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화 〉제 7화 그날 저녁
그날 저녁. 언데드들을 막아냈다는 사실에,
어두운 한밤중인데도 광장에는 수십 개의 불빛이 빛나고 있었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승리했다는 사실 때문인지.
흥분하여 대화하고 있는 엘프들의 사이로 검은색 무언가는 조용히 지나갔다.
스르르르르....
필멸자들은 인지할 수 없는 존재처럼 그림자와 같이 움직이는 무언가는 교황이 있는 탑 앞에 멈추어 서더니 그 내부를 향해 빨려 들어갔다.
사박. 사박.
그림자가 도착한 곳은 인간의 교황이 현재 거주하고 있다고 알려진 탑의 최상층의 방.
인간들의 교황이 있는 곳인 만큼. 삼엄한 경비가 이루어져야 하는 곳이었지만.
어째서인지 경비는 보이지 않았고,
이 상황에 그림자는 ‘역시나...’하고 중얼거리더니, 그곳의 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 방 안에 있는 책상 위로 촛불과 호박색으로 빛나는 황금빛 눈을 지닌 인간들의 '교황'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서 와. 4세계 괴물들의 왕.”
“.....”
처음부터 네메시스가 올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모습.
아니. 애초에 그의 방문 정도는 알 수밖에 없었겠지.
켈렌트의 속성인 빛의 속성은 미래의 일을 예지하는 것이 가능했고,
이 때문에 이 상황도 예지로 미리 알고 있었을 것이다.
“흐음. 표정이 그다지 좋지 않네. 옷이 더러워져서 그래? 네메시스?”
천지 난만한 아이의 모습으로 켈렌트가 말을 걸자.
네메시스는 표정을 구기더니, 준비되어있는 의자를 당겨 그 안에 앉았다.
“그녀의 상태가 왜 그런지 말해라! 빛의 주신!”
플로라는 ‘깨어났다’.
하지만 그것뿐. 그녀는 다시 세레나의 의식 밑으로 가라앉아 버렸고,
현재 세레나의 육체에 있는 존재는 세레나 본인이지. 플로라가 아니었다.
이 사실에 네메시스는 당장이라도 찢어발기겠다는 듯이 으르렁거렸고,
켈렌트는 그의 경고를 웃어넘겼다.
"그 이유를 말하기 전에 소개해줄 엘프가 있어.
너도 아는 얼굴일 거야."
짝! 짝!
빛의 주신 켈렌트가 손뼉을 치자.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옆의 공간이 일그러지더니,
지팡이에 의지하는 늙은 엘프가 느린 걸음으로 그곳에서 걸어 나왔다.
“만나서 영광입니다. 4세계의 왕. 네메시스님이시여.”
“...엘더 엘프군.”
'엘더'. 일반 엘프들을 지휘하는 자들로 인간의 성주와 동급인 계급이다.
엘프의 엘더는 살아온 세월로 그 자리를 이어받는 존재들이며.
그녀는 실버게이트의 주인이나 다름없는 엘더 엘프였다.
“그렇습니다. 왕이여.”
“.....무슨 일이지?”
네메시스의 기억에도 있는 엘프였다.
천 년 전 전쟁에서 일부 엘프들이 생존을 목적으로 4세계 괴물들에게 항복 의사를 밝혔다.
웬만해선 항복은 받아주지 않고 죽이는 괴물들이었지만...
서열 2위 플로라가 이 행성 엘프 출신이다 보니,
아무리 666의 괴물들이라도 그들에게 함부로 손을대지 못하였고,
마침 제정신을 차린 네메시스가 그들의 항복을 받아주었다.
그 무리에서 눈앞의 엘더 엘프가있었다.
하지만 분명...
네메시스 기억에는 꼬마였을 텐데?
이 사실에 새삼 필멸자가 순식간에 늙는다는 것을 느꼈다.
영원을 걸어가는 괴물들과 불멸자들에 비하여,
필멸자는 그들이 눈 깜짝거리는 시간 동안 태어나,
순식간에 늙고 바로 죽어버리는 존재들이었다.
“네메시스님. 이 실버게이트가 왜 생긴 것인지 알고 계십니까?”
“......”
네메시스도 모른다.
천 년 전 전쟁에서 생겨난 언데드들을 막는 요새인 것은 알지만.
엘프가 왜 이곳을 막고 있는지는 네메시스의 관심 밖이었다.
‘엘프는 숲의 종족이다 보니,
언데드들이 나오는 오염된 땅은 불리할 텐데?’
생각해보니 이상한 일이었다.
언데드들을 막을 거면.
차라니 인간이 담당해서 막는 것이 훨씬 나을 것이다.
“저는 아직도 ‘그때’를 기억합니다.
당신에게 파멸하기 직전의 드림랜드를..
저희 일족은 살아남기 위해서,
4세계 괴물들에게 투항했기때문에 살아남았죠.
하지만 전쟁이 끝난 후.
우리는.....”
늙은 노년의 엘프는 숨 쉬는 것조차 힘든 듯이 기침을 하였고,
잠시 후. 숨이 가라앉자 다시 말을 이었다.
“이곳에서 언데드를 막는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지금까지 말이죠...
그것도 배신자란 명목으로 말입니다..”
“날 원망하는가?”
네메시스는 엘더 엘프의 모습에 입안이 씁쓸한 것을 느꼈다.
불멸자인 각 세계의 주신들과 괴물인 4세계 괴물들.
이 두 세력 간의 전쟁인 ‘천 년 전 전쟁’은 수많은 피해자들을 만들어냈고,
결국 ‘휴전’으로서 마무리되었다.
그 결과. 배신자들의 처우가 어떻게 될지는 뻔했다.
지금까지 핍박을 받고 살아왔겠지...
그런데도 살아있는 것을 보면 빛의 주신 켈렌트가 지금까지 이 엘프들의 뒤를 봐주고 있었다는 소리였다.
플로라에 대한 켈렌트의 나름의 예우였겠지.
그녀가 아니었으면.
1세계는 4세계 괴물들의 발톱과 이빨에 불타버렸을 테니...
게다가 플로라의 환생을 위해서라도,
이것은 켈렌트에겐 필요한 작업이었을 것이다.
"일족의 선택을 원망하지 않습니다.
그 덕에 많은 일족들을 살릴 수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이제는... 쿨럭!쿨럭!"
늙은 엘프가 말을 하기 힘든지. 기침을 심하게 하자.
빛의 주신 켈렌트는 손가락을 튕겼고,
그러자 그녀의 주위에 빛의 구들이 모여 그녀를 치료하였다.
“지쳤습니다.
이곳에서 언데드들을 막는 일도.
알게 모르게 동족들에게 미움을 받는 일도 말이지요.
하지만...
빛의 주신이 찾아오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당신의 연인이자...
세상을 구한 성녀가...
저희 일족에서 태어난다는 것을...
그렇기에 지금까지 버틸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니 그 아이를 잘 부탁드립니다. 괴물들의 왕이시여.”
“이제 어떻게 할 거지?”
“실버게이트는 사라질 것입니다.
언데드들의 침공으로 요새가 오염된 것을 빌미로,
이제 저희는 이곳을 떠날 수 있게 되었지요.
죗값을 치른 거지요.
엘프들의 국가인 푸른달로 가고 싶으나.
여왕님께서 저희를 미워하는 만큼.
저희는 그곳에 발을 내디딜 수가 없겠지요.
따라서... 앞으로는 인간들과 섞여 살아갈 생각입니다.”
주신의 판단 아래 죗값을 치렀다.
하지만 하이 엘프라는 수명이 유달리 긴 엘프들은실버게이트의 엘프들이 한 일을 똑똑히 기억하며 살아있었다.
그들은 4세계 괴물들에게 붙은 동족을 절대 용서하지 않겠지..
그렇기에 엘더는 인간들에게로 가려는 것이었다.
“이렇게 하여 이들의 죄는 끝났어.
1세계의 지배자이자. 창조주의 직계 자식으로서 내가 인정할게.
그러니 이 일을 기억하는 것이 좋아.
또 이런 경우가 생길 수가 있잖아? 안 그래?”
“가잖은 협박이군.”
네메시스의 검은 눈동자가 맹수와 같이 켈렌트를 노려보았다.
“플로라만 아니면...
소멸했을 놈이?”
“이게 협박이라고 생각해?
난 조언이라고 생각하는데.
서로 얼굴 붉힐 일은 없는 것이 좋지 않겠어?”
“그럼 네가 한 장난질이나 말하지 그래?
난 플로라의 상태에 관해서 물으러 온 것이지.
네놈이랑 말장난하러 온 것이 아니야.”
“흥. 그러지 않아도. 말할 참이었어.
우리 주신들은 괴물들과 계약한 후.
죽어버린 플로라를 부활시키기 위해,
수백 년 동안 윤회의 궤에 그녀를 집어넣고자 하였지만..
필멸자들이 이용하는 윤회의 궤로는 플로라의 힘을 모두 담을 수가 없었어.
애초에 그녀는 괴물이었으니 말이야.
이 때문에 난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어.”
“그래서...?”
“그녀의 기억과 힘을 4개로 나눠서 따로 봉인시켰어.”
그 말이 끝나자. 얼어붙는 듯한 살기가 방안을가득 채웠고,
네메시스의 주위에 검은 오오라가 감돌기 시작했다.
“내 말은 아직 안 끝났어. 네메시스.”
“.....”
“난 너희 괴물들과의 계약을 확실히 지킬 테니까. 걱정하지 마.
첫 번째 봉인은 방금의 전투로 풀렸을 거야.
세레나라고 불리는 엘프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기억이 익숙해지겠지.
그리고 기억을 되찾아갈수록 그녀는 플로라가 될 거야.”
켈렌트는 방 안의 공기가 다시 따뜻해지는 것이 느껴지자. 기지개하였다.
“후우~하! 이제 좀 살만하네.
남은 봉인들은 그녀의 과거 기억들과 관련된 곳을 가면 알아서 풀리도록 해두었어.
그리고...”
검은 천장에 밝은 빛이 모이더니,
서서히 책상 위로 내려앉았고 빛이 사라진 이후. 양피지 한 장이 놓여있었다.
“그 지도에 위치를 표시해두었지.
플로라와는 사이가 안 좋다면서?
그렇다면 기억을 회복하기 전에 둘이서 1세계에서 신혼여행이나 하고 가. 망할 괴물아.
이걸로 우리 주신들은 너희 괴물들과의 계약을 지켰어.”
끄덕!
신혼여행이란 말에 상당히 분위기가 부드러워진 네메시스의 모습에 빛의 주신 켈렌트는 질색하는 표정을 짓더니,
꼴도 보기 싫은 듯이 몸을 돌렸고 곧 빛의 입자가 되어 그곳에서 사라졌다.
“네메시스님이시여..”
“?”
“우리 일족같이 고통받는 자들이 아직 있을 겁니다.”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는 잠시 숨을 고르더니, 네메시스와 시선을 마주쳤다.
“그들 중..
4세계로 가고 싶어 하는 자들이 있으면 데려가 주십시오.”
엘더의 말에 네메시스는 고개를가로저었다.
“...그곳은 소풍하러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엘더.”
“저도 그곳이 얼마나 위험한 곳인지는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4세계에 투항한 자들은,
현재 죽는 것보다 힘든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들 중 몇 명은 아직도 쫓기고 있으며,
천 년 동안 추격자들을 피해 도망 다니면서 4세계로 가길 희망하는 자들입니다.
배신자들은...
살아남지 못하기 때문이죠..”
“..........”
그 말에 네메시스는 고민하더니 곧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4세계로선 협력자들을 구해내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다만... 네메시스는 한 가지 의문이 있는 듯이 엘더를 바라보았다.
“플로라....
아니. 세레나는 이곳에서 행복하게 자랐는가?”
“그분은 환생체로서 만들어진 존재이기에 부모는 없지만...
다른 엘프들과의 차별이 없도록 지금까지 키웠습니다.”
그 말에 네메시스는 미소 짓더니 엘더의 부탁을 받아들였다.
“너의 제안을 승낙하겠어. 엘더여.”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4세계의 왕이여....”
스윽! 스윽!!
엘더는 자신의 미련이 해소되었다는 듯이 예를 갖추며 사라졌고,
그러자 네메시스의 앞에 빛의 입자가 모이더니 하나의 문장으로 완성되었다.
빛의 주신 켈렌트가 네메시스에게 보낸 전언이겠지.
네메시스는 흥미롭다는 듯이 그것을 바라보았다.
[아참! 깜박하고 말하지 않은것이 있어서 이 전언을 보낼게. 괴물들의 왕.
네가 플로라의 두 번째 기억을 찾으러 가기 전에,
나를 섬기는 국가인 신성제국으로 방문해줘.
너에게 줄 선물이 있으니까.
후회하지는 않을 거야.]
“알겠다. 빛의 주신. 켈렌트.”
네메시스의 대답에 빛의 입자로 쓰인 문장들은 제 할 일을 다 했다는 듯이 허공에 녹아내리며 사라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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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세계에선 구원 따윈 존재하지 않아.
하지만..
내가 그분을 처음으로 본 순간.
이곳에도 구원은 존재한다고 생각했어.
우리들의 왕... 네메시스님....
그분이 우리의 구원이야.
-4세계 서열 13위 '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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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들의 나라 중 소국에 속하는 아스카나.
그곳은 주위 국가에 비해선 영토가 작은 소국이지만,
과거 유물을 통한 발달한 마법으로 인해 다른 나라와 균형을 이루고 있는 곳이었다.
그곳에 있는 마법의 탑 최상층에 로브를 깊게 눌러 써 얼굴이 안 보이는 남자가 편지를 읽고 있었고 옆에는 월검향이라고 불린 남자가 자신의 도검을 조용히 손질하고 있었다.
“제길! 실버게이트가 무너지지 않았어!
리치 녀석... 달의 책의 사본을 포기한 건가?
아니면 누군가 언데드들을 막아낸 건가? 이러면 곤란한데..”
“흐음? 귀 뾰족한 놈들이 막아냈다는 건가?”
“그래! 설마 본드래곤까지 날아올랐는데.
그들이 막아낼 줄은...
엘프 전력이 내 예상보다 높은 건가?
아니면... 녹색의 성녀가 본래의 힘을 써버린 것일지도...”
“......”
월검향은 혼자만의 세상에 빠져 고민하는 마법사의 모습을 보고는 고개를 내젓더니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 그는 이세계로 반강제적으로 끌려와서, 처음 만나게 된 여성을 생각했다.
그녀는 옥과 같이 빛나는 은빛의 눈동자와 양털처럼 아름다운 백색 날개 달린 아름다운 존재로 죽어가던 월검향을 데려와 치료해주었고.
그녀의 손에서 나온 성스러운 빛은 월검향의 망가진 진기를 안정시켰다.
그러한 도움이 없었다면. 이세계로 넘어온 충격으로 월검향은 그대로 죽었을지도 몰랐다.
'람히르.
조만간 너의 얼굴을 보러 가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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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레나는 몸을 움직이기 어려울 만큼 나른했다.
자신이 본드래곤과싸운 모든 것들이 꿈만 같은 기분이었다.
본드래곤 위로 뛰어내렸다.
쿵.
본드래곤의 브레스를 피했다.
쿵.쿵.
절망보다는 싸우겠다는 투기가 생겼다.
본드래곤에게 마법에 그녀의 몸이 날아가는 순간....
쿵.쿵.쿵. ■■■■■■■■■■■■■!!!!!!!!!
세레나는 막대한 두통과 함께 누워있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자신의 머리를 붙잡았다.
숙취처럼 몰려드는 통증에 머리가 깨질 것 같이 울리고 있었다.
그렇게 잠시 후. 어느 정도 두통이 가라앉자.
그제야 그녀는 주위 상황을 볼 여력이 생겼다.
“윽! 이곳은.... 어디?”
세레나가 시선을 아래로 내리자.
자신의 몸에 피투성이 붕대가 감겨있었고 상의는 벗겨져 있었다.
그녀가 현재 누워있는 침대는 인간들이 사용하는 짚으로 만든 것이었다.
"...?"
왠지 모르게 오른손이 따뜻했다. 그녀가 원인을 찾아 고개를 돌리자.
네메시스가 세레나의 오른손을 두 손으로 잡은 채로 불편하게 잠을 자는 것이 보였다.
화앗!
“네. 네메시스!? 당신이 여기에 어떻게?
아니 그보다 여긴 어디!?”
“으음? 일어났어? 세레나?”
세레나가 현재 상황에 정신없이 놀라면서, 상황을 인지하느라 두리번거릴 때.
네메시스가 일어나자. 그녀는 곧 자신의 옷이 벗겨져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옆에 있는 꽃병을 두 손으로 들고는 네메시스의 머리에 내려찍었다.
퍼억! 쨍그랑!
"꺄!? 깨어나지 말아요! 영원히 자버려요!!!"
"자. 잠깐..! 설명 좀 하자...."
과일 바구니를 투척했다.
그러자 네메시스는 어떻게든 상황 설명을하기 위하여 그것을 피해냈지만,
그다음으로 날아오는 초고속 베개에 치여 그대로 창문으로 튕겨 나갔다.
쨍끄랑!!!
“으아아아아앗!!!!”
쿠웅!
세레나가 부서진 창문으로 황급히 얼굴을 내밀자.
네메시스는 그녀의 기습에 착지도 제대로 못 한 모습으로 지면에 추락해있었고,
주위에 지나가는 인간들은 현재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어리둥절하면서 네메시스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자 그녀는 미안한 듯한 목소리로 물었다.
“네메시스.... 괜찮아요?”
“상황 설명은 들어줘... 세레나...”
잠시 후. 세레나는 옷을 갈아입은 채로 침대 위에 걸쳐 앉아 있었고,
네메시스는 목이 뻐근한지. 자신의 손으로 목을 마사지하고 있었다.
그 모습에 세레나의 얼굴이 부끄러움으로 붉게 물들여졌다.
“그러니까... 이곳은 인간들의 마을인가요?”
“응. 정확히는 실버게이트에 가장 가까운 인간 마을이야.
네가 살고 있던 실버게이트에 있는 엘프들은 언데드들의 시체에서 나오는 독 때문에 그곳을 떠났고,
그 결과. 현 실버게이트는 인간들이 와서 방어하기 시작했어.
언데드들의 시체에서 나오는 사독은 인간보단 엘프들에게 더 치명적이니까 말이지.”
“...그럼 우리 일족은요?”
“실버게이트의 엘프들은 이 마을 외곽에 현재 터를 잡고 거주하는 중이야.”
“왜죠? 우리 엘프들의 국가인 ‘푸른달’로 안가고?”
네메시스의 말이 세레나는 이해가 안 된다는 듯이 되물었고,
그러자 네메시스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푸른달'에서 실버 게이트에 사는 엘프들이 오는 것을 거절했어.
엘프 왕국의 자칭 고귀하다는 하이엘프들이 와서는 언데드를 죽이는 천한 실버게이트의 엘프들이 '푸른달'에 발을 들이면.
자기들의 국가인 ‘푸른달’이 오염될 것이라는 웃기지도 않는이유를 말하고는 그대로 떠났어.
이 때문에 세레나의 일족들은 분노했지만.
갈 곳이 없으니 현재 이 마을에 거주하는 중이야.”
네메시스의 설명이 끝나자.
세레나의 귀가 그녀의 기분이 대변하는 듯이 아래로 처지더니,
그녀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믿을 수 없어요! 우리가 무엇 때문에 이곳에서 언데드들을 막았는데!!!
저희가 실버게이트에서 언데드들을 막지 않았으면!
그곳의 언데드들이 ‘푸른달’의 엘프들을 죽였을 텐데!
우리에게 이런 대우를 한다고요?
죽어가면서 자기들을 지킨 우리들을?!
그것도 오염된다는 이유로? 하!!!!”
세레나는 분노하면서 외쳤지만, 곧 자신의 무릎에 얼굴을 파묻더니 흐느꼈고.
힘없이 우는 세레나의 모습에 말없이 등을 두드려주는 네메시스였다.
“흑.....흐흑!”
“세레나가 잘못한 게 아니야.
너희의 고마움을 모르는 푸른달의 잘못이지. 그렇지?”
“그럼... 저희 일족은?”
“푸른달로 못가니,
앞으로는 이곳에서 인간들하고 함께 사는 수밖에...
엘프들의 국가는 푸른달뿐이니까 말이지.”
“....흐..흐흑 흑흑흑!!”
서러워하는 세레나의 모습에 네메시스는 당황하더니 조용히 그녀를 안아주었다.
그러자 세레나의 울음소리가 점점 줄어 들어갔다.
“...흑...흑..”
“저기... 세레나. 한 가지 제안이 있는데...
들어보지 않겠어?”
"?"
그는 세레나의 눈물을 닦아주면서 말을 시작하였다.
“나랑 같이 여행하지 않겠어? 부탁이야.”
“여... 여행요?”
실버게이트의 토박이로 지내온 세레나는 예상치 못한 말이라는 듯이 기겁하며 네메시스를 바라보았다.
“응. 현재 세레나는 마음이 많이 상했잖아..?
나랑 함께 드림랜드를 여행하면서 기분을 달래면 어쩔까 싶어서.
드림랜드에는 세레나가 보지 못한 다양한 곳이 있잖아?
여러 곳을 여행하면 기분이 많이 나아질 거야.
어쩌면 정착할 곳을 찾을 수도 있고.”
네메시스는 그 말과 함께 세레나를 향해 웃어 보였다.
“마침 내가 갈 곳이 생겼거든.
그곳에 가는 길에 겸사겸사 같이 가는 것이 괜찮아서 그런데..
나와 함께 가주겠어? 세레나?”
"....좋아요."
네메시스의 제안에 세레나는 볼을 붉히더니 곧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만큼 그녀가 그동안 지켜온 푸른달에 대한 실망이 크다는 소리겠지.
그러자 네메시스는 속으로 미소 지으며, 세레나를 강하게 껴안았다.
“앞으로 잘 부탁할게!”
‘네가 다시 나에 대해기억하게 된다면...
넌 날 증오하겠지만...
난 너를...’
네메시스의 온화한 미소가 뒤틀려졌다.
[영원히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그것은 천 년이란 시간이 흘러도.
절대 사라지지 않는 네메시스의 집착이자...
사랑이란 이름의 ‘광기’겠지...
그녀를 위해 세상을 불태워야 한다면.
네메시스는 그러고도 남을 괴물이었다.
다른 존재가 이러한 모습을 본다면 모두 미쳤다고 칭할 것이다.
하지만...
‘다시는...
네가 고통받는 것을 보지 않겠어.
난 반드시 널 지킬 거야.
만약 ‘그런 일’이 또다시 일어난다면...’
네메시스에게 안긴 세레나는 보지 못하겠지.
그 순간. 네메시스의 그림자가 본래의 그의 모습을 비추었고,
그것은 ‘8개의 날개를 지닌 거대한 괴물’의 형상이었다.
‘널 상처 입힌 존재에게...
죽는 것보다 괴로운 것을 선사해주도록 할게.
사랑해..
널 너무나 사랑해. 플로라...’
세레나는 그런 네메시스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가 자신을 껴안은 채로 놔주지 않자. 손가락으로 뺨을 긁적이더니 곧 입을 열었다.
“저.. 으음.. 놓...놓아주시겠어요?
다... 답답해서.”
“아...아..! 미안해. 세레나!”
그 말에 네메시스는 상념에서 겨우 벗어나.
세레나한테서 떨어졌고 그의 행동에 세레나는 부끄러운 듯이 고개를 돌릴 뿐이었다.
그러자 둘은 서로 얼굴을 붉힌 상태로 어색한 침묵만을 남겼다.
‘이상한 남자야.’
세레나는 자신을 달래주고 도와주는 네메시스를 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그를 알게 된 시간은 겨우 1주일밖에 안 되는데도...
어째서 자신은 네메시스에게 이토록 기대고 싶은가?
그에게 기댄 적이 있는 듯한 그리운 감각이 그녀의 마음속에서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내가 이 남자와 오랜 시간 함께한 듯한 기분이 들어...’
이게 사랑인 걸까?
세레나는 스스로에게 그렇게 말을 던졌지만.
그것은 확실하지가 않았다.
분명한 점은...
‘당신을 보면 왠지 모르게 편안해져.’
그렇다면 네메시스를 따라 드림랜드를 여행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어쩌면... 깊은 사이가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세레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네메시스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이로 인해. 둘 사이에 묘한 분위기가 흐르는 순간...
휘유! 짝짝!
"오오! 네메시스~!, 세레나~!"
방해꾼이 나타났다.
현재 상황에서 휘파람과 손뼉을 친 말리고스가 이불 속에서 기어 나오며 외쳤다.
“말리고스?”
“파란 도마뱀?”
세레나와 네메시스의 시선이 이불 속에 있던 말리고스에게로 사이좋게 고정되었다.
잠깐...!? 이불 속이라고!?
네메시스와 세레나는 순식간에 하나의 결론을 내렸다.
이 망할 파란 도마뱀이 이불 속에서 세레나의 알몸을 훔쳐보고 있었던 것이었다!
“....”
“....”
세레나의 표정과 네메시스의 표정이 사이좋게 구겨졌다.
“말. 리. 고. 스!!!!!!!”
“자... 잠깐만!? 네메시스!!! 으아아앗!!!!”
그렇게 파란 도마뱀의 비명이 방안에 울려 퍼지게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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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리고스. 잡식성. 녹색의 몸체는 신축성 매우 뛰어나며,
말리고스의 분홍빛 날개는 후에 옷을 제작할 때에 사용하면 좋을 것으로 보인다...
어차피 말리고스가 불멸자인 주신인 만큼. 손쉽게 재생이 되겠지.
그 외로 몸체의 크기 조절이 자유로우며,
바퀴벌레마냥 좁은 곳에 몸을 비집고 들어가는 습성이 있다.
-네메시스의 말리고스에 대한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