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6화.
자신이 쿠훌락의 친구라는 이든의 말에 대쿨락이 미간을 좁혔다.
가뜩이나 못생긴 보랏빛 오크의 얼굴이 더욱 못생겨졌다.
"친구? 인간과 오크. 친구 될 수 없다."
이든이 고갤 갸웃거리며 반문했다.
"왜 친구가 될 수 없다는 거지?"
대쿨락이 뭘 당연한 것을 묻냐는 듯 말했다.
"오크. 인간 사냥한다. 인간도 오크 보이는 족족 죽인다. 우린 친구 될 수 없다. 우린 서로 적이다."
하나, 대쿨락의 말을 듣던 이든은 고갤 저었다.
"편협한 생각이다. 나와 쿠훌락은 조금 전 친구의 연을 맺었다."
"불가능하다."
"가능하다."
"어째서."
"상남자들끼린 가능하다."
"…상남자?"
"쿠훌락은 상남자다."
이든이 이번엔 엄지로 자신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나 역시 상남자지. 상남자들끼리는 서로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의리라는 것이 있다."
대쿨락이 콧김을 ‘훙’ 하고 뿜었다.
가소롭다는 뜻의 콧김이었다.
"웃기는 소리. 쿠훌락은 상남자 아니다."
"상남자다."
"아니다. 상남자는 나 대쿨락이다."
이든이 고갤 저었다.
"아니. 대쿨락, 네놈은 결코 상남자라 할 수 없다. 자격 미달이지."
자존심에 금이 간 걸까.
대쿨락이 금방이라도 달려들 듯한 기세로 물었다.
"나. 대쿨락. 상남자다! 내가 왜 상남자가 아닌가!"
"몰라서 묻나?"
"말해라. 나. 대쿨락. 왜 상남자 아닌지 이유 대지 못하면 너. 갈기갈기 찢어 죽인다!"
이든이 대쿨락이 그랬던 것처럼 콧김을 ‘훙’ 하고 뿜었다. 그리고 가소롭다는 듯이 말했다.
"네놈이 상남자가 아닌 이유는 간단하다. 바로 데스 스타의 하수인이기 때문이지."
"……!"
대쿨락의 눈이 부릅 뜨였다.
그사이, 이든이 재차 말을 이어 나갔다.
"진정한 상남자는 친구가 될지언정 누군가의 밑에 들어가지 않는다. 쿠훌락은 데스 스타의 하수인이 되느니 차라리 전쟁을 택하겠다고 말했다. 쿠훌락 부족의 전사들 역시 마찬가지로 말이다. 하나, 너희들은 어땠지? 데스 스타가 두려워 놈의 하수인이 된 것도 모자라서 다른 용기 있는 상남자들에게 데스 스타의 부하가 되기를 종용했다. 대쿨락, 간사한 네놈은 결코 상남자 될 수 없다. 네놈의 부족들 역시 전부 마찬가지로 말이다."
"닥쳐라!!!"
고함을 내지른 대쿨락의 보랏빛 피부가 붉으락푸르락 변했다.
열이 잔뜩 받은 듯한 모습이었다.
하나, 닥치라고 해서 입 닥칠 이든이 아니었다.
누가 닥치라 하면 결코 닥치지 않는 상남자. 그것이 이든이었다.
이든이 재차 입을 놀렸다.
"대쿨락의 수하들은 내 말 잘 들어라! 내 듣기론 오크들은 모든 종족을 통틀어 가히 상남자 중의 상남자라 들었다. 한데! 네놈들의 우두머리는 데스 스타의 개가 되기로 작정했다! 너희들은 상남자로 태어나 개가 된 두목의 말을 따를 셈이냐! 상남자의 자존심이 그것을 허락하느냐 이 말이다!"
"……."
이든의 외침을 듣던 대쿨락 부족 오크들의 얼굴이 묘하게 변했다.
수하들의 반응에 대쿨락이 심히 당황한 기색을 숨기지 못하는 사이, 이든은 마지막 회심의 일격을 날렸다.
"창피한 줄 아는 것들은 그나마 상남자의 자존심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 하나! 개가 된 두목을 그럼에도 따르겠다는 것들은 가히 개새끼라 불러도 할 말이 없다! 개새끼들은 창피한 줄 알아라!"
조금 전까지만 해도 살기를 피우며 전의를 활활 불태우던 대쿨락 부족의 오크들이 전의를 상실한 것마냥 고갤 푹 숙였다.
싸움을 본격적으로 하기도 전에 푹 꺼져 버린 전의.
이든의 마지막 회심의 한마디가 결정타를 날린 것이다.
대쿨락이 당황한 얼굴로 수하들을 둘러봤다.
이 상태의 전의라면 쿠훌락 부족과의 전쟁에서 백전백패일 수밖에 없는 상황.
이든이 계속 입을 놀리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걸까.
"건방진 인간! 닥쳐라!!!!"
휘이이이이익!!!
대쿨락이 버럭 외치며 제 몸집에 어울리는 거대한 태도를 쥔 채 이든을 향해 맹수처럼 달려들었다.
이든이 상남자답게 힘 대 힘으로 응수하려던 그 순간.
카아아아아아앙!
거대한 금속음이 울리며 대쿨락의 태도가 도중에 멈췄다.
대쿨락이 자신의 태도를 막아선 이를 노려보았다.
"쿠훌락…!"
대쿨락의 맹수와 같은 돌격을 막아낸 이는 다름 아닌 상남자 쿠훌락이었다.
쿠훌락이 대쿨락을 노려보며 대꾸했다.
"대쿨락, 네놈의 상대는 나. 쿠훌락이다!"
"건방진 쿠훌락!!!"
중간에 쿠훌락이 난입한 상황이었지만, 이든은 상관하지 않았다.
오크 간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려 하는 상남자 쿠훌락의 의지를 존중하기 때문이었다.
이든이 자신은 이 싸움에 끼지 않겠다는 듯 팔짱을 끼곤 자세를 풀었다.
이로써 데스 스타의 개가 된 놈과 상남자의 대결이 성사된 것이다.
대쿨락이 으르렁거리며 태도를 연달아 휘둘렀다.
쿠훌락 역시 응수하듯 태도를 휘둘렀다.
카앙! 카아앙! 카아아앙!!!
거친 금속음이 쩌렁쩌렁 울리며 천둥이 치는 듯한 소음을 만들어 냈다.
가히 막상막하의 힘.
비록 쿠훌락의 상대는 데스 스타의 개였지만, 개도 종자가 있기 마련이다. 대쿨락은 그중 사냥개였다.
카아앙! 카앙! 카앙!!
금속음은 쉬지 않고 계속 울려 댔다.
호각지세를 보이던 공방이 수십 차례 오가던 그때였다.
대쿨락의 맹공에 맹렬히 맞서던 쿠훌락의 몸이 차츰 뒤로 밀리기 시작했다.
공방이 길어지자 조금 더 덩치가 컸던 대쿨락이 힘의 우위에 서며 쿠훌락을 압박해 가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쿠훌락이 이를 악물며 버티기 위해 애썼다.
대쿨락이 이를 드러내며 웃다가 쿠훌락과는 다르게 여유가 있는지 입을 떼곤 조잘대기 시작했다.
"쿠훌락, 네놈. 내 상대 되지 않는다. 나. 데스 스타 님에게 힘 얻었다. 덩치 더 커지고 강해졌다. 쿠훌락은 내 상대 되지 않는다!"
쿠훌락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대쿨락은 확실히 이전보다 강해진 상태였다.
그리고 강해진 것은 비단 대쿨락뿐만이 아니었다.
쿠훌락의 시선이 빠르게 대쿨락의 수하들을 훑었다.
자신의 아래에 있는 쿠훌락 부족의 오크들보다 큰 덩치를 자랑하는 대쿨락 부족의 오크들.
필시 대쿨락과 마찬가지로 데스 스타에게 힘을 받은 결과일 것이다.
카앙! 캉! 카아앙!
기세가 붙은 대쿨락의 태도가 쿠훌락을 향해 맹렬히 쏟아졌다.
쿠훌락의 몸이 바닥에 기다란 발자국을 만들어내며 점차 뒤로 밀리길 반복하던 그때였다.
쿠훌락이 옆으로 몸을 날렸다.
휘두르던 대쿨락의 태도가 허공을 가르며 빗나갔다.
대쿨락이 콧김을 훅 하고 뿜으며 비아냥댔다.
"쿠훌락, 상남자라더니. 피했다. 쿠훌락 너. 상남자 아니다. 물러서지 않은 나 대쿨락이 상남자다!"
이든에게 데스 스타의 개라는 비아냥을 받으며 상남자가 아니라는 말이 내내 마음에 걸렸던 모양이다.
대쿨락이 상남자를 의식적으로 언급하는 것이 그 증거였다.
하나, 쿠훌락은 고갤 저었다.
"대쿨락은 상남자 아니다."
"어째서!"
"대쿨락의 힘. 대쿨락 것 아니다. 데스 스타의 것이다. 하나, 나. 쿠훌락. 오직 나만의 힘으로 대쿨락과 맞서고 있다. 피했을지언정 내가 진짜 상남자다!"
"개소리마라!"
"개는 대쿨락 너다. 그러니 네가 하는 말이 개소리다!"
"닥쳐라!"
쿠훌락은 상남자지만, 말빨 좋은 상남자였다.
쿠훌락의 말빨을 이기지 못한 대쿨락이 열이 잔뜩 받은 얼굴로 재차 쿠훌락을 향해 달려들었다.
찰나의 찰나를 쪼갠 순간.
쿠훌락은 머릴 굴렀다.
이대로 힘 대 힘으로 정면 승부를 이어나가다간 대쿨락에게 패배할 뿐이란 것을 쿠훌락은 알고 있었다.
상남자이지만, 머릴 쓸 줄 아는 상남자. 그것이 쿠훌락이었다.
쿠훌락이 대쿨락이 달려들던 역방향으로 급히 몸을 날렸다.
그리고 순간.
휘이이익! 촤하아아악!
몸을 날렸던 쿠훌락이 한 손에 쥐고 있던 태도로 대쿨락의 허벅지를 긁었다.
쿠훌락의 태도가 훑고 지나간 대쿨락의 허벅지에 상처가 벌어지며 초록색 피가 울컥 터져 나왔다.
대쿨락이 ‘큭’ 하는 신음을 내며 휘청거렸다.
대쿨락이 버럭 소릴 질렀다.
"쿠훌락, 이게 무슨 짓인가!"
"뭐가 말인가."
"상남자를 가리는 힘 대 힘의 대결에서 비겁한 수를 쓰다니. 쿠훌락, 네놈이 그러고도 상남자라 할 수 있나!"
듣던 쿠훌락이 콧김을 훅 뿜으며 어처구니 없다는 듯 말했다.
"흥! 대쿨락 네놈은 애초에 데스 스타에게 힘을 받지 않았나! 이 대결은 애초부터 정당하지 못했다. 한데 나에게 힘 대 힘 싸움을 강요하다니. 대쿨락, 네놈 비겁하다!"
힘의 대결에선 밀렸을지언정 말빨은 절대 밀리지 않는 상남자. 쿠훌락의 대꾸에 대쿨락이 일순 고함을 지르며 상처 입지 않은 멀쩡한 발을 연신 굴러 댔다.
쿵쿵쿵쿵!
"크오오오오!!!!"
열이 잔뜩 받았다는 것을 온몸으로 표현해 내는 것이었다.
대쿨락이 핏발 선 눈으로 붉은 안광을 터트리며 외쳤다.
"쿠훌락, 너는 나에게 망신을 줬다. 나 대쿨락. 쿠훌락 반드시 죽인다!!!"
발을 구르며 성을 내던 대쿨락이 쿠훌락을 향해 재차 달려들었다.
쿵쿵쿵!
놈의 뜀박질에 땅이 울렸다.
붉은 안광을 터트리자 넘치는 힘을 주체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그 모습에 쿠훌락이 난감한 듯 인상을 썼다.
하나.
쿠훌락에게 승리의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상처 입은 한쪽 다리가 불편한 것인지 달려드는 와중 대쿨락이 연신 절뚝거리며 움직임이 둔해진 것이다.
쿠훌락이 땅을 쿵 밟고는 하늘까지 닿을 듯 뛰어올랐다.
후웅!!!
대쿨락의 검이 다시 허공을 갈랐다. 대쿨락을 뛰어넘었던 쿠훌락이 급히 몸을 돌려 태도를 휘둘렀다.
대쿨락의 등 뒤에 기습을 가한 것이다.
휘이이익!
촤아아아악!!!
"크아아아아아!!!"
등에서 솟아 오른 핏물과 함께 대쿨락이 괴성을 질러 댔다.
등에 새겨진 깊은 자상에서 오는 고통에 지르는 괴성이었다.
등에 자상 하나. 그리고 조금 전 허벅지에 또 하나의 자상까지.
목숨이 왔다 갔다 할 만한 상처는 아니었지만, 결코 싸움을 이어 나갈 수 있을 만한 가벼운 상처 역시 아니었다.
하나, 대쿨락은 멈추지 않았다.
더욱이 새빨간 안광을 터트리며 쿠훌락을 향해 광전사마냥 달려들 뿐이었다.
쿠훌락은 이 이후에도 흥분한 대쿨락의 공격을 피하며 계속해서 대쿨락의 몸에 검상을 입혔다.
보랏빛을 보이던 대쿨락의 전신이 어느새 몸 곳곳에 새겨진 검상으로 새빨갛게 물들었다.
온몸이 수십 개의 검상으로 뒤덮인 대쿨락이 연신 거친 숨을 토해냈다.
대쿨락의 몸이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부들부들 떨렸지만, 결코 쓰러지지 않는 그 모습에 상남자 쿠훌락마저 기겁하며 질려 버릴 정도였다.
대쿨락이 연신 중얼거렸다.
"죽인다. 쿠훌락. 죽인다…."
쿠훌락이 지금까지 보이지 않았던 수심 깊은 눈빛을 했다.
쿠훌락이 대쿨락을 안쓰럽게 바라보며 말을 건넸다.
"대쿨락, 비록 데스 스타의 개일지언정 상남자답게 잘 싸웠다. 이제 그만 쉬어라."
"웃기지… 마라. 나 대쿨락. 우리 부족 오크들 반드시… 살린다."
대쿨락이 데스 스타의 개가 된 이유.
대쿨락이 크훌락에게 데스 스타의 부하가 되길 종용한 이유.
그 모든 것의 이유는 오직 하나였다.
바로 오크란 종족을 살리기 위함이었다.
쿠훌락 역시 자신의 종족을 사랑하는 이였기에 대쿨락의 마음을 알고 있었다.
하나, 대쿨락의 그 방식이 잘못되었다는 것 또한 알고 있었다.
쿠훌락이 땅에 자신의 두 발을 굳건히 박아 넣은 채 태도를 세웠다.
비록 가는 길이 달랐지만, 나름 상남자라 할 수 있는 대쿨락에게 안식을 주기 위한 마지막 일격을 날리려 하는 것이었다.
대쿨락 역시 쿠훌락의 마음을 알아차린 걸까.
대쿨락이 부르르 떨리는 손으로 자신의 태도를 가까스로 세우며 쿠훌락을 향해 달려들었다.
대쿨락이 외쳤다.
"오크를 위하여!!!"
쿠훌락도 마주 서 태도를 휘두르며 외쳤다.
"오크를 위하여!!!"
카아아아아아앙!!!
태도와 태도가 맞부딪친 그 순간.
거대한 금속음이 한차례 울음을 토해 냈다.
그리고.
울음은 한 번으로 그치며 더는 울려오지 않았다.
쿠훌락의 태도에서 새파란 오러가 찰나 반짝이더니, 맞부딪쳤던 태도 채로 대쿨락의 몸을 베어 버린 것이다.
촤아아아아악!
지금껏 대쿨락이 쏟아 냈던 핏물보다 훨씬 많은 피가 대쿨락의 가슴에서 홍수처럼 터져 나왔다.
대쿨락이 두 동강이 난 자신의 태도를 쥐고 있던 손에 힘을 풀었다.
철컹.
붉은 안광을 터트리던 대쿨락의 눈빛이 점점 희미해졌다.
죽음을 앞둔 그 순간, 대쿨락이 앞으로 넘어가듯 쓰러지며 쿠훌락에게 마지막 한마디를 남겼다.
"쿠훌락, 우리 부족… 부탁…한."
쿠웅.
데스 스타의 개가 되기로 작정했지만, 자신의 부족과 오크를 사랑했던 나름 상남자 대쿨락의 생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