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화 〉제 38화 세레나의 아르바이트
네메시스가 서 있는 크레타 화산섬에는 피 냄새가 가득했다.
마치 지옥에 있는 피의 강에서 흘려 나온 듯한 수많은 양의 피들.
그는 그곳을 걸으면서 더럽혀져가는 자신의 옷에 불쾌감을 느꼈다.
곧 그는 멈추어 서더니 앞에 있는 언덕 위를 올려다보았다.
"거기에 있었군. 제우스."
거무스름한 현무암 돌로만 이루어진 크레타 화산섬을, 피범벅으로 만들어버린 장본인이 거기에 서있었다. 드림랜드의 고유의 창백한 푸른 달을 등진 채.
그는 아쿠아마린에서 올라온 네메시스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왔어? 친구."
그가 네메시스를 향해 미끄러진 듯이 내려오자. 주변에 널린 잘잘한 고깃덩어리가 스파크에 검에 타들어갔다.
제우스는 무엇이 즐거운지 실실거리며 웃고 있었고 그의 몸은 주변에 널린 피 같은 것은 한 방울도 묻어있지 않은 채로 고유의 건강미 있는 근육을 들어내고 있었다.
"그래. 아래에서는 재미 보셨나? 네메시스."
엉덩이를 걷어찬 것에 앙심이 남아 있는 듯한 말투였다. 그 모습에 네메시스는 양심이 찔리는 것을 느꼈지만 능청스럽게 받아넘겼다.
"아아. 매우 좋은 시간을 보내고 왔지."
네메시스를 바라보는 제우스의 표정이 굳었다.
'나는 이렇게 힘들게 있었는데. 너는 놀고 있었냐!?' 듯한 표정. 마치 지금이라도 네메시스의 엉덩이를 차버리고 싶은 표정이었다. 네메시스는 그의 표정에 입 꼬리가 올라가는 것을 느끼면서도 표정을 최대한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아쿠아마린은 안전해. 결계는 자연 소멸 되었고 지대는 현재 말리고스가 안정화시키는 중이야. 이제 그곳은 앞으로 머메이드들이 하기에 따라 발전하거나 혹은 쇠퇴하겠지."
"흐음? 그래? 이쪽은 재미있는 정보를 알아냈어."
"재미있는 정보?"
"응. 레비아탄 녀석은 자기 힘으로 1세계로 넘어온 것이 아니었어.
죽기 전에 녀석이 한 말에 따르면 이곳으로 소환 됐다고 하더군. 그것도 인간의 손에."
"...."
'세계 간의 경계'를 넘는 것은 일반적인 생물로는 힘든 일이었다. 그리고 레비아탄정도의 거대한 생물체를 이곳(1세계)로 소환하려면 얼마나 많은 '마나'가 필요할까? 적어도 '아쿠아마린'의 결계를 유지하는 마나보다 더 많은 마나가 들어갔을 것이다.
"녀석은 이곳으로 소환된 직후.
초승달이 그려진 책을 들고 있던 마법사를 보았다고 하더군.
아마... '달의 책'같아. 지난번에 만났던 2세계의 인간(월검향)도 그걸 통해 이곳으로 소환된 거겠지."
"역시나 인가....?"
"응? 알고 있었어?"
제우스는 '달의 책'이란 단어에 별 반응 없는 네메시스의 모습에 고개를 갸우뚱했지만. 곧 네메시스가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내 바닥에 던지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라.. 그것은...."
"'밑에서 찾아낸 달의 책 ‘사본’이야. 아마 수 백 년 전 쯤부터 만들어진 것 같더군."
"....."
제우스는 땅에 떨어진 '달의 책' 사본을 들어올렸다. 살짝 충격만가해도 찢어져버릴 듯한 낡은 책. 그가 조심하면서 페이지를 넘기자 가루가 흩어졌다.
"4세계 괴물들에 대해 적혀있는 페이지군.. 그것도 개인적인 의견도 더해서.
아마 이 책은 플로라가 달의 책을 잃어버린 이후에 만들어진 것 일려나?”
제우스의 말에 ‘달의 책’이 끝까지 자신을 속 썩이는 물건이라고 네메시스는 생각했다.
마지막에 남은 '네메시스의 자식'이 자신을 죽이기 위해 만든 최후의 물건. 하지만 그 시도는 실패했고 그들은 모두 자신과 플로라의 손에 살해당했다. 그리고 '달의 책'은 플로라에게 소유권이 넘어가게 됐었다. 하지만...
"....정말이지. 내가 싫어하는 기억만 되살아나게 하는군."
‘그 일’이 벌어졌다. 플로라는 그때 켈렌트에 의해 큰 상처를 입게 되었고 그로 인해 4세계 괴물과 주신들의 전쟁은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이후 달의 책은 이 세계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잠시 후 제우스는 책을 덮더니 네메시스를 노려보듯이 보았다. 평소 능글능글한 모습은 한 줌도 찾을 수 없는 진지한 모습. 주신으로서의 일을 행할 때의 그의 표정이었다.
"달의 책의 등장으로 인해. 우리(주신)들과 너희(4세계 괴물)들이 1세계 간섭할 대의명분이 생겨버렸어.
아마 켈렌트. 그 꼬맹이 녀석이 달의 책이 1세계에서 다시 나타난다는 말을 들으면 거품을 물고 쓰러질걸?"
'달의 책'을 만든 것은 언제까지나 4세계의 괴물. 따라서 기본적으로 회수 권한은 4세계 쪽이지만 주신들 입장에서도 각 '세계 간의 경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기능이 있는 '달의 책'은 반드시 제거해야하는 물건이다. 따
라서 양측 다 '달의 책' 회수라는 명분으로 1세계로 올 수 있게 되어버렸다. 아마 이 사실이 퍼지면 1세계는 화약고가 되어버리겠지. 그것도 화재가 일어나서 언제라도 폭발할지 모르는 화약고가...
"나야. 관심 없지만. 너는 어떻게 할 거야? 4세계의 왕?"
그 말과 동시에 제우스의 손에 있던 '달의 책' 사본이 불길에 휘감겼다. 네메시스는 재로 변해가는 '달의 책' 사본을 감정 없는 눈으로 바라보다가 제우스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이쪽도 찾아다닐 생각은 없어. 이번 여행의 목적은 그런 것 따위가 아니니까. 그리고..."
"...그리고?"
"달은 책은 스스로 나를 찾아올 거야.
애초에 나란 존재를 죽이기 위해서 만들어진 물건이니까."
--------------------------------------------------------------------
아스카나의 마법사가 도착한 곳은 한 권의 책이 놓여있던 작은 방이었다. 방 중앙에는 초승달이 그려진 사전만한 두꺼운 책 한 권과 작은 단검이 놓여 있었다. 그는 ‘달의 책’의 앞에 도달하자 바로 단검을 집어 들었다.
푹.
그는 왼손 팔뚝을 달의 책 위로 놓은 채로 망설임 없이 단검을 팔에 찔려 넣었다. 그의 상처에서 나온 피가 달의 책에 떨어지자 책의 표지에 그려진 초승달이 붉게 물들였다. 그 변화에 아스카나의 마법사는 미소 지었다.
"월검향이 ‘드래곤 하트’를 구하기 위해 이동하면서 생길 일"
그의 말에 앞에 있던 '달의 책'의 페이지가 스스로 넘어간다. 그 순간 그는 머리가 어지러운 것을 느꼈다. 달의 책에 쓰인 수많은 지식이 자신의 머릿속을 빠르게 지나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느 순간 달의 책은 페이지 넘기는 걸 멈추었다. 아무것도 없는 페이지였다.
그에 그가 머리를 내밀어 더 가까이가자 검은 색 잉크가 꿈틀거리더니 하나의 문장을 완성해냈다.
[월검향... 아스카나에서 루에네 마을 이동 중에 '???'와 전투 후 패배.]
"뭐!? 월검향이 졌다고? 이게 무슨!?"
그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드래곤과의 전투로 패퇴한다면 이해할 수 있지만.
가는 도중에 전투 후 패퇴라니? 그는 자신이 아는 1세계의 어떤 인간보다도 강한 존재다. 월검향을 패퇴 시킬 정도의 존재는 1세계에는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이에 아스카나의 마법사는 의아해했으나 달의 책은 페이지가 넘어가더니 또 멈추었다.
[다음 지역... 신성제국의 '블러드 토너먼트'에 참가. 이번에도 '???'와 전투 후 패배. 그 이후 아스카나로 복귀.]
"....‘???’가 도대체 누구지? 찾아봐.”
[검색 중.... 1세계. 2세계. 3세계. 현재 존재하는 모든 종족 중 검색.... 일치 종족 없음. 정체불명...]
그는 미간이 좁혀지는 것을 느꼈다. 그 동안 자신의 모든 질문을 답해주었던 달의 책이다. 그런데 처음으로 정체불명이라니? 결코 있을 수 없는 일 아닌가?
그는 점점 무언가 이상한 것을 느꼈다.
"달의 책. 이세상의 모든 지식을 기록하는 네가 모른다고? 가장 가까운 존재를 찾아봐!"
달의 책 페이지가 빠르게 앞쪽으로 넘어가지기 시작했다.
잠시 후 첫 페이지에 이르자 멈추었다. 조금 찢어지고 낡아있는 듯한 페이지이었다.
[....검색 중. 가장 가까운 대상자... 1011년 전의 주인님을 죽인......오류..오류.... 복구 중...]
"1011년 전...?"
그는 연도에 의아함을 느낀 것을 느꼈다. 거의 '천 년 전 전쟁' 전쟁이 터지기 직전 아닌가? 그때의 주인이라면 달의 책에게 과거에 들은 적이 있다.
분명 '네메시스의 자식' 중 한명인 걸로...... 그리고 그 주인을 죽인 것은.... '그' 일 텐데?
[Nemesis가 ‘???’와 가장 가까운 존재입니다. 정확도 99.99999...%. 물론 순환 소수 입니다. 4세계의 666위 괴물 중 1위. 탐식의 네메시스.]
"말... 말도 안 돼.. 4세계 괴물들의 왕이 다시 1세계로 돌아왔다고?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는 달의 책에 쓰인 글을 보자 자기도 모르게 뒤로 주저앉아버렸다. 생각하던 것보다 너무나도 큰 거물이 나와 버렸다. 하지만 잠시 후 그는 미소 짓더니 벌떡 일어섰다.
"그분을 설득 할 수 있다면...."
4세계 괴물들의 왕. 그 존재라면 자신의 '실험'을 이해하고 적극적으로 지지해줄지 모른다고 그는 생각했다. 또한 어떻게든 그가 자신을 돕게 할 수 있다면 드래곤하트와도 비교되지 않는 '연료'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
"네메시스. 저쪽 식당으로 가보는 것은 어때?"
"오히려 이쪽이 낫지 않을까요? 벨라."
"에에? 저 식당이 뭐 어때서 그래?"
웃고 대화하는 일행들이 그녀의 눈에 보였다. 식사를 할 식당을 정하고 있던 벨라스트라즈와 람히르였다. 그리고 그 둘에게 팔이 잡힌 채로 끌려가고 있는 또 한명...
"네메시스님은.." "어디로 갈 거야?"
"음. 뭘 먹든 상관없지만.. 먼저 이 팔 좀 놓아주면 좋겠군."
“싫어.”
그들의 행동이 눈에 띄는지 근처에 지나던 수인과 인간들이 모두 시선을 집중하는 것이 보였다. 확실히 그들의 모습은 눈에 띄니까.
평범한 자신과 다르게...
".....휴우"
너무나 잘 어울리는 이들이었다. 자신 같이 평범한 엘프가 끼어들기에는 애매한..
오히려 자신이 들어가면 저들이 어색해질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난... 이 일행에서 별 의미 없는 건가?’
그녀가 태어나고 자라난 ‘실버게이트’를 떠나면서 자신은 저 남자에게 너무 의지해버린 것 같았다. 상당히 많은 부분을... 실버 게이트 때도..
현재는 일행이 되어버린 레드 드래곤 벨라스트라즈와 전투 때도. 그리고 블러드 토너먼트 때는 기억나지 않았지만. 의식을 잃었던 그녀가 깨어났을 때는 그는 옆에 있었다.
정말이지... 쓸 때 없이 착한 남자였다.
"칫. 이래서야.. 갚을 수도 없잖아요.."
만난 시간도 얼마 안 됐는데. 너무 많은 것을 받아버린 것 같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툭. 툭.
세레나가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쯤.
누군가가 그녀의 옷깃을 잡아 당겼다. 그에 그녀가 상념에서 깨어나 고개를 돌리자. 익숙한 곱슬머리 금발이 보였다.
"...제우스?"
쉿.!
"...?"
제우스는 그녀와 눈이 마주치자 손가락을 입으로 가져갔다. 아무 말도 하지 마라는 행동이었다. 그에 그녀가 의아한 표정을 짓자. 제우스는 그녀를 천천히 잡아끌었다.
-------------------------------------------------------------------
제우스가 데려간 곳은 그들이 있던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골목이었다. 그곳에 다다르자 그는 벽에 등을 기댄 채로 세레나를 바라보았다.
"세레나. 요즘에 네메시스가 관심을 가져주지 않아서 삐졌나 봐?"
"....무.. 무슨!!! 그게 무슨 소리에요! 전 그 남자랑 아무 사이도..."
'나는... 정말로 그 남자와 아무 사이도 아닌 건가...?'
제우스의 말에 세레나는 흥분한 듯이 말했지만 곧 뒷말을 흐렸다. 그녀가 침울해진 모습을 보이자 제우스는 싱긋 웃었다.
"아아. 연애를 시작한 어색한 커플을 보는 것만큼 재미있는 것은 없지.
내 앞에서는 다 털어 놓으라구. 네메시스에겐 한 마디도 안 할 테니까. 쿠큭."
"이익!! 그딴 것은 필요 없어요! 이곳으로 부른 이유나 말해요."
"아. 그거? 쨘~"
제우스가 건넨 건. 전단지 두 장의 전단지이었다. 하나는 급히 아르바이트 해줄 점원을 구한다는 전단지. 또 하나는 선물 가게의 상품에 대해 쓰여 있는 전단지였다. 제우스는 어리둥절 하는 세레나를 향해 한 쪽 눈을 찡그렸다.
"아르바이트로 네메시스에게 줄 선물을 사보는 것이 어때?"
--------------------------------------------------------------
"네메시스. 헤어져요."
"...?!!!!"
그녀의 갑작스런 폭탄발언에 다른 일행들이 식사하는 것도 멈추고 놀란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다만 제우스만은 예상한 듯이 눈웃음을 짓고 있었고. 네메시스는 눈에 띄게 당황한 모습을 하였다.
"....잠깐? 뭐라고!? 잠깐잠깐잠깐!! 세레나. 내가 최근에 잘못 한 일 있어?
일단 진정하고..."
"아하하하핫. 천하의 네메시스가 이렇게 차이는 건가? 이거 3D안경에 팝콘인데? 하하하하.... 커억!"
네메시스의 옆에서 웃고 있던 제우스의 얼굴이 갑자기 탁자 위에 있던 그릇에 박혔다. 그는 꽤 아픈지 꿈틀거리며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고. 그가 네메시스에게 맞는 모습을 보지 못했던 세레나는 의아한 듯이 그를 잠깐 바라보았지만 곧 시선을 네메시스를 향해 돌렸다.
"딱히 그런 것은 없어요.
다만... 3일 정도만 헤어져 줘요."
"세레나....네가 원한다면 어쩔 수 없지만..."
"그럼 3일 뒤에 이 식당에서 다시 만나요."
그 말을 끝으로 그녀는 몸을 돌려 그들이 있던 식당을 빠져나갔다. 그 직후 그녀는 전단지에 적혀 있던 곳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아르바이트생을 구합니다. 3일 간 1골드. 단. 여성이면서 빈.유. 일 것....]
전단지의 적혀 있는 식당이었다, 수인섬의 특유의 나무로 지어진 조잡한 작은 식당.
손님은 없는지 한산해 보였다. 그리고 문에는 그녀가 제우스에게 받은 전단지와 같은 전단지가 붙여 있었다. 특히 ‘빈유’라는 부분은 강조하는 듯이 굵게 써져있었다. 그 글귀에 그녀는 흠칫. 하면서 자신의 가슴을 내려다보았다.
"...."
작았다. 제우스가 왜 이 전단지를 갔다 줬는지 알 만큼 작았다.
그 반면에... 네메시스의 옆에 있는 벨라스트라즈나 람히르의 가슴은........
곧 그녀는 부정한 듯이 고개를 양 옆으로 세차게 흔들었다.
"아. 아니야!!! 내가 작은 것이 아니야!!!! 하지만... 해변에서 람히르는 정말 컸지.... 이이이이이! 결코 내가 부러워하고 있는 것이 아니야!!!!!!"
그녀는 당장이라도 되돌아가서 이 식당의 전단지를 준 제우스를 때려눕히고 오고 싶은 충동이 강하게 들었지만. 그녀는 그 충동을 입술을 깨물며 이겨내며 앞의 식당 안으로 들어섰다.
"음? 손님인가?"
식당 안의 ‘그’를 보는 순간. 그녀는 발걸음을 멈추었다. 여유로운 분위기가 풍기는 한 수인이 있었다. 묘하게 익숙한 느낌이 드는 존재였다.
마치.. 과거에도 친분에 있는 듯한 느낌이랄까...? 또한 그 남자에게서 네메시스의 몸에 베여 있던 익숙한 냄새가 났다. 그에 그녀는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발걸음을 옮겨 그의 앞에 섰다.
"아르바이트를 하러왔어요."
"호오... 정말로 조건에 맞춘 인재가 올 줄은 몰랐는데.."
그가 탐색하는 듯이 위아래로 세레나를 살펴보더니 곧 만족한 듯이 미소를 지었다. 보는 것만으로 마음속이 따뜻해지는 미소였다.
"좋아. 합격. 4세계 서열 199위. '방랑자 하은'이야. 앞의 칭호는 딱히 신경 안 써도 돼.
고향에서의 습관이라서... 그리고.."
4세계란 단어에 그녀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일행들의 대화중에 드문드문 그녀가 들은 듯한 단어였다. 그녀가 다시 그를 바라보자. 하은의 등 뒤로 아까 보이지 않았던 꼬리들이 살랑거리는 것이 보였다. 이곳에서 봐왔던 어떤 수인에게도 없었던 9개의 꼬리. 그는 그녀의 시선에 익숙한 듯이 그녀가 보란 듯이 자신의 꼬리를 쓰다듬었다.
"종족은 구미호지. 수인섬에 있는 수인의 한 종류라고 생각하면 편할 거야.“
끝으로 ‘뭐. 수인은 아니지만’이라고 그는 작게 중얼거렸다.
“그럼 앞으로 잘 부탁해. 점원씨."
“네!”
그렇게 그녀의 아르바이트가 시작되었다. 구미호라고 자칭한 이상한 수인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