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7화.
이든이 화들짝 놀란 얼굴로 되물었다.
"레온하르트 님의 의족과 의수라 하셨습니까?"
몰린이 고갤 끄덕였다.
"예. 사실…. 일전 지하 도시에서 레온하르트 님을 뵀을 때부터 쭉 계획해 오던 것이었습니다. 어제부터 꼼꼼히 따져 가며 설계도를 최종으로 확인하고 새벽부터 작업 중이었습니다."
"그러셨군요…."
레온하르트는 오래전 데스 스타와의 일대일 결투에서 치명상을 입고 한쪽 팔과 한쪽 다리를 잃었었다.
물론 레온하르트의 동귀어진이었기에 데스 스타 역시 치명상을 피하진 못했지만, 레온하르트처럼 불구가 될 정도는 아니었다.
그 때문에 삼 년 전, 데스 스타가 자신을 제외한 마지막 드래곤인 레온하르트를 마저 죽이기 위해 강림하여 세상을 불바다로 만들었을 때도 레온하르트가 일전처럼 앞에 나서 놈을 저지하지 못한 이유가 바로 그때 생긴 불편한 신체 탓이었다.
현재 레온하르트의 몸은 물리적인 전투 자체가 전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팔과 다리가 하나씩 없으니 당연했다.
무리해 나서서 데스 스타를 상대한다고 해 봤자 마법이나 용언 정도가 사용할 수 있는 전부였는데, 그건 같은 드래곤인 데스 스타도 할 줄 아는 것이었다.
만약 삼 년 전 당시 레온하르트가 전면에 나서 데스 스타와 싸웠다면 처참히 깨졌을 것이다.
그런데 그의 팔, 다리를 대신할 의족과 의수를 만든다니….
분명 어정쩡한 의족과 의수는 아닐 것이다.
다른 이도 아니고 전설의 대장장인 몰린이 만든 의족과 의수다.
이든은 궁금한지 내친김에 더 물었다.
"의족과 의수를 만드는 재료는 뭡니까? 움직이는 원리는요?"
"재료는 역시 미스릴입니다. 레온하르트 님의 강인했던 원래 팔과 다리에 비할 바는 못 되지만, 어쨌든 미스릴이 세상에서 가장 단단한 물질임에는 분명하니까요. 움직이는 원리는 관절마다 마나석에 반응하도록 설계를 하였습니다."
"마나석이요?"
"예. 마법사들이 자신들의 마법을 증폭시킬 때 쓰는 돌인데, 생긴 것은 볼품없어도 하나하나가 미스릴만큼이나 상당히 귀한 자원입니다. 저 같은 경우엔 일전 지하 도시를 찾아갔을 때 창고에 있던 것을 미리 챙겨 가져왔었습니다. 아무튼, 관절마다 끼워진 이 마나석에 마나를 주입하게 되면 그때 마나의 흐름에 의해서 관절이 반응하며 움직이는 방식인 거죠."
"음…."
몰린이 최대한 쉽게 설명을 하긴 했지만, 솔직히 말해 이든은 전부 알아듣지는 못했다.
다만 대략 어떤 원리로 움직이는지는 대충 이해했다.
이든이 물었다.
"마나의 흐름으로 마나석이 반응하여 관절이 움직이는 것이라면 작동법이 상당히 난해하고 어렵겠군요."
"예, 아마 평범한 인간들은 죽었다가 깨어나도 이 의족과 의수를 사용하지 못할 겁니다. 마나의 흐름을 본인의 의지대로 조종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죠. 특히나 이 의족과 의수 같은 경우엔 관절마다 마나석이 끼워져 있고, 각기 관절에 마나의 흐름을 따로 보내야 하는데, 사용하는 것이 보통 까다로운 것이 아니겠죠. 아마 레온하르트 님도 적응하시는 데 시간이 조금 걸리실 겁니다."
"음."
이든은 이것을 진기의 흐름으로 이해했다. 만약 이든이 이해한 것이 맞는다면 평범한 사람은 죽었다가 깨어나도 사용하지 못하는 것이 맞다.
아무튼, 진기의 흐름 같은 것을 이용해 관절을 움직이게 할 생각을 하다니 과연 전설의 장인 몰린다운 생각이었다.
"완성은 언제쯤 될 것 같습니까?"
이든의 물음에 몰린이 고민하듯 턱을 매만지며 어렵게 입을 뗐다.
"아무래도…. 다른 분도 아닌 레온하르트 님이 사용하실 의족과 의수이지 않겠습니까? 후에 문제가 될 것은 없는지 빈틈없이 완성하려면 상당 시간이 걸릴 것 같습니다. 아무리 빨라도 한 달 정도는 잡아야 할 겁니다."
몰린 정도 되는 장인이 한 달을 잡을 정도면 보통 작업이 아니란 것이다. 하지만 이든은 그를 닦달할 생각이 없었다.
다른 것도 아닌 레온하르트가 앞으로 평생 쓸 의족과 의수를 만드는 작업이었다.
이든이 웃으며 고갤 끄덕였다.
"부담 갖지 마시고, 오랜 시간을 들여도 좋으니, 몰린 님께서 다 완성됐다고 생각되실 때쯤에 제게 말씀해 주십시오. 그때, 제가 레온하르트 님을 모시고 오겠습니다."
"예."
몰린도 조금은 부담을 던 모양인지 표정이 한결 편해졌다.
궁금증도 다 해결됐겠다. 이든은 곧장 자릴 떴다. 앞으로 계속 바빠질 몰린의 작업을 더는 방해하기 싫어서였다.
대장간을 나선 이든이 향한 곳은 마을 회관이었다. 어제 들릴 생각이었는데, 일이 꼬이다 보니 이제야 도착하게 됐다.
***
마땅히 영주가 해야 할 일을 계속 대신해 해 온 스왈로가 그동안 있었던 일에 대해 보고하기 시작했다.
"우선 영지 내 공사 현황에 관해 간략히 설명드리겠습니다."
이든이 고갤 끄덕이고, 스왈로가 말을 이었다.
"현재 건설이 진행 중인 외벽 같은 경우엔 중간에 드워프 장인들이 투입되면서 작업에 속도가 붙었단 말을 일전에 드린 적이 있습니다."
"예, 그랬었죠."
"당시에도 공사 규모에 비해 작업 속도가 굉장히 빠른 편에 속했는데, 최근 그 작업 속도가 거기에 배는 더 빨라졌습니다."
"원래도 빨랐는데, 더 빨라졌단 말씀입니까?"
"예."
"아무 이유도 없이 작업 속도가 빨라졌을 것 같지는 않고. 이유가 뭡니까?"
"혹 일전에 영주님께서 트럼프 영지에 산채 토벌을 다녀오시고 당시 끌고 온 산적들을 기억하십니까?"
잊을 리가 있나. 이든이 고갤 끄덕였다.
"기억하다마다요. 제 기억으론 그때 포로로 잡아 온 산적들 수가 꽤 됐던 것으로 기억하는데요."
"맞습니다. 절대 적지 않은 이들이었지요. 그들이 영지로 잡혀 들어오고 다음 날, 간단한 교육 후에 곧바로 작업 현장에 투입되었는데, 그 이후로 생긴 변화입니다. 덕분에 외벽 공사 현장에 일손이 널널해져서 현재는 영지 중앙에 들어설 시장 거리 공사 현장에 인부들 일부를 분산시켜 배치해 놓은 상태입니다."
"잘하셨습니다. 이대로라면 영지 내·외부 공사 현장 모두 예정보다 작업이 빨리 끝나겠군요."
"예, 아무래도 그럴 것 같습니다."
늘어난 인부들로 인해 공사 현장에 작업 속도가 빨라졌다는 것은 더없이 좋은 일이었다.
하지만 다르게 보면 한때 산적들이었던 놈들 틈에 새로운 산적 출신들이 추가된 셈이다.
개과천선했다고 해도 본성은 다들 거친 놈들이다. 때문에 혹여 이로 인해 예기치 못한 문제가 생기지는 않았을까 염려가 됐던 이든이 스왈로에게 물었다.
"혹 최근 작업 현장에 투입된 놈 중 서로 치고받고 싸우며 사고 친 놈들은 없었습니까?"
"사실 저도 그것을 굉장히 걱정했었는데, 다행히 작업반장 마르코가 신입들 군기를 확실히 잡아 놓은 상태입니다. 욕은 몇 번 왔다 갔다 했을지언정 지금껏 치고받고 싸운 놈들은 없었습니다."
"호오. 그래요?"
한 가문의 장자인 귀족에서 산채의 수장이었다가 이제는 작업반장 겸 솔선수범 군기반장까지 되어 버린 마르코였다. 참으로 변화무쌍한 인생이 아닐 수가 없었다.
이든이 만족스러운 듯 가볍게 손뼉을 쳤다.
"기대도 안 했었는데, 마르코가 나서 줬다니 참 잘됐군요."
"예, 근데…."
"……?"
그때였다. 줄곧 태연히 보고를 읊던 스왈로가 일순 말끝을 흐리더니 참으로 난감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을 했다. 스왈로가 볼을 긁적이며 재차 말을 이었다.
"늘어난 인부들 탓에 한 가지 문제가 생겼습니다…."
"음? 문제라니요?"
"늘어난 인부들 수만큼 식량 소비가 상당히 늘었습니다."
처음 외벽 공사를 진행하겠다 마음먹었을 땐, 한정된 인원으로 공사를 진행하다 보니, 일이 언제쯤에야 마무리될지가 막막했다면 지금은 그것과는 정반대로 일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그것과 비례하여 그들의 배를 채울 어마어마한 식량이 문제가 된 것이다.
이든이 불안한 얼굴로 물었다.
"…머릿수가 늘어났으니, 그거야 당연한 거긴 한데…. 대체 얼마나 늘었길래 문제가 될 정도입니까?"
스왈로가 재차 서류를 훑어 식량 소모 현황과 남은 식량을 확인해 보더니만, 난감한 얼굴을 유지한 채 입을 뗐다.
"많이요…. 아주 많이…."
대답은 간략했지만, 내포하고 있는 의미는 확실했다.
떼어진 이든의 입에서 한탄 섞인 대답이 흘러나왔다.
"아…. 심각할 정도인가 보군요."
스왈로가 고갤 끄덕였다.
"예…."
"아니, 근데…. 엘프족으로부터 식량 지원까지도 받고 있지 않았습니까? 대체 얼마나 먹어 대길래 걱정할 정도가 된 겁니까?"
"그…. 기존에 있던 인부들도 그렇고, 최근에 투입된 인부들도 본래 꽤 힘쓰던 놈들 아닙니까."
"그렇죠?"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기존의 인부들도 앞으로가 걱정될 만큼 식사량이 상당했었는데, 최근 투입된 인부들도 만만치 않게 대단합니다. 다들 걸신이라도 들린 것마냥 먹어 댑니다…."
"……."
사실 이는 당연한 현상이었다. 본래 덩치가 크고, 힘도 잘 쓰는 놈들일수록 필요로 하는 열량도 상당한 법이다.
황소가 제 체구만큼 먹지 않고 개 밥그릇 수준의 밥만 먹는다면 어디서 힘이 나서 밭을 갈겠는가.
사람 역시 마찬가지다.
이든의 영지 내 인부들은 하나같이 죄다 한 덩치 하는 놈들이다. 힘 좋고 일 잘하는 덩치들을 부려먹으려면 그들이 힘을 쓸 수 있도록 먹여 줘야 하는 법이다.
물론 그것이 식량을 입에다 들이붓는 수준이라고 해도 말이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것을 한 번 더 느끼게 되는 순간이었다.
"아무튼, 서둘러 식량을 마련해야 한다는 얘기군요. 알겠습니다. 언제까지 마련하면 되겠습니까?"
"일단 엘프족 왕국에서 나오는 지원과 올가을에 수확된 곡물로 버티고 있긴 한데, 오래가진 못할 겁니다. 올겨울에 일찌감치 동이 날 것 같으니 서둘러 대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
이든이 고갤 갸웃거렸다.
"올겨울이요?"
"예."
"지금 가을인데요?"
"예."
"곧 겨울 다가오는데…?"
"…그렇죠."
"……."
"……."
이든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볼을 푸들푸들 떨어 댔다.
"아니! 그 넉넉하던 식량이 얼마나 됐다고 그 정도밖에…. 이 새끼들이 대체 얼마나 먹어 대길래!"
그때였다. 스왈로가 고래고래 소릴 질러 대는 이든을 조심히 불렀다.
"저…. 영주님…."
"……?"
"하나 말씀 안 드린 것이 있는데, 인부들만 그렇게 먹어 대는 것이 아닙니다…."
"…예? 그럼 또 누가 그렇게 먹어 댄다는 겁니까?"
"…그것이…. 말입니다."
"……?"
"병사들 역시 식사량이 상당히 늘었습니다."
"…걔, 걔들은 또 왜요?"
"영주님께서 못 보셔서 그렇지 걔들…. 덩치 엄청 커졌습니다. 청년들하고 엘프 할 것 없이 전부 다요…. 특히나 엘프들은 변화가 상당합니다. 깡마르던 체격은 온데간데없고 다들 우락부락…."
"……."
이건 잘 먹는 병사들을 탓할 것이 아니었다.
애초에 병사들에게 잘 먹고 쑥쑥 자라야(?) 한다고 강요하던 놈이 바로 이든이었다.
이든이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간 영지 돌아가는 상황에 대해 보고만 받고 퇴장할 예정이었는데, 식량 문제가 생각보다 심각했다.
넋 놓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이든이 턱을 매만지며 이를 어찌 해결해야 하나 고민하던 그때였다. 무언가 떠오른 것인지 이든이 물었다.
"엘프의 눈물을 거래하기로 했던 상단 길드의 지부가 영지에 들어오기로 한 날이 정확히 언제입니까?"
"영지 내 시장이 들어설 거리가 완성되는 대로 들어오기로 했으니 아직 멀었습니다. 내년 이후에나 하나둘씩 들어올 겁니다."
"그건 너무 늦고. 그럼, 거래 품목인 엘프의 눈물이 배송되는 날은 언제죠?"
"유니콘 길드에서 엘프의 눈물을 배송해 주기로 한 호송대가 도착하는 날은 정확히 이틀 뒤입니다. 엘프의 눈물을 세상에 선보이는 행사 일이 정해졌고, 거기에 맞춰야 하니 서둘러야 한다더군요."
"이틀 뒤라…."
고민은 길지 않았다. 이든이 곧바로 입을 뗐다.
"이틀 뒤, 유니콘 길드의 엘프의 눈물 운송 때 저도 함께 따라가겠습니다."
스왈로가 화들짝 놀라더니 되물었다.
"영주님께서 직접 말씀이십니까?"
이든이 고갤 끄덕였다.
"예, 직접 수도에 가서 거래를 튼 상단의 길드장들과 얘길 나눠야겠습니다. 수도에서도 이름 자자한 상단들이니 분명 어렵지 않게 식량을 구할 수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