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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9화. (229/250)

229화.

위기의 순간, 제이콥은 무의식적으로 제 재능을 보임으로써 비무 대련을 관전했던 교수들에게 강렬한 첫인상을 심어 줬다.

"……."

제이콥이 무거운 걸음으로 연무장 밖으로 나가는 알폰소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던 사이, 그의 곁에 있던 심판 겸 교수가 말을 건넸다.

"아주 훌륭한 대련이었다."

"…예?"

교수가 건넨 말이 너무 뜻밖이었던 걸까.

제이콥은 저도 모르게 곧장 되물었다.

그리고 그 교수가 건넨 말을 시작으로 제이콥이 조금 전 보인 모습에 감탄을 금치 못했던 교수들이 저마다 앞다투어 제이콥에게 인사를 건넸다.

개중엔 트레버 교수 역시 포함되어 있었다.

칼라슈 이후로 가뭄이라 할 수 있었던 천재의 등장에 다들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들이었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제이콥에게 있어 성공적인 아카데미 출도(出道)였던 셈이다.

제이콥이 얼떨떨한 얼굴로 교수들이 건네는 인사를 뿌리치지 못하며 정신없이 받던 그때였다.

그의 스승인 이든이 어느새 교수들에게 눈도장을 찍은 제이콥 곁으로 다가와 있었다.

교수들이 서둘러 눈치껏 비켜서자제이콥의 시선도 자연스레 제 스승을 향했다.

"스승님…!"

밝은 제자의 목소릴 듣던 이든이 웃으며 입을 뗐다.

"교수들이 하나같이들 난리인 것을 보니 제법 괜찮은 모습을 보여 줬나 보구나."

제이콥이 볼을 긁적였다.

"이게 다 형, 누나 덕분인걸요…."

제이콥이 말한 형, 누나란 영지의 병사들과 교관인 발리스타와 릴리를 말하는 것이었다.

대련이란 혼자 하는 훈련이 아니다. 제이콥이 대련에 익숙해질 수 있도록 밤을 새우다시피 한 그들의 고생이 없었다면 혹독했던 훈련도 없었을 것이고, 지금과 같은 결과 역시 없었을 것이란 걸 제이콥 역시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재능을 갖췄으되 자만하지 않는 이는 흔치 않다.

제이콥은 천재이지만, 동시에 자신의 분수를 아는 제자였다.

그때였다.

별안간 이든이 제이콥의 머릴 쓰다듬었다.

제이콥의 시선이 빤히 이든을 향하는 사이, 이든이 씩 웃어 보였다.

"확실히 그렇긴 하지. 하지만 거기에 더해 너의 악착같은 노력이 있었기에 그들의 고생이 헛되지 않은 것이지."

"……."

"참으로 잘했다."

스승의 진심 어린 칭찬에 제이콥이 비로소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웃던 이든의 표정이 다시 본래대로 무미건조해졌다.

"그렇다고 너무 승리에 도취하여선 안 된다. 지금 너의 실력으론 조금 전 그 아이와 또 한 번 붙는다고 해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내가 왜 이렇게 말하는지 스스로도 잘 알고 있지?"

어찌 모르겠는가.

제이콥이 고갤 끄덕였다.

"네…. 대련 내내 피하기만 바빴고 줄곧 수련해 오던 스승님의 검술은 제대로 써 보지도 못했습니다. 저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알폰소가 쓰던 검술을 사용하고 말았고요."

"수련해 온 검술이 자연히 실전에서 나오기 위해선 부단히도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이건 재능과는 별개의 영역이지. 어차피 교수들이 떠들어 댈 테니 이제 와 하는 소리지만, 넌 확실히 재능이 있다. 하나, 재능만 믿고 자만해선 안 된다. 재능보다 무서운 것이 결국엔 노력이란 점을 명심하고, 이곳에서 지내더라도 평소와 같이 노력을 게을리하지 말고, 너의 뒤를 쫓는 노력하는 이들을 늘 경계하거라. 알겠느냐?"

일순 제이콥의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이곳에서…. 지낸다고요? 앞으로…?"

이든이 심드렁히 답했다.

"뭐, 당연한 소릴. 아카데미 시험에 합격했으니 넌 오늘부터 이곳의 학생이다. 졸업 전까진 줄곧 이곳에서 지내야지."

"아…!"

제이콥의 입에서 아쉬운 탄성이 흘러나왔다.

아카데미에 합격한 것은 기쁜 일이지만, 줄곧 함께 지내온 영지의 이웃들과 자신을 위해 고생해 준 형들에게 제대로 된 인사도 못 한 것이 못내 아쉬웠는지 제이콥이 서둘러 물었다.

"저, 저기…. 스승님. 그래도 이웃들에게 제대로 인사는 하고 떠나고 싶은데…. 어떻게 안 될까요?"

이든이 볼을 긁적였다.

좋다고 오늘부터 여기서 지낼 줄 알았더니만, 굳이 인사를 하고 가고 싶다 할 줄은 예상치 못했던 모양이다.

그때였다.

"어찌 안 되겠나."

대뜸 들려온 음성에 제이콥의 시선이 목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향했다.

제이콥의 시선이 향한 곳.

거기엔 칼스테인 공작의 어느새 그들 근처에 다가와 있었다.

칼스테인 공작이 재차 말을 이었다.

"아무 말도 없이 훅 떠나 버리는 것이 예의는 아니지. 그렇게 하게."

그가 칼스테인 공작인지는 몰랐으나 한눈에 봐도 이곳에 높은 신분임을 알아본 제이콥이 환하게 웃으며 물었다.

"정말요…?"

"그럼, 게다가 자네의 스승께선 신기한 재주가 있어 아무리 먼 거리라도 한걸음에 달려올 수 있으니 무엇이 걱정이겠나. 아니 그렇습니까? 이든 공작님?"

쐐기를 박는 칼스테이 공작의 물음에 이든이 떨떠름하니 고갤 끄덕였다.

"뭐, 그렇긴 하죠."

스승 된 입장에선 제이콥이 하루라도 빨리 아카데미에 적응했으면 하는 것이 바램이지만, 제이콥의 뜻이 저리도 확고하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게 제이콥의 입학은 하루 연기됐다. 이든의 생각에 어차피 이공간 문이 있으니 오가는데 하루면 충분하다 여긴 것이다.

물론 제이콥은 겨우 하루라며 울상이었지만 말이다.

***

그날로 영지에 돌아온 제이콥은 마을 사람들과 작별 인사를 나눴다.

시간이 많지 않다 보니 마을 사람 모두와 인사를 나눌 수도 없었고, 나누더라도 시간이 충분치 않은 탓에 급하게 인사를 나누어야만 했다.

다음 날 제이콥을 떠밀다시피 아카데미에 보낸 이든은 곧장 영지로 복귀해 마을 회관에 들렀다.

스왈로는 이든을 보기 무섭게 식량 문제부터 물었다.

이든이 웃으며 대답했다.

"식량 문제는 잘 해결됐습니다. 수도의 거상들을 일일이 찾아뵙고 부탁하려 했지만, 황금성 길드에서 한사코 말리더군요. 자기네들이 알아서 해결해 주겠다고 말이지요."

스왈로가 놀라더니만 곧장 되물었다.

"그랬습니까? 다른 곳도 아닌 그 황금성 길드가 나서서 그리 나와 준다니. 대체 그들을 어떻게 구워삶으신 겁니까?"

"상인들 구워삶는 데 별다른 방법이 있겠습니까?"

"돈을 주셨습니까?"

"돈보다 귀한 정보를 줬지요."

"정보요?"

"그런 게 있습니다. 아무튼, 제이콥의 문제도 해결했고, 식량 문제도 얼추 해결된 셈이군요."

"고생 많으셨습니다."

"고생은요."

"그럼, 앞으로 할 일은…."

당장에 급한 문제는 모두 해결했겠다. 이제 남은 것은 차차 영지의 발전을 꾀함과 동시에 닥쳐올 전쟁에 대비하는 것이었다.

"저도 그렇고, 병사들도 그렇고. 본격적인 훈련에 돌입해야겠지요."

듣던 스왈로가 고갤 끄덕이며 조심히 물었다.

"…정말 그들이 다시 돌아올까요?"

스왈로가 말하는 그들.

자세히 듣고 말 것도 없이 데스 스타와 놈의 하수인들을 말하는 것이었다.

이든이 표정을 굳히며 고갤 끄덕였다.

"아직 살아 있으니 놈들은 반드시 다시 올 겁니다."

스왈로의 얼굴도 덩달아 굳었다.

이제야 사람답게 사는가 싶더니만, 삼 년 전의 혼란이 재차 찾아올 것이란 생각에 덜컥 겁부터 밀려온 탓이었다.

그런 스왈로의 심정을 이든이라고 모를까.

이든이 대뜸 급격히 말이 없어진 스왈로의 주름진 손을 꼬옥 잡았다.

"영주님…?"

스왈로가 화들짝 놀라며 묻자, 이든이 미소 지어 보이고는 입을 뗐다.

"더는 그때와 같은 일 따윈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놈은 제가 무슨 짓을 해서든 반드시 막아 낼 테니, 촌장님께선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아실는지 모르겠지만, 영지민들에게 있어 촌장님은 저들의 기둥이십니다. 늘 당당한 모습만 보이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야 영지민들도 기운을 낼 테니까요."

"……."

맞는 말이었다.

찰나 두려운 기색이 역력하던 스왈로의 눈빛이 이든의 확답을 듣고는 차츰 안정을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평소와 같은 또렷한 눈빛을 하며 고갤 주억거렸다.

"예, 영주님…! 저 역시 영주님에게 누가 되지 않도록 제가 할 수 있는 곳에서 최선을 다해 보이겠습니다!"

"그리 말씀해 주시니 고맙습니다."

믿음직한 스왈로의 답을 듣고 씩 웃어 보이던 이든의 얼굴이 재차 찬찬히 굳었다.

사실, 조금 전 이든의 말은 비단 스왈로를 진정시키기 위해서만 한 말은 아니었다.

이든은 스스로가 아직 데스 스타와의 승부에서 승리를 장담할 수 있을 만한 수준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스왈로에게 저 같은 말을 이유는 그의 결심을 좀 더 확고히 하기 위해서였다.

데스 스타, 그놈을 향한 마음속에 칼날이 무뎌지지 않도록 좀 더 단단히 벼르기 위해서 말이다.

놈은 그만큼의 각오는 있어야지 이길 수 있는 상대였기 때문이다.

***

황금성 길드에서 식량이 확보되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이든은 곧장 이공간 문을 이용해 의뢰한 식량을 모두 옮겼다.

식량 문제까지 확실히 해결한 셈이었으니, 그에게 더는 신경 쓸 문제랄 것이 없었다.

엘프의 눈물 같은 경우엔 유니콘 길드와 영지와 거래 중인 상단들이 알아서 잘 해결해야 할 일이었고, 영지 내 문제 같은 것도 스왈로 선에서 모두 해결 중이었으니 이젠 정말로 수련에만 몰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든은 하루 대부분 시간을 개인 수련에 투자했고, 남은 시간은 발리스타와 릴리의 경지를 높이는 데 집중했다.

그사이, 이든의 단전에 자리한 드래곤 하트도 완전히 그의 것이 되었다.

무한의 가까운 하나의 거대한 마나 덩어리였던 드래곤 하트가, 끝없이 샘솟는 마기의 덩어리로 변한 것이다.

그리고 그로 인한 영향일까.

그의 몸에도 한 가지 변화가 찾아왔다.

가부좌를 튼 채 무공을 점검 중이던 이든이 대뜸 자신의 팔뚝 피부를 만진 채 쓸어 보이더니 손가락을 튕겨 제 팔뚝을 쳐 보았다.

팅.

마치 쇠끼리 부딪친 듯한 맑은 쇳소리가 울려 왔다.

이든의 얼굴에 무어라 형언할 수 없는 표정이 깃들었다.

‘기분 탓이 아니었어. 확실히 달라졌다.’

무엇이 달라졌다는 걸까.

그것은 다름 아닌 그의 육신 자체를 말하는 것이었다.

드래곤 하트가 완전한 몸의 일부가 되면서 그의 육체도 덩달아 드래곤화된 것인지, 피부가 강철처럼 단단해진 느낌이었다.

드래곤 종족 특유의 능력이라 할 수 있던 세상 밖 일들이 훤히 보이던 천리안을 시작으로, 흡사 금강불괴를 연상시키는 육체의 변화까지 찾아오다니 기연도 이런 기연이 있을 수 없다.

그때였다.

벌떡.

제 몸의 변화를 만끽하던 이든이 대뜸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고는 하늘 위로 솟구치더니 어느 이상 높이에 이르자 그 움직임이 덜컥 멈추었다.

그리고는 보다 선명해진 천리안을 이용해 사방을 훑듯이 둘러보기 시작했다.

천리안으로 보는 세상은 대체 어떤 느낌일까.

이든의 표정이 시시각각 변하며 세상을 둘러보던 중 그의 얼굴이 일순 딱딱하게 굳었다.

그리고 그 순간이었다.

공기를 찢어발기는 듯한 굉음과 함께.

파아아아아앗!!!!

이든의 신형이 어딘가를 향해 빛처럼 쏘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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