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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 이러는 거 아니야 (76)화 (76/161)

76화

나는 무사히 피오르와 교대를 끝내고 귀신의 집 문 앞에 서서 손님들을 받았다.

살짝 늦는 바람에 피오르의 눈총을 받긴 했지만, 사 온 샌드위치로 어떻게 무마할 수 있었다.

손님을 받는 건 생각보다 지루한 일이었다.

게다가 손님들의 대부분이 커플이라, 그들의 염장질을 서 있는 내내 애써 못 본 척해야만 했다.

다른 커플들의 작태를 실시간으로 감상하는 동안 끓어오르는 속을 진정시켰다.

나도 이것만 끝내고 카르시온과 데이트를 하기로 했으니 아니꼬운 감정을 느낄 필요 없었다.

누군 애인 못 사귀어서 이러는 줄 아나.

나는 못 사귀는 게 아니라 안 사귀는 거라고.

……이렇게 생각하니까 뭔가 비굴해진 기분이었다.

전형적인 솔로의 변명이잖아.

아니다. 생각해 보면 커플들이 우리 동아리에 많이 찾아온다는 건 그만큼 좋은 일이었다.

카르시온은 커플이 함께 들어오면 알아서 환상 마법의 강도를 높게 설정하는 듯했다.

깨질 확률 7할 이상을 자랑하는 귀신의 집.

이 얼마나 아름다운 공간이란 말인가.

그렇게 위안 삼으며 정오가 되었을 때, 나는 칼같이 줄을 자르며 폐업을 선언했다.

“커플 브레이…… 아니, 귀신의 집 여기까지 운영하겠습니다.”

그러고는 불만이나 항의가 나오기도 전에 동아리실로 쏙 들어가 문을 잠가 버렸다.

마법 전등을 켜자 공중에서 느른히 누워 있는 카르시온이 보였다.

나를 발견한 그가 얼굴에 웃음을 띠며 바닥으로 내려온다.

“카온, 수고했어.”

“말로만?”

나는 생각지도 못한 말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다가 픽 웃으며 카르시온의 머리 쪽으로 손바닥을 뻗었다.

그가 눈을 반달로 사르르 접으며 내가 쓰다듬기 쉽게 고개를 내린다.

나는 분홍색 곱슬머리를 쓰다듬으며 약속했다.

“보상은 데이트하면서 생각해 보자. 시간은 많으니까.”

그러자 카르시온이 눈썹을 그러모으며 행복에 겨운 눈빛을 했다.

“나는 머리카락 쓰다듬어 주는 게 보상이라고 생각했는데…….”

“오늘 우리가 한 일이 얼마나 대단한 건데. 고작 그런 거로 되겠어?”

무려 커플 수십 쌍을 솔로로 만들었다고.

장난스럽게 한 말이었는데, 카르시온은 진지한 표정을 하며 그런 말은 하지 말라는 듯 말했다.

“고작이라니, 나는 리엔 네가 해 주는 모든 게 작다고 생각하지 않아. 네 손짓 하나하나가 특별하단 말이야.”

“내가 그렇게 좋아?”

직접적으로 묻는 말에, 그가 금세 발긋하게 변한 얼굴로 고개를 주억였다.

수줍어하는 얼굴을 보고 있노라니 푸스스 웃음이 나왔다.

카르시온이 내 옆에서 웃고 있으면 다른 생각은 나지 않았다. 그의 행복이 전염되는 것 같았다.

괴로움 없이 영원히 행복할 것만 같은 기분.

나도, 네 행동 하나하나가 특별하고 소중해.

네가 좋아. 카르시온.

목 끝까지 차오른 말을 겨우 참아 냈다.

오늘은 날이 아니었다.

하지만 곧. 학술제가 끝나고 가까운 시일 내에…….

내 마음을 고백할 것이다.

* * *

우리는 동아리실을 나와 아카데미를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카르시온에게 부탁해 머리카락 색부터 시작해 눈동자, 얼굴 생김새까지 싹 바꿨다.

이 정도면 아무도 나를 알아보지 못할 것이다.

카르시온도 나에게 마법을 걸어 주며 자신에게도 마법을 걸어 외형을 바꿨다.

우리는 서로의 바뀐 외형을 보고 어울린다며 칭찬해 주고는 키득키득 웃었다.

“이름도 바꿔 불러야겠지. 나는 시온이라고 부를 테니 너는…….”

“나는 앤이라고 부를게.”

“좋아.”

아무도 방해할 수 없는 데이트의 시작이었다.

카르시온과 점심을 때우고 주변을 조금 어슬렁거리다 보니 눈에 띄는 부스가 있었다.

다트 5개를 과녁에 던져 합산 점수에 따라 걸린 물건으로 교환해 주는 형식이었다.

내 발걸음을 사로잡은 것은 가장 높은 상품인 마력석.

마력석은 등급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이었다.

그런데 이곳에서 1등 상품이라며 전시해놓은 마력석은 육안으로도 꽤 값어치가 나가 보였다.

다트처럼 무언가 던지는 거라면 자신 있었다.

독침의 명중률을 높이려고 어렸을 때 얼마나 던지기 연습했었는지 모른다.

마력석을 따서 카르시온에게 선물해 줘야지.

“나, 이거 해 볼래. 시온.”

나는 자신만만하게 나서며 다트 앞을 지키고 있던 학생에게 돈을 내밀었다.

의욕 넘치는 모습 때문일까, 카르시온이 고개를 기울이며 물었다.

“앤. 가지고 싶은 거라도 있어?”

“그냥, 재미있어 보여서.”

“아하.”

그제야 내가 갖고 싶은 게 있다고 하면 멱살을 잡고 협박해서라도 가져올 기세가 수그러들었다.

사실 카르시온에게 줄 마력석을 위해서였지만, 원래 선물은 갑작스럽게 줘야 참된 반응을 볼 수 있지 않나.

나는 진행자가 가져온 다트를 여유롭게 받아 들었다.

“이 선 바깥에서 던지시면 됩니다.”

안내해 준 선 바깥에 서서 과녁을 바라봤다.

생각보다 더 가까운데?

아무래도 이벤트 성인 만큼, 원래 규정으로 정해진 거리가 아니라 임의로 가깝게 조정한 듯했다.

이 정도면 쉽게 마력석을 따내서 선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앤, 파이팅!”

나는 카르시온의 응원을 배경음 삼아 망설임 없이 다트를 던졌다.

퍽.

“오! 운이 좋네요!”

점수를 계산하려 서 있던 학생이 과녁에 박힌 다트를 보며 손뼉을 쳤다.

내가 맞춘 곳은 트리플 영역 중 20점이 쓰여 있는 곳.

다트 과녁판은 정 중앙의 점수가 50점으로, 가장 높은 점수가 아니었다.

과녁에는 더블 영역과 트리플 영역이라는 게 존재한다. 그곳을 맞추면 가장자리에 쓰인 점수의 두 배, 세배를 얻을 수 있다.

다트 과녁에 쓰인 최고점은 20점.

그것의 세 배이니 한 번에 60점을 얻은 것이다.

나는 운이라고 생각하는 학생에게 가볍게 시선을 주다가 남은 다트를 쥐었다.

나는 우연이 아님을 보여 주려 이번에는 두 개를 연속으로 트리플 20에 다트를 박아 넣었다.

점수를 기록하던 학생이 놀라 벌어진 입으로 나를 바라본다.

의기양양해진 나는 올라가려는 어깨를 애써 내려 앉히고는 무심한 척 물었다.

“몇 점이죠?”

“배…… 백팔십 점입니다.”

마력석에 걸린 점수는 250점.

총 다섯 번을 던질 수 있었으니, 한 번이라도 실수한다면 얻을 수 없었다.

다시 다트를 쥐자 기록하던 학생이 후다닥 다른 동아리 부원을 불러 모아 무언가 속삭였다.

비상 회의라도 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마력석은 손님을 끌어모으기 위한 상품이었나?

아직 두 번이나 남았는데 저렇게 유난 떠는 걸 보면 말이다.

뭐, 내 알 바 아니니까.

소중한 거였다면 애초에 상품으로 내놓지 말았어야지.

나는 눈썹을 으쓱이고는 다시 집중해서 다트를 던졌다.

……어?

“아웃!”

아까 내 점수를 기록하던 학생이 신이 나서 외쳤다.

젠장. 잘 던졌다고 생각했는데.

심지어 과녁도 제대로 맞히지 못한 아웃이었다.

나는 한쪽 눈을 찡그리며 한층 여유로워진 이곳의 동아리원들을 쳐다봤다.

……그나저나 너무 대놓고 좋아하는 거 아닌가?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마지막 다트를 잡을 때였다.

“앤.”

카르시온의 부름에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봤다. 그는 아까와 같은 미소를 그린 채였다.

그런데 왜 기분이 안 좋아 보이는 것 같지?

의문을 느끼고 있을 때, 그가 내게 다가와 작게 속삭였다.

“앤, 사기범의 처벌 강도는 어느 정도가 적당하다고 생각해?”

뜬구름 잡은 이야기에, 순간 한스를 떠올리고는 당황해서 비호하듯 말했다.

“내가 당하는 것만 아니면 괜찮다고 생각하는데.”

카르시온의 웃음이 짙어진다.

“그럼 네가 당했다면?”

“뭐?”

나는 자연스레 손에 쥔 다트를 내려다봤다.

……뭔가 수를 쓴 건가?

그러고 보니 이 동아리는 마법 관련 동아리였다. 동아리 부원들은 모두 마법사라는 뜻.

몰래 마법을 걸었다면 손쉽게 다트를 조정할 수 있었겠지.

카르시온은 그 마나를 느낀 거고.

나 또한 연금술을 배웠기에 마나를 다룰 수 있었다. 하지만 마법사처럼 정밀하게 느낄 수는 없었다.

“시온, 내가 생각하는 그 상황인 거야?”

“아마도.”

“하하. 재미있네.”

화가 치밀었지만, 나는 기회를 주기 위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동아리 부원들에게 다가갔다.

“방금 제가 던진 다트에 무슨 문제가 있었던 것 같은데요.”

그러자 그중 한 명이 뻔뻔한 얼굴로 나섰다.

“모두 하자 없는 다트였습니다.”

“네. 말씀하신 것처럼 다트에는 하자가 없었는데, 너희들 양심에는 하자가…… 아니, 다트를 던질 때 약간의 의심스러운 점을 발견해서요.”

그는 나를 슬쩍 훑더니, 마법사가 아니라 판단하고는 눈에 띄게 안심하며 답했다.

“저런. 어떤 문제였는지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말투가 은근히 비꼬는 듯한 어조였다.

나는 눈썹을 꿈틀거리며 카르시온을 가리켰다.

“사실 저랑 같이 온 친구가 마법사거든요. 방금 제 다트에 수작을 부린 건 책임을 묻지 않을 테니, 무효로 하고 다시 기회를 주세요.”

“수작이라니요. 저희는 맹세코 아무 짓도 하지 않았습니다.”

“제 친구가 마나 파동을 감지했다고 하는 데도요?”

“네. 다른 것과 착각을 하신 게 아닐까요.”

“아하.”

너희는 상대를 잘못 골랐어. 썩을 놈들아.

앞으로 저지를 일을 대비해 카르시온에게 작게 물었다.

“우리 변형 마법 잘 유지되고 있는 거 맞지?”

“응. 작정하고 걸어 놨으니, 마법사라도 쉽게 눈치 못 챌 거야.”

한스가 왜 복면을 쓰면 자신감이 차오른다고 했는지 알 것 같았다.

평소라면 그냥 넘어갔을지도 모르겠지만, 글쎄.

오늘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완벽하네. 그럼 이제…….”

나는 느릿하게 고개를 돌려 동아리 부원들을 바라봤다.

“깽판 좀 쳐 볼까.”

나는 말을 마치자마자 책상을 뒤집어엎었다.

카르시온도 내가 하는 양을 보고 흥미가 돋은 듯 익살스럽게 웃으며 마법을 시전한다.

“시온, 다트는 뾰족해서 위험하니까 그대로 둬.”

“응.”

가벼운 대답과 동시에 동아리실 안에 있던 물건들이 이리저리 날아다닌다.

“이, 이게 뭐 하시는 겁니까!”

그들이 나와 카르시온을 말리려 다가왔지만, 이내 뭔가에 막힌 듯 허공에 부딪히고는 튕겨 나갔다.

나는 카르시온에게 눈짓으로 감사를 표하고 껄렁껄렁한 표정을 지었다. 시정잡배를 연상하고 만들어 낸 표정이었다.

“뭐긴 뭐야. 대화가 안 된다면 답은 하나밖에 없잖아.”

“선도부! 선도부를 부를 겁니다!”

“불러 보든지.”

어차피 우리가 누구인지도 모를 텐데.

무심히 그에게 시선을 떼고 주변을 둘러봤다.

잠시 대화하는 사이 카르시온이 동아리실을 아주 난장판으로 만들어 놨다.

역시 그의 전문 분야다운 빠르고 정확한 일 처리였다.

하지만 범죄자는 범죄 현장에 오래 있어서는 안 되는 법. 대충 깽판 쳤으니 빠르게 튀어 볼까.

나는 카르시온에게 손을 내밀며 눈짓했다. 텔레포트로 도망칠 셈이었다.

그래도 낸 돈이 있으니 뭐 하나는 챙겨가야 억울하지 않을 것 같은데.

난장판을 만들어 놨으니, 마력석은 참아 줄까…….

문득 공중에 아무렇게나 떠다니고 있는 동물 인형들이 보였다.

30점만 넘으면 받을 수 있는, 사실상 참가 상품이나 다름없는 싸구려 인형이었다.

나는 고양이와 강아지, 둘 중 고민하다가 결국 강아지 인형을 잡았다.

역시, 카르시온은 고양이가 아니라 대형견 쪽이 더 어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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