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3화 〉제 72화 성녀와 4세계의 괴물
세레나가 사라진 직후. 주위를 둘려보던 헤카테는 곧 알 수 없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입을 열었다.
“...세레나 언니가 어디 있는지 느껴지지 않아요.
“켈렌트의 환상이야. 이걸 깨부수지 않으면 못 찾을 걸?”
그 말에 헤카테가 제우스를 바라보자 그는 음흉한 미소로 말했다.
“이 오빠의 입술에 뽀뽀하면 켈렌트의 환상 따윈 전부 지워주마.”
“.....세레나 언니도 없으니까. 그냥 저걸 죽여도 되죠? 네메시스님? 네. 된다고요? 알겠어요!”
헤카테는 해맑은 웃음과 함께 제우스에게 다가갔고 잠시 뒤. 제우스는 헤카테에게 구타당해 왼쪽 눈이 멍들어 있는 채로.
그의 손에는 ‘파괴’가 모여들고 있었다.
“쳇. 네메시스. 나쁜 자식. 더럽게 날 부려먹네. 자아. 간다.”
파지지직!
제우스의 손아귀에 모인 파괴가 잠시 깜박이더니. 곧 얇게 퍼져. 주위를 뒤덮었고 ‘파괴’가 주위를 얇게 퍼져나간 후.
주위의 모든 유적안의 환상들과 소리들이 깨끗하게 사라져갔다. 이에 헤카테의 코가 살짝 꿈틀거리더니 그녀는 일행을 보며 외쳤다.
“세레나 언니가 냄새가 느껴져요.... 이쪽이에요!”
그 말과 함께 헤카테는 빠른 속도로 달려 나가기 시작하였고,
잠시 뒤 다른 일행이 그녀를 쫓아 도착하자.
헤카테는 낡은 집의 앞에서 입술을 깨물고는 무언가 고민 있는 눈동자로 앞의 집을 바라보고 있었다.
“여기는... 켈렌트. 빌어먹을 자식. 설마 이곳이라니...”
“...왜 그래? 헤카테?”
“...이곳은 과거 네메시스님과 공간의 주신 말리고스. 그리고 플로라님이 한때 정착했던 곳이에요.
처음에는 폐허라 미처 못 알아봤지만. 지금 보니 알아 볼 수 있네요.”
헤카테는 그렇게 말하고는 앞의 집의 벽에 손을 대고는 입을 열었다.
“그리고 이 집이.... 네메시스님과 플로라님이 같이 산 곳이자....
그녀가 4세계로 오기 전 행복한 추억을 쌓은 곳이죠.”
“...무슨 일이 있던 거죠?”
헤카테의 어두운 표정에 람히르가 물었고 그 질문에 헤카테는 슬픈 눈동자로 그녀를 보며 입을 열었다.
소녀의 등 뒤로의 은빛 날개가 살짝 흔들렸다.
“마을 사람들이 다 죽었어요. 한명도 빠짐없이.....”
그녀는 자신의 손을 바라보고는 곧 시선을 떨구었다.
“제 손에 말이죠.”
“.....뭐?”
“마을 사람들 전부를?”
“네. 플로라와 수인왕만 빼고 말이죠.”
“잠깐. 아까 여긴 플로라가 행복했던 곳이라고 하지 않았어? 네메시스!
네가 플로라랑 같이 살았던 곳이라면서! 그런데 어째서!”
“...당신들은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이유에요.”
헤카테는 그렇게 말하고는 앞의 집을 향해 시선을 돌리고는 말을 이었다.
“...당시 플로라는 4세계 괴물이 아닌 엘프. 수명이 길더라도, 언젠가는 죽는 존재였죠.
그때의 네메시스님은 그저... 함께 하고 싶은 것뿐이에요.
영원이란 시간을... 둘이서 함께....”
“......”
“그렇기 때문에 그녀를 4세계로 제 발로 오게 할 동기가 필요했어요.... 그래야 그녀도 영원한 수명을 가진 괴물이 될 테니까.”
“플로라의 마음은? 그녀가 이곳에 살아가면서 조금이나마 사랑하거나 친했던 이들은 어떻게 되는 건데?
그렇게나 그녀의 마음을 짓밟으면 무슨 의미가 있는 건데! 네메시스!”
“...변명할 생각은 없어요. 그때의 네메시스님은... 비뚤어진 애정을 가진 괴물이니까...
그런 것 따윈 상관없었어요. 결국. 이곳의 폐허는 네메시스님의 죄라는 거죠.”
끼이이이익.
벨라스트라즈의 질문에 헤카테는 씁쓸한 시선으로 일행들을 훑어보고는 모두의 시선을 뒤로 한 체.
헤카테는 문을 향해 손을 뻗더니 천천히 문을 열었다.
“세레나 언니!!!”
낡은 집 안에 쓰러져 있는 세레나의 모습에 헤카테는 달려가더니 그녀가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자 주위를 둘려보았다.
“...이 사진은?”
파직!
세레나와 얼마 안 떨어진 낡은 사진에서 흘려 나오는 어둠이 세레나의 몸을 둘러싸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오자 헤카테는 거기에 손을 뻗었고 이에 어둠은 그녀의 손을 거부하는 듯이 그녀의 손을 튕겨냈다.
이에 그녀는 인상을 찌푸렸고 곧 다른 일행들도 집 안으로 들어오고는 헤카테에게 물었다.
“세레나? 그녀가 왜 거기에... 그리고 그 사진에서 흘려 나오는 ‘어둠’은 또 뭐고.”
“...아무래도 어둠의 주신 벨라작스의 작품 같아요. 잠깐만 기다려주세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는 세레나의 머리를 살짝 들어. 자신의 무릎에 올리고는 두 눈을 감더니 잠시 뒤 입을 열었다.
“...이 어둠은 벨라작스의 작품이 맞네요. 현재 플로라 언니는 꿈을 꾸고 있어요...
조화의 빛.. 이건... 천 년 전 전쟁의 마지막 날이네요.....”
“괜찮은 거야?”
“...기억을 물려받는 과정일수도 있지만 아직은 모르겠어요... 음?”
잠시 동안 플로라의 꿈속을 들여다보던 헤카테는 눈을 뜨더니 입을 열었다.
“....플로라의 두 번째 기억이... 자아가 있어요. 이건 대체.. 켈렌트와 계약할 때 이런 내용은 없었는데... 이건... 악의?”
헤카테는 그렇게 말하고는 표정을 구겼고 이에 벨라가 그녀의 옆으로 다가오더니 물어보았다.
“...도대체 무슨 일인데 그래?”
“플로라의 두 번째 기억이 세레나 언니에게 악의를 가지고 있어요... 정확한 것은 알 수 없지만..
세레나 언니. 혼자라면 이번은 위험할지도 몰라요.
저 좀 도와주실래요? 벨라스트라즈?”
“....알겠어. 다만 헤카테.. 아니 네메시스.”
“..?”
“이번일이 끝나면. 우리에게도 자세히 말해주겠어? 플로라와 네가. 이곳에서 무슨 일을 일으켰는지를...”
“....아까 설명한 거랑 별 차이는 없을 거에요. 오히려 자세히 들으면 들을수록.
당신들이 네메시스를 혐오하거나 미워하게 될 수도 있고요. 그런데도 괜찮겠어요?”
“응. 내가 네메시스와 함께 다닌 지는 얼마 안 됐지만 당신은 나쁜 존재가 아니니까. 오히려..”
“따뜻하고... 믿어도 될 사람이니까 말이죠.”
벨라와 람히르의 대답에 헤카테는 잠시 동안 그들을 바라보더니 입을 열었다.
“...알겠어요. 다만 이것만은 기억해줘요. 과거의 네메시스님은.. 당신들이 기억한 거랑 완전히 다른 존재이니까...
현재의 네메시스님을 생각하면 후회할거에요.”
“상관없어.”
“....그럼 좋아요. 현재의 저의 육체인 서큐버스의 능력으로 세레나 언니의 기억 속으로 들어가겠어요.
그 동안에는 저는 무방비 상태가 되니까. 지켜주세요.”
“알겠어.”
-----------------------------------------------------------------------
전장을 가로지르는 플로라를 향해 4세계 괴물들이 내뿜는 수많은 공격이 하늘을 수놓는 별처럼 날아갔고 그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 거대한 ‘파괴’의 파도에 휘감겨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사라져갔다.
그 모습에 플로라를 공격하려했던 괴물은 자신의 공격을 막은 존재를 보고는 중얼거렸다.
“제길! 서열 5위 ‘시기의 오메가’ 자식이 플로라 쪽으로 완전히 붙어버렸어. 그녀에게 날아오는 공격을 혼자서 막아내다니....”
입술에 피어싱과 은발의 머리카락이 잘 어울리는 남자가 플로라를 향한 공격을 막는 듯이 그녀가 달려 나가는 뒤에 서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는 플로라를 향한 원거리 공격이 날아갈 때마다 장난하는 듯이 손가락으로 딱밤 하는 자세를 하더니 손가락을 튕겼고,
그 순간. 그곳에서 나온 ‘파괴’가 날아가 주위전체를 날려버렸다.
그의 ‘파괴’가 주위를 날려버릴 때마다 거대한 파공음과 전장을 흔드는 진동은 같은 666의 괴물조차 어이없을 정도의 화력이었고 그 모습에 플로라를 쫓던 괴물들이 멈춘다.
“아무리 7대악이라도 오메가는 혼자야. 뚫어!”
“으음. 그럼/저희들이 오메가를 돕죠. 키득.”
!!!!!!!
그 목소리와 함께 오메가의 옆의 땅거죽이 꿈틀거리더니 거대한 지렁이 모습의 마물이 드러냈고.
그 마물은 입 속에서 수많은 마물들을 토해냈다. 그곳에서 나온 갖가지 모습의 마물들 사이로 머리 셋이 달린 거대한 개의 모습의 마물 위로 남자를 매혹하는 미소를 짓는 두 명의 자매의 모습이 보인다.
서열 6위의 괴물. 색욕의 릴리스였다. 그녀의 주위로 수많은 마물들이 모여들더니,
그녀들의 손짓에 같은 4세계의 괴물을 향해 이빨을 드러냈다.
“서열 6위 색욕의 릴리스와 그녀의 마물들도 적으로 돌아갔다고? 저 녀석들. 무슨 생각이야?”
“우리들도 네메시스님을/위해서에요.”
어떤 괴물의 물음에 말없이 다른 괴물들을 공격하는 오메가를 대신하는 듯이,
릴리스라 불리는 그녀들은 대신 대답하며 손을 휘둘렸고 이에 그녀들의 마물의 군단이 진격했다.
“으악! 젠장. 지금 플로라 쪽에 붙은 놈들이 몇 명이야?”
“누가 적인지 아군인지 알 수 없어!”
“헤헷. 싸움이야? 나도 끼어야지!”
666의 괴물들의 외침들과 함께 전장의 곳곳에서 전투가 벌어진다. 단 그것은 아까처럼 연합군에 대한 살육이 아닌. 4세계 괴물들 간의 전투.
자신들의 왕의 신변을 지키고자 하는 자와 그를 믿고 따르는 자.
혹은 플로라를 위하는 자나 아니면 이도저도 아닌 상황을 지켜보려는 자.
아니면 플로라의 말대로 진정으로 그를 위하는 자.
666의 괴물들의 각자의 다른 이유로 인하여. 전투는 연합군 대 4세계의 괴물이 아닌.
모두가 뒤섞인 혼란한 상황으로 치닫는다. 그리고 그 상황을 바라보며 보라 빛의 미청년은 키득거린다.
“이야. 역시 서열 2위 플로라님이라니까. 설마. 말 한마디로 우리 4세계 괴물들 간에 이런 혼란을 일으키다니. 기가 막힌 걸?”
끄덕.
서열 3위 ‘분노의 야누스’의 말에 동의하는 듯이.
옆에 이불로 온몸을 둘둘 만 채로 주위를 둘려보던 서열 4위 ‘나태의 벨제부브’가 끄덕였다.
“...현재 전장은 혼란. 누가 적인지 아군인지 구별이 불가능..”
“뭐. 이러니저러니 해도. 우리 4세계 괴물들은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크니까. 이런 상황이 되면 주위에 있는 아무나 일단 치고 보는 거지.
다들 제대로 열 받았는지, 연합군은 그대로 두고 자기들끼리 치고 박기 시작하네.
연합군들은 이틈을 틈타 부상자들을 후방으로 빼내기 시작했고...
다행이라면 다들 서로 죽일 각오가 아닌 서로를 제압정도로만 하려고 하는 것 같긴 한데...
이 행성. 원형은 남아 있긴 있을까? 1시간 안에 멸망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데...”
“...개판. 귀찮아. 졸려.”
귀찮은 듯이. 졸린 두 눈을 비비는 벨제부브를 귀엽게 바라보던 야누스는 키득거림을 멈추더니 물었다.
“...플로라를 도와주지 안 해도 괜찮겠어? 벨제부브? 넌 그녀를 많이 따르잖아?”
“...언니는 강해. 현재의 네메시스 오빠에게 가장 승산이 높을 정도로 강한 언니니까. 아무도 그녀를 못 막아.”
“에!? 나도 서열 3위인데. 난 승산 없다는 거야?”
벨제부브는 야누스의 말에 흘깃 보고는 흥미 없는 듯이 눈을 감고는 중얼거렸다.
“야누스는.. 네메시스님과 싸울 생각은 전혀 없어...”
“당연히 난 그분을 모시는 신하니까 말이지.”
네메시스와 플로라를 제외한 4세계의 최고서열들(3위, 4위)은 그렇게 말하고는 전장을 지켜보기 시작하였고.
문뜩. 야누스는 자신의 옆에 반쯤 잠든 벨제부브를 보고는 입을 열었다.
“팝콘 먹을래? 이거 점점 재미있어지는데.”
“.....들키면. 네메시스 오빠에게 혼 날거야.”
“에잇. 설마... 팝콘 좀 먹었다고 혼내는 것보단 우리가 이렇게 놀고 있는 걸 혼내지 않을까?”
“....귀찮아.”
4세계 서열 4위의 나태의 벨제부브는 그 말을 하고는 야누스의 옆에 기댄 체 그대로 눈을 감아 잠을 청했고.
야누스는 어디선가 구해왔는지 알 수 없는 팝콘과 음료를 주위를 구경하면서 먹기 시작했다.
“자아. 곧 플로라와 레퀴엠이 만나겠군. 어떻게 될지 기대되는 걸. 키득.”
----------------------------------------------
와아아아!!!!
죽고 죽이는 비명만이 가득한 천 년 전의 전쟁.
그 중 제일 치열한 6명의 주신과 괴물들의 왕이 맞붙는 구덩이의 근처.
그곳에 수많은 4세계 괴물들과 1세계, 2세계, 3세계로 이루어진 연합군이 서로를 향해 적개심을 드러내며 맞서고 있었고, 그 살의는 어느 한쪽이 완벽하게 파멸하지 않는 한 사라지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한 이름 없는 영웅은 괴물의 두개골에 박힌 검을 뽑다가 곧 그곳을 향해 걸어온 이를 보더니 눈을 크게 뜨고는 소리쳤다.
“우리를 구원할 녹색의 성녀님께서 이곳으로 오신다! 모두 길을 터라! 그녀께서 우리들의 신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도록!”
그 소리에 모두의 시선이 그녀를 향하고. 이에 4세계의 엑스트라 서열의 괴물들과 서열 6위 릴리스가 부리는 마물들은 싸움을 잠시 멈추고는 서서히 연합군에게서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그곳에서도 누군가의 외침이 들려왔다.
“우리를 받아주신 서열 2위 플로라님이다. 모두 길을 비켜라!!!! 그 분이 왕을 향해 갈 수 있도록!”
연합군과 4세계의 괴물들이라는 양측의 외침과 함께 전장의 양 병력이 서로에 대한 적개심을 유지한 체.
양측으로 조용히 물러나는 그 모습은 마치 2세계의 한 성인이 이루어냈다는 기적인 홍해가 갈라진 것처럼 한없이 성스러웠고 또한 고결했다.
터벅. 터벅.
피와 시체로 범벅된 길. 그리고 그 길을 기점으로 나눠진 연합군과 4세계 엑스트라 서열의 괴물들은 서로를 죽일 듯이 노려보면서도 플로라가 무사히 그곳을 지나가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시선에 응답하는 듯이.
그녀는 천천히 그곳을 향해 발을 내딛어 걸어가기 시작했고 곧 그 길의 끝에 있는 이를 볼 수 있었다.
“...14위 레퀴엠.”
그 길의 끝에는 양 옆으로는 괴물과 연합군들의 시체로 쌓아올려진 악취미적인 시체의 산이 높이 쌓여있었고.
그 두 개의 산 사이에는 연합군조차 너무나 강력한 괴물인 그녀를 피하는 듯이 그곳에는 그녀 홀로 있었다.
“어서 와요. 플로라. 같이 티타임이라도 즐기지 않겠어요?”
순백의 드레스를 입은 체. 주위 상황은 자신과는 상관없는 듯이 카페에서나 볼 법한 탁자를 그곳에 세워놓고.
차를 마시는 그 모습은 너무나 고결해 보여서, 순간적으로 주위의 상황을 잊어버릴 정도였지만.
그런 그녀를 플로라는 눈썹을 찌푸리며 볼 뿐이었다.
“악취미네.”
“저에게 달려든 벌레들은 벌을 받아야하는 법이죠. 후훗.”
연합군과 4세계의 괴물들이 열어준 길을 통과해 플로라가 그곳에 앉자.
잠시 멈춰져 있던 전쟁은 시작되었고 그 모습을 자신과 상관없는 듯이 바라보던 레퀴엠은 찻잔을 부드럽게 밀어 플로라에게 보내고는 입을 열었다.
“뭘 드시고 싶어요? 홍차? 녹차? 어떤 것이든 마음대로 고르세요.”
“녹차로.... 날 통과시켜 줄 생각은 없나보지?”
플로라는 그렇게 말하고는 레퀴엠의 등 뒤를 바라보았다. 4세계의 괴물들의 왕과 6명의 주신이 맞붙는 구덩이를 감싸는 거대한 대결계.
그것은 그녀의 왕을 외부의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것일까? 아니면 주신들의 도주를 막기 위한 것일까?
플로라는 후자일 거라 생각하며 레퀴엠을 바라보았다. 주신과 네메시스를 가둬둘 정도의 거대한 대결계를 핀 체.
전혀 피곤한 기색조차 없이 편안히 차를 들이키는 그녀의 모습이 보인다.
“통과라... 재미있는 표현이군요.”
“...무슨 말이지?”
“전 당신을 이곳에서 죽일 생각이거든요.”
그리고는 레퀴엠은 손을 휘둘렸고 이에 플로라가 경계했지만. 그 손짓에 플로라의 찻잔에 녹차만 채워졌을 뿐이었다.
“죽기 전에. 티타임정도는 즐겨둬요. 플로라.”
“.....”
“혹시 스콘(스코틀랜드에서 기원된 빵으로 영국에서 차를 먹을 때 애용한다.) 좋아하나요?
클로티드 크림이나 잼 정도는 가지고 있는데.”
“하나 줘.”
플로라의 대답에 레퀴엠은 손가락을 튕겼고, 그러자 플로라의 앞에 그릇과 함께 잼과 클로티드 크림이 속에 발라진 스콘들이 담겨 나타났다. 이에 플로라는 하나를 씹으면서도 말했다.
“난 내가 직접 바르는 것을 좋아하는데...”
“그냥 있는 대로 먹어요. 까다롭게 굴지 말고. 그리고 그 녹차에는 ‘불로장생의 묘약’을 넣어뒀으니 회복에 좋을 거에요.”
“날 죽인다는 놈의 호의에 눈물 나게 고맙네. 정말이지.”
“제가 당신에게 해드릴 수 있는 마지막 호의니까요. 그리고.. 지금 당신은 몸 상태도 정상이 아니잖아요?
당신이 가지고 있는 ‘조화’는 스스로의 회복마법조차 막아버리는 양날의 검이니까요.”
플로라는 그 말을 들으며 조용히 차를 들이켰고 확실히 레퀴엠의 말대로 몸 상태가 놀랍도록 호전되는 것이 느껴지더니.
아까 달기에게 당했던 어깨의 상처도 거의 아물어갔다.
“나쁘지 않군.”
“그렇죠? 의외로 이게 피부 미용에도 좋더라고요.”
4세계에서 살면서 나눴던 일상적인 대화 같다고 플로라는 생각했다. 아마 현재의 자신으로서 누릴 수 있는 마지막 대화겠지.
적어도 앞의 괴물과는.... 정말이지 그곳에서 함께 하면서 많이도 싸운 것 같다고.
플로라는 작게 중얼거리고는 앞의 괴물을 바라보았다.
“파괴자 레퀴엠.”
“그 이명은 버렸어요.”
“?”
“제 현재 이명은 ‘네메시스 팬클럽 회장’이에요.”
“.........................”
플로라는 그 대답에 기가 막혀서 먹고 있던 스콘을 바닥에 떨어뜨리더니. 잠시 뒤 마음이 진정되자 입을 열었다.
“...농담이지?”
“제가 농담하는 것 같아요?”
“...솔직히 말해봐. 4세계에서 네 이명 그렇게 불려주는 놈이 있긴 있어?
애초에 이명은 자신이 짓는 것보단 다른 괴물들이 지어주는 거잖아?”
“...........”
“역시 없구나!”
“닥쳐요. 당신도 우리들이 붙여준 이명을 안사용하는 것은 마찬가지잖아요!”
“너나 닥쳐. 내가 그 따위 ‘깡패 플로라’ 같은 이명을 쓸까보냐!”
둘은 그렇게 말하고는 한동안 노려보더니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한숨을 쉬고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만하자.” “그러게요.”
잠시 동안의 침묵. 서로가 마시고 있는 차와 스콘이 떨어져 갈 때 쯤. 레퀴엠은 어색한 침묵을 깨는 듯이 입을 열었다.
“저는 다른 놈들처럼 적당히 할 생각 따윈 없어요. 당신이 이곳을 지나가고 싶으면. 죽거나. 아니면 절 죽여야 할 거에요.”
“...알아. 넌 그런 놈이니까.”
다른 이들과는 달리. 앞의 괴물은 자신을 설득할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그것은 이미 결심을 굳혔다는 거겠지.
“....너.”
“?”
“처음 만났던 날. 쉽게 끝나지 않았어?”
“그땐 방심했다고요!”
---------------------------회상------------------------
“하아. 당신이 그분을 죽이겠다고 올라온 플로라인가요? 특별히 선공을 양보해주겠어요!”
“그럼 고맙게도!!!!!”
“카운터<....> 어라?”
퍼억.
그리고 끝. 그 한방으로 허무하게 레퀴엠은 의식을 잃었고 플로라는 13위 퀸을 향해 갔다고 한다.
------------------------------------------------------------
회상 끝. 자신이 생각해도 어이없는 전개에 레퀴엠은 얼굴을 붉히더니 소리쳤다.
“정말이지. 당신의 ‘조화’가 ‘능력’까지 무시하는 그런 기능이 있을 지라고는.
그때는 상상조차 못 했단 말이에요!”
“그래그래. 핑계 없는 무덤은 없다고 하더라..”
플로라는 그 말을 끝으로. 차를 다 마시고는 레퀴엠을 보았다.
“....그렇게까지 해서 네메시스를 지키려고 하는 이유가 뭐야?”
“그 분에 대한 복수심으로 그 자리에 오른 당신은 절대 이해하지 못하겠죠. 저는 그에게 구원받았어요.
한없이 나락에 떨어진 저에게. 유일하게 손을 내밀어주고 다른 남자들과는 달리 절 있는 그대로 바라보아 주었던 분.
그 분은.... 저에겐 절 버렸던 가짜 ‘신’따윈 아닌 진정한 의미의 신이에요.”
“......”
“그와 함께 할 수 있어서 행복했어요. 비록 그것이 전부 4세계에서 다른 괴물과 맞서 싸웠던 기억뿐이라도.
전 행복했어요. 적어도 그 분은.... 지금까지 제가 만났던 남자들이랑 다른 존재였으니까...
다만 자신을 도와주기만 바랄 뿐이니까!!!”
황금빛 기류가 그녀의 주위를 맴돌고 그 순간 플로라도 대항하는 듯이 조화를 피어 올린다.
앞의 14위 괴물은 플로라 자신도 전력을 달하지 않으면 승산을 예측할 수 없을 정도의 괴물이었다.
“그런데! 네년 따위가 오면서 달라졌어! 내가 있던 자리를 네 녀석이 빼앗고! 뭐?! 그를 바꿔? 웃기지마!
그런데 내가 더 싫었던 것이 뭔지 알아?
너와 함께 하면서. 조금이나마 널 인정하고. 내가 있던 그 자리가 네가 더 어울렸다는 거야!
너와 함께 있던 그 분의 얼굴이 너무나 행복해 보여서!
나조차 널 인정해버리는 내가 너무나 싫었단 말이야!!!!!!!!!!!”
레퀴엠의 마지막 발악에 가까운 소리였다. 그리고 모습을 보는 플로라의 두 눈은 고요했다.
그런 레퀴엠에게 자신이 무슨 말을 하든 간에 그녀는 듣지 않겠지.
아니. 어떤 따뜻한 말이라도. 현재 레퀴엠의 가슴의 상처는 결코 치유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넌 그를 배신했어. 널 인정했던 나의 선택을! 그리고 다른 모든 괴물들을!
네 년 따위가 배신했어.
난 오늘 널 죽일 거야. 플로라!!!!!!”
그 순간 탁자가 불길함을 느낀 플로라의 발차기로 반으로 나눠졌고.
갈라진 탁자의 사이로 플로라를 향해 뛰어오른 레퀴엠이 그녀를 향해 내려찍는 걸로.
4세계의 끝에 도달해 있는 두 괴물은 맞부딪혔다.
------------------------------------------------------------------
‘빛?’
플로라는 자신이 피한 후 레퀴엠이 지상에 박힌 발을 빼나자. 주위 수 미터의 땅의 땅속에서 ‘빛’의 속성이 뿜어져 나오자 황당해하면서 물었다.
도대체 앞의 괴물은 저 공격에 얼마나 많은 힘을 집어넣었기 때문에 발을 떼자마자 족히 주위 수십 미터의 원형으로 갈 곳을 잃은 ‘빛’이 퍼져나가는가?
저런 공격을 다른 이가 재현하면 아무리 고위 천족이라도 그 자리에서 모든 힘을 쓰고 쓰러지겠지.
그런데도 레퀴엠은 아무렇지도 않는지. 우아하게 흩트려진 금발의 머리카락을 넘기고는 입을 열었다.
“과거에 인간이었던 시절에 저 빌어먹을 빛의 주신을 섬겼던 전직 성녀 출신이라서요...
지금 생각하면 불쾌한 과거네요. 축하해요. 플로라. 이걸로 당신이 죽을 이유가 하나 더 생겼어요.”
“축하하긴 개뿔.”
둘은 그 말을 하고는 서로의 공격을 맞부딪혔다.
‘....맞부딪힌다고? ‘조화’를 상대로?’
그녀들의 두 힘이 한 치도 밀림 없이 부딪히는 모습에 플로라는 인상을 찌푸렸고 곧 그 이유를 알아챘다.
‘이 년... 방금 그 공격도 그렇고 도대체 얼마나 많은 힘을 부어 넣는 거야?’
모든 속성에 절대적인 상성을 가진 조화를 상대로 버티기 위함일까? 약간의 조화를 깎아내기 위해.
그에 비례해 수많은 빛이 꺼져가는 것이 플로라의 두 눈에 들어왔다. 그 모습에 플로라는 자신도 모르게 ‘미친 짓’이라고 그녀는 중얼거렸다.
지금 레퀴엠이 하는 짓은 진흙을 대충 뭉쳐 바위에 부딪히는 일과 전혀 다르지 않다.
완벽히 자신의 손해를 감수한 전투방식. 그 모습에 플로라가 기가 질려 물었다.
“...이런 방식으로는 백날해도 날 이길 수 없어!”
“하. 그럴까요? 저는 힘의 총량은 꽤 자신 있거든요. 당신의 조화가 대단하긴 하지만.
언제까지나 한계가 있는 힘. 과연 언제까지나 버틸 수 있을까요?”
레퀴엠이 플로라를 견제하는 듯이 휘두른 손에 나타난 빛의 기둥이 하늘에서 지상으로 떨어지더니,
조화로 보호되는 플로라의 어깨를 스쳤다.
“윽!!!!”
살갗을 태우는 듯한 뜨거움. 이에 플로라는 표정을 찡그려 신음성을 흘렸지만 뒤로 흘깃. 시선을 돌렸다.
자신에서 스쳐간 빛의 기둥이 그녀의 등 뒤로 빠르게 나아가 4세계 괴물들과 연합군이 얽혀있는 전장으로 향하는 것이 보였다.
쏴아아아아악!!!
“이건 뭐지? 으아아아악!!!!!”
한 병사의 중얼거림. 그와 동시에 레퀴엠의 빛이 지나간 곳은 모든 것이 새까맣게 타들어 재가 되었고 이에 엑스트라 서열의 괴물들과 연합군의 비명소리가 사방을 채웠다.
빛의 기둥은 그대로 전장을 가로지르는 듯이 지평선 너머로 가더니 사라졌고 그걸 확인한 레퀴엠은 작게 조소했다.
“어머. 당신이 피한 빛에 벌레들이 죽었네요. 아까워라.”
“이게 무슨 짓이야! 레퀴엠! 저들은 상관없잖아! 같은 4세계 괴물까지 태우다니 미쳤어?
“이곳은 전장이에요. 당신이 그렇게나 박애주의면 피하지 말고 곱게 죽는 것이 어때요? 플로라?”
그리고는 레퀴엠은 손가락을 튕겼고 그녀의 뒤로 14개의 빛의 기둥이 떨어지는 것이 보였다.
이에 레퀴엠은 살짝 미소 짓고는 말했다.
“...아니면 이걸 다 막아 보든지요. 당신의 잘난 조화라면 가능하잖아요?”
그리고는 신호하는 듯이 손을 내린다. 이에 14개의 빛의 기둥이 전장을 향한다.
이에 플로라는 인상을 구기더니 화살을 메기더니 14발의 화살을 쏘았다.
피이이이이이잉!!
“음?”
그 순간. 당혹한 목소리와 함께 레퀴엠은 급히 뒤로 빠졌다. 하지만 그녀는 모든 화살을 피하지 못했는지.
그녀의 팔에는 핏줄기가 흘렸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플로라는 입을 열었다.
“아아. 난 저기서 4세계 괴물들과 싸우고 있는 ‘영웅’따위가 아니라서.
난 생명을 죽이는 것은 반대지만 저들을 돕겠다고 내 일을 그르칠 생각 따윈 없어. 레퀴엠.”
“하. 저들이 당신을 성녀라고 부르는 존재이고, 당신이 받아준 엑스트라 버러지들이 당신을 마치 여신 보듯이 하는 데도 말이죠?
역시 배신자답군요!”
“저것들을 인질로 뒤통수 때릴 궁리를 한 네 년이 말할 것은 아닐 텐데?
적발하장도 정도가 있는 법이라고. 레퀴엠.”
“......흥!”
이에 레퀴엠은 자존심이 상한 듯이 손가락을 튕기더니 이에 14개의 빛의 기둥이 사라졌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그 둘은 다시 격돌했다.
“크윽.”
맞부딪힌 순간 누가먼저라 할 것 없이 신음성을 흘린다. 둘이 맞부딪힌 충격파만으로 지반이 붕괴되었고.
주위의 잘잘한 얼마안남은 풀은 물론이고 병장기에서 나온 것으로 보이는 철 조각조차 그녀들의 주위에서 튕겨나가는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경악을 금치 못할 정도였다.
그리고... 양측 다 무기는 꺼내지 않은 채 순수한 신체능력만으로 서로의 숨통을 노리는 전투가 시작되었다.
“의외네. 레퀴엠. 능력에만 의존하던 네가 여기까지 할 줄은.”
“후후. 이래봬도 한때 4세계에서 최강이라 불리던 이 중 하나라서요.
이 정도도 못해서야. ‘네메시스 팬클럽 회장’이란 이명을 버려야죠.”
“아니. 그 이전에 그 부끄러운 이명 따윈 그냥 쓰레기통에 버려.”
“닥쳐요. 제 이명은 제가 몰래 가지고 있는 그분의 속옷만큼이나 소중한 거니까요!”
레퀴엠의 대답에 플로라는 잠시 그녀와의 전투를 멈추고 떨어지더니 한심하다는 눈으로 레퀴엠을 바라보더니 입을 열었다.
“....너도 참 달기만큼 답이 없다고 새삼 느끼게 된다.
너흰 왜 그러냐? 진짜.”
“닥쳐요!”
그리고는 시작된 공세에 플로라는 혀를 차면서도 식은땀을 흘렸다. 여유를 부리긴 했지만 레퀴엠의 근접전투 방식은 결코 자신에게 밀리지 않는다.
그나마도 이것은 레퀴엠의 능력이 사실상 봉인당한 거나 다름없기 때문에 가능한 거겠지.
만약 자신이 ‘조화’를 가지고 있지 않고 다른 괴물들처럼 ‘능력’을 받았으면 얼마 버티지 못하고 그녀는 죽었을 것이다.
“그거 알아요? 플로라? 과거 내가 모시고 있는 네메시스님도 단 한번. 패배를 한 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