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7화 〉제 46화 여왕과 괴물이 만난 순간
"네메시스! 바보 바보 바봇!!!!!!!"
세레나는 그렇게 소리치더니 길가에 있는 돌을 걷어찼다. 화풀이. 그것도 아무런 의미도 없는 화풀이였다.
그녀는 스스로도 자신이 왜 화가 났는지 이해가 안됐다.
그 '퀸'이란 여자가 네메시스 옆에서 꼬리를 치든. 관계를 가지든 그와 아무 상관도 없는 세레나가 화를 낼 이유 따윈 없었다.
그녀 스스로도 이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부끄러움으로 얼굴을 붉혔다...
어째서인지... 네메시스가 아침에 '퀸'이란 여자와 한 침대 한 이불에 있던 그 모습이 생각나버렸다.
"네메시스. 멍청이!!!!"
힐끔.
그녀가 뒤를 돌아보지만 그 남자가 뒤쫓아 올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예전이라면 당장 뒤쫓아 왔을 그 남자가...
그리고 방금 전 퀸과 네메시스의 모습을 세레나는 회상했다. 친근하게 대하는 퀸과 그걸 거부하지 않는 네메시스...
그 모습에 정말 사이좋아 보이는 커플이라고 자기도 모르게 생각해버렸다.
"흥!.. 그 가슴 큰 여자랑 사이좋게 있으라지!"
힐끔.
그러면서도 세레나는 다시 뒤를 되돌아보았다. 그녀는 작은 목소리로 '바보 같아...' 중얼거리더니 곧 고개를 숙이고는 천천히 걸어갔다.
산길은 조용했다. 주위에 수인들의 작은 발소리가 조금씩 들렸지만 모두 상당한 거리에 있었기 때문에,
엘프인 그녀로도 겨우 존재한다고 들을만한 작은 소리였다.
"응?"
어느 순간 그녀의 뒤편으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익숙한 발소리. 수인섬의 수인들이 아닌 인간의 것으로 보이는 발소리였다.
가벼우면서도 무게가 있는 듯한 애매한 발소리. 수인섬에서 그런 발자국소리를 내는 존재는 그녀가 아는 한. 단 한명이었다.
이에 그녀는 화색을 지으면서 뒤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곧 멀지 않은 곳에서 그 남자가 보였다.
"네메..."
세레나의 말이 끊겼다. 네메시스는 그곳에 있었다. 다만 옆에 '퀸'이라고 불리는 여인과 함께.
그는 퀸이 옆에 달라붙자 표정을 찡그리고 있었지만, 그래도 그녀를 밀어내지 않은 채로 그대로 같이 걷고 있는 네메시스의 모습이 보였다.
누가 봐도 연인 같은 모습으로. 그 둘은 즐겁게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
그들이 멀리서 세레나가 있는 쪽으로 걸어오자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나무 뒤로 모습을 숨어서 그들이 지나가길 기다렸다.
곧 네메시스와 퀸은 그녀가 있는 나무를 지나더니 곧 얼마 멀지 않는 곳에 멈추어 서서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그녀의 두 눈에 보였다.
무슨 이야기 일까? 세레나가 귀를 기울여 그들의 이야기를 엿들으려고 했다.
"a........"
그녀의 귀로 그들의 말은 들려오지 않았다. 정확히는 말자체가 심하게 일그러져서 들려왔다.
이에 세레나는 직감적으로 마법이 사용되었다는 것을 느꼈다.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길래 마법까지... 어?'
갑자기 네메시스가 퀸을 벽으로 밀어붙여 두 팔로 그녀를 도망가지 못하게 하려 듯이 감싸 안았다.
그럼에도 퀸이 방긋 웃는 모습이 보였고. 곧 네메시스가 그녀를 향해 고개를 숙이는 모습이 보였다.
!!!!
세레나는 멀지 않은 나무 뒤에서 그들을 바라보면서 자기도 모르게 나올려는 비명을 참으면서도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있는 위치에선 오직 네메시스의 뒷모습에 가려진 퀸의 모습만 보였지만 입맞춤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네메시스."
동요로 떨리는 목소리로 세레나는 자기도 모르게 그의 이름을 입에 담았다. 그 소리는 혼잣말에 가까울 정도로 매우 작은 목소리였지만.
그녀의 말에 퀸의 더듬이가 그 순간 꿈틀거리더니 퀸이 네메시스에게 들키지 않게 고개를 살짝 갸웃 숙였다.
곧 퀸과 세레나는 눈을 마주쳤다.
"....."
나무 뒤에 숨어서 보고 있던 세레나였지만 그녀는 느낄 수 있었다. 네메시스는 아직 눈치 못 챈 것 같지만.
앞의 퀸이란 존재는 처음부터 숨어있던 자신을 알고 있음을. 그리고 일부로 자신의 앞에서 이런 상황을 만들었다는 것도.
퀸의 두 눈이 자신을 보며 웃고 있는 것이 보였다.
콰악.
자기도 모르게 주먹이 쥐어졌다. 당장이라도 등 뒤에 있는 활을 꺼내 활시위를 놓고 싶은 감정이 그녀를 감싸 안았지만.
그녀는 잠시 후 그 둘이 떨어질 때까지에도 활에는 손을 뻗지 않았다.
"하아. 나쁘지 않는 감각이었어요."
"...갑자기 이런 걸 부탁하다니 나참. 무슨 생각이야? 4세계에서도 부탁하지 않는 일을."
"에에. 1세계에 만난 기념으로는 나쁘지 않잖아요? 후후."
마법을 풀었는지 그들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이 느껴졌다. 그들을 바라보고 있는 세레나의 두 눈이 동요로 요동쳤다.
"이제 어떻게 할 거지? 같이 다닐 건가?"
"그럴 리가요. 저도 하은처럼 왕의 연애사업을 방해할 생각이 없는걸요?"
"...그 날 보고 있었군."
"당연하죠. 플로라님이 그렇게 숲이 떠나갈 정도로 날뛰었는데. 제가 감지 못 할리가 없잖아요? 쿠큭."
'...플로라?'
세레나가 얼마 전에 일했던 하은에게서 들었던 여자였다. 그런데 이곳에서 다시 듣게 되다니..
그녀는 그들이 '하은'에 대해 알고 있음에 속으로 놀라면서도 그들을 지켜봤다.
지금 그녀에게 중요한 것은 그 이름 따위가 아니었다.
"후후. 저는 홀로 떠돌아다니도록 할게요."
"...수상한데?"
"왜 의심하는 눈초리로 저를 바라보세요? 우우. 그나마 전 4세계에서 얌전한 편인 것 아시잖아요?
이곳 1세계에 있는 동안은 쥐 죽은 듯이 조용히 지낼 테니까 걱정하지 말아요. 그리고...."
"..그리고?"
"밤에 쓸쓸하시면 저를 언제든지 불려도 좋아요. 저는 언제든 밤 서비스는 준비 되어 있답니다. 후훗."
"...지금 당장 너를 1세계를 뚫다 못해 4세계로 날려버리고 싶은 말이로군."
잠시 후 네메시스가 퀸을 몇 번 의심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더니 떠나가는 그의 뒷모습이 세레나의 눈에 들어왔다.
그가 떠나자 퀸이 세레나가 있는 나무를 향해 시선을 던졌다.
"거기 있는 것 아니까. 나와 주실래요? 세레나님."
"...."
세레나가 숨어있던 나무에서 천천히 걸어 나오자 퀸은 활짝 웃더니 그녀에게 다가가 팔을 잡았다.
"같이 산책 좀 할래요? 우리는 대화해야 할 것이 많을 것 같으니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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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그녀들은 말없이 걸고 있었다. 세레나는 퀸의 손에 이끌려 따라가면서도 그녀를 바라보았다.
퀸의 키는 상당히 컸다. 세레나 그녀도 작은 편은 아니었지만 살짝 올려봐야 할 정도로 컸고,
들어갈 때는 들어가 있고 나와야하는 곳은 다 나와 있는 잘빠진 미녀였다.
"...."
같은 여자인 그녀가 봐도 퀸은 아름다웠다. 흑색 머리카락이 왠지 네메시스와 비슷하면서도 신비스러운 느낌이 드는 존재였다.
무엇보다도... 세레나의 두 시선을 사로잡는 것이 있었다.
출렁.
퀸이 걸을 때마다 세레나에게 없는 '무언가'가 흔들리고 있었다. 람히르의 것보다 커 보이는 듯한 큰 가슴.
그 모습에 세레나는 기가 죽는 것을 느끼면서도 곧 심란한 마음을 최대한 진정시키더니 퀸의 두 눈을 바라보았다.
"당신은..."
"?"
"네메시스와 무슨 사이죠?"
"오랜 친구에요. 그분과 가장 오랫동안 함께 해온 고향친구."
"...."
"아참. 전 암컷이니 ‘여자친구’일까요? 쿠큭."
이상한 여자였다. 아니. 처음 만났을 때부터 무언가 뒤틀려진 여자였다. 마치 대화가 통하지 않는 다른 생명체와 대화하는 듯한 기분.
세레나의 두 눈에 비추어진 그녀는 같은 지성체라긴 보단 뒤틀려진 '무언가'였다.
그 '무언가'는 세레나를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저는 옛날에 죽을 뻔했어요."
"....?"
"옛날에, 까마득한 옛날에. 저희 일족은 더럽고 역겨운 고블린 떼의 습격당했거든요."
"..."
"저희 일족을 지키던 전사들은 고블린들의 창과 화살에 찢겨나갔죠. 마을은 순식간에 피로 물들여졌어요.
저의 어머니인 전대 여왕은 더럽고 추잡한 '고블린킹'에게 세로로 반 토막 났죠."
퀸은 그때의 일을 생각하는 듯이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저는 도망쳤어요. 고블린들의 무기에 피범벅이 된 동족들을 시체를 뒤로 한 체. 이 몸을 뒤집어쓰고는 도망쳤어요.
엿 같은 고블린 추격자들을 피하기 위해 시체 밑으로 기어들어가기도 하고, 살기 위해 그 시체를 뜯어먹고.
겨우겨우 목숨을 연명하다가. ‘그’를 만났어요."
"..물어봐서 미안해요."
"아니에요. 다 지난 과거인걸요. 제가 살아왔던 고향에선 흔하디흔한 스토리고. 결과적으로 저는 그에게 구해졌으니까요."
세레나의 사과의 말에 퀸은 살며시 미소 지었다. 비록 그녀로서 가장 약했고 힘들었던 과거였지만.
그때만큼은 그녀는 네메시스와 가장 가까운 존재였으니까. 적어도 그에게 '플로라'란 존재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저의 옛날이야기 좀 들어보실래요? 세레나님."
"..하지만.."
"저에겐 괴로운 기억이기도 하지만 또한 그를 처음 만나서 행복한 기억이기도 하거든요.
세레나님은... 네메시스님의 과거가 궁금하지 않으세요?"
"...."
궁금했다. 도대체 인간이 어떻게 그렇게 강한지. 그리고 그와 함께 한지 오래됐는데도 불구하고.
무언가를 자신에게 숨기는 듯한 태도의 이유를...
또... 자신이 그를 볼 때마다 느끼는 감정을....
"좋아요. 표정을 보니 대답은 긍정이라고 봐도 됐겠죠? 후훗."
여왕이란 이름의 괴물은 웃었다. 비록 거짓된 육체의 껍데기를 뒤집어쓰고 있었지만.
그 미소만은 진심이 담긴 미소로. 그리고 과거에 자신을 쓰러트린 플로라란 엘프를 바라보면서 그녀는 진심으로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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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악. 하악..”
4세계의 어느 어두운 숲 길을 어린 소녀는 달려 나가고 있었다.
그녀는 인간의 나이로 하면 대략 8살 정도로 보이는 어린 ‘소녀’였다.
소녀의 머리 위에는 작은 더듬이가 주위를 탐색하는 듯이 쉬지 않고 움직이고 있었고,
그녀의 등 뒤로 보이는 키틴질의 날개는 경사가 급한 언덕을 내려갈 때마다 흔들렸다.
“하아...”
소녀는 지쳤는지 숨이 거칠어 있었고 그녀의 피부는 먼지라든지 상처가 가득해,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노숙 소녀’같은 느낌이 드는 상태였다. 그녀는 잠시 멈추어 서더니 뒤를 돌아보았다.
‘도망간 레지나 일족을 잡아라!’
‘녀석을 발견하는 즉시 죽여. 벌레들이 다시 번성하게 두면 안 돼.’
저 멀리서 횃불로 보이는 것들이 그녀가 있는 방향으로 서서히 접근하는 모습이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그 모습을 소녀는 표독스럽게 지켜보다가 숨이 어느 정도 편안해지자 다시 뒤돌아 도망치기 시작했다.
지금 그들이 쫓고 있는 존재는 다름 아님 바로 그녀였으니까.
잠시 후 소녀는 얼마못가 돌에 걸렸는지 넘어졌다.
“아파...”
그녀는 넘어져 상처가 난 자신의 다리를 바라보았다. 그녀로서는 처음 느껴보는 낯선 감각이었다.
‘차라니.. 이 불편한 껍데기를 버리고 ’본모습‘으로 날아갈까?... 어?’
그 순간 그녀의 위로 검은 그림자가 지나쳤다. 이에 소녀는 깜짝 놀라 하늘을 바라보자.
자신과 마찬가지로 마을에서 도망가는 일족의 ‘공주’가 보였다. 그것의 모습을 표현하자면 거대한 ‘꿀벌’이었다.
그녀의 자매는 밑에 있는 소녀는 신경 쓰지도 않은 채 빠르게 날아가 버리고 있는 것이 그녀의 눈에 보였다.
피이이익!
날아가던 소녀의 자매가 어디선가 날아온 붉은색의 창에 공중에서 두 토막이 되어 추락하는 것이 보였다.
그 장면에 소녀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녀가 본래의 모습으로 도망가지 않고 불편한 ‘인간’껍데기로 도망치는 이유가 저것이었다.
그녀의 어머니인 여왕을 죽이고 일족을 파멸시킨 고블린 킹의 ‘능력’. 그것은 ‘반드시 도달 한다’라는 능력이었다.
그가 보고 투척하는 이상 대상은 반드시 창에 꿰뚫린다. 그녀의 일족으로서는 저걸 피하는 유일한 방법은 다른 종족 껍데기를 뒤집어 쓴 채 도망치는 것뿐이었다.
그녀는 달렸다. 곧 있으면 태양이 없는 4세계지만 날이 밝는 시간대다.
만약 그때까지 몸을 숨기지 못하면 소녀도 다른 일족처럼 고블린에게 살해당하고 말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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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세계요?”
세레나는 퀸의 말을 듣다가 이상한지 고개를 갸웃. 거렸다.
“네. 저의 고향이자 당신이 얼마 전 만난 하은의 현재 고향인 곳이죠. 물론. 저의 왕인 네메시스님의 고향이고요.”
“흐음.. 제가 실버게이트에서 지내온 동안 그런 지역의 이름은 듣지 못했어요.”
“후훗. 그곳이 외진 곳에 있는 곳이라 그래요. 신조차 외면한 저주받은 곳이죠...”
퀸은 뒷말을 흐리더니 방긋. 웃었다.
“자. 마저 이야기 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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촤악. 우드득.
숲속에서 달려가던 소녀의 움직임이 굳었다. 앞에 마물이 있었다. 앞의 마물은 방금 사냥한 듯한 다른 마물의 시체를 뜯어먹고 있었다.
그것은 아직 소녀의 존재를 모르는 건지(아니면 너무나 작아서 무시했던지) 식사를 계속하고 있었고 이에 소녀는 조용히 뒷걸음질 해 그곳에서 벗어났다.
아니 벗어나려고 했다.
“좋아. 하이에나들이 근처에 잇는 레지나 일족의 냄새를 맡았다!”
“찾아서. 죽여! 우리들의 왕이 원하신다!”
소녀에게서 멀지 않는 곳. 고블린 추격대의 고함이 들려왔다. 더불어 하이에나의 고유한 귀에 거슬리는 소리도,
이에 소녀의 표정은 창백해졌다.
잠시 후. 고블린 추격대는 거대한 하이에나에 올라탄 체 그녀가 아까 전에 있었던 자리에 도착했다.
그들이 그곳에 도착해 발견 할 수 있던 것은 마물의 시체와 그걸 먹고 있던 마물 뿐 이었다.
크르릉!
“뭐야. 마물시체잖아? 멍청한 하이에나새끼들. 이 냄새 때문에 온 건가?”
고블린 중 하나가 하이에나에서 내리더니 곧 낯선 이방인들을 보고 적개심으로 이를 드러내고 있는 마물을 향해 걸어갔다.
차악! 쿵.
푸른빛이 번쩍이고 마물의 목이 잘려 땅에 굴렸다. 이에 배고픈 하이에나 한 마리가 못 참겠다 듯이 달려들어 마물의 머리를 씹어 삼켰다. 그것을 신호로 다른 하이에나들도 마물들의 시체에 물어뜯기 시작했다.
“적당히 먹이고 레지나 일족을 뒤쫓는다. 마지막 한 놈까지 죽여.”
잠시 후 하이에나와 고블린들은 적당히 배만 채우고는 서두르며 떠났고 그들이 떠난 후.
마물이 먹고 있던 시체가 꿈틀거렸다. 시체는 잠시 동안 흔들리더니, 이르고 작은 소녀가 그 밑에서 기어 나왔다.
“.....”
그들이 적당히 배만 채우고 간 것에 다행이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만약에 그들이 포만감이 들 정도로 식사를 진행했다면 자신을 발견했겠지.
그녀는 거기까지만 생각하고는 고개를 돌려 방금 전만해도 살아 움직였던 목 없는 마물을 바라보았다.
“검기.....”
고블린들이 그녀의 일족을 전멸시킬 수 있던 가장 큰 이유였다.
그들이 사용하는 ‘검기’란 것들은 일족의 단단한 가죽을 손쉽게 잘라냈고 일부는 그것을 창에 담아 던질 수도 있었다.
이미 저것들은 고블린이라고 부르기엔 너무나도 강한 존재들이었다.
“괴물...”
4세계의 주신들이 죽은 후 4세계는 변질 되었다. 4세계란 좁은 세계에 너무나 강한 존재들이 몰려왔다.
그 결과. 레지나 일족을 포함한 4세계 토착종은 대부분 전멸 상태였다. 그녀는 씁쓸하게 웃었다.
“그래도 살아남아야지.. 우리 종족은 내가 살아 있는 이상. 언제라도 재건이 가능할 테니까...”
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다시 어딘가를 향해 달려 나가기 시작하였다.
일족을 재건을 위한 안전한 곳을 찾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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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 칠 곳은 더 이상 없다. 벌레.”
“윽.”
고블린 추격대로부터 도망을 다닌지 3일이 흘렸다. 그녀의 다른 일족들은 모두 살해당했는지.
더 이상 그녀의 감각에 느껴지지 않았다. 이제 남은 건 그녀 혼자뿐.
그나마도 현재 그녀는 절벽을 뒤로 한 체 3명의 고블린에게 포위되어 있었다.
그녀를 포위한 고블린의 각자의 무기에는 푸른색의 검기가 반짝이고 있었고,
그녀의 일족의 투명한 피의 향기가 진하게 흘려 나오고 있었다.
“이제 너만 남았다고. 킥킥.”
“이걸로 우리 왕이 기뻐하겠지?”
고블린들의 포위망이 천천히 좁혀 왔다. 이에 소녀는 그들을 노려보면서 살며시 등 뒤를 슬쩍 보았다.
그곳은 높은 낭떠러지였다. 아래에 바닥은 보였지만 수풀 같은 것은 찾아 볼 수 없었고 바위지대 뿐이었다.
꿀꺽,
자기도 모르게 침이 삼켜졌다. 그녀가 본 모습이라면 날 수도 있겠지만.
지금 검기를 쓰는 고블린을 앞에 두고 그런 짓을 했다간 순식간에 목이 날아가겠지.
하지만. 현재의 인간의 모습이라도 날개는 있다.
‘그 방법을 쓴다면...’
현재의 모습으로 날지는 못한다. 하지만 활공은 가능하다. 그녀의 생각대로면 낙하 속도를 낮출 수는 있을 것이다.
그녀는 여기에까지 생각이 도달하자. 망설임 없이 절벽 아래로 뛰어내렸다. 바람이 그녀를 부딪치는 감각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소녀는 그 느낌이 편하다고 느끼면서 등 뒤의 날개를 폈다. 이에 낙하 속도가 줄어드는 것이 확실하게 느껴졌다.
이대로라면 무사히 땅에 착지를...
“어딜!!!”
고블린들의 무기가 그녀를 노리고 투척됐다. 이에 그녀가 급히 공중에서 몸을 틀었다.
파직.
너무나 쉽게 창으로 보이는 무기가 그녀의 한 쪽 날개를 부셨고 두 번째로 들어온 무기는 그녀의 두 다리를 잘라냈다.
“아아아악!!!”
통증이 그녀의 모든 감각을 매었다. 이르고 그녀는 땅이 빠르게 다가오는 것을 바라보면서 그대로 추락했다.
쿵!
등부터 떨어졌는지 등에도 잘려나간 다리에 맞먹는 통증이 느껴졌다.
그나마 어느 정도 내려온 상태에서 추락했기 때문에 죽지 않았겠지.
‘아아아.....’
그녀로서는 속으로 비명을 지르는 것이 한계였다. 그리고 그런 그녀를 절망에 빠뜨린 것은 절벽을 뛰어내려오는 고블린들의 모습이었다. 이미 그녀에겐 희망 따윈 없었다. 그래도 그녀는 입술을 깨물고 몸을 돌려 앞을 바라보았다.
앞에 동굴로 보이는 것이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소녀가 그곳으로 두 팔에 의지해 기어갈 때마다 그녀의 잘려나간 두 다리에선 투명한 피가 대지를 적셨다.
곧 그녀의 움직임은 그녀의 등 뒤를 짓누르는 고블린의 발에 멈추어졌다.
“이미 끝났어. 꼬맹이.”
“.....”
그녀가 힘들게 고개를 들어 위를 바라보자 그녀의 목을 자르려는 듯이 높게 검을 올린 고블린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뒤에 있는 나머지 고블린들의 숨소리도...
‘이걸로 끝이구나... 전부.’
검이 내려오는 순간 소녀는 눈을 감았다. 부디 고통이 없기를 바라면서... 그리고 그 순간 기적은 일어났다.
■■■■■□□□!!!
멈칫.
갑작스런 괴음에 고블린의 검은 멈추었다.
섬뜩.
소름끼쳤다. 그것이 그 소리를 들은 그녀의 소감이었다. 고블린은 검을 거두더니 괴음이 들린 곳으로 조심히 다가갔다.
이에 소녀도 고개를 들어 그곳을 바라보았다. 아까 자신이 도망가려던 그 동굴이었다.
고블린들은 날지도, 걷지도 못하는 그녀를 두고는 동굴 근처에 무기를 든 체 경계했다.
그녀가 도망치지 못함을 알기 때문이었다. 그들로서는 새로운 위험에 대해 대응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
다시 한 번 괴음이 울려 퍼졌다. 아까보다 작은 소리. 하지만 동굴 속에서 한 쌍의 안광이 깜박이기 시작했다.
그러자 고블린들은 위협하듯이 검기 서린 자신들의 무기를 들었다.
“물러서라. 이 괴물아!”
그들은 공포에 질려 있었다. 동굴에서 단지 보이는 것은 안광 한 뿐 이었지만.
그 안에 있는 존재는 너무나 역겨웠고 또한 무서웠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그들은 알 수 없었지만 본능은 도망가라고 비명 지르고 있었다.
차르릉!
무언가 동굴 안에서 뻗어 나와 한 고블린의 목을 감싸더니 순식간에 끌고 들어갔다.
우드득. 우직. 우직.
“와아아앗!!!!”
뼈를 씹는 소리와 함께 피 냄새가 주위에 퍼졌다. 이에 다른 두 고블린은 비명인지 함성인지 알 수 없는 고함을 내지르더니 동굴 안에 뛰어들었다. 그들의 무기만을 믿고서 말이다.
하지만...
!!!
그들이 미처 동굴에 들어가기 전에 ‘무언가’가 동굴에서 나왔다. 그것은 혀처럼 보이기도 했고 손처럼 보이기도 했다.
4개의 손가락이 달린 손. 하지만 그것은 한없이 기괴했고 보는 것만으로 혐오감을 일으키는 ‘무언가’였다.
그것은 동굴에서 나온 후 그대로 두 명의 고블린을 잡고는 벽에 짓눌렸다.
쿠웅!
잠시 후 그것이 천천히 동굴 안으로 모습을 감추었고, 두 고블린은 형체도 알아 볼 수 없을 만큼 짓이겨져 있었다.
뚜벅. 뚜벅.
“.....”
무언가가 동굴 안에서 서서히 걸어 나오고 있었다. 이에 소녀는 도망가고 싶었지만 이미 도망 갈 수 없는 상태였다.
잠시 후 그 ‘괴물’은 그 안에서 나왔다.
“아아...”
그녀의 입에서 신음인지 탄식인지 알 수 없는 소리가 흘려 나왔다. 그것은 흑발의 인간 형상을 한 ‘무언가’였다. 그녀는 아름답다는 인간의 미적기준을 몰랐지만. 앞의 존재는 충분히 그 조건을 충족하고 있다고 중얼거렸다.
너무나 많은 피를 흘린 탓인가? 그녀의 시야가 흐릿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 괴물은 천천히 소녀를 향해 걸어오더니 곧 그녀의 앞에 쭈그려 앉아 그녀를 바라보았다.
이것이 후에 퀸이라고 불릴 괴물이 네메시스를 처음 만난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