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35화. (235/250)

235화.

이든은 해야 할 일이 있으면 결코 미루는 법이 없는 사내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달랐다.

당장 달려가 개, 고양이, 토끼 수인족들을 괴롭히는 데스 스타 끄나풀들의 대가리를 깨 버리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그러기엔 지금은 너무도 배가 고팠던 탓이다.

꼬르르르륵!

이든의 배 속에서 고함을 쳐 대는 꼬르륵 소리를 들은 걸까.

토끼와 개 그리고 고양이 수인족들이 앞다투어 이든에게 음식을 바쳐 댔다.

하지만 이든은 그들이 바쳐 댄 음식을 곧바로 섭취할 순 없었다.

뱃가죽이 등에 붙을 정도였음에도 말이다.

이유는.

저들이 바친 음식이 말 그대로 날것이었기 때문이다.

"왜 안 먹냥!?"

이든은 이들이 건네준 식량을 들고 곧장 삼매진화로 피웠던 불가로 향했다.

이든이 허기진 모습으로 식량을 구워 대며 말했다.

"익혀 먹으려고."

"왜!?"

"……."

수인족들은 분명 인간의 생김도 갖고 있지만, 동시에 짐승이 가지고 있는 야생성 또한 존재했다.

때문에 음식을 익혀 먹어야 한다는 개념 자체가 없다.

이런 이들에게 음식을 익혀 먹는 이유를 어찌 설명한단 말인가.

이든이 대충 둘러대듯 말했다.

"이게 더 별미야."

"…그렇냥?"

이렇게 하는 것이 더욱 별미란 말에 고양이 수인족 나비가 군침을 흘리더니 이든이 그러는 것처럼 잡은 날생선을 쥐곤 따라 하듯 불가에다 가져다 댔다.

그렇게 한참에 시간이 흐를 무렵 나비가 입을 뗐다.

치지지직.

"오오! 익는다냥!"

"……."

이든이 고갤 갸웃거렸다.

어디선가 털이 타는 듯한 냄새가 났기 때문이다.

"혹시 네 털 타는 것 아냐…?"

이든의 물음에 나비가 고갤 갸웃거리더니 생선을 쥐던 제 손을 바라봤다.

확실히.

털이 타고 있었다.

나비가 화들짝 놀라며 쥐었던 생선을 집어 던졌다.

철퍽.

던졌던 생선이 이든 머리 위에 떨어졌다.

"……."

평소에 그였다면 곧장 이게 뭔 짓이냐며 큰소릴 냈겠지만, 이든은 지금 그럴 기운이 없었다.

이든이 제 머리 위로 떨어진 생선을 집어다가 나뭇가지로 머리에서부터 꼬리까지 콱 뚫고는 그것을 나비에게 건넸다.

"이렇게 구워."

"오호! 머리 좋다냥!"

"……."

…이들에겐 도구라는 개념도 없는걸까.

수인족들의 무식함에 절로 한숨이 나오는 이든이었다.

하나, 어쩔 수 없다.

수인족들의 시선에 문명인의 지능이란 참으로 신기한 것이었으니까.

이젠 무어라 대답하기도 지친 것인지, 적당히 수인족들에게 신경을 끈 이든이 다시 고기를 굽는 데 여념이 없던 그때였다.

주변에 있던 수인족들이 이든과 나비가 그러는 것처럼 나뭇가지에다 음식을 끼우곤 죄다 몰려와 따라 하듯 불에다 굽기 시작했다.

좁아터진 불 하나를 두고, 수인족 수백 마리가 모여드니 숨이 막힐 지경이다.

이든이 버럭 소릴 질렀다.

"아오! 진짜!!! 비켜 봐. 다들!"

펑.

펑.

펑.

삼매진화를 사용해 눈 깜짝할 새에 곳곳에 불을 피운 이든이 몰려들었던 수인족들을 조별로 나눴다.

다들 군말 없이 문명인 이든의 지시에 따르곤 옹기종기 모여 음식을 굽기 시작했다.

밥 한번 먹는 게 이리도 힘들다.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쉰 이든이 재차 제 음식을 마저 굽기 시작했다.

‘밥 한번 먹겠다고 이게 대체 뭐 하는 짓인지. 앓느니 죽어야지. 앓느니 죽어.’

아직 그토록 바라던 등선의 경지에 오르지도 못했건만, 죽는다는 소리가 절로 나오는 이든이었다.

지글지글지글.

시간은 다시 흐르고.

곳곳에서 음식이 맛있게 구워지는 소리와 냄새가 진동을 해 댔다.

이든의 것 역시 먹음직스럽게 익은 상황.

주륵.

이든의 입에 어느새 침이 절로 고였다.

그는 더는 방해받지 않을 지금을 틈타 음식이 뜨겁건 말건 상관없다는 듯 곧장 한 입 베어 물었다.

"흐읍. 커험. 크허업!"

평소 그답지 않은 주접스러운 소리가 입 안 한가득 울려 퍼졌지만, 지금 그에게 그딴 것은 안중에도 없었다.

먹고 죽은 귀신이 왜 때깔이 좋은지 비로소 깨달음을 얻은 그였기 때문이다.

깨달음이란 언제나 간절한 순간에 찾아오는 법 아니겠는가.

지금처럼 말이다.

이든은 금세 음식을 말끔히 먹어치우곤 나뭇가지만 쏙 빼냈다.

하나, 며칠 내내 굶었던 그가 겨우 이것만 가지곤 만족할 리가 없다.

그가 재차 음식을 하나 더 집어다가 구우려던 그때였다.

이든과 수인족들이 불을 피우며 음식을 구워 먹는 데 여념이 없던 그곳에 웬 개 수인족 사내가 황급히 달려오고 있었다.

나비가 그를 보고는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오! 와리, 어서 오고! 자네도 어서 앉아서 같이 밥 먹자냥!"

하나 왜일까.

식탐이라면 둘째가라면 서러운 수인족 와리가 음식엔 눈길도 주지 않고 황급히 고갤 저었다.

"큰일이야! 큰일! 다들,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라고!"

나비가 고갤 갸웃거렸다.

"큰일이라니!? 그게 무슨 말이냥?"

"보금자리에 우리가 없는 틈을 타서 까마귀 수인족들이 우리 새끼들 죄다 납치해 갔다! 완전 난리가 났다고!!!"

"뭐어!?!?"

새끼들이 사라졌다는 말에 듣던 나비가 화들짝 놀라더니 쥐고 있던 음식을 떨어뜨렸다.

다른 수인족 역시 마찬가지로 같은 반응이었다.

심상치 않게 돌아가는 상황에 이든의 얼굴도 덩달아 굳어졌다.

***

수인족들은 각각의 형태에 따라 사냥이나 혹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방어수단이 따로 존재했다.

이는 토끼, 개, 고양이 수인족들 역시 마찬가지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종이 가지는 한계 때문인지 타 수인족에 비해 힘이 달리는 편에 속했다.

물론 그들 역시 인간보다는 월등히 좋은 신체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인간과 비교할 때 한해서였다.

그 때문일까.

그들은 살아남기 위해 종을 초월하여 힘을 한데 모으는 것을 택했다.

데스 스타의 힘에 물들어 광기와도 같은 야생성만 남은 타 수인족들로부터 자신들을 지키기 위해 상대적으로 부족한 힘을 압도적인 수로 몰아붙이고자 선택한 것이다.

이 효과는 참으로 대단했다.

데스 스타에게 굴복한 수인족들의 야생본능이 힘을 규합하여 우르르 몰려다니는 이들을 보고는 본능적으로 위험하다 판단한 것인지 더는 그들을 노리지 않게 된 것이다.

때문에 늑대와 까마귀 그리고 뱀 수인족들에게 이들의 존재는 항상 골칫거리였다.

물론 숲에 지배자들이 작정하고 사냥을 시작한다면 제압이야 어렵지 않겠으나, 어째선지 저들은 몸을 사렸다.

마치 힘을 아끼겠다는 식으로 말이다.

덕분에 개, 고양이, 토끼 수인족들을 힘을 규합한 후 수년간은 이 엘리아 숲에서 평화롭게 지낼 수 있었다.

하나, 이젠 그것도 한계에 달한 모양이다.

찰나 딴 곳에 정신을 팔기 무섭게 까마귀 수인족들이 이들의 새끼들을 물고 도망가 버린 것이다.

새끼들을 찾고 싶다면 제왕 콘다가 있는 곳으로 침입자와 함께 찾아오라는 말을 남기며 말이다.

새끼들이 없어진 보금자리에 도착한 수인족들은 제 자식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곧장 눈물을 터트렸다.

나비 역시 그중 하나였다.

곳곳에서 울어 대는 수인족들의 울음소리에 따라온 이든의 얼굴도 덩달아 심각해졌다.

‘…곧장 데스 스타 끄나풀부터 처리해야 했는데, 너무 안일했구나.’

주먹을 불끈 쥔 이든의 손이 하얗게 질릴 만큼 핏대가 가득 섰다.

그리곤 곧장 걸음을 뗐다.

이 일에 모든 원흉이 자신 때문이란 생각이 들어서였다.

이든이 걸음을 떼기 무섭게 눈가를 훔치던 나비가 곧장 이든에게 다가왔다.

"이든, 어디 가냥!"

"어디 가긴. 바로 새끼들 구하러 가야지."

"혼자선 위험하다냥!"

"혼자가 편해, 별로 위험하지도 않고."

"하지만…. 까마귀 수인족들이 우리도 함께 오라고 했다냥."

"그래서 따라오기라도 하겠다고?"

"…따라가야지. 새끼들 구하려면 어쩔 수 없다냥. 그들 요구 안 들으면 우리 새끼들 위험하다냥…!!!"

"……."

듣던 이든의 낯빛이 금세 어두워졌다. 그의 걸음도 덩달아 덜컥 멈추었다.

누가 봐도 뻔한 함정이긴 했지만, 나비의 말대로 확실히 그 혼자 갔다간 붙잡힌 새끼들이 어찌 될지 모를 일이었다.

"…그럼, 친구들 진정 좀 시키고 어서 준비해. 곧장 새끼들 구하러 가야 하니까."

"아, 알았다냥. 바로 준비하겠다냥…!!!"

나비가 서둘러 제 새끼들을 잃고 대성통곡을 해 대는 동료들을 진정시키러 간 사이, 이든의 천리안이 숲 전체를 훑기 시작했다.

‘저곳인가.’

그의 천리안이 어느 한 곳을 주시했다.

유달리 사특한 기운이 옹기종기 모인 곳이었다.

그 사특한 기운의 정체.

필시 데스 스타의 기운이었다.

***

"오는군."

콘다의 시선이 먼발치 어느 한 곳을 향했다.

섬뜩한 그의 눈동자가 주시하는 곳엔 개, 토끼, 고양이 수인족 무리가 침입자로 추정되는 이와 함께 걸어오고 있었다.

그중 침입자를 자세히 훑던 콘다가 대뜸 얼굴을 구겼다.

"…인간?"

시닌도 덩달아 고갤 갸웃거렸다.

"그, 그러게요…. 인간…. 이네요?"

"하!"

콘다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하더니만 만신창이의 모습으로 제 옆에 시립해 있던 울프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울프."

"예, 예…. 제왕이시여…."

"이게 어찌 된 일인지 설명 좀 해 보겠나? 스릅."

사실 침입자를 직접 마주했던 울프조차 눈 깜짝할 새 당했던 터라 저이가 인간인 줄은 꿈에도 모르고 있었다.

울프가 눈치를 보더니만, 황급히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죄, 죄송합니다.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땅에 얼굴을 박다시피 한 울프의 등이 바들바들 떨려 댔다.

콘다가 이를 한심하게 흘겨보고는 재차 침입자를 향해 시선을 옮겼다.

‘인간 놈이 늑대 부족을 전멸시켰다라. 그것도 혼자서 말이지….’

쉬이 믿기 힘든 사실이었으나, 콘다는 알고 있었다.

간혹 인간 중에는 저들이 가진 종의 한계를 초월한 초인이라 불리는 강자들이 있음을 말이다.

만약 저 침입자도 그런 초인의 부류 중 하나라면 늑대 부족이 당한 것도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때였다.

침입자를 면밀히 주시하던 콘다가 돌연 의아한 얼굴을 했다.

"음? 맹인…?"

"…예!?"

중얼거리던 콘다의 말을 듣던 시닌도 화들짝 놀라더니 침입자의 얼굴을 뚫어지라 바라봤다.

걸어오는 내내 감겨 있는 눈.

과연 콘다의 말대로 인간으로 보이는 침입자는 맹인이 틀림없어 보였다.

시닌이 저도 모르게 맞장구를 쳐 버렸다.

"그렇군요. 정말 맹인인 것 같습니다…."

"…허허."

급기야 콘다의 입에서 허탈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제아무리 상대가 초인이었을지언정 이건 아니다 싶었던 모양인지 콘다가 울프를 홱 노려보더니 서늘한 음성을 내뱉었다.

"맹인을 상대로 부족원 전부를 잃어?"

"……."

"네놈이 그러고도 늑대 수인족을 이끄는 수장이라 할 수 있느냐?"

"……!"

덜덜 떨며 얼굴을 땅에 박던 울프가 경기를 일으키듯 놀라며 곧장 고갤 들곤 무어라 변명을 하려던 그때였다.

콰직!!!

콘다의 육중한 발이 울프의 머릴 향해 떨어지더니 그대로 밟아 터트렸다.

그 참혹한 광경에 시닌의 얼굴이 흔치 않게 하얗게 질려 버렸다.

그사이, 싸늘한 시신으로 전락한 울프의 몸뚱이를 발로 차 치워버린 콘다가 혀를 날름거리며 시닌을 향해 입을 뗐다.

"스릅. 시닌."

"예, 예!!! 제왕이시여!"

시닌의 몸에 절로 기합이 들어갔다.

콘다가 입을 뗐다.

"늑대 수인족 새끼들은 수가 어느 정도 남았나?"

"사백여 마리 정도 됩니다. 어미까지 하면 오백이 훌쩍 넘습니다."

"…새끼들이 자라서 따로 대장을 선별하기 전까진 늑대 부족을 까마귀 부족에 편입시키도록. 그 외에 다른 것은 내가 세세히 시킬 필요는 없겠지?"

알아서 잘하라는 반강제 물음이었다.

시닌이 고갤 조아렸다.

"무, 물론입니다! 반드시 녀석들을 훌륭한 전투원으로 키워 내겠습니다."

"음."

시닌이 잔뜩 겁에 질린 얼굴로 조아렸던 고갤 도무지 들 생각을 못 하는 사이, 콘다의 번들거리는 눈이 재차 인간을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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