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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4화. (234/250)

234화.

콘다가 직접 나선다는 말에 시닌의 눈이 휘둥그레 떠졌다.

그가 알고 있는 숲의 제왕 콘다는 절대로 저 자신이 먼저 나서겠다고 쉽게 입을 떼는 자가 아니었다.

시닌이 그에게 의중을 물었다.

"수, 수하들이 있는데, 어찌 제왕께서 직접 나서려 하십니까…!?"

"침입자가 왜 이곳에 발을 들였는지는 알 수 없으나, 호의적으로 온 것은 아닐 터. 필시 무언가 목적이 있을 테지."

"목적이라 하시면…?"

"이를 들면…."

일순 말끝을 흐렸던 콘다의 섬뜩한 눈알이 안광을 터트렸다.

그가 재차 기다란 혀를 날름거리며 말을 이었다.

"스릅. 놈의 목적이 그분의 계획을 방해하기 위해 이곳을 들쑤시고 다니는 것이라면…?"

까마득한 존재의 계획이 거론된 순간, 시닌이 화들짝 놀라며 되물었다.

"설마…. 침입자 놈이 데스 스타 님의 계획을 방해하기 위해 이곳에 왔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콘다가 고갤 저었다.

"그럴 가능성은 적다. 하나."

"……."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지."

"물론 그렇긴 합니다만, 그래도 굳이 제왕께서 먼저 나서실 이유가…."

그때였다.

콘다가 시닌의 말을 중간에 자르고는 그의 이름을 불렀다.

"시닌."

"…예!?"

콘다가 번들거리는 눈으로 시닌을 지그시 바라봤다.

"그분의 원대한 계획이 얼마나 중한지, 벌써 잊은 게냐."

시닌의 몸이 일순 경기라도 일으키듯 떨며 바짝 움츠러들었다 어찌 잊을 수 있겠나.

콘다만큼이나.

아니, 콘다보다 더한 위압감으로 다가오는 데스 스타라는 이름 아래 펼쳐질 그 원대한 계획을 말이다.

시닌이 고갤 조아리며 황급히 입을 뗐다.

"제, 제가 그것을 어찌 잊겠습니까…!"

"……."

탐탁지 않은 눈빛을 하던 콘다가 시닌에게서 시선을 거두곤 대뜸 어느 한 곳을 응시했다.

그의 시선이 옮겨진 곳은 아무것도 없는 허공.

하나.

무언가를 보기라도 하듯 그의 시선은 줄곧 거기서 떼어질 줄을 몰랐다.

콘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우리 수인족은 그분의 수족이 되기로 맹세한 몸. 내가 왜 그분을 따르기로 선택했는지는 시닌 너도 잘 알고 있겠지?"

"물론입니다. 우리 수인족이 세상에 멸시받던 것에 대한 복수가 아닙니까?"

콘다가 고갤 주억거렸다.

"…맞다."

콘다는 잊지 못한다.

아니 비단 콘다뿐만이 아니었다.

시닌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수인족이 세상으로부터 멸시받던, 암흑기라 할 수 있는 자신들의 암울했던 그때 그 시절을 말이다.

짐승도 인간도 아니라며 학대당하고, 노예처럼 이용당해 오다 급기야 숲으로 도망친 수인족들.

그들도 평범한 인간들처럼 문명 속에 어울려 살고 싶었다.

하나, 세상은 수인족들이 자신들 문명 속에 섞이기를 원하지 않았다.

그렇게 문명에서 도망쳐 수인족들이 야생을 택한 지 어느덧 수백 년 흘렀다.

긴 시간이 흘렀지만, 뿌리 깊게 남아있는 세상을 향한 그들의 분노는 여전히 응어리진 채 남아 있었다.

특히나 콘다는 뱀 수인족 특성상 긴 세월을 살아오며 수인족이 인간들로부터 당했던 멸시를 직접 겪은 산증인이였다.

어느 수인족들보다 인간들을 향한 분노가 남달랐을 터였다.

회상하듯 허공을 응시하던 콘다가 의자에 등을 기대었다.

그가 재차 입을 떼었다.

"…너무나도 긴 기다림이었다."

"……."

"…하나, 이젠 그 기다림도 끝이다. 세상을 불바다로 만들 그분의 계획이 실행될 날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닌."

"예, 제왕이시여."

"우리가 그분께 보탬이 되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

"힘을 비축하는 것입니다."

"맞다. 우리 그토록 바라던 복수에 얹혀 가는 일이 있어서야 되겠나?"

"절대 아니 될 말씀입니다."

"해서 수하들을 헛되이 잃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 와중에 늑대 부족이 허무하게 당해 버렸다. 그들이 우리의 주 전력 중 하나였던 이상 더는 피해가 생겨선 아니 될 일. 이것이 내가 놈을 잡겠다고 직접 움직이는 이유다."

"제왕의 뜻은 너무나도 잘 알겠사오나… 그래도 침입자 놈은 늑대 부족을 전멸시킨 놈입니다.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왜? 내가 침입자 놈에게 당하기라도 할 것 같으냐?"

콘다의 물음에 시닌이 화들짝 놀랐다. 그가 서둘러 아부를 떨어 대듯이 말했다.

"제, 제가 어찌 콘다님의 힘에 의심을 품겠습니까. 당치도 않습니다…!"

"흠."

시닌은 마른침을 삼키며 머릴 굴려 댔다.

‘괜찮을까….’

물론 숲의 제왕 콘다가 나선다면 침입자 문제는 쉽게 해결될 수도 있는 일이었다.

콘다가 누군가.

무력으로 숲의 우두머리인 호랑이 수인족을 죽이고 이곳에 제왕처럼 군림하는 이다.

일신 무력으론 이 숲에서 그를 따를 자가 없었다.

게다가.

얼마 전에는 죽음의 드래곤 데스 스타로부터 하사받은 힘을 흡수하여 날이 갈수록 몰라보게 강해지고 있던 그가 아니던가.

하나.

시닌의 생각엔 침입자도 만만히 봐선 안 될 상대란 생각이 들었다.

어떤 수작을 부렸는지는 몰라도 늑대 부족을 몰살시킨 것만 봐도 그렇다.

‘정말 만에 하나. 콘다 님께서 침입자에게 당하기라도 한다면….’

그것은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었다.

지금껏 공을 들여 쌓아 올린 모든 계획이 한순간에 무너질 수도 있는 것이었으니까.

제 우두머리의 힘을 의심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대도 조금은 신중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시닌은 눈치를 살피다가 콘다의 결심이 굳어지기 전 서둘러 입을 뗐다.

"제왕이시여. 부족한 제가 말씀을 올려도 되겠는지요?"

"말하라."

"제왕께서 직접 나서신다면 필시 이 문제는 쉬이 풀릴 일일 것이옵니다. 하나, 사사로운 일 때문에 제왕의 위엄을 잊는 것 또한 안 될 말이옵니다…."

"제왕의 위엄?"

"아무리 데스 스타 님의 계획을 위해 전력을 아끼신다 한들 그를 직접 찾아가는 것은 결코 아니 될 말씀입니다. 제왕께서 어찌 한낱 침입자를 직접 찾아가신단 말입니까. 제왕의 위엄을 지켜 주시옵소서."

"위엄이라…. 하면 시닌 너의 말은 놈이 나를 찾아올 때까지 여기서 가만 기다리고 있어라. 그 말이냐?"

"…송구하지만, 그렇사옵니다…."

"…놈이 나를 찾아오지 않는다면? 그리고 그사이에 녀석이 이 숲을 엉망으로 만든다면?"

"그럴 일은 없을 것입니다…!"

"어째서?"

"제게 침입자를 이곳으로 불러들일 기막힌 계책이 있으니까요…!"

혀를 날름거리던 콘다가 이를 듣고는 흥미로운 얼굴로 곧장 되물었다.

"스릅. 계책?"

콘다는 힘으로 엘리아의 왕인 호랑이 수인족을 쓰러뜨리고 이 숲을 집어삼킨 이다.

이것만 보면 그를 힘만 세고, 아둔한 이로 생각하기 쉽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그는 별종인 구렁이과이지만, 근본은 뱀 수인족이었다.

뱀 수인족은 모략과 계략에 능통한 이들이다.

심지어 그 날름거리는 사특한 세 치 혀로 상대의 마음을 뒤흔드는 것은 거의 예술이라 보아도 무방했다.

콘다, 그라고 다른 뱀 수인족들과 크게 다를 것은 없다.

쉽게 말하자면 힘 센 지능적인 뱀이랄까.

"스릅. 무엇이냐. 그 계책이란 것이."

콘다가 흥미로운 얼굴로 자신을 주시하자, 시닌이 고갤 조아리며 곧장 답했다.

"수하들의 보고에 따르면 침입자는 현재 반란 종자들과 함께 있다고 합니다."

"토끼, 개, 고양이들을 말하는 건가?"

"그렇습니다…!"

"해서?"

"…놈이 왜인지는 몰라도 그들과 손을 잡은 모양입니다. 놈들을 도와 엘리아 숲을 탈환하기 위한 수작을 부릴 것이 분명하지요."

"스릅. 계속 말하도록."

"반란 종자 놈들을 인질로 잡으심이 어떻겠습니까?"

"인질이라. 어떤 식으로?"

"놈들은 모든 수인족들 중에서도 모성 본능이 특히 강한 것들입니다. 놈들의 새끼들을 잡아다가 인질로 앞세우면 필시 함부로 움직이지 못할 것입니다. 그 침입자 놈도 함께 말이지요. 그때, 침입자 놈과 반란 종자들을 이곳으로 불러들이는 겁니다. 그때, 놈들을 한꺼번에 싹 다 제거하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시닌의 계략에 가만히 듣던 콘다가 일순 파안대소를 터트렸다.

"흐흐흐… 으하하하하!!!"

어찌나 큰 소리로 웃는지 그들이 있던 성이 크게 흔들릴 정도로 말이다.

그 천둥과도 같은 웃음소리에 시닌이 잔뜩 겁에 질린 얼굴로 콘다의 대답이 들려오길 기다리던 그때.

"……."

일순 콘다의 웃음이 뚝 멈추었다.

"시닌."

"예, 제왕이시여."

"참으로 재밌는 계략이다. 스릅."

잔뜩 겁을 집어먹던 시닌의 얼굴이 밝아졌다.

"제 계략이 마음에 드셨다니 다행입니다…!"

조금 전, 웃음을 터뜨렸던 표정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는 무미건조한 얼굴로 콘다가 고갤 주억거렸다.

"…아주. 마음에 든다. 내가 직접 나서도 별다른 문제야 없겠지만, 확실히 자네의 그 계략이 더 재밌어 보이는군. 자네가 강조하는 위엄도 지킬 수도 있고 말이야. 그리고 놈들의 반응이 어떨지도 참으로 궁금하구나. 스릅."

"…가, 감사합니다."

"그런데 그 새끼들은 어찌 인질로 잡아들일 생각인가? 스릅."

계획은 뚜렷하고 구체적이어야 비로소 계획일 수 있는 법.

그렇지 않고선 한낱 망상에 불과할 뿐이다.

콘다의 물음에 시닌이 계획하던 것을 줄줄이 읊어 댔다.

"분명 반란 종자들은 숲을 탈환하고자 침입자 놈에게 정신이 팔린 상태일 겁니다. 그때를 노리려 합니다."

"하긴…. 지금 같은 경우가 놈들의 새끼들을 몰래 빼돌리기에 적기이긴 하지. 스릅. 게다가…. 훔치는 것은 또 자네들 부족의 특기 아닌가?"

"맞습니다! 저희들 특기지요."

"재밌군. 아주 재밌어. 자네가 간만에 아주 재미난 계획을 세웠어. 스릅."

입으로는 재밌다고 말하지만, 무미건조한 원래 그의 표정은 여전했다.

그때였다.

섬뜩하기 짝이 없는 콘다의 눈에 재차 안광이 번들거렸다. 그가 시닌을 불렀다.

"시닌."

이를 듣던 시닌이 곧장 읍했다.

"예. 제왕이시여!"

"어디 한번 너의 계획대로 마음껏 움직여 보도록. 스릅."

"명을 받듭니다. 제왕이시여. 결코, 실망시켜 드리는 일은 없을 겁니다!"

"응당 그래야 할 것이다."

푸드덕!

허락이 떨어지기 무섭게 시닌이 곧장 까만 날개를 푸드덕거리며 날아가더니 제 수하들을 이끌고 어디론가 향했다.

까마귀 수인족들이 날아간 하늘을 한참이나 주시하던 콘다는 일순 재차 비집고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는 나직이 흘려 댔다.

"흐흐흐…."

사특하기 짝이 없는 안광을 줄기줄기 흘려 대며 송곳니가 하얗게 드러날 정도로 미소 짓던 그는 듣는 이 하나 없음에도 혼자 중얼거렸다.

"맞아. 그냥 냉큼 삼키는 건 재미없지…. 최대한 고통스럽게…. 숨통을 조이듯 괴롭히고 난 이후에 잡아먹는 것이 제일 별미긴 하지…. 스릅."

꺼무튀튀한 기다란 혀를 날름거리며 입맛을 다시는 콘다의 눈이 오늘따라 유난히도 샛노랗게 번들거렸다.

단지 바라만 보는 것만으로도 섬뜩할 분위기를 풍기며 공포를 자아낼 정도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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