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20화. (220/250)

220화.

무릇 천재란 하늘이 내린 재능을 가진 이를 말한다.

그리고 이든의 생각에 그의 제자인 제이콥은 그 천재라는 범주에 드는 아이였다.

상식을 뛰어넘는 오성과 하나를 가르치면 열 내지 많게는 백까지도 척척 알아듣는 영특한 두뇌.

본디 사람이라면 잘하는 것이 따로 있어 몸 잘 쓰는 놈과 머리 잘 쓰는 놈이 따로 있다지만, 제이콥은 이 모든 것을 고루 갖춘 보기 드문 아이였다.

물론 제 자식만큼이나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고, 제아무리 못난 고슴도치라도 마냥 이쁘게만 보이는 것이 제자란 존재이긴 하지만, 그 모든 것을 제쳐 두고 아무리 냉정히 봐도 제이콥은 분명 천재였다.

그냥 천재인가?

아니다.

천재로 명성 자자하던 칼라슈조차도 제이콥의 재능 앞에선 겸손한 수준이라 생각 들 정도였으니, 한마디로 그의 제자는 천재 중에서도 천재라는 말이 더없이 어울렸다.

하지만 이런 제이콥에게도 한 가지 아쉬운 것은 분명히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턱없이 부족한 ‘대련 경험’이었다.

물론 이건 제이콥이 처한 환경의 문제지 그의 문제는 아니었다.

이든을 만나기 전, 제이콥의 환경은 너무도 열악했다.

보통 기사들은 자신의 자식들이 걸음마를 떼기 무섭게 기본적인 체력 단련과 검술 훈련부터 해서 대련에서 상대를 제압하는 법까지 전수해 주기 마련이다.

그들이 기를 자식들을 가르치는 이유는 간단했다.

그 자신의 자식들 역시 기사로 키워 내어 귀족이란 신분을 유지하기 위해서였다.

하나, 제이콥은 그럴 상황이 되지 못하였다.

제이콥의 아비 되는 이는 레온하르트 영지의 기사단장이었던 제라드였다.

기사단장 제라드는 영주의 자리가 공석이었던 탓에 영주가 해야 할 업무를 그가 대신해 왔었다.

그러다 보니 원체 일과가 바빠 따로 제이콥을 돌봐 줄 시간이 없었다.

잠깐 얼굴을 보고 대화를 나눌 시간조차 없을 정도로 말이다.

상황이 그러한데 아들 수련시킬 시간이라곤 있었을까.

하지만 이것은 약과였다.

영지가 폐허가 되고 기사단장 제라드가 데스 스타와의 싸움에서 전사한 이후, 제이콥의 상황은 더욱이 안 좋아졌다.

무술을 배울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었던 아비가 더는 세상에 없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당시 열악한 마을의 환경은 그에게 무술을 배울 기회조차 박탈시켰다.

제이콥의 나이 올해 열세 살.

남들은 아비가 기사의 신분이면 어린 시절부터 꾸준히 검을 잡아 오다가 기사 아카데미에 들어갈 준비를 할 시기인 그 나이에 제이콥은 최근에야 들어서 비로소 목검을 쥐고 훈련다운 훈련을 할 수 있었다.

그런 이가 대련 경험이 있을 리가 있겠는가.

그러다 보니, 제이콥은 남다른 오성을 지녔음에도 막상 이든 과의 대련에서 본 실력을 보여 주지 못했다.

이는 제이콥이 대련이라는 상황에 전혀 익숙지 못하다는 뜻이었다.

물론 이러한 문제의 해결법은 간단했다.

앞서 이든이 말했던 대로 대련을 수없이 반복하면 그만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대련 상대는 영지에 널리고 널렸다.

병사들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마을의 병사들과 제이콥은 나이 차이가 크게 존재하고 훈련 기간이나 실전 경험 역시 병사들이 훨씬 많지만, 제이콥이 그의 스승인 이든으로부터 사사한 신공의 고강함과 본인의 타고난 오성이라면 병사들과의 대련도 어렵지 않게 가능할 것이고, 이를 통해 차츰 경험을 쌓을 수 있을 법했다.

하지만 왜일까.

지금 제이콥의 문제를 해결해 줄 너무 간단한 방법이 있음에도 이든은 뭔가 영 아쉽다는 표정이었다.

왠지 제이콥에게 좀 더 긍정적인 영향을 줄 만한 다른 방도가 있을 것 같다는 기분이랄까?

이든이 고민을 거듭하던 그때였다.

한 가지 결론을 내린 그가 제자의 이름을 불렀다.

"제이콥."

"예, 스승님!

"기사 아카데미에 들어가 보는 것이 어떻겠느냐?"

전혀 예상치 못한 물음에 제이콥이 화들짝 놀라며 되물었다.

"기, 기사 아카데미요!?"

제이콥의 유별난 반응에 이든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래. 너희 아버진 이곳에 훌륭한 기사 단장이셨다. 너 역시 그런 아버지를 잠깐이나마 봐 오며 기사가 되고 싶단 꿈을 한 번쯤 가져 봤을 것 아니냐?"

"……."

물론이다.

무인의 피가 어디 가겠는가.

제이콥 역시 아버지처럼 기사가 되고 싶단 꿈이 있었다.

하나, 그런 꿈이 어렴풋이 있었음에도 자신이 기사 아카데미에 들어간다는 생각은 결코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었다.

왜 아니겠는가.

제이콥은 줄곧 무(武)와 담을 쌓다시피 했다.

남들은 제 아비가 기사라면 어린 시절부터 가르침을 받는다지만, 제이콥은 바쁜 아버지에게 그런 것을 기대할 건덕지가 전혀 없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제이콥이 빈둥댄 것은 아니다.

그 나름대로 개인 수련이라며 병사들의 훈련을 눈대중으로 따라 해 온 것이 있긴 했지만, 어디 그 정도로 언감생심 기사 아카데미에 들어가고 싶단 생각을 품어 왔겠는가.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가 이든이란 스승을 만나고, 본격적으로 수련다운 수련을 시작한 지 이제 고작 한 달.

이제야 제대로 된 걸음마를 떼기 시작한 것과 마찬가지이건만, 그런 자신이 다른 곳도 아닌 기사 아카데미라니….

제이콥이 영 자신 없어 하는 표정으로 입을 뗐다.

"제, 제가 어떻게 기사 아카데미를…. 말도 안 돼요."

이든이 피식 웃었다.

괴물 같은 재능을 가졌음에도 자신의 재능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는 아이에게 나올 만한 대답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든이 재차 표정을 굳히며 물었다.

"왜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지?"

"예…?"

"시작도 하기 전에 안 된다는 생각부터 하다니."

"……."

"혹 내가 너에게 가르친 무공이 별 볼 일 없다고 생각하는 게냐?"

제이콥이 서둘러 손을 저었다.

"그, 그럴 리가요! 다른 분도 아닌 스승님께서 알려 주신 무공인데요. 제가 어찌 그런 생각을 하겠어요."

"그런데? 왜 그토록 자신감이 없는 게냐?"

"왜냐하면…. 기사 아카데미잖아요! 천재들이란 천재들은 전부 다 모이는 곳인데, 제가 거기서 적응할 수 있을 리가…. 아니, 애초에 거기에 들어갈 수 있을지 없을지부터가 문제인걸요."

"……."

수련할 때는 그렇게 자신감이 넘치더니만, 이제 와 보니 제이콥은 제가 가진 재능에 비해 자신감이 턱없이 부족한 아이였다.

이든은 일순 격하게 떠벌리고 싶었다.

그 천재들 사이에서 당연코 네가 가장 돋보일 것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그의 경험에 ‘자신감’이 ‘자만심’으로 바뀌는 것은 순식간이지 않던가.

괜한 소리로 제이콥을 흔들고 싶지는 않았다.

다른 방법이 필요했다.

‘이놈에게 다른 식으로 자신감을 불어넣어 줄 만한 좋은 방법이 없으려나….’

이든이 연신 턱을 매만지며 고민하던 그때였다.

그가 대뜸 제이콥에게 물었다.

"제이콥."

"네…."

"네가 봐 왔던 아버지는 어떤 모습이었지?"

"저의 아버지요?"

"그래."

이든의 물음에 제이콥은 일순 그의 아버지가 살아 계실 적을 떠올렸다.

제이콥이 입을 뗐다.

"항상…. 바쁘시던 분이었어요."

"그런 아버지가 원망스러웠느냐?"

아버지가 원망스러웠냐고?

그럴 리가….

물론 아버지와 별다른 유대감을 갖지 못했던 것이 지금까지도 못내 아쉽긴 했지만, 그것 때문에 아버지가 원망스럽다고 느낄 만큼 제이콥은 어리지 않았다.

그가 고갤 저었다.

"아뇨. 전 한 번도 아버지를 원망해본 적이 없었어요…."

"왜지?"

"…그야 저희 아버지는 레온하르트 영지를 지키기 위해서 평생을 헌신해 온 분이시니까요."

이든이 고갤 끄덕였다.

"맞다. 너희 아버지는 그런 분이셨지."

"……."

"그럼 다시 물으마. 아버지가 어떤 식으로 영지를 위해 헌신해 왔는지 그것도 자세히 알고 있느냐?"

"우선 몬스터들이 영지를 노리며 영지민들을 괴롭힐 때도 앞장서 병사들을 이끌며 무찌르시고…."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또…."

제이콥이 그 외에는 딱히 생각이 나지 않는지 했던 말을 되뇌었다.

이든이 웃으며 제이콥이 해야 할 말에 그가 마저 말을 이었다.

"그리고 병사들을 훈련시키는 데도 큰 공을 들이셨으며, 영지가 기근으로 어려울 때는 그 자신이 발 벗고 나서서 영지를 살리겠다 애쓰셨고, 영지민들의 목소리에도 귀 기울일 줄 아는 분이셨다. 그리고 더없이 영지민들을 사랑하는 분이셨지. 바쁜 것엔 다 이유가 있으셨달까."

"……."

"물론 그렇게 매일을 바쁘게 살아오셨기에, 그만큼 너를 신경 쓸 겨를이라곤 없으셨을 게다. 아마 제라드 단장님께서도 그것을 두고두고 마음에 걸려 하셨겠지."

"……."

"그래도 다행이구나."

"…뭐가요?"

"자세히는 아니지만, 너가 아버지의 노고를 알고 있었다는 것 말이다."

제이콥이 희미하게 웃었다.

"알 수밖에 없잖아요."

"……?"

"매일같이 흰머리가 느셨는걸요. 완전히 백발이 될 때까지요."

"……."

"그것뿐만이 아니에요. 아버지의 방 근처를 서성일 때면 항상 한숨 쉬는 소리가 들려왔어요. 그 때문에 아버지에게 먼저 나서 말을 건네는 것도 어려웠죠. 어쩌다 마주칠 때면 항상 어디론가 가시기 바쁘셨고요…. 그래도 전 그런 아버지가 자랑스러웠어요. 제가 바라본 아버지의 모습은 뒤돌아서서 계신 등이 대부분이었지만, 그래도…. 제가 지금껏 봐 온 남자의 등 중 가장 넓고, 가장 멋진 등이었는걸요."

항상 바빴던 아버지의 모습.

어린 나이에 못내 아쉬웠던 마음도 있지만, 제이콥에게 있어 그런 아버지란 존재는 원망이 아닌 자랑스러움이었다.

그리고 바로 그 점이 제이콥이 그간 수련에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해 주는 원동력이 되어 줬을 것이다.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그 자신 역시도 영지민들을 위해 헌신해 온 아버지와 같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 말이다.

"그게 바로 기사가 가져야 할 마음가짐이다."

"…네?"

이든이 제이콥의 머리 위에 손을 올리고는 거칠게 흔들다시피 쓰다듬었다.

제이콥이 여전히 어리둥절한 눈으로 이든을 바라보던 그때, 이든이 재차 말을 이었다.

"제이콥, 기사가 되거라."

"……."

"그리고 너의 아버지와 같은 사람이 되거라."

제이콥은 일순 가슴속에 화륵 하고 불꽃이 이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그 불꽃의 정체는 무엇일까.

왠지 모르게 가슴이 뜨거워지는 느낌이었다.

제이콥이 물었다.

"제가… 아버지처럼요?"

"그래."

"제가… 정말… 아버지처럼 될 수 있을까요?"

"당연하지. 왜인 줄 아느냐?"

"……."

"넌 기사단장 제라드의 아들이니까."

제이콥의 동공이 일순 커졌다.

그 순간, 가슴속에 일던 불꽃의 정체가 무언지 알 것 같았다.

내내 한순간도 드러낸 적이 없다가 비로소 그의 가슴을 지핀 그 불꽃의 정체.

그것은 다름 아닌 ‘열망’이라는 이름의 불꽃이었다.

제이콥이 고갤 주억거리며 입을 뗐다.

"스승님."

"그래."

"저…. 기사 아카데미에 도전해 볼게요."

"……."

"저도… 아버지와 같은… 훌륭한 기사가 되어 보고 싶어요. 아니, 꼭 그렇게 되고 말 거예요!"

이든이 씩 웃었다.

"그렇게 될 거다. 넌 제라드 기사단장의 아들임과 동시에 내 제자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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