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화 〉제 3화 신과 필멸자
고요한 새벽. 축제의 분위기는 꿈처럼 사라지고,
칼을 벼린 듯한 긴장감만이 실버 게이트에 감돌고 있었다.
인간들은 앞으로 있을 전투를 위해 엘프에게 무기를 나눠주고,
엘프는 인간들이 이곳에서 빨리 떠날 수 있도록 마법을 통해 도와주고 있었다.
그러한 상황을 네메시스는 성벽 위에서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다.
"대처가 빠르군."
"이곳은 언데드의 침입이 익숙한 최전방이니까. 괴물들의 왕."
대답을 바라지 않는 그의 혼잣말이었지만.
‘누군가’가 자신의 말에 대답하자. 네메시스는 고개를 돌려 그 존재를 보았다.
그러자 싱글벙글 웃고 있는 인간들의 교황이자. 빛의 주신인 켈렌트가 곁에 서 있었다.
“엘프는 천. 인간은 대략 백 명.
지금 내가 살펴본 것으로만 보아도.
언데드는 4천에 본 맘모스, 리치, 죽음의 기사 등의 고위 언데드까지 섞인 상황이야.
하나하나가 혼자서 수십 명을 죽일 언데드들이지.”
“정상적인 상황이면 못 막겠군.”
객관적인 전력을 비교해본 네메시스는 조용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일반적인 공격이라면 성벽을 방패로 충분히 막겠지만.
지금 오고 있는 대군은 언데드.
그것도 천 년 전 전쟁에서 희생당한 수많은 필멸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언데드였다.
당시에괴물들의 손속이 잔혹한 만큼.
죽음의 기사와 같은 고급 언데드들도 그곳에 많이 섞여있겠지..
인간들이 이곳을 떠나지 않고 엘프를 돕는다고 하들.
언데드들을 막는 일은 객관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어젯밤의 보고로 그 사실을 모두 알고 있어. 인간들도 마찬가지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지? 빛의 주신?"
“필멸자들... 재미있지 않아?
합리적으로 볼 때. 분명 이길 수가 없는 싸움인데도 대항할 준비를 한다는 거 말이야.
고향을 지킨다는 명목으로 혹은 엘프들과의 동맹을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버리려는 자들도 있다는 것을 보면...
난 필멸자들이 사랑스러우면서도 부러워.”
"....."
켈렌트는 그렇게 말하더니, 알 수 없는 미소를 짓은 채로 광장을 바라보았다.
“나도가끔 필멸자들처럼 저랬으면 좋겠거든.”
주신이라 경배 되는 불멸자는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네메시스에게 고개를 돌렸고,
그러자 네메시스는 인상을 찌푸렸다.
“그래서 나에게 뭘 원하는 거지? 빛의 주신?”
“이곳의 필멸자들을 도와줘. 4세계 괴물들의 왕.”
그 말에 네메시스의 인상이 더욱 찌푸려졌다.
“웃기는군. 저들을 돕고 싶으면.
스스로가 본래 힘으로 나서면 될 텐데? 빛의 주신?
네가 조금이라도 힘을 발휘하면 저런 언데드들 따위는 한순간에 소멸하겠지.
그런데 나에게 왜 도움을 청하는 거지? 빛의 주신 켈렌트?”
“나는 이곳에서 인간 ‘교황’으로서만 싸울 생각이야....
‘빛의 주신 켈렌트’로서가 아니라.”
켈렌트는 그 말과 함께 성벽 아래에서 분주하게 움직이는 필멸자들을 바라보았다.
“내가 주신으로서 힘을 사용한다면..
이곳의 전투는 순식간에 끝나겠지.
그 후엔?
나의 도움에 필멸자들이 무릎을 꿇으며 감동할지도 몰라.
그리고 머나먼 미래엔 짤막한 전설로 남겠지...
하지만 내가 필멸자들을 사랑하는 부분은 그것이 아니야.
그들은 나와 같은 불멸자나, 괴물들과는 달리.
빠르게 성장하고 금방 늙어서 죽어버리는 존재들.
그렇기에 그들은 매 순간에 최선을 다하고,
괴물이나 불멸자들 같은 존재들에게 없는 열정을 가지고 있어.
그거야말로 필멸자들의 ‘빛’.
빛의 주신인 나라도 흉내 낼 수 없는 아름다움이야...
그렇기에... 난 그들을 직접 도울 수가 없어.
그것은 먼 과거에 내가 필멸자들에 대한 마음을 고쳐먹게 된 필멸자에 대한 모독이 될 거니까 말이야...
그러니...”
켈렌트는 필멸자들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난 한 명의 필멸자로서, 그들을 돕고 싶어.”
“................”
켈렌트 말에 네메시스는 잠시 침묵하면서 그를 바라보더니,
곧 결단을 내린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문 정도는 지켜 주마.
플로라의 새로운 고향인 만큼 그 정도는 어렵지 않지."
네메시스는 켈렌트의 말에 성의 없이 대답했지만,
켈렌트는 그 말로도 충분한 듯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자신의 짧은 다리로 광장으로 내려갔고 그러자 네메시스는 그를 멈추어 세웠다.
“잠깐만! 켈렌트!”
“?”
“‘세레나’라는 엘프...
그녀가 내가 아는 플로라인 것은 확실하겠지?”
“나는 분명 천 년 전의 계약을 확실하게 지켰어. 흥!”
켈렌트는 그 말과 함께 자신과의 계약을 못 믿는 듯한 네메시스의 태도에 화가 난 듯이 콧방귀를 뀌며 몸을 돌렸다.
그렇게 켈렌트가 내려가면서 모습을 감추자.
네메시스는 다행이라는 듯이 그대로 누워버렸다.
켈렌트의 태도를 보면,
세레나가 ‘플로라’인 것이 확실해졌기 때문이었다.
“다행이다. 다시 만날 수 있어서...”
빛의 주신이 괴물에게 가장 적대적인 불멸자인 만큼.
플로라를 돌려주지 않고.
쓸데없는 짓을 할까 걱정한 네메시스였기에.
그제야 그는 안도할 수 있었다.
물론 대비책을 세워놓았지만.
네메시스의 목적은 플로라의 생존이었으므로,
그녀에게 조금이라도 해가 될 만한 일은 하고 싶지 않았다.
"말리고스. 내 말이 들려?"
[응? 네메시스? 무슨 일이야? 하앙..
나 배고픈데...
어디 있다가 이제 연락해?]
"밥은 나중에 줄 테니...
세레나를 몰래 지켜봐 줘. 말리고스."
[매일같이 놀려오는 그 엘프?
그거야 가능하긴 한데.... 근데 왜?]
"그녀가 플로라의 환생이야."
[뭐?! 정말?! 우리랑 처음 만났을 때. 배고파 쓰러진 그 엘프가!?]
“...응.”
솔직히 말하면.
그 당시에 그 모습을 보인 그녀가 플로라란 사실이 믿기지 않는 네메시스였다.
그의 부탁에 말리고스로부터 대답이 돌아왔다.
[아...알겠어! 그럼 당연히 그녀를 지켜야지!
근데 빛의 주신 켈렌트가 예언한 날짜가 언제였지?
내가 3일 넘게 잔 것은 아니지? 뇨롱?]
“바로 오늘 일몰 때야.
그러니 그녀를 부탁해. 말리고스.
난 켈렌트에게 부탁받은 일이 있거든.”
[알겠어. 나에게 맡겨둬. 뇨롱.]
그 말을 끝으로 말리고스는 통신을 끊었고 그러자 네메시스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앞으로 있을 일을 처리하기 위해서는 아무리 그라도 휴식을 취해야만 했기 때문에...
그렇게 태양이 사라져가는 일몰 때가 되어가자.
지평선 저편에서 검은 그림자가 몰려오는 것이 보였다.
성채 위에는 엘프 레인저들과 그들의 방어무기인 발리스타가 대기하고 있었으며,
정문 뒤에는 죽음을 각오한 인간들과 엘프 전사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 뒤에는 정령사와 마법사 등이 마나를 모으며 준비하였고,
교황 켈렌트의 중심으로는 인간 사제 몇 명이 대기하고 있었다.
언데드 대군이 몰려오자.
모두가 긴장한 모습으로 각자의 무기를 쥐기 시작하였다.
...단 한 명의 ‘예외’를 제외하면 말이다.
그 예외에 속하는 존재인 네메시스는 입구 근처의 지붕 위에 누운 채로 태평하게 하품을 하고 있었다.
“....귀찮군.”
저들에겐 자신의 목숨이 달린 일이지만.
네메시스에겐 이번 일은 귀찮고도 자신의 이익이 되지 않는 일이었다.
그런데도 자신이 이런 부탁을 승낙해버리다니...
네메시스는 자신의 결정에 자책했지만,
입으로 약속해버린 이상 별수 없었다.
그와 같은 ‘4세계 괴물’들은 절대 거짓말을 할 수 없었으며,
자기가 인정한 약속은 자기 목숨을 버려서까지도 지키는 존재들이었다.
뭐... 처음부터 뒤통수칠 생각으로 말장난을 쳐둔다면 이야기가 다르겠지만 말이다.
“네메시스!? 당신이 어째서 여기에?!!!!”
세레나는 성채 위에서 엘프 특유의 좋은 시력으로 네메시스를 보자마자.
어이없는 듯이 얼빠진 표정을 지으며 내려오더니 곧 네메시스의 앞에 섰다.
"여기 왜 누워있어요?! 당신은 이곳에 있으면 안 되잖아요!”
"음? 세레나?"
네메시스는 자신을 내려다보는 그녀의 모습에 쓴웃음을 짓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고쳐 앉았다.
그녀가 플로라의 환생임을 빛의 주신에게 확인받은 이상.
벌써 그녀에게 밉상으로 찍히면 좋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플로라는... 날 증오하니까 말이지..’
“대피하라니까! 대피를 안 하고 왜 이곳에 있어요?!
언데드에게 죽고 싶어요?!”
“아아! 그거? 나도 너희를 도와서 싸우려고.”
정확히는 정문만 막을 생각이었지만,
세레나는 그런 그의 말이 장난인 줄알고, 귀까지 빨개지도록 화를 냈다.
"저는 지금 농담할 기분이 아니에요! 네메시스! 이곳에 있으면 당신은 죽는다고요!!!!
무기도 없으면서! 뭘 싸우겠다는 거예요!
당신에겐 조금의 마나마저 느껴지지 않는다고요!!!"
‘...내가 죽는다라.’
세레나의 걱정에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을 느끼는 네메시스였지만,
속으로 고개를 내저었다.
아직 눈앞의 엘프는 자신의 정체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다.
언제쯤 그녀가 자신의 기억을 되찾고, 본래의 플로라가 되는걸까?
그래도 본래의 플로라라면.
원망만을 내뱉었을 그녀가 자신을 걱정해주니, 기분이 좋아지는 네메시스였다.
"음? 저기 뭔가 오는데?"
"말 돌리지 마세요! 네메시스! 시간이 없다고요!"
"진짜데."
"네메....!!!!"
쿠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시.. 딸꾹. 어? 저건...."
세레나가 굉음이 들리는 곳을 향해 고개를 돌리자.
성채의 모서리에 있는 작은 탑 위에,
지는 태양을 등지고 있는 거대한 ‘무언가’가 날개를 접은 채로 서 있었다.
‘그것’의 몸에는 살점이라고는 하나도 없었으며,
눈이 있는 자리에는 검은색 텅 빈구멍만이 존재하고 있었고.
그것의 날개 또한 피막을 제외하면 모두 뼈로 이루어진 생물체였다.
처음 ‘그것’을 보는 이들은 그저 '죽음'이라고 칭하고 말겠지...
“저..저건...?!”
“본드래곤이네. 천 년 전 전쟁으로 죽었던 드래곤의 시체가 언데드로 만들어졌군.
하긴야... 그때 드래곤이 워낙 많이 죽은 만큼.
드래곤들이 회수되지 않은 시체는 언데드가 될 수밖에 없었겠지.”
“말도 안 돼!!!! 본드래곤은 전설의 언데드일텐데!!!!”
네메시스가 태연하게 중얼거리자.
성채 안에 있는 이들 사이로 공포가 퍼져나갔다.
본드래곤이라면 그들이 알기로는 언데드들 중.
최고의 위험도를 자랑하는 언데드였기 때문이었다!
“미..미친!!!”
“믿을 수 없어! 저런 것이 하필... 이곳에!?”
실버 게이트의 혼란을 훑어보듯이 고개를 돌린 본드래곤은 곧 자신의 첫 번째 사냥감을 찾은 듯이 급강하를 시작하였고,
그 모습을 보고 누군가가 외쳤다.
“모두 피해!!!!!”
그 말을 끝으로 실버게이트의 전투는 처음부터 아비규환으로 치닫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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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이 살아가는 ‘세계’는 ‘불멸자’인 2명의 주신이 창조주의 명에 따라 관리하며,
일반적인 생물체인 우리 ‘필멸자’들은 그 세계에서 살아간다.
세상을 구성하는 축은 이렇게 ‘필멸자’와 ‘불멸자’뿐이었으나,
‘천 년 전 전쟁’ 이후. 이 전제가 달라지고 말았다.
‘천 년 전 전쟁’에서 ‘괴물’들은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으며,
갑자기 나타난 그들은 막대한 힘으로 주신들에게 도전장을 내밀었고.
그 힘은 불멸자가 이끄는 필멸자 연합군을 학살하고,
주신들을 몇 번이나 쓰러트릴 정도의 강함이었다.
비록 전쟁은 휴전으로서 끝나고 말았지만.
그 이후. 4세계괴물들은 모든 ‘세계’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기 시작하였고,
여러 곳에서 주신들과 대립하거나 협상하여 불멸자들과의 힘겨루기를 이루어 가기 시작하였다.
이는 불멸자와 필멸자 뿐만이 아니라.
‘괴물’이라는 새로운 축이 나타났음을 의미하며,
이로써 ‘세계’는 3개의 축이 구성하게 되었다..
이러한 일을 행한 4세계 괴물들은..
대체 어디서 온 것이고, 또한 왜 불멸자인 주신들을 향해 이를드러내는 것인가?
이는 4세계 괴물들과 대화를 나눠보지 않으면 알 수 없겠지...
그들의 모습은 겉으로는 일반적인 필멸자와 다름없기 때문에,
어쩌면 우리의 곁에서 괴물이 당신을 지켜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4세계 괴물들에 대한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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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드래곤은 먹이를 노리는 매처럼 급강하하여 한 명을 입으로 낚아채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으아아아아아악!"
콰지지직!
이르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고기를 찢는 불길한 소리와 함께 희생자의 비명이 멈춘다.
제 죽음을 믿을 수가 없다는 듯이 희생자의 입에 피거품이 흘러나와 지상으로 떨어지자.
그 장면을 본 아래에 있는 엘프들과 인간들이 공포에 질려 본드래곤을 향해 반격을 시작했다.
크르르르릉!
“마법이 먹히지 않아!”
하지만 최악의 언데드라 불리는 본드래곤은 드래곤의 뼈에 깃든 마법 저항만으로 공격을 모두 막아내더니,
또 다른 목표물을 찾는 듯이 텅 빈 눈구멍으로 광장을 훑어볼 뿐이었다.
세레나는 다급한 현재 상황을 보더니, 광장을 향해 달려나갔다.
"젠장! 네메시스! 제가 돌아올 때까지 절대로 죽지 마세요!"
"아아! 나를 걱정할 필요는 없다니까."
세레나는 네메시스가 걱정되는 듯이 달려나가면서 그를 힐끔! 살펴보았다.
‘당신은... 왠지 모르게 정감이 가는 인간이니까요.’
이상했다. 세레나가 네메시스란 인간을 알게 된 시간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그녀는 그와 있으면 편안함을 느꼈다.
마치 가족과 같은 느낌이랄까?
친숙하면서도... 계속 있고 싶은...
‘윽?!!!!!’
세레나가 네메시스를 생각하자.
갑자기 밀려오는 두통을 느끼며, 입술을 깨물었다.
‘너어!’
‘야! 엘프!’
‘감히 엑스트라 괴물 따위가?! 나랑 말을 섞으려고?’
.................................................................
‘플로라!!!!!’
‘언니!’
‘플로라~.’
‘플로라 언니♥.’
세레나의 귓속을 채우는 듯한 수많은 메아리.
그것들은 처음에는 그녀를 적대하는 목소리가 대부분이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호감을 느끼거나, 그녀에 대해 신뢰를 하는 목소리가 늘어났다.
그러자 세레나는 두통이 더욱 심해지는것을 느꼈다.
‘뭐야.. 이건....?’
그녀의 눈앞으로 장면들이휙휙! 지나갔다.
귓속을 채우는 음성과 시야를 가리는 환상의 변화하는 속도가 너무나 빨랐기 때문에,
세레나는 그것들을 제대로 볼 수 없었지만.
마지막에 남은 장면만은 똑똑히 볼 수가 있었다.
[...넌 나뿐만이 아니라. 666의 모두를 상대해야 해. 느껴져?
다른 괴물들의 살기가? 모두 이곳으로 오고 있어...
고집부리면 네가 죽어.]
사방이 피로 물들여진 전장의 한복판이었다.
지면에는 세레나로서는 한 번도 보지 못한 거인이 머리가 둘로 나누어진 채로 쓰러져있었고.
그러한 거인의 시체를 등 뒤로 여우 수인이 세레나를 향해 내려다보고는 말을 걸고 있었다.
등 뒤로 9개의 꼬리를 휘날리고 있는 것이 특이하달까?
세레나는 그녀가 익숙한 것을 느꼈다.
마치....
옛날부터 알고 지낸 동료와 같은 느낌이랄까?
여우 수인은 세레나를 보며 슬픈 눈동자를 하고 있었다.
[...미안해.]
그러한 여우 수인을 향해. 세레나는 무의식적으로 중얼거렸고,
그러자 그녀의 눈앞에 나타난 흐릿한 장면은 수면에 돌을 던진 것처럼 흩어져,
그대로 사라지기 시작하였다.
또 세레나의 귀에 들려왔던 메아리들도 잦아들기 시작하더니 완전히 침묵하고 말았다.
‘이건...
대체 무슨...?’
갑작스럽게 나타난 환상에 세레나는 어리둥절하더니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자신이 무슨 꿈이라도 꾸었던 것일까?
꿈처럼 본 것이 기억나지 않는 세레나였지만.
단 하나의 이름은 그녀의 뇌리에 남아있었다.
‘....플로라? 그 이름은 대체 누구지?’
그녀의 지식으로는 모르는 이름이었지만.
너무나 익숙한 이름이라고 세레나는 중얼거렸다.
갑작스럽게 일어난 이변에,
그녀는 혼란스러워하며 기억을 떠올리려고 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침묵뿐.
그 외에는 기억나는 것은 없었고,
아까와 같은환상도 그녀의 눈앞에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쿠오오오오옷!!!!!!!
“꺄아아아아아앗!!!!
“...내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야.”
하늘 위로 또 다른 사냥감을 물고,
희생자의 피를 공중에서 뿌리는 본드래곤의 모습에 세레나는 마음을 다잡았다.
자신이 방금 본 것들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현재 중요한 일은 그것이 아니었다.
자신이 해야 하는 일은...
그녀의 동족들을 해치고 있는 저 본드래곤을 막는 일이었다.
그 사실에 세레나는 광장을 향해 뛰어가면서 주위를 둘러보자.
영창들이 주위에 들려왔고,
하늘을 향해 원소계열 마법들과 화살들이 본 드래곤을 향해 날아갔으나 전혀 피해를 주지 못하는 모습이 보였다.
오히려 그것들이 땅에 떨어져. 집들을 파괴하거나 피해자를 만드는 있는 상황이었다.
본드래곤에게 죽은 것보단. 저렇게 눈먼 마법들에 죽은 이가 더 많겠지..
세레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이대로라면 몇 시간이 지나더라도, 본드래곤에게 피해를 줄 수 없었다.
본드래곤을 쓰러뜨릴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제기랄!'
그녀는 주위를 둘러보다가.
실버 게이트에서 제일 높이 솟아 있는, 인간들의 교황이 머물었던 탑을 보았다.
현재 실버 게이트를 습격하고 있는 본드래곤은 탑의 중간 고도에서 사냥감들을 향해 급강하를 계속하고 있었다.
본드래곤에 대항하여, 누군가 거대한 토네이도로 밀어내는 모습이 보였지만...
별 소용이 없는 모습이었다.
'...그 방법밖에 없겠어.'
그렇게 중얼거린 세레나는 탑을 향해 달려나갔다.
“망할 자식!!!”
광장의 학살을 성벽 위에서 보고 있던 젊은 남성 엘프가 현재 상황이 분한지.
피가 나오도록 주먹 쥔 손을 부들부들 떨다가 외쳤다.
"젠장!!! 모두 본드래곤을 향해 발리스타를 돌려! 저 녀석을 지상으로 떨어트린다!"
“미안하지만, 그런 짓을 하면 모두 죽을 텐데?"
"?"
어느 사이에 성벽 위로 올라온 네메시스는 그렇게말하고는 엘프를 지나쳐 걸어가더니,
밖을 향해 엄지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눈이 있으면 밖을 봐라.”
“....맙소사!!”
거대한 본 맘모스 몇 마리가 거대한 위용을 드러내며 실버 게이트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고,
그 옆에는 해골 군마를 탄 죽음의 기사들이 서 있었다.
또 그 뒤로 중갑옷을 입은 스켈레톤 수백이 서 있었으며,
리치로 보이는 로브 입은 언데드는 공중에 뜬 채로 군세의 위에 있었다.
그 뒤로는 좀비나 구울 등의 저급 언데드가 모여 지상을 검게 물들이고 있었다.
죽음의 군단이 실버 게이트를 향해 점점 다가온다.
거리로는 1km 앞.
지금이라도 막지 않으면 곤란한 상황이었다.
"지금 발리스타를 본드래곤에게 돌리면,
저기 오는 언데드들에게 실버 게이트는 함락당할걸?"
"..하지만!!!"
“막지 않으면, 너희는 모두 죽어.
본드래곤이 날뛴다고 하들.
저것들이 실버 게이트의 정문을 부수고, 들어오는 상황보단 나아.”
하나가 내부에서 날뛰는 것과 다수가 날뛰는 것.
어느 쪽이 나을지는 누구라도 알 수 있었기에,
병사들의 지휘관은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제길!!! 다들 위치 유지해!정문을 부술 수 있는 본 맘모스부터 노린다."
네메시스는 그들이 발리스타 장전을 시작하자. 고개를 끄덕이더니 성벽 바깥을 향해 걸어갔다.
"잠깐!? 인간! 너는 무슨 일을 하려고?!"
"난 이곳의 정문을 막아주겠어."
"네? 잠깐! 여긴 내려가는 계단이 없어!
게다가 저 언데드들을 막겠다니?!
너 혼자서 뭘 하려고!?
잠깐! 멈춰! 멈추라고!!"
그의 대답에 엘프는 의아해했으나,
네메시스는 대답하기도 귀찮은 듯이 성벽 위에서 그대로 뛰어내렸다.
그는 곧 어렵지 않게 정문 앞에 착지하더니,
자신의 앞까지 다가온 수많은 언데드들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아아! 난 왜 이렇게 귀찮은 일을 승낙했을까?”
아무래도 다시 만날 플로라에 대해 기대감 때문이겠지.
네메시스는 투덜거리며 두 손을 주먹 쥐었다.
눈앞의 저급 언데드들을 상대로는 무기 따위는 불필요했기 때문이었다.
크르르르르릉!
본 맘모스 뒤쪽에서 좀비 하이에나들이 배고픈 듯이 천천히 걸어 나오며,
침이 뚝뚝 떨어지는 부패한 이빨을 드러냈고 그 모습에 네메시스는 그들을 향해 웃어 보였다.
“저기 있잖아...
그냥 왔던 길을 되돌아가 주면 안 될까?”
케에에엑!!!
설득을 해보려는 네메시스였지만.
좀비가 된 하이에나는 그를 보며 식욕을 못 찾겠다는 듯이 그대로 공중으로 뛰어올라 달려들었다.
그러자 네메시스는 공중에서 하이에나의 목을 낚아채더니,
자신을 어떻게든 물어뜯으려는 듯이 이빨을 드러내는 좀비 하이에나를 보며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몰려온 것들 대부분이 저급 언데드라 설득도 무리인가...?
그렇다면 별수 없겠네.
지휘관으로 보이는 고급 언데드가 날 찾아올 때까지 날뛰어 주는 수밖에...”
그는 자신의 왼손으로 좀비 하이에나의 머리를 잡으며,
주위에 몰려든 언데드들을 쭈욱! 훑어보았다.
“본능만이 남아있는 너희들에게 굳이 소개할 필요는 없는 것 같지만...
이건 우리 괴물들의 전통과도 같거든.
난 서열 1위 괴물. 탐식의 네메시스야.
내 이름을 아는 존재가 있다면 당장 물러나고,
아니면 이곳에서..”
촤아아아아아앗!!!
잠시 말을 멈춘 네메시스는 태하이에나의 머리를 잡고는 그대로 뽑아버렸고,
그러자 썩은 고기가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굳어진 피가 지면을 향해! 뚝뚝! 떨어져 내렸다.
이렇게 좀비 하이에나의 머리와 몸통을 영영 이별시킨 네메시스는 좀비 하이에나가 완전히 움직임을 멈추자.
좌우로 던지고는 언데드들을 향해 미소 지었다.
“...모조리 죽어라.”
그 말을 끝으로 네메시스는 언데드들을 향해 번개처럼 달려나갔고,
그러자 산자에 대한 분노만이 남아있는 저급언데드들은 그를 향해 달려들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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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헉! 헉!.... 왜 이렇게 높아!?"
세레나는 탑의 옥상에 도착하자마자.
숨을 헐떡이더니 자기가 올라온 계단을 향해 시선 돌렸다.
‘40층.’
“제길! 마법진도없이 전부 계단인데? 앙!?
누가 이렇게 설계했어!?”
세레나가 건물을 설계한 존재를 저주하면서 숨을 고르자.
그녀는 살겠다는 듯이 지상을 내려다보았고.
그러자 엘프들과 인간들을 습격하는 본드래곤의 거대한 등 뒤가 보였다.
다행히 본드래곤은 탑 주변에서 떠날 생각은 없는 것으로 보였다.
‘휴우.. 본드래곤의 약점은 오직 한 가지뿐...
육체를 유지하는 데에 필요한 마나인 드래곤하트.
그것을 부숴야 해!’
쿠오오오오오오오!
세레나는 등 뒤에 있는 화살을 꺼내 활을 메겼다. 그녀는 최대한 숨을 고르더니,
날뛰고 있는 본드래곤의 갈비뼈 틈에서 푸르게 빛나고 있는 거대한 드래곤 하트를 향해 정조준하였다.
"제발 맞아라!!!"
세레나. 그녀에 대한 실버 게이트 엘프들의 기록에서...
마법과 정령술에 재능 무. 신체능력은....
실버 게이트 출신의 엘프들 중 최상위였다!
그녀의 화살은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본드래곤의 갈비뼈 사이를 통과하여,
푸른색의 드래곤 하트에 정확히 박혔다.
그러자 본드래곤은 괴로운 듯이 공중에서 몸을 뒤틀더니,
곧 지상을 향해 추락해가기 시작하였다!
"아싸!"
하지만 그것뿐.
지상을 향해 추락하는 본드래곤이 곧 정신을 차린 듯이 날갯짓을 하여 하늘로 날아올랐다.
본드래곤은 자신에게 고통을 준 존재를 탑의 옥상에서 발견하였다.
그 때문에 본 드래곤의 텅 빈 눈구멍과 옥상에 있던 세레나의 눈이 그대로 마주쳤다.
“........”
[.........]
그러자 숨 막힐 정도의 정적이 둘 사이에 스쳐 갔다.
"잠깐만?! 미안해!!! 내가 사과할 테니까...
날 못 본 척해주면 안 될까...나?!"
쿠오오오오오!!!!!!!!!!
세레나의 외침에 본드래곤은 탑의 옥상을 향해 숨을 들이쉬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드래곤하트가 있기에 가능한 드래곤족의 고유한 기술이 그곳에서 재현되기 시작하였다.
그 모습을 보자마자 세레나는 황급히 뒤돌아서 달리기 시작하였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뻔했기 때문이었다.
"드래곤 브레스냐!!!!!! 꺄아아아앗!?!?!?!?"
그녀의 절망 어린 비명과 함께 본드래곤에게서 나온 드래곤 브레스가 세레나가 있던 옥상을 그대로 휩쓸어버리기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