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2화 〉제 21화 기억의 파편. (22/127)



〈 22화 〉제 21화 기억의 파편.

‘ㅅㅁㅅa' 'a....z' 'ㅁㅇㄴ...’

세레나 내부의 기억결손은 심했다.
그녀의 기억은 부수어져 버린 유리 조각처럼 규칙 없이 흩어져 있었고,
그 안에 있는 커다란 기억의 공백은 아직 찾지 못한 기억들을 보여주고 있었다.
작디작은 조각으로 나뉘어, 민들레 씨앗처럼 떠다니는 기억의 파편들.
네메시스는 그러한 기억들에 손을 뻗었다.


“.....”


남아 있는 기억의 퍼즐을 이리저리 옮겨 맞추어갔다.
그러던 도중. 맞춰진 복구된 작은 기억에 네메시스의 시선이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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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

‘어째서......’


기억 속의 플로라의 얼굴에 피가 튀었다.
그것은... 그녀의 피가 아닌 다른 누군가의 피였다.
그녀는 믿을 수가 없다는 표정으로,
앞에 있는 흑발의 남자를 망연자실하며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자 남자는 그런 그녀의 표정이 마음에 드는지. 차갑게 미소 지었다.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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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메시스는  기억의 일부를 읽은 후.
표정이 급격히 굳어지더니.
잠자고 있는 세레나의 이마에 대고 있던 손을 급하게 뺐다.

‘하필...
이때의 기억이라니..’


네메시스는 플로라의 기억 속의 과거 자신을 생각하더니,
곧 고개를 흔들어 잡념을 지우고는 세레나를 내려다보았다.
그녀는 풀숲을 연상시키는 에메랄드빛 머리카락과 미의 종족이라는 엘프답게 이목구비가 뚜렷하였고 아름다웠지만...
하지만 현재 그녀는 악몽을 꾸는 듯이 눈썹을 찌푸리며, 몸을 뒤척이고 있었다.
세레나가 조금씩 뒤척일 때마다.
네메시스는 그녀가 깨지 않게 조심하며 그녀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플로라가...
나에 대한 기억을 찾게 되면...
날 용서할 수가 있을까?’


그녀는 아직 네메시스가 어떤 존재인지 모른다.
그저 강한 인간 정도로 여기려나?
하지만... 네메시스는 ‘괴물’이었다.
필멸자인 그녀로선 결코 이해하지 못할...
영혼을 먹고 사는 괴물이었다.
4세계에서 끊임없이 피를 손에 묻힌 결과.
그곳의 왕이 되어버린 괴물...
그렇기에 그녀가 기억을 전부 찾은 후에는.
그의 정체에 실망하며 떠나버릴지도 몰랐다...


“설사 그렇다고 하더라도...
때가 되면. 알려줄게. 내 사랑...”


그러한 진실을 세레나에게 숨길 수도 있었다.
그녀에게 달콤한 거짓말을 할 수도 있었다.
그녀가 엘프로서의 수명이 다하는 그 순간까지도..
네메시스는 변함없이 그녀의 곁에서 지켜줄 수도 있었다.
늙지 않는 인간이라는 웃기지도 않는 변명을 하면서...
하지만...
자신은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속이는 것은 천  전이면 충분하다.
더 이상. 그녀를 속이거나, 진실을 숨겨서는...  되었다.
그것이 네메시스가 그동안 기다려온 그녀에 대한 예우이자...
자신이 그녀에게 지은 ‘죄’였으니까...
네메시스는 거기까지 생각하고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더니,
그녀의 옆에 잠든 벨라에게 시선을 던졌다. 그녀는 잠버릇이 심한지.
이불을 걷어찬 채로 곤히 잠들어 있었는데.
그녀의 속옷 사이로 보이는 맨살은 매우 선정적이었고,
일반적인 남자라면 흥분해서 가슴  장면이었다.

“감기 들어. 벨라.”

하지만 네메시스는 그녀에게 다가가 이불을 덮어주고는,
조용히 방을 빠져나가 자신의 침실로 향했다.
내일 블러드 토너먼트를 빨리 끝내려면 지금 자두는 것이 좋았다.
내일의 상대가 누구인지는 몰랐지만...
네메시스는 언제나 그랬듯이 최선을 다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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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터에 공기를 가르는 검의 소리가 울려 퍼졌다.
검이 휘둘러질 때마다.
공터에는 청명한 소리가 울려 퍼졌고,
휘둘러지는 내내 푸른 마나가 검에서 뚜렷하게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월검향이 펼치는 검무는 아름다웠고,
왠지 모를 씁쓸함이 그 안에 깃들여 있었다.


휘이이익!


얼마나 휘둘렀을까. 월검향은 표정을 찡그리더니,
검무를 멈추고는 시선을 자신의 배에 향했다.

“하아... 하아...”

월검향의 배의 상처가 거친 움직임에 덧났는지. 붉은 얼룩이 번지고 있었다.
그는 잠시 자신의 상처를 바라보더니 붕대를 강하게 조였고,
그 직후. 다시 검을 휘둘렀다.
자신이 하고 있는 연습은 나약했던 자신을 지금에 이르기까지 이끌었던 가장 믿을만한 그의 친구였다.

“부족해....”


그럼에도 부족했다. 그때 미에네 마을에서 만났던 남자를 이기기에는 너무나도 부족했다.
그를 상대로 언제 다시 검을 나누게 될지 몰랐지만,
언젠가는 만나게 될 상대였다.
그렇기에 월검향은 검을 휘둘렀다.
 상대를 다음에 반드시 베기 위해서.
그리고...

“.......”

월검향은 무슨 생각이 났는지. 움직임을 그대로 멈추었다.

“내일이군...”

내일이면 블러드 토너먼트가 끝나고 람히르와 함께 다닐 수 있게 되는 건가?
이쪽 세상의 검사는 그때 만났던 남자를 제외하고는 모두 자신에 비해 너무나도 약했다.
마법이란 것에 의존하는 세계이기 때문일까?
오로지 검만이 있던 자신의 세계에 비해 검술이 비효율적이었고,
높은 경지는 더더욱 적었기 때문에 상처 입은 현재의 자신이라도 우승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람히르....”

람히르를 소유하고 싶은 것이 아니었다.
그저... 그녀가 그때 울  같은 표정을 다시 짓지 못하도록 검을 휘두를 뿐.
그것이 자신이 그녀에게 해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기에...
그렇게 필멸자와 괴물.
서로 다른 존재들이, 서로를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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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기사들이 바닥에 힘없이 쓰러져 있었다.
그들은 신선제국의 교황을 지키는 최상위 성기사들이었으나.
앞의 남자에게 순식간에 제압당해 쓰러졌고,
그러자 그 남자는 미소를 지으며 교황에게 다가갔다.

“오랜만이야. 빛의 주신.”


“제우스. 이게 무슨 짓이야?”


1세계의 빛의 주신. 켈렌트.
2세계의 파괴의 주신. 제우스.
둘 다. 모든 것들의 어머니인 창조주에게서 태어난 주신이었지만.
둘은 이렇게 개인적으로 친근하게 만날 사이는 아니었다.
그 사실에 켈렌트의 황금 눈이 제우스를 보며 날카롭게 빛났다.


“아아! 고양이 마냥 경계하지 않아도 돼. 빛의 주신 켈렌트.
난 그저  가지 사실이 궁금해서 왔을 뿐이니까.”

“?”

“무슨 생각으로 이번 대회를 연 거야?
그것도 괴물들의 왕까지 이곳에 초대하다니?
지금 중요한 시기라는 것은 모르지 않겠지?”

먼 과거에 괴물들과 주신들의 전쟁을 멈추었던 플로라가 부활했다.
그것은 좋다.
문제는... 현재 그녀는 그 기억과 힘이 불안하기 짝이 없는 상황이었다.
제우스도 네메시스란 존재만큼은 주의하고 있기에,
현 상황을 파악하고는 빛의 주신 켈렌트에게 올 수밖에 없었다.


“..신성제국의 전통적인 행사야.
딱히 이것으로 다른 세상의 주신에게 간섭당할 이유가 아닌  같은데?”

“호오? 그러셔? 그런데 말이야. 상품이 너무 공교롭단 말이야.”

“.......”

“방금 네메시스를 만나보니 그는 특별상품은 전혀 모르던데...
뒤로는 무슨 일을 꾸미는 걸까나? 빛의 주신?”


“......언제부터 다른 주신에게 관심이 많았지? 제우스.”

켈렌트의 빈정거리는 말이 그를 향했지만.
제우스는 미소를 잃지 않는 채로 켈렌트를 향해 서서히 걸어갔다.

“확실히 여기는 너의 세상이니 내가 간섭할 이유가 없긴 해.
...하지만 말이야.”

제우스의 피부에 경보하는 듯이 스파크가 튀었고,
그의 입에 걸려있던 미소가 갑자기 사라졌다.

“..네 녀석이 네메시스에게 해를 끼치면 간섭할 이유가 생기게 되지. 빛의 주신. 켈렌트”

“.....”


“과거 실수를 반복하지 마. 이것은 나의 진심 어린 경고이자. 조언이다.
 플로라에게 손가락이라도 된다면...
우리 2세계는 1세계를 버리겠어.
 사실을 기억해라. 1세계의 주신”

파아아아!


그 말을 끝으로 빛과 함께 제우스가 사라졌지만.
켈렌트는 한참 동안 그가 사라진 자리를 노려보고 있더니,  마디만을 내뱉었을 뿐이었다.

“흥! 처음부터 형제자매의 도움 따위는 바라지도 않았어. 제우스.
 일은...
 손으로 끝낼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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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메시스 선수 입장해주세요!"


월검향은 링으로 올라오고 있는 상대를 보자. 눈을 커다랗게 떴다.
눈앞의 존재는 만난  있는 사람이었다.


"어째서...?"

이름은 네메시스 이였을까? 얼마 전에 미에네 마을에서 검을 나눴던 사내였다.
그는 아름다운 긴 흑발을 늘어뜨리며,
허리에 그때 봤던 푸른 검을 착용 한 채로 서서히 경기장으로 올라왔고,
완전히 올라온 후. 월검향을 보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음? 월검향이군? 람히르에게 이곳에 있다는 말은 들어다만....”

“......”


"왜  정도 되는 자가, 이 대회에 참여한 거지?"

네메시스는 우승상품인 향신료에 관심 있는 월검향이 이해가 안 되어 물어본 거였지만.
월검향도 네메시스에게 같은 질문을 하고 싶긴 마찬가지였다.
어째서 미에네 마을에서 이곳으로 온 것인가?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이상했다.
월검향은 네메시스가 수상하다는 듯이  손잡이로 손을 가져가는 행동을 보였고 그 모습을 보고는 끄덕였다.

"그래... 친하게 이야기할 사이는 아니지. 덤벼라."


‘뛴다.’라는 단어보단 이미 도착했다는 말이 어울릴 정도의 빠른 속도였다.
단 한걸음으로 수십 미터를 질주해간 월검향의 칼집에 담긴 검이 번쩍였다.

쌔애애애액!

공기를 찢으며 휘둘러지는 그의 검에는 푸른 마나가 둘려지기 시작하더니,
도착할 때쯤.
이미 검의 끄트머리까지 전부 마나로 둘려 있었다.
그렇게 몸에서 정제한 마나를 결집시켜,
만들어낸 검기가 네메시스를 향해 휘둘러졌다.


파악!


!?


앞에 있는 것을 모든 것을 베어버릴 것 같았던 검이 네메시스의 손에 붙잡혔다.
그에 검기는 손을 불태우려는 듯이 꿈틀거렸지만.
검날을 맨손으로 잡은 네메시스는 상관없다는 듯이,
검을 잡아당기는 동시에 월검향을 품속으로 다가갔다.


퍽! 퍽!

"큭!!"


고속으로 그의 품속으로 다가온 네메시스는 정확히 월검향의 턱과 가슴에 일격을 가했다.
그러자 월검향은 맞으면서도.
검을 빼내서 다리를 축으로 돌려, 네메시스의 몸을 베어내더니.
빠르게 뒤로 물러섰다.

"어딜 가시나?"


네메시스가 검은 흑발을 흩날리며 추격한다. 월검향은 그것을 보자마자.
검을 가로로 휘둘렀고 그러자 초승달을 연상시키는 검강이 네메시스에게 빠르게 날아갔다.


끼이이이이익! 팅!


칠판을 손톱으로 긁는 소리와 함께 검강이 네메시스의 팔에 튕겨 나가더니,
링을 감싸고 있는 결계에 소멸 되었다. 그 순간. 월검향과 네메시스가 격돌했다.
그의 검은 네메시스의 다시 손에 붙잡힐 뻔했지만. 검로를 뒤틀어.
오히려 그 손을 베어낸 후. 검을 위에서 아래로 휘둘렀다.
그와 동시에 검강이 뿜어져 나와 네메시스의 육체를 베어갔다.
그러한 공격을 네메시스가 팔을 들어 올려 막아냈지만.
검강에 담긴 힘에 의해. 그의 육체는 뒤로 5m가량 밀려 나갔다.


"어째서냐....."

검기에 베이지 않았다. 분명히 피할 수가 없는 위치에,
막는다고 해도 어느 정도 피해가 있어야 하는 일격이었지만.
검강에 잘려나간 옷 틈에서는 상처하나 없는 매끈한 피부만이 보일 뿐이었다.


"왜...베이지 않는 거냐!!!!"

다시 부딪혔다. 베고, 자르고, 가르고...
월검향의 검은 끝임 없이 네메시스를 베어갔지만.
그의 육체에 찰과상만이라도 입힐 수가 없었다.


“넌 날  수가 없어. 나의 육체는 마나 속성으로는 결코 밸 수가... 음?”


그 순간이었다. 네메시스를 향해 월검향의 검이 다시 날아오는 순간.
네메시스의 눈에 보이는 세상의 색이 변했다.

"어...?"


정확히는 갑자기 바뀐 몸을,
머리가 따라가지 못해서 일어나는 현상이었다.
그 상황에 네메시스는 눈썹을 찌푸렸다.

'나의 몸이 이상하다...?'

네메시스는 갑자기 나타난 몸의 이상에 검을 피하려 했지만.
빠르게 다가온 월검향의 검을 완전히 피할 수가 없었다.

파직!


검이 피부를 벤다고 믿기 힘든 소리가 울려 퍼졌다.
네메시스가 빠르게 뒤로 물러설 때쯤.
그의 뺨에 작은 혈선이 그어졌고 그와 동시에 링 위에 피 냄새가 퍼졌다.
그것은 작은 상처라고는 믿을 수 없는 정도의 진한 냄새로,
마치 전쟁터나 수많은 생물에게서 짜내야 맡을 수가 있는 진한  냄새였다.
그 피 냄새에 월검향은 놀랐는지.
도복으로 코를 막으며, 급히 뒤로 물러섰고.
네메시스는 정말 믿을 수 없는 것을 보기라도  듯이, 자신의 상처에 손을 가져갔다.
붉은색 핏방울이 그의 손에 달라붙었다. 그러한 핏방울 내부에는 ‘검은 액체’가 크게 요동치고 있었고, 그걸  네메시스는 인상을 찌푸렸다.

"...내가 베였다?"

모든 공격을 막아내는 그의 육체 능력이 사라졌다.
그것도 일반적인 검에 의해서.
네메시스는 핏방울을 바라보자.
핏방울은 스스로 꿈틀거리더니, 피부 속으로 흡수되었다.

“....어째서지?”

원인을 알 수가 없었다. 일반적인 공격으로는 절대로 상처가  적이 없는 육체였다.
그의 육체는 애초에 ‘조화’ 속성이나. ‘파괴’ 속성이 아니고선, 상처란 생기지 않았다.
근데.. 인간의 검에 베였다고?
그 누구도 아닌 자신이? 있어서는  되는 일이었다.
월검향과 네메시스가 대치하는 순간. 세상의 시간이 멈추었다.
아니 정확히는 고속으로 움직이는 인지에, 세상이 느리게 느껴지는 거였다.


[캬륵캬캬아아륵!! 놀랐나 봐? 괴물들의 왕?]

머릿속이 울렸다. 그것은 들어 본  있는 목소리였다.
그것도...
네메시스가 얼마 전에 먹어버린 존재였다.

“....앙그라 마이뉴?”


[기억해주니 고마워. 캬캬캬카카카륵]

"...소멸 안 했군."

오늘 놀란 일이 여러 번 터지는 것을 네메시스는 느꼈다.
얼마 전에 먹은 먹이가.
자신의 몸속에서 버티는 것도 모자라서 자신에게 말까지 걸고 있다.

[키키키 확실히. 바로 소멸 될 뻔했지.
바로 기생을 하지 않았으며 정말 죽을 뻔했어.
뭐. 지금도 시간 끌기 정도밖에 안 돼.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서서히 너에게 먹혀가고 있으니까]

그제야 네메시스는 앙그라 마이뉴가 자신의 몸에 벨라스트라즈에게 한 것처럼 '기생'하고 있는 것을 깨달았고,
몸의 제어권 일부가 앙그라 마이뉴에게 넘어간 것이 느껴졌다.
사소할 정도의 적은 양에 네메시스는 코웃음 쳤다.


“딱히 상관없군. 네가 제어할 수 있는 부분은 0.01%.
 정도는 다른 부분으로 억누르면 그만이야. 그것으로는  어떻게 할 수가 없어.”


[그래.. 확실히 0.01%로는 시간 끌기만이 한계겠지..
하지만 말이야.
그렇게 사소한 양이라도. 이런 것은 가능해.]

시간이 다시 흐르기 시작하였다.
네메시스는 방금보다 육체가 더욱 약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 자식이?”

몸의 균형을 흔듦으로 전체에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그의 눈에 월검향의 검이 무엇보다 빠르게 느껴졌다.

[행운의 빌어! 케케케키키키케켁케케!]

"크윽"


네메시스가 급하게 허리에 달린 '루나'를 꺼내, 돌진해온 월검향의 검을 받아냈지만.
그의 육체가 밀려 나갔다.
월검향은 자신이 그를 압도하기 시작하자.
더더욱 빠르게 몰아치기 시작하였다.
네메시스는 그러한 공격들을 아슬아슬하게 막아내면서 물러났다.
힘에서 밀리고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었다. 지금의 상태로도 네메시스는 상당한 수준의 육체였지만. 인간으로서 순수 검으로 지금 경지로 올라간 월검향에겐 무리였다.
빠르게 찔러오는 월검향의 검을 팔로 막아내자. 조금씩이지만 검상이 새겼다.

'이러다가 깊숙이 베이면 안 되는데....'

몸속에 있는 그의 '검은 피'라도  방울 빠져나오면 매우 곤란했다.
네메시스가 얼마나 월검향의 검을 막거나 피하면서 뒤로 물러섰을까.
경기장의 끝이 발에 느껴졌다.
그걸 본 월검향은 그것으로 끝을 내려는 듯이 크게 검을 휘둘렀다.

피이이이이이잉!!!!!!

섬광이 네메시스를 향해 날아갔다.
네메시스는 자신의 눈에 흐릿하게 보이는 검이 자신에게 날아오는 것 바라보았다.


“정말... 짜증 나게 하는군.”

쏴아아아아아악!!

!?

네메시스의 주변으로 돌풍이 불었다.
강한 바람은 월검향의 몸이 튕겨 나갈 정도였고,
이에 월검향은 검을 땅에 꽂아. 몸을 고정했다.
하지만 미친 듯이 밀어내는 바람에 그는 앞을 볼  없었다.

“아.. 날개는 정말 꺼내기 싫은데 말이지... <마나의 날개>”

네메시스의 목소리가 들린 후. 바람이 서서히 잦아들었다.
월검향이 네메시스를 다시 바라보는 순간.
그는 자신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네메시스의 등 뒤에 푸른빛의 '무언가'가 있었다.
그것은 처음 보는 거였지만. 월검향은 본능적으로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마나. 그것도 정제되지 않는 본연의 순수한 마나로,
바람에 따라 계속해서 모습이 조금씩 일그러져가고 있었지만.
전체적으로는 날개 형상을 띄고 있었다.
날개 끝쪽으로 갈수록 푸른빛이 희미해지는 모습으로,
날개 현상을 띄지 못한. 잉여 마나들은  위를 감싸고 있는 결계를 타고 하늘로 치솟아.
마치 푸른빛 탑을 연상시키고 있었다.
그곳에서 뿜어져 나온 마나 덕분일까?
월검향은 자신의 단전에 순수한 마나가 채워지는 것을 느꼈지만...
스스로도 모르게 몸이 떨리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다.

'마..말도 안 돼....!!'


저건 이미 생물체의 영역이 아니다. 잉여 마나를 흘리는 것만으로,
대기의 마나 농도가 진해지는 어처구니없을 정도의 마나량.
자신이 나무 정도라면 저것은 대륙이었다. 상대가 안 됐다.
아니. 과연 무엇이 저것에 대항이 가능할까?
저것을 보는 순간. 월검향은 자기도 모르게 검을 놓을 뻔했다.
너무나도 절망적일 정도의 힘이었다.

‘수상해. 왜 나만 보면 뒤로 물러날까?’
‘어쩌다가 이렇게 다친 것이에요?’
‘후... 정말이지.. 제발 다음에 올 때는 다치지 말아요!
괜히 걱정되잖아요...‘
'싫어...정말..싫어..'

"....."

람히르의 표정이 떠올랐다.
그것은 복잡하고도 슬픈 표정으로, 마치 깨지기 직전의 유리와 같았다.
구슬프고도 너무나 아름다워서 무엇보다도 지키고 싶은 얼굴이기에...
그녀가 조용히 우는 모습을 더 이상 보고 싶지 않기에...
월검향은 검을 쥔 손을 다시 들어 올렸다. 이대로 포기 할 수는 없었다.
자신은 결코  수 없었다...
이길 수가 없어도... 눈앞의 상대를 반드시 이겨야만 했다!!!!

고오오오!


"흐음? '마나의 날개'을 보고도 포기하지 않을 생각인가?"


월검향은 대항하는 듯이 마나를 끌어 올려 맞서겠다는 의사를 보이자.
네메시스가 흥미 있는 표정으로 그를 보았다.
일반적인 존재들은 그의 날개를 보는 것만으로도 포기할 텐데...
괴물이나 불멸자도 아닌. 단순 생물체에 불과한 필멸자가 맞서겠다는 의사를 보였기 때문이었다.

“어째서 포기하지 않는 거지?  결코 날 이길 수 없어.
너의 노력 여부가 아니라. 힘의 절대량부터 너무 차이가 나.
네가 어떤 기술을 사용하든. '마나의 날개' 앞에선 애들 장난에 불과해.
그런데도 싸우겠다고? 날 상대로?”


네메시스가 걸음을 떼자.
걸음을 뗀 자리의 먼지가 마나로 인해 하늘로 올라가는 모습이 보였다.
아마 저 발자국에 남아 있는 마나만 하더라도 상급 마나석에 필적하지 않을까?
네메시스의 시선이 월검향의 배에 있는 붉은 얼룩의 붕대에 향했다.


“몸도 성치 않으면서 왜 덤벼? 하다못해 회복이나 하고 와라. 월검향.”

“...그럴  없소.”

네메시스로서는 최선의 배려. 눈앞의 인간이 자신과 일행을 습격한 적은 있었지만.
별 사고가 없이 지나갔기 때문에, 네메시스는 웬만하면 싸우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도... 월검향은 독기어린 눈빛으로 고개를 가로저었을 뿐이었고,
그 모습에 네메시스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래도...
무슨 이유인지 몰라도. 눈앞의 인간은 작정하고 덤빌 생각으로 보였다.

"너의 의지가 그렇다면... 좋아. 최선을 다해 상대해주지. 월검향."

그 말을 끝으로, 날개를 지닌 네메시스가 월검향을 향해 달려나갔다.
그렇게... 괴물과 인간의 이길 수 없는 전투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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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메시스의 날개.
그것은 매우 독특하다. 정확히는 힘의 근원 자체를 자기가 사용하기 좋게 '날개'로서 정제하여 사용하는 것으로 날개가 잘리거나 부셔져도,
날개들은 속성에 불과하기 때문에, 네메시스가 힘을 사용하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하지만 네메시스의 10번째 날개는 제우스의 '파괴'에 부수어진 이후.
재생이 되지 않는 것으로 보아.
10번째 날개의 속성은 우리 알지 못하는 미지로 보인다.
그의 10번째 날개는 그 어떤 날개보다 위험하고 또한 강렬한 것으로 보이며,
한 번도 네메시스가  날개를 사용한 적이 없었다지만...
만약 그날의 제우스가. 10번째 날개가 펼쳐지는 것을 막지 못했다면...
우리는 아마... 그날 그에게 잡아먹혔을지도 모른다. -용의 여왕의 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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