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화
집사는 모멸감에 온몸을 부르르 떨며 억눌린 음성으로 물었다.
“그래서 치료제는 언제쯤 만들어 주실 수 있습니까?”
……와 이걸 참아?
정말 간절했나 보네.
“제가 가진 마력으로는 머리카락에 마법을 걸면 그것으로 끝이 납니다. 마법사가 아닌 일반인과 다를 게 없지요.”
나는 그의 사정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들었다.
그래서 어쩌라는 건지.
한 가닥도 없다는 부분에서 얕게나마 동정심이 들긴 했지만…….
어쨌든 내가 어떻게 해 줄 의무는 없지 않은가.
게다가.
나는 그의 어깨에 손을 턱, 하고 올렸다. 그러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단호히 말했다.
“집사님. 그런 게 있었으면 세상에 대머리는 없었겠지요.”
일부러 멋을 위해 머리를 민 경우를 제외하고는 말이다.
제국의 마법 기술은 고도로 발달되어 있었다.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무궁무진한 마법들.
사지가 잘린 사람도 충분한 마법과 신성력이 뒷받침된다면 정상적인 몸으로 되돌릴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런 대단한 마법과 신성력은 아이러니하게도 유전적 탈모만은 막지 못했다.
나는 옅은 동정심이 담긴 눈빛으로 그의 머리를 바라봤다.
“탈모 치료제라니, 그런 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아요. 먼 미래에도 불가능한 일이라고요.”
이제 알아듣겠어요?
이 눈치도 없고 성격도 나쁜 대머리야.
* * *
공작 부인이 공작님과 각방을 쓰신지 일주일 째.
그동안 공작님께서 식사를 하러 나오지도 않고, 집무실에서 미친 듯이 업무만 보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게 퍽 걱정됐던 나는 몰래 공작님을 만날 타이밍을 노렸다.
“미리 찾아뵀어야 했는데…….”
공작 부인과 카르시온이 하도 눈에 불을 켜고 있는 바람에 그러질 못했다.
모자가 힘을 합쳐 공작님과 나를 만나지 못하게 했기 때문이다.
나중에 사용인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이지만, 공작님이 나를 며느리로 들이는 걸 크게 반대했다고 한다.
소문이 조금 이상하게 퍼진 것 같지만 나는 공작님의 행동이 나를 위한 것임을 알았다.
예전에 카르시온과 결혼시키기는 내가 너무 아깝다는 얘기를 하신 적 있으셨지.
“그게 정말일 줄이야…….”
그렇다면 각방을 쓰게 된 이유도 나와 관련이 있을 확률이 높았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후 조심스럽게 집무실 문을 두드렸다.
요즘은 잠도 거의 주무시지 않는다고 하셨다.
그래서 새벽을 틈타 몰래 공작님을 찾아왔다.
이 시간이면 카르시온과 공작 부인에게 들키지 않고 만날 수 있을 터였다.
“아저씨, 저예요.”
목소리를 내자, 노크 소리에도 조용하기만 했던 안쪽에서 바로 반응이 왔다.
문이 자동으로 스르륵 열린다.
“들어와라.”
나는 마법이 편리하긴 하구나 생각하며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공작님을 발견하고는 탄식을 내뱉었다.
일주일 만에 만난 공작님은 굉장히 피폐해 보였다. 영혼이 반쯤 빠져나간 얼굴이었달까.
나는 서둘러 다가가 아저씨의 서류와 펜을 앗아 들었다.
“아저씨, 지금 일할 때가 아닌 것 같아요. 펜을 놓고 조금 쉬세요. 상태가 너무 안 좋아 보여요.”
“그래, 네 말대로 너무 힘들군.”
“말이 통해서 다행이네요. 그럼 얼른 일어나셔서 침실로…….”
“하지만 침실에 가면 뭐하나, 실비아가 없는데. 그런 비참함을 느낄 바에는 일을 하는 게 낫다.”
“아저씨…….”
나는 입술을 세게 씹었다.
아저씨가 힘들어하고 계실 건 알고는 있었지만, 눈앞에서 목격하니 죄책감이 배로 뛰었다.
“죄송해요. 가까운 시일 내에 공작저를 나갈 테니 조금만 버텨 주세요.”
애초에 나로 인해 발생한 싸움이었으니, 내가 나가고 나면 모두 해결될 일이었다.
내 말에 공작님의 눈에 노기가 서렸다.
“어딜 간다는 거지? 네가 어떤 형태로든 리시안셔스의 성을 받게 될 거라는 건 달라지지 않을 사실이다.”
나는 입을 꾹 닫은 채 공작님을 응시했다.
그러자 공작님은 내가 겁먹었다고 생각했는지 한결 누그러진 목소리로 달래듯 말을 이었다.
“네가 카르시온에게 감정이 없다는 것을 피력하면 실비아도 결국은 며느리로 들이는 걸 포기할 거다.”
문득 의문이 들었다.
“……아저씨는 왜 사랑하는 아내분과 싸우면서까지 저를 딸로 들이시려는 거예요?”
애초에 나를 딸로 들이려 한 것도 공작 부인과의 관계 개선을 위한 조언을 잘해 줘서이지 않은가.
“카르시온과 마음이 통한 상태였으면 나도 너를 며느리로 들이는 것에 이토록 반대하지는 않았겠지.”
내 머리 위로 공작님의 커다란 손이 무심하게 툭 내려앉았다.
“하지만 네가 카르시온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으니, 반대하는 거다.”
네 의사가 제일 중요한 법이니까.
공작님이 작게 덧붙인 말을 들은 나는 짧게나마 울컥하는 감정이 들었다.
하지만 그 감정이 오래 지속되지 못한 이유는…….
엄밀히 따지면 딸이 되고 싶다고 한 적도 없는데 말이지.
그 중요하다는 제 의사는 어디 갔어요, 아저씨.
그때였다.
‘리엔.’
머릿속에 또 카르시온의 음성이 파고들었다.
나는 노이로제가 걸릴 것 같은 음성에, 인상을 확 찌푸리며 머리를 부여잡았다.
“아, 진짜.”
그러자 곧바로 공작님의 음성이 날아들었다.
“무슨 일이지, 리엔? 어디가 아픈가?”
“그게…….”
공작님께 내가 지금 겪고 있는 현상을 여쭤볼까?
어쩐지 공작님이라면 무엇이든 알고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사실 그간 이 현상을 방치해 온 이유는 따로 있었다.
의원을 찾아가면 어디가 아프냐며 카르시온과 공작 부인이 난리를 칠 것 같고…….
그렇다고 두 모자에게 이 증상에 대해 털어놓기에는 내가 상사병을 앓고 있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 같아서 꺼려진 까닭이다.
하지만 아저씨는 내가 카르시온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말을 바로 믿어 주셨으니.
상사병이라며 결론을 내리시지는 않으실 테지.
“사실 제가 한 달 전부터 이상 현상을 겪고 있는데요…….”
“이상 현상?”
공작님은 내게 이어 말해 보라는 듯 고개를 까닥였다.
“시도 때도 없이 귓가에 제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요.”
“뭐……?”
공작님의 미간이 살짝 좁혀졌다.
“더 자세히 말해 봐라.”
“정확히 말하면 제 이름을 부르는데, 그 음성이 카르시온의 목소리로 들려요.”
뭔가 예상가는 게 있는 듯 공작님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설마 그 목소리가 들릴 때마다 카르시온이 어디 있는지 막연히 떠오르나?”
“네.”
내 대답에 공작님은 충격과 배신감에 얼룩진 표정을 하며 뭐라 중얼거렸다.
“분명, 카르시온을, 좋아하지, 않는, 다고…….”
공작님은 한참을 말을 잇지 못하다가 이마를 짚으며 어렵게 입을 뗐다.
“네가 방금 말한 건 이상 현상이 아니라 반려의 인이라는 거다. 마법의 일종이지.”
“……반려의 인이요?”
굉장히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이름만 들어도 무슨 느낌인지 알 것만 같은 이 기분.
“조건이 까다로워서 지금은 잘 쓰이지 않는 마법이다.”
“자세히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긴장한 내 표정을 보며 공작님은 마른세수를 했다.
“내게 거짓말을 했군, 리엔.”
“……네?”
“반려의 인은 심장에 새기는 마법으로, 서로를 사랑해야만 걸 수 있는 마법이다.”
동공이 파르르 떨려 오기 시작했다. 말이 더듬거리며 나간다.
“그, 그런, 마법이, 있어요……?”
공작님은 이런 내 반응이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 이맛살을 찌푸렸다.
“오히려 내가 의문이군. 카르시온에게 설명을 듣지 못한 건가?”
네. 전혀 듣지 못했는데요.
내 표정을 본 공작님이 묘한 얼굴을 했다.
“서로를 사랑한다고 하더라도 일방적으로 걸 수 없는 마법일 터인데. 이 마법은 반드시 상대방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조건이 까다롭다는 건 뭔가요? 반려의 인이라는 마법의 효과도 알려 주세요.”
“반려의 인은 고위 마법이다. 시전하는 쪽은 그걸 심장이라는 예민한 부위에 새길 수 있을 정도로 실력 있는 마법사여야 하지.”
잠시 나를 응시하던 공작님은 한숨처럼 말을 이었다.
“게다가 그렇게 어렵게 마법을 새긴다 하더라도 마나를 다룰 줄 알아야 발동할 수 있으니 까다로울 수밖에.”
마법사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마나를 다룰 수 있는 사람도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연금술 때문에 마나 다루는 방법을 배웠지만.
“그럼 그 마법의 효과는 뭔가요?”
“목소리에 마나를 담아 반려의 인을 새긴 이의 이름을 부르면 상대방은 즉시 너의 위치를 알 수 있다.”
“……세상에.”
“반려의 인이라는 그럴싸한 이름을 달고 있긴 하나, 요약하자면 일종의 호출 시스템 같은 거다.”
공작님의 설명을 충분히 들은 후에야 나는 퍼즐 조각이 하나로 맞춰지는 것을 느꼈다.
“그럼 지금까지 제 머릿속에 카르시온의 음성이 들렸던 건…….”
“시도 때도 없이 네 이름을 불렀나 보군. 아예 마나를 담아 이름을 불렀다는 자각도 없는 모양이야.”
어쩐지. 같이 있을 때는 목소리가 안 들리더라!
카르시온 이 미친놈이.
내가 눈앞에 없으면 아주 습관처럼 내 이름을 불러댔다는 거 아닌가.
아무리 나를 좋아한다고 해도, 정도가 있고 경우가 있지!
나는 마지막으로 아직 풀리지 못한 의문 하나를 꺼냈다.
“하, 하지만 심장에 새기는 마법이라면서요. 상대방의 허락도 반드시 필요하고요.”
공작님은 손에 깍지를 끼며 진중한 얼굴로 물었다.
“잘 생각해 봐라. 정말 허락한 적이 없나?”
신체에 영구적인 마법을 새길 때는 반드시 그 부위에 직접 마법진을 그려야 했다.
그렇다고 진짜 심장을 꺼내 마법진을 새겨 넣을 수는 없으니, 심장과 가장 가까운 부위에 그려 넣었을 거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은 카르시온에게 마법을 새기는 것을 허락한 기억이 없었다.
또한 카르시온은 제 심장 부근에 손을 가져간 적이 없…….
아.
미친. 설마.
그날?
생각해 보니 중간에 카르시온이 무슨 마법을 걸어도 되냐고 물어왔던 것 같기도 했다.
나는 그때 너무 정신이 없어서 고개만 마구 끄덕였었고.
카르시온이 내 달리는 체력을 보충해 주려 각종 버프 마법과 회복 마법을 걸어 주었기 때문에 더욱 의심하지 않았던 것 같다.
잠시만.
그렇다면 나는 지금 이 사실을 누구에게 털어놓은 거지?
……누구긴 누구야, 카르시온의 아버지지.
그 사실을 깨닫자 나는 평정심을 유지하지 못하게 됐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
순식간에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차라리 머리를 박고 기절하고 싶은 기분이었다.
나는 온갖 분노를 담아 이 일의 원흉인 이의 이름을 외쳤다.
“카르시온 리시안셔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