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화
침대에 누워 있는 걸 보니, 어떻게 잘 해결된 모양이긴 한데.
문제는 리엔이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였다.
‘걱정했을까?’
했을 것이다. 리엔은 자신과 달리 마음이 여리고 착했으니까. 놀라기도 많이 놀랐겠지.
그럼…….
‘울었을까?’
당연히 울지 않았으면 했지만, 한편으로는 리엔이 자신 때문에 울었다면 좋은 기분이 들것 같았다.
모순된 감정이었다.
그때였다.
“카르시온 들어갈게.”
리엔으로 추정되는 목소리가 들린 직후, 바로 문고리가 돌아가는 소리가 났다.
카르시온은 이렇게 갑자기 리엔이 나타날 줄도, 문이 바로 열릴 줄도 생각지 못했기에 당황한 나머지 눈을 감았다.
얼결에 자는 척을 하게 된 카르시온이었다.
카르시온은 눈을 감고 있어서 몰랐지만, 병실에 들어온 리엔의 얼굴은 부어 있었다. 특히 눈가가.
리엔은 사실 카르시온이 깨어나기 바로 전까지 그의 곁에서 울고 있었다.
그러다 카르시온이 일어나서 제 모습을 보면 놀라겠다는 생각에, 세수만 하고 다시 들어온 것이다.
그런데 기껏 세수하고 왔더니, 카르시온의 얼굴을 다시 보자마자 눈물이 나왔다.
“진짜. 이 바보가…….”
리엔이 카르시온이 누워 있는 침대 옆에 앉아 울기 시작했다.
왜 미련하게 거기에 손을 내민단 말인가. 제가 무슨 내성이 있다고.
막으려면 맨날 펑펑 써재끼는 마법으로 막을 것이지. 왜 손을 들이미냐는 말이다.
하지만 그를 탓해 봤자 속만 더 쓰릴 뿐이었다. 애초에 자신이 먼저 잘못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
다시는 그런 위험한 장난 따위 하지 않을 것이다.
“카온 네가 잘못되기라도 했으면 난…….”
‘난 어떻게 됐을까.’
무슨 행동을 취하고 어떻게 반응했을까.
모르겠다. 자신도 무슨 일을 행했을지 몰랐다.
사랑하는 이의 죽음은 한 번으로도 씻을 수 없는 상처로 자리 잡았다.
그런데 그게 두 번이라.
리엔은 방금의 생각에서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다.
……사랑하는 이?
그래.
그렇구나.
리엔은 그동안 애써 한구석에서 아니라고 부정해 왔던 사실을 인정했다.
카르시온의 일방적인 사랑이, 어느 순간 쌍방이 되어 있었음을.
* * *
한편, 리엔의 울음소리를 들은 카르시온의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울면 좋은 기분일 것 같다고 한 거 취소다.
끔찍한 기분이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우는 사람을 어떻게 달래야 할지 몰라서. 차라리 눈을 감고 있는 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비겁한 도망침이었다.
“카온 네가 잘못되기라도 했으면 난…….”
난?
자신이 잘못되기라도 했으면 같이 죽었을 거라는 소리로 들려 왔다.
리엔이 죽는다니.
온몸의 피가 마르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자신을 그만큼 좋아한다는 의미로 해석돼서…….
심장이 미친 듯이 요동쳤다. 애써 자는 척하고 있었는데, 눈치도 더럽게 없었다.
카르시온이 타이밍을 보다가 작게 눈을 떠 리엔을 확인했다.
붉어진 눈가마저도 너무 예뻤다. 하지만 동시에 가슴이 아파 왔다.
리엔이 아프지 않았으면 해서 자신이 대신 독침을 맞았던 거다.
그런데 결국, 그녀를 아프게 했다. 자신의 실책이었다.
조금 더 빨리 마법으로 행동을 저지했으면. 아니면 리엔이 장난을 치고 있다는 것을 인식했을 때, 더 간곡히 말렸더라면.
카르시온이 한없이 자신을 자책하고 있을 때였다.
그의 야트막한 시야에, 리엔의 상처 가득한 무릎이 들어왔다.
조금 다친 것도 아닌지, 종아리에 무릎에서 시작되어 쭉 흐른 피가 말라붙어 있었다.
그녀의 상처를 눈으로 확인하자, 쿵쾅거리던 심장마저 싸늘하게 식어 내려갔다.
카르시온은 방금까지 제가 자는 척하고 있었다는 것도 잊고 몸을 벌떡 일으켰다.
“리엔, 너 그 피는 대체……!”
갑작스러운 움직임에 당황한 리엔이 눈을 키우며 그를 바라봤다.
“……카온?”
리엔은 두 눈으로 카르시온이 멀쩡하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그를 덥석 끌어안았다.
“카온!”
카르시온은 리엔의 행동에 헉 소리를 낼 뻔한 것을 간신히 참아 넘겼다.
“다행이야. 정말 다행이야…….”
리엔은 순수하게 그가 깨어났다는 사실에만 집중한 상태였으나, 카르시온은 아니었다.
그의 손이 갈 곳을 찾지 못한 채 허공에서 방황했다. 카르시온은 아무렇지도 않게 그녀를 마주 안을 자신이 없었다.
그 순간, 카르시온은 자신의 어깨가 젖어 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는 제 어깨에 얼굴을 묻은 채 울고 있었다.
어디서 다친 거냐고 입술을 열고 있었는데. 리엔이 제 품에서 울고 있다는 것을 깨닫자 뭔가에 턱 막힌 듯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카르시온은 혼미해지려는 정신을 단단히 붙잡았다.
멍청하게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리엔이 다쳤지 않은가.
생각해 보니 넘어졌다면 무릎뿐 아니라 다른 곳도 다쳤을 터였다.
얼마나 다쳤는지 직접 눈으로 확인 하고 싶었으나 지금은 리엔이 안긴 상태라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는 입을 열어 목소리를 내는 대신, 조용히 치유 마법을 시전했다.
다행히 상처는 금방 치유됐다.
금방 치유된 것이 리엔의 상처가 얕아서인지, 아니면 카르시온이 마나를 무지막지하게 때려 박아서 인지는 누구도 몰랐다.
잠시 후 눈물을 그친 리엔이 카르시온의 어깨에서 떨어졌다.
그는 멀어져가는 온기에 깊은 아쉬움을 느꼈지만, 애써 내색하지는 않았다.
비소로 리엔을 마주 보게 된 카르시온의 얼굴에 복잡함이 떠올랐다.
그녀의 눈가에는 아직 흘러내리지 못한 눈물이 아롱아롱 맺혀 있었고, 붉어진 뺨에는 아직 마르지 않은 눈물 자국이 선명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어디서 다쳤냐고 물어야 할까? 아프지 않았냐고 위로해야 할까?
리엔은 그의 침묵을 뭐라고 생각했는지 다른 이들의 소재를 말해 주기 시작했다.
“다른 애들은 내가 너에게 해독약을 먹이는 것까지 본 후, 다시 마물 서식지로 갔어. 놓고 온 핵이랑 우리가 어질러 놨던…….”
“리엔.”
중간에 그녀의 말을 끊은 카르시온이 쓰게 웃었다.
“내가 궁금한 건 그런 게 아니야.”
카르시온의 손이 리엔의 얼굴에 스치듯 닿았다가 떨어졌다. 짧은 사이 마법진이 떠오르고, 그녀의 얼굴이 말끔해졌다.
“어쩌다 다쳤어?”
“……넘어졌어.”
“나 때문에?”
아니라고 부정하려던 리엔이 입을 열다 말고 멈칫했다. 그는 이미 답을 확신하고 물어본 것이었다.
“응. 네게 빨리 해독약을 먹이려고 뛰다가 몇 번 넘어졌어.”
카르시온이 입술을 짓씹었다. 그 모습에 리엔이 힘없이 하하 웃었다.
“그러게 왜, 왜…… 그걸 대신 맞아? 나는 내성이 있었단 말이야. 내가 장난치고 있다는 것도 뻔히 알았으면서.”
“몸이 자동으로 움직였어.”
솔직한 답변이었다. 한 줌의 거짓도 섞이지 않은.
리엔은 그 사실에 그쳤던 눈물이 다시 나올 것만 같았다.
“네가 이런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었는데……. 내 잘못인데 널 탓해서 미안해, 카온.”
“아니야, 리엔.”
이건 내 잘못이야.
함축적 의미가 담긴 카르시온의 눈빛이 리엔에게 닿았다.
“제대로 막지 못해서 널 다치게 했어. 독침만 막으면 된다고 생각한 내가 멍청했지.”
리엔은 고개를 저었다.
“내가 다친 건 문제가 아니야. 넌 죽을 뻔했다고.”
“아니. 내게 그것보다 중요한 문제는 없어. 게다가 리엔은……. 아픈 거 싫어하잖아.”
“아픈 건 누구나 싫어해.”
카르시온이 리엔의 머리카락 끝을 잡아 올렸다. 그 위에 카르시온의 입술이 내려앉는다.
“너는 더더욱 싫어하잖아, 리엔.”
그가 다 알고 있다는 듯 낮게 속삭였다. 리엔이 몸을 흠칫 떨었다.
카르시온이 어떻게 알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사실이었다.
리엔은 아픔이 끔찍이도 싫었다. 물리적인 상해는 특히나.
“……바늘이나 침은 괜찮아.”
어릴 때부터 내성을 기르려 가까이했으니까.
“내가 안 괜찮아.”
“카온.”
“내성이 있더라고 해도, 독이었잖아. 네가 위험에 빠질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차라리 내가 아픈 게 나아.”
“너는…….”
리엔은 혼란스러웠다.
그는 어째서 자신을 이렇게 좋아하는 걸까.
카르시온의 눈이 너무나 올곧아서. 그래서 저도 모르게 의심이 피어났다.
역설적이지만, 그랬다.
자기방어적인 생각임이 분명했다. 이미 자신은 다른 이에게 비슷한 배신을 경험한 바 있었으니.
‘내가 너에게 해 준 게 뭐가 있다고.’
하물며 그와는 만난 시간도 그리 오래된 게 아니지 않나.
자신이 카르시온을 좋아할 이유는 수도 없이 많았다.
자신에게만 다정해지는 말투라거나. 선물을 주는데, 받는 자신보다 기뻐하는 표정.
제가 카르시온에게 장난을 칠 때면 어쩔 줄 모르고 발갛게 변하는 뺨은 또 어떤가.
질투하며 경계하는 행동도.
가끔 진지해지는 모습도.
어느 것 하나 미운 것 없이 사랑스러운 사람이었다.
결국, 리엔은 눈을 질끈 감으며 속에 있던 말을 내뱉었다.
“너는 왜 그렇게 미련해? 애초에 나를 좋아하는 것도 그저 외모 때문 아니었어? 가볍게 시작한 사랑이라면 빨리 끝내란 말이야……!”
그렇게 간이고 쓸개고 빼 줄 것처럼 굴지 말고.
묵묵히 리엔이 하는 말을 듣던 카르시온이 이내 굳건한 눈빛으로 그녀와 눈을 맞췄다.
“빠르게 널 좋아하게 된 건 맞아. 난 네게 첫눈에 반했었지.”
“봐, 가볍게 시작했던…….”
“하지만, 리엔. 첫눈에 반하지 않았어도 널 좋아하게 되는 건 오래 걸리지 않았을 거야.”
카르시온은 표정을 풀며 환하게 웃어 보였다.
“장난칠 때만 나오는 짓궂은 웃음도. 실컷 장난쳐 놓고 심했나 싶어서 눈치 보는 모습도.”
잠에 취해 멍한 얼굴도.
약초만 보면 눈을 빛내는 모습도.
마물에게 겁먹지 않는 대범함도.
“그리고……. 이렇게 나를 걱정해 주는 모습까지도. 너는 네가 얼마나 매력적인 사람인지 몰라.”
리엔은 쉼 없이 이유를 늘어놓는 카르시온의 모습이, 자신이 그를 좋아하게 될 수밖에 없던 이유를 늘어놓던 것과 겹쳐 보인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가 너를 가볍게 좋아하는 것 같았어?”
고백과도 같은 말에 홀린 듯 고개를 저었다. 그에 카르시온이 만족스러운 웃음을 걸치며 내 머리카락을 사르륵 놓았다.
“그러니까 아프지 마. 나 때문에 울지도 말고. 우는 건 내가 대신 할게. 응?”
우는 것도 하나의 표현의 수단인데 못하게 하다니.
“……너무 이기적이잖아, 카온.”
퉁명스럽게 나온 말에, 그는 배시시 웃으며 화답했다.
“이제야 알았어? 리엔도 분명 들어 본 적 있잖아, 내 소문.”
“그 허무맹랑한 소문들?”
“……그게 진짜라면? 어쩌면 소문보다 더할 수도 있지.”
그렇게 말하는 카르시온은 어딘가 초조해 보였다.
생각해 보니 전에 그가 쿤에게 물을 뿌린 것을 보고 ‘낯설다’라고 말했을 때 예민하게 반응했었지.
줄곧 소문이 신경 쓰였던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