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32화. (232/250)

232화.

"음? 잠깐 다른 영지에 좀 다녀오겠다고?"

"예."

"무슨 볼일로 말이니?"

"아 그게…. 그냥 다들 잘 지내나 궁금해서죠. 뭐, 제가 원체 평소 안부 같은 것을 안 묻고 지내다 보니, 다들 섭섭해할까 봐. 하하…."

솔직하게 말씀드리려 했건만, 이든은 결국 거짓말을 했다.

있는 그대로 다 말했다간 이 걱정 많은 두 노부부의 대성통곡을 뒷감당할 자신이 없어서였다.

메리가 눈을 가느다랗게 뜨며 이든의 표정을 살폈다.

이든의 웃는 모습이 왠지 어색하게 보였던 모양인지 떠보듯 물었다.

"진짜 무슨 일 있는 건 아니고?"

"에이, 무슨 일은요? 제가 무슨 일을 만들고 다니는 사람입니까?"

"……."

만들고 다니지.

너무 잘 만들고 다녀서 탈이지.

브라운과 메리가 말은 안 했지만, 둘의 표정이 그리 말하고 있었다.

뭐, 이든이야 볼 수 없으니 둘의 속마음이 어떤지야 알 도리가 없었지만 말이다.

찰나의 정적이 돌던 무렵 메리가 한숨을 푹 쉬며 입을 뗐다.

"아무튼, 조심해서 다녀오거라. 또 나가서 괜한 싸움 일으키지 말고."

이든은 저도 모르게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그가 하려는 짓이 무언가.

데스 스타 끄나풀 때려잡는 것 아닌가.

아주 개싸움을 벌일 작정이었다.

이든이 진중한 얼굴로 대답했다.

"아휴! 물론이죠. 제가 싸우긴 왜 싸웁니까. 친구들 만나러 가는 길인데."

"흠."

메리는 여전히 미심쩍은지 가느다래진 눈을 도무지 펼 생각을 못했다.

브라운 역시 마찬가지였고.

그가 물었다.

"그래서 언제 떠날 생각이니?"

"오늘이요."

"…오늘?"

"예."

"…이 밤중에?"

"……."

아…

찰나 시간관념을 잃어버렸던 이든이 고르고 골라 브라운의 물음에 변명했다.

"아침이고 밤이 무어 중요합니까? 일전에 보여 드렸잖아요. 이공간 마술. 그거면 칼스테인 영지고 수도고 한 걸음인데요."

이공간 마술이라니….

레온하르트가 들으면 통탄할 일이지만 아무튼, 이든은 일전 브라운과 메리에게 이공간으로 한 걸음에 먼 거리를 이동하는 것을 보여 준 적이 있었다.

그냥 별 이유 없이 자랑하고자 말이다.

브라운이 고갤 주억거렸으나, 그럼에도 아들이 영 수상하다는 눈치다.

"뭐, 그렇기야 한데…. 그렇다고 굳이 밤에?"

"…친구들이 보고 싶어서 그럽니다. 친구들이! 다들 왜 이리 쓸데없이 걱정들이 많으실까. 친구 보고 싶단 아들 계속 못 가게 막는 것처럼. 그러다 저 진짜 따돌림당해요."

"안 하던 짓을 하니까. 그러지 요놈아."

"에헤이! 정말! 아버님, 어머님."

"……?"

"이 아들, 보기보다 여리고 외로움 많이 탄단 말이에요. 모르셨구나. 다들?"

어째 말을 하면 할수록 수상하게 보이는 이든이었다.

브라운도 메리와 마찬가지로 한숨을 쉬곤 입을 뗐다.

"알겠다. 다녀오거라. 뭐, 한두 살 먹은 애도 아니고, 어련히 잘 다녀오겠지."

"아암, 그럼요. 하하…."

결국, 이든은 이렇게 한 차례 위기를 넘겼다.

제 부모의 의심의 눈초리는 왠지 여전한 것 같지만 말이다.

***

이든이 집 밖으로 나와 곧장 발을 떼려던 그때였다.

막 닫혔던 집 문이 대뜸 재차 열렸다.

이든의 움직임이 덜컥 멈추었다.

그리고는 곧장 그를 부르는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들."

"아버지?"

이든이 화들짝 놀란 얼굴을 했다.

아직 별거 한 것도 없는데, 무언가 들킨 것처럼 말이다.

브라운이 미소지으며 다가오더니 그의 바로 옆까지 다가와 섰다.

그리고 더없이 진중한 목소리로 입을 뗐다.

"조심히 다녀오거라."

"…예?"

"무얼 그리 놀라?"

"아, 아니…. 전 그냥…. 친구들 보러 가는 건데…."

"훗."

브라운이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내 어디 너를 하루 이틀 보냐. 거짓말을 하려거든 제대로 해야지. 얼굴에 다 쓰여 있다, 이놈아."

"……."

이든이 볼을 긁적였다.

나름 명연기로 잘 넘어갔다고 생각했건만, 씨알도 안 먹히는 짓이었던 것이다.

브라운이 말을 이었다.

"아마 네 엄마도 다 알고 있을 게다. 네가 단순히 놀러 가는 게 아니라는 것을."

"죄, 죄송합니다…."

면목 없었는지 이든이 말끝을 흐리던 그때였다.

브라운이 고갤 저었다.

"무어 죄송한 일이냐."

"……."

"우린 다 안다. 네가 어째서 매일을 그렇게 열심히 살아가는지 말이다. 모두가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려는 것 아니냐? 오늘 이렇게 발길을 떠나려는 것 역시 그런 이유일 테고. 그렇지?"

"…예."

이리 다 아실 줄 알았다면 어느 정도는 사실대로 말씀드릴 것을.

괜히 부모님께 미안해지는 이든이었다.

그리고 그때였다.

와락.

별안간 브라운이 이든을 꽉 끌어안았다.

이든이 놀란 얼굴을 했다.

"…아버지?"

"조심히 다녀오거라."

"……."

"세상을 구하는 것도 좋지만,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건 무엇보다 너의 안전이다. 네가 무슨 일을 하든지 간에 항상 그걸 가장 염두에 두어라. 알겠지?"

입을 벌린 채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하던 이든이 천천히 고갤 끄덕였다.

"예, 아버지."

이든의 대답을 듣던 브라운은 그렇게 한참 동안 제 아들을 끌어안으며 놓지를 못하다가 어렵게, 아주 어렵게 놓아주었다.

"어서 다녀오거라. 길이 바쁠 테니."

"예, 그럼 조심히 다녀오겠습니다."

"음."

이든은 짤막한 인사 후, 브라운에게서 몇 발짝 떨어진 후에야 곧장 신법을 밟았다.

파아아아아아앗!

신법을 밟은 그의 신형이 삽시간에 점점이 사라졌다.

어찌나 빠른지 그의 모습이 하늘의 별보다 작게 보였지만, 브라운은 한참이나 그 자리 그곳에 그대로 서서 이든이 사라져 간 방향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였다.

부모의 마음이란 것이 원래 다 그런 것이다.

***

아슬란 제국 국경 넘어 수천 리 떨어진 곳에는 강산 풍월의 절경을 자랑하는 ‘엘리아’란 산림이 있다.

이제는 계절이 겨울에 접어든 만큼 본래의 그 기막힌 푸른 내음은 당장에 느낄 수 없어도 지금은 또 지금 만의 남다른 정취가 느껴질 터였다.

인가라곤 없으며 여러 왕국과도 동떨어져 있어 사람 비스무리한 흔적조차 보이지 않는 이곳.

하지만 절경이라 할 수 있는 곳이기에 무리해서라도 오는 이들로 인해 사람의 발길이 전혀 없지는 않을 것 같지만, 안타깝게도 이곳은 대륙의 온 왕국에서 출입을 엄히 금기하는 통제 구역이었다.

대체 무슨 이유길래 하나같이 입을 모아 이곳에 발을 들이지 말라 하는 것일까.

그 이유는 다름 아닌 수인족 때문이었다.

수인족이란 동물과 인간의 형태가 뒤섞인 종족을 말한다.

상상이 가는가?

심지어 수인족은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동물만큼이나 그 생김새도 여러 형태를 하고 있었다.

어떤 수인족은 토끼 같은 모습을.

또 어떤 수인족은 고양이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고, 개의 모습을 한 수인족과 심지어 새의 형태를 한 이들도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같은 과의 동물 모습을 하고 있더라도 그 생김새가 천차만별이었는데, 인간에 가까운 모습에 동물의 귀와 꼬리만 달린 이들도 있고, 또 어떤 수인족은 귀와 꼬리만으론 모자라 온몸이 털로 뒤덮여 있어 동물에 좀 더 가까운 모습을 한 이들도 있었다.

그야말로 가지각색이란 말이 더없이 어울리는 이들이지만, 한 가지 공통점은 분명히 존재했다.

그것이 무어냐.

바로 놈들의 식문화였다.

수인족은 기본적으로 잡식성이다.

말인즉슨 육식도 한다는 얘긴데, 이들이 먹는 사냥감에는 인간도 포함되어 있었다.

동물과 인간이 한데 뒤섞인 종족이지만, 본성은 동물에 더 가깝다는 얘기다.

동물들은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살아간다.

그런 그들에게 있어 자신보다 약한 이는 응당 사냥감일 뿐이다.

그렇다 보니 기본적으로 신체 능력이 훨씬 월등한 그들에게 있어 나약한 인간은 먹이사슬 최하의 사냥감에 불과한 것이 저들에겐 너무도 당연한 이치였다.

원시적인 삶을 살아가며 식인까지 거침없이 저지르는 수인족들.

왕국들이 법으로까지 막아 가면서 저들의 생태계에 발을 들이지 말라는 것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곳 엘리아에 한 불청객이 찾아왔다.

그냥 불청객도 아닌, 생태계를 뒤흔들고 먹이사슬에 커다란 파장을 일으킬 엄청난 불청객이 말이다.

그 불청객의 정체.

그는 다름 아닌 이든이었다.

***

한시도 쉬지 않고 신법을 유지한 채 며칠을 내달려 온 이든은 엘리아에 도착하기 무섭게 굶주린 배부터 채우려 했다.

달려오는 내내 마시지도 먹지도 못하였으니 당연한 생리현상이었다.

이든은 발치에 나뒹구는 작은 돌을 집히는 대로 줍고는 근처에 날아다니던 새 한 마리를 향해 이를 냅다 던졌다.

푸드득! 파앗!

돌에 맞은 새가 그대로 즉사한 듯 곧바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새가 바닥에 채 떨어지기도 전, 몸을 날려 이를 귀신같이 낚아챈 이든은 새에게 잠시 명복을 빌어 준 후 대충 집히는 대로 털을 뽑고 내장을 정리하였다. 그러곤 미리 모아둔 나뭇가지에다가 손끝에 삼매진화를 발화해 불을 피웠다.

지글지글.

새가 익어 가자 고소한 냄새가 금세 사방에 퍼져 나갔다.

육안으론 확인할 수 없기에 코끝에 온 신경을 집중하여 냄새만으로 익힘 정도를 판단하던 그때였다.

"이제 슬슬 먹어도 되겠군."

어느 정도 익었다 판단된 것일까.

이든이 손을 뻗어 불 위에 걸어둔 새 고기를 향해 손을 뻗으려던 그때였다.

"응?"

팔을 뻗던 이든의 움직임이 도중에 덜컥 멈추었다.

그의 기감이 대뜸 사방을 살폈다.

난데없이 주변에서 느껴지는 기척 탓이었다.

기척은 폭우에 물이 불어나듯 삽시간에 늘어났다. 그리곤 이든을 포위한 형태로 에워싸기 시작했다.

마치 사냥감을 노리는 짐승처럼 말이다.

주변을 살피던 이든의 입가에 돌연 비릿한 미소가 지어졌다.

"거참, 마중 한번 격하게 해 주네."

마중이라.

뭐, 의도야 어떻든 간에 마중이라면 마중일 것이나, 기척에게서 느껴지는 살기로 보건대 필시 호의적으로 접근하는 느낌은 아니었다.

우득. 우드득.

고기로 뻗었던 팔을 회수한 이든이 곧장 자리에서 일어나 전투를 앞둔 모양새로 몸을 풀어 대기 시작했다. 그리곤 기척들을 향해 입을 뗐다.

"밥 먹는 도중에 시비 거는 거 질색이고, 그 와중에 음식까지 식는 거는 더더욱 싫어한다. 할 말 있으면 빨리하고 덤빌 거면 빨리 덤벼. 새끼들아."

알아듣기라도 한 걸까.

파아아아앗!!!

이든이 말을 마치기 무섭게 살기를 줄기줄기 피워 대던 의뭉스런 무리가 그를 향해 한꺼번에 달려들었다.

"시원시원해서 좋네. 데스 스타 끄나풀인 것만 빼면."

중얼거리던 이든이 곧장 두 팔을 양쪽으로 쭉 뻗어 쌍장을 펼쳤다.

동시에 쭉 펼쳐진 그의 손바닥 끝에 원형의 검은 구체가 팽팽히 불어나듯 피어올랐다.

"마원진(魔圓振)."

이든에게 덤벼들던 놈들이 육안으로 무언가를 볼 수 있는 것은 그것이 마지막이다.

일순 고막을 찢을 듯한 커다란 폭음과 함께 이든이 서 있던 자릴 중심으로 십 장 밖까지 거대한 폭발에 휩싸였다.

콰아아아아아아앙!!!!!

엘리아 산림이 부르르 떨듯 흔들렸다.

쿠르르르.

자지러지듯 흔들리던 산림이 멈춘 것은 폭음에 의한 이명이 사라질 때까지 한참에 시간이 흐른 뒤였다.

***

이든이 서 있던 인근은 강산 풍월이란 말이 무색하게 쑥대밭이 되었다.

말 그대로 일대의 모든 게 본래 형체가 무엇이었는지 상상조차 하기 힘들 정도로 말이다.

살기를 피워 대며 그에게 한꺼번에 덤벼들던 기척 역시 아무런 움직임이 없는지 주변은 쥐 죽은 듯이 고요한 상황.

"…쩝."

그때, 이든이 돌연 소리가 나도록 입맛을 다셨다.

조금 전, 마원진으로 인해 구워 놨던 새 고기도 덩달아 어디론가 날아가 버린 것인지 찾을 수가 없던 탓이었다.

꼬르륵.

허기가 극에 달한 걸까.

그의 배가 어서 먹을 것을 내놓으란 것처럼 고함을 쳐 댔다.

"다시 구워야 하나."

의도치 않게 불쌍한 새의 명복을 하루에 두 번 빌어 줘야 할 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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