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화 〉제 35화 아쿠아마린3
검, 화살, 혹은 짐슴의 발톱이나 송곳니에 이르기까지...
카벙클이 내뿜는 물방울 속에서 계속해서 나타나는 흉기들이 벨라를 향해 날아갔다.
아니. 날아가긴 보단. 소나기 내리는 듯한 숫자였다.
"윽!!"
벨라는 자신의 다리를 잘라버릴 듯이 날아오는 검을 피해냈다. 완전히 피하지 못했는지.
조금씩 베였고 그 다음으로 날아온 화살에 그녀의 붉은 머리카락 중 일부가 잘렸다.
그것들을 쳐내면서 그녀는 지쳐가는 것을 느꼈다.
날아오는 검 한 개를 피하면. 그 다음에는 두 개의 흉기가 날아온다. 쉴 시간 따위는 없었다.
“하아... 하아...”
그녀가 강화 마법으로 육체를 강화시켜 대부분을 피해냈지만. 그럼에도 조금씩 베이면서 상처가 누적 되어갔다. 그러자 그녀의 상처에서 나온 피가 바닷물에 퍼졌다.
"괜찮아요? 다리 달린 언니?"
"괜찮아."
벨라를 걱정하는 미나에게도 잘잘한 상처들이 보였다. 작은 머메이드 소녀인 미나의 볼에는 날카로운 상처가 길게 그어져 있었고 그녀의 비늘 일부는 뜯겨져 나가 물속에 둥둥 떠 있었다. 그 모습에 벨라를 입술을 깨물었다.
카벙클은 제우스와 전투 후. 더 이상 육체를 움직이지 않은 채로 물거품만 토해내고 있을 뿐이었지만. 그럼에도 자신들은 상처를 입어가며 지쳐가고 있었다. 물거품에서 나오는 각종 흉기들이 끝도 없이 나타나 공격하고는, 물거품을 되어 사라지길 반복한 결과였다.
'이 녀석. 우리를 가지고 놀고 있어.'
그녀가 지금까지 버틸 수 있던 것은 언제까지나 앞의 4세계 괴물이 자신을 죽일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었고 그 이상은 아니었다. 극복하기에는 전력의 차이가 너무나 컸다.
그녀가 본래의 모습(드래곤)으로 돌아가도 그 전력의 차이를 메울 수는 없겠지... 그 만큼 4세계 괴물들의 육체들은 강력하며 위험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희망을 잃지 않는 채로 공격을 피하면서 카벙클을 살폈다.
'녀석은 아직 우리를 죽일 생각이 없어.'
아직은 앞의 괴물은 자신들을 적으로 보지 않는 채로, 그저 장난감으로 여기는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녀석은 방심하고 있어. 그 틈을 찌른다면 아직 승산은 있어.'
그 생각을 마친 그녀의 두 눈이 세로로 찢어진 파충류의 노란 눈으로 변해갔다. 그녀가 반투명한 카벙클의 육체를 용의 눈으로 훑어 내려가자. 텅 빈 검은 공간만이 보였고 카벙클의 이마에 달린 붉은 보석만이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이건..."
해저산 위에서 내려오는 마나 줄기 중 절반가량이 카벙클의 이마에 있는 붉은 보석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붉은 보석에 빨려 들어간 마나가 카벙클의 육체 구석구석으로 흩어져가는 것이 그녀의 눈에 보였다. 그 모습을 확인한 그녀의 눈은 다시 본래대로 돌아왔다. 그 직후. 벨라는 바로 파도를 움직여 물거품들을 지워나가고 있는 머메이드의 엘더. 미나를 불렸다.
"미나!"
"네. 다리 달린 언니. 바쁘니까 빨리 말해주겠어요?"
그녀의 손에 있는 스태프가 자유자재로 움직여질 때마다 바닷물이 움직여 카벙클에서 나오는 물거품들이 지워갔다. 하지만 카벙클에서 나오는 물거품들은 파도가 덮치는 순간. 짐승의 발톱이라든지 칼날 등으로 변하여, 조금씩 미나의 몸에 상처를 입히고 있었다.
"엄호 해 줘. 가까이 가면 저 괴물을 쓰러뜨릴 수 있을 것 같아."
"알겠어요! 그럼 길을 만들게요!!!! <거친 파도야. 태초의 계약에 따라서. 날 도와줘>!"
머메이드의 마법은 마법의 영창보다는 정령에게 부탁하는 정령사들의 속상임 같았다.
하지만 그 위력은 확실했고 무엇보다 빨랐다. 미나의 앞에 바닷물이 압출되더니 거대한 화살이 되어 카벙클의 주위를 감싸고 있는 물거품들을 향해 날아갔다.
"아직 이에요! 좀 더!"
미나는 거기에 그치지 않고는 머리 위로 스태프를 들어 한 바퀴 돌렸다. 그러자 벨라의 등 뒤에서 바닷물이 꿈틀거리더니 그녀를 그대로 물의 화살이 날아가는 바로 뒤로 밀어냈다.
"좋아. 간다아!!"
머메이드의 엘더가 만들어낸 거대한 물의 화살은 카벙클의 물거품을 뚫어냈다. 뒤따라 벨라가 미나가 만들어준 길을 따라 들어왔다.
그러자 카벙클은 안광을 깜박였고. 아직 부서지지 않고 남아 있던 물거품들이 전부 흉기로 변해갔다. 검. 창. 발톱. 둔기에 이르기까지의 불규칙한 흉기들. 그것들에게 공통점이 있다면 모두 벨라를 향해 있었다는 것 뿐. 그럼에도 그녀의 표정은 태연했다.
"칫. 이 정도는 예상하고 있었어."
불규칙한 흉기들이 그녀를 향해 날아왔지만. 벨라는 그것들을 신경 쓰지 않았다.
저 붉은 보석을 날려버린다면 마나 공급이 끊긴 저것들은 사라질 것이다. 현재 신경써야하는 것은 오직 하나. 앞의 괴물을 쓰러뜨린다.
'오직. 이 한방으로 끝낸다.'
운용이 가능한 모든 마나를 오른 발에 집중했다. 정확히는 발 끝.
그 순간. 그녀의 발끝은 점에 수렴할 정도로 농축된 마나로 인해 붉은 빛이 났고 그 사실을 모르는 카벙클은 그 모습에 의아한 듯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마나가 모임에 따라 그녀는 드래곤 하트에 뻐근함을 느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멈추지 않고 모왔다. 마력의 회오리가 그녀의 다리를 감싸 안았다.
"하아아앗!! <거짓된 용의 숨결>"
드래곤이 마나를 모와 브레스를 뿜는 것과 같은 마나 운용을 이용하여 <용의 숨결>을 인간의 육체로 재현해낸 그녀의 기술이었다. 그녀가 4세계 괴물 상대로 폴리모프로 본래 모습으로 되돌아가지 않고 이 기술을 쓰는 이유는 간단했다.
카벙클은 그녀가 아직 드래곤이란 사실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방심하면서 놀듯이 지금처럼 상대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폴리모프로 본래 모습으로 되돌아간다면. 앞의 괴물은 바로 적의를 들어낼 것이고 그 순간 그녀는 승산을 잃고 말 것이다. 하지만 방심하고 있는 지금이라면 이 한방으로 승산을 노릴 수 있다. 한없이 <용의 숨결>에 가까운 이 기술로!!
[_____!]
촤아아아아앗!!!
거대한 소음. 바닷물이 흔들렸다. 그녀의 발끝에서 시작된 마나의 빛이 뻗어나갔다. 앞을 가로막는 모든 것을 쓸어내리는 적색 마나의 파도.
그녀의 발이 차올라지는 순간. 그 끝의 농축된 마나는 카벙클의 머리를 향해 치솟아 올랐다. 그 여파에 그녀에게 날아오던 흉기들은 마나의 흐름을 이기지 못하고 물거품으로 부셔져 내렸고 <거짓된 용의 숨결>은 그대로 현재의 상황을 예상하지 못한 카벙클의 머리를 뚫고는 해저산의 위쪽으로 날아가더니 천장을 날려버렸다.
마나의 빛이 끝난 후. 그녀의 눈에 보인 것은 카벙클의 서서히 사라져가는 육체와 남겨진 머리 위에 있던 붉은 보석 뿐 이었다.
"해치운 건가..?"
"아니. 녀석은 도망갔다."
그녀가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언제 밑에서 올라왔는지 네메시스의 모습이 보였다. 네메시스는 차가운 표정으로 카벙클의 이마 위에 있던 붉은 보석을 집어 들었다. 붉은 보석은 그녀가 사용한 <거짓된 용의 숨결> 때문인지 금이 가 있었다.
"벨라. 4세계 괴물들은 쉽게 죽지 않아.
너의 기습으로 꽤 타격을 받은 것 같지만... 죽지는 않았을 거다."
"으..."
"그래도 4세계 괴물을 상대로 쫓아내기라도 한 것은 정말 대단한 거야. 자랑스러워해도 좋아. 근데... 이 녀석들은 여기에서 왜 자고 있는 거지?"
네메시스는 말을 끝내고는 쓰러져 있는 제우스와 말리고스를 향해 다가갔다. 곧 쓰려진 그들에게 몸을 숙여서 의식을 확인했다.
"자멸했어."
"....정말?"
"응."
네메시스는 단정 짓는 벨라의 말에 한숨을 길게 내쉬더니, 말리고스와 제우스를 툭툭 치면서 쓰려진 그들에게 말을 걸었다.
"말리고스. 식사시간이야. 그리고 제우스. 저기 아름다운 반라의 미녀가..."
""오오오!!!""
바보 둘이 다시 부활했다. 그 둘은 네메시스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벌떡 일어나더니 무언가를 찾는 듯이 주위를 두리번거렸고 그 모습에 기가 막힌 네메시스는 꿀밤을 그대로 그들의 머리에 한 번씩 때렸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벨라와 미나는 한심하듯이 지켜보았다.
"어라. 그 녀석은? 뀨웅?"
"벨라스트라즈와 미나가 쫓아냈어."
"응? 정말로? 666의 서열의 괴물이 아니어도 4세계 괴물일 텐데도? 대단해! 뇨롱. 그럼 벨라. 녀석에게서 '마나를 정제하는 장소'는 회수했어?"
"..'마나를 정제하는 장소'?"
그녀가 들어본 듯한 단어였다. 애초에 이곳에 그들이 온 이유 아니었는가?
이곳의 결계와 지대를 안정화 시키고, 갇혀 있는 이곳의 머메이드를 밖에 나갈 수 있게 해주기 위해서 찾아야하는 것.
그녀가 아는 듯. 모른 듯한. 애매한 표정을 짓자 말리고스는 날개를 퍼덕이고는 설명이 이어나갔다.
"응. '마나의 정제하는 장소'라고 이름 붙여져 있기만 하지만.
그것 자체는 그렇게 크지 않아. 뇨룡. 대충 주먹만 한 크기? 그리고 그 녀석 이마에 박혀 있던 것이 '마나를 정제하는 장소' 중 하나거든.
그것만 있다면 이곳 지대를 안정화 시킬 수.....
뭐야!? 네메시스. 그것이 왜 금이 나 있는 건데!?
말리고스는 네메시스가 던져 준 카벙클 이마에 있던 붉은 보석을 여기저기 살펴보더니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외쳤다. ‘마나를 정제하는 장소’를 살펴보는 말리고스의 얼굴이 시시각각 파랗게 질렸다.
"이거.. 큰일 났는데... 뀨웅..."
"...?"
"이제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이곳 결계가 곧 무너질 거야.
당장 밑으로 내려가 다른 '마나를 정제하는 장소'를 찾지 않으면... "
끼이이이이익!!!!
그 순간. 무언가 섬뜩하고 귀에 거슬리는 소리가 그곳을 메웠다. 소리가 들리는 곳은 그들의 위쪽. 벨라스트라즈가 <거짓된 용의 숨결>로 뚫어버린 천장 위였다. 천장 위로 보이는 하늘에 거대한 무언가가 '아쿠아마린'을 감싸고 있었다. 사파이아를 연상시키는 푸른색의 거체의 존재이자 현재 네메시스일행을 이곳으로 밀어버린 원흉. 레비아탄이었다.
그의 거체로 인해 아쿠아마린의 결계가 눈에 보일 정도로 금이 가 있는 것이 보였다. 당장이라도 부셔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수많은 선들이 그들이 보는 순간에도 눈에 띄게 늘어갔다.
[제우스!!! 거기 숨어 있다는 것 안다! 당장 나와서 죽어라!!!!!!]
"결계가...!!!"
끼이이잉!!!
“.....부서진다!?”
수 백 년 간 머메이드를 보호하고 아쿠아마린을 감싸는 결계가...
지금 이 순간. 무너지려고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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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러헉으헝헉컹럴허엏ㅇ!!!!!"
제우스는 현재 바다 속에서 위를 향해 치솟아 오르고 있었다. 그 와중에 제우스는 생각했다.
왜 자신은 지금 왜 위로 치솟아 오르는가...?
그리고 높이 떠 있는 아쿠아마린의 결계의 끝이 어째서 이렇게나 빨리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가..?
약간의 고민의 시간이 지난 후.
제우스는 현재의 상황의 원인인 인물의 이름을 떠올리고는 울부짖었다.
"네메시스!!!!! 이 개X식아아아아!!!!!!!!!"
인어들의 도시 아쿠아마린의 결계는 이미 제우스의 코앞에 있었다.
-----------정확히 3분 전------------------
쿵!!!!!!
푸른 빛 거체의 바다괴물 레비아탄이 아쿠아마린의 결계와 부딪히자.
도시 전체가 당장이라도 부셔질듯이 흔들렸다. 그것은 마치 거대한 신의 망치가 도시에 꽂힌 듯한 충격이었고 또한 그에 따라 결계의 금이 더더욱 숫자가 늘어났다. 그 모습에 네메시스가 미간을 찌푸렸다.
"결계가 약해지자마자 오는 군. 저 녀석. 그 동안 너를 기다렸나 본데?
어지간히 인기가 좋군. 제우스."
"아하하핫. 이 몸의 인기는 남녀 불구하고 통한단 말이야. 하하하핫!!!"
"장난할 때냐!? 말리고스. 결계의 지속시간 계산해봐."
"으.. 저 놈이 설치지 않으면 30분 정도...
저대로 두면 5분도 안 되서 결계가 무너지고 말거야. 그럼 모두가 수몰당하겠지..."
말리고스는 그 말을 하고 부르르 떨었고 일행들은 그 말을 듣고 지금 상황이 얼마나 위급한지 깨달았다. 벨라가 답답한지 말리고스 앞으로 나섰다.
"..현재 네가 들고 있는 '마나를 정제하는 장소'로 어떻게 할 수 없어?"
"무리... 이걸로는 끽 해야 결계의 지속시간을 늘리는 것 뿐.
복구에 써도 작은 구멍 정도가 한계.."
그 말을 끝으로 말리고스가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자. 이곳의 머메이드들의 엘더인 미나의 표정은 삽시간에 새파래졌고 벨라스트라즈의 표정도 좋지 않았다. 다만 네메시스만이 무언가 생각하는 듯이 턱을 괸 채로 있을 뿐이었다. 그는 잠시 후 입을 열었다.
"작은 구멍이라.... 그거면 충분해. 말리고스."
"?"
네메시스는 미나를 향해 고개를 돌리더니 물었다.
"미나. 여기 근처에 화산섬이 하나 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어디 있는지 대충 위치만 집어주겠어?"
"??"
미나는 갑작스러운 그의 질문에 어리둥절하면서도 손가락으로 '크레타 화산섬'이 있는 곳으로 가리켰고 그에 네메시스는 끄덕이더니 제우스를 불러서 자신의 앞에 세웠다. 그에 제우스는 의아한 듯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네메시스. 잠깐만. 뭐 하려는 건데?"
"크레타섬으로 너를 '순간이동' 시켜주지.
어차피 밖의 레비아탄 녀석은 너를 찾으로 온 거잖아? 그럼 원하는 것을 주면 되지."
"아!!"
벨라는 그 말을 깨달은 듯이 감탄사를 내뱉었다. 레비아탄의 첫 습격 때도 제우스를 노린 습격이었다. 만약 제우스가 이곳을 떠나면 더 이상 레비아탄이 이곳을 공격할 이유가 없어지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네메시스는 제우스를 결계 밖으로 '순간이동'시켜주려는 것인 것이다. 네메시스의 말에 제우스는 끄덕이더니 순순히 그의 앞에 섰다.
“말리고스. 제우스가 결계를 뚫자마자. 바로 복구시켜. 레비아탄은 제우스가 상대하고 나머지는 ‘마나를 정제하는 곳’을 찾기 위해 밑으로 간다. 아. 그리고 제우스.”
“.....?”
"좀 아플 거야."
제우스는 걱정하는 듯한 네메시스의 말에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텔레포트 하는 데에 고통이 따른다는 것인가? 그 순간 알 수 없는 불길한 예감이 제우스를 감싸 안았다. 하지만 네메시스가 자신을 결계 밖으로 보낸다는 사실은 틀림없었기 때문에 그런가 하고 넘어갔다. 그리고 제우스는 이 결정을 잠시 뒤에 땅을 치며 후회하게 되었다.
찰랑.
"우와. 다리 달린 오빠. 날개다. 천족이에요? 아니다. 검은색이 있으니 마족? 신기해요! 둘 다 있으니 혼혈인가요?"
!!!!
제우스가 천 년 만에 듣는 네메시스의 날개 피는 소리였다. 그 소리에 제우스가 느낀 것은 당혹감과 그리고 무언가 일어날 것 같은 강한 불안감이었다.
'어째서 지금 이 순간. 네메시스가 왜 날개를 피는 거지.....?'
"잠깐만. 네메시스! 여기서 '날개'를 왜 피는 건데? 그것도 두 장이나? 게다가 그 날개들 텔레포트 하는데 전혀 필요 없잖아!?.... 그리고 네메시스. 그 자세는 뭐야...."
마치 예전에 4세계 서열 14위 괴물 레퀴엠의 <모든 것들은 핏빛으로 사라져라>를 맞았을 때 같은 불길함이었다. 제우스가 고개를 뒤돌려 네메시스를 보았을 때는 네메시스가 꺼낸 상반된 두 속성의 날개와 무언가를 힘껏 걷어차려 듯이 다리를 뒤로 뺀 네메시스의 모습이었다.
제우스와 눈이 마주친 4세계의 괴물들의 왕은 입 꼬리를 들어 올렸다.
"난 '순간이동'이라고 했지 텔레포트라 한 적 없다. 제우스."
"...너어 너너너... 설마!!!! 설마 내가 생각하는 것이 아니...."
콰앙!!!!!!
"으갸갸갸갸갸갸갸갸갸갹!!!!!!"
네메시스의 딱 자른 말에 제우스의 불안감 게이지가 끝에 도달했다. 애초에 이곳은 공간 계열 기술이 방해 받는 곳이다.
그렇다면 네메시스가 말하는 '순간이동'이란 무엇을 의미 할까? 답은 매우 간단했다. 순수한 물리력으로 '순간이동'이란 현상을 만들어낸다.
그 생각까지 이르자. 제우스는 황급히 도주를 하려고 하였으나 그 전에 네메시스의 발이 그의 엉덩이를 걷어찼다.
제우스가 그에게 차여진 순간. 그를 둘러싸고 있던 물의 막은 산산 조각나버렸고 제우스의 몸은 비명과 함께 수많은 물보라 일으키며 문자 그대로 하늘을 향해 치솟아 올랐다. 미나가 손가락으로 가리켰던 방향으로. 제우스는 하늘로 치솟아 오르면서도 그들의 말이 들렸다.
"저기. 다리 달린... 아니. 날개 달린 오빠. 저거 위험한 거 아니에요?"
"괜찮아. 저 녀석은 무슨 짓을 하든지 죽지 않거든. '크레타 화산섬'의 단단한 현무암에 부딪혀도 현무암이 다치지. 저 녀석이 다치는 일은 없어."
머메이드의 엘더인 미나가 올라가는 제우스를 보며 걱정하는 듯이 네메시스에게 물었지만. 그는 어깨를 으쓱였을 뿐이었다.
"...붉은 머리 언니. 저 오빠 말은 사실이에요?"
미나가 어린아이의 순수한 눈빛으로 벨라를 바라보았지만. 그녀는 하늘로 치솟는 제우스에게서 시선을 거두고는 미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제우스에 대한 걱정이라고는 드래곤 발톱에 낀 때보다 없는 편안한 표정이었다.
"응.. 방금 봤잖아. 금방 부활하는 거. 그러니 우리는 '마나를 정제하는 장소'나 찾으로 가자."
"맞아. 제우스 따위를 신경 쓸 때가 아니야. 뀨웅. 빨리 찾아내서 결계를 복구해야 해!
안 그럼 제우스의 희생이 의미 없다고!"
일행들이 하늘로 치솟는 자신을 무시 한 체 아래로 내려가는 모습을 제우스는 보았다. 자신 따윈 안중에도 없다. 그나마 미나라는 머메이드 꼬마가 자신을 생각하는 듯 뒤로 힐끔거렸지만..
곧 아래로 내려가는 네메시스를 뒤따라 사라졌다. 그들의 냉정한 모습에 제우스는 왠지 물속인데도 눈에 물기가 흘려 나오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착각일까? 아니 반드시 착각이여야 한다. 주신으로서 겨우 이런 것으로 울면 안 되겠지. 그리고 잠시 후 그는 아쿠아마린 결계에 충돌했다.
"ㅇ리다하다하더로호돗ㄱ!!"
결계에 몸으로 들이받는 충격에 그는 말조차 제대로 안 나온 듯. 비명을 내지르고 의식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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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룩! 끼룩!
크레타 화산섬에 살고 있는 갈매기가 바다 위를 비행하다가 무언가를 찾은 듯. 천천히 화산섬을 선회하고는 밑으로 내려왔다.
툭. 툭.
꿈틀!
현무암에 머리가 처박혀 있는 누군가가 보였다. 겉보기에는 죽었다고 봐도 되는 듯한 모습이었지만 의심 많은 갈매기는 그의 주위를 맴돌다가 움직임이 없자 그를 쪼았다. 그에 제우스는 정신을 차린 듯이 꿈틀거렸고 그에 갈매기는 화들짝 놀라 하늘로 날아갔다. 갈매기가 사라진 후. 제우스는 현무암에 박힌 자신의 머리를 빼냈다.
"으윽... 육지로 돌아오기 돌아 왔구만.... 네메시스 망할 자식! 보내줄려면 곱게 올려 보내 주든가!!!!"
제우스는 자신을 걷어차서 올려 보낸 네메시스를 생각하며 투덜거리고는 머리를 털었다. 그러자 현무암 조각들이 바닥에 떨어졌고 잿빛으로 변한 그의 금발 중 일부가 들어났다. 그 순간 푸른 바다에 검은 그림자가 생겼다.
[제우스!!!!!!!!]
촤아아아아악!!!!!
제우스가 있는 화산섬의 2배는 되는 듯한 거대한 크기의 존재이자 푸른 사파이어를 연상시키는 푸른 몸체를 가진 바다괴물. 레비아탄이었다. 그것은 물속에서 올라오자마자. 눈알을 대굴대굴 굴렸고 곧 자신이 찾고자 하는 존재를 찾아냈다.
[흐흐흐흐. 네 녀석이 도망간다고 내가 못 쫓아 올 줄 알았는가? 올림푸스의 왕이여?]
레비아탄이 즐거운 듯이 이빨을 드러내며 제우스를 보았지만. 정작 그는 레비아탄이란 존재에서 신경을 거둔 채로 젖은 옷에서 물기를 털어내고 있었다.
마치 앞의 레비아탄은 자신과 전혀 상관없는 듯한 태도였다.
[포기한 거냐? 제우스.]
"....하아..."
물갈퀴가 달려 있는 레비아탄의 거대한 꼬리가 바다 속에서 올라왔다. 제우스는 그제야 옆에 레비아탄을 보았지만 그는 한숨을 한번 쉬더니 다시 제 할 일을 하기 시작하였다. 그 반응에 레비아탄은 제우스가 마음에 안 드는 듯이 목에 가래 끓는 듯한 소리를 내뱉었다.
[크르르릉... 절망했느냐? 그럼 절망한 채로 죽어라.]
레비아탄의 꼬리가 크레타 화산섬 전체를 빗자루로 바닥 쓸듯이 휘둘러졌다. 족히 수십 미터는 되는 꼬리가 바닥에 있는 바위들을 부수며 제우스를 향해 날아갔다.
레비아탄은 이 일격으로 앞의 폐인이 되어버린 제우스 따위를 한 번에 즉사 시킬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제우스는 과거 천 년 전 전쟁에서 패배한 뒤 폐인이 되어버렸다고 알려져 왔고. 처음 배 위에서 만났을 때도 거의 죽기 직전의 모습이었으니까!!
쾅!!!
제우스에게 휘둘려진 꼬리가 그와 부딪히자, 레비아탄은 으깨져서 날아가는 제우스의 모습을 상상하며 기분 좋은 듯이 이를 드러냈지만, 곧 당혹스런 표정을 지었다. 꼬리가 제우스가 있던 자리에서 전진하지 못한 체 멈추어진 것이다.
[뭐라고!? 어... 어떻게!?]
"정말이지... 자기 주제도 모르고..."
팡!
꼬리 밑에서 스파크 틴 듯한 작은 소리가 들리더니, 그 순간 레비아탄의 거대한 꼬리가 사라졌다. 아니. 정확히는 분쇄되었다. 꼬리가 있었던 곳 중심으로 레비아탄의 꼬리에 있던 피와 육편이 사방에 뿌려졌다.
[으아아아아아악!!!]
"오랜만에..."
제우스는 레비아탄의 피와 고기가 묻은 채로 그 자리에서 일어났다. 레비아탄의 피로 몹시 더러워져 있는 모습이었지만 제우스는 즐거운 듯 자기 입술에 묻은 레비아탄 피를 혀로 핥았다. 그 모습에 레비아탄은 고통에 울부짖는 것도 멈추고 굳었다.
자신이 알던 폐인 제우스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것은...
"느끼는 괴물들의 피 맛이구나. <아스트라페>!!!"
그의 전격의 창이 제우스의 손에 모습을 나타났다. 제우스는 그것을 어깨에 걸치고는 천천히 레비아탄을 향해 다가갔다.
[!!!!!]
위험한 예감이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현재의 제우스는 매우 위험했다.
그의 현재 모습에 레비아탄은 과거 수많은 괴물들을 도살했던 최강의 주신이었던 제우스의 모습이 떠올랐다. 자신은 바라보지도 못했던...
이 세상의 모든 괴물들을 죽여 왔던 올림푸스의 왕. 그제야 레비아탄은 위기감을 느끼고 물로 돌아가려고 움직였다. 하지만...
"<뇌옥>!!!"
[으아아악!!!]
도망가려는 레비아탄의 모습에 제우스는 표정을 구기더니 손가락이 튕겼다. 그에 반응하듯이 하늘에서 수십 개의 전력의 기둥이 그대로 레비아탄의 몸에 박혔다.
그 순간. 바다로 당장이라도 뛰어들려 듯이 움직였던 레비아탄의 움직임이 굳었다. 레비아탄은 몸속에 흘려들어오는 고통에 몸부림치려고 하였으나. <뇌옥>은 그런 행동조차 하지 못하도록 그의 움직임을 봉쇄했다.
[크어어억... 너는 더 이상 최강 따위가 아닐 텐데!! 그런데 어째서?]
"그래. 레비아탄이라고 했나? 확실히 네 말대로 나는 더 이상 최강 따위가 아닐지도 모르지.. 하지만 말이야..."
그는 즐거운 듯이 흥얼거리더니 레비아탄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그대로 <뇌옥>으로 굳어 있던 레비아탄의 몸에 '아스트라페'를 꽂아 넣었다. 그에 레비아탄의 비명소리가 크레타 화산섬에 울려 퍼졌다.
"약해 빠진 네 녀석 따위가 해할 만큼. 약해지지도 않았어."
살이 타는 역한 냄새가 주위에 퍼졌다. 어느 정도 익을 때 쯤. 제우스는 창을 뽑고는 레비아탄의 머리가 있는 쪽으로 창을 쥐고 있지 않는 손을 뻗었다.
그러자 거대한 레비아탄의 머리는 그의 손에 빨려가는 듯이 지상에 끌려 내려왔다. 제우스는 레비아탄의 머리 앞에 서고는 눈을 맞추었다.
"네 놈이 '세계 간의 경계'를 어떻게 넘었는지 말하지 않으면 고통스럽게 죽여주마.
하지만 곱게 말한다면... 내가 자비를 베풀어서 한 번에 죽여줄게."
제우스는 말을 마치고는 바로 창을 레비아탄의 눈에 찔려 넣었다. 그에 제우스의 얼굴에 피가 튀겼고 레비아탄의 비명소리가 다시 한 번 더 크레타 섬에 울려 퍼졌다.
"난 네메시스처럼 정보를 빼낼 능력이 없지만 말이야. 진실과 거짓 정도는 구별 할 수 있어. 그러니까 말이지... 네 녀석이 거짓을 말하면 매우 재미있는 것을 보게 될 거야.
기대해도 좋아."
레비아탄의 눈에 박힌 전격의 창이 헤집듯이 휘저어졌다. 그에 레비아탄은 고통에 비명만 지르면서도 제우스의 모습에 공포를 느꼈다. 저것은 주신 따위가 아니다.
오히려 4세계 괴물들에 가까운 미친 존재이다. 인간성이나 도덕성이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고 남의 고통을 즐기는 자. 부셔진 꼬리의 고통이나 지져지고 있는 눈의 고통보다 그런 제우스의 모습이 더욱 무서웠다.
[으아아아악! 넌 미쳤어! 제우스!!!!!]
"아. 미첬다라... 맞는 말이야...
이봐. 친구. 혹시 생각해 본 적 있어?"
제우스는 즐거운 듯이 전격의 창을 레비아탄의 눈에서 뽑아내자. 레비아탄의 피가 제우스의 발목을 적실 정도로 폭포수처럼 흘려 나왔다. 하지만 레비아탄은 비명을 더 이상 지르지 못했다. 그는 보았다. 제우스의 얼굴에서 권태와 끝없는 광기가 흘려 나온 것을...!
마치 4세계 괴물들처럼...
"모든 세상의 미친놈들을 모여진 4세계의 괴물들과, 수많은 우주가 만들어지고 파괴되는 시간 동안 창조주가 명한 명령을 끊임없이 수행해 와서 영혼이 마모되고 권태에 젖어 있는 주신들. 어느 쪽이 더 미쳤을 것 같아. 레비아탄?"
[.....!!!!]
"나는 말이지...후자 쪽도 만만치 않게 미쳤다고 생각하는데 말이야.
너는 어때...? 응? 대답해봐."
레비아탄은 콧노래를 부르며 다가오는 제우스의 모습에 저항을 포기했다. 앞의 존재는 자신이 저항 한다고 되는 존재가 아니었다. 오히려 자신을 빨리 죽여주기를 그는 희망했다.
앞의 올림푸스의 왕이자. 파괴의 주신은... 4세계 괴물들처럼 미쳤으니까. 아니 어쩌면 그 이상일지도... 그것을 마지막으로 레비아탄의 기억은 끊겼다.
그 날 크레타 화산섬의 주변의 바다가 붉은색으로 물들여졌다. 피비린내가 짙게 나는 어느 바다괴물의 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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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세계 파괴의 주신 제우스 : 창조주로부터 속성 '파괴'를 받은 존재로. 그가 창조주로부터 받은 명령은 '세상에 해가 되는 악의 말살'이다.
그는 그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주신에 대항하는 괴물, 악신 기타 등등. 심지어 위협적일 정도로 성장한 2세계의 과학 문명까지 깨끗이 '정화'시켰으며 '악'을 멸하기 위해 '세계 간의 경계' 넘어 다니면서 죽인 괴물들의 수가 4세계 괴물들의 절반이 될 정도로 엄청난 숫자의 '악'을 제거하였다.
이 때문인지 그는 주신이면서도 정신이 피폐한 존재며 그가 정신적인 안식처로 선택한 곳은 여인의 품속이다. 그렇기에 그는 바람기 섞인 활발한 성격과 '악'들을 죽이는 반쯤 미쳐버린 모습의 이중적인 모습을 가지고 있다. 또한 그는 네메시스에게 패배하기 전까지는 8주신 중 최강의 존재로 괴물들의 공포가 된 주신이었다.
-4세계 서열 500위 가렌의 개인도서관에 꽂힌 어느 책의 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