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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 이러는 거 아니야 (42)화 (42/161)

42화

“……리엔?”

그 누군가는 놀랍게도 쿤이었다.

카르시온이 쿤을 보며 네가 왜 여기에 있냐는 얼굴로 그를 노려봤고, 피오르는 앞으로 벌어질 일이 훤하다는 듯 이마를 짚었다.

누구도 그의 등장을 달가워 않는 기색이었다.

나는 여기서 만났다는 놀라움보다는 안쓰러운 마음에 가볍게 손을 들어 몇 번 흔들어 주었다.

“여기서 대체 뭘…….”

“뭐긴. 동아리 실적 때문에 마물 잡으러 나왔지. 너야말로 여긴 어쩐 일로?”

“산책을 나왔습니다.”

“산책을 마물 서식지로? 와 너도 참 정상은 아니다.”

“정령이 있으니까 위험하진 않습니다. 그보다…….”

쿤이 우리가 가져온 음식들에 시선을 주더니, 별안간 눈을 비볐다. 자신이 뭘 잘못 봤나 하는 표정이었다.

잘못 본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쿤이 흐린 눈을 했다.

“……만찬을 즐기고 계시군요. 마물 서식지에서.”

쿤의 마물 서식지에서라는 말에, 나 또한 그제야 여기가 마물 서식지였다는 것을 상기했다.

핵을 모을 때도 긴장감 없이 진행했더니…….

나는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뭐, 벌벌 떠는 것보다는 낫지. 너도 같이 먹을래?”

내가 쿤에게 음식을 권하자 카르시온이 재빨리 안 되는 이유를 설명했다.

“아쉽지만 식기를 딱 3개만 가져와서. 여유분이 없어.”

“그래?”

남이 먹던 걸 같이 쓰는 건 좀 아닌 것 같고. 그렇다고 나무를 깎아 식기를 만들기도 그렇고…….

그럼 손으로 먹을 수 있는 걸 주면 되겠다.

나는 카르시온이 소중히 안고 있는 케이스에서 샌드위치를 하나 꺼냈다.

그가 불안한 눈빛으로 샌드위치와 쿤을 번갈아 본다.

“리엔, 설마?”

응. 그 설마야.

“식기가 없다니까, 괜찮으면 이거라도 먹어. 쿤.”

얼결에 샌드위치를 받아 든 쿤이 눈을 깜빡였다.

“감…… 사합니다.”

눈뜨고 샌드위치를 뺏긴 카르시온이 맹렬하게 쿤을 노려봤다.

하지만 쿤은 샌드위치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어 눈치채지 못했다.

그냥 먹지 뭘 저렇게 뜸을 들여.

쿤이 샌드위치를 입에 가져갈 기미가 안 보이자, 순간 내가 식사를 하기 전 손을 씻었나 하는 생각이 스쳤다.

했을 리가 없었다.

……짠맛이 더해졌겠네. 이건 안 먹어도 인정이다.

“쿤. 찝찝하면 안 먹어도 괜……”

괜찮다고 말하려는 순간 그가 샌드위치를 입에 넣었다.

앗. 아아…….

왠지 호의를 베풀고도 미안한 기분이었다. 나는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며 소심한 목소리로 물었다.

“어때……?”

짜지 않냐는 물음이었다.

다행히 딱히 짠맛을 느끼지는 못했는지 부정적인 표정 변화는 없었다.

“평범한 샌드위치네요.”

“뭐?”

하지만 카르시온은 쿤의 반응이 못마땅했나 보다.

아니, 자신의 소중한 샌드위치를 뺏은 것에 더해 박한 평가에 화가 난 듯했다.

“너 지금 이 샌드위치를 고작 ‘평범한 샌드위치’라고 칭한 거야?”

카르시온이 벌떡 일어나 쿤의 멱살을 잡을 듯 흉흉한 기세를 풍겼다. 덩달아 쿤의 눈매도 좁혀진다.

“왜 또 난리입니까, 당신은.”

“잘 들어. 네가 방금 먹은 샌드위치는 ‘리엔’이 직접 만든, 그것도 리엔 아버지의 ‘특제 소스’가 들어간 샌드위치라고.”

카르시온이 뭐라 하든 꿈적하지 않을 것 같던 쿤의 동공에 지진이 일었다.

“다, 다시 생각해 보니까 특별한 맛이 나는 것 같기도…….”

신빙성이 0에 수렴하는 말이었다.

“미각도 없는 놈. 넌 샌드위치를 먹을 자격이 없다!”

라며 카르시온이 샌드위치를 뺏으려 하자 쿤이 급하게 남은 샌드위치를 우악스럽게 제 입에 쑤셔 넣었다.

하지만 카르시온은 쿤의 입속에 들어간 샌드위치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당장 뱉어!”

“으므 믁은 글 으뜨큼느끄.”

“리엔, 보고만 있을 거야?”

피오르가 저 한심한 두 놈 좀 보라는 듯 혀를 끌끌 찼다.

이미 입에 든 걸 굳이 뱉게 하려는 카르시온이나 그걸 또 뺏기기 싫어서 격하게 도리질 치는 쿤이나.

더럽고 치사……가 아니라, 유치한 건 사실이지만.

“아직 애잖아.”

그들도, 나도.

“싸우면서 크는 거지.”

사실 말리는 게 귀찮은 이유가 제일 컸다. 치고받고 싸우거나 욕설이 난무하면 나설 생각이지만.

언제나 선은 지키고 있으니까.

……그러고 보니 카르시온은 나를 좋아해서 질투하는 거라면, 쿤은 왜 항상 그와 싸우는 거지?

의문에 대한 답을 곰곰이 생각해 봤다. 답은 생각보다 빨리 나왔다.

아. 알았다.

매번 카르시온이 쿤에게 시비를 터는구나……!

게다가 쿤은 한번 나쁘게 인식이 박히면 생각을 잘 바꾸지 않는 사람이었다. 내가 경험자지 않은가.

생각해 보면 쿤과 카르시온은 첫 만남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서로를 바라볼 때 눈에 힘이 풀리지 않은 적이 없었다.

역시 첫 만남부터가 잘못됐던 거다.

처음에 둘의 싸움을 방관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하지만 그때는 나도 쿤을 싫어했으니.

애들이 티격태격하는 것을 지켜보며 음식을 먹었더니 어느새 배가 차올랐다.

실은 좀 더 먹을 수 있었으나, 마물 토벌은 아직 끝난 게 아니니 욕심부리지 않기로 했다.

손수건에 물을 묻혀 입가를 닦고 있으려니 카르시온이 다시 아공간을 열었다.

“다 먹었어? 그럼 이제 후식을 꺼낼…….”

“나는 그만.”

카르시온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긴 속눈썹을 팔랑였다.

“왜?”

“배불러서 못 먹을 것 같아.”

“하지만 누군가가 내게 말하길, 사람은 누구나 후식 배는 따로 가지고 있다고 했는데.”

그 누군가가 어디 사는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제인과 상당히 비슷한 가치관을 가진 것 같다.

“안 먹는다니 아쉽네. 그래도 중요한 건 리엔의 의사니까…….”

카르시온이 시무룩하게 아공간을 닫았다.

“그럼 생크림과 초코 시럽을 가득 올린 파르페와 너무 물렁하지도 딱딱하지도 않게 살짝 얼린 슈크림 가득한 슈는 넣어 둘게.”

“먹을게. 아니, 먹게 해 줘!”

파르페는 몰라도 ‘슈’라니.

메뉴를 미리 설명했으면 당연히 먹었지. 토하는 한이 있더라도 먹었을 거다.

내가 이렇게 적극적으로 먹고 싶어 할 줄 몰랐는지 카르시온이 살짝 당황한 얼굴을 했다.

그럴 만도 하다. 나는 단 걸 싫어하지는 않았으나 이렇게 밝힌 적은 없었으니까.

하지만 ‘슈’라면 말이 다르다.

얇고 부드러운 슈 반죽과 그 안에 꽉 찬 슈크림.

내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었다.

“일부러 맛있어 보이도록 말한 건 맞는데, 진짜로 넘어올 줄은 몰랐네. 나야 리엔이 먹어 준다니 좋지만.”

카르시온이 뿌듯한 얼굴로 아공간에서 파르페와 슈를 꺼냈다.

나는 파르페에는 일말의 시선 한 줌조차 주지 않고 슈를 바라봤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슈가 무려 여섯 개였다.

우리는 총 네 명이니, 각자 하나씩 돌아가고도 두 개나 남는 수.

머릿속으로 어떻게 해야 남는 두 개 중 하나를 손에 넣을 수 있을까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카르시온이 나를 제외한 둘을 경멸스럽게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혹시 몰라서 말하는 건데, 양심이 있으면 후식은 손댈 생각도 하지 마라. 전부 리엔 주려고 가져온 거니까.”

“……하. 카온.”

카르시온의 말을 들은 나는 이마를 짚으며 심각한 얼굴로 그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자 카르시온이 얼굴에 걱정이 한가득 떠올랐다.

“응? 무슨 일이야, 리엔. 마음에 안 드는 거라도 있어?”

피오르가 그걸 몰라서 묻냐는 어투로 카르시온의 행동을 지적했다.

“뭐긴 뭐야. 네가 한 말 때문이지. 리엔은 누구처럼 치사하지 않아서 혼자는 안 먹거든?”

나는 피오르를 향해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그리고 카르시온을 향해 엄지를 척, 치켜세웠다.

“피오르의 간사한 혀 놀림에 상처받지 마. 누가 뭐라 하든 네가 옳아.”

“……!”

카르시온의 얼굴이 내가 편을 들어줬다는 기쁨 반, 근데 왜? 라는 의문 반으로 인해 왔다 갔다 했다.

혼란스러운 것은 카르시온뿐만이 아니었다.

다들 이게 어떻게 된 상황인지 몰라 나와 카르시온을 번갈아 보기 바빴다.

나는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든 신경 쓰지 않고 흐뭇하게 슈를 바라봤다.

나를 위한 슈라니. 그것도 여섯 개 모두.

……그깟 거 나눠 줄 수도 있는 거 아니냐고?

피오르고 쿤이고 내 입이 먼저지.

세상에는 흔쾌히 나눌 수 있는 게 있고 없는 게 있다. 그 기준에서 슈는 완벽한 후자에 속했다.

처음부터 그들의 것이었다면 탐내지 않았겠으나, 보라.

카르시온이 분명 내 것이라고 선언해 줬다.

나는 영롱한 자태를 뽐내는 슈를 입 안에 넣기 전, 카르시온을 향해 감사 인사를 했다.

“그러고 보니 인사가 늦었네. 정말 고마워. 잘 먹을게. 아 물론, 이전의 음식도 맛있게 잘 먹었어.”

나처럼 직접 만든 건 아니겠지만.

어쨌든 그가 내 생각을 해서 요리사에게 명령하고, 완성된 음식을 친히 아공간에 넣어 가져온 것이지 않나.

카르시온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날 멍하니 봤다.

“희귀한 약초에만 관심 있는 줄 알았더니…….”

나는 슈를 먹느라 정신없는 와중에도 그의 표정이 어쩐지 환희에 차 보인다는 생각을 짧게 했다.

냠.

이번에는 슈를 통째로 입으로 쏙 넣었다. 한입에 넣기에는 다소 버거운 크기였었다.

하지만 결국 입에 모두 집어넣은 나는 양쪽 볼에 가득 채워 넣어 맛을 음미했다.

볼이 터질 듯 빵빵해진 걸 알았지만, 슈를 위해서라면 이미지 정도는 버릴 수 있었다.

슈를 가르고 터져 나온 노란 슈크림이 입 안을 점령하며 혀끝으로 황홀한 맛을 전해 왔다.

행복함이 느껴지는 맛이었다.

카르시온이 턱에 팔을 괴며 대놓고 나를 관찰했다. 기분 좋은 듯 싱글거린다.

“맛있어?”

나는 먹던 슈를 꿀꺽 삼키고 나서야 겨우 답했다.

“너무 맛있어어…….”

“네가 이렇게 좋아할 줄 알았으면 더 가져왔을 텐데.”

카르시온이 눈을 휘며 웃었다.

그는 순진한 사람을 타락시키려는 악마처럼 한없이 다정한 음성으로 속삭였다.

“다음에는 유명 파티시에를 납치해서라도 잔뜩 가져올게.”

하지만 나는 납치라는 말에 되레 퍼뜩 정신을 차리고 말았다.

“그건 좀…….”

농담인 건 알고 있었다.

그 어떤 미친놈이 좋아하는 사람에게 슈 하나를 먹이겠다고 사람을 납치하겠는가.

그러나 나를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그를 생각하니 어쩐지 농담도 농담으로 받아선 안 될 것 같은 느낌이었다.

“농담인데 너무 과민 반응인 거 아니야, 리엔?”

평소와 조금 다른, 나긋한 음성이었다. 마치 배부른 짐승 같은.

괜히 어색한 기분에 시선을 피하려 하늘을 보는데, 저 멀리 뭔가가 지나가는 게 보였다.

검은 날개에 검은 형체.

꽤 멀리 있어 내 좋은 시력으로도 제대로 파악하기는 어려웠다.

확실한 건 까마귀보다 크고 새라고 하기에는 형태가 다소 이상했다는 거다.

라그라스 제국에는 까마귀가 울면 재수가 없다는 속설이 있었다.

속설을 맹신하진 않았다. 하지만 나도 제국에서 나고 자란, 어쩔 수 없는 라그라스의 사람이었다.

평소라면 오늘 나쁜 일이 생기는 건 아니겠지 의심부터 했을 텐데.

지금은 슈를 먹느라 그러려니 하고 넘겼다.

“뭔가가 있습니까, 리엔?”

“리엔이 뭘 보건 네가 뭔 상관이야. 관심 꺼.”

쿤은 카르시온을 무시하며 내 시선을 따라 검은 형체를 눈에 담았다.

하프 엘프인 그도 잘 보이지 않는 듯 눈을 찌푸렸다. 그러다 정체를 추측하듯 작게 입을 열었다.

“dog bird……?”

나는 무의식적으로 그 말을 해석해 입 밖으로 꺼냈다.

“개, 새…….”

뭐? 개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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