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화 〉제 25화 켈렌트가 본 미래
어둠 속이었다. 시간이 주신인 크로노스가 아닌 이상 볼 수가 없는 시간의 흐름.
빛의 주신인 자신은 인식 할 수 없기 때문에. 어둠으로만 보이는 것이었다.
빛의 주신 켈렌트는 어둠 속에서 유일하게 빛나는 하나의 길을 걸어갔다.
파아아아아악!
"윽!"
갑작스런 어지럼증과 함께 어둠이 걷히고 빛이 모든 시야를 채웠다.
명색이 빛의 주신이라는 자신조차 버티기 힘들 정도의 엄청난 양의 빛.
드디어 도착한 것이다. 그가 예지로 보는 미래에...
"......"
처음 보이는 것은 검은 하늘. 태양조차 없는 검은 하늘이었다.
하늘에는 보랏빛 선의 무언가가 빛을 내어 밝히고 있었고,
그 밑에 수많은 은백색 거미줄들이 그 빛을 반사하여 어느 정도 시야가 확보되었다.
켈렌트는 그 무언가를 계속 바라보던 중.
그것이 마법진이라는 것은 금방 파악했다.
너무나도 거대한 마법진이였다.
지평선 너머까지 뻗어 있는 그것은 아마 대륙 전체를 향한 마법으로 보였다.
지금 켈렌트가 보는 도중에도 마법진 밑으로 빛의 광구들이 모이더니,
지상을 끝없이 폭격하고 있었다.
“....서열 124위 위치퀸.”
천 년 전에도 저 폭격에 수많은 영웅들이 죽어갔었다.
위치퀸은 1세계 출신의 마녀이자.
자신에게 살해당해 4세계로 가게 되었지만.
더욱 강해져서 돌아온 4세계의 괴물이었다.
켈렌트는 시선을 돌려 지상을 향했다.
“.......”
지상은 이미 수많은 피와 고기가 뿌려져 시야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켈렌트는 눈앞에서 인간으로 보이는 몇 명이 무언가가 맞서는 것이 보였다.
!!!!!!!!!
그 무언가는 프랑스 인형같이 아름다운 소녀였다.
그녀의 옷은 피로 인해 붉게 물들여 있었고,
찢어진 옷가지 사이로 인형의 인조 관절이 보였다.
그녀 앞에 5명 정도의 이들이 달려들었지만.
그녀가 휘두르는 전기톱에 하나둘씩 몸이 나뉘어 죽어갔다.
켈렌트가 다루는 것이 빛이기 때문일까?
살이 갈리는 듯한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런 학살에 켈렌트의 미간이 찡그려졌다.
“서열 555위 살인인형.. 엘리스...”
그녀는 살아 움직이는 것을 모두 죽이려 드는 살인 인형으로,
4세계 내에서도 미친것으로 악명 높은 괴물이었다.
빛의 주신 켈렌트는 문뜩 이곳의 상황이 이상하다는 걸 느꼈다.
666의 괴물들은 함부로 다른 세계로 나올 수가 없다.
자신이 보고 있는 '미래'는 4세계인 것일까?
그가 보고 있는 와중에도, 엘리스가 전기톱을 휘두르며 다른 생존자를 찾아 죽이는 보였다.
켈렌트는 그 모습에 고개를 흔들고는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
다른 곳으로 빛이 되어 이동하자.
중간중간에 주신들이 과거에 싸워왔던 4세계의 괴물들이 보였다.
'서열 441위 운명의 거미 아라크네, 서열 200위 저주받은 구미호 달기...'
작게는 나라를, 크게는 차원에 이르기까지 난동을 피우다가.
신이나 영웅들에게 살해당했던 괴물들.. 그들이 4세계에서 새로운 육체를 얻어 다시 돌아온 순간. 상황은 변했다.
각자가 살아가는 동안. 역사에 한 줄을 그었던 영웅들이 너무나도 쉽게, 그리고 처참하게 그들에게 죽어갔었다.
켈렌트는 시선을 들어 주위를 둘러보았다. 폐허가 된 건물들에서 친숙함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이 장면이 천 년 전과 비슷해서?... 아니야...'
그것과는 다른 친숙함이었다. 켈렌트는 다시 빛이 되어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천 년 전 전쟁.
전장이 된 1세계의 드림랜드는 행성자체가 망하기 직전까지 갔었고,
수많은 신과 영웅이 괴물들의 먹이가 되었다.
전쟁이 끝난 후. 생존한 생물체는 전쟁 전과 비교해서 1%.
또한 생존한 신조차 1세계 통틀어 10%미만이었다.
크나큰 피해... 그에 비해 4세계 괴물들은...
'666의 괴물 중 오직 12명 사망.'
수많은 괴물들도 그곳에서 죽어갔지만.
정작 4세계 최고 전력이라고 할 수 있는 서열 666위 이하 괴물은 플로라를 포함한 단 12명 사망.
그나마 영웅들이 있었기 때문에 죽일 수 있던 경우가 대다수였다.
켈렌트가 곧 상념에서 깨어나. 주위를 둘러보자.
한 건물이 눈에 뜨였다.
거대한 원형의 콜로세움의 건물... 그것은...
“..그런 거였나.”
신성제국의 블러드 토너먼트를 열었던 경기장이었다.
반쯤 부서져 있었지만. 기본적인 외형은 남아 있었고,
신성제국 고유의 대리석은 그가 보기에도 친숙한 것이었다.
'이곳은...1세계...
이것이 드림랜드의 미래...'
켈렌트는 입술을 깨물어 다른 곳을 향해 날아갔다.
괴물들이 어느 한 곳을 향해 모여들고 있는 것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저것은...?”
거대한 탑. 하늘을 찌르듯이 거대한 3개의 탑이 있었다.
탑들 중앙에는 무언가 섬과 같은 독특한 무언가가 공중에 떠있었다.
그곳의 근처에서 3세계의 요새. '드래곤캐슬'이 마력포로 지상의 괴물들을 폭격하는 모습이 보였고 그 성을 호위하는 듯이 수많은 드래곤들이 날고 있었다.
지상에서는 2세계의 티탄들이 탑 주위에서 괴물들을 어떻게든 막아 내려는 모습이 보였고,
하늘에는 1세계의 마족과 천족들이 끝없이 맞서 싸우고 있었다.
'저 탑은 무엇이지? 어째서 괴물들이 저곳을 필사적으로 뚫으려는 거지?‘
피가 튀었다. 피는 자신을 통과해 땅으로 떨어졌고,
이에 켈렌트는 피가 튄 곳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하늘에 붉은 선이 그어지고 있었다.
‘그것’이 지나갈 때마다, 공중에 있는 모든 것들이 분쇄되어 땅으로 추락해갔다.
'4세계 서열 502위 괴물. 쾌속의 하피퀸...'
어떻게든 탑을 지키려는 듯이 맞서는 필멸자들과,
그것을 뚫는 4세계 괴물들의 향연.
켈렌트는 어지럼증이 점점 심해지는 것을 느꼈다.
예지로 버틸 수 있는 시간이 다 되어가는 것이었다.
“어라? 오래간만입니다. 1세계 빛의 주신. 켈렌트님.”
자신만이 존재하는 예지 속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평소라면 있을 수가 없는 일.
켈렌트가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보랏빛의 미청년이 보였다.
“너는... 분노의 야누스..”
한때 4세계의 최강의 왕이었던 괴물. 네메시스에게 패배하였지만.
숙청당하지 않았던 최강의 괴물이 미래에서 자신을 똑바로 바라본 채로 말을 걸고 있었다.
'아니. 그것은 아니군.'
켈렌트는 고개를 저었다. 그것은 불가능한 일.
오히려 저 존재도 예지로 이곳을 보고 있다는 것이 옳은 판단이겠지.
그 남자는 켈렌트의 생각을 알고 있다는 듯이 한쪽 눈을 찡그려 그에게 윙크하였다.
“당신만이 예지를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요. 켈렌트님.”
“......”
“흐음~ 저희들의 왕 네메시스님은 그곳에서 무사히 지내시나요~?
아! 물론 플로라님도 말이죠.”
지금 앞에 보이는 학살이 자기들과는 전혀 상관없는 듯이 자신의 왕의 안부를 묻는다.
켈렌트는 자기도 모르게 팔이 떨리는 것을 느끼며,
주위를 한 번 둘러 본 후. 야누스를 노려보았다.
“야누스... 이 상황은 너의 개인적인 행동인가?
아니면 너희 왕의 명령인가?...”
4세계를 움직일 만한 존재는 단둘.
그들의 왕인 네메시스와 자신의 앞의 서열 3위의 괴물뿐이었다.
“글쎄요..? 무슨 말인지 모르겠습니다만?”
긍정도 그렇다고 부정도 아닌 애매한 답.
그 말에 켈렌트가 표정을 구기자.
야누스는 두 팔을 펼쳤다.
“켈렌트님에겐. 어떤 미래가 보인가요?
저는 빛의 주신님처럼 특화된 것이 아니라서... 그림자처럼 보이거든요.”
“....”
보지 못하는 건가? 그래도 이곳까지 들어 올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대단한 존재였다.
“....뭐 그래도. 대충 어느 상황파악은 되지만 말이죠.
이거. 피 냄새가 진동하네요.
또 천 년 전 학살이 일어난 겁니까?”
전쟁이라 칭하지 않고 학살이라 칭한다.
4세계 괴물들에겐 천 년 전 전쟁은 그 정도뿐인가?
켈렌트는 그에게서 몸을 돌려, 탑을 향해 빛으로 이동했다.
예지를 유지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크윽!"
탑으로 이동하는 순간. 켈렌트는 큰 충격이 느껴지는 동시에,
주위가 서서히 흐릿해지는 것을 느꼈다. 예지가 강제적으로 끝나가는 것이다.
“이런! 그곳에 있는 탑들 근처는 가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저도 그 근처에만 가면 반발력으로 예지가 강제적으로 끊긴 답니다아아아아아아“
야누스의 뒷말이 울리는 동시에, 흐릿해지던 주변이 다시 밝아졌다.
켈렌트가 주위를 둘러보자. 신계에 있는 자신의 신전이었다.
그는 자신의 몸이 땀으로 젖어 있는 것이 느껴졌다.
수많은 괴물들이 참전한 미래는 주신인 자신조차 함부로 보기 힘든 미래였다.
“막아야 해.....”
어느 정도 후의 미래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1세계는 다시 피로 물들 거란 사실....
켈렌트는 얼마 전에 만난 4세계의 왕을 떠올렸다.
괴물들의 왕이자. 주신들이 신임하는 괴물.
자신이 본 미래를 다른 주신들에게 말해줘도 그들은 믿지 않을 거다.
켈렌트는 괴물들에게 고통받을 필멸자들을 구하고 싶었다. 그들을 지켜주고 싶었다.
그것이 창조주인 '어머니'가 자신에게 준 사명이라고...
켈렌트는 믿어 의심치 않았다.
“.....”
보통은 예지로 본 미래는 바뀌지 않는다.
하지만.. 지난번의 제우스처럼 주신이나 네메시스와 같은 몇 몇 인물들은 조금씩 미래를 바꿔나갈 수 있었다.
아직은 시간이 남았다. 만약 바꾸지 못한다면...
자신이 본 미래가 현실이 되겠지.
그것만은... 막아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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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각. '마물의 둥지'의 왕좌에 있던 야누스도 눈을 떴다.
그는 왕좌 옆의 테이블에 붙어 있는 메모지 한 장을 뜯었다.
'맛있는 비법 푸딩 만드는 법. 재료....'
“....죄송합니다. 네메시스님.”
네메시스가 쓴 글귀다.
야누스는 주위에 누군가 옆에 지나가는 괴물이나, 신이 없는지 확인한 다음.
그걸 지우고는 무언가를 적기 시작하였고 곧 허공을 향해 소리쳤다.
“기만의 조커. 이리 좀 와 봐.”
그의 말에 아무도 없는 공간이 비틀어지더니 곧 하나의 인영이 그곳에서 빠져나왔다.
보릿빛과 검은색의 체크 무늬의 광대 복장.
얼굴에는 하얀 가면을 쓰고 있는, 호리호리한 몸매의 소유자였다.
‘그것’을 처음 보는 순간. 한없이 불길했고 또한 위험한 느낌이 들었다.
조커는 그런 존재였고 그 감각은 한없이 옳았다.
‘그’ 혹은 ‘그녀’라고 불리는 그 존재는...
4세계 서열 8위 괴물. ‘기만의 조커.’였으니까 말이다.
야누스의 외침에 나타난 조커는 조용히 한쪽 무릎을 굽혀,
야누스에게 예를 취하더니 일어섰다.
“어머나~ 야누스님이 절 불러주시다니 영광이로군요.
어떤 것을 원하신 가요? 재미있는 쇼? 학살? 아니면. 당신의 죽음? 후후후후”
여자도 남자도 아닌, 중성적인 목소리였다.
그곳에는 목숨을 노리는 듯한 살기도 깃들여 있었지만.
야누스는 흥미가 없는 듯이 자신이 적은 쪽지를 그에게 던졌다.
“그 안에 있는 애들. 모두 불러와.”
“흐음? 이들은....”
조커는 그 쪽지를 바라보더니, 안의 인물들이 의외였는지.
고개를 갸우뚱하였고 야누스는 그 모습을 보며 미소 지었다.
"후후후. 내가 아주 재미있는 생각이 났거든."
그래. 매우 재미있는 생각이 떠올랐다.
자신의 왕을 즐겁게 해줄 매우 즐거운 생각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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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행들은 모두 잠든 것이 보인다.
람히르는 옆의 벨라스트라즈가 잠든 것을 확인하더니, 그곳에서 빠져나왔다.
푸드득.
람히르는 나무 위로 조용히 날아오르더니,
곧 앉을만한 거대한 나뭇가지가 보이자. 그곳에 내려앉았다.
짧은 시간 동안 너무 많은 일이 있었다.
블러드 토너먼트, 월검향, 4세계의 괴물, 폭주하는 엘프에 이르기까지...
"말리고스와 제우스..."
자신의 아버지와 같은 주신들.
그녀는 처음에 벨라에게 그들의 정체를 들었을 때는 믿지 못했다.
다른 세계의 주신들은 이야기로만 들었지.
실제로는 처음 보았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아버지랑 달리 둘은 너무 달랐다. 네메시스가 요리하는 틈을 타.
요리된 음식을 주워 먹으려다가 걸려 그에게 거대한 빵을 입속에 강제로 박히지 않나.
그에게 장난친 것 때문에 한참 동안 추격전을 하지 않나.
주신이라는 존재로서, 신비감이나 고귀함이 없었다.
“그래도.. 즐거운 분들이에요.”
요리하고 있던 식칼을 들고, 제우스를 추적하는 네메시스의 모습에 람히르는 웃었다.
신성제국에서 나와서 처음 짓는 웃음.
역사에서는 철저히 적으로 정의된 괴물과 주신이 지금은 그렇게 살아가다니 아이러니였다.
그런데 자신의 아버지이자. 같은 주신인 켈렌트는 자신에게 왜 그런 명령을 내렸을까?
‘그가 바로 네가 드림랜드로 소환되는 이유이자.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야.
너는 '그'의 아내가 되든. 친구가 되든.
설사 노예나 그 이하가 되더라도 반드시 함께해야 해.
이건 주신으로서 너에게 내리는 명령이다.’
"......"
주신 켈렌트의 명령에 의한 강제적인 제약이 자신의 몸을 묶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좋든 싫든. 반드시 따라야하는 천족으로서의 사명.
이것을 어기면 그 즉시 순백의 날개가 타락해 타천사로서 마계로 떨어지고 말 것이다.
“....바보 같아.”
그녀는 미소를 잃고 침울해하더니, 머리를 무릎에 파묻었다.
그에 따라 그녀의 긴 금발이 흘러내렸다.
이전에 세레나에게 잃은 리본의 대용품을 아직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었던 물건이었는데..’
흠칫!
그런 그녀의 날개 위로 따뜻한 무언가가 내려앉았다.
그에 람히르가 놀라며, 그것을 바라보자. 여행용 모포였다.
“...네메시스님”
4세계의 왕이자. 과거 주신들을 몰아넣은 괴물들의 왕.
그리고 켈렌트의 명령에 따라 자신이 감시해야 하는 남자였다.
그런 그가 언제 왔는지. 자신의 앞에 서 있었다.
“'님' 같은 낯간지러운 호칭은 필요 없어. 옆에 좀 앉아도 될까? 람히르?”
람히르가 조용히 끄덕이자. 네메시스는 그녀의 옆에 앉았다.
그에 그들이 있던 나무가 조금 흔들렸다.
"여기가 뭐 하는 거야? 숲의 밤은 춥다고. 천족 아가씨."
"그냥.. 잠시 생각할 것이 있었어요."
잠시의 침묵. 네메시스는 람히르를 표정을 보더니 상냥하게 그녀의 볼을 만졌다.
"...켈렌트를 너무 원망하지 마.
그 녀석. 겉은 그렇게 말해도 속으로는 널 걱정할 테니까."
"...걱정이라고요? 저의 아버지가요?"
"응. 다만 필멸자들을 더 걱정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천족이 소외당하게 된 것이랄까?"
"...."
"그 녀석은 창조주로 인해 태어났을 때부터 1세계를 지켜봐 왔어.
아무것도 없는 행성에서 생물체가 자라나고, 진화해오는 모든 것들을 말이야.
그리고 그것들이 발전해. 그들만의 문화를 만들어내고,
어느 순간에 자기에게까지 말까지 전하는 모습까지...
빛의 주신 켈렌트는 그와 중에 그들에게 애정을 갖게 되었다고 해.
마치 자기 자식과도 같은 애정. 하지만 그 때문일까?
그는 정작 자신에게서 태어난 천족들을 오히려 차별하게 된 거야.
필멸자들을 돕는 도구로 말이야...
하지만 켈렌트는 분명 너희 천족들도 생각하고 있어.
그 사실을 기억해줬으면 좋겠어. 람히르."
잠시의 침묵. 람히르는 고개를 들어. 은빛 눈으로 네메시스를 바라보았다.
“..어째서죠? 당신은 괴물이잖아요? 주신과는 적이잖아요?
근데 왜 저희 아버지를 변호하는 거죠?“
주신과 괴물은 적대 관계였다, 천 년 전 전쟁을 아는 모든 이들이 아는 사실.
괴물인 그가 1세계 주신인 켈렌트를 변호할 이유 따위는 없었다.
람히르의 말의 의미를 깨달은 네메시스는 미소 지었다.
“더 싸울 이유 따윈 없으니까.”
“다시 싸우는 일이 생길지도 모르는 데도요?”
“그러면 그때 생각하지 뭐.
켈렌트도 머리가 있으면 일으킬 생각은 하지 않을 테니까. 다른 주신들도 마찬가지고.”
오만했다. 누가 감히 주신들을 상대로 저렇게 자신할 수 있을까?
람히르는 그 모습에 한 가지 궁금증이 생겼다.
"4세계는 어떤 곳이에요?"
흠칫!
네메시스가 람히르의 질문에 놀랐는지. 눈에 띄게 당황했다.
그리고 안 좋은 일들이 다수 있는 듯이, 그의 얼굴이 급격하게 어두워졌다.
"음... 하도 개성적인 놈들이 많아서 뭐라 말하기 힘든데...
말하자면..."
"말하자면?....."
“정신병자수용소에 범죄자들을 몰아넣어 둔 것이랄까...?
이것 밖에 설명할 만한 것이 없어.“
"....?"
람히르가 네메시스의 말에 의문이 담긴 시선을 던지자.
네메시스는 시선을 피하더니 콧잔등을 긁었다.
"음.. 모든 ‘세계’에서 제정신인 놈보다 이상한 쪽으로 정신이 나가 버린 놈들과,
빠진 나사가 한 무더기는 되는 놈들이 모여드는 곳이다 보니,
하루가 멀다 하고 폭발사고는 기본에,
이상한 기행인 사고가 매일 터지거든.
개인적으로 말하자면...
만약 4세계에 갈 바에는 지옥으로 가는 것이 훨씬 정신건강에 좋아.”
“..그곳의 왕이라면서 상당히 평가가 좋지 않은데요?”
“진실이니까.”
람히르는 그 말을 하는 네메시스의 표정이 세상을 등진 현자 같다고 생각했다.
도대체 어떤 일들을 경험하면 저 남자가 저런 표정을 지을 수 있을까?
그는 어딘가 먼 곳을 멍하니 보고 있었다.
4세계에 있는 이들을 생각하는 걸까? 람히르는 그가 살며시 미소를 짓는 것이 보였다.
“...그래도 재미있는 놈들도 꽤 있어.
억울하게 온 놈들도 많고.
그래서 뭐라 정의하기 참 힘든 곳이고.”
그 말을 끝으로 서로는 침묵했다. 네메시스는 곧 무슨 생각이 났는지 손뼉을 쳤다.
“아참! 이것을 너에게 전해주러 왔지.”
“...이건?”
파란색 리본이었다. 자신이 과거에 쓰던 리본과 비슷했지만.
세세한 부분에서 달랐고, 또한 아름답고 화려했다.
“..과거 쓰던 리본은 세레나에게 못 쓰게 만들었다고 벨라에게 들어서.
말리고스의 아공간인 '창고'에서 최대한 비슷한 걸 꺼내왔어. 마음에 들어?”
"고마워요."
네메시스가 한번 착용해보라는 눈치를 주자. 람히르는 끄덕이고는 리본을 달았다.
그것은 그녀에게 어울렸고 또한 과거에 쓰던 것과 별 차이 없는 느낌이었다.
“벨라를 도와. 세레나를 제압해줘서..
고마워. 이 말을 너에게 전해주고 싶어서 왔어. 람히르.”
두근! 두근!
람히르는 고개를 푹 숙였다.
그녀는 이것이 처음으로 다른 사람에게 받아본 선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와 동시에 나쁘지 않은 두근거림이 느껴진다.
만약에.. 혹시...
만약에.. 처음으로 선물을 주었던 것이 월검향이였다면....
자신은 어떤 선택을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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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검향. 이제야 오셨군요. 드래곤 하트는 구해오셨습니까?”
스윽!
로브를 입고 있는 마법사는 입구에서 반갑게 맞이했지만.
월검향은 그런 그를 무시하는 듯이 지나쳤다.
"예?...."
“폐관 수련을 할 것이다. 내가 스스로 나올 때까지 건들지 말도록.”
".자. 잠깐만! 이봐! 왜 그래? 월검향!!!!!"
자신을 이곳으로 데려온 마법사가 뭐라 하는 것이 보였지만. 그는 신경 쓰지 않았다.
“.......”
그곳에서 죽게 되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의식을 잃은 후. 일어나니 써버렸던 진원지기(생명)의 대부분이 다시 차 있었고,
내공도 최고조로 채워져 있었다.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일.
월검향은 자신과 싸웠던 그 남자를 생각했다.
그의 등 뒤에서 끊임없이 분출되는 무한한 마나의 날개.
만약에... 그것만이 아니라. 또 다른 것이 있다고 한다면?
'다른 날개도 있는 건가...?'
만약 다른 하나의 날개가 진원지기(생명)라면 충분히 죽어가는 자신을 살릴 수 있다.
그런 면에선 네메시스는 은인이었으나, 월검향은 그를 생각하니. 오히려 분노를 느꼈다.
“왜 나를 살린 거냐...”
차라니 죽는 것이 나았을지도 몰랐다. 자신을 얼마나 조롱할 생각인가.
람히르를 데려가는 것도 모자라서, 명예로운 죽음조차 주지 않았다.
“네메시스... 네놈은 반드시....”
그는 진원지기로 사용으로 인해 일시적으로 더 높은 경지를 경험할 수 있었다.
지금의 자신이라면. 이전의 벽이었던 화경의 벽을 깨고,
새로운 경지인 현경으로 향해 나아 갈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수련이 끝나면 반드시 그를 찾아낼 것이다.
“용서 못 해!!!!!”
월검향의 손에 있던 천사의 깃털이 거칠게 흔들렸다.
마치 그가 일으킬 후폭풍을 예지하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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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메시스님요? 후후후. 글쎄요.
딱히, 저는 ‘퀸’이나 ‘레퀴엠’과 달리 그에게 별 감정이 없는 쪽이라. (그녀는 요염하게 다리를 꼬았다.)
뭐. 항상 저의 실을 사주시니 저야 고마운 분이긴 하죠. 4세계에서 실을 사는 존재는 그뿐이거든요. -서열 441위 운명의 거미 아라크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