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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 이러는 거 아니야 (61)화 (61/161)

61화

나는 그를 따라 입가에 웃음을 피워내었다.

“너무 감사한 말씀이지만, 저는 이대로도 좋아서요. 저기 금발 머리 남자애 보이세요?”

창가 밖으로 루카를 가리키자 아저씨의 시선이 그쪽으로 향했다.

“사촌 동생이긴 하지만, 친동생이나 다름없는 아이예요. 제게 이모나 다른 가족들이 있어서, 입양을 바랄 만큼 외롭지는 않네요.”

솔직하게 내 지금 생각을 말하자 아저씨는 느긋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군. 네 의견은 잘 알겠다. 언제든지 마음이 바뀌면 말해 다오.”

“그리고 이런 큰일을 결정하기 전에는 아내분 의견도 꼭 들어 보시고요.”

“……명심하지.”

아저씨는 그 말을 끝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금방이라도 떠날 것 같은 모습에 나는 급히 그의 소매를 붙잡았다.

“아직 음식도 나오지 않았는데 가시려고요? 아직 아내분 이야기도 하나도 나누지 않았잖아요.”

“오늘은 입양 건에 대해서 말하려고 온 거다. 네 의견은 들었으니 더 시간을 쏟을 필요는 없겠지.”

“기왕 만난 거 저랑 조금 더 대화하고 가시면 안 될까요?”

아저씨와 금방 헤어지는 게 아쉬웠다. 아내분과의 이야기도 듣고 싶었는데.

아저씨는 그런 내 머리를 무심히 쓰다듬으며 동문서답했다.

“계산은 걱정하지 말고 네 가족이라는 아이랑 같이 먹고 나오거라.”

“네? 아니, 저기……!”

“그럼 다음에 또 편지하마.”

팟-!

아저씨는 마법으로 순식간에 모습을 감추었다. 참 신출귀몰한 분이었다.

* * *

“누나는 그 오지랖 좀 줄일 필요가 있어. 알아들어?”

“알았어, 알았어.”

나는 수십 분째 이어지는 루카의 잔소리를 들으며 반쯤 정신을 놓았다.

나도 그러고 싶은데 안 되는 걸 어떡해. 그냥 무시해 버리면 밤에 생각나서 잠 못 잔다고.

“그 아저씨라는 사람이 나쁜 사람이었으면 어떡할 뻔했어! 누나를 어떻게 해 보려는 폐기물이면? 인신매매 범이면?”

“아저씨는 그런 분이 아니야.”

“뭐 하는 사람인지도 모른다며!”

“귀족이라고 하셨으니까 대충 나랏일이나 영지 관련 일 하시겠지.”

“누나!”

나는 혹시 귀에서 피가 나는 건 아닌가 만져 봤다. 정상이었다.

“지금 잔소리 듣기 싫다고 귀 막은 거야?”

“고막이 터진 건 아닌가 해서 만져 봤어.”

……잔소리가 듣기 싫은 것도 어느 정도 맞고.

“그러게 왜 걱정하는 사람은 생각 안 하고 말해?”

“너도 밥은 잘 먹어 놓고 인제 와서 왜 그래.”

“그 아저씨라는 사람이 사 준 거였으면 안 먹었지!”

“미안해.”

나는 루카의 볼을 쭈욱 늘렸다.

지금이야 잔소리를 수십 분째 들어서 대답하는 태도가 불성실해진 거지만, 나도 충분히 잘못을 인지하고는 있었다.

루카가 걱정할 수 있는 상황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고.

나 또한 루카가 웬 아줌마에게 연애 상담을 해 주고 있다고 하면 눈을 까뒤집었을 테니까.

“알겠어. 앞으로는 내 태도를 360도 바꿔 볼게.”

“진짜지?”

루카가 팔짱을 단단히 끼며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으휴. 기숙사에 바로 가지 않고 상가에 들른 게 다행이지. 누나를 못 만났으면 어쩔 뻔했어?”

“그래그래. 루카가 있어서 누나가 참 든든하다.”

나는 하품을 하며 그의 말에 대충이나마 대꾸해 주었다.

그나저나 루카는 아직도 눈치채지 못한 걸까.

360도 바뀌면 제자리라는 걸.

나는 아련한 표정으로 루카를 바라봤다.

아직 멀었구나, 꼬맹아.

나를 한참이나 못 미덥다는 얼굴로 바라보던 루카는 돌연 유치한 질문을 했다.

“누나는 슈 몇 개에 나를 팔라고 하면 바로 넘겨줄 거지?”

“무슨 소리야 루카. 내가 너를 얼마나 좋아하는데. 슈와 너를 선택하라고 하면 나는 고민 없이 슈.”

“적어도 고민하는 척은 해 줘야 하는 거 아니야?”

루카가 눈을 세모꼴로 뜨며 나를 노려봤다.

저런. 이번에는 안 속았네.

나는 쿡쿡 웃으며 그의 등을 토닥였다.

“농담인 거 알지?”

“몰라!”

그렇게 루카와 투덕이며 걷다 보니 어느새 아카데미 건물 바로 앞이었다.

루카는 발을 멈추고는 안녕을 고했다. 애초에 여기까지 같이 온 것도 그가 데려다준다고 고집을 피운 탓이었다.

“그럼 나는 기숙사로 가 볼게, 누나. 동아리실에서 뭘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너무 늦게 들어가지는 말고.”

“알았어.”

“또 대충 흘겨 대답하는 거 아니지?”

“세상에. 어떻게 알았대?”

나는 점점 올라가는 그의 눈매를 보며 씩 웃었다. 그리고 타이밍을 보다가 잽싸게 루카의 볼에 입술을 댔다가 떨어졌다.

“잘 가. 다음에 복도에서 만나면 인사하고.”

“이런 인사 필요 없거든?”

루카는 내가 뽀뽀를 한 부위를 벅벅 문질렀다.

그때였다.

순식간에 주위의 마나 농도가 짙어지며 어디선가 큰 파동이 일었다.

구우우웅.

“이게 무슨 일이지?”

짙어진 마나 때문에 살갗이 따끔거렸다. 이 주위에 마나 폭발이라도 일어난 건가?

아니다. 아직 폭발음은 들리지 않았으니 이건 분명 전조 현상이었다.

루카도 짙어진 마나를 느꼈는지 불안한 얼굴로 입을 뗐다.

“누나. 뭔가 예감이 안 좋아. 빨리 건물에서 멀리 떨어지자.”

하지만 루카의 재촉에도 내 발은 땅에 못이라도 박은 것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동아리실에 카르시온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터였다.

아카데미 건물 내부에서 문제가 생긴 거라면 그를 데리고 나가야만 했다.

“루카. 너 먼저 뛰어가.”

루카의 등을 떠밀었지만, 그는 자리에 버티고 섰다.

“누나는!”

“나는 건물 안에 데리고 나와야 할 사람이 있어.”

“누나 미쳤어? 지금 들어가면 위험해. 잘 생각해 봐. 누나가 말하는 그 사람도 파동을 느꼈다면 지금쯤 뛰어나오고 있을 거야.”

“자고 있거나 다른 거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못 느꼈으면 어떡해? 게다가 걔는 텔레포트를 밥 먹듯이 쓰는 애라, 이 파동을 느꼈다면 이미 건물 밖으로 나와 있어야 한다고!”

그렇게 말하며 건물 안쪽으로 뛰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 루카가 나를 덥석 끌어안고는 가지 못하게 막아 버렸다.

“위험하다니까!”

버둥거리며 루카에게 놓으라 소리치려 할 때였다.

쾅. 고막을 찢을 듯한 큰 폭발음이 우리를 덮쳤다.

다행히도 폭발의 여파가 우리에게까지 닿지는 않았다.

하지만 나는 목격하고 말았다.

폭발이 정확히 동아리실이 모여 있는 쪽에서 일어난 것을.

그 사실을 깨닫자마자 아연실색해서 외쳤다.

“카르시온!”

폭발 때문에 일어난 연기가 시야를 가렸다. 나는 루카를 밀쳐내고 연기 속으로 뛰어들려고 했다.

루카는 이를 악물고 그런 나를 붙잡았다.

“누나 안 돼. 폭발이 끝난 게 아닐 수도 있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가 잔해가 떨어질 수도 있다고!”

“이거 놔줘.”

“누나!”

나는 루카의 어깨를 잡으며 흐느끼듯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루카, 제발…….”

내 얼굴을 마주한 루카의 얼굴에 충격이 번졌다. 그에 따라 나를 붙잡은 손에 힘이 조금씩 빠져 갔다.

“고마워.”

쓰게 웃으며 건물 안으로 달려 들어가려고 할 때였다.

불현듯 내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조가 없는 삭막한 목소리였다.

“나 찾았어, 리엔?”

감정이 스미지 않은 듯한 목소리가 조금 낯설었다. 그러나 분명 카르시온의 목소리였다.

나는 이상하다는 생각도 하지 못하고 반색하며 뒤를 돌아봤다.

“카온! 괜찮아? 다친 곳은 없어?”

나는 서둘러 그에게 다가갔다. 그러다 뭔가 위화감을 느끼고 걸음을 뚝 멈췄다.

그의 몸 주위에 시각화된 마나가 연기처럼 일렁이고 있었다.

마나가 시각화되려면 마나가 굉장히 농축되어야만 한다.

내 눈에 마나가 보인다는 것은 즉, 지금 그의 주의로 짙게 농축된 마나가 떠다닌다는 뜻이다.

마법의 동력이 마나인 만큼, 통제되지 않는 마나는 흉기와도 같았다.

무엇으로 변모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카르시온 정도 되는 마법사가 마나를 갈무리하지 못할 리 없는데.

설마.

아까의 폭발은 카르시온으로부터 일어난 건가?

……갑자기 왜? 내가 없었던 사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혼란스러운 마음을 떠안고 카르시온의 표정을 살폈다.

그는 고요했다.

너무나도 고요해서 뭔가가 어긋나는 순간 걷잡을 수 없는 감정이 터져 나올 것 같았다.

카르시온의 시선이 짧게 루카에게로 닿았다가 다시 나를 향했다.

“카온. 너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괜찮아.”

그가 전혀 괜찮지 않은 얼굴로 읊조렸다.

“나는 괜찮으니까 설명해 줘. 왜 내게 거짓말했던 거야?”

“……뭐?”

혼란스러웠다.

내가 카르시온에게 무슨 거짓말을 했다는 거지?

“그래. 감정이라는 건 어떻게 조절할 수 없는 부분이니까 이해해. 네가 누굴 좋아하든 내가 뭐라 할 수 없다는 거 알고 있어.”

“너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카온.”

정신을 차리고 연유를 물었으나 그는 내 말이 들리지 않는지, 자신의 말을 이어 갔다.

“하지만 내게 거짓말을 하면서까지 저 남자애를 만나러 갔었어야 했던 거야? ……나는 우리가 꽤 가까워졌다고 생각했는데.”

카르시온은 내가 거짓말을 하고 루카를 만나러 갔다고 생각하는 건가?

“카온. 오해야. 나는 네게 거짓말한 적 없어. 루카는 중간에 만난 것뿐이야.”

그가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야, 리엔.”

“대체 뭐가 아니라는 거야? 카온. 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진정하고 마나부터 갈무리…….”

“나, 봤어.”

카르시온은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얼굴이었다. 그는 뭘 봤길래 내가 거짓말을 했다고 생각하는 걸까.

“뭘 봤는데?”

뭘 봤냐는 물음에 그가 입에 담기도 어렵다는 듯 힘겹게 말했다.

“……네가, 네가 저 자식 뺨에 입 맞추는 거.”

에?

“내가 너희 둘의 데이트를 방해할 것 같았어? 그래서 거짓말을 한 거야?”

나는 황당함에 카르시온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내가 루카의 뺨에 입을 맞춘 직후 거대한 마나의 파동이 일었었다.

그럼 이 모든 폭발이 정말 카르시온이 일으킨 거라고?

나는 얼빠진 표정으로 루카를 바라봤다.

그도 어이가 없었는지 입을 벌린 채 나와 카르시온을 번갈아 봤다.

“누나, 이 형 지금…….”

크나큰 오해를 하는 것 같은데?

너도 그렇게 생각하니? 나도 그렇게 생각한단다, 동생아.

우리가 눈빛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카르시온이 흐려진 눈망울로 내게 물었다.

“누나? 연하가 네 취향이었어?”

“하?”

가관이었다.

그가 어떤 것 때문에 오해하게 됐는지 전말을 알게 되니 헛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언제부터 사귄 거야?”

고민할 가치조차 없는 물음이었다. 나는 더는 참지 못하고 버럭 외쳤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얘는 내 사촌 동생이라고!”

…….

…….

오랜 시간 숨 막히는 정적이 내려앉았다.

얼마 후 카르시온이 스르르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는 혼이 다 빠져나간 얼굴로 흐느끼듯 말했다.

“나는 네가 연인이 생긴 줄만 알고…….”

“설령 내가 진짜 연인이 생겼다고 하더라도 볼 뽀뽀 정도에 건물을 부수는 사람이 어디 있어?”

말을 내뱉고 나니 아차 싶은 마음이 들며 뒷전으로 밀어놨던 문제가 떠올랐다.

나는 파르르 떨리는 눈으로 반쯤 무너져 버린 건물을 바라봤다.

저건 다 어떻게 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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