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상당히 충격받은 얼굴로 피오르를 바라봤다.
얼마나 놀랐는지 자동으로 벌어진 입을 수습하기 힘들 정도였다.
피오르는 내 표정을 보더니 눈을 키웠다. 그러고는 들고 있던 포대 자루도 쿵 하고 내려놓고는 다급히 손을 내저었다.
“오해야!”
“그럼 버린다는 건 무슨 소리야?”
“아, 아니 버리는 건 맞는데. 그게 그러니까…….”
“카온. 피오르가 원래 저런 쓰레기 같은 애였어?”
“응!”
카르시온의 명쾌하고도 해맑은 대답에 피오르가 울컥하며 소리쳤다.
“야! 너도 받는 족족 잘만 버려 놓고 왜 인제 와서 아닌 척이야?”
“난 리엔이 준 거 아니면 안 받아.”
“너도 깽판 치기 전에는 나랑 별다를 거 없었으면서!”
나는 그들의 대화에서 한 가지의 결론을 도출해 낼 수 있었다.
“그럼 둘 다 매년 선물 받은 쿠키를 버린 건 맞다는 거네?”
카르시온과 피오르 입이 다물어진다.
“세상에.”
표정이 절로 딱딱해졌다.
내 굳은 표정에 둘은 당황하며 변명을 쭉 늘어놓기 시작했다.
“하지만 쿠키 안에 이상한 걸 넣었을지도 모르는걸. 어쩔 수 없었어, 리엔.”
“게다가 위험을 감수하고 먹는다고 하더라도 상하기 전에 저걸 다 어떻게 먹어? 다른 사람에게 줄 수도 없고.”
듣고 보니 틀린 말은 아니었다.
저 많은 쿠키 중 이상한 게 들지 않았으리라는 보장은 없지 않은가.
월터 교수님이 말씀해 주셨듯 조심할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오해가 풀렸음에도 왠지 모를 찝찝함에 나는 흐린 눈을 했다.
저 이유가 아니라도 양심의 가책 없이 버렸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렇게 둘을 바라보고 있을 때, 문득 내 가방 안에 잠들어 있는 또 다른 쿠키가 생각났다.
카르시온에게 쿠키를 줬으니, 피오르가 준 쿠키는 돌려줘야겠지.
나는 가방에서 피오르가 줬던 예쁘게 포장된 선물 상자를 꺼내 들고는 피오르에게 건네줬다.
“자, 이거.”
“어? 나, 나한테 이걸 왜?”
얼결에 선물 상자를 건네받은 피오르의 목소리가 파르르 떨려 왔다. 동공이 극심히 요동친다.
카르시온에게 주지 않고 이걸 왜 자신에게 왜 줬냐는 뜻이 그대로 담긴 눈빛이었다.
카르시온도 다급히 제 손에 들킨 작은 쿠키 봉지와 피오르의 손에 들린 선물 상자를 번갈아 봤다.
누가 봐도 선물 상자 쪽이 비싸 보였다.
아무 생각 없이 건넨 것이었는데, 둘의 모습을 보니 장난치고 싶은 마음이 불쑥 올라왔다.
나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것처럼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였다.
“왜냐니? 오늘은 쿠키 데이잖아.”
나는 평이한 어조로 폭탄을 투척한 후 벙찐 그들의 표정을 뒤로하고 밖으로 나왔다.
굉장히 무책임한 태도였다.
그러고는 아직 닫히지 않은 문손잡이를 잡고 살풋 웃었다.
“둘이 같이 쿠키 먹고 있어. 나는 화장실 좀 다녀올게,”
쿵.
문이 닫히고 걸음을 뗐다.
동아리실 안에서 재미있는 일이 일어나는 동안 산책이라도 할 셈이었다.
그런데 몇 발자국 떼지도 않았는데 들려오는 거대한 폭발음.
콰과광-!
……어?
진짜 뭐가 터졌어?
등에서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생각해 보니 마법사들은 감정을 주체할 수 없을 때 마력 폭발을 일으킨다고 했던 것 같기도 하고.
나는 굳게 닫힌 동아리실 문을 응시했다. 차마 문을 열어 안을 확인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하하, 난 모르겠다.”
잠깐 산책만 하고 돌아오려고 했던 나는, 그 길로 기숙사로 줄행랑쳤다.
* * *
나는 아레나 아카데미에서 약초학을 전공으로 삼고 있었다.
약초는 어떻게, 무엇을 조합하냐에 따라 약을 만들 수도, 독을 만들 수도 있는 양날의 검과 같은 것이었다.
누군가를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다니 얼마나 매력적인가.
나는 뛰어난 약초사였던 엄마 덕분에 어렸을 때부터 약초와 가까이하며 자라왔다.
내가 약초에 대한 관심이 절정에 달았을 때는 부모님이 알 수 없는 병에 걸리셨을 때였다.
어떻게든 살리고 싶다는 마음에 죽도록 약초에 대해 파고들었다.
하지만 이제 살리고 싶은 사람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죽이고 싶은 사람은 몰라도.
약초학으로 간절히 이루고 싶었던 것들은 이루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약초에 대한 애정을 품고 있었다.
악명 높은 아레나 아카데미의 편입 시험을 통과할 수 있었던 것도 따지고 보면 약초학 덕분이었다.
편입 시험은 입학 시험과 달리, 전공과목 70% 나머지 과목 30%의 성적이 반영됐기 때문이다.
다른 과목은 몰라도 약초학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공부를 못했다는 건 아니다. 오히려 이모의 열띤 교육열 덕분에 잘하는 편이라고 할 수 있겠다.
단지 전체 수석을 차지할 정도는 아니라는 거지.
참고로 카르시온은 마법, 피오르는 검술을 전공했다.
제인도 의상 디자인부였으니 나와 친한 사람 중에는 같은 전공이 없는 셈이었다.
그건 무엇을 의미하느냐.
전체 수업의 절반을 차지하는 전공 수업을 홀로 들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해서, 이건 혼자 하기 위험할 수 있으니 조별 과제로 내도록 하지.”
나는 창문을 바라보며 상념에 잠겨 있다가 조별 과제라는 말에 화들짝 놀라며 조지 교수님을 바라봤다.
조별 과제라니. 올 것이 와 버린 건가.
“조는 대충 출석 번호순으로 4명씩 묶어 모이도록. 16명이니 딱이로군.”
약초학 전공은 학생 수가 많지 않은 탓에 조지 교수님이 유일했다. 다른 학년과 같이 수업을 들어야 할 정도였다.
그런 약초학 조지 교수님은 빈말로도 인자해 보인다고는 할 수 없는 인상이었다.
치켜 올라간 눈매. 정돈되지 않은 부스스한 머리카락과 항상 무언가 언짢은 듯한 표정.
실제 성격도 괴팍하기로 유명했다. 하지만 나는 조지 교수님이 좋았다.
화가 많은 건 사실이었지만, 의외로 교육에 관해 열정적인 분이셨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알아낸 정보들을 공유하는 것에 있어서 주저함이 없었다.
돈을 주고도 사기 힘든 귀한 정보들이 많았는데도 말이다.
안타깝게도 다른 학생들은 그 사실을 잘 모르는 듯했지만.
그러나 내가 조지 교수님을 좋아한다고 해서 그가 내주는 조별 과제까지 기꺼운 것은 아니었다.
사실 나는 한 번도 조별 과제를 해 본 적 없다.
그래도 고혈압으로 이승을 탈출하는 미래를 예측하는 건 어렵지 않은 일.
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같은 조가 된 조원들을 바라봤다.
안타깝게도 나와 같은 조원이 된 3명 모두 수업을 열심히 듣는 부류는 아니었다.
이번에 조지 교수님이 내주신 과제는 아카데미 주변에서 약초 열 종류를 수집하는 것이었다.
말이 주변이지 그냥 아카데미 뒤쪽에 있는 산에 오르라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수집한 약초의 생김새 효능, 쓰임새 등을 적어 미니 사전을 만들어 오는 것이 최종 과제물.
우리 4명 중 먼저 입을 여는 사람은 없었다.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 정적을 이기지 못한 나는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조장…… 할 사람?”
그때부터 우리 4명 사이에 숨 막히는 눈빛 교환이 오갔다.
서로에게 꼭 필요한 것이면서도 자신은 굳이 하고 싶지 않은 어떤 일에 대해서 상대방이 자원하여 주길 바라는, 조용하면서도 긴급하게 오가는 눈빛이었다.
희생자…… 아니, 지원자가 없자 결국 우리는 사다리 타기로 운명을 결정짓기로 했다.
조원 두 명이 열심히 사다리를 그리는 동안, 여학생 조원 한 명이 나를 툭 쳤다. 비밀스러운 것을 말하듯 작게 속삭이는 목소리였다.
“이건 조별 과제랑은 상관없는 이야기인데…….”
“?”
“카르시온이 널 좋아하고 있다는 소문이 사실이야?”
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미간을 찌푸렸다.
카르시온을 만나는 것은 대부분 동아리 시간에 한정됐다. 소문이 날 만한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대체 어디서 들었는지, 저런 소문이 알음알음 퍼지고 있는 듯했다.
“아니. 걔가 날 좋아할 이유가 뭐가 있어.”
당연한 듯한 대답에, 그녀가 나를 위아래로 훑었다. 사람을 평가하는 듯한 시선이었다.
나는 그녀가 뭐라고 하는지 볼 양으로 잠자코 있었다.
그녀는 잠시 후 ‘예쁘긴 한데.’라며 들릴 듯 말 듯 중얼거렸다. 그러다 무슨 생각을 했는지 작게 실소한다.
“풉. 뭐, 하긴.”
노골적인 비웃음이 담긴 말.
나는 그 말에 상처받거나 하진 않았다. 사람을 평가하듯 아래위로 훑는 것은 확실히 뭣 같았다.
그러나 카르시온과 나를 비교해서 저런 결론이 나오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비교할 걸 비교해야지.
외모, 재능, 가문 등 뭘 비교해도 카르시온이 월등한 것은 사실이었다.
심지어는 본래 성격마저도 착하고 순수하지 않은가. 어딘가 마모되어 버린 저와 달리.
내가 자존감이 너무 낮은 거 아닌가 생각할 수 있는데…….
아니, 나는 절대 자존감이 낮지 않았다. 그저 현실적일 뿐.
솔직히 말해 비교 대상이 내가 아니라 어떤 사람을 대입했어도 카르시온이 압승했을 것이다.
그만큼 완벽한 사람이었으니.
“다 됐다! 다들 번호 하나씩 선택해!”
사다리 타기가 완성됐다는 말에, 나는 그녀에게서 무심히 시선을 돌렸다.
아. 물론 시선을 돌린 거지, 그냥 참아 넘겼다는 건 아니다.
나를 아래위로 훑으며 평가하는 걸 꾹 참아 넘길 만큼 성격이 좋진 않았으니까.
“요즘에는 마법 기술이 발달해서 감자도 말을 하나 보네…….”
“뭐? 너 뭐라고 했어, 지금! 내 얼굴이 어딜 봐서 감자를 닮았다는 거야!”
저런. 내가 말한 건 얼굴이 아니라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네 퍽퍽한 뇌를 말한 건데.
나는 분을 내며 소리치는 그녀를 무시하고 첫 번째 사다리를 선택했다.
“난 이거.”
“오케이. 그럼 너부터 한다.”
그러자 주도적으로 사다리를 그렸던 한스라는 남자아이가 내가 선택한 사다리를 쭉 이어 그리기 시작했다.
알 수 없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따라따라 딴↘딴↗ 따라따라 딴↘딴↗”
“야, 너 내 말 안 들려?!”
옆에서 시끄럽게 구는 감자가 하나 있었지만, 생각보다 익숙한 풍경인지 관심을 주는 사람은 없었다.
말하는 감자가 흔한 건 아닐 텐데. 진정한 현대인이란 이런 걸까.
……어?
나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한스의 손가락이 도착한 곳에 적혀 있는 글씨를 보고 몸을 굳혔다.
<조장 당첨♡>
아. 내 인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