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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 이러는 거 아니야 (40)화 (40/161)

40화

그간 전투 능력이 제로인 엄마와 내가 어떻게 마물이 득실득실한 산을 휘젓고 다녔겠는가.

보통은 마물 기피제를 뿌리고 다녔지만, 가끔은 직접 사냥을 나서기도 했다.

직접 만든 극독 침 한 방이면 어떤 마물이든 단숨에 숨을 끊어 놓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둘은 내 말이 믿기지 않나 보다.

“우리가 잡으러 가는 건 슬라임이 아니야, 리엔.”

피오르가 진중한 얼굴로 내 말을 철회하기를 종용했다.

“나도 엄연한 피고동의 일원인걸. 앉아서 점수만 받아먹는 건 마음이 불편해.”

“자괴감 드니까 그 피고동이라는 말 좀 꺼내지 말아 줄래?”

피오르가 눈을 세모로 뜨며 쳐다봤지만 나는 심드렁하게 답했다.

“네가 아무리 발악해도 우리 동아리 이름이 피고동인 건 달라지지 않아.”

“그래. 망할 카르시온에게 작명을 맡긴 내가 잘못이지.”

자신의 신세에 대해 한탄을 늘어놓는 피오르 뒤로 카르시온의 단호한 목소리가 들렸다.

“어쨌든 마물 토벌에 같이 가는 건 안 돼. 위험하잖아.”

“너희는 안 위험하고?”

“…….”

카르시온이 입을 꾹 다물었다.

시선을 피하는 것을 보니 정말 나한테만 위험할 거라고 생각 하나 보다.

뭐, 나는 비전투계열 학부이니 걱정하는 건 당연했다.

하는 수 없지. 이런 식으로 약한 척하는 건 취향이 아니지만.

나는 카르시온을 보며 희미하게 웃어 보였다.

“왜 걱정해? 어떤 상황이든 너희가 지켜 줄 거잖아. 나는 너희를 믿는걸.”

그러자 카르시온이 놀란 듯 눈을 키웠다가 이내 제 손으로 입가를 가렸다.

미처 다 가리지 못한 손 틈 사이로 기쁨으로 인해 주체하지 못하고 씰룩이는 입꼬리가 보인다.

“맞아. 어떤 상황이 오든 내가 목숨 바쳐 지켜 줄게. 피오르는 제 안위만 중요한 놈이니까 절대 믿지 말고.”

아니, 그럴 필요까지는 없는데.

나도 내 목숨 정도는 부지할 수 있거든.

그런 우리 둘 사이로 피오르의 허탈한 음성이 들렸다.

“이게 나라냐.”

* * *

마물 토벌을 가기로 한 날. 나는 아침 일찍 일어나 요리 실습실로 향했다.

마물 토벌. 이름은 거창했으나 내 딴에는 그냥 피크닉을 가는 기분이었다.

피크닉 하면 당연히 요깃거리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전날 상점가에서 산 재료들로 간단히 샌드위치를 만들었다.

나는 다 만든 샌드위치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이 샌드위치도 오랜만이네.”

평범한 샌드위치처럼 보이지만, 내게는 조금 의미가 담겨 있는 것이었다.

엄마와 약초를 따러 가는 날이면 아빠가 항상 해 주던 샌드위치.

아빠만 아는 특제 소스를 발라 오묘한 맛이 났다.

비법이 궁금했던 어린 나는 아빠를 졸라 소스의 레시피를 알아냈다. 하지만 아빠는 절대 엄마에게는 비법을 알려 주지 않았다.

“생각해 봐, 리엔. 엄마에게 레시피를 알려 주면 이 샌드위치가 먹고 싶을 때 아빠를 찾지 않을 수도 있잖아.”

확실히, 엄마는 유독 아빠가 만든 샌드위치를 좋아했다.

그런데 겨우 엄마가 자신을 찾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이유로 레시피를 꽁꽁 감추다니.

그 당시에는 유치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아빠는 엄마에게 조금이라도 더 의미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는걸.

딸인 내가 해도 되는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잘 어울리는 한 쌍이었다.

나는 길고도 짧았던 감상을 끝내고는 샌드위치를 단단한 케이스에 담았다. 그리고 가방 제일 안쪽 구석에 고이 모셨다.

우리가 한창 먹을 나이라는 걸 고려해 잔뜩 만들었더니 샌드위치만으로 가방의 반이 들어찼다.

너무 많이 만들었나.

“남으면 카온 줘야겠다.”

거부하면 어쩔 수 없지만, 카르시온이라면 아마 내가 독을 주더라도 기쁜 마음으로 먹지 않을까.

내가 아는 카르시온이라면 그러고도 남을 것 같았다.

그가 샌드위치를 맛있게 먹는 모습을 머릿속에 그리자, 입가에 절로 미소가 떠올랐다.

심장이 조금 뻐근해진 느낌이 드는 것 같기도 했다.

“맛있게 먹어 줬으면 좋겠다.”

* * *

약속된 시간에 모인 우리는 곧바로 산으로 이동했다.

마물이 나온다는 경고 푯말을 지나치고, 마물 서식지에 발을 디디자 카르시온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리엔. 우리는 좀 더 깊게 들어갈 건데 괜찮아? 하급이 아니라 중급에서 상급 마물을 잡으러 갈 거야.”

“두 번째 경계 안으로 들어가려고?”

“응. 하급보다 상급이 점수를 더 잘 쳐 주거든.”

우리가 있는 이 산은 깊게 들어갈수록 강한 마물이 나왔다.

푯말의 주변으로는 마물이 빠져나올 수 없게 하는 철조망과 마법이 쭉 이어져 있어, 경계라고 부르기도 했다.

방금 지나친 푯말이 그저 마물 서식지의 시작을 알리는 거라면, 더 깊은 곳에 있는 두 번째 푯말부터는 중급 이상의 마물이 나왔다.

나는 두 번째 경계 안으로는 들어가 본 적 없었다.

아무리 독침 한 방이면 마물을 죽일 수 있다 한들, 혼자서 들어가기에는 위험 요소가 많기 때문이다.

약초를 캘 때는 반쯤 정신을 놓고 있기도 하고.

내가 직접 제조한 마물 기피제도 중급 이상부터는 통하지 않는 부류가 많았기에 크게 도움은 되지 않았다.

나는 두 번째 경계 안에는 얼마나 더 좋은 약초들이 있을까 가늠하며 미소 지었다.

“재미있겠네.”

그러자 은연중에 내가 거부하기를 바랐던 카르시온이 덧붙였다.

“진짜 무섭게 생긴 마물들 많이 나오는데…….”

나는 코웃음을 치며 받아쳤다.

“인간이 제일 무서워.”

카르시온은 달리 반박할 말이 없었는지 입을 다물었다.

결국, 우리는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 두 번째 경계 앞에 섰다. 경계 안쪽으로 들어가기 전 피오르가 걸음을 멈추고는 말했다.

“얘들아. 나 전부터 해 보고 싶었던 게 있는데 해 봐도 될까?”

“뭔데?”

피오르에게 시선이 쏠리자 그는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아련한 눈빛을 하며 바라보기 시작했다. 누군가와 찍은 사진 같았다.

“이 전투가 끝나고 꼭 만나러 갈게. 조금만 기다려 줘.”

사망 플래그의 정석인 발언.

“야 이……!”

또라이야.

화를 내며 피오르에게 다가가는데, 가까이서 보니 어디서 많이 본 사진 같았다.

얼마 전에 시간을 내서 나와 카르시온, 피오르. 이렇게 셋이 함께 찍은 사진이었다.

“아니. 대체 왜 옆에 있는 사람들을 두고 그런 아련한 눈을 해?”

어이없다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자 피오르가 씩 웃었다.

“재미있잖아.”

어느새 나에게 장난기가 옮은 듯했다. 하지만 여기서 한술 더 뜨는 사람이 있었으니.

“괜찮아, 리엔. 원래 저런 건 플래그 꽂은 애가 제일 먼저 죽어. 우리는 피오르를 미끼로 던져 주고 유유히 빠져나가자.”

나는 뭐라고 답을 할까 고민하다가 ‘원래 이런 놈들이지’ 생각하고는 생각하기를 그만뒀다.

“근데 왜 얼마 전에 찍은 사진이 벌써 찢어졌어?”

피오르의 사진은 찢어졌다가 이어 붙인 자국이 있었다.

피오르의 시선이 잠시 카르시온으로 향했다가 빠르게 원위치를 찾았다.

“우리 기숙사에 사진만 집중적으로 노리는 연쇄 사진마가 있어서.”

듣도 보도 못한 범죄에 미간이 좁혀졌다.

“와. 남자 기숙사에는 그런 미친놈도 있어?”

“응. 나도 몰랐는데, 있더라고.”

“너희 문단속 잘해야겠다.”

“문단속으로 됐으면 내 사진은 멀쩡했겠지…….”

피오르가 하늘을 올려다보며 해탈한 얼굴을 했다. 카르시온은 그런 피오르를 무시하고는 활짝 웃으며 내 앞에 섰다.

“리엔. 우리 슬슬 들어가야 하지 않을까?”

“그러네. 시간을 너무 끌었다.”

우리는 익숙하게 사색에 잠긴 피오르를 두고 안으로 들어갔다.

경계 안으로 들어온 후 시간이 조금 흘렀다.

그러나 경계와 멀리 떨어지지 않은 탓일까, 마물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지루한 기색의 다른 애들과 달리 나는 마물의 등장 여부와 상관없이 눈이 핑핑 돌아갔다.

곳곳에 약초들이 널려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당장이라도 채집하고 싶은 마음을 억눌렀다.

‘오늘은 채집이 아니라 동아리 실적을 채우러 나온 거야. 개인적인 행동 하지 말고 참자, 참아.’

발은 앞을 향해 나아가고 있으나 시선은 계속 뒤로 처지고 있었다.

카르시온이 그런 나를 유심히 바라봤다. 내가 어떤 약초를 보고 있는지 다 꿰뚫어 보는 눈빛이었다.

안 되겠다. 대화하면서 사고를 다른 곳으로 돌려야지.

“궁금한 거 있는데, 너희는 혹시 마물 죽일 때 죄책감을 느껴?”

“아니.”

카르시온과 피오르의 입에서 동시에 나온 대답이었다.

“그럼 다행이네.”

“리엔, 너는? 아니, 죽여 본 적이 없으려나.”

“죽여 본 적 있어. 그리고 나도 마물에는 딱히…….”

마물은 기본적으로 자아와 이성이 없다.

마나에 뒤틀림이 일어나면 확률적으로 마물이 탄생하게 되는데, 그 경우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 자연적인 탄생.

한곳에 오랫동안 마나가 축척 되면 그 방대한 힘을 원천으로 뒤틀린 생명이 탄생한다.

그러나 그것은 불완전한 것으로서, 자아를 갖지 못하고 오로지 광기와 파괴의 욕구만 남게 되는데. 사람들은 그 생명을 마물이라 일컬었다.

둘째, 인공적인 탄생.

원리는 자연적인 탄생과 같다. 방대한 마나를 한곳에 인공적으로 집약하는 것.

하지만 이는 대륙 전체에서 금기된 행위로, 금기를 범한 자는 사형 그 이상의 형벌을 받았다.

마물이 인간들에게 있어 얼마나 ‘악’인지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나는 무심히 주머니에 있는 무언가를 매만졌다. 독침이 가득 들은 케이스였다.

그때였다.

어디선가 흉포한 짐승이 울부짖는 소리가 들리며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보며 시선을 교환했다.

쿵.쿵.쿵. 마물이 우리 쪽으로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독침을 날리자마자 바로 쓰러지는 걸 보면 다들 놀라려나.

독침 케이스를 주머니에서 꺼냈을 때였다.

“쿠아아아아악!”

풀숲을 헤치고 나온 거대한 마물이 사나운 이를 드러내며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마물은 등장과 동시에 카르시온의 빙결 마법을 맞고 그 상태 그대로 굳어 버렸다.

딱딱하게 굳은 마물이 균형을 잃고 기울어진다.

쿵.

눈 깜빡할 사이 끝나 버린 상황에 나는 멈칫했다.

……그들의 말대로 정말 따라올 필요 없었던 것 같다.

무안한 마음이 밀려 들어왔다. 누가 이 정도일 줄 알았겠는가.

나는 공격이 아닌 뒤처리를 맡는 게 나을 성싶었다.

당황하던 것도 잠시, 빠르게 상황을 판단한 나는 얼어 버린 마물을 향해 걸어갔다.

동아리 실적 보고에 필요한 핵을 취할 셈이었다.

피오르는 카르시온이 평소와 달리 빙결 마법을 쓴 것을 보고 불만을 토해 냈다.

“야. 몸 안에 있는 핵을 꺼내야 하는데 빙결 마법을 쓰면 어떡해. 딱딱해서 핵을 꺼내기 힘들잖아.”

“리엔 앞에서 더러운 마물의 피를 보여 줄 수는 없잖아.”

피오르가 혈압 오른다는 듯 주먹을 꽉 쥐었다.

뭐, 정상적인 반응이었다.

심장 부근에 있는 마물의 핵을 꺼내려면 피는 불가피하게 봐야만 했기 때문에 카르시온의 말은 애초에 말이 안 됐으니.

“……내 평생소원이 하나 있는데, 주먹으로 한 대만 때려도 되냐?”

카르시온은 그런 피오르를 무심히 바라보며 말했다.

“때려.”

“……정말?”

피오르의 얼굴에 미미한 화색이 돈 것도 잠시, 이어진 카르시온의 말에 그의 얼굴은 다시 구겨졌다.

“대신 한 대씩 교환.”

“하겠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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