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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화. (241/250)

241화.

일격을 날리려던 발리스타는 단테스의 양손을 묶은 채 저 자신까지 희생하려는 마르코를 본 순간, 갈등이 밀려왔다.

이대로 마르코와 함께 저 백골의 기사를 베어 버리느냐, 마느냐로 말이다.

단테스를 향해 달려들던 발리스타의 움직임이 갈등으로 찰나 둔해지던 그 순간, 마르코가 대뜸 발리스타를 향해 버럭 소릴 질렀다.

"이 미친놈아, 그냥 베라고! 안 그러면 결국 다 뒈져!!!"

"…미친 새끼!"

발리스타의 입에서 육두문자가 절로 터져 나왔다.

그라고 모를까.

지금이야말로 더없을 절호의 기회라는 걸.

단테스와 몇 번 검을 섞어 봤으니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놈은 애초에 그가 홀로 감당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단테스는 아무리 낮게 봐도 발리스타보다 한 수 위의 실력자였다.

그리고 고수들 간의 싸움에서 이 ‘한 수’는 극명한 차이였다.

만약 지금 이 기회를 놓친다면 발리스타가 추후에 있을 단테스의 난동을 막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다음 상황은 불 보듯 뻔했다. 놈의 난동으로 성안은 금세 혼란으로 휩싸일 것이고, 제아무리 병사들이 미스릴 검으로 무장했다 한들 영지가 함락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하나.

그토록 잘 알고 있음에도 발리스타는 검을 휘두르지 못했다.

마르코가 간과한 것이 이것이다.

동료와 함께 적장을 베어 버리기엔 발리스타는 독한 녀석이 못 된다는 것을 말이다.

그렇게 발리스타가 단테스의 코앞까지 왔지만, 어찌해야 할지 쉬이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망설이던 그때였다.

발리스타의 움직임이 둔해진 틈을 타 단테스가 검을 역수로 쥐곤 제 몸과 함께 마르코의 배를 뚫은 것이다.

푸욱!!!

단테스의 검이 마르코의 배를 지나, 등 뒤로 삐죽 솟아 나왔다.

한눈에 봐도 목숨이 위태한 치명상이었다.

발리스타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소릴 질렀다.

"마르코!!!"

"커헉…!"

마르코가 피를 울컥 토해 냈다.

그럼에도 단테스를 전신으로 끌어안은 마르코의 손은 쉬이 풀릴 생각을 못 했다.

아니, 오히려 더욱 강하게 끌어안았다. 숨이 끊기기 직전에 사력을 다해 단테스를 더욱 강하게 묶어 둔 마르코가 하염없이 입에서 피를 쏟아 내며 씩 웃고는 들릴 듯 말 듯 한 목소리로 쥐어 짜내듯 입을 뗐다.

"지, 지금이다. 바, 발리스타…!"

"……!"

생명의 불꽃이 꺼지듯 마르코의 동공이 점차 흐려졌다.

그리고 그의 의식이 완전히 끊겼을 때, 결심을 굳힌 발리스타가 고갤 주억거리며 곧장 자신의 검을 휘둘렀다.

"…마르코, 너의 희생…. 절대 잊지 않겠다."

스산하게 착 가라앉은 발리스타의 눈빛. 그것을 마주한 단테스의 안광이 찰나 흔들렸다. 마치 당혹스럽다는 듯 말이다.

본 것이다.

발리스타의 눈에서 이대로 베겠다는 결심을 말이다.

그러더니 마르코를 뿌리치기 위해 몸부림쳤다. 그렇지만 왜일까.

숨은 진즉에 끊겼음에도 단테스를 묶어 둔 마르코의 전신에 연전히 힘이 들어가 있는 듯한 이 느낌은 말이다.

그사이, 발리스타의 검에 맺힌 검은빛의 오러 블레이드는 휘두르기 직전, 칼끝이 하늘로 향하며 그 어느 때보다 맹렬하게, 무섭도록 타오르고 있었다.

피할 길이 없다 여긴 걸까. 몸부림치던 단테스의 움직임이 별안간 덜컥 멈추었다.

단테스가 중얼거렸다.

"…비, 비겁한…!"

이를 듣던 발리스타가 조금 전, 그가 듣던 말을 그대로 되돌려 주었다.

"전쟁 중에 비겁은 무슨."

말이 끝나기 무섭게 오러 블레이드를 거칠게 토해 내던 발리스타의 검은 숨이 끊긴 마르코와 함께 단테스의 몸을 정수리부터 수직으로 베어 버렸다.

우호법 장룡의 절기 흑룡마참격이 아무런 반발도 없이 정통으로 작렬한 순간이었다.

휘이이이이이익!

콰아아아아아앙!!!!

참격이 휘둘러진 순간, 먼지가 사방에 돌풍을 일으키듯 피어올랐다.

단테스를 향한 분노.

그리고 스스로의 부족함을 더없이 깨닫게 된 자신의 대한 분노가 담긴 흑룡마참격의 위력은 그야말로 대단했다.

때문에 먼지가 모두 걷히는 데까진 응당 오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전방에서 쉴 새 없이 몰아쳐 오는 언데드를 막는 내내 발리스타를 중간중간 지켜보던 릴리가 먼지가 자욱하게 피어난 그곳을 향해 소리쳤다.

"발리스타!!!"

대답은 곧장 들려왔다.

"걱정 마, 멀쩡하니까."

먼지가 채 걷히기도 전, 발리스타가 지면을 콱 내딛고는 성문 쪽으로 곧장 몸을 날렸다.

파아아아아앗!!!!

그 순간.

흑룡마참격으로 자욱하게 피어올랐던 먼지도 일시에 날아갔다.

먼지가 걷히자 사이좋게 수직으로 갈라진 마르코의 주검과 단테스의 백골이 보였다.

발리스타가 혼란스럽던 성문 쪽에 개입하기 무섭게 쏟아지듯 들려오던 비명이 순식간에 잦아들며 안정을 되찾아 갔다.

무너진 성문 앞에 떡하니 버티고 서서 개떼처럼 몰려오는 언데드를 일인 단신으로 막아 내던 발리스타의 시선이 힐끗 마르코의 주검이 뉘어 있는 곳을 향했다.

"……."

제 한 몸 바쳐 희생한 아군의 명복을 빌어 주기엔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그렇게 찰나 마르코의 주검을 향하던 발리스타의 시선이 재차 전방을 향했다.

언데드는 여전히 발악하듯 무너진 성문 틈으로 비집고 들어오고 있었다.

흡사 지옥의 한가운데를 방불케 하는 그 끔찍한 광경을 마주한 발리스타의 눈에 일순 흉흉한 기세가 일었다.

발리스타가 천둥 같은 고함을 내지르며 전방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올 테면 와! 개새끼들아!!! 내가 있는 한, 이 이상 절대 못 들어간다. 씨바아알!!!"

***

올리아 국왕의 눈에 찰나 불안한 기색이 엿보였다.

적들의 반발이 생각보다 거셌던 탓이다.

이 모든 것이 거슬리기 짝이 없는 레온하르트 병사들이 무장한 저 미스릴 검 때문이었다.

그뿐이랴.

문제는 거기에만 그치지 않았다.

성안으로 뛰어 들어갔던 단테스는 어쩐지 소식이 없었고, 공성 전차가 부쉈던 성문엔 웬 괴물 같은 놈이 떡하니 버티고 서서 언데드 병사들을 일인 단신으로 막아 내고 있었다.

올리아 국왕이 불안한 듯 제 엄지를 질끈 깨물었다.

‘설마…. 단테스 그놈이 실패한 건가?’

그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단테스가 실패한 것이 아니라면 이미 성 내부가 발칵 뒤집혔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토록 바라던 패도를 이루는가 싶더니만, 아슬란 제국은커녕 레온하르트 영지 앞에서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될 법한 상황이었다.

하나.

그렇다고 이대로 포기할 수만도 없었다. 이미 그는 많은 것을 포기하지 않았던가.

인간임을 포기하고, 불사의 언데드가 되길 선택한 그 순간부터 그에게 후퇴란 결코 있어선 안 될 것이었다.

올리아 국왕이 버럭 소릴 질렀다.

"남은 공성 전차는 모조리 성문을 뚫어라! 그냥 밀어 버리란 말이다!!!"

성문 앞에 버티고 선 놈이 제아무리 괴물 같은 놈이라 한들, 공성 전차가 연달아 들이받는 것을 막기엔 무리라고 판단하고 내린 명령이었다.

올리아 국왕의 명이 떨어지기 무섭게, 트롤들이 남은 열대의 공성 전차를 일제히 밀며 성문 쪽을 향해 내달리기 시작했다.

트롤들의 뜀박질과 동시에 전차들이 레온하르트 성을 향해 달리기 시작하자 지면에 흡사 천둥과도 같은 굉음이 울려 댔다.

쿠르르르르릉!

***

쿠구구구궁!

"응?"

별안간 들려오는 굉음에 성문 앞에 버티고 서서 언데드 병사들을 베어 넘기던 발리스타의 시선이 문득 소리가 들려오는 전방을 향했다.

전방을 보던 발리스타의 입에서 곧바로 쌍욕이 튀어나왔다.

"이런, 씨발 미친 새끼들이…!"

대체 무엇을 봤길래 저리도 흥분한 것일까.

그의 시선이 향한 곳.

거기엔 열 대의 공성 전차가 이십 장 길이 이상으로 늘어선 채 트롤과 함께 성을 향해 맹렬히 달려오고 있었다.

콰아르르르릉!

달려오는 기세가 어찌나 무서운지, 지면은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흔들려 댔고, 굉음은 천둥소리처럼 들려왔다.

필시 저 기세 그대로 공성 전차가 들이받는다면 제아무리 견고하게 쌓아 올린 성벽이라 한들 순식간에 무너질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성벽이 무너지면 그 이후의 상황은 뻔했다. 성벽이 무너진 틈으로 언데드 병사들이 성 내부로 쏟아져 들어올 테고, 그리되면 영지의 피해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질 터였다.

무슨 일이 있어도 저 공성 전차가 달려오는 것만큼은 막아야만 했다.

생각을 마친 발리스타가 일순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가 내뱉었다.

"후우…!"

전쟁이란 언제나 장기전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때문에 체력 안배는 필수였다.

하나, 지금은 그럴 여유가 없었다. 그가 남아 있던 마기를 모조리 쥐어 짜내었다.

동시에 그의 전신에서 새까만 마기 줄줄이 피어올랐다.

그때였다.

릴리 역시 공성 전차가 달려오는 기세가 심상치 않음을 깨닫고는 곧바로 성벽에서 뛰어내린 상황.

발리스타가 절기를 펼쳐 내기 위해 집중하는 사이, 릴리는 발리스타를 호위하듯 그의 옆에 서서 위화마검의 초식을 펼쳤다.

마기가 피워 낸 릴리의 검은 꽃이 사방팔방에 개화했다. 그러곤 주변에 몰려든 언데드 병사들을 향해 일제히 꽃잎이 쏟아졌다.

파라라라랏!!!

곧바로 꽃잎에 쓰러진 언데드의 괴성이 들려왔다.

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놈들은 꺾이지 않는 기세로 릴리와 바리스타를 향해 달려들었다.

언데드와 인간의 극명한 차이가 이것이다.

기세가 꺾이지 않는다는 것.

인간은 겁을 먹는다. 때문에 기세라는 것이 존재한다.

이 기세가 꺾이면 달려들던 적들도 조금씩 주춤거리기 마련이다.

그리고 주춤대는 순간 틈이 생기기 마련이고.

하나.

언데드에겐 그런 개념 자체가 없었다. 놈들은 겁이라는 것을 모른다. 그저 눈앞의 적들을 향해 광기를 쏟아 낼 뿐이었다.

릴리의 위화마검이 점차 초식의 끝에 달하며 꽃잎이 지기 시작했다. 반면에 적들의 맹렬한 기세는 여전히 꺾이지 않았다. 계속해서 달려들 뿐이었다.

그렇게 릴리가 호위까지 섰지만, 언데드의 공습에 점점 힘에 부쳐 가던 그때였다.

병사들 몇몇이 성벽에서 뛰어내리며 릴리 옆에 서서 발리스타 주변을 버티고 섰다.

릴리가 꽥 하니 소릴 질렀다.

"멍청이들, 왜 내려왔어!"

"함께 싸우겠습니다!"

"그러다 죽으면 어쩌려고!"

"어차피 저것 못 막으면 영지는 끝이나 다름없는 것 아닙니까!"

"……!"

틀린 말은 아니었다.

언데드의 무서움은 단지 겁을 모른다는 것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저들의 진짜 무서운 점은 감염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지금도 보라.

언데드에게 당한 아군들이 저들과 똑같은 모습으로 광기를 흘린 채 피아식별도 못 하며 제 아군을 공격하는 저 모습을.

공성 전차로 인해 성벽이 무너지면 감염의 확산 속도는 급속도로 빨라질 것이 분명했다.

릴리와 병사들이 사력을 다해 발리스타를 지키려 하는 것이 바로 이 이유 때문이기도 했다.

괴성이 난무하는 혼란 속에 릴리와 병사들의 검이 사정없이 휘둘러지던 그때였다.

발리스타가 별안간 감았던 두 눈을 번쩍 떴다.

그의 눈에서 어느 때보다 강렬한 기광이 터져 나왔다.

"됐다! 다들 비켜!!!"

발리스타 음성이 들려옴과 동시에 릴리와 병사들이 곧장 뒤로 물러나 길을 텄다.

발리스타가 정리하듯 일 장 이상 피어오른 오러 블레이드를 휘두르며 성 밖으로 몇 발짝 내디뎠다.

그사이, 공성 전차는 정말 코앞이라는 말로도 부족할 만큼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기광이 어린 눈으로 공성 전차를 마주한 발리스타가 일순 기합성을 터트렸다.

"흐아아아아아아압!"

일장까지 솟아올랐던 그의 검에서 터져 나온 오러 블레이드가 화르륵 타오르며 삼 장 이상 길이를 늘렸다.

그리고. 일(一)자 형태로 휘두르며 공성 전차를 향해 온 힘이 담긴 절기를 쏟아 냈다.

우호법 장룡의 대량 살상 절기.

흑룡멸마아참격(黑龍滅魔牙斬激)이 공성 전차를 향해 광범위하게 터져 날아갔다.

쿠오오오오오오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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