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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화. (230/250)

230화.

삼 년 전.

전쟁으로 폐허가 되기 이전에 아슬란 제국의 영토도 상당한 크기에 속하는 대제국이었지만, 대륙 전체와 그 크기를 비교하면 새 발의 피에 불과할 만큼 대륙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 더 없이 어울리는 거대한 땅덩어리였다.

그래서일까.

아스란 제국 영향권에 들지 않는 국경 밖 세상은 흡사 딴 세상을 보는 듯했다.

절경이라 할 수 있는 거대한 산맥엔 울창한 숲과 동식물들이 가득했고, 어느 곳은 그것과 전혀 반대로 허허벌판의 사막이었으며, 또 다른 어느 곳은 거대한 산을 깎아 작은 왕국을 이루며 살아가는 곳도 있었고, 또 한 곳은 아슬란 제국과 마찬가지로 드넓은 영토를 이룬 곳도 있었다.

파아아아아아앗!!!!

이든은 그 모든 것들을 지나쳐 계속 어딘가를 향해 앞으로 나아가고 또 나아갔다.

그렇게 며칠을 연이어 신법을 쓴 채로 하늘을 질주하고 있음에도 그의 안색은 조금도 무리한 기색이라곤 보이지 않았다.

이제는 온전히 그의 것이 된 드래곤 하트가 마기가 마를 틈이라곤 없이 불어나는 홍수처럼 쉬지 않고 채워 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참을 달리던 이든이 도착한 곳은 풀 한 포기 보이지 않는 어느 황량한 협곡이었다.

이든은 곧장 천리안과 기감을 혼합해 주변을 살폈다.

그리고는 한참 뒤 고갤 끄덕였다.

"이곳이 맞는 것 같군."

이든이 신법까지 써 가며 이토록 먼 길을 달려온 이유.

그것은 다름 아닌 천리안을 통해 바라본 이곳에서 데스 스타 기운이 어렴풋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물론 신법 말고 이공간이라는 편리한 이동수단이 있긴 했지만, 지금은 예외였다.

이공간 사용은 제약이 많았기 때문이다.

일단 그 자신이 확실히 아는 장소가 아니면 사용이 불가했는데, 천리안을 통해 바라본 이곳은 단편적인 일부만 보이는 것이어서 이공간의 좌표가 이곳이 어딘지를 당최 잡지를 못했다.

결국, 이든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신법을 써 가며 이 잡듯이 뒤져 이곳을 찾아낸 것이다.

스스스….

이든은 곧장 심수심진법을 펼쳐 주변과 자신을 동화시키듯 삽시간에 모습을 감췄다.

그와 동시에 그의 신형이 재차 쏘아지며 협곡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희미하게 느껴지는 데스 스타의 흔적을 찾아서 말이다.

***

곤도르 협곡.

세상은 이 협곡을 가리켜 이렇게 불렀다.

세상의 끝.

더없이 어울리는 찰떡 같은 비유였다.

이곳은 종말이 다가온 세상의 풍경이 어떠한지 보여 주는 것처럼 협곡 외엔 그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 흔하디흔한 풀 한 포기조차 없는, 그저 삭막한 바위만이 가득한 이 협곡은 어떠한 관심이나 출입조차 불허하듯 세상을 향한 묘한 경계심마저 느껴지고 있었다.

그런데 왜일까.

겉으론 아무것도 없을 것 같은 황량하기 짝이 없는 이곳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소음이 들려오는 이유는.

캉! 캉! 카아앙!

이는 필시 쇠를 두드리는 소리였다.

카앙! 카아앙!

협곡에서 울리는 메아리까지 합치면 소리는 정말이지 한시도 쉬지 않고 연달아 들려왔다.

이 정체불명 소음의 근원지.

그곳은 다름 아닌 협곡 한가운데에 깊숙하게 나 있는 어느 동굴이었다.

한눈에 봐도 자연적으로 생긴 동굴이 아닌, 인위적으로 누가 파낸 듯한 모습을 하고 있는 이 동굴엔 인상이 절로 찌푸려질 만큼 입구에서부터 어마어마한 열기가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뜨거운 열기와 쇠를 두드리는 소음.

누가 미치지 않고서야 이곳에 대장간이라도 만들지 않았다면 절대 보일 수 없는 조합의 현상이지만, 어느 미친 자들이 있기에 지금과 같은 소음과 열기가 느껴질 터였다.

그리고 그때였다.

입구에서부터 열기를 토해 내는 동굴 안쪽에서 웬 거친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왔다.

"멍청이들!!! 빨리빨리 만들어라!!! 그냥 대충 걸칠 수 있을 정도로. 신속하게 만들란 말이다!!!"

쇳소리만이 가득하게 울리는 이곳에서도 또렷이 들릴 만큼 상당히 크고, 거칠며, 신경질적인 목소리.

그 목소리에 주인은 다름 아닌 검은색 피부를 한 한 마리의 오크였다.

그리고.

그 오크 주변으로 말도 못 할 풍경이 보였다.

붉은빛을 토해 내는 화염 속에서 수만에 달하는 검은 피부의 오크들이 쇠망치를 두드리고, 담금질하며 무언가를 열심히 만들어 대고 있었다.

고래고래 소릴 지르며 붉은 안광을 번뜩인 채 일하는 오크들을 감시하던 그들의 우두머리가 문득 느껴지는 기척에 뒤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대체 무얼 봤길래 그럴까.

놈의 눈동자가 어느새 화등잔만 해졌다.

놈이 바라보던 곳을 향해 허릴 접다시피 하며 황급히 고갤 숙였다.

"오, 오셨습니까…! 단테스 님…!"

"음."

우두머리 오크에게 과하다시피 인사를 건네받은 이.

그는 다름 아닌 데스 스타의 오른팔 단테스였다.

단테스는 오크의 인사는 무시한 채 찬찬히 동굴 내부를 살피고는 무심히 물었다.

"준비는 잘 되어 가고 있나?"

"문제없습니다. 요구하신 날짜에. 모든 장비. 무리 없이 보급될 예정입니다."

"장비의 재질은?"

"역시 요구하신 대로. 이 협곡에서만 채취 가능한 검은 철. 사용 중입니다."

"…완성된 장비의 강도는 시험해 봤나? 어떠하던가."

"훌륭합니다. 일반적인 강철 무기. 이것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미스릴이 아니고서야. 이것. 버텨 낼 수 없습니다."

"그렇군."

단테스의 나지막한 대답을 듣던 오크는 험악하게 생긴 것답지 않게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그의 눈앞의 상대가 다른 누구도 아닌 그들의 주인 데스 스타의 최측근이었으니, 죄지은 것이 없음에도 덜컥 겁부터 집어삼키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반응이었다.

그때였다.

재차 살피듯 묵묵히 주변을 훑던 단테스의 음성이 한참 뒤에야 다시 들려왔다.

"위대하신 나의 주인께서 너희들의 재주에 기대가 많으시다."

"그분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응당 그래야 할 것이다. 그분의 원대한 계획에 문제가 생겨서는 아니 될 테니. 생산에 절대 차질이 생기지 않도록 정신 바짝 차리도록."

"물론입니다. 명심하겠습니다…!!!"

"흠."

재차 확답을 받듯이 하고 나서야 단테스는 줄곧 바라보던 풍경에서 시선을 거뒀다.

그리고는 몸을 돌려 남은 볼일을 위해 걸음을 옮기려던 그때였다.

"…응?"

별안간 그의 걸음이 덜컥 멈추었다.

느닷없이 멈추어 선 단테스의 시선이 대뜸 동굴의 입구 쪽을 향하더니 지긋이 바라보았다.

단테스가 멍하니 서서 입구 쪽을 주시하자 고갤 조아리던 오크가 갸웃거리며 물었다.

"단테스 님. 무슨 문제라도…?"

"……."

오크의 물음에도 단테스는 대답이 없었다.

그저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동굴 입구 쪽을 한참 동안 바라볼 뿐이었다.

그때였다. 단테스가 이내 별것 아니라는 듯 고갤 저었다.

"아니다. 기분 탓인 듯하군. 그럼, 계속 수고하도록."

"…예!"

시선을 뗀 단테스가 곧장 손을 휘저었다.

우우웅.

그 순간, 데스 스타의 권능을 이용한 이공간 문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곤 문 안쪽으로 걸음을 옮기더니 애초에 그 자리에 없었다는 것처럼 어느새 감쪽같이 사라져 모습을 감췄다.

"후우."

내내 안절부절못한 채 단테스의 눈치를 살피던 오크는 그가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야 깊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눈치 보여 죽는 줄 알았군."

퍽! 데구루루.

"잘못한 것도 없는데. 꾸우…!"

돌이켜 생각해 보니 자존심이라도 상했던 걸까.

오크가 바닥에 굴러다니던 애꿎은 돌을 이유 없이 뻥 차 댔다.

그리곤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내내 그랬던 것처럼 눈을 부라린 채 일만 열심히 잘하고 있는 수하들에게 이유 없이 지랄을 퍼부으려던 그때였다.

콰아아아아아앙!!!

쿠르르르.

동굴에 입구 쪽에서 난데없는 폭음이 들려오더니, 동굴이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흔들려 댔다.

땀을 뻘뻘 흘리며 일하던 오크들이 놀란 얼굴로 이게 무슨 난리냐는 듯 주변을 두리번댔다.

우두머리 오크 역시 당황한 기색이 역력해 보이기는 마찬가지였다.

놈이 퍼뜩 정신 차리곤 폭음이 들려온 동굴 입구 쪽을 향해 버럭 소릴 질렀다.

"대체 이 무슨 소란이냐!!!"

소음만이 가득한 이곳에서도 다 들릴만한 커다란 목소리이건만, 동굴 입구에서 보초를 서고 있는 수하들은 어째선지 묵묵부답이었다.

무언가 상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다고 느낀 걸까.

놈이 한쪽에 처박아 두던 제 무기를 챙기곤 수하들 몇 명을 대동해 입구 쪽을 향해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그러곤 도착하기 무섭게 절로 헛바람부터 집어삼켰다.

달려온 그곳에 끔찍하단 말로도 부족한 참상이 벌어져 있던 탓이었다.

"이, 이게 무슨!"

"……!"

동굴 입구는 어느새 무너져 내려 막혀 있던 상태였고, 그 주변엔 동족들이 사방에 널브러진 채 사늘한 주검으로 변해 있었다.

이게 대체 무슨 사달인지 상황조차 파악하지 못하던 그 순간, 참상이 벌어진 거기 한구석에서 기척과 함께 웬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무리 좋게 좋게 물어도 제대로 된 대답을 하지 않아서 말이야."

"……!"

모습을 드러낸 이는 인간이었다.

그것도 두 눈이 온전치 않은지 내내 두 눈을 감고 있는 맹인 인간.

하나, 왜일까.

자신들을 향해 천천히 걸어오는 저 맹인 인간에게서 위대한 존재와 같은 위압감이 느껴지는 이유는.

"……."

그 말 못 할 위압감에 겁에 질린 오크들의 몸이 돌처럼 굳은 채 아무런 반응도 하지 못하던 그때였다. 인간의 입이 재차 열렸다.

"너희들은 부디 내가 만족할 수 있을 만한 대답을 해 주길 바란다. 그게 서로 피차 편할 것이야."

입을 뗀 인간이 새하얀 이가 드러나도록 웃었다.

온몸이 빳빳이 굳어 있던 오크들이 이를 보고는 하나둘씩 뒤로 물러섰다.

하나, 그들이 뒤로 물러나는 속도보다 다가오는 인간의 걸음이 몇 배는 더욱 빨랐다.

어느새 그들의 코앞까지 다가온 인간이 재차 입을 뗐다.

음산하기 짝이 없는 음성이 오크들의 귓구멍에 콕콕 틀어박혔다.

"자, 그럼 심문을 시작해 볼까."

***

세상에 끝이라 불리던 곤도르 협곡에 일순 커다란 폭음이 울렸다.

그리고 잠시 뒤.

거대한 불기둥이 하늘을 향해 쏘아지듯 치솟으며 붉은 광채를 터트리다가 이내 저물어 가는 노을처럼 사라졌다.

노을이 저물면 응당 깜깜한 밤이 찾아오기 마련.

찰나였지만, 사방을 환하게 비추던 불꽃이 사라지고 재차 어둠이 짙게 깔리자, 협곡에 밤새도록 울려대던 쇠를 두드리는 소리마저 사라지며 거짓말처럼 고요함이 찾아왔다.

그때였다.

우르르.

조금 전, 폭발이 치솟았던 그 중심, 무너져 내린 돌무더기가 부르르 떨더니 그 틈에서 웬 손이 불쑥 튀어나왔다.

튀어나온 손은 사방을 휘젓다시피 하며 주변에 돌들을 치워 냈다.

그 위를 뒤덮던 돌들이 제법 치워지고 잠시 뒤.

"푸왁!"

꾀죄죄한 모습을 한 사람이 땅속에서 나타났다.

흡사 거지꼴을 한 채 땅에서 튀어나온 이는 다름 아닌 이든이었다.

이든이 입 안에 있던 모래를 몇 번 뱉어 내고는 제 몸 구석구석을 살피듯 만져 댔다.

그리곤 잠시 뒤.

그가 씩 웃어 보였다.

"이 정도 폭발에도 멀쩡하다니, 이거 효과 좋네."

곤도르 협곡 중앙을 쑥대밭으로 만든 조금 전 폭발은 이든이 일으킨 것이었다.

데스 스타의 수하들에게 모든 실토를 받아낸 후, 협곡 중앙을 통째로 무너뜨려 동굴 안에 있던 모든 오크들을 한꺼번에 산 채로 매장한 것이다.

단 한 순간에 협곡 중앙이 전부 무너졌을 만큼 폭발의 여파는 그야말로 상당했던 수준.

아마 예전에 이든이었다면 온몸에 극성의 호신강기를 둘둘 둘러매야 겨우 살아남았을 만큼 대단한 파괴력이었다.

하나, 이젠 구태여 호신강기를 쓸 필요가 없어져 버렸다.

드래곤 하트가 온전히 그의 것이 됨과 동시에 그의 피부 역시 드래곤화되면서 금강불괴를 연상시키듯 말도 안 되는 내구성을 지니게 되었으니까.

그렇게 달라진 제 몸의 내구성에 감탄을 금치 못하던 이든의 얼굴 찬찬히 굳어졌다.

‘아무튼, 뒤에서 그런 수작을 부리고 있었단 말이지….’

이든은 조금 전, 오크 우두머리가 실토해 댄 내용을 떠올렸다.

‘대륙 곳곳에 수하들을 숨겨 두고 만반에 준비를 하고 있었다라…’

그때였다. 이든은 곧장 레온하르트의 레어로 통하는 이공간 문을 열었다.

놈들이 그간 뒤에서 꾸며 대는 수작을 알게 된 이상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는 노릇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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