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33화. (233/250)

233화.

지글지글.

"큼큼."

이든의 콧구멍이 수축과 팽창을 반복하며 수차례 벌렁거렸다.

대체 무슨 냄새를 맡길래 저리도 춤을 추듯 콧구멍이 요란하게 움직이는 걸까.

별것 아니었다.

그냥 배고픔에 못 이겨 한 번 더 명복을 빌어 줬을 뿐이다.

새에게 말이다.

이든이 손바닥을 비비며 다 익은 새고기를 향해 팔을 쭈욱 뻗었다.

"자, 이제 먹어 보실까…!"

그때였다.

그의 손이 도중에 ‘또’ 멈췄다.

그의 주변에 어슬렁거리는 기척이 ‘또’ 느껴진 탓이었다.

전생에 지은 죄가 많아서일까.

다 차려진 밥상을 앞에 두고 손을 놓는 것이 오늘로만 벌써 두 번째다.

이든이 땅이 꺼질 듯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아이고 내 팔자야…."

이러다간 하루에 자칫 명복만 세 번 빌어 줄 판이었다.

이든이 별안간 얼굴을 와락 구긴 채 버럭 소릴 질렀다.

"야이! 이것들아, 밥 좀 먹자. 밥! 오려면 진즉에 오든가. 왜 자꾸 다 익을 때쯤에 오고 지랄들이야. 사람 초조하고 열 받게시리!"

인간이든 동물이든 간에 굶주림이 극에 달하면 신경이 날카로워지기 마련이다.

지금 이든의 상태가 딱 그랬다.

새고기를 향해 뻗었던 손을 ‘또’ 회수한 이든이 벌떡 일어나 목을 좌우로 풀듯이 ‘또’ 꺾었다.

우득. 우드득.

아우성쳐 대는 꼬르륵 소리만큼이나 뼈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댔다.

험악하게 구겨진 얼굴을 보아하니 심기가 상당히 불편한 모양이었다.

굶주림이라는 것이 이리도 무섭다.

이든 본인도 몰랐을 것이다.

천마, 마신이라 추앙받던 저 자신이 배고픔에 인내심이 극에 달할 줄은 말이다.

이든이 으르렁거리듯 짐승처럼 이빨을 드러내며 입을 뗐다.

"너희가 올래. 내가 갈까. 한꺼번에 덤비면 최소한 고통 없이 보내 주마. 이 빌어먹을 것들아."

무어라 대답이라도 들려온다면 열이 조금이라도 덜 받으련만.

대답이 없는 것은 둘째 치고, 이번엔 반응조차 없었다.

"후. 그래, 내가 간다. 가!"

머리끝까지 올라오는 화를 토해 내듯, 숨을 거칠게 쭉 내뱉던 이든이 기척이 느껴지는 곳을 향해 걸음을 떼던 그때였다.

바스락.

줄곧 묵묵부답이던 기척들이 재차 움직이기 시작했다.

"쯧, 진즉에 덤빌 것이지."

이든이 탐탁지 않은 듯 혀를 한번 차고는 재차 마원진을 펼치기 위해 양팔을 쌍장의 형태로 뻗던 그 순간, 바스락거리며 기척을 내던 풀숲에서 별안간 웬 낯선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 잠깐만냥…! 우, 우린 싸우러 온 것이 아니다냥…!"

"응?"

한바탕 휩쓸듯 이곳을 재차 쑥대밭으로 만들려던 이든이 일순 주춤거렸다.

그사이, 기척을 내던 사방에서 무언가가 우르르 기어 나오다시피 했다.

이든의 기감이 자신을 에워싼 이들을 쭉 훑었다.

그가 양쪽으로 뻗었던 두 팔을 내리곤 고갤 갸웃거렸다.

‘뭐야, 데스 스타 끄나풀들이 아니었잖아.’

마원진으로 한차례 휩쓸었던 조금 전 놈들에게선 필시 데스 스타의 기운이 미세하게나마 느껴졌었다.

하나, 지금 이들에겐 그런 것이 눈곱만큼도 느껴지지 않았다.

애초에 살기나 투기 자체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달까.

‘…뭐지? 이것들은?’

이든의 신경이 다 익은 고기와 기척들을 번갈아 향하던 그때, 조금 전 여인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그쪽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다냥!"

"……?"

이든이 따로 대답은 하지 않고, 서둘러 용건을 말하라는 얼굴을 했다.

배가 고팠기 때문이다.

이를 본 여인이 재차 입을 뗐다.

"호, 혹시…. 당신은…. 위대한 존재이냥…!?"

"…위대한 존재?"

위대한 존재가 무언가.

드래곤을 가리키는 일종의 고유명사 아니던가.

다짜고짜 일단 듣던 이든의 얼굴이 와락 구겨졌다.

밥 먹는 사람 붙잡고는 한다는 질문이 원체 얼토당토않았기 때문이다.

"그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 어?"

이든이 돌연 말끝을 흐렸다.

‘잠깐….’

그가 제 단전 쪽을 쓰윽 매만져 보였다.

‘그러고 보니 나, 드래곤 하트가 있었지? 참.’

그렇다.

이든 몸 안엔 드래곤 하트가 자리하고 있었다.

물론 그것만 가지곤 그가 드래곤과 같은 존재라곤 할 순 없었다.

하나, 이제는 또 아니라고 말하기에도 모호하지 않던가.

어쨌든 드래곤 하트 반쪽이 그에게 있고 그의 몸 역시 일정 부분 드래곤화되었으니까 말이다.

"……."

이든은 일순 말문이 막혔다.

자신이 인간인지. 아니면 드래곤인지. 정의를 내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든의 고민이 길어지던 찰나, 눈치를 살피던 여인이 재차 입을 뗐다.

"…저, 저기…. 위대한 존재님…. 제 말 듣고 계신거냥…?"

"아, 아아…. 잠깐 다른 생각 좀 하느라."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해 봤지만, 답은 쉬이 나오지 않았다.

이든은 대충 얼버무렸다.

"뭐, 위대한 존재 비스무리한 것 같긴 한데…. 근데 그건 어떻게 아시고…?"

어쨌든, 그가 드래곤인지 아닌지는 그것은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진짜 중요한 건, 그의 앞에 나타난 이 무리들이 자신의 존재에 대해 어찌 알아차렸냐는 것이었다.

그의 물음에 여인이 곧장 답했다.

"드래곤 냄새가 났다냥…!"

"드래곤 냄새…?"

…드래곤 냄새는 또 무어란 말인가. 지금 그에게 나는 냄새라곤 이제는 새까맣게 탄내를 풍기는 새고기 냄새뿐이었다.

그때였다.

내내 말하던 여인이 펄쩍 뛰어오르더니 대뜸 이든의 손을 꽉 붙았다.

"…위대한 존재님, 우릴 도와 달라냥!"

"……."

이든이 화들짝 놀란 얼굴을 했다.

자신의 손을 붙잡은 여인의 손이 털 뭉치인 것처럼 폭신폭신했기 때문이다.

***

"그러니까…."

이든이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볼을 긁적이더니 말을 이었다.

"…반은 동물이고, 반은 인간이다…?"

"냥."

"허허…."

이든의 입에서 절로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도무지 수인족들의 생김새가 상상이 안 갔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거짓말이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털 뭉치 같던 손도 잡아 보고, 살랑거리는 꼬리와 쫑긋거리는 귀 역시 만져서 확인해 봤기 때문이다.

"그쪽은…."

이든이 내내 말을 주고받던 수인족 여인에게 물었다.

"…고양이 수인족이라고?"

"맞다냥!"

"…그리고 또 어떤 수인족들이 있지?"

"토끼와 개 이렇게 있다냥! 우리 세 부족은 절친한 사이다냥! 밥도 함께 먹는다냥!"

"……."

…토끼는 그렇다 치고.

고양이랑 개가 사이가 절친할 수가 있나…?

이든은 어느새 배고픔도 잊어버렸다.

그가 넋이라도 나간 듯 입을 쩍 벌리며 머릴 쥐어짜내 이들의 모습을 상상하던 그때였다.

이든이 대뜸 무언가 떠올랐는지, 고양이 수인족에게 물었다.

"혹시 그럼 아까 그들도 수인족…?"

이든이 말하는 ‘그들’.

지금 이들이 나타나기 전, 마원진으로 한바탕 휩쓸었던 살기 등등했던 기척들을 말하는 것이었다.

고양이 수인족이 고갤 세차게 끄덕였다.

"맞다냥! 그들도 수인족이다냥!"

"혹시…. 그들하고도 절친한 사이…?"

혹여 이들의 친구나 가족이었으면 어찌하나 걱정이 들려던 찰나, 고양이 수인족이 휘휘 고갤 저었다.

"그들. 우리 친구 아니다냥. 그들은 그들은 늑대 수인족들이다냥. 아주 나쁜 놈이다냥! 그들…. 우리 우두머리 죽이고, 이곳 지배했다냥. 그들. 이곳을 데스 스타에게 바쳤다냥…!!!"

"…데스 스타?"

고양이 수인족에게서 데스 스타란 이름이 나오자 이든의 얼굴이 삽시간에 굳었다.

"자세히 말해 봐. 데스 스타에게 이곳을 바쳤다니?"

"그게…."

이곳 엘리아는 오래전….

본래 호랑이 수인족인 우두머리가 이 숲을 다스렸다.

그때만 해도 모든 수인족들은 종에 구애받지 않고, 서로 허물없이 지냈다.

호랑이 수인족이 우두머리가 되면서 같은 수인족끼리의 사냥을 엄히 금한 것이 그 이유였다.

그렇게 엘리아 숲에 평화로운 삶이 지속되던 어느 날.

못 보던 수인족들이 이 숲에 나타났다.

하나는 뱀 수인족들이었고, 또 하나는 까마귀 수인족, 남은 하나는 늑대 수인족들이었다.

이들은 엘리아 숲에 발을 들이기 무섭게 힘을 모아 우두머리인 호랑이 수인족을 죽이고 엘리아 숲을 장악했다.

숲의 혼란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종을 뛰어넘어 서로 평화롭게 지내던 이들이 다시 서로에게 이빨을 드러내게 된 것이 그것이다.

사실, 이것까진 크게 문제가 될 것이 없었다.

평화는 달콤하긴 했지만, 수인족들의 삶이란 몰래 야생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진짜 문제는 지금부터였다.

엘리아를 장악한 뱀과 까마귀 그리고 늑대 수인족들이 돌연 이 숲을 데스 스타에게 바친 것이다.

숲에 실권자들의 결정에 다른 수인족들은 당연히 반발했다.

하나.

실권자들은 반발하는 자들을 가만 내버려 두지 않았다.

반발하는 이가 있다면 그자를 죽이고, 그의 부족까지 싹다 멸족을 시키며 본보기를 보였다.

화마처럼 번지며 반발하던 수인족들의 목소리는 그렇게 삽시간에 진압되었다.

그리고 실권자들에게 굴복하듯, 반발하던 자들 역시 하나둘씩 데스 스타를 섬기기로 맹세하였다.

데스 스타를 섬기기로 맹세한 수인족들에겐 보상이 내려졌다.

보다 강해진 힘이 바로 그것이었다.

하나, 부작용 역시 없지 않아 있었다.

힘은 강해진 대신, 이성은 없고 오로지 야성만 남게 된 것이다.

짐승과 수인족의 차이가 사라진 것이다.

모두가 그렇게 짐승이 되어 갈 때, 끝까지 이를 거부한 이들이 바로 고양이와 개. 그리고 토끼 수인족 부족들이었다.

"음."

고양이 수인족의 얘길 듣던 이든이 고갤 주억거렸다.

‘그런 사연이 있었군. 그래서 이곳에 데스 스타의 기운이 느껴지던 것이었어.’

그때였다.

사연을 들려주던 고양이 수인족이 대뜸 팔을 뻗어 폭식폭신한 손으로 이든의 손을 다시 꼭 붙잡았다.

"위대한 존재, 부탁이다냥! 우리 부족을, 그리고 이 숲을 제발 구해 달라냥…!"

별안간 손을 꼭 붙잡고 애원하는 고양이 수인족의 부탁에 이든이 고갤 끄덕여 보였다.

"이젠 아무 걱정 하지 않아도 돼. 내가 도와줄 테니."

"저, 정말이냥…!?"

모여든 수인족들이 초롱초롱한 눈으로 이든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데스 스타의 끄나풀을 때려잡으러 온 것이 어쩌다 보니 개와 고양이 그리고 토끼를 구하는 일이 되어 버렸지만, 상관없었다.

왜냐고?

귀여우니까.

차가운 강호인 같지만, 귀여운 것을 사랑하는 남자.

그것이 이든이었다.

***

까마귀 수인족의 우두머리, 시닌이 바들바들 떨며 고갤 조아렸다.

숲의 실권자 중 한 명인 그가 대체 무엇 때문에 저리 안절부절못한 모습을 보이는 걸까.

이유는 간단했다.

그의 앞에 있는 숲의 지배자가 불편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뱀의 수인족 우두머리이자, 숲의 지배자인 콘다가 기다란 혀를 낼름거리며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숲에 침입자가 들었는데, 놈을 붙잡기는커녕 늑대 부족 전부가 전멸했다고?"

"…모, 모두는 아닙니다. 우두머리인 울프는 살아남았…."

"스릅."

그때였다.

기다란 혀를 날름거리며 시닌의 보고를 듣던 콘다가 일순 섬뜩하게 생긴 노란 눈동자를 번들거렸다.

"우두머리 혼자만 살아남은 것이 무슨 자랑이라고…!"

"죄, 죄송합니다…."

시닌이 재차 고갤 조아렸다.

그의 몸이 흡사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공포에 바르르 떨려 댔다.

그럴 수밖에.

시닌 앞에 거만하게 앉아 있는 숲의 지배자 콘다는 뱀의 수인족 중에서도 별종으로 알려진 구렁이과 였다.

구렁이 수인족은 모든 수인족을 통틀어 타고난 힘이 남달랐다.

사실 호랑이 수인족을 몰아내고 그들이 이 숲을 지배할 수 있게 된 것도 그의 일신 무력이 대단했기에 가능했던 일이 아니던가.

게다가….

콘다는 그야말로 폭군이란 말이 더없이 어울리는 자.

자칫 입 한번 잘못 놀려 눈앞에 폭군을 더 자극했다간 시닌 그마저 콘다의 손에 유명을 달리할 수도 있었다.

시닌이 마른침을 삼키며 어떤 말로 이 폭군을 진정시킬지 고민하던 그때였다.

콘다가 입을 뗐다.

"내가 직접 나서야겠군. 스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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