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5화.
반의반 각도 안 될 그 잠깐에 수백 합이 오갔다.
쾌속이라는 말로는 턱없이 부족한, 섬광과 번개와 같은 공방이었으니, 이든의 검과 데스 스타의 검이 서로의 숨통을 노리며 오간 모습이 그러했다.
그리고 그때마다 검풍과 폭음이 사방에 터지고, 몰아쳤다.
콰아아앙! 콰아아아아앙!
레온하르트 성 앞에서 대기하던 병력들은 두 괴물의 대결에서 오는 천지를 뒤흔드는 여파에 성안으로 급히 몸을 피신한 상황이었다.
그사이에 데스 스타는 이든과 검을 주고받는 내내 정말이지…. 감탄을 금치 못했다.
‘대단하군. 정말로 대단해. 나와 검을 주고받고 있다니, 그것도 전혀 밀리는 기색 없이 말이지.’
데스 스타는 삼 년 전 이든의 모습을 떠올렸다. 물론 그때의 이든 역시 강했다.
단, 인간이라는 기준을 뒀을 때 말이다.
당시에 이든은 데스 스타와 싸움을 앞두고 그녀의 수하들과 잇따른 전투로 체력이 다한 상태였다. 하지만 그것을 감안하여도 그 자신과 이렇게 대등하게 검을 주고받을 실력은 아니었다는 것이 데스 스타의 개인적인 생각이었다.
하나.
지금은 어떠한가.
아주 잠깐 사이에 수백 합이 오갔을 정도로 격렬한 싸움을 벌였건만, 힘든 기색이라곤 전혀 없지 않은가.
데스 스타는 이러한 이든의 변화를 그의 몸 안에 자리한 드래곤 하트 때문으로 보고 있었다.
이든의 육체와 레온하르트의 드래곤 하트가 완벽히 조화를 이루었기에 이든의 몸을 드래곤화시킨 것이고, 그 때문에 자신과 대등한 싸움이 가능하다는 게 데스 스타의 판단이었다.
말인즉슨, 데스 스타는 지금 단지 ‘인간’과 싸우는 것이 아닌, 동시에 드래곤이라 할 수 있는 이든이라는 ‘혼종’과 싸우고 있는 것이라는 얘기가 된다.
인간과 드래곤의 조화라….
이게 어찌 가능한가 싶기도 하고, 끔찍하기도 했지만, 궁금하기도 했다. 혼종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말이다. 그 호기심이 커질수록 데스 스타의 검은 더욱 빠르게 이든을 몰아쳤고, 이를 맞받아치는 이든의 검 역시 속도를 점차 더해 가며 매섭게 휘둘러졌다.
콰아앙! 콰아아앙! 콰아아아아아앙!!!!
일각이라는 시간이 지났을 때, 그들 사이에선 벌써 수천 합이 오갔다. 그리고 그때마다 일으키는 검풍과 폭음은 흡사 자연재해를 연상시켰다.
땅이 뒤흔들리고, 공기가 부르르 떨며 태풍이 연달아 쏟아지던 그 순간, 데스 스타의 검을 맞받아치던 이든의 신형이 별안간 공중에서 빠르게 한 바퀴를 돌았다.
데스 스타의 검에 깃들던 힘에 더해 자신이 강제로 몸을 돌린 힘까지 더해졌기에 회전 속도가 굉장히 빨랐다. 그리고 그 힘 그대로 데스 스타를 향해 제 흑색의 검을 휘둘렀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앙!!!!
기존에 오가던 검에서 울려 온 폭음보다 훨씬 더 거대한 폭음이 귓가를 울려 댔고, 동시에 강력한 검풍이 불어오며 영지 주변의 숲을 갈기갈기 찢어 댔다.
쉴 새 없이 검을 휘두르던 이든과 데스 스타 역시 조금 전 그 거대했던 힘의 격돌에 서로 멀찍이 떨어진 상태였다. 자연히 찾아온 소강상태. 한숨 돌리던 데스 스타가 정말 감탄했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정말 훌륭하구나. 너무도 훌륭해. 삼 년 전과는 비교도 할 수 만큼 강해졌어."
난데없는 칭찬이었으나, 이든은 이를 고맙게 받아들였다.
"이거, 완전 감동인데. 다른 누구의 칭찬도 아닌 데스 스타의 칭찬이니 말이야."
"자랑스러워해도 좋아. 내가 웬만해선 누구를 칭찬하는 일이 정말 없거든. 자네가 두 번째지 아마?"
"나 이전에 자네의 칭찬을 받은 이가 또 있었나?"
"있지. 지금도 저기에 있는걸."
데스 스타가 가리킨 이는 바로 레온하르트를 말하는 것이었다.
이든이 이해했다는 듯 고갤 주억거렸다.
"아아, 레온하르트 님 말이로군."
"그래, 하지만 그중에 가장 충격적인 것을 손에 꼽으라면 응당 지금 자네와의 싸움이지."
"왜지?"
"왜겠어. 당연히 전혀 예상치 못했기 때문이지. 레온하르트는 애초에 드래곤과의 대결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있었으니, 그다지 충격적이랄 것이 없었지만, 자네는 달라. 정말 예상도 못 했어. 이렇게 강해져서 돌아올 줄은 말이야."
이든이 웃으며 쥐고 있던 검을 어깨에 턱 걸쳤다.
"입에 발린 칭찬은 그쯤 하지."
"훗."
"그보다. 이래선 승부가 오랫동안 안 날 것 같지?"
데스 스타가 동의하듯 고갤 끄덕였다.
"그럴 것 같군."
"이렇게 하는 게 어때?"
"뭐가 말이지?"
"시간 끌 것 없이 서로의 일격필살로 승부를 보고 싶은데 말이야. 어떻게 생각하나?"
듣던 데스 스타가 피식 웃었다.
지금 상황이 어처구니가 없었기 때문이다. 다른 누구도 아닌, 그 자신이 싸움이 길어질 것 같으니 서로의 일격필살로 승부를 보자는 말을 살면서 들을 줄은 상상도 못 했던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지금 이 순간이 즐겁고 신선했다.
데스 스타가 찰나 숨을 돌리는 동안 늘어뜨렸던 검신(劍身)을 재차 치켜세우곤 입을 열었다.
"이 즐거운 싸움이 끝난다는 것이 아쉽긴 하지만…. 뭐, 상관없지. 그치만 괜찮겠어?"
"……?"
"내 일격필살의 검술은 브레스를 기반으로 한다. 말인즉슨, 막지 못하면 무조건 저세상이란 얘기지."
데스 스타는 제힘에 대한 자신감이 하늘을 찌르는 놈이었다. 그렇기에 자신의 일격필살이 무언지 저리 대놓고 말하는 것이었고.
그런 그녀의 모습이 기가 막혔는지 이든이 물었다.
"괜찮겠어? 일격필살인데. 그렇게 막 말해 줘도?"
데스 스타가 어깰 으쓱였다.
"뭐, 어때. 알면서도 못 막는 것이 이 몸의 일격이다."
"그래? 난 참고로 알려 줄 생각 없다."
이든이 얄밉게 응수했지만, 데스 스타는 별 반응 없었다.
"흠. 상관없어. 어차피 나와 일격으로 겨룬 놈 중에 멀쩡한 놈은 없었으니까. 레온하르트도 그런 놈 중 하나였고."
"자신감이 대단한데, 너 그러다 피 본다."
"훗. 드래곤 하트 하나 얻었다고 너무 건방 떠는 것 아닌가."
"글쎄…. 정작 건방을 떠는 게 누군지는 직접 확인해 봐야 아는 법 아니겠어?"
"……."
조금 전, 그 엄청난 검격(劒擊)을 펼쳐 대던 괴물들이 나누는 대화라곤 도무지 믿기지 않을 유치한 말이 오가던 그때였다.
이든과 데스 스타의 얼굴이 일순 진지해졌다. 그리고 동시에.
마주 선 둘의 검에서 별안간 엄청난 힘이 홍수처럼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이든의 흑색 검에선 흡사 무저갱을 연상시키는 새까만 마기(魔氣)가….
데스 스타의 데스 블레이드에선 세상을 온통 죽음으로 물들일 기세로 섬뜩하고 짙푸른 사기(死氣)가 토해져 나왔다.
쿠르르르르…
그사이, 땅은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요동을 쳤고, 대기 중의 공기는 겁이라도 질린 것처럼 바르르 떨어 댔다. 아직은 그저 마주 선 채 힘을 방출하고 있는 것만이 전부이건만…. 그것만으로도 충돌하는 두 힘에서 오는 여파는 이토록 상상을 초월하고 있었다. 그렇게 세상 자연 만물이 앞으로 닥칠 거대한 힘의 격돌에 두려움에 떨던 그 순간.
이든과 데스 스타의 검이 멀찍이 떨어진 채 서로를 향해 휘둘러졌다. 벼락처럼 휘둘러진 검에서 일격필살이 섬광처럼 쏘아지며 격돌한 것이다. 동시에 그것은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안 될 거대한 폭음을 만들어 냈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흡사 천지가 뒤집히는 듯한 폭음이 울려 댔고, 세상 모든 것의 뿌리가 뽑힐 듯한 돌풍이 사방을 휩쓸어댔다. 그사이, 데스 스타의 얼굴이 별안간 구겨졌다.
‘…놈도 브레스를?’
데스 스타가 얼굴을 구긴 이유.
다름 아닌, 이든 역시 그 자신처럼 브레스를 기반으로 한 검격을 쏟고 있었기 때문이다. 말인즉슨, 이든과 데스 스타의 일격필살은 브레스 간의 격돌이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를 증명하듯 서로를 향해 쏟아 낸 검격에 중앙에선 서로 다른 성질을 가진 브레스가 만나서 생성된 것으로 보이는 거대한 태양구 같은 것이 그 크기를 부풀려 가고 있었다. 곧 터질 듯이 말이다.
그것이 터지는 데까지는 그리 오랜 기다림이 필요하지 않았다.
크기가 가히 집채만 해졌을 때, 더는 버티지 못하겠다는 듯 세상 사방 천지를 명멸하는 광채로 가득 채우며 태양구가 난데없이 터진 것이다.
얼마나 대단한 폭발이었으면 더는 폭음조차 들려오지 않을까.
곧바로 찾아온 이명이 귀를 먹먹하게 만들고 있었다.
삐이이이이이.
데스 스타가 폭발의 여파에 저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던 그때였다.
이명과 광채 속에서 난데없는 훈풍이 느껴졌고, 그 훈풍은 그녀의 오른팔을 쓸고 지나갔다.
"……?"
데스 스타가 고갤 갸웃거렸다.
조금 전 그 훈풍이 무언지 눈을 가리는 광채와 귀를 막는 이명으로 파악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잠시 뒤, 시간이 흘러 빛이 서서히 사그라들고 귀를 틀어막던 이명마저 사라진 그때였다.
눈을 뜬 데스 스타의 시선이 훈풍이 쓸고 지나갔던 오른쪽 팔을 향했다. 그런데…. 왜일까. 검을 쥐고 있던 그녀의 오른팔이 어째선지 바닥에 떨어져 널브러져 있는 이유는.
일순 밀려오는 고통에 데스 스타가 이를 악물었다.
"크읏…!"
팔이 떨어져 나간 빈자리에선 새빨간 피가 울컥울컥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데스 스타가 떨어져 나간 팔에서 시선을 거두곤 퍽 당황한 얼굴로 이든을 노려봤다.
"대, 대체 어느 사이에. 내 팔을…!?"
이해가 안 될 것이다. 낌새랄 것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으니까.
특히나 최강의 생명체이면서 동시에 강한 내구성을 지닌 드래곤의 팔을 이렇게 허무하게 앗아 갈 정도면 무언가 낌새라도 느껴져야 하는 것이 응당 당연하였다.
제아무리 광채와 이명으로 그녀의 눈과 귀가 가려졌다 해도 말이다.
데스 스타의 팔을 거둬 간 훈풍의 정체.
그것은 검격(劍擊)을 오직 한 점에 집중하여 극강의 날카로움으로 만들어 낸 이든의 최상 성명 절기. ‘극마신검(極魔神劍)’이었다.
전말은 이러했다.
사실 브레스가 터지며 발생한 광채는 이든에겐 별다른 방해가 되지 않았다. 애초에 눈이 보이지 않으니 영향이 없는 것이 당연했다.
해서 이든은 브레스가 폭발을 일으킨 직후, 곧바로 데스 스타의 검격이 느껴졌던 방향으로 검을 휘두른 그녀의 팔이 있을 것이라 가늠되는 곳에 극마신검을 펼쳤다. 그리고 그것이 운이 좋게 적중한 것이었고.
이든이 비릿하게 웃으며 입을 뗐다.
"내가 말했지? 얕보면 피 본다고."
"…크, 크읏."
데스 스타의 안색이 새하얗게 질렸다. 가뜩이나 하얬던 피부가 백지장처럼 더욱 창백해졌다. 팔이 잘려 나갔으니, 고통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컸을 것이다.
하나.
데스 스타에게 있어 당장에 느껴지는 고통보다 팔 하나를 잃었다는 사실이 그녀를 더욱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데스 스타는 겉모습만 봐도 알 수 있다시피 외향에 지독히도 신경을 쓰는 여성성(女性性)을 지닌 드래곤이었다.
그런 그녀가 팔을 잃었으니 지금이 얼마나 혼란스럽겠는가.
레온하르트에게 눈을 하나 잃었을 때와 비슷한 심정이었을 것이다. 데스 스타의 하나 남은 눈에서 살기 섞인 새파란 안광이 토해져 나왔다.
동시에 오른손이 쥐고 있던 데스 블레이드도 어느새 그녀의 왼손이 쥐고 있었다. 데스 스타가 고함을 내지르며 이든을 향해 달려들었다.
"곱게 죽을 생각은 버리는 게 좋을 거다. 네놈도 똑같이 병신으로 만들어 줄 테니까…!!!"
하나.
흥분은 방심을 부르는 법.
데스 스타는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이조차 이든이 바랐던 반응이란 것을…. 데스 스타의 신형이 어느새 이든의 코앞까지 다가온 그때였다.
이든의 팔이 재차 번개처럼 휘둘러졌다. 코앞까지 다가왔던 데스 스타의 눈이 부릅 뜨였다.
재차 훈풍이 느껴졌던 것이다.
조금 전, 자신의 팔을 앗아 갔던 그 훈풍이 말이다.
이든의 극마신검이 재차 휘둘러진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