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11화. (211/250)

211화.

미스릴이 무엇인가.

같은 크기의 자원 중에서 가장 가벼운 무게, 그리고 가장 강한 강도를 지닌 것이 바로 미스릴이란 금속이다. 그리고 같은 크기면 황금이나 어떤 귀금속보다 귀한 자원 역시 미스릴이었다.

하늘이 내린 선물이라 불릴 정도로 대단한 가치를 지녔던 이 미스릴은 오직 드워프의 기술만으로 채취할 수 있고, 가공 역시 드워프들만이 가능한 것이어서 드워프가 세상에 등을 지고, 모습을 감춘 뒤론 미스릴이란 자원 역시 덩달아 모습을 감추어 버렸다.

덕분에 드워프가 세상을 감추기 전, 만들어졌던 미스릴 장비들은 그 가치가 천정부지로 뛸 수밖에 없었고, 현재는 극히 일부의 귀족들과 부호들만이 가질 수 있는 무가지보가 되었다.

그런데.

그 무가지보가 일개 병사들 모두에게 보급이 가능해진다면…?

쉬이 믿기 힘든 얘기였지만, 칼스테인 공작 앞에 자리한 드워프 몰린은 분명 그렇게 얘기하고 있었다.

"예, 과거엔 희소성을 생각해서 생산에 제한을 두었지만, 모든 드워프들이 작정하고 현재 드워프 왕국에 있는 미스릴 자원을 캐내어 오직 미스릴 장비를 만드는 것에만 집중한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입니다."

"……."

재차 들려온 대답에 칼스테인 공작은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만약 몰린의 말대로라면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앞둔 데스 스타와의 전쟁에서 병사들의 전력이 크게 상승하는 것은 당연했기 때문이다.

칼스테인 공작은 찰나 정신을 차리지 못하다가 마지막으로 확인하듯 물었다.

"…몰린 장인께서 말씀하시는 모든 병사의 범위가…. 정확히 어느 정도입니까?"

미스릴 장비가 정확히 어느 규모까지 보급 가능한지 수치상으로 묻는 것이다.

몰린의 시선이 맞은편에 있는 이든과 황제, 칼스테인 공작을 차례로 훑다가 자신 옆에 자리한 갤러하드와 쿠오락까지 빠르게 훑었다.

몰린이 잠시 턱을 매만지며 고민하다가 천천히 입을 뗐다.

"…외형을 포기하고, 오직 갑옷이라는 그 기능에만 중점을 둔 대량 생산을 목적으로 한다면…."

"……."

"…이곳에 자리한 각 종족 주 병력 모두에게 보급이 가능하다고 판단되는 바입니다."

"…이곳에 자리한…. 모든 종족에게 말입니까?"

"예."

"……."

생산 가능 범위가 상상 초월이다.

칼스테인 공작의 눈이 지진이라 도 난 듯 흔들렸다.

비단 그뿐일까.

갤러하드 역시 말은 안 했지만, 상당히 놀란 얼굴이었고, 이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모르는 쿠오락만이 멍청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장비 따윈 안중에도 없다는 상남자 오크다운 모습이었다.

스윽.

칼스테인 공작의 시선이 황제를 향해 옮겨졌다.

이젠 최종 결정권자인 황제의 결단만 남은 것이다.

내내 듣기만 하던 황제가 그와 눈을 마주치곤 천천히 입을 뗐다.

"반발이 만만치 않을 겁니다. 저 많은 쿠훌락 오크 부족을 트럼프 영지 인근에 있던 산채에 거주할 수 있도록 일부 땅을 내주잔 얘기를 꺼내면 말이지요."

칼스테인이 동의하듯 고갤 끄덕였다.

"예. 아마 수많은 대신이 기를 쓰고 반대하려 들겠지요."

황제와 칼스테인 공작의 예상처럼 대다수 대신이 반대할 것이 뻔했다. 데스 스타와의 전쟁이 재차 벌어질 가능성이 크고, 그것에 대비해 미스릴 장비의 보급이라는 파격적인 조건이 걸려 있다 하더라도 말이다.

아니, 어쩌면 전쟁 역시 섣부른 판단 아니냐고, 믿지 않을 가능성이 컸다.

황제가 재차 입을 뗐다.

"하지만…."

"……?"

그런데 왜일까.

입을 떼고 찰나 말끝을 흐렸던 어린 황제의 눈에 그 어느 때보다 강한 결의가 비치는 까닭은.

황제가 말을 이었다.

"저는 대신들의 목소리보다…. 후에 있을 전쟁에서 싸우게 될 병사들 하나하나의 목숨이 더욱 중요합니다."

"……."

황제의 말을 듣던 칼스테인 공작의 입가에 보일 듯 말 듯 작은 미소가 걸렸다.

아직 한참이나 어린 황제이지만, 들이닥친 지금의 모진 풍파에 이 어린 황제는 그의 할아버지인 선대 황제와 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

‘성장하셨구나….’

칼스테인 공작이 바라보는 어린 황제의 등 뒤에 언뜻 선대 아슬란 황제의 젊은 시절에 모습이 비치는 듯했다.

칼스테인이 고갤 끄덕였다.

"폐하의 마음이 이끄는 결정을 하십시오. 소신은 폐하의 뜻에 그저 따를 뿐이옵니다."

제국의 검이 말한다.

당신의 뜻에 따르겠다고.

당신의 앞길을 막는 모든 것을 베어 넘기고, 당신이 바라는 뜻을 이루게 해 주겠다고.

칼스테인 눈빛에 어린 의지를 읽은 걸까.

황제가 고갤 끄덕이며 자리한 이들을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이 이든부터 해서 쿠오락, 몰린, 갤러하드를 차례로 훑었다.

황제의 작은 입술이 큰 결단을 내리듯 진중한 음성을 내뱉었다.

"허가합니다."

"……!"

얼빵한 상남자 쿠오락을 제외한 황제의 말을 듣던 모두가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대신들의 결정을 건너뛰고, 곧바로 허락하겠다는 결단이 내려진 탓이었다.

이 자리의 주범(?)인 저 이든조차 황제의 과감한 결단에 걱정이 밀려오는 듯 물었다.

"폐하, 대신들의 결정이 없어도 괜찮으신 겁니까? 분명 반발이 엄청 거셀 겁니다."

황제가 미소 지었다.

"그렇겠지요."

"……."

"하지만 저는 압니다. 이 자리에서 오고 간 대화가 대신들의 어떤 말보다도 훨씬 중요하다는 것을."

"……."

"쿠오락 대표도 그렇고, 몰린 장인님도 그리고 갤러하드 님도 역시 마찬가지로 하나같이 모두 바쁜 사람들일 겁니다. 그리고 이 사람들이 저의 결정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제 결정이 빨라질수록 데스 스타와의 전쟁을 대비하는 계획에 속도가 붙을 테니까요. 그걸 빤히 아는데 어찌 한가로이 대신들의 말을 들을 수가 있겠습니까. 자리하신 모든 분들은 계획대로 데스 스타와의 전쟁을 준비하는 데 만전을 기해 주십시오. 저의 결정으로 인한 모든 책임은 오로지 제가 감당하겠습니다."

어린 나이답지 않은 과감한 결단과 책임감에 모두 감탄한 얼굴을 했지만, 이로 인한 후폭풍을 감당해야 할 저 어린 황제가 걱정되는 것 또한 사실이다.

갤러하드와 몰린의 시선이 칼스테인 공작을 향해 힐끗 향하고, 칼스테인 공작이 웃으며 고갤 주억거렸다.

"폐하의 뜻이 곧 제 의견입니다."

"……."

칼스테인까지 동의한 마당에 더는 무슨 말이 필요할까.

그때였다.

계산적이고 깐깐하지만, 얼빵하고, 눈치 없는 상남자 쿠오락이 황제를 향해 엄지를 치켜들었다.

"쿠오락, 인간 황제에게 감동했다. 인간 황제. 어리지만. 아주 상남자다."

"…고, 고맙습니다."

황제가 어색하게 웃으며 답하고, 그사이, 이든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자리한 상남자들과 귀빈들의 시선이 일제히 이든을 향했다.

이든이 입을 뗐다.

"몰린 님, 그리고 쿠오락 대표."

"예."

"꾸?"

"제국의 허락까지 떨어진 마당에 시간 끌 것 뭐 있습니까? 바로 움직일 준비 하시죠."

상남자 쿠오락이 힘차게 고갤 끄덕이며 동의하고.

"과연 이든. 쿠훌락 부족이 인정한 상남자다. 우리 상남자들. 우물쭈물 안 한다. 결정되면 바로 움직인다."

반면에 몰린은 화들짝 놀라며 되물었다.

"지금 바로 말입니까?"

"예, 지금 바로."

"하지만 드워프도 그렇고, 오크들 역시 대대적인 이동을 준비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겁니다. 그리 서두르실 필요가…."

"서두를 필요가 있습니다."

"……?"

말을 자르고 들어오는 이든의 한마디에 몰린이 의아한 얼굴로 고갤 갸웃거렸다.

이든이 말을 이었다.

"일단 우리 쪽에서 일을 저지르고 봐야 각자 거주까지 끝나야 폐하께서도 대신들을 설득하기 위해 움직이시는 데 더 편할 겁니다."

"하지만 쿠훌락 부족이 트럼프 영지까지 이동하는 데 걸리는 시간도 그렇고, 저희 역시 고향까지 이동하는 데 최소 한 달은 걸립니다. 그것이 가능할 리가…."

"잊으셨습니까?"

이든이 씩 웃어 보이며 말을 이었다.

"제 능력이면 아무리 먼 거리라도 엎어지면 코 닿을 곳이란 걸."

"아…!"

몰린이 그제야 이든의 능력 중 하나인 이공간 문을 떠올렸다.

일전 드워프 도시에서 이곳 영지로 왔을 적에도 이공간 문을 통해서 한걸음에 도착하지 않았던가.

확실히 그거라면 하루 안 되어 오크와 드워프의 대규모 이동이 끝날 터였다.

몰린이 고갤 끄덕이며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이 자리가 끝나는 대로 이 소식을 대장 장인인 몰린에게 알리겠습니다. 준비 역시 차질 없이 최대한 빨리 끝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이든이 고갤 끄덕이고, 쿠오락에게 물었다.

"쿠오락은 어때? 금방 가능하겠어?"

"우리 쿠훌락 부족. 준비할 것 없다. 그냥. 몸만 가면 된다!"

"좋아."

이든이 ‘짝’ 소리가 나도록 손뼉을 마주쳤다.

자연히 집중된 이목 속. 이든이 재차 주입시키듯 말을 꺼냈다.

"아직은 이런 광경이 어색할 겁니다. 하지만 점차 익숙해지셔야 합니다. 조금 전에도 말씀드렸다시피, 우린 데스 스타라는 공동의 적을 둔 사람들입니다. 누군가는 데스 스타로 인해 영지와 영지민을 잃어야만 했고, 누군가는 소중한 병사들의 죽음을 그저 목도할 수밖에 없었으며, 또 다른 누군가는…. 데스 스타의 간사한 이간질에 같은 종족에게 칼을 겨눌 수밖에 없었습니다. 더는 당하고만 있을 순 없습니다. 데스 스타에게 맞서 싸워야 합니다. 그리고 제가 그 싸움의 선봉에 서겠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들께서 부디 이 부족한 저를 도와주십시오."

이든이 자리한 모두를 향해 허릴 접다시피 하며 고갤 푹 숙였다.

자리한 모두가 화들짝 놀라며 벌떡 일어섰다.

"이, 이든 공작님, 어인 말씀이십니까. 공작님께서 부족하시다니요. 듣는 제가 부끄럽습니다…!"

황제가 급히 이든을 일으켰고.

"마, 맞습니다. 우리 드워프들이 영주님에게 받은 은혜가 얼마나 큰데요!"

몰린은 발을 동동 굴렀으며.

"이든, 그런 말 말게나. 자네가 내 딸을 구해 주고, 우리 엘프족을 위기에서 구한 것을 내 지금도 잊지 못하고 있네. 더는 서운한 말 하지 말게."

갤러하드는 서운함을 표하며.

"이든, 일어서라. 상남자는 고개 숙이지 않는다. 상남자답게 빳빳이 세워라!"

쿠오락은 남자다움을 강조(?)하며 분개했다.

결국, 이들의 만류에 이든은 숙였던 고갤 천천히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이든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걸렸다.

지금 당장은 그 자신을 중심으로 이곳에 모였다지만, 시간이 지나면 굳이 본인이 아니더라도, 서로가 자신의 등을 상대방에게 기댈 수 있는 동료가 될 가능성을 충분히 엿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였다.

돌아가는 분위기를 살피던 스왈로가 눈치 빠르게 무언가를 가져와 탁자에 깔았다.

"이런 자리에 술이 빠지면 섭하지요."

쪼르르.

스왈로의 손길에 잔이 빠르게 술이 채워졌다. 손님이 오면 능숙하게 차부터 준비하던 버릇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

각 종족의 대표들이 어색한 얼굴로 자신의 앞에 놓인 잔을 하염없이 바라보다가 이든이 먼저 잔을 쥐고 탁자 중앙을 향해 팔을 뻗어 내밀자,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함께 자리한 이들 역시 이든의 잔이 있던 곳을 향해 자신의 잔을 내밀었다.

쨍.

유리잔이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잠시 뒤.

마을 회관에 안에서 웃음소리가 피어났다.

이든의 손에 의해 강제로 시작된 만남이었고, 내내 어색했던 분위기였지만, 술이 들어가는 순간 어색함이 차츰 사라지고, 서로를 바라보던 편견 역시 한 꺼풀씩 벗겨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 자리를 바라보던 스왈로의 입가에 뿌듯한 미소가 지어졌다.

데스 스타의 재침공이라는 더 없이 위기를 앞둔 이 순간에도.

희망은 여전히 존재했다.

지금 이들의 모습이 그 증거였다.

그리고 점점 쌓이는 레온하르트 영지의 성벽처럼.

각 종족 간에 신뢰 역시 점차 쌓여 갈 것이라고.

스왈로는 그렇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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