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3화 〉제 52화 악몽의 끝
“정말 그때를 생각하면 어리석은 소원이었어요.
제가 남자에게 고백이나 다름없는 말을 해버린 것이니까요.
차기 레지나일족의 여왕이 될 존재가 말이에요.”
“에. 그러면 안 되는 것에요?”
세레나의 질문에 퀸은 놀란 표정을 짓더니 곧 당연한 것을 설명하는 듯이 말했다.
“당연하죠. 저희일족이 벌과 흡사한 종족이라는 것은 알고 계시죠? 세레나님. 벌이란 종족에서 남자란 말이죠...
밥만 먹는 쓰레기 같은 존재에요. 우리 마을에서 식량이 부족해지면 항상 먼저 쫓겨나는 존재죠.
그런데 그런 존재에게 제가 먼저 고백해버렸으니 그때 다른 일족들이 살아있었다면, 저를 죽이고 다른 여왕을 뽑았을 걸요? 후훗.”
아무렇지도 않게 퀸은 무서운 말을 내뱉더니 세레나를 바라보았다.
“뭐. 그 이후에는 그 분은 저의 소원을 들어주겠다고는 하고는 저를 제가 살았던 마을로 데려갔어요.
고블린에게 점령되어버린. 저의 고향에 말이죠...”
퀸은 회상하는 듯이 푸른 하늘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마을에는... 저의 동족들의 시체들이 있었어요. 대부분 껍데기만 남은 채 속은 파헤쳐지고 벽걸이마냥 창에 걸려 장식되어 있었죠. 그리고 그곳에는 수많은 고블린들이 모여 있었죠.
우리들이 그곳에 도착하자 경비를 시작으로 벌떼처럼 몰려들더군요.
그때는 정말 아 죽는구나! 싶었어요. 뭐. 지금의 저라면 다 죽였을 테지만 말이죠. 후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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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메시스. 미쳤어요? 이곳으로 처 들어가면 어떻게 해요! 이 멍청아!!!!!!!]
[네 소원을 들어주러 온 거다. 잠시만 기다려라.]
[하지만... 윽!? 도대체 얼마나 몰려들고 있는 거야!!]
그들을 포위하는 수많은 고블린들이 보였다. 그들은 갑자기 찾아온 침입자들을 보러 이를 드러내고 있었고, 무기에 검기를 실어 위협하고 있었다. 누군가를 죽이고자 하는 살의가 그곳을 채웠다.
하지만 누구하나 함부로 움직이는 고블린은 없었다. 그들의 기본적인 살인에 대한 의지보다도 그들의 왕에 대한 공포가 컸기 때문이다. 그들의 무리는 반으로 갈려지더니 곧 그 사이로 한 존재가 걸어 나왔다.
몸길이보다 긴 붉은 색의 창을 등에 걸어둔 채 삐딱한 낡긴 낡은 황금색 왕관을 쓴 고블린이었다.
그것의 몸에는 수많은 상처가 있었고 다른 고블린에 비해 몸집이 커서 거의 성인인간 수준의 크기였다.
“흐음... 감히 겁도 없이 이곳으로 처 들어온 바보들이 누군가 했는데...
레지나일족의 계집이로군... 그리고... 넌...”
고블린킹의 두 눈이 네메시스를 향했다. 그 두 눈에는 비웃음과 자신감이 가득했다.
“동굴 속의 괴물이라고 불리는 놈이군. 300의 괴물 중 벤누와 모비딕을 부리는 괴물.
그래. 무슨 일이지? 멍청한 레지나일족의 계집에 유혹에 빠져 잘난 네놈의 힘을 믿고 이곳에 처 들어 온 건가?
아니며 고향이라도 찾아주러 온 건가?”
“아니. 둘 다 아니다. 너에게 도전하러 왔다. 고블린킹.”
“....?”
그 말에 퀸이 어이가 없어서 네메시스를 바라보았고. 그 말이 고블린킹도 어이가 없었는지 멍하니 바라보더니, 곧 입 꼬리를 들어올렸다.
“하하하하하하하하!!! 웃기는군!!! 모두 뭐하느냐! 저들을 죽여라!!!!”
고블린킹의 말 한마디에 수많은 고블린들이 기다렸다 듯이 각자의 무기를 들고 그들을 향해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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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억... 이게 무슨....”
정말 웃기지도 않았다. 주위에 있던 모든 고블린들은 쓰러져 있었다.
쓰러진 그의 시야에 누군가의 다리가 보였다. 이에 그는 고개를 들어 그 다리의 존재를 보았다.
“..뭐냐... 도대체 네 녀석은...”
검은색의 머리카락이 보인다. 그들이 점령한 레지나일족의 마을에 온 침입자중 한 명이었다.
그들에겐 동굴 속의 괴물로 알려진 존재이자 얼마 전 야누스가 보낸 이조차 쓰러뜨린 걸로 알려진 괴물.
“네메시스란 이름의 괴물이다.”
달려든 모든 이들을 상처 없이 처리한 네메시스란 이름의 괴물은 말했다. 무표정하고도 여유로운 그 모습에 고블린킹은 눈썹을 찌푸렸다. 몇 시간동안 계속해서 전투를 하고도 저 괴물은 지치지도 않은 건가?
뭐. 상관없다고 고블린킹은 생각했다. 그는 자신의 창을 지팡이삼아 지친 몸을 일으켜 세우더니 곧 네메시스를 바라보았다.
“네가 이겼다. 죽여라.”
“흐음... 내가 널 죽일 이유는 없는데?”
“?”
“죽이진 않으마. 내 동료가 되어라.”
네메시스는 그 말과 함께 고블린킹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그 모습에 고블린킹과 퀸의 표정에 당황함이 깃들었다.
“무... 무슨..” “무슨 짓이에요! 네메시스!!!!!!”
고블린킹의 말은 황급히 소리쳐진 퀸의 말에 끊겼다. 이에 고블린킹은 퀸을 째려보았지만 퀸은 상관하지 않고,
네메시스를 보며 소리쳤다.
“왜 안 죽이는 것에요? 그 녀석은 적이라고요. 그를 살리면 언제 복수할지 모른다고요.”
“이 녀석은 좋은 전력이 되어 줄 거다. 그렇기 때문에 필요한 존재다.”
“...그게 무” “잠깐! 그것은 또 무슨 말이지?”
이번에 이어진 그녀의 말은 고블린킹의 말에 끊겼다. 고블린킹은 당황한 목소리로 네메시스에게 물었다.
“무슨 일을 할 속셈이냐? 네 녀석은!!!”
그의 말에 네메시스는 당연하듯이. 엄청난 것을 말해버렸다.
“4세계의 왕이 될 것이다.”
““....뭐?”“
어이없는 듯이 퀸과 고블린킹이 이구동성으로 외쳤고 그 모습에 네메시스는 살짝 미소 지었다.
“그게 이 녀석의 소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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퀸은 그곳까지 말하고는 자신의 가슴사이에서 작은 물병을 꺼내(그 순간 세레나의 두 눈이 믿을 수 없는 듯이 놀라움으로 커졌다.) 마시더니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정말이지... 저는 고백으로 그 소원을 빌었는데 그 당시에 네메시스님은 제 소원을 이렇게 알아들은 거였어요.
‘4세계의 왕이 되어 달라.’라는...
정말.. 어처구니가 없었죠,”
그리고는 스윽. 퀸은 즐거운 기억을 생각해낸 듯 입 꼬리를 들어 올려, 매혹적인 미소를 짓더니 말을 이었다.
“그 이후에 그는 수많은 존재들이 모았어요. 시스터콤플렉스의 변태 여우 한 마리,
그리고 속옷냄새에 환장하는 스토커 암여우, 신에게 버림받은 성녀와 사람을 써는 것을 좋아하는 미친 인형,
심지어는 자존심이 높다 못해 하늘을 찌르는 레퀴엠에 이르기까지...
다들 강하고 미쳐있었지만 마음에 상처가 있는 이들이 그분의 주변으로 모여들었죠.
그리고 마침내 그는 야누스와의 전투에서 승리했고 정말로 왕이 되어버렸어요...
우리 괴물들이 믿고 따를 수 있는 그런 왕이 말이죠....”
“....”
“이제 알겠어요? 당신이 함께 다니는 네메시스님은 당신과는 너무나 다른 존재에요.”
“무슨 말이 하고 싶으신 거죠? 퀸씨?”
세레나의 물음에 퀸은 살짝 미소 짓더니 세레나의 코앞까지 다가섰다.
이에 그녀들의 키 차이 때문에 그녀의 그것은 세레나의 바로 앞에 있게 되었고 그 모습에 세레나는 기죽는 듯이 귀가 축 처졌다.
“당신은 그와 함께 이곳까지 오면서 한 번도 이상하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어째서 그분께서 언데드만 몰려오고 볼 것도 없는 ‘실버게이트’에 갔는지.
그리고 왜 당신과 여행하게 됐는가를... 당신은 의심해야 돼요.”
그녀의 말이 끝나자 세레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로 퀸을 적개심어린 눈으로 노려보았다.
그 모습에 퀸은 쿠큭. 작게 웃더니 세레나의 두 눈을 바라보았다.
“후훗. 당신도 마음속으로는 의심하고 있었나보군요... 그렇다면 좋아요.
제가 당신에게 드릴 수 있는 조언은 여기까지가 끝이에요. 부디. 옳은 해답에 도달하시기를...”
퀸은 그 말을 끝으로 뒤돌아 날아가려 듯이 날개를 피더니 곧 무언가 생각난 듯이 고개를 돌려 세레나를 바라보았다.
“아. 깜박하고 그냥 갈 뻔했네요. 당신은 앞으로 우리 ‘고향’에서 온 이들을 보게 될 거에요.
4세계의 괴물들 말이죠... 만약에 그들을 만났을 때 곁에 네메시스님이 없다면....
도망쳐요. 지금의 당신이라면 죽을 테니까...”
그 말을 끝으로 퀸은 뒤돌아 날개를 움직여 그곳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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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까지 믿어야 하는 거지?”
세레나는 스스로 물었다. 퀸이 말해준 이야기는 솔직히... 너무 믿기 힘들었다.
‘마법도 아니고 ‘능력’이라니 그런 것이 존재할 리가 없잖아?‘
퀸의 말에 의하면 네메시스와 그녀가 살아온 것은 이곳과는 별개의 세계였다.
그런 것이 가능한가에 대해서는 세레나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래도 일부는 진실일 텐데.... 어디까지 믿어야하는 거지?’
네메시스가 4세계인지 알 수 없는 곳의 왕이라는 것?
그가 어린 그녀를 고블린에게 구해주고 검기를 쓰는 고블린들이 바글바글한 마을에 처 들어간 것?
‘벤누’라든지 ‘모비딕’ 같은 황당한 크기와 능력의 괴물들?
세레나는 알 수 없었다. 퀸이 그녀에게 말한 내용은 세레나가 산 곳과는 너무나 다른 이야기이기에...
전혀 믿을 수가 없었다. 고민이 쌓여간다. 그에 따라 불신도 함께...
잠시 후 세레나는 네메시스가 있던 여관 앞에 도착했다. 그녀의 표정은 어두웠고,
무언가 고민하는 듯이 심각한 표정이었다. 곧 그녀의 앞에 누군가가 여관 안에서 걸어 나왔다.
“어서와 세레나. 기다리고 있었어.”
“.....”
세레나는 고개를 들어 앞의 남자를 보았다. 어느 날 그녀가 살던 마을에 나타나 같이 다니게 된 남자.
확실히 그는 퀸이란 존재의 말대로 수상한 점이 너무 많았다.
어째서 네메시스는 그곳에 있던 수많은 엘프 중 자신과 함께 다니는 거지?
왜 죽을 위험을 무릅쓰고 자신을 구하려 하는가?
그리고..... 왜 한 번도 자기에 대해 말하지 않는 거지? 그 동안 그녀는 네메시스와 함께 다녔지만.
한 번도 그에게서 과거에 들은 적이 없었다. 그럼... 무슨 속셈인거지...?
수많은 의심과 물음이 꼬리를 물고 세레나의 머릿속에서 생겨났지만 애써 세레나는 표정을 수습했다. 그녀의 생각이 괜한 의심일 수도 있었다.
사실 우연히 자신을 좋아하게 되어서 같이 다니게 되었다고 할 수 있고,
사람에 따라선 과거에 대해 말하고 싶지 않을 수도 있는 법이니까....
그래도.... 세레나는 잠시 동안 네메시스를 바라보더니 입을 열었다.
“네메시스는... 왜 저와 함께 다니는 것에요?”
“네가 좋으니까.”
거짓 없는 즉답이었다. 그 말에 세레나는 자기도 모르게 가슴이 뛰었지만 애써 표정관리 하였다.
“어디가 좋은데요?”
“흐음.. 그건 아마도....”
네메시스는 뒷말을 흐리더니 세레나를 끌어당겨 자신의 품안으로 끌어들었다.
“윽!?”
“너의 모든 것이.”
화악!!!
갑자기 그의 품속에 안긴 상태가 된 세레나는 표정을 붉혔고 곧 밀어냈지만 그는 떨어질 생각을 안했다.
“다.. 당장 떨어져욧!!!”
“앗. 때리지 마! 정말 아프다고. 세레나!”
그들을 바라보고 있는 네메시스의 뒤에 있는 이들에게서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것이 느껴졌다.
그에 따라 시시각각 세레나의 얼굴이 붉혀지더니 귀까지 빨개졌다.
“이 변태!!!!!!”
정말이지. 오늘은 물을 수 없을 거라고 세레나는 조용히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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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라님. 네메시스님. 두 분 다 저에게는 소중한 분이죠.
하지만 그 둘 중 선택해야한다면 저는 네메시스님을 따를 뿐....-by 4세계 서열 13위 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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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주신이 만들어낸 악의 멸하는 대천사의 창이 수많은 쇠사슬에 감싸여있는 그를 향해 내리쳐졌다.
단순한 열기로만으로도 지상에 있는 모든 생명체를 죽일 것 같은 빛의 창이 서서히 그를 향해 내려왔고,
네메시스는 안고 있던 플로라를 보호하는 듯이 감싸 안았다.
“나참... 당신도 한시도 눈을 떼면 안 되는 사내로군요.”
그 순간이었다. 네메시스에겐 익숙한 웨딩드레스자락이 그의 시야를 가렸고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카운터. <순결함이 나를 지키노리. 그 무엇으로도 해할 수 없으리라>.”
그곳과는 어울리지 않는 웨딩드레스를 입고 있는 그녀는 말했다. 단지 그것뿐.
분명히 그것 뿐 임에도 당장이라도 대지를 불태울 듯이 내려오던 빛의 창이 그들의 앞에서 방향이 직각으로 꺾이더니, 저 멀리 지평선의 산에 부딪혀 사방을 밝히었다.
그제야 네메시스는 안고 있던 플로라에게서 눈을 뗀 채. 자신 앞에 있는 이를 보았다. 밝은 빛을 등진 그녀의 모습이 보였다.
“레퀴엠...”
서열 14위의 레퀴엠. 그녀가 그의 앞에 있었다. 언제나 입는. 그가 만들어준 웨딩드레스를 입은 채 조금은 화난 듯.
그러면서도 반가움이 가득 담겨 있는 애매한 미소를 지은 채 허리에 두 손을 도도하게 댄 체 서 있었다.
그녀는 네메시스의 품에 안겨 있는 이를 보고는 놀랐는지 눈썹을 치켜들었지만 곧 눈에 적의를 들어냈다.
“플로라.. 나에게서 이 남자를 빼앗아가고도 겨우 저 잡것들에게 당해버린 거야?
이 나를 이기고도? 4세계 서열 2위나 하는 네가?...”
그녀의 말에는 증오도 담겨있었지만 또한 애정도 담겨 있었고 레퀴엠이 플로라를 보는 시선에는 복잡한 감정이 담겨 있었다.
곧 그들의 옆으로 한 파란 도마뱀이 날아왔다.
“파란 도마뱀이 아니라고!!!!”
“...말리고스.”
“이 파란 도마뱀의 힘으로 4세계에서 넘어왔어요. 근데 지금 어떤 상황이죠?
오자마자 플로라는 피투성이 누더기가 되어있고 네메시스님은 이 하찮은 것에 묶여있다니!
설마! 저 위에 날벌레들이 그런 건가요?”
“....”
네메시스는 그녀의 말에 대답하지 않더니 그대로 품에 있는 플로라를 말리고스를 향해 들어올렸다.
그 모습에 말리고스는 끄덕였다.
우드드득!
파란 도마뱀 형상을 한 말리고스의 평소 동글게 말아진 꼬리가 펼쳐져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기 시작하더니, 앙증맞은 분홍빛 날개도 커져갔다.
그에 따라 그의 몸집도 성장하였고 곧 말리고스는 거대한 드래곤의 모습으로 성장하였다.
말리고스는 거기까지 성장하자 몸을 눕혔고 네메시스는 조용히 플로라를 그 위에 올렸다.
우지지직.
수많은 빛의 쇠사슬이 무색하게 그가 움직일 때마다 부서져나갔고,
그에 따라 하늘위에는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네메시스는 무시했다.
잠시 후 말리고스의 등 뒤에 플로라가 무사히 놓이자 네메시스는 뒤로 물렀다.
“...네메시스..”
“말리고스. 그녀를 4세계로 데려가라. 그녀가 오지 못하도록 해.”
“...무슨 짓을 할 생각이야?”
“플로라가 나에게서 제일 싫어하고 증오하는 일.”
“......”
그 말에 공간의 주신인 말리고스는 조용히 네메시스를 내려다보았다.
현재의 그는 네메시스와 함께 지낸 기간은 짧았지만 플로라를 만난 시간은 같았다.
그는 네메시스가 플로라를 만난 변화를 가장 잘 아는 존재였다. 네메시스가 그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그리고 그녀가 다쳤다면 그가 할 일까지도.. 어느 정도 예상이 되었다.
“모든 주신들이 너의 적이 될 거야. 뇨롱.”
“알고 있다.”
“그녀가 다시 회복 되서 깨어나면 널 증오할거야. 뇨롱.”
“알아. 그래도 필요한 일이다.”
“.......”
드래곤의 모습이 된 공간의 주신은 그의 의지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 이상으로 자신이 네메시스에게 해 줄 말은 없다.
다만 지켜볼 뿐, 말리고스는 앞에 ‘세계 간의 경계’를 열더니, 플로라를 태운 채로 그곳으로 들어가 모습을 감추었다.
그가 떠난 후. 네메시스의 옆으로 레퀴엠이 다가오더니 곧 그의 어깨에 고개를 기대었다.
“자아.. 어떻게 할까요? 왕. 위에 있는 건방진 놈들을 모두 죽이면 될까요?”
하늘 위로 가득히 메워진 수많은 천족과 그리고 그것들의 중앙에 있는 빛의 주신이 보인다. 절망적으로 많은 숫자.
그럼에도 레퀴엠은 너무나 쉽게 그 말을 했다. 혼자서도 가능하다 듯이...
그녀의 말에 네메시스는 고개를 절래절래 좌우로 흔들었다.
“아니. 기다려라.”
“네에~♡”
레퀴엠은 기대하는 듯한 말을 남기고는 방해되지 않게 물러섰고 네메시스는 하늘 위의 빛의 주신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빛의 주신이라는 존재가 구속되었던 줄 알았던 네메시스가 움직이자. 경악에 일그러진 채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 보였다.
“이것이. 네가 말하는 정의냐? 빛의 주신. 켈렌트. 필멸자로 하여금 방심한 그녀를 다치게 하는 것?
우르르 몰려와서 자기들 멋대로 악으로 지정해서 멸하는 것이?
웃기군... 정말 웃겨... 그렇다면 보여주마.
내가 왜 괴물들의 왕인지를.”
빛의 주신이 다시 하늘 위를 향해 손을 드는 모습이 보였다. 아까의 그 기술이었다.
세상이 다시 어둠 속으로 잠기고. 잠시 뒤 세상에 빛이 되돌아 왔을 때는 그의 옆에는 ‘그들’이 있었다.
“서열 666위 고블린킹. 제일 일찍 도착했다고.”
“서열 555위 살인인형 엘리스. 도착! 썰어버릴 고기들이라도 있어요. 네메시스님?”
“하아아앙. 귀찮아.. 왜 갑자기 부른 거야? 여동생이랑 즐겁게 대화중인데.”
서열 199위 방랑자 하은 도착. 101위 둠로드.... 등등. 빠른 속도로 괴물들이 하나 둘씩 도착하고 있었다.
.............
“마지막으로 나태의 벨제부브까지. 저. 13위 퀸까지 합해서, 모든 괴물 집합 완료랍니다. 나의 왕이시여.”
666의 괴물. 그 중 664명의 괴물들이 그들의 왕의 명을 받들어 그곳에 모두 모였다.
한때는 어떤 차원의 마왕으로서 혹은 단순한 악인으로서.
아니면 영웅의 길을 가던 존재들로서 결국에 괴물에 되어버린 그들이...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모두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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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도 안 돼!!!”
결코 이 세상에 존재해서는 안 되는 이들이 그곳에 있었다. 켈렌트 그 자신이 예언으로서 악으로 지정하고 멸하는 존재들.
소멸하여 흔적조차 안 남았어야하는 그들이, 다시 생명을 가진 채로 자기들의 왕에 예를 가추는 모습이 보였다.
‘....어떻게? 저놈들이 모두 살아있는 거지? 처리한 후 나의 ’윤회의 궤‘에서도 추방시킨 놈들이?
어떻게. 어떻게!!!!’
그 순간 괴물들의 왕이 자신을 바라보는 것이 켈렌트는 느껴졌다.
“.....”
감정 없는 듯한. 무심하기 짝이 없는 눈. 방금 전만해도 슬픔과 분노에 젖어있었던 이와 동일 인물이라곤,
믿을 수 없을 만큼 감정 없는 눈이었다. 마치 처음부터 살아있지 않는 존재인 듯이... 그 존재는 조용히 물었다.
“플로라는.... 너희를 믿었었다. 그리고 사랑했다. 그런데 어째서이냐...?”
“웃기지 마! 괴물들의 왕. 나는 미래를 보았어. 너희가 내가 아끼는 나의 세계를 파멸에 이르는 그 모습을.
어디서 입을 함부로 놀리는 거야? 너희는 악이야. 그리고 쓰레기야!! 재활용도 안 되는 쓰레기들!!!”
빛의 주신이 소리치는 듯이 하늘을 향해 높이든 손을 내린다. 그 순간. 다시 또 다른 태양은 지상을 향해 떨어져 내렸다.
그것은 아까와 달리 곧바로 그곳에 도달했다. 그러나
“...무슨?”
작은 태양을 연상시키는 거대한 빛이 쪼그라들고 있었다. 곧 그것들은 하나의 점으로 모이더니 작은 구슬 수준으로 작아져 그의 손에 잡혀 있었다.
그리고 켈렌트의 두 눈에 들어온 것은 아까전만 해도 없었던 네메시스의 등 뒤에 달린 8색상의 8개의 날개.
그 순간. 켈렌트의 두 눈이 커질 수 없을 만큼 커졌다. 저 날개에 담긴 것은 주신에게 부여된 8개의 속성이었다.
심지어 한 번도 보지 못한 속성도 그곳에 담겨있었기 때문이었다.
“겨우 이정도인가? 그리고.. 이것이 너희들의 대답인가?... 좋다..”
파악!
빛이 네메시스의 손아귀에서 흘려 나온 ‘검은 액체’에 뒤덮여졌다.
그 무엇보다도 더럽고 추악하기 없는 ‘무언가’에. 빛은 저항하는 듯이 깜박였으나 서서히 사그라들더니. 검은 액체에 삼켜졌다.
‘겨우 필멸자 따위가... 주신들이 창조주에게 받은 속성을 가지고 있다고?
8개 모두를? 게다가 저 기분 나쁜 검은 액체는 도대체 뭐지?’
위험하다. 본능이 켈렌트에게 경보했다. 현재 수많은 천족들이 그곳에 있었지만 밑의 네메시스란 존재를 결코 이길 수 없음을 켈렌트는 느꼈다. 곧 그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그래봤자. 저 괴물은 한계가 정해져 있는 생물체일 뿐. 1세계로부터 무한히 지원받을 수 있는 자신과는 비교할 수가 없다.
창조주의 아이이자 주신인 그가 걱정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자기가 데려온 군세들을 믿었다.
전투천사들은 마계에서 침공하는 마족과 계속해서 싸워온 경험이 있는 정예들이며 그 숫자는 하늘을 뒤덮을 정도였다.
정상적으로 생각하면 겨우 600남짓한 괴물들이 결코 이길 수 없는 숫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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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메시스는 빛을 삼킨 이후에 빛의 주신을 무시한 체 등을 돌리더니 괴물들을 보았다.
한때 자신의 적이거나 날뛰는 마물에 불과한 이들. 하지만 지금은 동료가 되어.
함께 4세계를 살아온 그들이 그곳에 있었다. 모두가 그의 명을 기다리고 있었다.
“...너희에게 처음이자. 마지막 명령을 하고자한다.”
모든 괴물들의 시선이 네메시스를 향했다. 그 순간 분위기 파악 안 된 듯 ‘살인인형 엘리스’는 그의 앞으로 다가갔다.
그 모습에 모든 괴물들이 시선으로 무언의 압박을 했지만,
엘리스는 상관없는 듯이 자신의 무기인 전기톱을 바닥에 질질 끌면서 그의 앞에 섰다.
“위에 있는 것들 다 썰어버리면 된다는 거죠? 간단하네요.”
“아니.”
“?”
“빛의 주신이 아끼고 사랑하는 ‘모든 것을 없애라’.”
씨익.
“기꺼이.”
살인인형이라고 불리는 괴물은 그의 말에 웃었다. 그와 동시에 다른 괴물들도 예를 취하는 것을 그만두고는 서서히 일어섰다.
‘아아 휴가라 쉬고 싶은데. 뭐. 왕의 명이라면.’
‘표본이 필요한데. 잘됐군요!’
‘위에 날개달린 놈들은 맛있으려나?’
각자 다른 이유, 다른 종족. 하나 같이 광기에 젖다 못해 비정상인 존재들.
모여 있긴 커녕 당장이라도 서로 칼을 들이대도 이상하지 않는 그들이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일어섰다.
네메시스는 그들에게서 시선을 떼어 빛의 주신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우리가 너의 세계를 파멸하는 미래를 보았다고 하였느냐? 그것은 좋다.
다만 한 가지는 알아두면 좋겠군. 그 파멸은 우리가 시작 한 것이 아니라...
네가 시작한 것임을...”
파아아아앗!
네메시스라고 불리는 괴물의 찬란하기 빛나는 8개의 날개가. 빛을 잃고. 더럽고 추악하기 짝이 없는 검은 액체가 되어 흘려 내린다. 그의 피부는 갈라지기 시작하더니 갈라진 피부 사이에서도 검은 액체가 꿈틀거리기 시작하였다.
그 순간. 억지로 붙잡고 있는 그의 인간 현상이... 무너져 내린다.
우드드득.
그의 육체를 겨우 유지하고 있던 살점이 흘려 내리고 그 안에서 그 ‘무언가’는 꿈틀거렸다.
그리고 곧 하나의 생명체로 모습이 변하기 시작했다.
[눈 크게 뜨고 보아라. 주신이여. 네가 만들어낸 파멸을. 네 세계를 사랑한다고 하였느냐?
소중한 것들을 위해 우리가 사라져야한다고?
그래.. 좋다.. 그 소중한 모든 것들을 빼앗아주지..]
전투에 비효율적인 인간의 형상을 벗는다.
녹아버린 날개를 대신하여 ‘검은 피’가 그 자리를 메워. 날개의 형상을 만들어간다.
그리고..... 마침내 본래... 존재했던 모습으로. 네메시스는 돌아갔다.
“.....말도 안 돼...”
빛의 주신 켈렌트는 경악했다. 어느 정도 ‘악’이라고만 인식했었다. 하지만 저것은 악 따위가 아니었다. 그저 ‘괴물’. 단지 그것 뿐.
그는 수많은 우주가 사라져가는 세월을 살아왔지만 저런 존재는 보지 못했다. 지금까지 그가 보아온 어떤 생물체와도 다른 모습.
지금의 앞에 있는 괴물은 더 이상 아까의 네메시스라고는 볼 수 없는 ‘무언가’였다.
이질적이고 이세상의 것이라고 인식 할 수 없는 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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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변해버린 네메시스의 입으로 추정되는 곳에서 나온 것은 말이나 언어가 아닌 짐승의 울음소리.
그와 동시에 한때 네메시스라고 불리었던 괴물은 날개를 폈다. 그와 동시에 괴물들이 움직이기 시작했고,
하늘 위의 존재들은 지상위의 존재를 멸하기 위해 그들의 주신의 멈추라는 명을 무시하고 내려간다. 그렇게 그들은 격돌했다.
4세계의 666괴물 중 서열 2위 플로라 중상을 제외하고는 피해 없음.
전투천사 8명을 제외하고는 모든 천사 전멸.
1세계 빛의 주신 켈렌트. 큰 부상에 당하고 도주. 2세계와 3세계에 지원요청. 실종된 생명의 주신과 4세계에 있는 공간의 주신. 말리고스를 제외한 모든 6명의 주신 참전.
그렇게 4세계의 괴물과 주신들의 ‘천 년 전 전쟁’은 시작되었다. 4세계의 괴물들과 각 세계가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은 최악의 전쟁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