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화
“카르시온 리시안셔스!!!”
나는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그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목소리에 마나를 담아 이름을 불렀으니, 공작님의 말씀이 사실이라면 그는 내 부름에 이곳으로 냉큼 달려올 터였다.
내심 아니기를 간절히 바랐건만.
아니나 다를까 몇 초도 지나지 않아 집무실에 마법진이 떠올랐다.
“리엔!”
얼굴에 다급함이 가득한 카르시온이 마법진 사이에서 튀어나온다.
어찌나 급하게 왔는지 머리는 부스스하게 일어나 있었고, 상의는 잘 여며지지 않아 그 안이 언뜻 비쳐 보였다.
평소였다면 저 장면을 보고 한참이나 시선을 빼앗겼을 텐데.
지금의 나는 그것을 태평히 눈에 담고 있을 수가 없었다.
아악.
네가 여기서 왜 나와. 대체 왜 나오는 거냐고……!
이렇게 되면 나는 정말 카르시온의 아버지 앞에서 아들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인증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뿐이었으면 차라리 다행이지.
카르시온과 진도를 굉장히 많이 나갔다는 것도 들켜 버린 거다.
마법을 걸기 위해서라지만, 그곳에 손을 가져갔을 정도면 말은 다 했지.
심지어 그가 내 심장 부근에 손을 올려 마법을 건 기억이 없다?
반대로 생각하면 일일이 기억하기도 어려울 만큼 자주 있었던 일이라고 해석될 수도 있는 일이었다.
뒤늦게 공작님도 그 사실을 깨달은 듯했다. 충격으로 얼룩진 그의 음성이 귓가로 파고들었다.
“……요즘, 애들은, 진도가, 참, 빠르군.”
정말 울고 싶은 기분이었다.
눈매를 확 치켜 올려 카르시온을 쏘아보았다.
“너……! 그렇게 중요한 마법을 내가 정신없을 때 슬쩍 묻고는 이때다 싶어 거는 게 어디 있어?!”
“마법……?”
“그래 마법!”
“리엔, 일단 진정하고 무슨 마법인지부터 차근차근…….”
나는 당황한 카르시온을 노려보며 분노를 담아 주먹을 꽉 말아 쥔 채 그의 가슴을 탕탕 두들겼다.
“하필 마법 이름부터가 반려의 인이라니, 반려? 네가 날 평생 책임지기라도 할 거야?”
영문도 모른 채 호출되어 맞고 있던 카르시온은 평생 책임질 거냐는 물음에 눈을 크게 떴다.
“응? 대답해 봐! 네가 날 평생 책임지기라도 할 거냐고!”
그가 무언가 깨달은 듯 내 양손을 부드럽게 잡아냈다. 어딘가 기쁘고 벅찬 얼굴이었다.
“내가 널 책임질 수 있게 해 주는 거야?”
상황과 전혀 다른 표정을 짓는 카르시온을 보니 분통이 터졌다.
“웃어? 나는 심각한데, 너는 지금 상황이 웃겨?”
행복에 겨워 헤실 웃던 카르시온은 그제야 뭔가 잘못됐다는 것을 인지하고 순식간에 입을 일자로 다물었다.
“하다못해 어제 건 마법은 이런 거였다고 다음날 설명이라도 해줬어야지!”
그가 다급하게 변명한다.
“미, 미안해. 숨기려던 건 아니었어. 그날은 기분이 너무 들떠서 생각을 못 했었나 봐.”
“그걸 변명이라고 해? 말해 주려면 그날 말고도 얼마든지 말했잖아. 내가 왜 이 마법을 너희 아버지께 들어야 하냐는 말이야!”
카르시온은 어쩔 줄 모르는 얼굴이 되어 잘게 눈을 떨었다.
다행히 자기가 한 잘못은 알고 있나 보다.
“그리고! 내 이름을 부르는 것도 한두 번이지 무슨 그렇게 쉴 새 없이 부르고 있어?”
“자, 잘못했어…….”
“그것 때문에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였다고!”
“……내가 그렇게 자주 불렀어?”
몰랐던 사실이라는 듯 그가 사슴처럼 순한 눈을 깜빡였다.
나는 그의 얼굴 공격에 당하지 않으려 내 허벅지를 꼬집었다.
하, 이런 귀여운 얼굴을 한다고 매번 봐줄 것 같나?
“아저씨 말 들어 보니까 마나를 담지 않으면 나한테 안 들렸을 텐데, 계속 마나를 담아 불렀다는 건 나를 괴롭히려고 했던 거 아니야?”
카르시온이 비 맞은 강아지 같은 얼굴을 하며 울상을 짓는다.
“아니야, 리엔. 내가 널 괴롭힐 리가 없잖아.”
괴롭힐 리가 없기는, 그날 밤에는 아주 오랫동안 잘도…….
나는 생각이 딴 곳으로 새는 것을 깨닫고는 고개를 빠르게 저었다.
“그럼 접근 금지령을 내린 게 화가 나서 만나 달라고 시위를 벌인 건가?”
“시, 시위라니 오해야. 내 체내 마나가 넘치다 보니 무의식적으로 마나를 담아냈나 봐…….”
“무의식도 적당히 해야 할 거 아니야 적당히!”
한창 그에게 분노를 우다다 쏟아 내고 있을 때였다.
일방적으로 내게 혼나고 있던 카르시온의 뒤쪽으로 유쾌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큽, 크흡.”
나와 카르시온의 시선이 웃음의 주인인 공작님께로 쏠렸다.
“미안하다. 방해할 생각은 없으니 하던 거 마저 하도록.”
공작님은 입술을 꽉 깨문 채 웃음을 참아 내는 듯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굉장히 통쾌함이 깃든 얼굴이었다.
그를 본 카르시온이 이를 까득 갈았다.
“망할 아버지, 지금 웃음이 나와?”
“카온. 지금 다른 곳에 한눈 팔 만큼 여유가 있나 보지?”
내 차가운 음성에 카르시온이 화들짝 놀라며 나를 돌아봤다.
“그리고 너, 공작님께 그게 무슨 말버릇이야?”
“……어, 어어?”
“남의 가정사에 이래라저래라 참견하는 건 미안한데, 그 대상이 우리 아저씨라니 가만히 있을 수가 없네.”
“뭐? 우리 아저씨?”
우리라는 말에 의문을 느낀 듯 순한 얼굴을 하고 있던 그의 미간이 좁혀졌다.
나는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카온. 네 성격이 그렇게 좋지 않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번에는 정말 실망했어.”
“실망……?”
카르시온이 크게 충격받은 표정을 하며 몸을 굳혔다.
달래 줄 생각은 없었다.
그가 충격받을 만한 단어를 일부러 골라 말한 거니까.
그때였다.
“리엔.”
공작님의 부름에, 카르시온 때문에 흥분했던 마음이 다소 가라앉았다.
애꿎은 공작님께 화를 낼 수는 없는 법이지.
“네, 말씀하세요.”
나는 깊게 한숨을 내쉬며 공작님에게 시선을 옮겼다가 자동으로 뒷걸음질을 쳤다.
뭐야, 저 부담스러운 눈빛은.
공작님은 감격스러움과 존경이 섞인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저씨……?”
“리엔, 내가 지금까지 잘못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네? 뭘요?”
공작님이 한 말의 의미를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공작님이 돌연 자리에서 일어나 내게 다가왔다.
그러고는…….
엄지손가락에 끼워져 있던 반지를 빼서 내게 내밀었다. 리시안셔스 가문의 인장이 박힌 반지였다.
“내 며느리가 되어 주지 않으련?”
“……네?”
이건 또 뭔.
귀에 문제가 생긴 건 아닌지 의심하고 있을 무렵.
농담이 아니라는 듯 공작님이 진지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우리 리시안셔스 공작가에서는 너와 같은 인재를 찾고 있었단다.”
나는 입을 헤, 하고 벌린 채 공작님을 올려다봤다.
이건 프러포즈도 아니고 직원 채용도 아니고 대체…….
내 당황한 얼굴을 본 공작님은 뒤늦게 탄식을 뱉으며 설명했다.
“아, 이건 가주의 반지 같은 게 아니니 부담스러워할 필요는 없다. 리시안셔스의 성을 이은 사람이라면 누구든 수여되는 반지이니.”
그것도 충분히 부담스러운데요.
얼마나 충격적인 발언이었는지 충격으로 굳어있던 카르시온마저 깨어날 정도였다.
“아버지 미쳤어? 나도 못한 프러포즈를 해?”
공작님은 한쪽 눈썹을 들어 올리며 여상히 말했다.
“아들아. 억울하면 꾸물거리지를 말았어야지. 그렇게 머뭇거리다가는 리엔을 다른 놈팡이에게 뺏기고 말 거다.”
카르시온은 우습지도 않다는 얼굴로 뇌까렸다.
“불쌍한 척하면서 어머니께 거머리처럼 달라붙는 것밖에 못 하는 숙맥 아버지한테는 들을 말이 아니지.”
“……불쌍한 척?”
공작님이 미간을 찌푸리자 카르시온이 입가에 선명한 비웃음을 그려냈다.
“어머니께 수십 번 차이고 동정심을 얻어 겨우 교제했었다며? 그게 불쌍한 척하며 달라붙은 거지.”
“장점이라고는 얼굴밖에 없는 못난 아들내미 주제에.”
“그거 아버지도 해당하는 말이라는 거 알고는 있지?”
“실비아가 내 얼굴을 보고 첫눈에 반했다 했으니 쓸모는 다 했다.”
공작님이 노골적으로 카르시온의 얼굴을 훑었다.
“하지만 리엔에게는 네 그 잘난 얼굴마저 통하지 않는 것 같으니 있으나 마나 한 장점이겠군.”
“리엔은 내 얼굴 좋아하거든? 얼굴뿐만 아니라 몸도……!”
“야!”
듣자 듣자 하니까 쟤가 진짜.
공작님 앞에서 못하는 말이 없어!
카르시온은 내 외침에, 말을 멈추고는 잠시 눈치를 보다가 공작님께로 책임을 전가했다.
“아버지 때문에 리엔이 화났잖아. 빨리 무릎 꿇고 사과해.”
“그게 왜 내 잘못이냐. 누가 봐도 네 말에 화가 난 것 같은데. 죽음으로 사죄해라, 아들아.”
나는 두 부자의 싸움을 허망하게 지켜보다가 결국, 손바닥을 얼굴에 묻으며 자포자기하듯 말했다.
“몰라요. 이젠 진짜 몰라…….”
억울함에 눈물이 새어 나왔다.
공작 부인 앞에서 지어냈던 가짜 눈물이 아니라 진짜 눈물이.
“내가 어떤 심정으로 카온을 밀어냈던 건데. 이렇게 목줄을 채워 버리면 도망가지도 못하잖아…….”
도망이라도 갔다가는 온종일 내 이름을 부르면서 괴롭히겠지.
하지만 반대로 나는 마나라도 담아서 카르시온의 이름을 부르는 날에는 바로 그가 찾아올 테고.
“다들 날 싫어하면 마음이라도 독하게 먹지. 이렇게 반겨 줄 건 또 뭐냐고…….”
한번 눈물이 터지자 걷잡을 수 없이 흘러나온다.
“내가 뭘 했다고 그렇게 다정하게 굴어 주냐는 말이야.”
그러자 귓가에 경악과 공황이 담긴 목소리가 더듬더듬 들려왔다.
“리, 리엔. 내가 다 잘못했어. 울지마…….”
“그, 그래 뭐든 카르시온이 잘못했다. 넌 아무 잘못 없어.”
손으로 눈을 가리고 있어서 두 부자의 표정을 볼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 느껴지는 목소리만으로도 두 남정네가 얼마나 당황했는지가 눈에 선명히 그려졌다.
그 사실에, 못내 웃음이 터져 나올 것 같아서.
나는 울음기 가득한 목소리로 심술부리듯 말을 뱉어 냈다.
“다 끝났어. 이제 둘 다 나중에 괜히 집안에 들였다고 말 바꾸기만 해 봐요, 단식 투쟁에 들어갈 거니까.”
“……뭐? 리엔, 어떻게 그런 심한 짓을 할 수가 있어?”
나는 눈을 가렸던 손을 확 치우며 카르시온을 쏘아봤다.
“그럼 나를 집안에 들인 걸 후회할 거라는 말이야?”
반쯤 농담이었는데.
카르시온은 서투른 손길로 내 눈물을 닦아주었다.
그러나 조심스러운 손길과는 다르게 목소리만은 단호했다.
“죽어도 그럴 일은 없지. 하지만 그런 극단적인 생각은 만에 하나라도 해서는 안 돼. 어서 그 말 취소해 줘.”
“굶어 죽겠다는 것도 아니고, 어떻게 하면 그게 극단적인 생각이라는 거야? 난 취소 못 해.”
공작님이 그런 우리 둘 사이를 갈라놓았다.
“둘 다 진정해라.”
“뭐야, 아버지는 빠져.”
저 불 속성 효자가 또!
나는 곧바로 카르시온의 태도를 지적했다.
“카온, 내가 공작님께 버릇없이 굴지 말라고 했지.”
“……요.”
카르시온의 소심한 뒷붙임을 들은 공작님은 나지막하게 감탄했다.
“끝내주는군.”
그가 경외심이 담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다가 이윽고 의아하다는 듯 내게 물었다.
“리엔, 그러고 보니 카르시온을 일부러 밀어냈다고 했지. 나에게도 거짓말을 했고. 그래야만 했던 이유가 있나?”
“저는…….”
나는 습관적으로 변명을 꺼내려다가 멈칫했다.
이미 내가 카르시온을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을 공작님께 들킨 상황이었다.
‘반려의 인’이라는 마법 때문에 다른 곳으로 도망치기도 어려운 상황이지.
궁지에 몰린 생쥐.
이제 내 선택지는 리시안셔스밖에 남지 않았다.
어서 말을 해야 하는데,
목에 무언가 걸린 듯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내가 쉬이 말을 잇지 못하자 무언가 곰곰이 생각하던 공작님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가문과 라이벌 관계인 남자아이도 널 좋아한다고 했지. 너는 그것 때문에 두 가문 사이에 분란이 일어날까 걱정하고 있었고.”
“……아버지가 리엔과 그런 대화를 한 적 있었어?”
공작님은 카르시온을 가뿐히 무시했다.
“렉스 베고니아인가.”
공작님의 입에서 그의 이름이 나오자 나는 흠칫 몸을 떨고 말았다.
내 반응을 본 공작님이 내 머리에 손을 툭 얹으며 피식 웃었다.
“베고니아 따위를 상대하는데 리시안셔스를 걱정해 주고 있었다니, 귀엽군.”
“어디서 수작이야? 그 손 치워.”
물론 카르시온에 의해 공작님의 손은 금방 내쳐졌지만 말이다.
공작님은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에게 설명하듯 천천히, 그리고 나긋하게 말했다.
“리엔, 잘 듣거라. 베고니아와 라이벌이라는 세간의 시선을 그대로 둔 것은 조금이나마 황실의 견제를 덜기 위해서다.”
“견제……요?”
공작님은 정확하게 들었다는 듯 덤덤히 고개를 끄덕였다.
“또한 제국의 평화와 균형을 위해서이지. 리시안셔스의 힘을 모두 드러낸다면 제국의 이름이 리시안셔스로 바뀔 터이니.”
지극히 위험하고도 오만한 발언이었다.
하지만 그 말에 일말의 허세와 거짓은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내가 가진 것의 한계를 잘 알았다.
그런데 꼴에 내 사람은 지키고 싶어서,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아서.
그래서 괜한 욕심을 부리지 않고 포기하려고 했다.
그만큼 소중했으니까.
사랑했으니까.
아저씨.
……저요, 사실은 포기하고 싶지 않았어요.
가족도 친구도 카르시온도.
그 무엇도 떠나보내고 싶지 않았어.
나도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었어.
어리광부리고 싶었어.
누군가 나를 이 지옥에서 구해 주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어.
나는 울듯이 웃으며 두 부자를 응시했다.
“아저씨, 그리고 카온.”
정말 저를 렉스 베고니아로부터 지켜 줄 수 있는 건가요.
저라는 존재가 리시안셔스에 해가 되지 않는 건가요.
제가 욕심을 내도 되는 건가요.
아무것도 포기하지 않아도 괜찮은 건가요.
그렇다면,
부디 저를 렉스 베고니아라는 지옥에서 구해 줘요.
저 또한 믿고 용기를 내서 이곳에 남을 테니.
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