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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 이러는 거 아니야 (28)화 (28/161)

28화

둘의 시선 교환이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자, 리엔은 그들이 없는 셈치고 책상 위에 놓인 봉지 하나를 뜯었다.

고소하고 달달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오, 캐러멜 팝콘이네.’

리엔은 카르시온의 센스에 작게 감탄하며 옆에 있는 제인과 함께 캐러멜 팝콘을 먹기 시작했다.

“어? 근데 너…… 왜 어깨에 이런 걸 묻히고 다녀.”

카르시온이 뭔가를 발견했다는 듯 대뜸 쿤의 어깨를 탁탁 털어 냈다.

세게. 아주 세게 말이다.

말이 탁탁이지 감정이 실린 것이 분명한 터치였다.

팡. 팡.

“먼지가 잔뜩 묻었네.”

누가 봐도 시비를 거는 행동이었다.

리엔도 카르시온이 시비를 건다는 것을 뻔히 알고 있었지만, 상대가 상대인지라 이번에는 굳이 말리지 않았다.

부농 아기 고양이가 낯선 사람을 경계하며 하악질하는 게 귀엽기도 했고.

와그작.

리엔이 태평하게 팝콘을 씹었다.

이에 쿤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을 하다가, 이대로 당할 수 없다는 듯 조금 더 감정이 실린 힘으로 카르시온의 어깨를 털어 냈다.

팡, 팡-!

“당신이야말로 어깨에 모기가 앉아 있었습니다. 조심해야죠.”

카르시온의 미소가 한층 짙어진다.

“아아, 고마워. 하마터면 과다 출혈로 쓰러질 뻔했네. 어? 너 근데 왜 어깨에…….”

파앙-!

거의 아작 낼 듯한 힘으로 쿤의 어깨를 치는 카르시온.

“공기를 묻히고 다녀?”

싱긋.

그들의 치열하고도 유치한 싸움을 보며 리엔이 감탄했다.

‘와 저건 그냥 대놓고 때린 거 아닌가.’

그러고는 제 일이 아니라는 듯 야무지게 팝콘을 입으로 가져가는 그녀였다.

한편 카르시온에게 반쯤 얻어맞다시피 한 쿤이 황당함에 작게 입을 벌렸다.

아바스칸투스 제국의 황자라고 해서 마냥 곱게 자란 것은 아니었지만, 또 이렇게 대놓고 저를 때린 사람은 처음이었다.

쿤은 뭐라 입을 열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리엔과 카르시온을 번갈아 쳐다보다가 결국 탁한 한숨을 내뱉었다.

“이쯤…… 하죠.”

그러고는 짧게 리엔에게 눈을 흘기며 교실 밖으로 걸어 나갔다.

리엔은 어쩐지 카르시온에게 맞은 그의 한쪽 어깨가 아래로 처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리엔.”

카르시온이 리엔을 불러 시선을 저로 향하게 했다.

“응?”

리엔이 왜 불렀냐는 듯 바라보자 카르시온이 진지한 표정을 하며 당부했다.

“앞으로 저런 이상한 놈이 붙으면 꼭 내게 말해 줘야 해. 꼭.”

“괜찮아. 나 혼자 해결할 수 있어.”

“어떻게 해결할 건데?”

“……정강이 킥?”

카르시온은 대답이 썩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뚱한 표정을 하며 제 아랫입술을 물었다. 그러자 리엔이 다른 대안을 내놓았다.

“……고x킥?”

카르시온은 그제야 굳은 표정을 풀며 안심된다는 표정을 했다.

만족스러운 대답이었다.

* * *

“미리 말해 두겠는데, 이번 학기 시험은 조별 과제로 대체하도록 하겠다.”

나는 책상에 약초 그림을 끄적이고 있다가 조지 교수님의 발언에 귀를 의심했다.

엎드리고 있던 상체를 절로 올라가게 하는 소리였다.

조별 과제를 또……?

세상에.

충격에서 헤어 나올 새 없이 조지 교수님이 말을 이었다.

“대신 이번 조별 과제는 학기가 끝나기 전까지 기한을 주마. 이번에는 자유롭게 2인 1조로 짝을 이루도록.”

게다가 자유롭게 팀을 짜라니.

친구가 없는 나에게는 그냥 남는 사람과 짝이 되라는 것과 다름없었다.

친구 비슷한 한스가 있긴 하지만 걔는 엄연히 같이 팀을 이룰 다른 친구들이 있었다.

하긴, 생각해 보니 누구랑 팀을 이루든 조별 과제는 즐거울 수 없었다.

나는 빠르게 현실을 받아들이고 조지 교수님의 과제 설명을 듣기 시작했다.

전공 수업이 끝난 후.

책과 필기구를 들고 교실로 돌아가려는데 누군가 내 소매를 당겨 왔다. 한스였다.

“싫어.”

나는 한스가 무엇을 말하기도 전에 싱긋 웃으며 싫다는 말을 입에 담았다.

그가 당황했는지 말을 더듬는다.

“뭐, 뭔지 들어 보지도 않고?”

“들으나 마나 달가운 말은 아닐 것 같아서.”

“이상한 부탁 하려고 한 건 아닌데…….”

“부탁은 맞다는 거네?”

“아. 그게 그렇게 되나?”

한스는 머리를 긁적이며 당황했던 얼굴을 지워내고 헤실헤실 웃었다.

“아직 같이할 사람 정하지 않았으면, 나랑 조별 과제 같이하자고.”

“네 친구들은?”

“어차피 홀수라 한 명은 다른 사람이랑 짝이 되어야 했어. 그리고 리엔 네가 약초학 관련에서는 빠삭하니까 네 덕 좀 볼까 해서. 하하.”

나는 묘한 눈으로 한스를 응시했다.

그는 전 조별 과제에서도 제가 참여하지 않은 일에 대해서 이름을 적는 것을 원하지 않아 했었다.

‘덕 좀 볼까 해서’라는 말은 나를 배려해서 한 말인 것 같다.

착해 빠져서는.

나는 픽 웃으며 잘 부탁한다는 의미로 주먹을 내밀었다.

“그래. 나야 아는 사람이랑 하면 좋지.”

“그럼 같이하는 거다?”

한스가 씩 웃으며 가볍게 내 주먹을 쳤다.

우리는 반에 돌아가면서 조별 과제에 관해 대화를 나누었다.

그는 내 옆 반이라 걸어가면서 잠깐 정도는 대화할 수 있었다.

“으으. 근데 아무리 기간이 길다고 해도 어떻게 일개 학생에게 약을 개발하라는 소리를 하냐. 이러니까 조지 교수님이 농부 소리를 듣지.”

한스가 알 수 없는 말을 하며 불만을 토해 냈다.

“농부?”

“C를 그렇게 잘 뿌리시잖아.”

아. 그런 의미였나.

“전에 보니까 F도 가차 없이 뿌리시던데.”

“와, 그건 진짜 사탄도 기립 박수를 보내야 한다.”

나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교수님도 학생들 수준 뻔히 아는데 큰 걸 바라시진 않겠지. 일단 할 수 있는 건 다 해 보고 정 안 되면 내가 레시피 하나 풀게.”

“레시피?”

“난 어렸을 때부터 약초 연구를 해 와서 쓸모 있는 게 생각보다 많거든.”

“오, 뭐야 완전 능력 있는데? 근데 네가 연구한 걸 과제물로 제출하는 건 내 양심이 좀…….”

“아까는 내 덕 좀 본다며?”

한스가 아차 싶은 표정을 지어냈다. 그가 급하게 뭐라 변명을 하려 입을 달싹이는데, 앞에서 누군가 내 이름을 불러 왔다.

“리엔!”

목소리가 들려온 곳에서는 충격과 배신감으로 얼룩진 얼굴의 카르시온이 서 있었다.

그가 성큼성큼 나와 한스에게 다가온다.

단숨에 우리 앞에 선 카르시온을 보며 나는 고개를 기울였다.

“카온. 너 왜 그런 표정이야?”

카르시온이 일그러진 얼굴로 내게 호소하듯 입을 열었다.

“분명 아침에 네게 수작 부리는 애가 있으면 고x킥을 날려 주기로 약속했잖아. 우리의 신성한 약속은 고작 하루도 가지 않는 거야?”

그의 말을 들은 한스가 경악하며 나와 카르시온을 빠르게 번갈아 봤다. 슬쩍 제 가랑이 사이를 손으로 가린다.

나는 그 반응을 보고 이마를 짚으며 설명했다.

“얘는 괜찮아. 나쁜 애가 아니니까. 한스 너도 보기 흉하니까 거기서 빨리 손 떼고.”

“한스? 벌써 둘이 다정하게 이름까지 부르는 사이인 거야?”

내게 고정되어 있던 카르시온의 시선이 한스에게로 옮겨졌다.

한스가 그의 눈에서 무엇을 봤는지 ‘히익’이라는 소리를 내며 내 뒤로 홀랑 숨는다.

“프렌드 실드!”

……이 졸렬한 놈이?

나는 황당한 얼굴로 내 뒤에 숨은 한스를 바라봤다.

그가 무슨 생각으로 내 뒤에 숨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숨어 봤자였다.

나보다 덩치가 큰 탓에 그의 몸뚱어리는 비죽비죽 튀어나와 보일 게 분명했으니까.

“리엔 네 뒤에 숨는 비겁한 자식이 착하다고?”

카르시온이 매서운 눈빛으로 한스를 바라보다가 불현듯 눈매를 아래로 늘어뜨렸다. 퍽 처량해 보이는 눈빛이었다.

“내가 착하다고 한 것도 다 거짓말이었던 거야, 리엔?”

“아니야. 난 거짓말한 적 없어.”

나와 관련된 것에 대해 다소 사나워지는 듯했지만, 그것 또한 귀엽게 넘어가 줄 수 있는 정도였다.

“카온. 이런 작은 일에 일일이 질투하지 마. 게다가 얘는 다른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걸.”

하지만 카르시온의 일그러진 표정은 펴지지 않았다.

“지금 당장 마음이 없다고 하더라도 같이 있으면 금방 너를 좋아하게 되어 버릴 거야.”

내가 무슨 사람 유혹하는 세이렌이냐.

그에게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고 말하려 할 때, 내 뒤에 있던 한스가 앞으로 나오더니 버럭 외쳤다.

“아니야! 내 취향은 연상이라고! 나는 동갑인 리엔보다 누나인 제인이 훨씬 좋아!”

훨씬 좋아……!

좋아……!

아…….

한스의 고백이 복도를 가득 찰 정도로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그때였다. 방금 막 코너를 돈 제인이 우리 앞에 뿅 하고 나타난 것은.

“와우.”

나는 굳어 버린 한스와 제인을 번갈아 보며 감탄사를 내뱉었다. 정말 신이 내린 타이밍이었다.

복도에 숨 막히는 정적이 흘렀다.

하지만 제인은 그의 고백을 듣지 못했다는 듯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내게 다가왔다.

제인이 활짝 웃으며 내 손을 끌어당긴다.

“오늘 전공 수업이 조금 일찍 끝나서 교실에 가 봤는데 칠판에 무용실로 오라고 쓰여 있더라. 그래서 리엔 너도 지금쯤 수업이 끝났을 것 같아서 데리러 왔어. 가자.”

나는 그녀가 이끄는 대로 걸음을 옮기며 생각했다.

못 들었던 걸까? 그렇게 크게 말했는데?

라고 생각하기가 무섭게 제인이 고개를 돌려 뒤에 있는 한스를 바라봤다.

그녀의 얼굴에 조금 떨떠름한 빛이 서린다.

“아. 고백은 거절할게. 나는 모르는 사람이랑 사귀고 싶진 않거든.”

1고백 1차임이었다.

……어쩌면 0고백 1차임일 수도 있고.

쯧쯔.

나는 그 자리에서 굳어 버린 한스를 보며 짧게 혀를 찼다.

그에게는 안된 일이었지만, 나에게는 나쁘지 않은 일이었다.

한스 파이팅.

* * *

왜 무용실로 오라 한 건가 했더니 몇 주간은 춤을 배운단다. 이론 수업일 때가 편하고 좋았는데.

춤을 가르치기 위해 특별 초빙된 강사가 아이들이 이목을 집중시키려 손뼉을 짝 쳤다.

“춤을 보다 빠르게 익히기 위해, 남녀 각각 파트너를 정해 춤을 연습할 겁니다. 파트너는 제비뽑기로 정하기로 하죠.”

평소라면 누가 파트너가 되든 상관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딱 한 명.

쿤 에드가 아바스칸투스만은 피하고 싶었다.

나는 사다리 타기에 대한 안 좋은 추억이 있었기 때문에, 이번에는 가장 마지막에 제비를 뽑기로 했다.

한 반에는 40명 정도의 아이들이 있었으니 아무래도 확률상 그와 파트너가 될 일은 희박했다. 하지만 조심해서 나쁠 건 없었다.

설마 이렇게까지 했는데 파트너가 되지는 않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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