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39화. (239/250)

239화.

뿌우우우.

난데없는 뿔 피리 소리가 레온하르트 영지 사방에 울려 퍼졌다.

착용한 미스릴 갑옷과 검을 살피는 데 여념이 없던 병사들의 눈이 일순 휘둥그레 떠졌다.

"갑자기 웬 뿔 피리 소리지?"

"그러게…?"

물론 뿔 피리 소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들이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하나. 그럼에도 뜬금없게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레온하르트 영지는 지난 몇 달간 위급 상황이라 할 만한 일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끊임없이 울려 대는 뿔 피리 소리에 마을 사람들과 병사들 할 것 없이 모두 상황 파악을 못 하며 덩달아 얼을 타던 그때였다.

별안간 누군가의 천둥 같은 고함이 터져 나왔다.

"전투 준비!!!"

고막이 쩌렁쩌렁 울리다 못해 흡사 하늘마저 뚫어 버릴 듯한 고함에 병사들이 화들짝 놀랐다.

"이거, 발리스타 교관님 목소리 아니야?"

"그건 그렇고 그보다 전투 준비라니…?"

조금 전 고함을 내지른 장본인.

그는 다름 아닌 발리스타였다.

먼발치에서 발리스타의 고함이 재차 들려왔다.

"야이! 멍청이들아 뭣 하고 있어! 내 말 못 들었어!?!? 전투 준비하라고. 어서!!"

발리스타가 어느새 병사들이 있던 곳까지 달려와 재차 고래고래 소릴 질러 댔다.

재촉하는 발리스타의 모습에 병사중 한 명이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한 채 물었다.

"교관님 대체 무슨 일이십니까!? 전투 준비라니요…?"

그 답답한 모습에 발리스타의 눈이 회까닥 뒤집히듯이 핏발이 가득 섰다.

"데스 스타의 군대가 나타났다. 어서 자리로 복귀하란 말이다. 이 병신들아!!!"

"……!?"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던 병사들의 눈이 일순 화등잔만 해졌다.

그러곤 하나같이 어버버거리는가 싶더니만, 다들 확인이라도 하겠다는 것처럼 외성 벽 쪽을 향해 서둘러 달리기 시작했다.

미완성된 외성 벽에 선 병사의 시선이 일제히 한곳을 향했다.

부릅떠진 그들의 눈동자가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사정없이 흔들려 댔다.

"…어, 언데드 군단…?"

성벽 너머 병사들의 시선이 향한 곳.

거기엔 수천에 달하는 언데드 병사들이 금방이라도 달려들 것마냥 레온하르트 영지 앞에 줄지어 늘어서 있었다.

***

난데없이 레온하르트 영지 앞에 나타나 포위한 채 늘어선 수천의 언데드 군단.

그리고 그들 중 가장 선두에 있던 이가 레온하르트 영지의 성벽을 쭉 훑고는 대뜸 입을 뗐다.

"…이들입니까?"

듣는 이 하나 없음에도 질문을 던진 이.

그는 다름 아닌 올리아 왕국의 국왕이었다.

그리고 잠시 뒤.

국왕의 옆에 누군가 귀신처럼 별안간 모습을 드러냈다.

검은빛이 감도는 갑주를 걸친 백골의 기사였다.

백골의 기사 단테스가 고갤 주억거렸다.

"맞다. 바로 저들이다."

올리아 국왕이 대답을 듣더니만, 고갤 갸웃거렸다.

"흠. 이해가 가지 않는군요."

"무엇이 말이지?"

"이게 과연 아슬란 제국이 그토록 자랑하던 불굴의 레온하르트 영지가 맞나 싶어서 말이지요. 하나같이 오합지졸에 불과해 보이지 않습니까? 성벽도 미완성이고요. 막상 마주하니 이 많은 군대를 끌고 올 필요가 있었나 싶군요."

"…그럴 수도. 하나. 명심하라. 이 모든 것이 데스 스타 님의 뜻임을. 방심으로 일을 그르쳐선 안 될 것이다."

"훗. 이 병사들을 두고 어찌 일을 그르칠 수야 있겠습니까?"

올리아 국왕의 짙푸른 안광이 뒤에 늘어선 제 병사들을 훑었다.

한때는 왕국의 병사이자, 평범한 백성이었던 이들이 푸른 안광을 토해내며 늘어선 채 국왕의 명령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제 병사들을 바라보던 올리아 국왕의 얼굴에 언뜻 비릿한 미소가 걸렸다.

이를 본 단테스가 넌지시 물었다.

"마음에 드나?"

"들다마다요. 어찌 마음에 안 들 수가 있겠습니까. 마치 제 꿈이 실현된 기분입니다."

"……."

올리아 국왕은 줄곧 패도를 꿈꿔 온 이였다.

하나.

그의 꿈은 현실적으로 가당치도 않은 것이었다.

패도를 꿈꾸기엔 올리아 왕국의 국력이 너무도 약했기 때문이다.

아슬란 제국은커녕 주변 왕국의 눈치를 보는 것에 급급했던 것이 그의 나라의 사정이었다.

패도를 꿈꿨으되 이를 이룰 사정이 되지 못하는 그의 심정이 얼마나 답답했겠는가.

그런 그에게 데스 스타가 다가왔다.

그리고 그에게 제안했다.

"아슬란 제국의 땅을 너에게 주마. 아니, 온 대륙의 땅을 너에게 주마."

아슬란 제국을 넘어 온 대륙의 땅을 자신에게 주겠다니….

처음 그녀의 제안을 듣던 올리아 국왕은 당최 이것이 무슨 헛소리인가 싶었다. 하지만 데스 스타는 본인의 말이 헛소리가 아님을 증명해 주었다.

언데드 병사 일부를 내주곤 올리아 왕국에 골칫거리였던 주변 왕국이 불바다가 되는 것을 보여 주며 국왕에게 증명해 보인 것이다.

이를 본 올리아 국왕은 이거다 싶었다.

데스 스타가 보여 준 힘이라면 자신이 그토록 바라던 대륙 정벌이라는 패도의 꿈을 실현하는 것이 전혀 불가능한 일이 아님을 말이다.

그리고 데스 스타는 국왕의 심경에 일어난 변화를 놓치지 않았다.

"저 힘을 너에게 주마. 적들의 창칼의 결코 죽는 법이 없는 불사의 힘을 말이다."

데스 스타의 달콤한 제안을 듣던 국왕은 물었다.

불사의 힘을 얻는 대신 자신이 해 줄 것은 무어냐고.

세상에 공짜란 없음을 너무도 잘 아는 그였다.

그런 그의 물음에 데스 스타는 이렇게 답했다.

"아슬란 제국의 레온하르트 영지가 너의 패도의 시작점이 되어야 할 것이다."

국왕은 냉큼 그러겠노라고 답했다. 꿈이란 클수록 좋은 법.

패도의 시작점으로 아슬란 제국만 한 것이 없다 여긴 것이다.

그렇게 올리아 국왕은 불사의 힘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하나.

데스 스타의 선물은 거기에 그치지 않았다.

그 자신뿐만이 아니라.

왕국의 병사와 백성들 모두를.

그리고 죽어 나간 주변 왕국의 병사들까지 불사의 군대로 만들어 그에게 내준 것이다.

오직 올리아 국왕의 명만을 충실이 따라 줄 더없이 든든한 불사의 군대를 말이다.

그렇게 제 병사들을 바라보며 감회에 젖어 있던 올리아 국왕을 향해 단테스가 입을 뗐다.

"…시작해 주시게."

"그럴까요."

스릉.

올리아 국왕이 고갤 주억거리고는 곧바로 검집에서 기다란 롱 소드를 뽑아냈다.

모습을 드러낸 그의 롱소드에선 어느새 그의 안광과 똑같은 짙푸른 오러가 일렁이고 있었다.

그 오러의 정체는 필시 사기(死氣)였다. 별안간 국왕의 검에서 느껴지는 죽음의 기운에 병사들의 푸른 안광이 일제히 그를 향했다.

국왕이 제 병사들을 바라보며 입을 뗐다.

"죽음마저 초월한 나의 병사들이여. 눈앞의 레온하르트 영지를 불다로 만들어라!!!"

크오오오오오오!!!!

언데드 병사들이 일제히 괴성을 질러 댔다. 흡사 지옥에서 걸어 나온 마귀들의 울부짖음과도 같았다.

***

성벽 너머 언데드들이 토해 내는 푸른 안광은 마치 화마를 연상시켰다.

그리고 그 화마는 일시에 레온하르트 영지를 향해 파도와 같이 밀려오고 있었다.

이를 본 발리스타와 릴리가 동시에 버럭 외쳤다.

"전투 준비!!!"

"엘프 병사들은 지금 대열 그대로 유지하고! 신호가 떨어지는 즉시 사격할 수 있도록!"

교관들의 고함에 병사들은 저마다 마른침을 삼켜 대며 고갤 끄덕였다.

쿠오오오오.

마치 쏟아져 밀려 오는 듯한 기세로 언데드 병사들이 점차 가까워질 무렵이었다.

성벽 위로 웬 무리가 우르르 몰려오더니 병사들 옆에 섰다.

그들을 보던 발리스타와 릴리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다, 당신들은…!?"

대뜸 병사들 옆에 다가오더니 굳건히 버티듯 선 이들.

그들은 다름 아닌 드워프 장인들이었다.

드워프들은 저마다 제 키보다 훨씬 긴 창을 쥔 채 결의에 찬 얼굴로 서 있었다. 그들을 이끌고 성벽 위에 선 멀린이 입을 뗐다.

"친구들이 목숨 바쳐 싸우는데 어찌 우리가 가만히 있을 수 있겠소. 함께 싸웁니다!"

"……."

별것 아닌 일이었다면 괜찮다고 만류했을 것이다.

하나, 지금은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눈앞의 언데드 병사의 수가 족히 이곳의 병력보다 두 배는 훨씬 넘어 보였기 때문이다.

발리스타 고갤 주억거렸다.

"고맙…습니다!"

"친구끼리 이 정돈 당연한 거요."

발리스타가 조금은 밝아진 듯한 얼굴로 재차 성벽 너머 언데드 군단을 향해 시선을 돌리려던 그때였다.

영지 내에서 또 다른 무리가 성벽을 향해 몰려오고 있었다.

발리스타와 릴리의 눈이 재차 커졌다.

"저, 저들은…?"

지금 몰려오는 이들.

그들은 다름 아닌 성벽을 쌓는 데 일조했던 인부들이었다.

인부들의 수장.

작업반장 마르코가 그들 코앞까지 달려와서는 소리쳤다.

"우리도 함께 싸우겠다!"

발리스타가 이해가 안 간다는 듯한 얼굴로 물었다.

"너희들이 왜…?"

이해가 안 가는 것이 당연했다.

저들이 사실 말이 좋아 인부들이지, 실상은 강제 노역이었고 본래는 수적질을 하던 도적들이 아니던가.

발리스타의 물음에 마르코는 당연하다는 듯 입을 뗐다.

"어차피 여기서 밀리면 우리 다 뒈져. 그럴 바엔 너희들과 함께 싸우는 편이 났지."

"…하, 하긴 그렇지?"

발리스타와 릴리가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얼굴로 그들을 바라보는 사이, 마르코는 진두지휘하며 인부들 일부는 성벽 위로 일부는 만약에 사태에 대비하여 성문에 대기시켰다.

그사이, 성벽 아래 언데드 병사는 점차 가까워지고 있다.

흡사 코앞이란 말이 더없이 어울리던 그때였다.

릴리가 전방을 향해 검을 휘두르며 외쳤다.

"사격!!!"

발리스타 역시 따라 외쳤다.

"사격!!!!"

명이 떨어지기 무섭게 내내 적들을 향해 활시위를 겨누던 엘프족 병사들이 일제히 화살을 쏘았다.

쇄애애애애애애액!!!

파바바박!

수백 발의 화살이 단 한 발도 빗나가는 법 없이 적들을 명중시켰다.

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놈들의 움직임은 조금도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악에 받친 것마냥 성벽을 타고 올라오기까지 했다.

그 사이에도 화살은 쉴 새 없이 쏟아졌다.

쐐애애애애애액!

찰나에 쏘아 낸 화살 수만 무려 천 발은 넘을 것이다.

그 천 발의 화살 모두가 빗나가는 법이 없었음에도 적의 수는 한 하나도 줄지 않았다.

그야말로 언데드라는 말이 더 없이 어울리는 불사의 능력이었다.

화살이 소용없다 여긴 걸까.

엘프들이 별안간 활을 내팽개치다시피하고는 일제히 미스릴 검을 빼내 들었다.

멀린이 주먹을 불끈 쥐곤 입을 뗐다.

"언데드는 예로부터 미스릴에는 쥐약이었습니다. 필시 미스릴 검 앞에선 불사의 능력을 보이지 못할 겁니다…!"

발리스타가 고갤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장인분들만 믿겠습니다…!"

검을 쥔 발리스타의 손에 일순 힘이 들어갔다.

비단 발리스타뿐이랴.

릴리도.

병사들도.

그리고 함께 옆에 서 준 드워프와 인부들의 손 모두에 별안간 불끈 힘이 쥐어졌다.

그리고 그 순간.

파아아아앗!

온몸에 화살 세례를 맞은 언데드 병사들이 이들을 덮칠 듯 뛰어올랐다.

발리스타가 사기충천하여 고함을 내질렀다.

"레온하르트를 위하여!!!"

레온하르트를 위하여!!!!

복창하는 병사들의 검이 일제히 덮쳐 오는 언데드 병사들을 향해 내리꽂혔다.

효과는 대단했다.

화살 세례엔 아무런 영향도 없던 언데드의 몸이 이들이 휘두른 검에 비명횡사하며 쓰러져 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

올리아 국왕이 일순 눈살을 찌푸렸다.

"…응?"

그의 반응에 단테스의 시선도 그가 바라보는 곳을 향했다.

"……!"

단테스가 말도 안 된다는 듯 중얼거렸다.

"어떻게…. 이런…!"

올리아 국왕과 단테스의 시야엔 그야말로 믿기지 않는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성벽을 기어오르는 언데드가 레온하르트 병사들의 검에 허무하리만치 쓰러지고 있던 것이다.

올리아 국왕이 당혹스러운 기색이 역력한 투로 물었다.

"어, 어떻게 저럴 수가 있습니까? 언데드 병사들은… 불사가 아닙니까!?"

"……!"

물론 언데드 병사는 불사였다.

하지만 영원한 불사까지는 아니었다.

끊임없이 몰려드는 검과 창에는 제아무리 언데드라도 타격을 입기 마련이다.

하나. 그것은 말 그대로 끊임없이 몰려오는 경우에 한해서였다.

지금 그들이 보는 것처럼 한칼에 언데드 병사가 쓰러지는 것은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오러가 깃든 검에도 쉬이 쓰러지는 법이 없는 언데드이거늘. 어찌…!’

단테스의 시선이 도저히 성벽을 넘지 못하는 언데드를 바라보던 그때였다.

그의 시야에 별안간 드워프들의 모습이 보였다.

단테스가 화들짝 놀라더니 입을 뗐다.

"아무래도…. 계획이 조금 틀어진 것 같소."

국왕이 의아한 얼굴로 되물었다.

"계획이 틀어지다니요?"

"드워프가 있소. 저곳에."

"그게 뭐 어쨌다는 겁니까?"

"저곳에 병사들이 쥐고 있는 저 검. 아무래도 미스릴 검인 것 같소."

"…미스릴? 저들이 쥐고 있는 무기 전부 말입니까?"

"그런 것 같소."

미스릴로 된 무기는 하나같이 무가지보의 보물이 아니던가.

그런데 저 많은 병사들의 무기가 죄다 하나같이 미스릴 검이라니.

쉬이 이해가 안 가는 것이 당연했다.

하나, 그것을 떠나서 이해가 안 가는 것이 더 있었다.

국왕이 물었다.

"대체 미스릴로 된 검이 뭐길래. 언데드가 된 병사들이 저리 힘을 못 쓴단 말입니까?"

"미스릴은 그 자체만으로 신성력이 깃든 검이오. 제아무리 불사의 언데드라 해도 미스릴 앞에선 불사건 뭐건 없소."

"…뭐, 뭣이! 그게 정말입니까?"

"아무래도 안 되겠소."

그때였다.

단테스가 별안간 검집의 제 검을 뽑아 들었다.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듯한 사기가 오러 블레이드의 형태로 그의 검신에서 토해져 나왔다.

"내 직접 저곳으로 가야겠소. 국왕께선 즉시 공성 전차를 투입해 놈들의 성문을 부수도록 하시오. 이대론 답이 없소."

"아, 알겠소."

국왕의 대답이 들려오기 무섭게 단테스의 신형이 곧장 레온하르트 성벽 위를 향해 쏘아졌다.

그사이, 언데드 군단의 공성 전차가 레온하르트 성문을 향해 미친 듯이 돌진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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