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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 이러는 거 아니야 (46)화 (46/161)

46화

평범한 점심시간.

나와 한스는 산책로를 따라 걷고 있었다.

전공 수업 때 만난 한스가 할 말이 있다며 점심 먹고 시간을 내달라고 했기 때문이다.

쿤과 카르시온의 도움을 받아 만든 땀 억제제를 한스에게 건넨 지 두 달가량 지났다.

대충 관련 내용일 것 같긴 한데.

“왜 따로 불러낸 거야?”

궁금한 건 이것이었다. 전공 시간에 말하면 될 걸, 왜 굳이 따로 만났어야 했는지.

내 질문에 한스가 주변에 사람이 없나 몇 번 둘러보고는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네가 우리 상단에 맡긴 땀 억제제에 관한 내용이야.”

“그러니까, 아까 전공 수업 들으려고 같이 앉았을 때 말했으면 되는 거 아니야?”

망했다고 해도 상처 안 받을 자신 있는데.

하지만 보름 전까지 진행 상황을 넌지시 물어볼 때도 잘되어 간다고만 말하던 그였다.

심드렁한 표정으로 한스를 바라보자 그가 고개를 저었다.

“거기에서 말할 수 없었어. 제작자가 너란 걸 다른 애들이 들으면 소란이 일어날 테니까.”

“……너 나 몰래 약에 독이라도 탔어?”

그를 보는 내 눈에 불신이 가득 들어섰다.

한스는 억울했는지 방금까지 목소리를 낮췄다는 것도 잊고 빽 외쳤다.

“내가 그런 짓을 할 리 없잖아! 그게 아니라, 지금 네가 만든 땀 억제제는 없어서 못 구하는 물건이 된 걸 말해 주려고 한 거야.”

“아 그래? 근데 그게 왜?”

“아 그래애애애? 리엔 네가 아직 상황을 잘 모르나 본데, 지금 여기저기서 구하려고 난리야! 제작자가 너인 게 밝혀지면 애들이 널 가만둘 것 같아? 몰래 하나만 팔아 달라고 아주 발광을 칠걸?”

“글쎄. 나는 잘 모르겠던데.”

나는 한스의 반응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저렇게 흥분할 만큼 잘 된 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뭐든 대박을 쳤으면 소문이 나기 마련. 게다가 아레나 아카데미는 소문이 빨랐다.

그러니 내 귀에 들어올 정도는 되어야 유명하다 할 수 있는 거 아닌가?

물론 온갖 가십을 꿰고 있는 피오르나 제인을 통해서가 아니라 다른 경로로 말이다.

그런데 자신은 땀 억제제의 관련된 소문은 일절 듣지 못했다.

근데 내가 한 가지 간과한 게 있었나 보다. 한스가 진짜 모르겠냐는 얼굴로 눈을 맞춰 왔다.

“아니야, 리엔. 그 약이 쓰이는 용도를 생각해 봐. 주로 약을 바르게 될 부위를 생각해도 좋고.”

“아.”

그렇다.

나도 한스도, 땀 억제제가 쿤처럼 정말 다한증을 고치기 위한 사람만 구매할 거라 생각한 게 아니었다.

우리가 진짜 노리는 고객들은…….

그저 겨드랑이를 뽀송하게 만들고 싶을 뿐인 사람들.

어쩌면 다른 부위일 수도 있고.

그렇다면 비밀스럽게 소문이 날 만도 했다.

한스가 그제야 여유롭게 웃었다.

“이제야 알았어?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 우린 대박 났다고! 우리 나이에 이런 걸 만들어 내다니 넌 정말 천재야, 리엔! 나는 땀을 억제한다는 생각조차 못 했을걸?”

나는 머쓱한 마음에 뺨을 긁적였다.

이거 처음 만들게 된 계기가 아빠의 땀 냄새가 싫어서 만들었던 건데……. 물론 나중에는 나도 유용하게 쓰게 됐지만.

아빠는 시도 때도 없이 어린 나를 안으려 했는데, 그건 검술 훈련 때문에 땀을 잔뜩 흘렸을 때도 예외는 아니었다.

나는 아빠가 상처받을까 봐 차마 대놓고 포옹을 거부하지는 못하고 약을 만들었다.

어릴 때는 땀의 중요성을 몰랐으니 땀구멍을 다 막아 버리겠다는 발상을 할 수 있었던 거지만, 지금은 그게 썩 좋은 방법이 아니었다는 걸 안다.

그래도 아빠의 희생으로 내가 만든 땀 억제제의 부작용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약을 발라 배출되지 못한 땀은 어떻게든 다른 부위로 나오는 것.

내가 쿤의 무한증을 고칠 수 있었던 것도 그러한 원리를 이용한 것이었다.

그는 손을 제외한 다른 곳에 무한증이 있었으니, 손에 나야 할 땀을 다른 부위로 옮겨서 균형을 맞췄다.

내 땀 억제제를 좋다고 몸 전체에 바른 아빠는 한동안 발바닥에서만 땀이 났었지.

어린 딸이 만든 걸 거리낌 없이 발랐던 착한 우리 아빠…….

아련한 눈으로 어린 시절을 추억하고 있으려니 한스가 줄줄 말을 늘어놓았다.

“물량에 한계가 있으니 하루 판매량을 정해 놓고 팔고 있는데, 이게 공급이 수요를 따라잡지 못하니까 음지에서는 몇 배의 가격으로 팔리고 있대. 공급자인 우리에게는 좋은 징조야. 가격을 그만큼으로 올려도 사려는 사람이 있다는 거니까.”

“워, 숨 좀 쉬면서 말해.”

내 머릿속 한스는 어벙하고 착한 호구의 이미지였다. 그런데 조리 있게 말하는 모습을 보니 조금 달라 보였다.

그는 확실히 약초보다는 이쪽이 더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가치를 높이기 위해 물량을 더 천천히 풀어도 괜찮겠어.”

나는 간간이 고개만 끄덕이며 설명을 한 귀로 흘렸다. 그러다 물량을 더 천천히 푼다는 말에 떨떠름하게 대꾸했다.

“어……. 그렇게까지 해야 할까?”

내가 알기로 처음 측정한 가격도 절대 적은 금액이 아니었는데.

그에 한스가 무슨 말을 하는 거냐는 듯 눈을 빠르게 깜빡였다.

“최대한 비싸게 팔아 달라고 한 건 리엔 너였잖아?”

“그건 맞는데 너무 욕심부리다 오히려 피 볼까 봐.”

한스가 내 등을 툭 치며 이가 보이도록 밝게 웃었다.

“네가 걱정하는 일은 없을 거야. 네가 만든 땀 억제제는 그만큼의 가치를 하는 약이라고. 게다가 너 나중에 독립하려면 돈이 필요하다며? 네가 신세 지고 있는 이모께 손 벌리기는 싫다고 했고. 그래서 내게 부탁한 거 아니야? 돈이 꼭 필요한 거잖아.”

“……그건 맞지.”

구구절절 맞는 말이었다.

한스는 그렇게 말하고도 할 말이 남은 듯 팔짱을 끼며 나를 쳐다봤다.

“리엔. 가난을 거꾸로 말해 봐.”

“가난? 난…… 가.”

더듬거리며 단어를 거꾸로 읊자 한스가 방긋 웃었다.

“맞아. 너는 가난해. 그러니 돈 벌 수 있을 때 벌어 놔야지.”

……이 자식이?

왠지 그의 멱살이라도 잡아야 속이 후련할 것 같은 기분에 손을 들어 올릴 때였다.

하늘 위로 그림자가 지며 비행 물체가 있다는 것을 알려왔다. 나는 반색하며 고개를 들어 그것을 바라봤다.

“어, 개새 왔다.”

“으아악! 저게 뭐야!”

한스가 소스라치게 놀라는 소리가 들렸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손을 흔들었다.

온몸이 새까만 강아지의 모습에 날개가 달린, 말 그대로 개새였다.

한동안 우리 둘의 머리 위로 원을 그리며 날갯짓을 하던 개새가 포르르 땅에 안착했다.

나는 한 손으로 익숙하게 주머니에서 소시지를 꺼내며 남은 한 손으로는 개새를 쓰다듬었다.

“착하지.”

“끼잉, 끼이잉.”

기분 좋은 듯 개새가 작게 그르릉거리며 내 손에 얼굴을 비볐다.

날 만난 게 어찌나 신났는지, 토실토실한 엉덩이가 꼬리와 같이 흔들린다.

어느새 몇 미터는 내게 떨어진 한스가 달달 떨리는 음성으로 내 이름을 불러왔다.

“리, 리엔?”

“응.”

한스를 돌아보니 그는 개새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였다. 이게 무슨 상황일지 열심히 머리를 굴리고 있는 것 같은데.

생각을 마친 듯 한스가 침을 꼴깍 삼키며 입을 열었다.

“그, 그거 마물 아니야?”

나는 개새에게 소시지를 작게 잘라주며 여상스레 답했다.

“응. 마물이야.”

마물 서식지에서 발견했고, 기묘한 생김새이니 마물이 확실했다.

하지만 한스가 저렇게 놀란 이유는 마물이 아카데미 산책로에 출현해서가 아니라…….

개새가 일반 강아지처럼 꼬리를 흔들며 사람에게 친근감을 표현한 부분일 것이다.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가끔 나타나긴 했다.

마나의 집약으로 인한 뒤틀림 속에서 태어났음에도 광기에 물들지 않은 생명이.

개새와 같은 생명을 보기 힘든 것은 일반적인 마물들 사이에서 살아남기 어렵기 때문이다.

태어나기도 어려울뿐더러 태어나자마자 죽기 일쑤라 보통 발견하기 어려운 게 아니었다.

자아와 이성이 불완전한 것이 아닌, 완전한 생명.

사실 마물이라고 칭하는 것도 따로 분류할 종류가 없어서지 개새와 같은 아이는 일반 동물에 가까웠다.

“얘는 안전해. 그냥 날개 달린 강아지라고 생각해도 괜찮아.”

“……그걸 믿으라고?”

경계하다 못해 기어이 벤치 뒤로 가서 숨은 한스가 웃겨 푸스스 웃음이 나왔다.

날개가 달린 대상이 개가 아니라 말이었으면 페가수스라고 좋아했으려나.

“어, 언제부터 기른 거야?”

“기른 건 아니고, 이 아이를 발견해서 먹이를 챙겨 주기 시작한 건 몇 주 전이야.”

연구에 필요한 약초를 캐기 위해 산에 올랐을 때 우연히 만났다.

마물 서식지인 첫 번째 경계를 넘지 않았음에도 뭔가가 다가오길래 짐승인가 했는데…….

글쎄, 쿤이 봤다던 개새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내게 다가오는 거 아닌가.

이 아이는 마물이되 마물이 아니라 마법이 걸린 첫 번째 경계 밖으로 나올 수 있던 것 같다.

그래서 살아남을 수 있었겠지.

“작고 작은 아이였어. 그나마 지금은 많이 자란 거야.”

마물은 방금 막 탄생한 개체라도 육체는 성체와 다름없었다. 시간이 흘러도 자라지 않는다는 뜻이다.

근데 이 아이는 처음 봤을 때와 비교해, 눈에 띄게 자라 있었다.

“개새 같은 애는 오랜만에 봐서 반가운 마음에 쓰다듬어 줬는데…….”

“리엔, 발음 좀…….”

“왜. 틀린 말은 아니잖아.”

나는 딴지를 거는 한스의 말에 대꾸한 후 말을 이었다.

“어쨌든 그 후로 나를 졸졸 따라오더라고. 단호하게 안 된다고 하니까 말귀를 알아먹은 듯 귀를 시무룩하게 늘어뜨리고.”

그 모습을 보니 분홍색의 누군가가 떠올랐다는 건 비밀이었다.

“그래서 가져간 음식을 조금 나누어 주며 위로해 주고는 나를 찾아오면 가끔은 어울려 준다고 했지.”

“개한테……?”

나는 새대가리가 아닌 게 어디냐는 말을 삼켰다.

“알아들을 거라 생각해서 한 말은 아니야. 그냥 죄책감을 덜려고 혼자 말한 거였지.”

“근데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거야?”

“……근데 어떻게 알았는지 정말 기숙사로 찾아오더라고.”

그 이후로는 보시다시피 가끔 밥을 챙겨 주는 사이가 됐다.

나는 보란 듯 ‘앉아’, ‘손’과 같은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내 말대로 척척 명령을 수행하는 개새.

똑똑한 아이였다.

하지만 겁이 많은 한스는 도통 벤치 앞으로 나올 생각이 없어 보였다.

“불길하지 않아? 암만 순해 보여도 마물이잖아.”

“음……. 별로?”

저번에 카르시온이 독침을 맞고 쓰러진 날 이 아이를 목격하긴 했다. 하지만 그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실제로 내가 장난만 치지 않았어도 벌어지지 않았을 사고가 아니었는가.

“리엔. 너도 한 번쯤은 들어 봤겠지만, 예로부터 검은 머리 짐승은 거두는 거 아니랬어.”

“거, 듣는 검은 머리 기분 나쁘게 말하네.”

한스가 내 흑발을 바라보더니 동공 지진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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