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화.
이든의 얘길 듣던 레온하르트가 화들짝 놀란 얼굴을 했다.
"데스 스타의 하수인들을 찾아다가 족쳤다고?"
"예."
"…놈들이 어디에 숨어 있던가? 아니, 애초에 놈들이 데스 스타의 하수인인 줄은 어떻게 알았고?"
"천리안을 사용했지요."
"천리안?"
‘아…! 천리안이 무슨 뜻인 줄 모르겠군.’ 레온하르트가 천리안이 뭐냐는 듯 되묻자, 이든이 볼을 긁적였다.
"그 왜 있잖습니까? 마음의 눈 같은 거로 대륙 사방을 볼 수 있는 변태 같은 드래곤 능력 말입니다."
"대륙 사방을 볼 수 있는? 아, 그 권능 말이로… 잠깐, 뭐라고? 변태 같은 능력?"
레온하르트가 비로소 알아들었다는 듯 손뼉을 치다가 일순 얼굴을 구겼다.
다른 것도 아닌 드래곤 고유의 권능을 두고 변태 같은 능력이라니….
듣던 레온하르트의 자존심이 퍽 상할 만도 했다.
이든도 쉽게 설명하고자 얼떨결에 한 말이라 괜히 미안했는지 난데없이 헛기침을 하더니만 다시 입을 뗐다.
"크흠! 아무튼, 레온하르트 님께서 제게 주셨던 드래곤 하트가 최근에 완전히 저의 일부가 되면서 그 능력을 제대로 활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데스 스타의 하수인도 그때, 찾게 된 것이고요."
"…그러니까. 대체 어떻게 말인가? 자네가 천리안이라 부르는 그것으로 이 넓은 대륙에서 데스 스타의 하수인을 찾는 것은 나도 못 하는 일인데?"
전혀 예상치 못했던 대답이었는지, 이든이 얼떨떨한 표정을 했다.
"…레온하르트 님께서도 못 하시는 일이라고요?"
"내가 할 줄 아는 것이었다면 이미 진즉에 데스 스타의 하수인들을 이 잡듯이 찾아내고 다녔겠지. 뭣 하러 놈들을 가만 놔두고 있었겠나?"
"어…? 생각해 보니 확실히 그렇군요,"
"흠…."
이든의 능력은 참으로 기이한 것이었다. 레온하르트 긴가민가한 얼굴로 말을 꺼냈다.
"내 생각엔 아무래도 그것은 자네만이 사용 가능한 고유의 능력인 것 같네."
이든이 고갤 갸웃거렸다.
"저만의 고유한 능력이요?"
"그것이 아니면 달리 설명할 방도가 없지 않은가."
"하지만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제 몸 안에 있는 드래곤 하트는 본래 레온하르트 님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레온하르트 님에게도 없는 능력이 제겐 왜 생겼을까요?"
"글쎄…."
레온하르트가 턱을 매만지며 고민을 거듭하던 중 무언가 떠오른 것이 있는지 넌지시 답을 내놓았다.
"…그, 자네 보이지 않는 시야를 대신해서 사용한다는 기… 기… 뭐더라?"
"기감이요?"
"그래, 맞아. 기감. 그 기감 때문이지 않을까 싶은데 말이야."
"기감 때문이라…."
"자네는 태어난 이후로 줄곧 시각의 장애를 안고 살아왔네. 보이지 않는 눈을 대신하겠다고 다른 감각을 극도로 발달시킨 상태지. 아마 그것이 권능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싶군."
"음."
일리가 있다는 생각에 이든이 고갤 주억거렸다.
"그럴듯한데요?"
"뭐, 확실한 것은 아니야. 그냥 왠지 그럴 것 같다는 게 내 생각이지. 아무튼, 자네가 왜 그와 같은 능력을 얻게 됐는지는 그다지 중요한 게 아닐세. 진짜 중요한 것은 자네가 데스 스타와의 전투를 앞두고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다는 사실이지."
"……?"
"생각해 보게. 내 권능으로도 그렇고, 자네의 권능으로 들여다봤을 때도 데스 스타는 삼 년 전, 그때의 전투로 인한 드래곤 하트의 부상이 아직 회복이 덜 되어 거동이 수월하지 않은 상태야. 그렇지 않은가?"
"…확실히 그런 것 같습니다."
"그에 반해 자네는 완벽히 회복을 마친 상태지. 놈이 당장에 움직일 수 없는 지금. 그 능력을 사용해 대륙 곳곳에서 수작을 부리고 있는 빌어먹을 것들을 미리 찾아내 각개격파시킨다면…?"
"그리된다면 데스 스타 입장에선 피가 거꾸로 솟겠지요. 제 군대가 사라져 가는 와중에 아무런 손도 쓸 수 없을 테니까요."
"맞아. 이건 절호의 기회야. 데스 스타가 가진 힘을 미리 빼놓는."
"한데, 놈이 이를 가만 보고만 있을까요?"
"놈의 그 오만한 성격상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을걸. 놈은 아마 자네가 오늘 벌인 짓 또한 알고 있을 거야. 다만, 자네의 그 능력에 관해선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을걸세."
"그렇다면."
"그 틈을 이용해 녀석의 허를 찔러야지. 수하들 대부분이 죽고 나서야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깨닫고 그제야 움직일 가능성이 커."
"만약 놈이 손을 쓴다면 어찌 움직일 것 같습니까?"
이든의 물음에 레온하르트는 고민도 않고 곧장 답했다.
"데스 스타는 그간 전쟁을 준비하는 내내 제 손발을 대신할 놈을 창조해 냈을 거야. 그 최측근을 자네가 찾아올 예상 지점에 미리 심어두어 역으로 자네의 허를 노리려 할 수도 있지. 근데 만약 그마저도 실패한다면…."
"……."
"녀석이 회복도 끝내기 전에 세상 밖에 나올 가능성이 크지. 놈은 참을성이 그다지 많지 않거든."
"그렇게 된다면 우리의 승산이 더욱 높아지는 것이군요."
"그렇지."
이로써 계획은 다 짜여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든은 고민할 것도 없다는 듯 곧장 자리에서 일어나 걸음을 뗐다.
레온하르트는 이미 이든이 어찌 나올지 예상했던 모양이다.
그가 웃으며 물었다.
"지금 당장 움직일 셈인가?"
"그러는 편이 좋지 않겠습니까? 놈에게 생각할 틈을 주지 않으려면 말이죠."
레온하르트가 고갤 끄덕였다.
"확실히 그렇긴 하지."
그때였다.
레온하르트가 대뜸 웃음을 터트렸다. 이든이 고갤 갸웃거렸다.
"뭘 그리 웃으십니까?"
"그냥 앞으로 고생할 자네 모습을 생각하니. 웃음이 나와서 말이야. 대륙 전체를 샅샅이 뒤져야 하는 일 아닌가. 하루 이틀 만에 끝날 일이 아닐 텐데 말이지."
그냥 고생인가.
완전 개고생 길이 펼쳐졌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든도 따라 웃다가 입을 뗐다.
"그러게나 말입니다. 천리안만 가지곤 장소를 확실히 알 수도 없으니 이공간 문으로 이동도 못할 테고, 발에 불이 나도록 뛰어다녀야겠지요."
레온하르트가 씁쓸히 웃었다.
"미안하네. 힘든 일이 될 텐데. 자네에게 아무런 도움도 줄 수가 없구만."
이든이 고갤 저었다.
"괜찮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몸이 근질근질했던 참인데, 오히려 잘됐습니다."
"그리 말해 주니 고맙군."
"뭘요."
그때였다.
미소 짓던 이든이 곧장 이공간 문을 열었다.
영지로 통하는 문이었다.
"그럼, 이만 가 보겠습니다. 일을 다 마치고 나면 그때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음. 한동안 고생하게."
"예."
이든은 간단히 인사를 나누곤 곧장 걸음을 뗐다.
레온하르트 영지로 통하던 이공간 문도 곧장 닫혔다.
레온하르트가 기대다시피 하며 의자에 등을 기댔다.
"…데스 스타, 아마 한동안은 약좀 오를 게다."
분해할 데스 스타를 생각하니, 절로 웃음이 나오는 레온하르트였다.
***
"영지를 한동안 비운다 하셨습니까?"
스왈로의 물음에 이든이 고갤 끄덕였다.
"예, 중간중간 생각 날 때마다 들리기야 하겠지만, 처리해야 할 일이 워낙 중차대한 사안이라. 그동안은 영지에 전혀 신경을 못 쓸 듯합니다. 해서 미리 알려 드리고자 떠나기 전에 촌장님을 찾아뵌 것이고요."
"음."
스왈로가 고갤 주억거리더니, 별것 아니라는 듯 말했다.
"괜찮습니다. 뭐, 영주님께서 영지의 신경을 쓰지 않은 일이야 하루 이틀 된 일도 아니지 않습니까."
"……."
"……."
…그야 그렇긴 한데.
거, 말씀이 좀 과하시네.
이든의 표정이 붉으락푸르락 변하려는 낌새를 느낀 걸까.
스왈로가 어색하게 웃으며 서둘러 재차 입을 뗐다.
"하하! 농입니다. 농. 웃자고 한 소리지요. 하하하…."
"본인만 웃으시는구만."
"하하…."
잠시 뒤.
"훗."
결국, 이든도 웃음을 터트렸다.
"사실 뭐, 맞는 말이긴 하죠. 촌장님께서 저 때문에 얼마나 고생이 많으셨는지 제가 어찌 모르겠습니까?"
"예, 보통 고생을 한 게 아니죠. 특히 최근엔 말이지요."
"……."
"쿠오락, 그놈 데리고 매일 꼭두새벽마다 산책 다니는 것이 어디 보통 힘든 일인 줄 아십니까."
"하, 하하하…."
쿠오락을 걸고 넘어갈 줄은 예상 못 했는지 이든이 죄라도 지은 것 마냥 연신 죄 없는 볼만 긁적이던 그때였다.
스왈로가 일순 환하게 미소 지으며 재차 말을 이었다.
"그래도 뭐, 지금은 나름 즐겁습니다. 쿠오락과 생각 없이 얘길 나누다 보면 걱정과 근심이 사라지는 기분입니다. 새 가족이 생긴 것 같기도 하고요."
어색한 자세로 듣던 이든의 얼굴이 일순 어두워졌다.
그의 마음이 별안간 무거워진 이유.
그것은 다름 아닌 스왈로가 삼 년 전 전쟁 때, 레온하르트 영지에 병사로 복무 중이던 아들을 잃었기 때문이다.
모든 부모에게 있어 자식이란 금이야, 옥이야 소중한 것이라지만, 특히나 스왈로에게 아들은 더없이 소중한 존재였다.
그의 아내가 늦은 나이에 아들을 낳고, 무정하게도 하늘로 떠났기 때문이다.
제 어미를 닮은, 사랑했던 부인이 이 세상에 남기고 간 하나뿐이자, 그의 보물이었던 아들.
그런 아들이 지난 전쟁 때 허무하리만치 아내가 있는 곳을 따라갔다.
죽은 아들의 시신조차 찾을 수 없었던 지난날의 전쟁.
그날의 아픔이 어찌 아물 수 있겠는가.
그렇게 스왈로는 거르는 날 없이 매일 아들의 이름이 새겨진 비석을 넋 놓고 바라보는 것으로 그날의 하루를 시작했다.
그래야만 텅 빈 듯한 마음속이 조금이라도 채워지는 듯한 기분에서였다.
그런 스왈로의 삶에 작은 변화를 준 것이 바로 쿠오락이었다.
이든 딴에는 이를 의도하고 쿠오락을 맡겼던 것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쿠오락이 그의 마음을 치유해 주는 셈이었으니 참 다행히 아닐 수 없었다.
그때였다.
스왈로가 침묵을 깨고 재차 입을 뗐다.
"영주님을 모시게 되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매일을 버티다시피 살아가던 제 삶을 완전히 바꿔주셨으니까요. 바쁜 삶에서 오는 활력부터 해서 쿠오락이라는 좋은 친구까지 만나 마음의 치유까지 하게 되었으니까요.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촌장님께서 그리 느끼셨다니, 다행입니다."
이든이 환하게 웃어 보였다.
훈훈해진 분위기에 스왈로도 마주 웃던 그때였다.
스왈로가 별안간 물었다.
"하면 언제 떠나실 예정이십니까?"
"시급한 일이라 부모님께 인사드리고 바로 떠날 참입니다. 그 사이에 영지에 무슨 일이 있거든, 모든 것을 촌장님께 일임할 테니 촌장님의 신념대로 처리해 주십시오. 촌장님의 신념이 곧 제 신념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알겠습니다."
스왈로가 웃으며 답하는 사이, 이든은 앉았던 자리에서 일어나 곧장 걸음을 옮겼다.
훈훈한 분위기 속에서 계속 덕담을 주고받기엔 그는 너무도 바쁜 사내였다.
그때였다.
스왈로의 음성이 바삐 걷던 이든의 걸음을 붙잡았다.
"영주님."
"……?"
무슨 일인지는 알 수 없으나, 이든이 저리 서두를 정도면 분명 상당히 위험한 일일 것이라고 생각했던 스왈로가 노파심에 말을 건넸다.
"부디 조심히 다녀오십시오."
문 앞까지 걸어갔던 이든이 고개만 돌린 채 웃어 보였다.
"걱정 마세요. 늘 그랬던 것처럼 별일 없이 다녀올 테니까요. 그럼, 믿고 갑니다. 촌장님."
***
이든은 집으로 가는 도중 발리스타와 릴리를 만났다.
그리고 그간에 있었던 대략적인 일들과 함께 자신이 오랫동안 자리를 비울 수도 있음을 말하며 영지의 안전을 거듭 당부했다.
발리스타는 맡겨만 달라고 자신만만한 얼굴로 답했지만, 릴리는 어째선지 대답이 없었다.
"왜 그래?"
발리스타가 릴리의 표정을 살피더니 묻자, 릴리가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입을 뗐다.
"또 오빠 걱정에 밤잠 못 이루실 부모님 생각하니까. 마음이 안 좋아서…."
"……."
듣던 이든의 표정도 덩달아 무거워졌다.
이든이 그런 릴리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톡톡 두드렸다.
"……?"
"그래서 릴리 너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 너라도 딸 노릇 제대로 해 줘야. 내가 마음 편히 다녀올 것 아니냐."
릴리가 고갤 끄덕였다.
"…알았어요. 그런데 부모님께는 어찌 설명해 드릴 생각이세요? 보나마나 엄청 난리 치실 텐데."
거짓말은 그의 적성이 아니다.
"…솔직하게 말씀드려야지. 그편이 왠지 나을 것 같다."
세상을 지키겠다는 것이 이리도 어렵다.
가정의 평화도 동시에 지켜 내야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