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8화 〉제 47화 절망 속에서 빛나는 것.
“그 헛소리를 믿으라고요?”
세레나는 눈썹을 찌푸리며 퀸을 노려보았다. 퀸이란 앞의 여자가 자신에게 말하는 일들은 믿기에는 너무 허무맹랑한 말들이었다.
검기를 쓰는 소드마스터인 고블린들이라니. 소드마스터가 무슨 누구 집 개 이름인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그녀가 네메시스를 처음 만난 부분에 이르어서는 그가 무슨 폴리모프를 한 용처럼 표현해났다.
이에 세레나는 말도 안 되는 헛소리로 치부했지만 이런 그녀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퀸은 살며시 웃고 있을 뿐이었다.
“믿은 안 믿든 당신의 자유에요. 저는 다만 그와 만났을 때의 기억을 말하는 것 뿐.
저의 기억은 세월에 의해 왜곡되어 있으면서도 당시에는 피를 많이 흘려서 어지러운 상태였거든요.
어쩌면 동굴 속의 괴물은 저의 상상이 만들어낸 기억일 수도 있죠.
실제로도 저는 그 이후 네메시스님의 ‘괴물’의 모습을 볼 수 없었으니까요.
그러니 당신은 제 말을 스스로 걸러들으면 되는 것에요. 세레나님.”
퀸은 믿으라고는 강요는 안했다. 그녀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
4세계는 다른 존재들이 듣기에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이상한 곳이니까.
‘그래도...’
앞의 엘프는 ‘플로라’가 될 존재였다. 늦든. 빠르든 간에 4세계로 가게 될 서열 2위의 괴물. 그렇기 때문에 퀸은 말을 이었다.
‘제 말이 조금이라도 당신에게 도움이 되기를....’
4세계의 ‘퀸’이란 괴물은 과거의 플로라에게 호의를 가지고 있었으니까.
비록 그녀의 이야기가 지금의 세레나에겐 헛소리로 치부될지라도...
끝에 그녀에게 선택의 순간이 올 때 미약하지만 도움이 될 테니까...
그것이 결국 그녀의 왕에게 해가 될 선택이라도.. 여왕이란 이름의 괴물은 그녀의 선택을 존중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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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윽...”
소녀는 천근 같이 무겁게 느껴지는 눈 커플을 겨우 들어올렸다. 너무나 많은 피를 흘린 탓인지 의식은 몽롱했고.
또한 매우 피곤했다. 그녀가 제정신을 차린 것은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른 뒤였다.
“배고파... 목말라...”
소녀가 정신을 차린 후. 내뱉은 첫마디였다. 그 동안 고블린 추격자들 때문에 제대로 먹지도 마시지도 못해 몸 상태가 좋지 않았다. 그녀는 힘겹게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려보았다.
“여긴.. 어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이었다. 자신이 의식이 잃은 동안. 동굴 안에서 나온 그 ‘괴물’에게 한입에 삼켜지기라도 한 건가?
아니면 그 ‘괴물’이 자신을 구해서 동굴 깊숙한 곳에 데려다 둔 것일까? 소녀는 이 두 가지 상황을 생각하다가.
잠시 후에 후자 쪽이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소녀가 어둠 속에서 익숙해지자 그녀의 앞에 멀지 않은 곳.
그 ‘괴물’이 둔 것으로 추측되는 물 냄새가 나는 크지 않는 가죽주머니와 무슨 생물체의 고기인지 알 수 없는 고깃덩어리가 있었다.
“.....”
소녀는 그 상태에서 두 팔의 힘으로 몸을 끌어 천천히 그곳을 향해 기어갔고 곧 도달했다. 그리고는 그것들을 향해 손을 뻗었다.
우걱. 우걱.
소녀는 정신없이 먹어치웠다. 오랜만의 식사였다. 그녀는 한 손으로 고기를 입으로 가져가면서도 다른 한 손에는 물이 들어 있는 가죽주머니를 손에 놓지 않았다.
소녀는 한동안 먹어치우더니 어느 정도 배가 부르자 미련 없이 손에 들고 있는 것들을 땅에 내려놓았다.
이 동굴에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지 그녀는 몰랐다. 그리고 그 ‘괴물’이 아직 그녀를 왜 살려뒀는지조차 모르는 상황이었다.
만약 그가 돌아와 마음을 바꿔먹으면 약해진 그녀는 저항하기도 전에 죽겠지.
이 때문에 소녀는 어느 정도 포만감이 생기자 식사를 그만 두었다. 과식을 하면 몸이 둔해지니까.
‘어디로 가지?’
그런 소녀의 고민은 오래가지 않았다. 희미하지만 빛이 흘려 나오고 있는 곳이 보였기 때문이다.
‘저쪽이 출구인가?’
그렇기에 그 방향을 향해 소녀는 몸을 옮기더니 천천히 그곳을 향해 기어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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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지? 이건?”
빛을 따라 도착한 곳은 태양빛이 내리는 바깥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곳은 밀폐된 곳으로 작은 검은 연못만이 있었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그곳에서는 빛이 은은하게 흘려 나오고 있었다. 검은색 물이 가득 찬 연못의 중앙. 하얗고 따뜻한 빛이 흘려 나오는 ‘무언가’로부터...
“우와....!”
소녀가 그것을 보는 순간. 머릿속이 새하얗게 비워졌다.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다만 저 ‘무언가’를 강렬히 소유하고 싶다는 욕망만이 들 뿐이었다.
‘갖고 싶어....!’
소녀는 멍하니 그곳을 향해 기어갔다. 저것이 무엇인지 소녀는 몰랐다. 그럼에도 저것을 가지게 되면 무엇이든 이룰 수 있을 것 같은 감정만이 그녀를 지배할 뿐이었다. 그리고 곧 검은 연못 앞에 도착하자 소녀는 천천히 손을 뻗었다.
마치 빠르게 뻗으면 날아가 버릴 나비를 붙잡듯이...
타악!
“아얏!”
그 순간 퀸의 뒤편에서 무언가 날아와 그녀의 손을 쳐냈다. 이에 소녀는 귀여운 비명을 지르면서 맞은 손을 감싸더니,
독기 어린 눈으로 자신을 방해한 존재를 노려보았다.
“무슨 짓이야?”
자신이 기절하기 전에 본 남자였다. 그 존재는 겉으로는 인간처럼 보였지만.
소녀는 직감적으로 앞의 존재도 자신처럼 인간의 껍데기를 쓰고 있는 ‘무언가’로 추측했다.
곧 그녀를 차갑게 내려다보고 있던 그 존재는 입을 열었다.
“오히려 내가 묻고 싶군. 죽고 싶은 건가?”
그 말과 함께 ‘괴물’은 연못을 가리켰다. 이에 소녀는 고개를 휙. 돌려 가리킨 곳을 바라보았다.
아직 그녀의 손을 쳐낸 물체가 그곳의 공중에 있었다. 그것은 아까 소녀가 먹다 남긴 새빨간 고깃덩어리였다.
고깃덩어리가 특별해서 공중에 떠있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검은색의 무언가가 붙잡고 있었을 뿐.
!!!!
소녀는 화들짝 놀라더니 뒤로 물러섰다. 연목의 검은 물에서 무언가 촉수처럼 공중에 뻗어 나와 고깃덩어리를 천천히 수면으로 끌고 가고 있었다.
“우윽!”
‘그것’을 보는 순간 소녀는 한 손으로 입을 막았다. 저 ‘검은 물’을 보는 순간. 뱃속을 비트는 듯한 메스꺼움이 느껴졌다.
그것은 한없이 역겹고 추했으며 보는 것만으로 혐오감을 일으켰다. 저 검은 물의 정체는 소녀는 알 수 없었지만.
본능은 어서 도망가라고 비명 지르고 있었다. 마치 동굴 속에서 나오던 검은머리 인간의 모습을 한 저 ‘괴물’을 처음 보는 순간 같았다.
곧 고깃덩어리가 수면 아래로 사라지고 물결이 잔잔해지자 그녀의 메스꺼운 감각도 사라졌다.
“...이건...뭐?”
“‘세상에서 가장 끔찍하고 더러운 거’라고 해두지. 일단은 ‘검은 피’라고 명명해뒀지만 말이야.”
“검은 피....”
“‘저것’에 닿는 순간 영혼부터 더럽혀지기 시작하지. 그 다음에는 정신이 침식되고 육체는 녹아 ‘저것’들의 일부가 된다.
죽는 것보다 끔찍한 것을 느끼기 싫으면 다가가지 않는 것이 좋을 거야.”
아무런 감정이 담겨있지 않는 듯한 차가운 목소리였다. 소녀가 다시 연못으로 다가가면 지켜보기만 하겠다듯한 무관심한 말투. 그 ‘괴물’은 소녀를 향해 천천히 걸어왔다. 그가 앞에 멈추어 서자 그제야 소녀는 이 동굴에서 깨어났을 때부터 들었던 의문을 말할 수 있었다.
“..왜 나를 고블린에게서 구했죠?”
“널 구한 것이 아니다. 그 녀석이 멋대로 덤볐을 뿐. 단지 그것뿐이다.
단순한 이야기였다. 그가 소녀를 도와준 것은 그녀에게서 보호심이나 성욕 같은 것을 느껴서가 아니라 그저 고블린들이 먼저 덤볐기 때문에 죽였을 뿐이었다. 그에 소녀에겐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
그렇다면 앞의 ‘괴물’은 왜 자신을 이 안으로 데려온 것일까? 그 생각을 ‘괴물’은 알아챈 듯 그것은 말은 이었다.
“물론 이걸로는 너를 이곳으로 데려온 이유가 되지 않겠지.”
“...그렇다면?”
“너에게 부탁 할 것이 있다.”
그 말에 소녀는 오히려 안심이 되었다. 적어도 앞의 ‘괴물’에게 자신이 가치가 있는 한 그녀는 살아 있을 수 있을 것이다.
소녀는 살아 있을 수 있음에 감사하며 앞의 괴물을 보았다.
“그 부탁은 뭐죠?”
“아직 말해 줄 순 없다. 너의 육체와 정신이 완전한 상태가 되면 말해주마.”
“...이봐요. 전 날개랑 다리를 잃었어요. 그런데 어떻게 완전한 상태가 되란 거죠?”
“레지나 일족은 허물을 벗으면 완전히 회복할 텐데?”
“.....”
앞의 남자... 아니 괴물은 자신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그녀의 일족은 탈피하면 부러지거나 잘려나간 곳도 회복된다는 사실까지도...
“식량은 식사 때마다 가져다주마. 탈피 때까지는 이곳에서 회복을 하고 있어라.”
그 말을 끝으로 괴물은 그곳에서 나갔다. 아니 나가려고 했지만 소녀가 그의 다리를 잡았다.
“...가지마..”
“?”
소녀는 그가 의아한 모습을 보이자 조용히 자신을 잘려나간 다리를 가리켰다.
“이대로 가면 나.. 죽을 수도 있어. 네가 날 치유 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아. 다만 곁에 만이라도 있어줘. 제발!”
피는 거의 멈췄지만 이미 출혈이 심한 상태였다. 게다가 앞의 ‘괴물’이 어떤 응급조치도 취하지 않고 그녀를 그저 방치해났기 때문에 상처는 곪아 있었다.
만약 그녀가 일반적인 소녀였다면 이미 죽었을 상처였다. 하지만 그를 소녀가 멈춰 세운 것은 또 다른 이유 때문이었다.
‘가지마... 더는 혼자 있긴 싫어...’
외로웠다. 일족은 전멸 당해 그녀만이 남았다. 그녀의 다른 일족을 만났을 때는 모조리 고블린의 무기에 뚫려 죽어있거나 다른 마물들의 먹이가 된 상태였다. 그런 그녀가 유일하게 대화상대를 만난 것이었다.
비록 앞의 괴물이 언젠가 자신을 해할지라도 외롭지는 않겠지. 소녀는 그렇게 생각했다.
소녀는 죽는다는 공포보단 앞의 괴물이 떠남으로 홀로 남겨지는 두려웠다.
“...흠. 그렇군. 상태가 나아질 때까진 곁에 있도록 하지.”
“...고마워. 근데 당신 이름이 뭐야?”
“이름 따윈 없어. 나를 아는 놈들은 동굴 안의 괴물이라고만 부르더군.”
“그럼 내가 이름을 지어줘도 될까?”
“마음대로.”
그 남자는 그 말을 끝으로 소녀의 옆에 앉았다. 이에 소녀는 싱긋. 웃더니 그를 보았다.
“‘네메시스’. 앞으로 너의 이름이야. 나는 앞으로 레지나 일족의 여왕이 될 테니까. ‘퀸’이라고 부르면 돼.”
끄덕.
그녀가 그에게 지어준 이름은 그녀가 애벌레시절. 먹었던 인간 소녀의 이름이었지만.
소녀는 그것은 앞의 괴물에게 비밀로 하기로 하였다. 그렇게 그들의 동거 생활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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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종족이 뭐야?”
얼마간의 시간이 흘렸다. 소녀가 동굴에 있는지 얼마나 됐을까?
그 안에서는 낮을 알 수 없기 때문에 정확한 시간은 알 수 없었지만 분명한 점은 일주일 정도는 넘은 것 같았다.
그 동안 그녀의 잘려나간 날개는 서서히 재생되어 반쯤 자라있었고 특히 다리는 완전히 재생되어 다소 휘청거리지만 걸을 수는 있을 정도였다.
그리고 식량은 자신이 잠에서 일어나면 어디서 구해왔는지 네메시스란 이름의 괴물이 항시 가져와 있었다.
소녀의 일상은 단조로웠다. 일어나면 그가 구해온 식량을 먹고 재생을 하다가 말없이 소녀의 옆에 있는 네메시스라고 자신이 이름 붙인 괴물의 옆에 기대어 잠드는 것.
그것이 끝이었다. 어느 날 소녀는 그를 향해 말을 걸었다.
“?”
소녀의 질문을 이해 못하는 듯이 네메시스는 두 팔로 무릎을 끌어와 앉아 그를 보고 있던 소녀를 묵묵히 바라보았다.
“같이 지낸지 꽤 됐는데 그 정도는 가르쳐 줘도 됐잖아?”
“.....”
“나는 레지나 일족이야. 꿀벌과 먼 친척쯤 되는 종족이자. 그것들과 많이 닮아 있으면서 한편으로는 다른.. 그런 종족이야.
나는 일족의 둥지를 멸망시킨 고블린들에게서 쫓기다가 이곳에 왔고 내가 소개 할 수 있는 것은 이게 다야.
그렇다면 당신은?”
“흐음..”
고민하는 듯한 그의 모습이 보였다. 그 모습에 소녀는 답답한 것을 느꼈다. 첫날을 제외하고는 그는 거의 말을 안했다.
다른 이가 보면 말을 모르는 벙어리로 보일정도로 그는 말을 아꼈고 또한 필요이상으로는 움직이지 않는 것이 다인.
마치 생물체라긴 보단 다른 ‘무언가’ 같은 존재였다. 그 남자는 그녀의 질문에 고민을 끝냈는지 입을 열었다.
“괴물”
“그 말이 아니잖아. 원본 종족이 뭐냐고... 당신이 ‘다른 곳’에서 이곳 4세계로 온 존재라는 것은 나도 알아.
하지만 본래 종족이 있을 거 아니야?”
“거기에 대한 대답은 ‘없다’다.”
소녀는 네메시스가 오랜만에 입을 여는 것에 살짝 기쁨도 느꼈지만 그의 들려온 대답에 그녀의 잠깐의 기쁨은 사그라들었다.
“말장난 하자는 거야? 하다못해 널 태어나게 해준 ‘존재’는 있을 거 아니야?”
“그 질문에 대해서는 나의 대답은 ‘모른다’이다. 나는 나란 ‘존재’가 의식을 가지고 움직였을 때부터.
나는 이곳에 있었다. 단지 그것 뿐. 그나마 비슷한 종족을 고르자면 한 종족이 있다만....”
그의 대답에 소녀는 이질적인 것을 느꼈다. 그녀의 삶은 그다지 긴 것이 아니라서 다양한 존재를 보지 못했지만.
앞의 존재는 무언가 결여되어 있는 것이 느껴졌다. 소녀는 그 이질감에 기분 나빠짐을 느끼면서도 그에게 물었다.
“뭔데?”
“인간이다.”
“...네가 현재 쓰고 있는 껍데기 말고.. 네가 인간이 아니란 것 정도는 나도 알고 있으니까. 장난하지 말고 본래 종족을..”
새빨간 거짓말. 이라고 소녀는 생각했다. 소녀는 똑똑히 그때의 ‘괴물’ 모습을 본 적이 있었다.
그녀가 출혈로 기절하기 직전 그 남자의 등 뒤에 일렁이던 거대한 괴물의 그림자를...
소녀는 그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 그림자의 주인이 진정한 그의 모습이라고 소녀는 믿었다.
“믿기 어렵나보군. 하지만 사실이다. 나의 육체는 인간과 99%가 유사한 육체이다.
적어도 종족적으로 보면 일단은 인간이라고 봐야겠지. 그리고 내가 내 스스로를 인간이라고 칭한 이유는 한 가지 더 있다.”
“?”
“인간이라는 종족의 본질이. 가장 나란 존재와 닮아 있기 때문이다.”
그 말을 끝으로 네메시스는 입을 닫았다. 그 모습에 소녀는 그가 일부로 질문을 회피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에 소녀는 그가 결코 소녀의 질문에 제대로 대답하지 않을 거라 생각하면서 다른 질문을 던졌다.
“으.. 그렇다면 다른 걸 물어볼게. 저것이 뭔지 알아?”
소녀는 손가락으로 ‘검은 피’로 되어있는 연못을 가리켰다. 정확히는 그곳의 중앙. 그녀가 보는 중에도 빛나고 있는 빛의 구체였다. 소녀가 처음에 봤을 때 한없이 갈망하는 마음을 일으킨 ‘무언가’이자 ‘검은 피’로 희생자를 유혹하는 아름다운 빛.
소녀가 그와 생활한지 첫째 날 어떻게든 잡으려고 했지만 소녀는 저것을 얻을 수 없었다.
소녀가 저것을 잡으려고 하면 반드시 ‘검은 피’는 수면위로 촉수마냥 튀어나와 그녀를 흡수하려고 하였고.
그때마다 소녀는 생명의 위험을 받았다. 그래서 소녀가 포기하고 있는 것이었다. 네메시스는 잠시 그것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어떠한 절망 속에서 빛나는 것. 운명에 순응하는 불멸자는 이해 할 수 없고.
삶이 정해져 있는 필멸자들만이 이해하고 얻을 수 있는 것.”
소녀로서는 알 수 없는 대답이었다. 이에 소녀가 좀 더 설명해보라 듯이 날카롭게 그를 째려보자.
네메시스는 ‘검은 피’가 담긴 수면에 팔을 뻗었다.
“자. 잠깐만! 네메시스. 무슨 짓을!!!”
하지만 ‘검은 피’는 잠잠했다. 그의 팔이 ‘검은 피’가 담긴 수면 위를 통과했지만 ‘검은 피’는 반응하지 않았다.
잠시 후 네메시스는 빛을 내고 있는 ‘무언가’를 잡아 퀸의 앞으로 가져왔다. 그것은 소녀의 바로 앞에. 그의 손에서 빛나고 있었다.
!!!
“가장 끔찍하고 더러운 것들 중 하나지만 그것들 중에서 유일하게 빛나는 빛이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결코 포기하지 않고 필멸자들을 나아가게 하는 것.”
소녀는 갈망하는 ‘무언가’가 그녀의 앞에 있자 팔을 뻗어 잡으려고 했다. 하지만 그 빛은 소녀의 손에 닿는 순간 ‘팍’하고 사라졌고 이에 소녀는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잠시 후 그 빛은 다시 ‘검은 피’의 위에 나타났다. 네메시스는 고개를 돌려 수면위의 ‘무언가’를 보았다.
“내가 아는 단어 중 저것을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없군... 하지만 인간들의 단어 중 저것에 가장 흡사한 것이 있지.”
“....”
잠시 동안의 침묵. 그 순간 소녀는 네메시스란 이름의 괴물이 살짝 웃었다고 생각했다.
그녀로서는 처음으로 그가 표정을 짓는 것을 본 것이었다.
“‘희망’이다.”
“희망...”
소녀는 ‘검은 피’ 위에 나타난 ‘희망’을 바라보며 곱씹는 듯이 그 단어를 중얼거렸다. 결코 잊지 않겠다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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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시 시간이 지났다. 얼마나 흘렸을까? 이제 그와도 어느 정도 대화가 열린 것을 소녀 스스로도 느꼈다.
그와 동시에 네메시스에 대해 조금은 안 것 같다고 소녀는 생각했다.
“....”
식량을 구하러 갈 때와 소녀와 대화를 나눌 때 말고는 그는 항상 같은 자리에 앉아 ‘검은 피’로 채워진 연못을 바라본다.
그리고 소녀가 자고 일어나도 항상 같은 상태. 마치 고대 던전을 지키는 골렘 같은 존재라고 소녀는 생각했다.
“네메시스는 이곳을 지키는 존재야?”
“아니. 거기에 대답은 ‘아니오’라고 해두지. 나는 이곳을 지킬 이유는 없다.
그리고 이곳을 나가서 돌아다닐 수도 있지. 하지만 나란 존재는 결국에 이곳으로 돌아오게 된다.”
“..왜 그러는 건데?”
“벌이 벌집으로 돌아가는 거랑 같다고 해두지.”
“풋!”
소녀는 그 말에 자기도 모르게 웃었다. 이 괴물은 자신을 웃기려고 한 말인가?
자신의 종족은 벌에 가깝긴 하지만 완전한 벌은 아니다. 그녀가 과거에 알던 일족 중 홀로 떠돌이 생활을 한 일족도 존재했다.
소녀는 한동안 웃더니 곧 웃음을 멈추고 진지하게 그와 눈을 마주쳤다.
“저기~ 네메시스. 할 말이 있어.”
“?”
“미안하지만 당신의 부탁은 못 들어 줄 것 같아.”
소녀의 한 마디에 그 안이 순식간에 적의로 가득 찼다. 소녀는 예상했던 반응이라 듯이 고개를 끄덕였고.
네메시스는 날카로운 눈으로 소녀를 바라본 체 물었다.
“무슨 뜻이지?”
“당신의 부탁은 내가 완전한 육체와 정신이 된 상태여야만 들어줄 수 있다고 했지?”
“그렇다만?”
“그럼 안 돼.”
“?”
“난 성체가 될 수 없어.”
네메시스가 설명하라 듯이 소녀를 묵묵히 쳐다보자 소녀는 그의 옆에 앉더니 고개를 그의 몸에 기대었다.
“레지나 일족의 성체는 애벌레인 상태에서 두 번의 탈피를 걸쳐.
이 과정이 끝나면 완전한 성체가 되지. 현재의 나는 첫 번째 탈피를 한 상태이고.”
“그래서?”
“일반적인 일족이라면 두 번째 탈피는 아무 조건이 없이도 할 수 있겠지만.
난 레지나 일족의 ‘퀸’이 될 개체야. 이 때문에 특별한 조건이 필요해.”
“조건이라고?”
그의 말에 소녀는 살짝 끄덕였다.
“꿀이 필요해. 일반적인 꿀로는 안 되고 레지나 일족만 생산 가능한 특별한 꿀이.
그것도 상당한 양이 필요해. 문제는 그 꿀들이 보관되어 있는 곳이 망할 고블린들에게 점령되어 있다는 거고.
지금도 놈들이 실컷 마시고 있다는 거야. 이미 성체가 되긴 글려먹었다는 거지.”
소녀는 쓸쓸하게 말하더니 눈을 감았다. 얼마나 많은 고블린들이 그녀가 있던 둥지를 점령하고 있을까?
수백? 수천? 얼마인지는 몰라도 그 이상일수도 있을 것이다. 그녀의 꿀을 구한다는 것은 그곳으로 쳐들어간다는 의미다.
검기 쓰는 고블린들이 얼마나 모여 있는지도 모르는 곳에서 그녀가 원하는 만한 꿀을 구해오는 것은 불가능이라고,
그녀 스스로도 인정하고 있었다.
“꿀은 일꾼 개체만 생산이 가능한데 전멸해버린 지금. 구할 수 있는 방법은 없어. 미안해. 네메시스.”
“과연. 그렇다면 일반적으로는 구할 수 없겠군.”
“죽일 거면 지금 죽여. 도와준 건 감사하게 생각해. 당신이라면 죽임을 당해도 괜찮을 것 같으니까.”
“흐음...”
잠시 후 소녀가 다시 눈을 떴을 땐 그가 자신의 몸을 들어 올리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무슨?”
“잠시. 이렇게 하면 되나?”
“....”
앞의 웃기지도 않는 네메시스란 이름의 괴물은 자기 목에 자신을 태웠다. 흔히 목마라고 불리는 자세.
이에 시야가 높아지는 것을 보고 소녀는 놀랐지만 그것보다 괴물의 행동에 놀랐다.
“내려줘! 무슨 짓이야! 지금 내가 무슨 몸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는 거야? 이건 아동성추행이라고!”
네메시스는 소녀의 말을 무시하고는 묵묵히 걸어갔다. 이에 소녀가 말하다가 포기할 때 쯤. 시야가 빛이 가득해지는 것을 느꼈다.
소녀는 이에 표정을 찡그렸고 곧 시야가 익숙해지자. 밖인 것이 보였다.
“따뜻해...”
동굴 안의 생활이 익숙해진 탓인지 눈이 아픈 것을 소녀는 느꼈지만 오랜만의 낮의 감각에 몸이 따뜻해지는 것을 소녀는 느꼈다.
그 순간 침묵을 지키던 괴물이 입을 열었다.
“그럼 가볼까?”
“...뭐하려고?”
“너의 일족의 꿀만 구하면 되잖아? 방법이 있다.”
“설마.. 둥지에 쳐들어가려는 것....”
“무슨 뜻이지? 옆집에 가지고 있을만한 놈들이 있어. ‘그 녀석들’에게서 뜯으면 돼.”
“...?”
‘그 녀석들’이란 그의 말에 소녀는 불안감을 느꼈지만 소녀의 불안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는 그대로 소녀를 목에 태운 채로 그녀가 떨어진 절벽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걸어갈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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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왠지 로리콘 같네요. 어린 소녀를 목마 태우고 걷다니..
전에도 ‘아쿠아마린’이란 머메이드 소녀도 건들었다고 벨라스트라즈에게 들었는데 말이에요.”
세레나는 그 말을 하고는 고개를 저었고 그녀의 말에 퀸의 더듬이는 놀라운 것을 들은 듯이 빠르게 위아래로 움직였다.
그와 함께 놀란 그녀의 표정이 적나라하게 들어났다.
“네에!? 또 말이에요!?”
“...또?”
“네. 저희들의 고향에는 그런 자라다 못해 빨래판에 육아체형의 빌어먹을 년들이 자주 그 분의 곁에 꼬였거든요.
마치 파리지옥에 모여드는 파리들 같이 말이에요.”
세레나는 퀸의 말에 왠지 울분 비슷한 것이 섞여 있는 것이 담긴 듯한 느낌을 받았지만 무시했다.
그럼에도 퀸은 무엇을 생각하는지 이를 가는 것이 보였다.
“특히 심심하면 네메시스님의 잠자리에 몰래 숨어드는 벨제부브, 메두사 등등은!!!
이익!! 그 녀석들은 아직도 제가 성공 못하는 일을 어떻게 해내는지 모르겠어요!
저도 시도해보고 싶은데 할 때마다 레퀴엠에게 걸려서 쫓겨나고!”
“.....”
“아. 저도 모르게 흥분했네요. 죄송합니다. 세레나님. 그럼 계속 해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