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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 이러는 거 아니야 (50)화 (50/161)

50화

“아, 아악……!”

한스가 듣는 것만으로도 괴롭다는 듯 제 머리를 쥐어뜯었다.

“아. 특별히 물리는 부위는 입술 또는 발바닥, 손가락과 손가락 사이길 기원할게.”

저 세 곳은 물렸을 때 가장 뭣 같은 부위였다. 내가 던진 말로 인해 한참을 괴로워하던 한스가 급히 사과했다.

“미안해! 다시 생각해 보니 이건 세상에 다시없을 위대한 발명이었던 것 같아. 내가 어리석었어!”

나는 그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이라도 네 생각이 바뀌었다니 다행이다.”

한스는 조금 지쳐 보이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난 네가 모고동이 아니라는 게 너무 신기해, 리엔.”

“거기 인기 동아리잖아. 엄격한 면접을 거친다던데.”

“너라면 바로 합격할 수 있을걸? 내년에 도전해 보는 건 어때?”

“별로. 재미있어 보이긴 해도 우리 동아리가 훨씬 꿀인걸.”

그건 맞는 말이라며 낄낄거리던 한스가 다른 주제를 꺼냈다.

“뜬금없지만 나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뭔데?”

한스가 불쑥 내 앞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나 어떻게 생겼어?”

“생각해 본 적 없는데.”

“그럼 이번 기회에 한번 생각해 보고 말해 주라.”

그 말에 내 눈동자가 자동으로 움직여 한스의 얼굴을 훑었다.

객관적으로 본다면 훈훈하다고 할 수 있는 얼굴이었다.

하지만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한 인물 하는지라 나는 눈이 하염없이 높아진 상태였다.

주관적인 감상평은 그냥 그렇다는 의미이다.

나는 먼 곳을 바라보며 조지 교수님 연구실로 향하는 발걸음을 빨리했다.

그러나 금세 나를 따라잡은 한스가 열렬한 눈빛으로 대답을 종용했다.

“그래서, 대답은?”

나는 걸음을 조금 늦추며 머리를 빠르게 굴렸다.

“잘생기지도 못생기지도 않았으니 잘못 생겼다고 하자, 어때?”

“……너 그거 욕이지!”

“에이, 왜 그렇게 나쁜 쪽으로 생각해. 게다가 갑자기 그런 건 왜 묻는데?”

이유를 묻자 한스의 얼굴이 눈에 띄게 침울해졌다.

“제인에게 차인 이후로 여러 번 말을 걸어 봤는데 투명 인간 취급하더라고……. 내가 그 정도로 매력 없나 싶어서.”

그 말을 듣는 순간 예전에 제인이 나와 약속했던 것이 떠올랐다.

내 조잡한 울음 연기를 본 제인이 한스에게 관심은 전혀 없고 앞으로도 없을 거라고 땅땅 못을 박았었지.

투명 인간 취급하는 거, 혹시 나 때문인가……?

갑자기 등에서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히는 느낌이었다.

“거, 걱정하지 마. 너는 충분히 매력 있는 사람이야.”

“외모가 아니면, 내가 연하라 싫은 걸까?”

“그건 아닐걸.”

옛날에는 연상이 좋았는데 지금은 나이 같은 건 신경 쓰지 않는다고 했다.

잘생기면 다 오빠라고 했던가…….

하지만 이것을 한스에게 차마 곧이곧대로 말해 줄 수는 없었다.

내가 저지른 짓이 있으니 어떻게든 도움을 주고 싶긴 한데.

“……어, 아마 제인은 귀여운 걸 좋아할 거야.”

나를 보며 매번 귀엽다느니 깜찍하다느니 난리를 쳤으니까.

낑낑거리는 도비를 보며 귀여워서 어쩔 줄 몰라 하기도 했고.

그러자 내 말이 끝남과 동시에 한스가 두 손으로 턱밑에 꽃받침을 만들었다.

“아잉.”

“턱도 없으니까 귀여운 척하지 마라 진짜.”

진심으로 질색하자 한스가 볼을 부풀리고는 허리에 손을 단단히 얹었다.

“한스느은 귀여운 척하는 게 아니라 귀여운 곤데!”

눈과 귀를 동시에 테러당한 나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 악물어라.”

* * *

쿤은 요즘 들어 마음이 심란했다.

자신이 매일 리엔의 동아리에 찾아가는 게 과연 옳은 일인가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사실 제 방식이 잘못됐다는 건 인지하고 있었다.

은혜를 갚는다는 핑계를 대고는 있지만, 이게 얼마나 앞뒤가 맞지 않는 행동인지…….

하지만 알면서도 방과 후가 되면 자신도 모르게 그곳으로 향하게 됐다.

동아리 부원도 아닌 자신을 반기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카르시온은 매 순간 시비를 걸기 일쑤였으며 리엔은 저를 귀찮아했다. 피오르도 자신이 오는 걸 꺼리는 기색이었다.

동아리실이 소란스러워져서 싫다거나 귀찮다는 게 아닌, 다른 무언가가 있는 느낌.

이건 제 직감일 뿐이었지만. 어쨌든 저를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이가 없다는 건 확실했다.

그것에 대해 서운함은 없었다.

그것까지 바라는 건 자신이 생각해도 염치없었으니까.

쿤은 어느새 도착한 동아리실 앞에서 문손잡이에 손을 올렸다가 내렸다가를 반복했다.

그러기를 수차례.

결국, 문을 열고 들어간 쿤이 동아리실 안에 홀로 있는 리엔을 발견하고는 설핏 웃었다.

그녀가 첫 번째로 동아리실에 도착해 있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었다.

“어쩐 일입니까?”

오늘의 담요를 고르고 있던 리엔이 쿤을 돌아봤다.

“그건 내가 할 말 아니야? 누가 보면 우리 동아리 부원인 줄 알겠어.”

“어쩐 일로 이렇게 일찍 왔냐는 물음이었습니다.”

“카온이 비정상적으로 일찍 와서 내가 늦어 보이는 거지, 지각은 잘 안 했거든? 게다가 이방인인 네가 할 말은 아니지.”

이방인.

그랬다. 자신은 이곳에서 이방인일 뿐이었다.

리엔은 지극히 맞는 말을 했을 뿐인데, 왠지 모르게 씁쓸한 감정이 파도처럼 밀려 들어왔다.

하지만 곧 감정을 갈무리하고는 입매를 끌어 올렸다.

“다음 학기에 정식으로 입부 하면 더 이상 이방인이 아닌 겁니까?”

“그렇기야 하겠지만…….”

리엔은 ‘들어 올 수 있을 것 같냐’라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

하긴. 카르시온이 자신을 동아리에 입부시켜 줄 리 없었다. 그저 제 실낱같은 바람이었을 뿐.

오늘도 여지없이 분홍색 극세사 담요를 고른 리엔이 자연스럽게 소파로 향했다.

그녀는 나름 골고루 담요들을 덮는다고 생각하는 것 같지만, 잘 보면 유독 저 담요를 자주 이용했다.

왜 하필 분홍색일까.

저것보다는 옆에 있던 짙은 남색의 담요가 훨씬…….

쿤은 순간 놀라 헛숨을 들이켰다.

자신이 왜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목적지를 잃은 듯 혼란스러운 감정이었다.

“쿤, 너 어디 아파?”

쿤의 이상 행동에 의문을 느낀 리엔이 그에게 다가갔다.

“아니요. 저는 괜찮습니다.”

퍼뜩 놀라며 고개를 양옆으로 흔드는 모습은 의심만 부추겼다.

“괜찮지 않은 것 같은데.”

결국, 손만 뻗으면 닿을 만큼 가까워진 리엔이 그를 빤히 바라봤다. 그 검은색 눈동자를 마주한 쿤이 작게 몸을 떨었다.

이대로 계속 눈을 마주치고 있으면 들켜서는 안 될 무언가를 꿰뚫릴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 무언가가 무엇인지는 쿤 자신도 몰랐다.

리엔이 천천히 손을 들어 올렸다. 느릿하게 올라오는 손을 보며 쿤은 저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짧지만 쿤에게는 억겁과 같은 시간이 흘렀다.

약초를 다루기 때문일까, 그녀에게서는 희미한 흙냄새가 났다.

쿤이 가장 좋아하는 냄새였다.

그의 이마에 손을 대본 그녀가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였다.

“열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리엔의 손이 닿은 이마가 불에 댄 듯 뜨거웠다.

감았던 눈꺼풀을 들어 올리자 가까워진 리엔의 얼굴이 시야에 꽉 들어찼다.

자신의 심장이 이상하리만치 맥동하는 게 선명히 느껴졌다.

……부정맥인가?

아니다. 이건 리엔을 생각하거나 볼 때 가끔 나타나던 증상이었다.

그럼 역시 은인의 자상함에 감격했기 때문인가.

쿤은 혼란스러움을 애써 감추며 리엔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어느새 쿤과 거리를 벌린 리엔이 눈썹을 씰룩였다.

“왜 그렇게 바라봐?”

점점 더 뻐근해지는 심장 때문에 한마디 내뱉기조차 힘들었다. 하지만 이것 또한 리엔이 의심할까 싶어 꾸역꾸역 말을 내뱉었다.

“아무, 아무것도…… 아닙니다.”

쿤이 숨이 거칠어졌다는 걸 눈치챈 리엔이 미간을 좁혔다.

“쿤. 다시 한번 상기시켜 주자면 나는 의원이 아니야. 덜컥 믿고 여기서 버티지 말고 아프면 양호실에 찾아가.”

퉁명스러워 보이는 어조였지만, 그 속에는 자신을 향한 걱정이 담겨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

“걱정, 해 주시는 겁니까?”

“……송장 치우기 싫거든. 게다가 억울하게 황족 시해범으로 몰리는 것도 딱 질색이야.”

소파에 누운 그녀는 평소와 달리 담요를 머리끝까지 끌어 올렸다. 아무래도 멋쩍은 걸 숨기고 싶어 하는 듯했다.

담요 안에서 작지만 단호한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오늘은 여기 있지 말고 양호실로 가. 다른 애들 오면 강제로 쫓아낼 테니까, 버틸 생각도 하지 말고.”

이상하게도 그 말들이, 단어 하나하나가 꿀에 절인 듯 달콤하게 들려왔다.

그래. 혼란스럽긴 해도 분명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네. 리엔 말대로 하겠습니다.”

때문에, 쿤은 이 감정이 무엇인지 알아보는 것을 보류하기로 했다.

* * *

“하아아.”

나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며 머리를 헤집었다.

“왜? 무슨 일 있어, 리엔?”

제인의 걱정이 담긴 물음에 읽고 있던 편지를 내려놓았다.

“이모가 나를 보고 싶어 하시는데, 갈까 말까 고민돼서.”

“아하. 이모에게서 온 편지구나.”

“응.”

제인은 아직도 의문이 해소되지 않았다는 듯 고개를 기울였다.

“여름 방학 때도 안 가지 않았어? 이번에 가도 거의 일 년만 일 텐데, 얼굴 한번 보여 드려. 걱정하시겠다.”

“아니, 뭐…….”

반박할 말이 없었다.

실은 나도 이모를 보고 싶었다. 그리고 아카데미를 재학하는 4년 내내 백작가를 들리지 않을 수도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백작가에 가면 그토록 피하고 싶었던 이를 마주할까 겁이 났다.

“오고 갈 때 시간이 많이 소모되기도 하고, 편지로 꼬박 안부를 주고받고 있는데 굳이……?”

나는 은근 제인이 말려 주기를 바라며 변명했다. 하지만 내 깊은 사정까지는 모르는 그녀가 구구절절 옳은 말을 늘어놓았다.

“리엔. 설마 귀찮아서 그런 건 아니길 바라. 시간이 걸리는 일이라도 가족들 얼굴은 보고 살아야지.”

“……귀찮은 건 아니야.”

“겨울 방학은 더 기니까, 약초 연구할 시간도 충분할 거 아니야.”

“그렇…… 지.”

처진 내 눈꼬리를 본 듯 제인이 눈매를 좁혔다.

“이모를 만나기 싫은 거야? 은근히 구박 주신다거나…….”

“전에도 말했지만, 이모는 그런 분이 아니라니까. 게다가 보고 싶다고는 하셨지만, 강요하시진 않으셨어.”

“……그래?”

제인은 그래도 석연찮은 눈빛을 지워내지 못했다.

나는 그 부담스러운 눈빛을 견뎌 내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외투를 입었다.

“리엔?”

“생각해 보니까 조지 교수님이 찾아오라고 하셨는데, 깜빡했어. 아직 연구실에 계시겠지?”

티 나게 주제를 돌리자 제인이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으며 받아 줬다.

“연구실에 거의 사는 분이니까 있을 거야. 같이 가줄까?”

“아니야. 이야기가 길어질 수도 있으니까 나 혼자 갈게.”

나는 일어나서 옷을 껴입으려는 제인을 말리고 기숙사를 나왔다.

며칠 후면 학기가 마치고 겨울 방학이 시작되는 만큼, 제법 쌀쌀했다. 입김이 나올 정도였다.

그래도 찬 바람을 맞으니 어느 정도 생각이 정리되는 듯했다.

아르메리아 백작가에 간다면 마주칠 수밖에 없겠지.

에르한. 그리고…….

빨라지는 심장 박동에, 나는 걸음을 멈추고 잠시 심호흡을 했다.

정신이 번쩍 드는 느낌이었다.

그래. 내가 아카데미로 도망친 이유가 그것 때문인데 제 발로 다시 돌아갈 수는 없는 일이지.

마음 약하게 먹으면 안 돼, 리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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