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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 이러는 거 아니야 (118)화 (118/161)

118화

“……뭐?”

나는 놀라 눈을 빠르게 깜빡였다.

잘못 들었나 싶었지만, 온몸이 새빨갛게 변한 걸 봐서는 딱히 그런 것 같지도 않았다.

음. 생각보다 세게 나오네.

들어주기 어렵거나 거부감이 드는 일은 아니었다.

이렇게 적극적으로 나와 주면 나야 좋은 일이지.

하지만 걱정인 게…….

과연 카르시온이 나와의 입맞춤을 버틸 수 있을까?

얼굴을 마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힘겹게 성공하지 않았는가.

그래서 그가 적응할 때까지 천천히 스킨십 단계를 올리려던 거였고.

물론 제어 마법을 걸면 금방 해결될 일이긴 하다.

하지만 열심히 스킨십을 늘려 가고 있는 만큼 마법을 쓰는 건 최대한 지양하고 싶었다.

여기서 쌩으로 입을 맞추면 십중팔구 쓰러지겠지.

그럼 연회장은 가지 못할 테고.

아쉽지만 친히 초대장을 보내 준 피오르네 형을 위해서라도 입맞춤은 나중으로 미뤄야 할 것 같았다.

나는 입매를 끌어 올리며 짓궂게 말했다.

“제어 마법 없이 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약한 모습을 보이며 못 한다고 말할 줄 알았던 카르시온은 비장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해볼게. 아니, 할 수 있어.”

……어라. 이런 대답이 나올 줄은 몰랐는데.

“내 얼굴도 제대로 쳐다보지 못하면서 할 수 있겠어?”

“할 수 있어.”

눈도 잘 마주치지 못했던 그가 나를 또렷이 응시해 왔다.

아까의 부끄러움은 연기였던 걸까, 아니면 그새 내 얼굴에 적응한 걸까.

뭐가 됐든 기꺼운 일이었다.

“……그래.”

천천히 눈을 감았다. 내게 가까워지는 기척이 느껴졌다.

조금씩 더 가까이…….

그의 숨결이 선명히 느껴질 만큼 가까워졌을 때,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막상 카르시온과 입을 맞추려니 긴장되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따뜻하고 말랑한 감촉이 느껴졌다.

그래, 여기까지는 좋다.

문제는 그 감촉이 입술이 아닌 볼에서 느껴졌다는 것.

나는 번쩍 눈을 떴다.

야, 이건 아니지……!

아니, 이것도 따지고 보면 입맞춤은 맞긴 한데 그래도!

눈을 뜨자 카르시온이 온갖 난리를 치며 제 얼굴을 손에 묻고 있었다.

“으아아, 내가 마법 없이 리엔 볼에 입을 맞추다니……!”

차마 가리지 못한 귀와 손 틈 사이로 언뜻 비쳐 보이는 피부는 토마토와 색을 비교해도 별반 차이가 없을 것 같았다.

고작 볼 뽀뽀에 말이다.

귀엽기는 했지만…….

실망감과 허탈함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어이없는 것을 넘어 벙벙한 기분이었다.

우리 끝까지 나간 사이 아닌가?

입맞춤이라 하면 적어도 입술 정도는 부딪혀야 하는 거 아니야?

아득했다.

갈 길이 너무나도 멀었다.

나는 욕망에 약하다. 참을성도 부족한 편이고.

4년을 참았는데. 여기서 얼마나 더 참아야 하는 거지?

아무래도 제어 마법 없이 스킨십 하겠다는 내 계획은 이루어지기 힘들 것 같았다.

“카온, 할 말이 있으니 잠시만 손 좀 내려 볼래?”

“응? 으, 으응…….”

앞으로는 항상 제어 마법을 걸고 있으라고 단단히 이르려고 했는데.

꽁꽁 감추고 있던 얼굴을 마주하자 나는 내가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지 전부 까먹고 말았다.

그가 얼마나 부끄러워했는지 단번에 알 수 있을 만큼 물기 가득한 눈가. 눈물에 젖은 속눈썹.

곧 잡아먹히기를 기다리듯 흔들리는 눈망울.

애처롭게 그러 모인 눈썹과 달아오를 대로 달아오른 얼굴까지.

……이걸 보고도 볼 뽀뽀 따위로 만족해야 한다고?

“난 그런 거 못 해.”

강렬한 충동이 머리를 지배했다. 몸이 저절로 움직였다.

무방비하게 노출되어 있는 카르시온의 얼굴로 향했다.

그리고,

카르시온의 입술을 덮쳤다.

굳게 닫혀 있던 입술을 살짝 깨물자 반사 작용 때문인지 금방 반응해 왔다.

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파고들었다.

한창 열을 냈기 때문일까. 그는 어느 곳 하나 뜨겁지 않은 곳이 없었다.

이대로 녹아 없어질 것 같았다.

얼마간 그와 입을 맞추고 있었을까, 어쩐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그 이상함이 무엇인지 깨닫는 것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카르시온은 석고상처럼 굳어 움직임이 없었으니까.

아, 역시.

이쯤 해야 할 것 같았다.

정신을 잃은 사람을 탐하는 것은 짐승만도 못한 일이었으니.

……좋았는데.

나는 아쉬운 마음에 그의 입천장을 한번 쓸고는 떨어졌다.

맞닿았던 입술이 떨어지자 기다렸던 것처럼 카르시온의 몸이 스르르 무너져 내렸다.

계승식을 위한 연회장은 혼자 가야 할 것 같았다.

* * *

연회장 입구를 지키고 서 있던 시종이 초대장을 확인했다.

“확인했습니다, 레이디.”

그가 연회장 안에 내 이름을 외치려 하자 나는 급히 손을 들어 제지했다.

늦은 것을 당당하게 알리고 들어갈 필요는 없지 않은가.

그렇다. 나는 계승식 연회에 굉장히 늦게 도착한 상태였다.

카르시온의 마법으로 오려고 늦장을 부렸는데…….

그가 기절하는 바람에 급히 마차를 타고 오느라 늦고 말았다.

좀 참을걸.

아니, 그걸 보고 어떻게 참으란 말인가.

누가 그렇게 예쁜 얼굴을 하라고 했나?

이건 내 잘못이 아니었다.

나는 애써 합리화를 하며 연회장에 들어섰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피오르였다.

나름 몰래 들어왔다고 생각했건만. 그의 시선이 귀신같이 내게 닿았다.

이런, 들켰다.

금방 붙은 사람들을 물리친 그가 성큼성큼 내게 다가왔다.

“너 진짜 뒈질래? 연회 시작한 지가 언제인데 지금 와.”

나는 이왕 이렇게 된 거 뻔뻔하게 나가기로 했다.

“어허. 열심히 축하하러 와 준 친구에게 고맙다고 하지는 못할망정.”

그러자 피오르는 어이없다는 듯 허 웃었다.

“못 본 사이에 아주 능구렁이가 다 됐네. 졸업하고 너무 오래 못 봤나.”

“아카데미 방학 동안에도 한 달씩 얼굴 안 보고 살았는데 뭘 새삼스레.”

“그러네. 기사단에서 빡세게 훈련받다 보니 시간이 더디게 흘렀나?”

“그럼 후작 위를 버리고 황실기사단에 들어간 걸 후회해?”

“조금?”

그렇게 말하는 피오르는 행복해 보였다. 좋아하는 일을 찾아서 다행이었다.

“그런데 왜 너 혼자야? 카르시온이랑 같이 온 거 아니야?”

“카온은 나 때문에 기절 중.”

피오르는 알 만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그래서 늦었어?”

“뭘?”

“텔레포트로 오려고 했는데 카르시온이 기절하는 바람에 마차 타고 급하게 온 거 아니야?”

상황을 눈앞에서 지켜보기라도 한 듯 정확한 정리였다.

“어떻게 알았대.”

“내가 너희를 하루 이틀 보냐. 하여튼, 한스랑 제인도 와 있으니까 인사하고 와.”

“아직 네 형에게 인사를 드리지도 못했는데?”

피오르는 조용히 어딘가를 바라보며 턱짓했다.

“보시다시피 형은 지금 좀 바빠서.”

피오르가 가리킨 곳으로 시선을 옮기니 루가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게 보였다.

딱 봐도 고위 귀족임이 틀림없는 사람들과 말이다.

“루 님에게 폐를 끼칠 뻔했네.”

“아니야. 형은 그런 건 신경 안 쓸걸? 너를 꽤 보고 싶어 했거든.”

너희 형이 나를 왜 찾냐며 질문하려는데 먼저 입을 연 것은 그였다.

“그럼 애들이랑 대화하고 있어. 나는 다른 사람들한테 벗어난 김에 잠깐 화장실 좀 다녀올게.”

피오르는 그렇게 말하며 자리를 벗어났다.

혼자 남은 나는 한스와 제인을 찾으려 장내를 둘러봤다.

그러다 우연히 루와 눈을 마주쳤다.

루가 나를 보고 싶어 했다는 말은 거짓이 아니었던 것 같다. 나를 발견한 그의 눈이 살짝 커졌다.

루는 대화 중이던 귀족에게 양해를 구하고 곧바로 내게 다가왔다.

그가 적당한 거리에 당도하자 나는 살짝 고개를 숙였다.

“루 님, 아나나스 가문의 주인이 되신 걸 축하드려요.”

“늦으셨습니다, 리엔 양.”

“……꼭 그렇게 콕 짚어서 이야기해야 하나요?”

그러자 루의 얼굴에 옅은 웃음이 올라왔다.

“탓하려던 건 아니었는데. 은연중에 리엔 양을 기다리고 있었나 봅니다.”

아니, 루가 나를 왜?

의아함에 고개를 기울이자 그가 이번에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여러 가지로 도움 주셨지 않습니까. 제 잘못된 교육 방식을 꼬집어 주신 것도 있고. 동생과 화해도 리엔 양이 도와주셨고.”

“그렇군요…….”

나는 떨떠름하게 답했다. 그의 눈빛이 조금 부담스러웠다.

어디선가 본 것 같은 눈빛인데.

그래, 마치 쿤의 어머니와 카르시온의 어머니가 날 보던 눈빛과 비슷한 종류의…….

그의 눈빛에 대한 실마리가 잡히려던 순간이었다.

“그나저나 리엔 양, 손에 든 건 제 선물입니까?”

“아. 선물 증정 시간도 다 지나서 드리게 되네요. 다시 한번 축하드려요, 루 님.”

나는 생각을 구석으로 몰아넣고는 그에게 선물을 건넸다.

편지가 들어 있을 법한 봉투였다.

“감사히 받겠습니다.”

봉투를 건네받은 그는 안에 든 것을 유추하듯 빤히 바라봤다.

궁금해 보이는 눈치였다.

“어때요, 뭔지 예상이 가시나요?”

“리엔 양이 주신 거라 그런지 쉬이 예측되지 않는군요. 개인적으로는 정성이 담긴 편지였으면 합니다만.”

“설마요.”

“예의가 아닌 것은 알지만 지금 열어 봐도 괜찮습니까?”

나는 방긋 웃으며 답했다.

“아니요?”

“……단호하시군요.”

“루 님을 위해서 지금 열어 보지 말라고 한 거예요.”

“대체 이곳에 뭐가 들었길래…….”

“피오르의 사진이요.”

순간 그의 눈이 부릅 뜨였다.

“그것도 시니어 4년 동안 정기적으로 찍은 거로요. 동아리 단체 사진이긴 하지만 피오르의 성장 과정을 생생히 볼 수 있죠.”

“이……. 귀한 걸 제가 받아도 됩니까?”

나는 한쪽 입꼬리를 비뚜름하게 올렸다.

좋아할 줄 알았지.

저건 피사동, 리사동, 카사동에서 전설처럼 내려오는 물건이었다.

저런 게 있다는 소문은 돌았지만, 나를 포함한 피고동 부원을 제외하고 그 누구도 보지 못한.

사진이 아깝지는 않았다.

한 번 찍은 사진은 수정구에 마법으로 저장되어 언제든 다시 뽑을 수 있었으니.

“마음에 드신 것 같아 다행이네요.”

그때였다. 루의 옆으로 급히 시종이 다가와 무언가를 보고했다.

“후작님. 초대장이 없는 귀족께서 연회장에 들여보내 달라 하십니다.”

루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초대장이 없는 사람은 당연히 들이지 않는 게 맞는 일이지.”

“그게……. 함부로 내쫓을 수 없는 상대라.”

“어느 가문이지?”

“베고니아 공작가입니다.”

쿵.

심장이 내려앉았다. 머릿속이 새하얗게 점철되었다.

“이상하군. 베고니아 공작가에는 당연히 초대장을 보냈을 터인데.”

“분실했다고 합니다.”

“……안으로 모셔라.”

그러자 시종이 고개를 숙이며 베고니아의 입장 허가를 알리기 위해 발을 움직였다.

일련의 과정이 진행되는 동안 나는 대화를 지켜보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내려앉았던 심장이 미친 듯 요동치기 시작했다.

……도망, 여기서 도망쳐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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