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19화. (219/250)

219화.

제이콥이 자세를 잡으며 비장한 눈빛을 한 채로 눈앞의 스승을 바라봤다.

그리고 잠시 뒤.

꼴깍.

제이콥은 저도 모르게 침을 한번 삼켰다. 그의 이마에서 땀이 삐질삐질 배어 나왔다.

‘내, 내가 왜 이러지?’

제이콥은 지금 자신의 반응을 이해할 수 없었다.

단지 대련일 뿐이건만, 스승을 마주하는 것만으로 절로 긴장이 몰려왔다.

"후우."

제이콥이 길게 숨을 들이쉬고 내뱉으며 호흡을 고르던 그때였다.

건너편에 있던 이든에게서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놈아, 뭐 이리 뜸을 들이는 게야? 마음껏 펼쳐 보라 했더니만 한숨 쉬고, 침 삼키고 아주 가지가지 하고 있네. 날 그렇게 이겨 먹고 싶으냐?"

"예."

"…예?"

"예? 아, 아아…. 아뇨!!!"

제이콥이 화들짝 놀라며 목검을 쥔 채로 손을 저었다.

우왕좌왕 제자릴 찾지 못하는 손 모양이 수련할 때 모습과는 영 딴판이었다.

"제 말은 그게 아니라. 스승님을 마주하는 것만으로 뭔가 압박감이 심하게 느껴져서…!"

"흠…."

이든이 잠시 고민하는가 싶더니 재차 자세를 잡았다.

"지금은 어떠냐?"

"…어?"

제이콥의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스승의 자세는 아까와 별다른 것이 없건만, 조금 전 느꼈던 압박감이 씻겨 나가듯 사라진 것이다.

‘뭐지? 아까와 다른 것 하나 없는데, 분위기가 전혀 달라….’

제이콥이 마주한 채 선 스승의 분위기가 왜 급변한 것인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던 그때였다. 이든의 입이 재차 열렸다.

"뭣 하고 있어? 아직도 부족한 게야?"

제이콥이 고갤 저으며 서둘러 답했다.

"아, 아닙니다!"

어떤 차이가 일순간에 압박감을 사라지게 만든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하나, 그게 무슨 상관이랴.

숨통이 트이는 순간, 바짝 얼어붙어 있던 제이콥의 몸에 저절로 긴장이 풀려 오고, 되찾은 평정심에 기복이라곤 일절 없이 평소 수련하던 자세가 몸에 밴 듯 자연스럽게 나오기 시작했다.

목검을 쥔 손은 가벼웠으며, 그와 반대로 두 다리엔 어느새 바짝 힘이 들어가 있는 상태.

상체는 더없이 가볍고, 하체는 더없이 단단한 안정적인 자세였다.

기억하던 몸의 자세가 나오는 순간, 제이콥의 입가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이 정도면 됐다…!’

그리고 그때였다. 더는 시간 끌지 않겠다는 듯, 제이콥은 곧바로 이든을 향해 발을 떼었다.

파아아아앗!!!

보법을 밟은 제이콥의 신형이 눈 깜짝할 새 이든의 코앞까지 다가왔다.

동시에 제이콥이 쥔 목검이 이든의 빈틈이라 생각한 곳을 향해 휘둘러졌다.

휘이이이익!

따악!!!

목검과 검집이 부딪치며 둔탁한 소릴 냈다. 그 나름대로 허를 노리고 날린 쾌검의 한 수였지만, 이든의 검집에 허무하리만치 쉽게 막힌 것이다.

하지만 조금 전 공격이 무위로 돌아갔다 한들 문제없다. 이는 많고 많은 수 중에 하나인 첫걸음에 불과할 뿐이었다.

제이콥이 막혔던 목검을 회수하곤 틈을 주지 않겠다는 듯 재차 빠르게 휘두르기 시작했다.

휘익. 휘이이익. 휘이이익!

고사리 같은 아이의 손에서 나온 것이라곤 믿어지지 않을 정교하고 위협적 검술이 연달아 펼쳐지자 내내 그의 검을 받아 내던 이든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제법인데.’

물론 제이콥의 검술은 이든이 전승한 역대 천마의 심득이 담긴 고강한 신공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감안해도 제이콥의 움직임은 절대 상식적인 것이 아니었다.

천마의 신공과 제이콥이라는 천재가 만나 꾸준한 노력이 더해졌기에 가능한 움직임이었다.

제이콥이 개인 수련 때 그랬던 것처럼 점차 무아지경에 빠져들며 쉴 새 없이 제 스승을 몰아치던 그때였다.

‘수련한 기간에 비해 이 정도면 훌륭하다지만, 그래도…. 이것만으론 부족하지.’

어느 순간, 이든의 검집이 제이콥의 공격을 가볍게 흘리더니, 제자의 볼기짝을 찰지게 때렸다.

짝!

"앗!"

제이콥이 기겁을 하더니 쓰린 엉덩이를 부여잡으며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제이콥이 눈물을 찔끔 보인 채로 물었다.

"스, 스승님! 스승님도 때리기 있는 겁니까?"

"이놈아, 그럼 대련인데 있지. 없겠냐. 방어만 할 거면 차라리 허수아비를 치지 뭣 하러 나랑 대련을 하느냐?"

"…생각해 보니 그러네요."

제이콥이 무안한 얼굴로 볼을 긁적이고는 재차 자세를 잡았다.

이든 역시 자세를 잡고는 검집을 까딱거렸다.

"자 다시."

엉덩이를 한 대 찰지게 얻어맞은 탓일까.

재차 달려든 제이콥의 움직임이 조금 전보다 더욱 매서워졌다.

매서워진 제자의 검술을 받아 내던 이든이 씩 웃어 보였다.

‘그래. 이거지.’

조금 전 공방 때는 제이콥의 개인 수련인 것 마냥 말 그대로 가만히 있는 허수아비를 치는 느낌이 강했다면, 이번엔 긴장감도 적절히 섞이고, 묘한 호승심마저도 느껴지는 움직임이었다.

한결 비무에 가까워진 느낌이랄까. 그렇게 달라진 제이콥의 움직임을 느끼며 검을 주고받던 이든이 재차 제이콥의 엉덩이 노리며 검집을 휘두르던 그때였다.

"이크!"

제이콥이 화들짝 놀라며 본능적으로 엉덩이를 피했다.

"호오?"

검집이 허공을 가르자 이든이 곧장 감탄사를 내뱉었다.

물론 그가 봐주면서 상대하고 있다지만, 조금 전 그것은 분명 제이콥의 허를 노린 공격이었다.

이 아이가 피할 만한 게 절대 아니었던 것. 피한 것이 대단한 것이었다. 그리고 재차 이어진 스승과 제자의 공방 속.

검집을 휘두르는 와중 이든이 궁금한 듯 물었다.

"조금 전 제법이던데? 내 절기 중 하나인 볼기 박살을 피하다니. 어떻게 알아차린 거지?"

그의 물음에 제이콥은 새삼 스승의 위대함을 다시 느꼈다.

악을 써 대며 스승을 상대하고 있는 그 자신과 달리, 정작 스승은 자신의 검을 손쉽게 막아 내며 저런 우습지도 않는 말을 쏟아 내고 있으니 말이다.

제이콥이 질 순 없다는 듯 기세로 이를 악물며 답했다.

"그냥…! 저도 모르게! 피해졌는데요…!"

"오. 그래?"

저 말대로라면 조금 전 제이콥의 움직임은 동물적인 육감에 가까웠다는 말이 된다.

즉, 보고 피했다는 것이 아니라는 말인데, 이든은 오히려 그것이 더 놀라웠다.

동물적인 육감이란 반복적인 실전 경험을 통해 장착되는 것으로 노련한 무사들이나 간혹 가다 절체절명에 순간에 써지는 것이지, 줄곧 개인 훈련만 해 온 제이콥이 적재적소에 사용할 수 있을 만큼 쉽게 얻어지는 능력이 아니었다.

그런데 단지 이 한 번의 대련만으로 이를 터득하다니, 이 역시 타고난 오성에서 오는 재능으로 봐야 할 터였다.

‘역시 천재는 다르다 그건가.’

하나.

무릇 제자를 향한 스승의 욕심은 끝이 없는 법 아니겠는가.

이든이 일순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어디까지 피해 낼 수 있는지 한번 시험해 볼까?’

현재 제자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알아내는 것은 스승이 가져야 할 중요한 덕목이다.

한계를 알아야 문제를 아는 법이고, 문제를 명확히 알아야 좀 더 나은 발전을 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제이콥이 제 스승의 깊은 뜻을 알 턱이 없다.

이든이 살짝 광기(?)가 도는 듯한 얼굴로 입을 뗐다.

"자, 볼기 박살이 점점 더 매서워질 것이다. 한번 죽을힘을 다해 피해 보거라!"

"…예!?!?"

그렇게 제이콥은 이유도 모른 채 이든의 점차 매서워지는 볼기 박살 신공을 어떻게든 피해 내야만 했다.

처음 몇 번은 타고난 오성에서 오는 동물적인 육감으로 볼기 박살 신공을 어렵지 않게 피해 낼 수 있었다.

하지만 볼기 박살 신공의 창시자 이든의 자존심이 이를 계속 허락할 리가 없다.

이든의 검집이 속도를 내며 점차 빨라지자 아슬아슬한 차이로 피하기를 반복하더니, 어느 수준에 이르렀을 땐, 간헐적으로 엉덩이를 내줘야 했으며, 그 수준을 넘는 속도로 휘두르니 볼기에서 ‘짝짝’ 소리가 연달아 울려 왔다.

짝짝. 짝. 짝짝.

이든의 볼기짝 연주가 수차례 이어지던 그때였다.

제이콥이 참다 참다 꽥 소릴 질렀다.

"스승님!!! 자, 잠깐만! 너무 아파요!!!"

제이콥이 불이 나려 하는 것처럼 뜨거워진 엉덩이를 부여잡고, 방방 뛰며 눈물을 삼키던 그때였다.

제이콥의 한계를 명확히 알아낸 이든이 휘두르던 검집을 거두곤 의미 모를 말을 했다.

"찰지구나."

제 스승이 뭐라 떠들건 말건, 제이콥의 귀엔 들릴 리가 없다.

신공의 이름대로 엉덩이가 박살이 났는데, 주변에서 떠드는 말이 들리기야 하겠는가.

제이콥이 구슬픈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스, 스승님. 대련이라는 게 원래 이렇게 아픈 거예요……!?"

"……."

이든이 볼을 긁적였다.

생각해 보니, 자신이 조금 너무했다는 생각이 든 탓이었다.

"아니, 원랜 이렇진 않은데."

"그럼…."

제이콥이 눈물을 흘리던 눈으로 도끼눈을 했다.

"일부로 그러신 거예요!?"

이든이 정색하며 손을 저었다.

"어허! 세상 어느 스승이 아무 이유도 없이 제자의 엉덩이를 때린단 말이냐!"

"그, 그런가…."

"물론 엉덩이를 연주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가락에 취해 조금 과했다는 것은 인정하마."

"……."

세상에….

제자의 엉덩이로 연주라니.

제이콥이 아연실색하며 속으로 부르짖었다.

‘아버지…! 이 아들이 강해지겠다고 맹세한 뒤로 이리도 고생 중입니다…!’

제이콥이 꺼이꺼이 울다시피 하며 저 먼 곳에 계신 아버지를 찾는 사이.

"크, 크흠!"

양심의 가책을 느끼던 이든이 괜한 헛기침을 몇 번 하여 제이콥의 시선을 자신에게 돌리고는 마저 입을 뗐다.

"아무튼, 이번 대련을 통해 너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명확해졌구나."

"그, 그렇습니까…?"

자신의 엉덩이로 가락을 연주한 기상천외한 이이긴 하지만, 어쨌든 저 기상천외한 이는 자신의 스승이었다.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었다.

제이콥이 이든의 말을 경청하기 위해 부여잡던 엉덩이에서 손을 떼고는 자세를 바로 했다. 그 사이, 이든이 말을 이었다.

"제이콥, 너의 실력은 나조차 놀랄 만큼 최단 시간에 빠른 성장을 보였다. 그만큼 노력을 많이 했단 뜻이겠지. 하지만…. 그것은 말 그대로 혼자서 수련할 때 너의 모습을 말하는 것이다. 대련 때는 내가 조금이라도 반격을 하려 치면 자세가 무너지고, 피하거나 도망치기에 급급한 것 같더구나."

제이콥이 볼을 긁적였다.

"…근데 그건 볼기 박살을 피하려 했던 건데요…?"

"쯧."

이든이 혀를 찼다.

"검에는 검으로 응수해야지. 무섭다고 몸을 빼 버리면 반격은 언제 하고, 상대는 언제 쓰러뜨릴 셈이냐? 내내 피해만 다니니까, 네 엉덩이가 지금 그 모양 그 꼴인 것이다."

"……."

볼기 박살이 검법이란 것이 가히 충격적이긴 했지만, 어찌 됐든 스승의 말에는 틀린 것이 하나 없었다.

제이콥, 그 자신이 느끼기에도 스승과 대련했던 후반부엔 검 한번 제대로 휘둘러 보지 못하고, 내내 피하기에 급급했었다.

"스승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 확실히 그랬습니다. 대련이 길어지자 그간 제가 훈련하던 내용은 전부 다 잊어버리고, 새하얘진 머릿속에 손발을 뜻대로 움직이질 못하였습니다. 하면 지금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가 어찌하면 되겠습니까?"

답은 곧장 들려왔다.

"해결법은 하나뿐이다."

"……."

"대련 횟수를 늘려야지."

"…스, 스승님과 말입니까?"

또다시 볼기 박살에 당하기는 싫었는지 제이콥의 안색이 새하얘지던 그때였다.

이든이 고갤 저었다.

"아니, 나와의 대련만으론 의미가 없다."

"그럼…?"

"너와 동수인 또래들과 대련. 너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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