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나는 결국 홀린 듯 동아리에 들어갔다. 그의 미인계에 굴복한 셈이었다.
뭘 하는 동아리인지도 모르면서 충동적으로 결정하다니. 나 진짜 무슨 짓을 저지른 거지.
……이미 엎질러진 물이니 그냥 넘어가기로 하고.
그것보다 얼마 전에 새로 알게 된 사실이 하나 있다.
카르시온이라는 이름의 어제 그 아이는 사실 아카데미에서 굉장히 유명하다는 것.
사람 같지 않은 외모를 보면 당연한 거 아니냐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내가 여기서 말한 유명함은 그의 외모를 말하는 게 아니었다.
카르시온은 성격이 더럽기로 유명했다.
소문에 의하면 그는 어린 나이에 귀족 몇을 반쯤 죽이고, 그의 가문에서 사건을 수습하려 그를 급하게 아카데미에 입학시켰다고 한다.
게다가 며칠 전에도 다른 학생과의 검술 대련 중 땀 흘리기 싫다는 이유로 검을 내동댕이치고 마법을 난사했다는데.
다른 사람 말을 잘 안 듣는 것 같긴 했지만 그 정도일까?
내게 어제 행동한 것을 보니 그렇게 나빠 보이지는 않았는데.
아무래도 소문이 너무 과장된 것 같다.
그래, 지금만 해도…….
나는 창문 너머 복도에서 넘어진 누군가를 일으켜 주며 활짝 웃는 카르시온을 바라봤다.
저렇게 착하고 예쁘게 웃는 애가 사람을 죽이긴, 그냥 사고 몇 번 친 거겠지.
* * *
카르시온은 자신의 어깨를 치고 간 아이의 뒷덜미를 잡고 바닥에 집어 던졌다.
쾅-!
“악! 어떤 새끼야!”
“새끼?”
바닥에 내동댕이쳐진 아이는 소리를 버럭버럭 질렀다. 그러다 익숙한 음성에 설마설마하며 잘게 떨리는 눈으로 고개를 들었다.
큰일 났다.
하필 부딪힌 사람이 카르시온이라니.
“사람을 쳤으면 사과를 해야지.”
“미, 미안.”
“왜 뒤늦게 수습질이야?”
“나, 나는 카르시온 너인 줄 몰랐어.”
“그럼 내가 아니었으면 네 입에서 미안하다는 말은 안 나왔겠다. 그치?”
“아냐! 절대 그럴 일 없어!”
“흐응.”
카르시온은 그 아이를 가만히 응시했다. 그러다 픽 웃으며 잡고 일어나라는 듯 아이에게 손을 내민다.
아이는 잡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다가 어차피 선택지는 정해져 있다는 것을 깨닫고 서둘러 그의 손을 잡고 일어났다.
그리고 일으켜 준 아이의 손을 잡은 채 카르시온은 활짝 미소 지었다.
“너 때문에 내 어깨가 나갈 뻔했지만, 오늘은 기분이 좋으니까 이걸로 봐줄게.”
“으응?”
우드득.
“으아아아악!”
카르시온은 부러진 제 손을 잡고 소리를 지르는 아이를 짜증 어린 표정으로 바라봤다.
그러다 뭔가 떠오른 듯 다시 입가에 미소를 머금는다.
“오늘이 동아리 첫날이네.”
사실 카르시온은 답지 않게 기분이 굉장히 좋은 상태였다.
어제 동아리의 마지막 부원을 무사히 구하기도 했고 동아리 개설 허가도 났기 때문이다.
‘우연히 그 애를 알게 된 건 운이 좋았지.’
작년에는 자신의 전공과목인 마법 관련 동아리에 들어가지 않고 부러 검술 동아리에 들어갔다.
그래, 거기까지는 좋았다.
예상대로 검술 동아리에는 여학생이 별로 없었고, 자신을 따라 검술 동아리에 들어오는 사람도 없었으니까.
그런데 연무장 사용을 핑계로 여학생들이 매일같이 찾아올 줄이야.
제 성격을 알고도 쫓아다니는 사람이 적지 않은 것을 보고 예상했어야 했는데.
진짜 다 죽여 버릴 수도 없고.
때문에, 카르시온은 자신이 직접 동아리를 개설하려 시도했다.
카르시온과 피오르가 동아리를 만든다는 소식에 많은 이들이 들어오려 했다.
카르시온은 몰라도 피오르는 사글사글하게 굴어 남자애들에게도 인기가 많았으니까.
둘은 항상 교내 수석 차석을 도맡아 하곤 했으니 성적을 노린 것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카르시온 입장에서는 신청한 사람 중 영 마음에 차는 사람이 없었다. 얘는 이래서 마음에 안 들고 쟤는 이래서 마음에 안 들고.
그렇게 계속 거절만 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모두 다른 동아리에 가입한 상태였다.
동아리 최소 인원은 3인.
딱 한 명만 구하면 되는데 그 한 명을 구할 수가 없었다.
아레나 아카데미는 동아리가 큰 요소를 차지한다.
즉, 리엔처럼 기한을 놓쳐 동아리에 못 들어가는 학생은 거의 없다는 말이다.
결국, 카르시온은 아직 동아리를 들어가지 못한 희생양을 찾아 강제로라도 입부시켜야 했다.
카르시온은 희생양을 찾아 교내를 배회했다. 그렇게 동아리 개설 신청 종이를 팔랑거리며 걸어가다가 그는 어떤 대화를 듣게 된다.
“야 너 걔 알아?”
“……그렇게 말하면 내가 어떻게 아냐?”
“이번에 새로 들어온 검은 머리 여자애. 학년 중간에 들어오는 편입 시험, 그거 진짜 극악의 난이도라는데 가뿐히 통과해서 들어왔다는.”
“아. 리엔이라는 애?”
“알고 있나 보네?”
“실제로 본 적은 없는데, 유명하잖아. 진짜 예쁘다며?”
“맞아 나 전에 지나가다 한번 본 적 있는데, 완전 넋 놓고 봤어.”
“어쨌든 걔가 왜?”
“다들 걔가 무슨 동아리에 들어갈까 눈여겨봤는데, 아직도 어떤 동아리에 들어갔는지 아무도 모르더라. 우리 동아리에 들어왔다면 나는 온 동네방네 자랑하고 다녔을 텐데.”
“설마 기간을 놓쳐서 신청 못 한 거 아냐?”
“에이. 그런 바보가 어디 있어.”
“하하, 하긴.”
카르시온은 그들의 대화를 듣고 눈을 빛내기 시작했다.
혹시?
확인해 봐서 나쁠 건 없었다.
카르시온은 생각을 마치자마자 그들에게 다가가 둘의 멱살을 잡고 그녀가 어디 있는지 한 시간 내로 찾아오라고 협박했다.
그 후 그들의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협조 끝에 정확히 한 시간 뒤. ‘비슷한 사람을 찾긴 했다.’는 갈색 머리의 변명을 듣게 되었다.
카르시온은 그 변명을 듣고 그들에게 인자한 미소로 30분의 추가 시간을 줬다.
그리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찾아간 곳에서 ‘리엔’이라는 명찰을 단 그녀를 발견했다.
카르시온은 리엔이 동아리 신청 기간을 놓친 것을 확인하자마자 그녀에게 자신의 동아리에 들어오라고 권유했다.
동아리 면접이고 뭐고 리엔을 잡지 않으면 자신과 피오르는 영락없이 비인기 동아리행이었으니.
그것도 랜덤으로.
때문에, 카르시온은 거절하면 또 협박해야 하니까 미인계를 쓰자 싶어서 최대한 친절한 어조로 말했다.
그런데 리엔이라는 이 아이, 자신의 얼굴을 보고도 무덤덤했다.
오히려 자신이 그녀를 더 오랫동안 봤을 정도로. 심지어 동아리에 안 들어간다며 미련 없이 뒤돌아서는 모습까지.
그때는 당황해서 자신도 모르게 진짜 성격이 나올 뻔했다.
어찌어찌 눈웃음까지 쳐가며 동아리에 들어오게 하긴 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좀 묘했던 것 같다.
제게 호의든 악의든 관심 한 톨 없는 사람은 태어나서 처음이었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아. 시력이 안 좋은 건가.
……듣던 대로 얼굴은 예쁘던데 안됐네.
* * *
“너 시력이 몇이야?”
“양쪽 모두 2.0.”
내 대답에 카르시온이 믿을 수 없다는 듯 미간을 와락 찌푸렸다.
왜 그런 표정인데.
꼭 내 시력이 좋은 게 불만인 것처럼.
“뭐 문제 있어?”
하지만 질문이 무색하게 카르시온은 아무것도 듣지 못했다는 듯 내 말을 무시했다.
소문만큼은 아니더라도 마냥 성격이 좋은 건 아닌 것 같다.
어제는 동아리에 들어오게 하려고 친절하게 군 건가.
나는 차게 식은 분위기를 느끼고, 동아리실 안에 있는 사람을 가리키며 서둘러 화제를 전환했다.
“그것보다, 이 애도 우리 동아리원이야? 최소 인원 3명 중 한 명?”
“응. 피오르, 네가 직접 소개해.”
카르시온의 귀찮다는 표정으로 손을 휘휘 내저었다. 그러자 피오르라 불린 아이가 내게 손을 흔든다.
“안녕, 나는 피오르라고 해. 너는 리엔이지? 카온에게 전해 들었어.”
그는 금발에 녹안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의 밝은 분위기에 어울리는 생글생글한 웃음을 지으며 자신을 소개했다.
어쩜.
이 동아리는 아카데미의 가장 예쁜 꽃 두 개를 모아 놨구나.
나는 피오르의 잘생긴 얼굴을 감상하기 시작했다.
아까는 모르는 사람이라 대놓고 바라보기 뭐해서 힐끔힐끔 훔쳐보느라 몰랐는데 고놈 참 착하게 생겼다.
물론 여기서의 착함은 성격이 아니라 얼굴을 말한 거였다.
“안녕. 피오르 너 정말 착하게 생겼다.”
“하하. 고마워 그런 말 많이 듣긴 했는데, 그렇게 덤덤한 얼굴로 말하니까 더 신뢰가 가네.”
탕탕탕.
갑자기 책상을 세게 내려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와 피오르는 소리를 낸 주범인 카르시온을 바라봤다. 그는 왠지 모르게 불만 어린 표정이었다.
“소개는 끝났으니까 둘 다 잡담은 그만해.”
소개가 끝나긴 무슨. 얘는 모르고 있는 걸까.
피오르와 나는 인사했지만, 사실 카르시온과 나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서로 이름 한 번 알려 준 적 없다는걸.
뭐, 통성명은 하지 않았어도 서로 이름만 알고 있으면 된 거겠지.
“알겠어. 그럼 질문 하나만.”
“뭔데.”
“그래서 도대체 이 동아리는 뭐 하는 동아리야? 우린 이제 뭐 하면 돼?”
“놀아.”
“?”
“딱히 할 거 없으니까 동아리 시간마다 네가 하고 싶은 거 하라고.”
……와. 뭐 이리 막 나가는 애가 다 있어?
“동아리 활동기록에 따라 성적 나오는 거 아냐? 게다가 학기마다 실적 없는 동아리는 폐쇄된다고 들었어.”
내 말에 카르시온이 미간을 찌푸렸다.
“실적 점수는 마물 토벌로 채울 거고, 토벌은 우리가 해도 네 이름은 넣어 줄 테니까 시끄럽게 굴지 마.”
생각 없다는 거 취소.
나는 그의 양어깨를 잡으며 진심을 담아 말했다.
“넌 정말 최고야.”
이에 카르시온은 한번 움찔하는가 싶더니 내 손을 쳐내며 언성을 높였다.
탁-!
“어딜 만져?”
나는 그가 쳐낸 손을 어쩌지 못하고 그 자세 그대로 눈만 껌뻑였다.
“카르시온, 혹시 기분 나빴어?”
“이름 부르지 마.”
화가 난 건지 카르시온은 조금 붉어진 얼굴로 소리쳤다.
만지지 말라는 건 이해할 수 있는데, 이름을 안 부르면 뭐라고 부르라는 거야.
아무래도 어제 그 친절함은 영업용이었던 것 같다.
나는 그의 얼굴만 보고 들어온 것이니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어깨를 한번 으쓱이며 그에게 시선을 뗐다. 그러고는 동아리실 안에 있는 의자 세 개를 가져와 나란히 놓았다.
피오르의 의문 어린 목소리가 들린다.
“리엔 뭐 해?”
“카르ㅅ……”
아. 이름 부르지 말라고 했지.
“저 분홍 머리 애가 동아리 시간에 아무거나 해도 된다고 했잖아. 오늘은 아무것도 안 가져왔으니까 낮잠이나 자려고.”
나는 피오르의 물음에 적당히 대답해 준 후 의자에 편히 누웠다.
그런 내가 거슬렸는지 카르시온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나를 노려봤다.
아 왜 또.
“분홍 머리야. 할 말 있어?”
그는 내게 시선을 떼며 한숨처럼 답했다.
“아니.”
“나는 있는데.”
할 말이 있다는 말에 카르시온의 시선이 다시 내게로 향했다.
“궁금하면 이리로 와 볼래?”
“거기서 말해.”
“이건 아무나 들으면 안 되는 비밀인걸?”
“그딴 거 안 궁금해.”
“저런.”
호기심이 없는 친구네.
비밀을 알려 주지 못한 건 아쉽지만, 그래도 부담스러운 시선은 성공적으로 치운 것 같았다.
나는 케이프를 벗어 이불처럼 위에 덮었다.
그렇게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고 서서히 잠에 빠져들 무렵.
“하, 씨.”
카르시온이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헤집으며 내게 다가왔다.
“할 말이 뭔데.”
나는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참아 넘겼다.
비밀을 들으면 어떻게 반응할까 궁금해지는데 그래.
좀 더 가까이 다가오라는 듯 손짓했다.
그는 눈썹을 꿈틀거리더니 결국 체념한 듯 고개를 훅 숙였다.
카르시온의 귀가 코앞까지 당도하자, 나는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낮게 속삭였다.
“그걸 믿었어?”
그러고는 귀에 후, 하고 바람을 불어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