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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 이러는 거 아니야 (82)화 (82/161)

82화

나는 조지 교수님의 연구실로 향했다.

약초학 수업 시간이 끝난 후, 교수님이 따로 불러냈기 때문이다.

이런 일이 한두 번 있었던 게 아니기에 그의 부름은 꽤 익숙했다.

또 제 밑으로 들어오라거나 약초에 관해 물어보려는 것이겠지.

귀찮다.

솔직히 말하면 성가셨다. 그만큼 학을 떼며 거절했으면 이제 포기할 법도 한데.

예의상 연구실에 노크 몇 번을 하고 들어갔다.

들어오라는 허락 없이 문을 열었음에도 조지 교수님의 얼굴에 언짢은 기색은 없었다.

“부르셨나요.”

그는 잠시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가 답지 않게 괜히 헛기침을 몇 번 하고는 시선을 돌렸다.

“다름이 아니라 네게 줄 게 있어서 말이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어쩐지 내 표정을 살피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는 연구실 한쪽에 있는 유리 전시대로 가서 무언가를 꺼내왔다.

“받거라.”

나는 조지 교수님이 건넨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언젠가 그의 유리 전시대에 진열된 것을 보고 대놓고 탐난다고 말했던 희귀한 약초였다.

그때 자신의 수제자가 된다고 약속하면 준다고 꼬셨던 것 같은데.

물론 나는 바로 거절했었고.

“이걸 왜…….”

떨떠름한 음성으로 묻자 교수님은 쓰고 있던 안경을 책상에 내려놓으며 되물었다.

“기분이 좀 나아지나?”

“……네?”

“약초를 관찰하다 보면 좀 괜찮아질지도 모르지. 쯧, 마음이 그리 여려서는 연구나 제대로 할 수 있겠느냐?”

아.

나는 천천히 손을 올려 눈가를 만졌다. 손에 물기가 묻어 나왔다.

분명 다정한 위로는 아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눈물이 주륵 흘러나왔다. 눈물샘이 고장 난 것 같았다.

뺨을 때려야 간신히 눈물이 나왔었는데.

고작 저 서투른 위로 하나에.

“저는 교수님이 또 졸업하고 밑으로 들어오라고 꼬시는 건 줄 알고 성가시다고 생각했는데…….”

“……성가실 정도였다고? 아, 아니, 그보다 지금 우는 게냐?”

흐려진 시야 사이로 당황한 조지 교수님의 얼굴이 보인다.

나는 그것을 기점으로 그 자리에서 소리 내어 엉엉 울었다.

어린아이처럼 서럽게 울어 젖혔다. 눈물이 쉴 새 없이 흘러나왔다.

우는 와중에 무슨 말을 했는지 모르겠다. 아칸더스를 찾았던 것 같기도 했다.

눈물이 그친 후, 뒤늦게 창피함이 몰려왔다.

추태도 이런 추태가 없었다.

나는 실례가 많았다며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급히 조지 교수님의 연구실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며칠 후, 교수님의 호출로 나는 다시 연구실에 찾아오게 되었다.

“저번에는 죄송했어요.”

들어오자마자 고개를 숙였다. 조지 교수님은 혀를 차며 손을 대충 휘저었다.

“꾸중하려고 부른 게 아니다.”

그는 가벼운 턱짓으로 내게 앉으라 권했다. 주뼛주뼛 맞은편 의자에 앉자 말이 이어진다.

“사실 아칸더스는 월터와 마주한 후 바로 아카데미를 떠났다. 그리고 나와 연락이 끊겼었지.”

아칸더스가 거론될 줄은 몰랐기에 나는 조금 눈을 키우고 그를 바라봤다.

“자주 편지를 하던 사이는 아니었지만, 아무런 답장이 오지 않은 적은 없었는데…….”

다소 씁쓸해 보이는 표정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편지에 네 이야기를 했더니 바로 답장이 왔더구나. 당장 아카데미에 온다던데.”

“아칸더스가 이곳으로 온다고요?”

월터 교수님과 같은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도 끔찍하다는 듯 행동했던 그가?

그때였다.

쾅-!

연구실 문이 거칠게 열리며 누군가 뛰어 들어왔다.

“리엔은 지금 어디 있습니까.”

아칸더스는 숨을 몰아쉬며 다급히 나를 찾았다. 그의 시선이 나에게 닿는다.

“……리엔.”

그가 성큼성큼 내게 다가와 제 품으로 나를 끌어안았다. 그의 몸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얼결에 아칸더스의 품에 안기게 된 나는 눈을 깜빡이다가 천천히 그의 등을 쓸었다.

주객이 전도된 모습이었다.

……위로는 내가 받으려고 했는데 말이지.

“진정해요. 조지 교수님이 편지로 무슨 말을 쓰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아칸더스가 걱정했던 상황은 없었을 거예요.”

아칸더스의 조언대로 월터 교수님과는 최대한 멀리 지내고 있었으니까.

다행히 이번 연도에는 담임 교수가 다른 분으로 바뀌기도 했고.

그런 우리를 지켜보던 조지 교수님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둘이 이야기하거라. 자리를 비켜주마.”

둘만 남게 된 후에야 아칸더스는 입을 열었다.

“조지 교수님의 편지에 네가 곧 죽을 것 같다고 쓰여 있었어.”

황당함에 입이 절로 벌어졌다.

아니, 조지 교수님. 그렇게 써 놓으면 어떡해요. 나 같아도 놀라서 달려왔겠네.

아칸더스는 내 잔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주며 얼굴을 살폈다.

“몸은 성해 보이는구나. 하지만…….”

그는 말을 잇지 않았다. 내 눈동자 안에 담긴 슬픔을 읽어 냈기 때문이겠지.

아칸더스가 조용히 손을 뻗어 다시금 나를 안았다. 얼마 후 내 등을 토닥이는 느낌이 전해져 왔다.

아칸더스는 언제나 그랬다.

내가 엄마에게 혼나서 우울해하고 있을 때도.

고생해서 연구한 레시피 개발이 실패했을 때에도.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당시에도.

언제나 묵묵히 등을 토닥여 주었다. 그게 얼마나 든든했는지.

엊그제 조지 교수님 앞에서 눈물을 가득 쏟아 냈기 때문일까, 눈물이 나지는 않았다.

하지만 마음만은 더없이 충족한 기분이었다.

내게도 의지할 사람이 남아 있었다는 걸 확인한 것만 같아서.

한참 후, 나와 떨어진 아칸더스가 무언가를 고심하는가 싶더니 이내 결단한 얼굴을 했다.

“리엔, 나와 같이 가지 않겠니?”

“아칸더스를 따라서요?”

생각도 해 보지 못한 제안이었다.

“백작가처럼 호화로운 생활은 보장해 줄 수 없단다. 나는 숲속 깊은 곳에서 은둔하다시피 살고 있으니까.”

나는 눈을 깜빡였다.

이모께 아칸더스를 찾아 보답하고 싶다 부탁했었는데, 번번이 그는 찾는 걸 실패했었지.

마을이 아닌 숲속에 살고 있어서 그의 행방을 찾을 수 없었구나.

“그러나 너의 안전만은 보장해 줄 수 있단다.”

안전이라.

정신적인 부분과 신체적인 부분을 모두 일컫는 것이겠지.

지금의 나에게 너무나도 필요한 것이었다.

“너는 약초를 좋아하니까, 주변이 온통 초록색인 게 나쁘지만은 않을 수도 있겠네.”

혹하는 마음이 들었다.

이대로 아칸더스를 따라간다면 누군가에게 배신당하고 상처받는 일은 없을 것이다.

렉스 베고니아도 숲속에서 숨어 사는 나를 찾기는 어렵겠지.

내가 좋아하는 약초도 실컷 만지고 연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칸더스에게 나라는 짐을 실어 주기 싫었다.

백작가에 안전장치를 만들어 놓지 못한 것도 마음에 걸렸다.

애초에 렉스 베고니아에게 약점으로 잡힌 백작가가 아니었다면, 내가 아카데미로 도망치는 일도 없었을 테니까.

렉스 베고니아는 현 상황을 느긋하게 생각하고 있을 게 뻔했다.

내가 아카데미를 졸업하고 나면 달리 도망갈 곳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혹여나 정말로 도망간다면, 그는 백작가와 연결된 것을 하나하나 가지 치듯 잘라 낼 것이다.

내가 백작가의 소식을 듣고 다시 돌아올 때까지.

“죄송해요. 제안은 너무 감사하지만, 제게 사정이 있어서 따라갈 수 없어요.”

그에 아칸더스는 다소 뜬구름 잡는 듯한 이야기를 꺼냈다.

“리엔. 내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셨다는 건 알고 있지? 나는 지금 친구들과도 모두 연을 끊었고, 홀로 살고 있어.”

그는 옛날에도 나를 제외한 다른 사람과 잘 어울리지 않았다.

심지어는 나 또한 그와 친해지는 데에 꽤 많은 시간이 걸렸었지.

“내게 남은 인연은 너 말고 아무도 없다는 얘기야.”

그는 장난기 어린 웃음을 지으며 비밀스러운 것을 말해 주듯 목소리를 낮췄다.

“조지 교수님이 없어서 하는 말이지만, 사실 그분도 내게 그다지 소중한 사람은 아니란다.”

장난처럼 말했으나 나는 그것이 진심임을 알았다.

월터 교수님을 만난 후 칼같이 조지 교수님과 연락을 끊은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너는 옛날부터 정이 참 많았지.”

그는 내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기쁨인지 슬픔인지 모를 표정을 했다.

“그날 이후, 누구에게도 마음을 내주지 않겠다 다짐했는데. 그 다짐마저 무색하게 만들어 버릴 정도였으니…….”

그날이라면 월터 교수님과 사이가 틀어지게 된 날을 말하는 걸까.

“나를 따라오지 않겠다고 했으니 조언 하나만 하마. 잔소리라 생각하고 들어주렴.”

기쁨과 슬픔이 공존하던 그의 얼굴에 결국, 슬픔만이 떠올랐다.

“너 자신 말고는 아무도 믿지 마. 의심하고 또 의심해.”

……조금 더 일찍 말해 주셨으면 좋았을 텐데.

하긴, 일찍 말해 줬어도 상황이 달라지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 법이니까.

부정적인 속마음과 다르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를 안심시켜 줄 수 있다면야 뭔들 못하겠는가.

“명심할게요.”

* * *

드르륵드르륵. 무언가 창을 긁는 소리가 났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익숙하게 창문을 열었다. 그러자 도비가 기다렸다는 듯 날개를 퍼덕이며 달려든다.

“캬웅!”

순간 도비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휘청거리며 넘어질 뻔했다.

하지만 나는 어떻게 균형을 잡고는 옅게 웃으며 도비를 반겼다.

“우리 도비 왔어?”

사실 도비의 덩치가 커진 이후로 기숙사까지 오지 못하게 교육하려고 했다.

그런데 제인이 기숙사를 다른 곳으로 옮긴 이후 혼자 쓰게 된 이곳이 너무 허전해서.

그녀의 빈 자리가 너무도 크게 다가와서…….

그래서 도비가 찾아올 때면 단호하게 내쫓지 못하고 안에 들이고 말았다.

도비의 간식으로 사다 놓은 음식을 꺼내와 주고 있으려니 문득, 구석에 수북이 쌓인 히아신스가 눈에 들어왔다.

며칠만 더 지나면 서른 송이가 될 터였다.

한 달이 다 되어 가는데, 꽃은 단 한 송이도 시들지 않았다.

봄이라 히아신스를 구해 왔겠구나 했는데.

히아신스 꽃이 모두 저물어 구하지 못하게 되면 네 사과는 끝이 나려나 생각했다. 자연스럽게 너와 연이 끊길 줄 알았다.

하지만 저 시들지 않은 꽃들을 보니 괜한 걱정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보존 마법.

그는 뛰어난 마법사니까, 기간도 꽤 오래 가겠지.

꽃을 보며 생각에 잠겨 있을 때였다. 창문 두드리는 소리가 멍한 정신을 깨웠다.

도비는 내 앞에 있는데…….

나는 설마 하는 마음으로 천천히 창가로 걸어갔다.

그러자 나를 발견한 초록색의 작은 정령이 꺄르르 웃으며 편지를 내밀었다.

쿤이구나.

카르시온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자 어쩐지 입 안이 썼다.

나는 고개를 털어 내고는 정령에게 고맙다 인사를 건넸다.

정령은 내가 편지를 건네받자 임무를 다했다는 듯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그나저나 쿤이 무슨 일일까.

학술제 이후로 나를 볼 때마다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슬슬 피하던 애가.

<내일은 제 동아리에 놀러 오지 않으시겠습니까?

ps. 동아리 부원들에게는 허락을 맡았습니다. 다들 좋아하더군요.>

정상적인 편지는 아니었다.

대체 본 내용보다 추신이 더 긴 편지가 어디 있다고.

하지만 나는 그의 초대에 응하기로 했다.

동아리를 생략하고 기숙사에 들어오는 게 반복되었더니 하루가 너무 길어졌다.

“한 번쯤 놀러 가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네. 무슨 동아리인지 궁금하기도 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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