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7화.
칼스테인 공작의 얘길 듣던 트레버 교수는 당최 자신이 무얼 들은 건가 싶었다.
트레버 교수가 재차 확인하듯 되물었다.
"그러니까 저기 저 제이콥이란 아이가 칼라슈보다 뛰어난 재능을 가졌다 그 말씀입니까?"
칼스테인 공작이 고갤 끄덕였다.
"이든 공작의 말로는 그렇다더구만. 내 아들이라 이런 말 하기 뭐하지만, 칼라슈가 어디 보통 아이긴가? 헌데 그 아이보다 뛰어난 재능이라니. 기대되지 않나?"
"……."
칼스테인 공작의 물음에 트레버 교수는 일순 할 말을 잃었다.
그럴 수밖에 없지 않은가.
칼라슈가 누구인가?
소드 마스터인 칼스테인 공작의 장자임과 동시에, 하늘이 내린 재능을 가진 천재이자, 기사 아카데미 역사상 유례없던 가장 우수한 성적으로 이곳을 졸업한 전설이자 아슬란 제국의 자랑거리 중 하나가 아니던가.
그런데 다른 누구도 아닌 저 엉성해 보이기 짝이 없는 제이콥이란 아이가 칼라슈보다 뛰어난 재능을 가졌다니 쉬이 믿기 힘든 얘기였다.
트레버 교수는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지만, 부정하듯 고갤 저었다.
‘말도 안 되지. 어디 댈 곳이 없어서 칼라슈에게 비교를….’
트레버 교수가 이토록 부정적인 이유는 다름 아닌 칼라슈가 그에게 있어 남다른 의미를 가지던 학생이었던 탓이다.
그가 기사 아카데미의 교수를 역임해오며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이력이 그 칼라슈에게 검술을 가르친 것이다. 이것만 봐도, 그가 칼라슈란 학생을 얼마나 특별하게 생각했었는지 알 수 있는 부분 아니던가.
트레버가 슬쩍 이든의 눈치를 살피더니만,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뭐, 이든 공작님께서 그리 말씀하셨다니 재능이 뛰어나기야 하겠지만, 설마…. 칼라슈보다 뛰어난 재능을 가졌을 리 있겠습니까…?"
솔직하게 자신의 생각을 말하면서도 내내 눈치가 보였는지, 트레버교수는 연신 이든을 힐끔 바라봤다.
트레버 교수의 얘길 듣던 칼스테인 공작이 미소 지으며 고갤 저었다.
"칼라슈보다 뛰어난 재능을 가졌는지 아닌지는 직접 확인해 보면 알겠지. 이거 정말 기대되는군."
칼스테인 공작이 흥미롭다는 빛으로 목검을 쥔 채 마주 선 제이콥과 알폰소를 바라보았다.
그런 칼스테인 공작을 따라 트레버 교수의 시선도 재차 확인하듯 제이콥을 훑었다.
‘…아무리 봐도 별다른 것 없어 보이는 아이건만, 저런 애가 칼라슈보다 뛰어난 재능을 가졌다니….’
트레버 교수는 일순 칼라슈를 처음 봤을 때를 떠올렸다.
아이답지 않은 날카로운 눈빛부터 해서 제 아비를 닮아 범상치 않은 분위기까지 풍기던 그 시절에 칼라슈는 줄곧 그에게 따라다니던 천재라는 수식어가 더없이 어울리던 학생이었다.
한데, 그에 반해 저기 제이콥이란 아이는 어떤가.
저 아이는 당시 칼라슈에게 느꼈던 천재들 특유의 분위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눈빛도 순둥순둥하고, 기죽어 있는 모습도 그렇고. 딱히 천재란 느낌은 없는데….’
연신 고갤 갸웃거리며 제이콥을 살피던 트레버 교수는 이내 확신하듯 재차 고갤 저었다.
‘역시 말도 안 돼. 칼라슈보다 뛰어난 재능을 가졌을 리가 없어.’
제이콥을 향하던 트레버 교수의 시선이 마주 선 알폰소를 향했다.
‘그나마 칼라슈와 엇비슷한 천재의 분위기를 내는 녀석은 내 기준으론 저 알폰소뿐이라고.’
알폰소는 천재에 목말라 있던 트레버 교수가 칼라슈 이후로 신경 쓰는 아이였다.
뭐, 알폰소의 가문이 잘났다는 소문을 듣긴 했지만, 트레버 교수에게 그것은 전혀 관심 밖의 얘기였다.
그가 현재 일학년 중에 알폰소에게 관심을 쏟는 이유는 오직 녀석이 가진 재능 때문이었다.
알폰소가 기사 아카데미에 입학하기 전, 우수한 성적을 내는 학생들 대부분이 유니콘 무관 학교 출신들이었다.
반면에 이름 있는 귀족 출신 집안의 학생들은 가진 명성에 비해 재능도, 노력도 부족해 보였다.
트레버 교수는 그것이 줄곧 못마땅했다.
그 역시 귀족 출신이라는 이유가 단단히 한몫했을 것이다.
그렇게 기사 아카데미가 점차 유니콘 무관 학교 출신 아이들의 활약으로 판도가 바뀌던 그때, 알폰소가 나타났다.
알폰소는 황궁에서도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이름 있는 대신의 자제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트레버는 알폰소에게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았다.
알폰소의 가문이 대대로 명성 높은 기사들을 배출해 낸 가문이 아니었기 때문에 기대 자체를 안 했던 것이다.
하나, 입학 관문에서 보여 준 알폰소의 재능에 트레버는 생각을 달리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알폰소의 상대는 유니콘 무관 학교 출신의 아이로 성적 역시 상위권에 우수한 학생이었다.
모두가 알폰소의 패배를 예상했으나, 교수들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해당 학생을 상대로 알폰소가 대련에서 압도하는 실력을 보여 준 것이다.
그때부터였다.
트레버 교수가 알폰소의 재능을 높이 사고 관심을 갖게 된 것이 말이다. 물론 칼라슈 때만큼 완전히 마음에 쏙 드는 것은 아니었지만, 알폰소는 그가 처음 칼라슈에게 느꼈던 천재들 특유의 분위기를 엇비슷하게 가지고 있었다.
천재에 목말라 있던 트레버의 관심을 끌기 충분했던 것이다.
트레버 교수는 다짐했다.
자신의 다음 작품은 저 알폰소가 될것이라고.
그리고 저 알폰소를 키워 내 상위권 성적을 휩쓸고 있는 유니콘 무관 학교 출신의 아이들을 눌러 버리겠다고 말이다.
알폰소와 제이콥을 번갈아 바라보던 트레버 교수는 주먹을 꽉 말아 쥐었다.
‘알폰소, 너의 재능을 보여 봐라. 여기 있는 모두에게 너가 천재라는 것을 각인시켜 보란 말이다.’
의도한 것은 아니나 트레버 교수에게 있어 이 대련은 남다른 의미가 되었다.
알폰소를 향한 자신의 판단이 틀리지 않았다고 증명하는 자리로써 말이다.
***
"…자, 다들 잘 이해했지?"
알폰소와 제이콥 사이에 서 있던 심판 겸 대련 담당 교수가 규칙을 간단히 설명하고는 이해했는지 곧장 되물었다.
알폰소야 한두 번 해 본 대련이 아니었으니 듣지도 않고 고갤 끄덕였고, 제이콥은 제대로 이해했다는 듯 고갤 끄덕이며 씩씩하게 대답했다.
"네."
가장 중요한 제이콥의 대답까지 듣고 나서야 교수 역시 마주 고갤 끄덕여 보이고는 곧바로 지체 없이 대련을 진행했다.
"자, 그럼 대련 시작!"
연무장이 쩌렁쩌렁 울리도록 외친 교수가 대련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멀찍이 떨어지자 알폰소가 비릿하게 웃으며 입을 뗐다.
"네가 저분의 제자라고?"
알폰소가 제 스승을 가리키면서 묻자 제이콥이 순진하게 고갤 끄덕이면서 웃었다.
"맞아."
"과분한 스승을 두었군."
듣던 제이콥이 고갤 갸웃했다.
"무슨 소리야? 과분하다니?"
"몰라서 묻는 거냐?"
"……?"
순진한 얼굴로 연신 고갤 갸웃거리는 제이콥의 모습에 알폰소가 얼굴을 구기며 말을 이었다.
"저분은 칼스테인 공작님과 함께 제국에 단 두 명뿐이라는 소드 마스터 중 한 분이라고. 너 같은 멍청이가 저런 분을 스승으로 두었으니 당연히 과분한 것 아닌가?"
제이콥이 볼을 긁적였다.
따로 대답은 안 했지만, 그 역시 인정한다는 뜻이었다.
그사이, 알폰소가 말을 이었다.
"이든 공작님께서 유니콘 무관 학교의 창시자라지? 난 유니콘 무관 학교 출신들은 하나같이 다 질색이지만, 저분은 예외로 더없이 존경하고 있지…. 존경받을 자격이 충분한 강한 분이시니까. 저런 제자라면 응당 제자 되는 이 역시 훌륭해야 하는 법. 그런데…. 넌 뭐지? 멍청하게 생긴 게 딱히 강해 보이지도 않고, 체내 마나도 그다지 많아 보이지도 않고. 너 정말 저분의 제자 맞아? 너무 엉망인 거 아니야?"
제이콥이 얼굴을 붉히며 머릴 긁적였다.
"미, 미안…. 엉망이라서…."
제이콥이 진짜로 미안하다는 얼굴로 입을 떼자 알폰소의 얼굴이 재차 구겨졌다.
‘정말 어처구니가 없군…! 그냥 바보인 줄 알았더니만 완전 바보였잖아?’
알폰소에게 있어 제이콥이란 존재는 보기만 해도 열이 뻗치는 존재였다.
우선 알폰소는 제이콥이 당연히 평민 출신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 평민 출신이 소드 마스터를 스승으로 두었다는 사실이 영 거슬렸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열 받는 것은 내내 멍청해 보이는 제이콥의 태도였다.
소드 마스터를 스승으로 둔 이라면 응당 그 자부심이 상당해야 하는 법이다.
스승 된 이에게도, 제자 된 스스로에게도, 그리고 마주한 상대에게도 그것이 예의이기 때문이다.
허나, 그의 앞에 선 제이콥은 자부심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아니 애초에 무인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녀석이란 생각이 들었다.
급기야 알폰소는 이런 생각까지 들었다.
이런 한심한 놈들까지 기웃거릴 정도로 기사 아카데미의 명성이 땅바닥 끝까지 추락했구나…. 라고 말이다.
‘너 같은 놈들은 아카데미에 발을 들일 자격조차 없어…!’
그때였다.
이를 악물던 알폰소가 목검을 쥔 채 대뜸 달려들 자세를 취했다.
일순 바뀐 알폰소의 기세에 제이콥이 화들짝 놀라던 그때였다.
파아아아앗!
알폰소의 신형이 쏜살같이 쏘아지며 느닷없이 제이콥 앞에 나타났다는가 싶더니 동시에 벼락같이 검을 휘둘렀다.
트레버 교수가 현역 시절 자랑하던 속전속결 일도양단의 묘리가 담긴 검술을 그의 제자인 알폰소가 펼쳐 보인 것이었다.
이는 알폰소가 초장부터 전력을 다하겠다는 뜻으로 봐도 무방했다.
하나.
‘…응!?’
알폰소의 눈이 부릅 뜨였다.
조금 전 자신이 목검을 내질렀던 그 자리에 있던 제이콥이 어느새 멀찍이 달아나 있던 것이었다.
‘이걸 피했다고?’
알폰소가 말도 안 된다는 듯 고갤 저었다.
‘아니, 분명 우연이다. 동 학년 중에는 조금 전 그것을 피할 수 있는 놈들은 없다고…!’
알폰소가 가볍게 웃으며 몸을 풀 듯 팔을 돌렸다.
"아무래도 몸이 덜 풀렸던 모양이야."
"…그, 그래!?"
"자, 다시 간다. 각오하는 게 좋을 거야."
"으, 응!"
듣던 제이콥이 바짝 긴장을 늦추지 못하는 사이, 몸을 풀던 알폰소의 신형이 재차 쏘아졌다.
파아아아앗!
조금 전과 똑같은 트레버 교수의 검술이 알폰소의 손에서 재차 펼쳐진 그때였다.
제이콥을 향해 쏘아지던 알폰소의 눈이 점차 크게 뜨였다.
찰나의 순간, 제이콥의 눈이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그의 목검을 또렷이 응시하고 있는 것을 목도한 것이다.
‘우연이 아니라. 보고 피했다고? 이것을!?’
그리고 이를 증명하듯.
휘이익!
팡!
알폰소의 검이 마치 아무것도 없었던 것 같은 허공을 향해 휘둘러지곤 공허한 바람 소릴 내었다.
"……."
허공에서 우두커니 멈춘 제 목검 끝을 바라보던 알폰소의 눈이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흔들렸다.
‘뭐, 뭐야… 저 새끼, 어떻게… 어떻게 내 검술을 보고 피한 거야. 대체 어떻게…!?’
믿기지 않는 기색이 역력한 눈으로 목검을 바라보던 알폰소의 눈이 저도 모르게 제이콥을 향하던 그 순간이었다.
"……!"
알폰소의 시선이 찰나 제이콥의 착 가라앉은 눈을 마주했다.
내내 보이던 바보 같고 어리숙하던 눈빛이 아닌, 더없이 냉정하고 차가운 무인의 눈빛이 거기에 있었다.
그의 눈을 보던 알폰소가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뭐, 뭐야. 대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