만큼이나 보이는 광경 역시 만만치 않았다.

맞부딪친 오윈의 도끼와 발리스타의 대검이 팽팽히 힘을 겨루고 있었기 때문이다.

난장으로 싸우던 산적들과 병사들마저 어느새 두 사내에게 시선을 뺏긴 채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힘 대 힘.

수하들이 봤을 땐 막상막하의 실력이 힘을 겨루는 듯 보이는 광경이지만, 실상은 조금 달랐다.

발리스타의 검을 맞대던 오윈의 안색이 조금은 창백해졌다.

‘말만 번지르르한 놈이 아니었나…!’

오윈이 당혹스러워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오러를 최대한 방출하여 일격을 날린 자신과 달리, 발리스타는 오러가 아닌 오직 완력으로만 오윈의 도끼를 막아 낸 것이기 때문이다.

보통 완력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것이었다.

물론 그의 수하들과 병사들 눈엔 이것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알아볼 리가 만무하였지만 말이다.

하나, 수하들이 알아보지 못할지언정 당사자들끼린 아는 법이다.

자존심이라도 상한 걸까.

오윈의 전신에 더욱 힘이 들어갔다.

발리스타의 대검을 짓누르던 그의 도끼가 차츰 앞으로 나아가며 발리스타를 밀어내기 시작했다.

주륵.

한 걸음 정도 밀린 발리스타가 싱긋 웃었다.

"빡쳤어? 전력으로 상대하지 않은 놈이랑 비슷한 것 같아서?"

"이런 개새끼가!"

기어코 오윈에 입에서 재차 욕설이 터져 나왔다.

실력도 밀리고, 말발에서도 밀리니 열이 뻗쳐오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행동으로 드러나기 마련이다.

흥분한 오윈이 동작이 커지며 발리스타를 향해 도끼를 살벌하게 휘두르기 시작했다.

훙훙! 후웅! 훙!!!

동작만 커진 것이 아니다.

도끼날에 맺힌 오러 역시 조금 전보다 철철 흘러나오며 채찍을 연상시키듯 휘둘러졌다.

천지마저 쪼갤 듯한, 그야말로 살벌한 기세였지만, 동수 혹은 그보다 뛰어난 실력을 갖춘 고수의 눈으로 봤을 땐, 사방에 빈틈 가득한 엉성한 움직임에 불과할 뿐이었다.

오윈이 인정사정없는 공격에 살짝 물러났던 발리스타가 어느 틈에 일순 몸을 날렸다.

휘이이이이익!

거대한 몸에서 나온 움직임이라곤 생각하기 힘든 민첩함이었다.

일순 발리스타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오윈이 당황해하며 멈칫하던 그때였다.

피익!!!

"끅!"

멈추어 서던 오윈의 입에서 고통스런 신음이 터져 나왔다.

핏발 선 오윈의 눈이 자신의 허벅지로 향했다.

허벅지에 새겨진 깊은 자상에서 피가 울컥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어느 틈에…!’

정말 눈 깜짝할 새 당한 것이다.

오윈은 심히 당혹스러웠다.

그 자신이 누군가.

무려 트럼프 영지에서 교관을 지냈던 사내였다.

비록 남들은 전쟁 중에 몸을 피신한 겁쟁이라며 손가락질할지라도 그 자신의 일신 무력은 황궁의 정예 기사 못지않은 엘리트였다.

그뿐인가.

산적 왕으로서 군림한 이후에도 방탕하게 술에 쩔어 살았을지언정 그 자신의 개인 수련 시간에도 많은 시간을 할애하며 경지를 높여 가던 와중이었다.

그렇게 스스로도 고평가를 내릴 만한 경지까지 올라 칼스테인 공작이라든지, 그 못지않다고 전해진 칼라슈 정도가 아니고서는 황궁에는 자신의 적수가 더는 없을 것이라 자신했건만.

‘내, 내가…. 이 오윈이 저런 애송이 놈의 움직임조차 읽을 수 없었다고…!?’

오윈은 믿을 수가 없었다.

이성과 상처 입은 육신에서 느껴지는 고통은 눈앞의 상대가 자신보다 고수라 아우성치고 있지만, 감성은 이를 기를 쓰고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오윈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흥분이 전신을 지배하며 이성적인 사고 판단마저 못 하게 만들고 있었다.

오윈의 입에서 흡사 괴성 같은 고함이 터져 나왔다.

"죽여 주마! 무슨 짓을 해서라도 네놈을 찢어발길 것이야!!!"

오윈의 거대한 도끼가 그의 머리 위까지 치켜 올려졌다.

그냥 들기도 벅찬 저 거대한 도끼를 번쩍 들어 올리다니, 그야말로 대단한 완력이 아닐 수가 없었다.

하지만.

진짜 무서운 것은 완력이 아닌, 그의 도끼에 맺힌 오러였다.

도끼날에서 줄줄이 새어 나오던 오러가 일순 거대하게 솟아오르더니, 휘둘러진 도끼와 함께 폭풍 같은 기세로 발리스타를 향해 휘몰아치듯 달려들기 시작했다.

검술이 극에 달하면 상대에게 닿지 않아도 검기로 상대를 죽일 수 있다는 검기 상인의 경지.

그것도 극에 이른 검기 상인의 경지였던 것이다.

오윈이 스스로의 실력에 자신 있던 것은 근거 없는 자신감이 아니었다.

콰과과가가가강!!!

지면을 뒤흔들고, 뒤집어 엎으며 무시무시한 기세로 해일처럼 달려들던 오러가 발리스타의 코앞까지 다가오던 그 순간이었다.

콰아아앙!!!

발리스타의 바로 앞에서 폭음과 함께 거대한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찾아온 일순간의 정적.

시야를 가리는 뿌연 흙먼지와 함께 찾아온 정적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서서히 먼지가 걷히고 드러난 광경에 사방에서 탄성과 경악이 터져 나왔다.

탄성은 토벌대 병사들의 것이었고, 경악은 산적들에게서 나온 것이었다.

"…이럴 수가!"

"어, 어떻게… 어떻게 이런 일이…!"

"말도 안 돼!"

오윈 역시 말은 안 했지만, 지진이라도 난 것마냥 그의 눈알이 거칠게 흔들려 대고 있었다.

대체 무엇을 봤길래 다들 한결같은 호들갑일까.

경악과 감탄이 한데 뒤섞인 이목이 일제히 발리스타가 쥔 대검을 향해 있었다.

우우우우웅.

연기처럼 일렁이는 오러가 아닌, 뚜렷한 검의 형태를 한 검은빛을 띠는 오러가 조금 전 오윈이 날렸던 검기를 무위로 돌리곤 위엄을 뽐내며 강렬한 인상을 남기고 있었다.

"오러… 블레이드…?"

엘프 중 하나가 저도 모르게 중얼거리는 소리에 곳곳에서 믿기지 않는다는 음성이 연달아 들려왔다.

"오러 블레이드…? 그러니까 저게 그 오러 블레이드라고?"

"색이… 검은색인데?"

"색이 중요해? 저건 분명 오러 블레이드라고…!"

제아무리 산적들이라도, 그리고 말단 병사들이라도 오러 블레이드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

검의 극에 이른 경지에 올랐다는 소드 마스터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오러 블레이드의 위엄은 그토록 대단한 것이었다.

하나, 그 모든 반응을 합쳐도 오윈만큼 당혹스러워하지는 않을 것이다.

오윈의 안색이 창백해진 것을 넘어 어디라도 아픈 것마냥 식은땀마저 흘리며 새하얗게 질려 버렸다.

‘어, 어떻게… 저런 애송이가 어떻게 오러 블레이드를… 오러 블레이드를 뽑아낼 수 있단 말인가…!’

오윈 역시 한때나마 기사로 몸을 담던 이. 그런 그가 오러 블레이드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모를 리가 없다.

칼스테인이 저 경지에 올라 제국 제일 검이 되었고, 더불어 전쟁을 종식 시켰다는 심안의 무사가 저 경지였으며, 그 이전에 전설의 기사 레온하르트 공작이 저 경지이지 않았던가.

오윈 그로선 감히 쳐다도 못 볼 고수들이 바로 소드 마스터의 경지였다.

그런데.

그 최강의 일신 무력이라는 소드 마스터의 경지를 눈앞의 애송이가 보이고 있었다.

그가 말조차 제대로 못 하며 당혹스러워하는 것이 당연했다.

오윈의 도끼를 쥔 손이 부르르 떨릴 무렵이었다.

오윈의 일격 피살을 파훼했던 발리스타가 새파란 안광을 피우며 오윈을 향해 터덜터덜 걸어갔다.

크그그극.

오러 블레이드가 덧씌워진 발리스타의 대검이 축 늘어진 채 땅을 긁은 채 가르며 다가오고 있었다.

오윈이 넋을 놓은 채 물었다.

"어, 어떻게… 어떻게 그 나이에… 그 경지에 오를 수 있는 거지?"

이해 불가일 것이다.

심안의 무사 이든은 논외로 치더라도 그 칼스테인조차 중년에 이르러 소드 마스터의 경지에 올랐다.

그런데 이제 약관이나 됐을 법한 애송이가 오러 블레이드라니.

두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가 않았다.

오윈의 물음에 발리스타의 답변은 담백하기만 했다.

"천재니까."

"……!"

"네놈과 달리."

"이, 이이… 개소리하지 마라. 그래! 속임수다. 저 오러 블레이드는 속임수란 말이다!"

당혹스러움이 커지면, 보고도 부정하기 마련이다.

오윈의 현재 상태가 그랬다.

하나, 애써 부정하는 오윈의 말에도 발리스타는 그저 묵묵히 그를 향해 다가갈 뿐이었다.

덜컥.

정적과 함께 집중된 이목 속에 어느새 오윈의 코앞까지 다가와 멈춰 선 발리스타.

적이 바로 앞까지 다가왔음에도 오윈은 얼어붙은 것마냥 움직이질 못했다.

발리스타가 축 늘어뜨렸던 대검을 하늘 위로 치켜세우더니 입을 뗐다.

"네놈 수준은 딱 산적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다, 닥쳐라아아아!"

오윈이 찢어질 듯한 괴성을 질렀다.

얼어붙었던 그의 몸이 다시금 움직이며 발리스타를 향해 도끼를 휘두르려던 그때였다.

"흑룡참마격(黑龍斬魔擊)."

발리스타의 검은빛의 오러 블레이드가 우호법 장룡의 절기를 뽐내며 도끼째로 오윈을 갈라 버렸다.

콰아아아아아아앙!!!

오윈의 몸에 머리에서 사타구니까지 반듯이 갈라지며 사방에 피를 뿌렸다.

일격에 비명도 없이 유명을 달리한 제 두목의 모습에 그의 수하들이 쥐고 있던 무기를 일제히 놓았다.

전의를 상실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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