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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 이러는 거 아니야 (116)화 (116/161)

116화

고소하고 달콤한 냄새가 가득한 다이닝 룸.

이곳의 가장 상석에는 공작 부인이 앉아 계셨고, 그 주변으로 나와 카르시온이 마주 보는 형태로 앉아 있었다.

평소 공작가에서 먹는 식사와 다를 것 없는 풍경이었다.

그러나 나는 이 익숙한 풍경에 다소 의아함이 떠올랐다.

“저…… 공작 부인.”

내 부름에 공작 부인이 눈썹을 그러모으며 서운하다는 기색을 드러냈다.

“이제 어머님이라고는 안 불러 주는 거니?”

그때는 장난으로 불러 봤던 건데.

어차피 어머님이 되실 분이니 상관없으려나.

하지만 아직 약혼도 하지 않았는데, 장난기 없이 어머님이라 부르기에는 조금 낯간지러웠다.

나는 부러 눈을 살짝 아래로 깔고는 쑥스럽다는 듯 말했다.

“아직 익숙지 않아서요. 호칭은 차근차근 바꿔 보도록 할게요.”

그런 내 얼굴을 바라보던 그녀가 불현듯 현기증이라도 난 것처럼 머리를 짚었다.

“아아아…….”

그런 공작 부인을 보며 나는 그녀가 진정하기를 기다렸다.

아니나 다를까.

작게 움직이는 입가로 귀여워 죽겠다는 둥, 역시 레온보다 저를 닮은 자식을 낳았어야 한다는 등의 말이 들려왔다.

처음에는 공작 부인이 이런 행동을 보일 때마다 어디가 아프신 줄 알고 걱정했는데…….

이제는 저 행동이 치사량 이상의 귀여움을 목도했을 때 나오는 행동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잠시 후 마음을 가라앉힌 공작 부인이 한없이 너그러운 얼굴로 내게 미소지었다.

“그럼 그럼. 우리 리엔이 익숙지 않다는데 어느 누가 강요하겠니. 편하게 부르렴, 편하게.”

마주 웃으며 짧게 감사 인사를 한 나는 그제야 비로소 궁금했던 것을 물을 수 있었다.

“공작 부인은 왜 항상 공작님과 따로 식사하시는 건가요?”

공작가에 들어온 이후, 나는 식사를 종종 공작 부인과 함께했다.

물론 카르시온과는 한 끼도 빠짐없이 같이 식사했고.

하지만 공작님과는 단 한 번도 같이 식사를 해 본 적이 없었다.

공작 부인은 그걸 궁금해할 줄은 몰랐다는 듯 속눈썹을 팔랑이며 여상스레 말했다.

“그거야……. 나랑 아직 싸우는 중이니까? 아직 각방도 유지되고 있는 마당에 같이 식사라니, 어림도 없지.”

나는 포크로 열심히 샐러드를 집고 있던 손을 멈췄다.

잠시만, 공작님과 아직도 화해하시지 않으셨다고……?

“저를 딸로 들이냐 며느리로 들이냐의 문제는 이제 의견이 일치된 거 아니셨나요?”

공작 부인은 덤덤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말이 맞다. 하지만 그치는 조금 혼나 봐야 해.”

“공작님께서 무슨 잘못을……?”

공작 부인은 나긋하게 스테이크를 썰며 말을 이었다.

“자업자득이지. 따지고 보면 자기 주인도 몰라보는 그 빌어먹을 집사가 너에게 이를 드러낸 것도, 다 레온이 오해하게 만들어서 그런 거 아니겠니?”

세상에, 아저씨.

그래서 볼 때마다 사연 있는 얼굴을 하고 계셨던 거군요.

일이 바빠서 그런 줄 알았는데, 설마 공작 부인과 계속 각방을 쓰고 계셔서 그런 얼굴을 하고 계신 줄은 몰랐다.

어떻게 해야 아저씨를 도울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내 맞은편에서 묵묵히 스테이크를 썰던 카르시온이 자연스레 내 접시와 자신의 접시를 바꾸며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어머니, 리엔이 피해를 볼 뻔했으니 합당한 보상을 해 주는 게 맞지 않나요?”

그런 카르시온의 행동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접시에는 스테이크가 먹기 좋은 크기로 썰려 있었기 때문이다.

누구 남편 될 사람인지 몰라도 참 다정하기도 하지.

나는 입 모양으로 ‘고마워’라는 말을 전했다. 그러자 카르시온이 더없이 환한 미소를 지어냈다.

‘나도 고마워.’

응? 배려를 받은 건 난데 뭐가 고맙다는 거지.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이자 그가 덧붙인다.

‘내게 와 줘서.’

제대로 된 프러포즈도 한 적 없으면서 다 잡은 것처럼 굴다니.

‘아직 네게 간 적 없는데?’

‘그럼 오늘은 와 줄 거야?’

어쭈, 여유로운 거 봐라.

한창 그와 소리 없이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공작 부인의 고운 목소리가 들렸다.

“……그래, 미처 그 부분을 생각하지 못했구나.”

그녀의 시선이 내게 닿는다.

“원하는 게 있니? 무엇이든 말해 보렴.”

나는 이때가 공작 부부를 다시 합방시킬 기회임을 깨닫고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각방 관련해서는 저번에 내가 눈물 작전을 썼을 때도 넘어가지 않으셨지.

그렇다면 이번에는 정면 돌파가 아닌, 요망한 아기 여우 콘셉트로 승부다.

아. 그전에 한 입으로 두 말 못 하시게 애 좀 태워 드리고.

“하나 원하는 게 있긴 한데……. 아, 아니에요.”

뭔가 있는 것처럼 굴자 공작 부인이 눈을 반짝이며 관심을 보였다.

“아까도 말했지만, 뭐든 편히 말하렴.”

“아니요. 제 생각이 짧았던 것 같아요. 제 말을 듣는다면 분명 기분이 나쁘실 거예요.”

그녀는 아이 달래듯 다정한 음성으로 나를 재촉했다.

“네가 뭘 말하든 기분 나빠할 일은 없단다. 터무니없는 것을 말해도 괜찮으니 어서.”

나는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도련님이나 아가씨가 있었으면 좋겠다고는 생각했어요.”

공작 부인의 표정이 오묘해진다.

“도련님이나 아가씨?”

예상치 못한 말이었겠지.

아직 무슨 말인지도 눈치채지 못하셨을 테고.

나는 공작 부인이 이해할 수 있도록 말을 덧붙었다.

“그…… 시동생이요.”

그제야 무슨 말인지 알아챈 듯 공작 부인이 작게 탄식하며 눈을 크게 키웠다.

카르시온은 외동이다.

그런데 그의 형제인 시누이나 시숙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건…….

‘시동생’이라는 명칭을 사용함으로써 은연중에 며느리로 들어오리란 것을 암시하는 동시에, 공작님과 공작 부인의 원활한 잠자리를 응원하는 발언과도 같았다.

“어머, 얘도 참.”

공작 부인이 얼굴을 붉히며 열을 식히려는 듯 바쁘게 손부채질을 했다.

“네가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노력해 보마.”

내 말 한마디에 진짜 둘째 계획을 세우셨을 리는 없으니, 저 말은 공작님과 방을 합친다는 말과 다름없었다.

나는 안심하며 눈을 휘어 접었다.

“역시 우리 어머님밖에 없어요.”

* * *

그날 밤.

나는 공작 부부가 무사히 방을 합치셨는지 알아보기 위해 공작님의 집무실로 향했다.

무사히 방을 합치셨다면, 공작님은 일을 일찍 접고 잠자리에 드셨겠지.

공작 부인은 일찍 주무시고 일찍 일어나시는 생활 패턴을 가지고 계셨으니까.

그런데 뭔가 잘못된 걸까. 아니면 오늘따라 일이 많았던 걸까.

살짝 열린 문틈으로 집무실 안에서 환한 빛이 새어 나왔다.

나는 작게 한숨을 쉬며 공작님께 연유를 물어보려 집무실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안쪽에서 들려온 목소리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정말이야 실비아?”

“내가 이런 거로 거짓말하는 거 봤어요?”

공작님과 공작 부인의 목소리였다.

나는 반색하며 다가가 열린 문틈 사이로 두 분을 지켜봤다.

“왜, 왜……. 갑자기 무슨 바람이 들어서?”

공작님의 멍한 표정에 공작 부인이 웃음기 가득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리엔이 글쎄, 제게 시동생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지 뭐예요?”

공작님은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 듯 잔뜩 당황한 얼굴로 말했다.

“실비아, 아무리 리엔 부탁이라지만 그건 좀…….”

“네?”

공작님이 세상 진지한 음성으로 자신의 심정을 고백하기 시작했다.

“나는 카르시온만으로도 벅차. 그리고 내게 올 당신의 관심이 더 이상 나누어지지 않았으면 해.”

나는 이마를 탁, 하고 쳤다.

이 바보 아저씨가…….

하지만 다행히도 공작 부인은 그런 눈치 없는 공작님을 귀엽게 본 듯했다.

그녀가 입꼬리를 끌어 올린다.

“아 그래요? 그럼 카온 동생을 만들기 위한 과정은 필요 없겠네요?”

순식간의 일이었다.

공작님이 공작 부인을 공주님 안기 자세로 안아 올린 것은.

어머 어머.

나는 두 손으로 입가를 가리고 흥미진진하게 돌아가는 상황을 구경했다.

공작님이 다소 낮아진 음성으로 말했다.

“생각해 보니 리엔 같은 딸이면 괜찮을 것도 같아.”

“제 관심이 나누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면서요?”

퉁명스럽게 답한 것과 달리, 이렇게 될 줄 알았다는 듯 자연스럽게 공작님의 목 뒤로 손을 단단히 고정하는 공작 부인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런 상황을 만들어 준 것도 리엔이잖아? 이 정도면 당신의 관심을 나눠 줄 가치는 충분하지.”

“하하, 그게 뭐예요.”

공작님이 그런 공작 부인의 콧잔등에 입을 맞췄다.

“내일 아침은 리엔과 카르시온 둘이 먹겠군.”

“저희는요?”

“그땐 한창 자고 있겠지. 오늘 밤에는 해야 할 일이 있으니까.”

그 말을 끝으로 공작의 발밑에 마법진이 떠올랐다. 곧이어 두 분의 신형이 사라진다.

“와 내가 한 건 제대로 했구나.”

불타는 부부의 모습에 나는 뿌듯한 마음으로 발을 돌렸다.

오늘 밤은 발을 쭉 뻗고 잠을 청할 수 있을 것 같았다.

* * *

공작 부인과 무려 일주일 동안이나 같이 아침 식사를 하지 못했다.

이쯤 되니 조금씩 불안한 마음이 밀려온다.

나 때문에 정말 카온의 동생이 생기는 건 아니겠지……?

물론 새 생명이 태어나는 건 축복이었다.

하지만 아이가 태어난다면 어쩐지 굉장한 책임감이 느껴질 것 같았다.

평생을 외동으로 살아온 카르시온에게도 미안했고.

나는 한층 복잡해진 얼굴로 도비와 대치하고 있는 카르시온을 바라봤다.

아니, 사실 도비가 일방적으로 카르시온에게 혼나고 있었다.

도비가 나와 단둘이 오붓한 시간을 보냈다는 이유였다.

아, 참고로 도비가 공작가에 있는 이유는…….

내가 스쳐 가듯 도비를 보고 싶다고 한 말에, 카르시온이 다음날 공작가로 도비를 데려왔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공작님과 공작 부인은 마물인 도비를 보고 별말은 하지 않으셨다.

공작 부인은 오히려 든든한 애완 마물이 생겼다며 기뻐하시는 눈치였다.

물론 남자만 보면 짖는 도비 때문에 약간의 헤프닝은 있었지만.

자신을 노려보며 맹렬히 짖는 도비를 바라보고 공작님은 무심한 얼굴로 딱 한마디를 내뱉으셨다.

‘마물 고기가 그렇게 별미라지.’

그날 이후로 도비가 짖지 않는 남성은 카르시온 한 명에서 공작님까지 포함해 둘로 늘어났다.

“끼잉…….”

도비의 애처로운 울음소리에 정신을 차린 나는 이제 그만 상황을 정리하기로 했다.

“카온.”

내 부름에 카르시온이 곧장 나를 돌아봤다. 그가 오도도 내게 달려온다.

“응, 리엔. 불렀어?”

나는 작게 웃음을 흘리며 다가온 그에게 넌지시 물었다.

“너는 아이 좋아해?”

대답은 굉장히 빠르게 나왔다.

“아니. 별로 안 좋아해.”

“아……. 그래?”

살짝 가라앉은 음성에 카르시온이 의문을 느낀 듯 고개를 기울였다.

“갑자기 그건 왜?”

“으응, 아니야.”

나는 조만간 네 동생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말을 꾹 눌러 삼켰다.

공작 부인이 일을 치르시기 전, 부디 나처럼 약을 잘 챙겨 드셨기를 바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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