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화 〉제 40화 그가 괴물이 되기 전
피로 물든 기억이었다. 수많은 요괴의 피로 물들여진 작은 언덕. 그 위에 ‘그녀’는 있었다. 그녀는 그곳과 어울리지 않는 차이나드레스를 입은 채 자신을 봉인에서 꺼낸 존재를 올려보았다.
"하..하은 오빠...? 오빠가 날 분명 봉인 했을 텐데.. 설마. 오빠가 이것을? 왜!... 날... 윽....!
"달기..."
그녀는 제 몸조차 가누기 힘든 듯이 한발자국을 떼자 그대로 쓰려졌고 하은은 그런 그녀를 부축했다. 그녀는 그가 자신을 부축하자 하은을 노려보았다. 마치 힘만 있었으면 당장이라도 밀어내듯이 으르렁거렸다.
"다시 날 봉인해줘! 안 그럼 다시 난.. 본능에 따라 일족들을 해칠 거야. 어서..!"
"...달기. 미안하지만 상황이 바뀌었어."
"?"
"우리 일족이 모두 죽었다. 너와 나 빼고"
"....뭐?"
하은의 덤덤한 말에 달기는 무언가 잘못 들은 듯이 자신의 귀를 파더니 다시 그를 바라보았다.
"우리 일족만이 아니야. 우리 '요괴'란 종족 전체가 '그'에게 살해당하고 있어. 지금 드래곤 캐슬의 용의 여왕이 직접 나서서 그를 막고 있지만 시간 끌기가 한계야."
하은은 달기에게 설명하면서도 저 멀리 몰려오는 비구름을 향해 날카롭게 시선을 던졌다. 저 구름들은 '그'가 나타날 때마다 나타나는 현상들이었다. 그리고 그것들은 하은과 달기가 있는 방향으로 향해 눈에 띄게 다가오고 있었다. 하은은 달기의 손목을 잡고는 일으켜 세웠다.
"빨리 이곳에서 벗어나야 해."
하은은 그 말을 끝으로 그녀를 손목을 잡고 끌고 갈려고 했지만 그 손을 달기는 쳐냈다.
"...잠깐. 오빠! 도대체 무슨 소리야! 제대로 설명을 해봐!"
"네가 봉인 되어 있는 동안 시온인 '그'가 미쳤다."
뜻밖의 말에 달기는 고개를 갸우뚱하였다. 그녀가 기억하는 시온은 3세계를 다스리는 주신 중 하나이자 그들(요괴)의 어머니나 다름없는 존재로 지금까지 조용히 지낸 존재였다. 그런 그녀가 미쳤다고? 게다가 자신의 오빠인 하은은 '그'라고 하였다. 그녀로선 여러 가지로 이해가 안 되는 상황이었다.
"정확히는 현재의 '시온'은 네가 아는 그 시온이 아니야. 현재의 시온은 전대 시온으로부터 힘을 물려받은 '인간'이야."
"..인간..이라고?"
"그래.. 벌써 동족 대부분이 그에게 살해당했어. 네가 과거 폭주해서 죽인 동족은 애교로 보일정도로. 많은 숫자가 처참하게."
"...."
그녀는 고개를 들어 하은을 바라보았다. 자신이 봉인당하기 전의 모습과 다른 모습이었다. 자신의 친오빠이자 언제나 느긋하고도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다니는 그가 한없이 초췌해 있었고 힘들어 보였다. 그는 자신이 봉인되어 있는 동안 얼마나 많은 일족들이 살해당하는 것을 바라보았던 것일까? 하은은 그녀의 시선을 눈치 챈 듯 억지로나마 그녀에게 미소 지었다.
"그렇게 슬퍼하는 눈빛으로 볼 필요는 없어. 너만은 내가 지킬 테니까."
"...."
"그럼. 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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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달렸다. 얼마나 뛰었을까? 다른 요괴들이 현재의 혼돈의 주신 '시온'에게서 도망가기 위해서 만든 문이 보였다. 그들이 그곳 근처에 다다른 순간 하은은 멈추었다.
"오빠. 왜?"
"...온다."
콰아아아아아앙!!
그 순간 무언가 떨어져 문을 부수었다. 무엇인지는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요괴들이 태어나는 속성이자 그들의 근원인 속성 '혼돈'이였다. 무색투명해야 하는 그 속성은 증오인지 분노인지 알 수 없는 칠흑 같은 어둠으로 감싸여 있었고 그 혼돈 안에서 '그'가 있었다.
"망할 용의 여왕. 방해라니.. 여우 녀석들 대부분을 놓쳐버렸잖아?"
부셔진 문 잔해 사이로 '그'는 걸어 나왔다. 갈색 머리카락 사이로 흑요석의 눈이 빛내고 있는 '인간'의 모습의 존재였다.
"겨우 두 마리인가."
"...말...도 안 돼.."
그녀는 느낄 수 있었다. 단지 바라만 보고 있음에도 그들의 털 사이사이로 그가 내뿜는 막대한 양의 혼돈이 스쳐지나갔다. 눈이 마주치자 달기는 심장이 멎을 것 같은 두려움을 느꼈다. 그 순간 그녀의 앞으로 하은이 막아섰다.
"왜 우리들을 그렇게나 미워하는 거지? 잘난 신생 주신."
"요괴라는 이유로 충분해."
그를 뒤덮고 있는 혼돈이 그의 감정을 대변하는 듯이 붉게 물들여져갔다. 3세계는 본래 용족과 요괴 그리고 인간이 서로를 죽이고 균형을 이루는 세계였다. 어쩌면 인간이었던 '그'의 요괴에 대한 증오는 당연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럼에도 하은은 기가 죽지 않은 채 그와 마주보았다.
"흥. 웃기군. 인간도 아니면서.. 오히려 요괴에 가까운 네가 우리들을 심판이라도 할 생각인가?"
[달기. 내가 신호하면 최대한 도망쳐.]
갑작스런 그의 전언에 달기는 귀를 쫑긋 세우더니 하은을 곁눈질하였다.
"..그 입 다물어라. 여우."
[오빠.. 설마... 미끼가 될 생각이야? 미쳤어?]
[아니면 둘 다 죽어.]
[...오빠..]
하은은 허리춤에 있는 검의 손잡이에 손을 가져갔다. 아직 '세계 간의 경계'가 강하지 않았던 시절. 2세계에서 기술로 만들어진 명검이었다. 용의 비늘을 종이처럼 가르고 과거 자신의 여동생을 봉인하는데 쓰였던 검으로 본래라면 그 검을 들고 있는 만으로도 그는 어떤 상대라도 자신 있어야 했지만...
"그 따위 검으로 날 이길 거라 생각하진 않겠지?"
앞의 존재는 예외였다. 같은 3세계 주신인 용의여왕이 시간 끌기밖에 못하는 강력하기 짝이 없는 존재. 이미 수많은 일족이 그의 손에 죽어가는 걸 바라본 하은이였다. 이미 승산이 없는 사실은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다.
"아아. 이래 봐도 난 살아남은 우리 일족의 수장이라서 말이야. 인간 출신의 주신에겐 지지 않을 거라 생각하는데..."
하은은 시온을 도발하는 동시에 마지막으로 달기를 흘깃 바라보았다. 저주 받은 혈통으로 태어나 선천적인 괴물이 되어버렸던 자신의 불쌍한 여동생... 또한 자신의 힘을 통제하지 못해 하은에게 봉인당해 유일하게 현재 살아남은 그의 사랑하는 가족이었다. 이에 하은은 자기도 모르게 쓴웃음 지었다.
'마지막이라도 평범하게 살게 하고 싶었는데...'
자신이 이곳에서 시온을 막는다고 해도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그리고 그녀는 그 시간동안 충분히 도망갈 수 있을까? 그래도 그는 그럴 수 있다고 믿었다. 그게 설사 0.1%정도의 확률이라도 할 수 밖에 없으니까.
[지금이야. 도망쳐!]
그 말을 전하고 하은은 주신 시온을 향해 달려 나갔다. 그리고 그것이 생전의 그의 마지막 기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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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만에 꾸는 옛날 꿈이군."
하은은 재수 없는 꿈을 꾸었다고 생각하면서 흔들의자에 일어나 기지개 폈다. 한 번 자신이 죽었던 과거의 기억. 이에 불편함을 느낄 만도 했지만 그는 느긋한 미소를 지었다.
"흐음~ 뭐, 그때 시온에게 살해당한 덕에 그 녀석들을 만날 수 있었으니까."
그는 콧노래를 부르며 자신의 꼬리로 차를 넣을 물을 끓이면서도 동시에 두 손으로는 아침으로 먹을 핫케이크를 만들고 있었다.
"아. 세레나 양은 엘프니까. 채식으로 준비해야 하나? 흐음~"
놀고 있는 다른 꼬리를 움직여 또 다른 요리를 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왕이 보면 부러워할 장면이라고 하은은 작게 키득거리면서 의자에 앉고는 차를 한 모금 들이키고는 날카로운 눈으로 문 뒤에 시선을 던졌다.
"흐음. 거기 서있는 거 아니까. 나와. 세레나 양."
"에!? 어. 어떻게?"
자신이 눈치 챈 것이 의외였을까? 어제부터 자신의 가게에서 일하기 시작한 종업원이 귀를 쫑긋. 세운 체 문 뒤에서 걸어 나왔다. 그 모습이 하은은 귀엽다고 느끼면서도 한쪽 눈을 감으며 윙크했다.
"기척을 숨기는 건 내 전문이거든. 내 앞에서 그렇게 어설프게 숨으면 들킨다고. 세레나 양."
"?"
그녀가 그의 말이 의아한지 고개를 갸우뚱 한 것이 보였다. 하은에겐 그 모습이 왠지 낯설면서도 친숙한 묘한 감정이 들었다. 또한 그 앞의 엘프와 자신이 과거에 알고 지내던 한 명의 괴물의 모습이 겹쳐졌다. 그녀와 같은 녹색의 머리카락을 지니고 항상 강한 척은 하지만 속은 약했던 4세계 서열 2위 플로라를...
'볼에 붉은색 문신만 있으면 딱 플로라님 일텐데 말이야... 아. 성격 빼고.'
처음 그녀를 만난 순간은 일반적으로 두들겨 맞았으니까. 그는 쓴웃음을 짓더니 탁자에 음식을 내려놓았다.
"아침식사나 같이 하자. 세레나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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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
즐거운 식사로 기분이 좋아야하는 아침이었지만 현재 세레나는 기분이 매우 안 좋은 상태였다. 하은이 만들어준 식사가 맛없는 것이 아니었다. 다만.... 자신이 앉아 있는 테이블 반대편에서 이곳의 점장이자 자신을 구미호라 자칭한 이상한 여우수인이 턱을 괸 채 자신이 먹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게다가 자신을 바라보면서 무슨 상상을 하는지 킥킥거리고 있었다. 그 모습에 세레나는 일행이었던 변태 제우스가 생각나는 것 같아서 소름끼쳤다. 그에 그녀는 식사를 중지하고 식기를 내려놓았다.
".....이봐요?"
"응? 왜."
"왜 그렇게 빤히 보는 것에요? 제 얼굴에 뭐라도 묻었어요?"
그녀의 질문에 그는 세레나를 흥미 있는 눈으로 바라보더니 꼬리를 꺼내 즐거운 듯이 좌우로 살랑거렸다.
"쿠큭. 아가씨를 보니까. 자꾸 '그녀'가 생각나서."
"..그녀요?"
"응. 고향에 아가씨 같은 녹색머리카락의 엘프가 있었거든. 너와 꼭 닮은."
세레나는 앞의 수인이 '푸른 달'에만 지내는 자신의 동족에 대해 친분이 있다는 사실에 놀라며 그를 바라보았다.
"음? 어떤 여자인데요?"
"그녀는 멋지고 아름답고 또한 강하기도 한 여자지..... 성격은... 답 없지만."
그는 말을 마치고는 탁자에 차를 음미하는 듯이 들이켰다. 플로라는 그런 말로 밖에 설명 안 될 존재였으니까. 세레나는 그의 대답에 호기심어린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헤에? 혹시 여자친구?"
쿨럭.
그리고 곧 그녀의 질문에 하은은 눈을 둥그렇게 뜨더니 마시던 차를 내뱉었다. 한동안 사레들렸는지 기침 하던 하은은 입을 닦고는 세레나를 바라보았다.
"쿨럭. 그렇게도 들릴 수 있었나? 아쉽지만 그런 거 아니야. 그저 얼굴정도만 아는 사이야."
"음? 그래요? 그럼 이름이 뭐죠? 저도 같은 엘프라 들어본 적 있을지도 모르는데."
"플로라야."
'플로라라고...?'
처음 들어오는 이름이었지만 그녀는 그 이름에 왠지 모른 친숙함을 느꼈다. 같은 엘프로서의 이름이라서 그랬을까? 어쩌면 과거 자신의 마을에서 지나가면서 들을지도 모른다고 그녀는 생각했고 곧 하은을 바라보았다.
"음... 들어 본 적은 없네요. 그녀는 어디에 있죠?"
"죽었어."
"아... 정말 죄송해요."
그녀의 사과에 하은은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그리고는 곧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이 턱을 괴었다.
"딱히. 그녀가 죽은 지는 꽤 오래 됐거든. 아가씨가 생각하는 것보다... 매우 오래."
"....."
"그래도 '꼬마'녀석이 자기 이름을 걸고 약속했으니까. 그녀는 언제가 다시 돌아올 거야. 그것이 언제인지는 알 수 없지만."
하은은 그 말을 끝으로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설거지거리들을 가지고 주방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곧 무언가 생각났는지 멈춰서더니 세레나를 바라보았다.
"아. 세레나 양. 내가 방금 말한 말은 그냥 잊어. 종업원 양이 알아도 좋은 것은 없으니까..."
그 말을 끝으로 하은은 부엌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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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식사 좀 빨리..."
"아. 곧 가져오겠습니다..."
"엘프 아가씨. 여긴 아직 멀었어?"
"잠깐만요! 죄송합니다!!"
'어째서 손님들이 갑자기 몰려오는 거야!!!!'
점심시간 때가 되자 한적하던 하은의 식당도 붐비기 시작했다.
이에 세레나는 급하게 주문을 받으려 뛰어다녔고 그와 중에 한곳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사랑해요~!"
"손님. 여긴 가게라... 곤란한데.."
"하.. 하지만 하은 오빠."
주위에 많은 여성수인에 둘려 쌓여 주위를 핑크빛으로 만들고 있는 이곳의 점장이자 고용주인 '하은'의 모습이 보였다. 자
신은 손님들 때문에 뛰어 다니느라 정신없는데.
이곳의 주인이란 사람이 놀고 있다니? 그 모습에 세레나는 미간을 좁혔다.
"....일 안 해요?"
"아아. 하고 있잖아. 식사는 이와 중에도 만들어지고 있다고."
"..."
당신이 여기에 있는데 어떻게 요리가 만들어지는 거냐?! 라고 외치며,
세레나는 지금 당장이라도 주방의 모습을 확인하고 싶었지만. 바쁜 관계로 날카롭게 하은을 노려보더니 식사주문을 받으로 다녔다.
하은은 저런 모습을 보여도 주문을 맞춰 요리는 확실하게 해주고 있으니까. 그리고 곧 그녀가 예상치도 못한 손님이 왔다.
딸랑.
"어서 오세....."
지금 들어오는 또 다른 손님을 향해 그녀가 고개를 돌리는 순간.
그녀는 그대로 돌이 되고 말았다. 자신이 생각지도 못한..
그리고 그녀가 3일간 결코 만나고 싶지 않은 이들이 그곳에 있었다.
얼음성에서 싸웠던 존재이자. 현재 네메시스의 일행 중 한명이 그곳에 서있었다.
루비를 연상시키는 붉은 머리카락. 그리고 유혹하는 듯한 붉은 입술을 가진 미녀 벨라스트라즈였다.
그녀는 바니걸 복장을 입고 있는 세레나를 바라보고는 장난기 어린 붉은 눈을 깜박이고 있었고,
무엇이 즐거운지 입 꼬리를 살짝 올린 상태였다.
"세레나~!"
"어... 어떻게!? 벨라스트라즈. 당신이..."
벨라는 들어오자마자 당황해서 돌이 된 세레나를 갑자기 껴안더니 그녀의 가슴에 머리를 즐거운 듯이 비볐다.
"그거야... 다른 수인들에게 수소문 듣고 왔죠. 최근에 녹색의 엘프가 일하기 시작한 가게가 있다고..."
벨라스트라즈와 다른 익숙한 목소리였다. 그에 세레나가 자신의 품에 안긴 벨라에게서 시선을 떼어 그곳으로 고개를 돌렸고,
황금빛 금발을 길게 기른 채. 끝을 푸른 리본으로 정리한 '천사'가 서있었다.
그녀는 세레나의 복장을 보더니 손으로 입술을 가린 채 눈웃음 짓고 있었다.
"라.. 람히르까지!? 그렇다면 설마..."
"그를 그렇게 애타듯이 찾을 필요 없어요. 저희들이 이곳에 온 것은 네메시스님에겐 비밀로 했으니까요. 후훗."
세레나가 람히르의 등 뒤로 또 자신이 아는 얼굴이 왔는지 보려는 듯이 기웃거렸고,
그런 그녀의 모습에 람히르는 무엇이 즐거운지 작게 키득 거렸다.
"휴우.... 가 아니라. 마지막에 그 웃음은 뭐야!!!!"
"글쎄요? 뭘까요. 후훗."
“라.. 람히르!!!”
람히르는 발끈하는 바니걸 복장을 한 세레나와 그런 그녀를 안고 있는 벨라를 뒤로 한 체 테이블을 향해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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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레나는 심각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 설마 일행들이 자신이 일하는 가게로 찾아 올 줄은 상상도 못했다.
다행히 네메시스는 오지 않은 것 같지만.
앞의 인물들만으로도 충분히 그녀에겐 큰 고민거리였다.
하은이 내온 딸기 파르페를 즐거운 듯이 떠먹으면서도. 사냥감을 발견한 듯이 자신을 훑어보는 도마뱀 한 마리. 그리고...
"후후"
아까부터 자신을 보며 제우스가 저리가라 할 정도로 음흉하게 웃고 있는 천사 한명.
도대체 저 둘은 무슨 목적으로 자신이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이곳에 온 걸까?
"음. 차 맛이 좋은 걸요?"
"..가 아니잖아! 람히르. 너 날개 숨겨야 하는 거 아니었어?"
세레나의 말에 람히르는 자신의 백색의 날개를 흘깃 보고는 아무렇지도 않는 듯이 어깨를 으쓱였다.
"수인들 중에도 새에 관련된 수인들은 저처럼 날개가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이곳 수인섬에서는 별 문제 없어요."
"...."
"근데요."
뜨끔.
람히르가 차를 내려놓더니 은빛 눈을 깜박였고 그에 세레나는 드디어 올 것이 왔다고 느꼈다.
"세레나님은 왜 그런 복장을....."
"...묻지 마."
"설마.. 그 복장으로 네메시스님에게...."
"지..지금 무슨 상상하는 거야. 람히르!!!!"
"아니면 말고요. 후흣. 저는 별 말 안했는데 말이죠."
"...."
람히르가 일부로 자신을 놀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이에 세레나는 한숨이 나오는 것을 느끼면서.
자신이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 사연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설명이 끝나자 벨라는 허무한 표정을 지었다.
"에? 겨우 그 이유 뿐?"
"아쉽네요."
"....당신들 무슨 상상을 하시고 온 거에요?"
세레나는 벨라와 람히르의 반응에 다음 대답을 듣는 것이 두려우면서도 되물었다.
벨라는 그녀의 질문에 소악마 같은 미소를 짓더니 볼에 손을 가져갔다.
"으. 나의 사랑하는 '그이'에게 다른 여자들이 달라붙다니! 어쩌지. 이러면 뺏길지도 몰라.
그래! 이번 기회로 나의 사랑을 '그'에게 보여주는 거야~! 하면서.. 결국에 그 복장으로 그가 자는 도중 덮치는..."
"화살 맞고 싶어요? 벨라스트라즈?"
"아하하핫. 사양할게. 지난번에 손이 뚫린 것만 해도 충분히 아프다고."
세레나의 진심어린 말에 벨라는 손사래 치면서 애꿎은 딸기 파르페에 수저를 꽂았고 세레나는 다음의 존재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앞의 도마뱀보다 더 위협한 상대가 그곳에 있었다. 람히르는 주문한 과일음료를 마시고 있었다.
"흐음... "
고귀한 성녀처럼(실재로도 성녀지만) 우아하게 그녀는 음료를 들이키더니 곧 고요한 은빛 눈을 세레나를 향했다.
"그래서. 선물은 뭐로 정했어요?"
"에...?"
예상치 못한 질문에 세레나는 굳었다.
"네메시스님에게 선물을 주고자 이 아르바이트를 하신다면서요? 선물은 정했어요?"
"...."
"서.. 설마 아직도 정하지 않은 것에요? 세레나님."
그제야 세레나는 자신이 선물을 정하지 않음을 깨달았고 그녀는 람히르의 질문에 굳어버린 듯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호오? 그런 이유였어? 세레나 양."
또 다른 이의 목소리에 세레나는 머리가 아파지는 걸 느꼈다.
그녀들의 대화를 엿들었는지 지금까지 봤던 어떤 순간보다 즐거워 보이는 하은이 그곳에 서 있었다.
그 남자의 등장에 다른 이들도 의외인지 호기심어린 눈으로 그녀들도 바라보았고,
벨라스트라즈는 하은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살펴보더니 빠르게 고개를 돌려 세레나를 바라보았다.
"..바람?"
"아.. 아니에요! 게다가 그와 나는 아무 사이도 아닌데. 무슨 바람이에요!!!"
"사실 아르바이트를 한다는 것은 핑계고. 일행이었던 남자에 질려서 다른 남자를 찾아...."
"이이이익!!!!"
"폭력은 안돼요. 세레나님! 그리고 당신도 그만해요. 벨라."
람히르는 벨라가 조금만 더 말을 했으면 진짜로 주먹을 휘둘려는 세레나를 말리면서 벨라에게도 주의를 주었다.
곧 그 둘을 진정시키고는 하은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당신은 누구죠."
"음. 이 아가씨의 주인?"
"...."
퍽.
하은은 람히르의 말에 웃으면서 세레나의 어깨를 탁!치면서,
이상한 뜻으로 해석 될 수 있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었고,
그 말에 세레나는 표정을 구기더니 그대로 주먹을 꽂아 넣었다.
"커억... 종업원이 고용주를 패도 돼는 거야?"
"이상한 말을 하니까. 그렇죠! 뭐. 됐고. 이런 관계야."
"흐음.."
세레나의 당황해 하는 말에 람히르는 의심의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지만.
곧 수상한 점을 찾을 수 없자. 아까의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래서 선물은?”
“아직 생각 중이에요. 뭐. 그라면 어떤 것이라도 좋아하지 않겠어요?”
세레나의 아무 사심 없는 말에 람히르의 표정이 굳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