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21화. (221/250)

221화.

이로써 이든은 수도에 가야 할 이유가 하나 더 생긴 셈이었다.

본래는 영지의 식량 문제를 시급히 해결하기 위해 일면식이 있는 상단의 길드장들을 만나는 것이 목적이었지만, 그의 제자인 제이콥이 기사 아카데미에 들어갈 결심을 굳혔으니 이것에 관해서도 해당 관련자와 상담을 진행해야 할 터였다.

하나는 영지의 앞날이.

또 하나는 제자의 앞날이 걸린 중차대한 문제였으니, 어느 하나 소홀히 할 수 없었다.

수도에서의 일정이 아주 바쁘게 흐를 터였다.

그때였다.

기사 아카데미에 들어가겠단 결심으로 의욕을 활활 태우던 제이콥이 난데없이 스승에게 물었다.

"그런데 스승님."

"응?"

"기사 아카데미에 들어가려면 시험을 치러야 하지 않나요? 무도 대회가 없어졌다지만, 제가 들어가고 싶다고 해서 막 들어갈 수 있는 게 아닐 텐데…."

"음. 아마도 그렇겠지."

"……."

의욕을 불태우던 제이콥의 얼굴이 일순 핼쑥해졌다.

막상 시험을 봐야 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긴장이 몰려온 탓이었다.

마주 앉은 이든 역시 내색은 안 했지만, 그 시험에 관한 문제로 내심 고민이 되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가 연신 턱을 매만졌다.

‘검술이나 체력 검정 같은 기초적인 시험이라면 무리 없이 통과하겠지만, 그럴 리가 없지.’

제아무리 무도 대회가 없어졌다 한들 기사 아카데미는 예비 기사들을 양성하는 대륙 최고의 교육기관이었다.

기초적인 실력만 보고 개나 소나 학생으로 뽑지는 않을 터였다.

‘무도 대회가 사라졌으니, 입학 관문으로써 가장 가능성 있는 건, 역시 대련을 통해 역량을 확인하는 방법밖에 없는데. 문제는…. 제이콥이 대련 경험이 전혀 없다는 거지.’

제이콥은 남들과 차원이 다른 재능을 가진 천재 중의 천재였다.

이든이 자신의 신공을 전수해 준 것만 봐도 그렇다.

하지만 그게 무슨 소용인가.

재능이라는 건 어느 정도 겉으로 드러나야 남들이 알아보는 법이다.

대련에서 상대의 역량을 확인하는 법 역시 그렇다.

주고받는 합을 통해서 자연히 드러나는 재능을 살피는 것인데, 오늘 있었던 대련에서 제이콥은 어떠했던가.

괴물 같은 오성을 통해 이든의 신공을 빠르게 터득했음에도 막상 그의 스승과의 대련에선 배우던 것 중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써 보지도 못하고 반격이나 대응은커녕 볼기 박살 신공을 피해 대는 것에 급급하지 않았던가.

만약 이든의 예상대로 아카데미의 입학 관문이 대련으로 역량을 확인하는 것이라면 그의 제자는 거기에서도 본 실력을 보이지 못할 가능성이 컸다.

기사 아카데미를 통해 다양한 인재들을 만나고 그곳에서 대련 경험을 늘렸으면 하는 것이 이든의 바람이었건만….

제이콥의 부족한 경험에 또다시 발목이 잡힌 셈이다.

"흐음…."

사면초가인 상황에 이든이 불쌍한 제자 중생 놈을 어찌 구원해 줘야 하나 고민하던 그때였다.

뭔가 결심이 섰는지 그가 무릎을 ‘탁’ 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제이콥!"

"…네!?"

스승이 부르는 소리에 내내 기죽어 있던 제이콥이 화들짝 놀라곤 벌떡 일어서 대답했다.

"여기서 이럴 것이 아니다. 가자!"

이든이 제이콥을 끌고 가다시피 하며 어디론가 급히 걸음을 옮겼다.

난데없는 스승의 돌발 행동에 제이콥이 영문을 모르겠단 얼굴로 물었다.

"스승님, 어딜 가는 건데요?

"어디긴. 기사 아카데미 시험 대비 특훈하러 가야지."

"기사 아카데미 시험 대비 특훈이여!?"

이든이 제이콥을 끌고 가다시피 한 곳.

다름 아닌 영지의 병사들이 훈련 중인 연무장이었다.

***

발리스타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제이콥에게 시선을 떼지 못하였다.

릴리 역시 같은 반응인 것은 마찬가지였다.

발리스타가 두툼한 손가락으로 제이콥을 가리키며 입을 뗐다.

"그러니까. 이 꼬맹이가…."

"스읍."

이든이 이를 듣기 무섭게 별안간 인상을 쓰며 ‘스읍’ 소릴 내자, 발리스타가 곧바로 말을 정정했다.

"아, 아아. 그러니까 여기 있는 귀여운 동생분께서 우리의 사제다…. 그 말이오?"

이든이 고갤 끄덕였다.

"그렇지."

이번엔 릴리가 물었다.

"…대체 언제 새 제자를 받으신 거예요?"

"글쎄 한 달 전인가?"

릴리가 뾰로통한 표정을 했다.

"우리한테는 한마디 말도 없이!"

이든이 볼을 긁적였다.

"그간 원체 바빴던 탓에 따로 말할 시간이 없었지. 왜? 이제 말해 준 게 서운해서 그래…?"

"당연히 서운하죠!"

그때였다.

릴리가 별안간 제이콥을 꽉 끌어안았다.

"……!"

난데없이 릴리의 품에 와락 안긴 제이콥의 얼굴이 홍당무처럼 새빨개졌다.

릴리가 말을 이었다.

"이런 귀여운 사제가 있었단 얘길 어떻게 그동안 한 번도 안 해 주실 수가 있어요! 그동안 곰 같은 사제만 있어서 얼마나 불편했는데요!"

"……."

다행히 릴리의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물론 곰이라 불린 한 놈만 빼면 말이다. 발리스타가 혀를 찼다.

"귀여운 사제는 무슨! 사내놈이 다 거기서 거기지. 그리고 말이야. 내가 왜 사제야. 사형이지!"

릴리가 고갤 홱 돌리고는 도끼눈으로 발리스타를 노려봤다.

"이봐요. 발리스타 사제, 사형과 사제 관계는 나이순이 아니라. 먼저 제자가 된 순서인 것 몰라? 완전히 빠져 가지곤 어디 한번 날 잡고 굴려 줘!?"

발리스타가 발을 동동 구르며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

"무, 무슨 그런 게 어딨어…! 당연히 나이순으로 해야지. 그럴 거면 어른 공경이란 말은 왜 있나. 안 그렇소!? 이든 형!"

이든이 정색하며 고갤 저었다.

"들어온 순서란다. 어리석은 중생아."

"…진짜?"

발리스타 재차 확인하듯 되묻자 이든이 고갤 끄덕였다.

발리스타가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릴리를 향해 슬쩍 눈알을 굴렸다.

스윽.

발리스타와 눈이 마주친 그의 사질 릴리가 희번덕대는 눈빛을 한번 쏘아주니, 발리스타가 절로 눈을 깔았다.

고갤 숙인 곰의 모습에 릴리가 ‘흥’ 소릴 내며 시선을 돌리고는 제이콥의 볼을 마구 꼬집어 보던 그때였다.

이든이 어수선한 분위기를 환기하듯 헛기침 한번 하고는 입을 뗐다.

"아무튼, 귀여운 막내 미리 소개 못 해 준 것은 미안하고, 그보다 릴리와 발리스타 너희들이 급히 해 줘야 할 일이 있다."

듣던 릴리와 발리스타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사이, 이든이 말을 이었다.

"너희가 우리 귀여운 막내, 특훈 좀 시켜라."

발리스타가 곧장 되물었다.

"특훈? 무슨 특훈?"

"대련."

"대련?"

"그래. 왜냐하면, 제이콥 이 녀석을 기사 아카데미에 입학시킬 생각이거든."

"기사 아카데미라고?"

발리스타가 얼굴을 구겼다.

기사 아카데미에 좋은 기억이 없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그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얼굴로 재차 물었다.

"어째서? 굳이 기사 아카데미에 보내지 않아도 이든 형 실력이면 훨씬 더 훌륭히 가르칠 수 있을 것 아니요?"

"그럴지도…. 다만, 이 아이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꼭 기사가 되어야만 해."

"이유가 뭐요. 그 꼬맹…. 아니, 제이콥 사제가 기사가 되어야만 하는 것이."

"왜냐하면, 제이콥은 제라드 기사 단장님의 아들이거든."

발리스타의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뭐, 뭐라고? 그 꼬맹이가 제라드 기사 단장님의 아들이라고?"

"그래."

사실 제라드 기사 단장에 관해서라면 이든보다 발리스타가 그에 대해 더 잘 알고 있었다.

발리스타가 기사 아카데미에 재학 중이던 시절에 칼라슈를 포함하여 그의 동료들과 레온하르트 영지의 몬스터 토벌을 도와주러 왔던 것이 그 인연의 시작이었다.

그 당시 제라드 기사 단장을 포함한 그의 병사들과 동고동락하며 숱한 싸움을 이겨 내지 않았던가.

일순 제라드 기사 단장을 떠올렸던 발리스타의 시선이 제이콥을 향했다.

처음 제이콥을 바라봤을 땐 귀찮은 꼬맹이를 바라보던 눈빛이더니, 지금은 사뭇 달라져 있었다.

"그랬군. 제라드 기사 단장님의 아드님이었단 말이지…."

제이콥이 자신을 뚫어지라 바라보는 거구의 사형 발리스타의 모습에 바짝 움츠러든 그때였다.

발리스타가 씨익 웃어 보이고는 입을 뗐다.

"제라드 기사 단장님의 아들이라면 응당 훌륭한 기사가 되어야지. 좋아. 제이콥, 이 사형께서 친히 너에게 특훈을…!"

그때였다. 릴리가 발리스타의 말 허리를 자르곤 불쑥 끼어들었다.

"아니! 당연히 이 어여쁜 누님이 특훈시켜 줘야지. 그치이? 제이콥?"

"…아 그러니까 그게."

제이콥이 어찌 대답해야 하나 우물쭈물하던 그때, 발리스타가 고래고래 소릴 질렀다.

"어여쁜 누님은 무슨! 애꿎은 애 그만 괴롭히쇼. 사질!"

릴리의 눈에서 안광이 번뜩였다.

"오호? 뭐지. 이 하극상은? 한번 해 보자는 건가?"

두 고래 싸움에 애꿎은 새우 제이콥만 사이에 껴 있던 그때였다.

이든이 고래들 사이에 난입하며 입을 뗐다.

"미안하지만, 너희들이 해야 할 일은 감독이야. 제이콥과의 대련은 병사들이 해야 할 일이고."

릴리와 발리스타가 동시에 되물었다.

"잉? 병사들이…?"

"그래, 굳이 너희들에게 감독을 시킨 이유는 다른 게 없어. 지금 제이콥에게 필요한 것은 대련에서 기죽지 않는 법이거든."

발리스타가 고갤 갸웃거렸다.

"기죽지 않는 법? 설마 제이콥, 이 녀석…. 대련 경험이…."

이든이 고갤 끄덕였다.

"그래, 제이콥은 대련 경험이 전무하다. 아마, 병사들만으로도 충분한 훈련이 될 거야."

***

발리스타가 고갤 주억거리며 입을 뗐다.

"그렇네. 병사들만으로도 충분하네."

릴리 역시 동의하듯 고갤 끄덕였다.

"그러게. 괜히 우리가 돕겠답시고 나서는 게 방해가 될 뻔했어."

중얼거리던 발리스타와 릴리의 시선이 향한 곳.

거기엔 제이콥이 연무장 위에서 영지의 병사 중 한 명과 대련을 벌이고 있었다.

대련 중인 제이콥을 한참이나 바라보던 발리스타가 다시 불쑥 말을 꺼냈다.

"대련 경험이 전무하다는 게 티가 나네. 마치…."

"겁먹은 것 같지?"

이든의 답에 발리스타가 고갤 끄덕였다.

"맞소. 딱 그 말이오."

대련의 내용은 그야말로 엉망이었다.

병사를 상대로 제이콥은 쩔쩔매며 어떠한 선전도 못 하고 있었다.

발리스타가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한데 제이콥에게 가르친 무공은 어떤 거요?"

"내 무공."

"아, 형 무공…. 뭐!?"

아무 생각 없이 고갤 주억거리던 발리스타가 화들짝 놀라더니 되물었다.

"지금 뭐라 했소? 형의 무공을 가르쳤다 했소!?"

"그래."

"허…. 다른 것도 아니고, 이든 형의 무공을…? 무슨 바람이 불어서?"

"그야 재능이 있기 때문이지."

"재능…? 저게…?"

발리스타의 입장에선 쉬이 이해가 가질 않을 말이긴 했다.

다른 것도 아닌 이든의 무공을 가지고 병사에게 압도당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든이 해명하듯 말을 꺼냈다.

"제이콥, 저놈이 저래 봬도 내 모든 절기를 한 달 만에 완벽히 숙지했어. 한번 눈으로 본 것은 기가 막히게 따라 하는 것 같더군. 재능 그 자체만으로 보자면 칼라슈도 저놈 앞에서 겸손해질 정도야."

"그, 그 정도라고…?"

"혼자 수련할 때와 같은 모습을 반만 보여 줘도 맥없이 당하고만 있지는 않을 텐데 말이야."

발리스타가 난감한 듯한 얼굴로 볼을 긁적였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재능은 천하제일이란 소린데, 막상 대련에 돌입하면 천하의 둔재라…. 이를 어찌하면 좋겠소…?"

이든이 어깰 으쓱였다.

"다른 방도가 있겠냐. 대련이 익숙할 때까지 저 짓을 꾸준히 반복하는 수밖에."

"하지만 다짜고짜 저래선 실력이 늘긴커녕 대련 공포증마저 생기는 것 아니오?"

"흠…."

참으로 난감한 상황이었다.

무언가 다른 방도가 필요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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