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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 이러는 거 아니야 (47)화 (47/161)

47화

“그, 그 뜻이 아닌 거 알잖아.”

나는 어깨를 으쓱이고는 개새를 안아 한스에게 가까이 갔다.

“잘 봐. 이렇게 귀여운 아이가 불길해 보여?”

개새가 내 볼을 핥으며 끼잉 소리를 냈다. 영락없이 순한 강아지의 모습이었다.

그에 한스는 흐물흐물한 얼굴을 하며 이상한 소리를 냈다.

“흐으윽. 귀여워.”

그때였다. 내게 집중하며 뺨을 핥던 개새가 한스를 발견하고 맹렬히 짖기 시작한 것은.

“그르르르릉, 왈!!! 왈!!! 으르르릉 컹!컹!! 크르르르릉.”

“으허어어엉!”

놀란 한스가 얼른 거리를 벌리며 도망쳤다.

“얘는 안전하다며!”

“……어? 왜 이러지? 나랑 제인 앞에서는 얌전하던데.”

혹시 몰라 개새가 뛰쳐나가지 못하게 꼭 안고 있던 게 다행이었다. 개새는 금방이라도 그를 물어 버릴 듯한 기세를 풍기고 있었다.

나는 미간을 팍 구기며 개새에게 단호하게 말했다.

“떽! 사람 물려고 하는 거 아니야. 한스가 착한 x밥이라 괜찮았던 거지 다른 학생에게 걸렸으면 넌 죽었을 수도 있다고. 인간들에게 마물이란 그런 존재란 말이야.”

“착한 x밥……. 그거 욕이야 칭찬이야?”

나는 그를 위해 말을 아끼기로 하며 시선을 내리깔았다.

잠시 후 벤치를 앞세운 그가 개새를 힐끔힐끔 바라보더니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근데 걔 강아지가 맞긴 해? 생김새도 그렇고 이빨도 그렇고 강아지보다는 뭔가…….”

“네 말이 맞아. 완벽히 개라고 하기도 힘들지. 굳이 종을 따지면…… 개새?”

한스의 표정이 오묘해졌다.

“오해를 부르는 단어로 부르지 말고 그냥 이름을 지어 주지그래?”

나쁘지 않은 생각이었다.

지금까지는 짧은 인연이라 생각해 이름을 지어 주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정도 많이 들었고, 지금까지 잘 살아남은 것을 보니 금방 죽을 일은 없을 것 같았다.

나 말고 찾아오는 사람도 없는 것 같고. 내가 지어 줘도 괜찮겠지.

어디 보자…….

나는 잠시 머릿속으로 여러 단어를 조합해 봤다. 그러다 스치는 이름 하나.

“아. 도비 어때?”

흥미가 동한 듯 그가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무슨 의미가 담긴 이름인데?”

의미? 그런 거 없다.

“어감이 예쁘잖아. 그리고 어쩐지 자유로울 것 같은 이름이야.”

“이름에서 그런 느낌이 나는 건 모르겠지만, 날개가 있으니 자유롭긴 하겠네.”

한스의 동의 아닌 동의까지 얻은 나는, 오늘부로 이름을 갖게 된 개새를 높이 들어 올렸다.

높게 올라간 개새가 본능적으로 날개를 파닥였다. 귀여운 광경에 웃음이 절로 나왔다.

나는 목소리를 한 번 가다듬고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의 개새에게 또박또박 말해 줬다.

“네 이름은 이제부터 도비야.”

* * *

학생들이 잘 왕래하지 않는 D동의 4층 복도.

평소라면 지나가는 사람 한 명 보기 힘들었을 장소였다.

그런데 오늘은 어쩐 일인지 각각 복도 양쪽 끝 계단을 올라온 두 학생이 복도를 걸었다.

뚜벅뚜벅.

가운데에서 두 명의 학생이 교차되어 지나칠 때였다.

툭하고 한 명의 학생이 어깨로 다른 학생의 어깨를 쳤다. 한적한 복도라 실수로 부딪치기도 어려울 텐데 말이다.

“아, 미안.”

“괜찮아.”

다행인지 불행인지 어깨를 친 학생은 빠르게 사과를 했고, 다른 학생도 기분 나쁜 기색 없이 사과를 받았다.

그러고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지나치는 두 사람.

그들이 각자 손에 들고 있던 주머니는 어느새 뒤바뀐 채였다.

얼마나 걸었을까, 주머니를 확인한 두 학생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웃음이 걸쳐졌다.

* * *

비슷한 시각. 아카데미 정원 깊숙한 곳.

이곳도 사람들이 잘 드나들지 않는 장소 중 하나였다. 아카데미가 워낙 넓다 보니 비밀스럽게 만날 만한 장소는 많았다.

검은 복면으로 얼굴을 가린 학생이 갈색 머리의 학생을 재촉했다.

“돈은?”

“여기.”

갈색 머리의 학생이 손에 든 주머니를 올려 보여 주며 되물었다.

“물건은?”

“우리 소문 몰라? 이 바닥에서 신용 없이 어떻게 사나. 당연히 가져왔지. 그럼 거래를 시작해 볼까?”

복면의 학생이 케이프 안쪽에 손을 넣어 물건이 담긴 주머니를 꺼냈다.

갈색 머리는 그가 꺼낸 주머니를 보자마자 그것을 휙 낚아챘다.

“왜 이렇게 서둘러?”

복면의 학생은 여유롭게 웃으며 갈색 머리의 손에 들린 주머니를 가져갔다.

“액수는…….”

그가 주머니를 흔들었다. 짤랑거리며 주화끼리 부딪치는 소리가 난다.

“대충 맞게 가져온 것 같네.”

복면의 학생이 만족스럽게 웃음을 걸칠 때였다. 풀숲에서 망을 보던 학생이 돌연 소리쳤다.

“선도부다, 튀어!”

“제길!”

그는 입술을 짓씹으며 소리친 아이와 함께 냅다 달리기 시작했다. 한두 번 있었던 일이 아닌 듯 빠른 상황 판단과 대처였다.

순식간에 홀로 남은 갈색 머리 학생이 어버버하며 어쩔 줄 몰라 하다가 그를 따라 뛰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 뒤로 선도부 학생 몇 명이 따라붙었다.

“저기 있다!”

“잡아!”

뒤늦게 달리던 갈색 머리 학생이 달려가며 뒤를 확인했다.

“히익!”

‘이럴 줄 알았으면 돌아보지 말걸!’

짧게 후회를 하며 아이가 이를 악물고 속도를 높였다.

다행히도 자신은 뜀박질에 자신이 있었다.

……라고 생각하자마자 뒤에서 마법 시동어를 외치는 들려왔다.

“홀드(hold)!”

잠깐의 시간 동안 움직임을 봉쇄하는 마법이었다.

“아악! 마법은 반칙이잖아요!”

결국, 갈색 머리의 학생은 선도부에게 붙잡히고 말았다.

“쿠후후…….”

제일 매서운 눈빛으로 쫓아 왔던 선도부 부장이 비릿하게 웃었다. 누가 보면 악당이라고 생각할 만한 음침한 웃음이었다.

“드디어 요즘 아카데미 내에서 활발하게 거래되고 있다는 불법 거래의 당사자를 붙잡았군.”

“판매자를 못 잡은 건 아쉽지만.”

같은 선도부 학생의 말에 부장 또한 혀를 짧게 차며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그래도 물건 거래는 이미 끝난 듯하니 압수해서 확인해 보면 거래 물품 정도는 알 수 있겠지.”

그러자 갈색 머리의 학생이 울먹이며 필사적으로 도리질했다.

“이건 제 몇 년 용돈을 탈탈 털어 겨우 산 거란 말이에요! 그게 없으면 저는, 저는……!”

“입 다물어. 우리는 우리의 할 일을 했을 뿐이다.”

선도부 부장이 갈색 머리의 옷을 뒤져 주머니를 하나 꺼냈다.

“이것이로군.”

“안 돼!”

절망 어린 외침을 무시하며 부장이 주머니를 열어 손을 넣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나온 것은…….

“이게 뭐야?”

손가락 크기의 작은 유리병에 들어 있는 투명색 액체.

리엔이 제조한 땀 억제제였다.

* * *

동복을 꺼내 입었음에도 쌀쌀함이 느껴지는 날씨.

아카데미 곳곳에 활엽수가 있는 까닭에 이맘때 즈음이면 색색들이 물든 낙엽을 구경하러 나오는 학생들이 많았다.

리엔 또한 예외는 아닌지 눈발처럼 날리는 낙엽에 잠깐 시선을 빼앗기고 말았다.

‘쯧. 저걸 언제 다 치운담.’

단풍이 예쁘다는 감성적인 생각보다는 지극히 현실에 찌든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리엔은 바람에 흩날리는 머리카락을 뒤로 넘기며 느긋하게 걸음을 옮겼다.

그녀는 땀 억제제를 한스에게 건네주고 기숙사로 돌아오는 참이었다. 그녀가 갖고 있던 마지막 물량이었다.

일전에 발견했던 다오 트란토 군락을 모두 털어 만든 것이라 더 생산하려면 산을 뒤져 가며 약초를 찾아야 했다.

“……귀찮아.”

약초를 좋아해도 한 종류만 붙잡고 같은 약을 만들어 내는 건 흥미가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들어오는 돈을 보고 나면 마음가짐이 달라질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아직 정산받지 못한 지금은 더 만들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기숙사에 도착해 들어가려고 할 때, 문득 오늘 반에서 들었던 대화가 생각났다.

‘……시간이 지나서 물량이 좀 풀리면 내가 가진 돈으로 살 수 있을까?’

‘아서라. 요즘은 돈 있어도 못 구한다더라.’

‘아아악! 약이 진짜 필요한 사람은 난데에에엑!’

‘너만큼 간절하진 않아도 다들 필요해서 사는 거니까. 나도 돈 있고 구할 수만 있으면 샀을 거야.’

‘다들 내 입장이 되어 보지 않아서 그래! 하이파이브할 때도 손등으로 치는 내 마음을 알아?’

‘그럼 제작자한테 가서 한 병만 달라고 빌어 보든지.’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아악.’

딱 봐도 자신이 만든 땀 억제제에 대한 내용이었다.

“약이 필요하다고 한 애가…… 분명 내 옆 호수에 사는 애였었지? 이름이 낸시였나.”

그 아이도 다한증이 있는 모양이었다. 쿤처럼 증상이 심하지는 않겠지만.

리엔은 혹시 몰라 한 병 빼놓은 땀 억제제를 손에서 굴렸다.

친하지도 않은데, 오지랖일까?

하지만 고민은 짧았다.

“이 정도 호의는 괜찮겠지.”

리엔은 그녀의 기숙사 문 앞에 땀 억제제를 내려놨다.

그러고는 두어 번 노크하고 문이 열리기 전, 바로 자신의 기숙사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하지만 리엔이 땀 억제제를 문 앞에 놓는 순간부터 제 기숙사 안으로 들어가기까지 전부 목격한 사람이 있었다.

“……리엔?”

낸시는 눈을 깜빡이며 리엔이 놓고 간 병을 들어 올렸다.

“헉!”

사뭇 고급스러워 보이는 유리병에는 떡하니 ‘땀 억제제’라고 쓰여 있었다.

병에 깨알같이 쓰인 설명도 자신이 그토록 구하고 싶어 했던 땀 억제제의 효능과 같았다.

낸시는 너무 놀라서 입을 억 하고 벌리며 이미 들어가 버린 리엔의 기숙사 문을 쳐다봤다.

“이거 진짜인가?”

의심부터 나오는 건 어찌 보면 당연했다.

워낙 인기가 좋다 보니 그냥 물을 담아 놓고 파는 사기 행위도 빈번했기 때문이다.

“리엔은 대체 이걸 어떻게 구했지? 아니, 그건 둘째치고 나한테 이 귀한 걸 왜……?”

낸시가 혼란스러운 눈으로 약병과 리엔의 기숙사 문을 번갈아 보고 있을 때였다.

리엔이 한 노크 소리를 들은 낸시의 룸메이트가 문을 열고 나왔다.

“뭐야, 낸시 너였어? 열쇠를 잃어버리기라도 한 거야?”

“아니, 그게 아니라…….”

의문스럽게 한쪽 눈썹을 올리며 묻던 낸시의 룸메이트가 그녀의 손에 들린 약병을 보고는 눈을 키웠다.

“와! 그거 설마 땀 억제제 아니야? 너 그거 어떻게 구했어?!”

그제야 낸시는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둘러봤다. 자신과 룸메이트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그녀는 입술에 검지를 갖다 대고 조용히 하라며 쉿 소리를 냈다. 그러고는 반쯤 밖으로 나온 룸메이트를 밀어 넣고 자신도 안으로 홀랑 들어갔다.

그런 낸시가 이해되지 않는 듯 룸메이트가 너스레를 떨었다.

“뭔데 그렇게 유난이야? 아! 비밀루트로 얻어서 그렇게 조심스러운 거야? 괜찮아. 다들 앞에서만 쉬쉬할 뿐 그 루트로 구하는 거 알고 있는데 뭐.”

‘그게 아닌데…….’

낸시가 유리병을 손에 꼭 쥐며 자신이 본 것을 털어놓는 게 맞는지 고민했다.

제 룸메이트는 자신이 보고 들은 정보를 남에게 말해 주는 것을 좋아했다.

……나쁜 말로 입이 싸다는 뜻이다. 때문에, 그녀의 앞에서는 말을 조심할 필요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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