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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 이러는 거 아니야 (124)화 (124/161)

124화

공작가 사람들이 이상하다.

어디가 이상하냐고?

……나를 너무 귀히 여긴다.

물론 공작가 사람들은 나를 귀하게 여기지 않은 적 없다.

전 알테미어 집사를 제외하면 이곳에 온 이후 만난 사용인들은 모두 내게 깍듯했다.

공작 부부와 카르시온은 말할 것도 없고.

여기서 문제는, 하룻밤 새 이게 너무 과해졌다는 거다.

그들은 나를 유리 세공품 보듯 대하기 시작했다.

말과 행동 하나하나가 조심스러워졌다.

특히나 카르시온은 어제 밤중에 찾아와 자신이 더 잘하겠다며 석고대죄를 하고 가기도 했다.

혼자 엉엉 울었음이 분명한 얼굴로 말이다.

어제는 당황해서 괜찮다고 달래서 보내긴 했는데.

대체 내가 없을 때 공작가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혹시 렉스 베고니아가 내게 손을 올렸었다는 걸 알게 됐나?

내가 입을 다물고 있는 이상 그 사실을 알게 됐을 리는 없을 텐데.

렉스 베고니아가 죽고 싶어서 리시안셔스가 사람들에게 사실을 말한 게 아니라면 말이다.

그럼 도대체 왜……?

나는 오묘한 표정으로 다이닝 룸 주변에 눈을 굴렸다.

그러자 공작 부인이 반짝거리는 눈빛을 하며 입을 열었다.

“리엔이 혹 우리에게 긴히 할 말이라도 있는 걸까?”

“그…… 어, 네.”

할 말이 있다는 말에, 옆에 있던 카르시온과 공작님까지 나를 열렬히 바라보기 시작했다.

귀를 쫑긋 세우고는 무언가 기대감이 잔뜩 서린 눈빛으로 말이다.

누가 봐도 나는 들을 준비가 됐으니 넌 말만 해!

……라는 무언의 음성이 들려오는 표정이었다.

렉스 베고니아 건은 확실히 아닌 것 같다. 그것이었으면 분위기가 이렇게 밝진 않았었을 테니.

짚고 넘어갈 것은 정말 많았으나, 지금 당면한 문제부터 풀어 나가는 게 좋겠지.

나는 조금 시무룩한 목소리를 지어내며 입을 열었다.

“왜 제 식단만 모두와 다른지 궁금해서요…….”

그렇다.

평소 공작가 식구들과 같은 식사를 하던 것과 달리, 오늘 내 앞으로 나온 음식은 아주 큰 차이가 있었다.

음식의 퀄리티가 떨어졌다거나 한 건 아니다.

오히려 내 앞으로 나온 음식들이 더욱 정성 가득해 보였다.

다만, 불만인 점은 자극적인 음식이 하나도 없었다는 거다.

보기만 해도 건강해지는 것 같은 녹색투성이에, 유일한 고기인 스테이크조차 핏기 하나 없이 완전히 구운 웰던으로 나왔다.

내가 미디엄을 선호한다는 걸 알고 있을 텐데.

게다가 간 또한 싱겁기 그지없었으니.

아침, 점심도 이런 식단이었는데 공작가 식구들과 함께하는 저녁까지 이렇게 나올 줄은 몰랐다.

그것도 나만 이렇게 따로.

“그건…….”

공작 부인이 다소 당황한 얼굴로 말을 이으려 할 때였다. 카르시온이 다정히 웃으며 말을 대신했다.

“너를 위해 준비한 거야.”

그러니까 왜 나만 이렇게 차려 주는 거냐고.

할 말이 많은 눈으로 그를 바라보자 카르시온이 부끄럽다는 듯 얼굴을 붉히며 눈을 살짝 깔았다.

“네 음식은 사실 전부 내가 직접 만든 요리야. 네 입에 들어가는 음식인데 다른 사람에게 맡기는 게 불안해서.”

……이걸 다?

나는 새삼스러운 얼굴로 카르시온을 바라보았다.

“네가 요리를 어디서 배워서?”

“주방장에게 배웠어.”

“언제?”

“……오늘 아침?”

“재능 미쳤네.”

“리엔, 미친이라니. 그런 나쁜 말은 좋지 않아.”

4년간 실컷 내버려 둬 놓고 이제 와서?

황당함에 입을 일자로 다물고 카르시온을 바라보자 그가 다정히 웃으며 말을 잇는다.

“그리고 요리를 만든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닌걸. 마물 토벌 때 가져간 음식 기억해? 그거 전부 내가 만든 음식이었어.”

세상에…….

마물 토벌을 따라간 것은 1학년 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으니 기억할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맛있기도 했고.

나는 진지한 표정을 하며 그의 양손을 부여잡았다.

“카온, 나랑 결ㅎ…….”

아차.

나도 모르게 무드 없이 저녁 먹다 말고 청혼할 뻔했다.

“결?”

카르시온이 뒷말이 궁금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결투다. 내게 이런 싱거운 음식을 먹이려 하다니.”

“뭐? 결투?”

그는 잠시 무언가 생각하듯 말이 없었다.

그러고는 하는 말이…….

“안 돼. 맞아 줄 수는 있지만, 네 손이 아프잖아.”

애초에 네가 맞는 건 왜 되는 건데.

나는 잡았던 그의 손을 내려놓고는 다시 본론으로 들어갔다.

“솔직히 말할게. 이렇게 나만 따로 먹는 거, 소외감 느껴져.”

그에 카르시온이 크게 충격받은 얼굴로 이제부터는 이 인분을 만들어서 같이 먹겠다 해결책을 제시했다.

내가 진짜 원하는 건 자극적인 음식이지 고난을 함께할 사람이 아니라고.

얼굴에 불만을 한껏 드러내고 있을 때였다.

“카온, 엄마는 리엔이 먹고 싶은 걸 양껏 먹는 게 좋다고 생각해.”

그러자 공작이 공작 부인의 말에 깊이 공감한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주억였다.

“그래, 리엔의 입맛이 돌고 먹을 수 있을 때 먹여 놓는 게 좋을 거다. 나중에는 제발 먹어 달라고 애원을 해도 먹을 수 없는 상황이 올 수도 있어.”

실제로 겪어 보기라도 한 듯 구체적인 예시였다.

공작 부부의 도움에 나는 얼른 포크를 내려놓았다.

“난 매콤한 게 먹고 싶은데.”

하지만 카르시온은 강경했다.

“안 돼. 자극적인 음식이 몸에 얼마나 안 좋은데.”

“정말 안 돼?”

나와 정면으로 눈을 마주한 카르시온의 동공이 흔들린다.

“정말로?”

나는 눈썹을 그러모으며 눈을 빠르게 깜빡였다. 그가 심장을 부여잡으며 괴로운 신음을 흘린다.

그러다 결국,

“아, 안……! 안 될 게 뭐가 있어.”

참 다루기 쉬운 남자였다.

* * *

리시안셔스.

이 사람들은 나를 건강하게 만들게 하려는 속셈이 틀림없었다.

아니면 새 나라의 어른이를 만들려고 작정했거나.

식단 관리는 시작일 뿐이었다.

그들은 자유로웠던 내 연구 시간을 하루 6시간으로 대폭 줄여 버렸다.

잘 움직이려 하지 않는 나를 산책이라는 명목하에 일정 시간 동안 걷게 했다.

웃긴 건 또 격한 운동은 하지 못하게 했다는 거다.

그뿐인가? 밤 열 시가 되면 카르시온이 어김없이 나를 재우러 왔다.

처음에는 ‘며칠 이러고 말겠지’라고 생각했는데…….

과보호는 갈수록 심해지면 심해졌지, 절대 나아질 생각이 없어 보였다.

게다가 내가 할 말만 있다고 하면 왜들 그리 눈을 반짝이는지.

꼭 내게 들어야 하는 말이 있는 것처럼.

똑똑.

“리엔, 나 왔어. 들어가도 될까?”

힐끔 시계를 확인했다.

열 시. 카르시온이 딱 나를 재우러 오는 시간이었다.

나는 읽던 편지를 내려놓고는 답했다.

“들어와.”

문을 열고 들어온 카르시온이 느른히 웃으며 자연스레 나를 공주님 안기 자세로 안아 올렸다.

이제 얼굴도 많이 붉히지 않는 게, 퍽 익숙해진 모양새였다.

“편지 읽고 있었는데.”

“……남자?”

“낸시라고, 리사동 부원이었던 여자애야.”

“네게 빨대를 꽂았던 수많은 모기 중 한 명이군. 모기 따위가 보낸 편지 읽을 필요 없어. 또 네 피를 빨아 먹으려는 속셈이겠지.”

“낸시는 그런 애 아니야.”

“……그래.”

카르시온과 짧은 대화를 하는 사이 어느새 침대 앞에 도착했다.

나를 조심스럽게 침대에 내려놓는다. 그는 내게 이불까지 꼼꼼하게 덮어 주고는 의자를 소환해 침대 옆에 앉았다.

그러고는 침대 맡에 놓인 책을 집어 들었다. 어제 내게 읽어 주다가 만 책이었다.

카르시온은 매일 밤 이렇게 내게 책을 읽어 주었다.

처음에는 웬 동화책을 가져와서 질색했더니, 그 후로부터는 약초와 관련된 책을 읽어 줬다.

공작가 사람들이 나를 유리 세공품처럼 대하게 된 이후 유일하게 좋은 점이었다.

그가 책에 꽂힌 책갈피에 손을 가져가려 할 때였다.

나는 그의 손에 들린 책을 앗아 들고는 침대 옆을 팡팡 두들겼다.

“오늘은 내 옆에 누워서 읽어 줘.”

“……어?”

나를 안을 때만 하더라도 나름 여유로웠던 카르시온의 표정이 단번에 당황으로 물들었다.

나는 살짝 굳어 있는 그의 손을 끌어당겨 침대로 이끌었다.

정신이 없었던 건지, 아니면 은근 원하고 있었던 건지. 그는 작은 힘에도 쉽게 끌려왔다.

결국, 침대에 나란히 눕게 되자 카르시온이 제 상황을 파악한 듯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그게 또 재미있어서 푸스스 웃고카르시온의 심장에 귀를 가까이 댔다.

그의 심장은 크고 빠르게 맥동하고 있었다.

기분 좋은 울림이었다.

괜히 장난기가 솟아 은근한 목소리로 물었다.

“카온, 긴장했어?”

그는 답하지 않았다. 답하지 못했다는 게 맞는 말이겠지.

나는 이러다 이불을 코피로 적실 수도 있다는 생각에, 그에게서 떨어졌다.

“안 잡아먹을 테니까 걱정 마.”

그제야 카르시온이 참았던 숨을 내쉬는 게 느껴졌다.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 그가 진정된 듯 싶자 나는 서운하다는 듯 물었다.

“그래서 오늘은 책 안 읽어 줄 거야, 카온?”

“……읽어 줄게.”

카르시온이 뻣뻣한 움직임으로 침대 맡에 놓인 책을 다시 집어 들었다.

그리고 책을 펼친 그는…….

“으아아아아, 리엔 너 진짜!”

놀라 퍼드득거리며 새빨갛게 변한 얼굴로 책을 멀리 던져 버렸다.

나는 속으로 잔뜩 키득이며 카르시온을 바라봤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사실 저 책은 수위 높은 빨간 책에 표지만 약초 관련 책으로 슬쩍 바꿔 놓은 것이었다.

분위기를 달궈 놓지 않고 열어 봤다면 이렇게 재미있는 반응은 나오지 않았겠지.

그러게 누가 나를 새 나라의 어른이로 만들래?

* * *

“와아, 그래서요?”

리엔의 맞장구에 공작 부인이 신이 나서 말을 이었다.

“그래서 고생은 우리 남편이 다 하고 나는 편하게 보냈지. 아니, 사실 몸은 편했는데 좀 미안하더라고.”

“사랑꾼 공작님은 오히려 그편이 좋았을 거예요, 그렇죠?”

공작이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실비아가 고생하는 것보다는 내가 힘든 게 낫다.”

“얼마나 입덧이 심하셨길래요?”

“물도 비려서 마시질 못했지. 나중에는 마법으로 음식을 위로 이동시켰어.”

“뭐야. 아버지가 그랬었다고? 나는 처음 듣는 이야긴데?”

카르시온이 이맛살을 찌푸리며 물었지만, 공작은 자연스럽게 무시했다.

“듣자 하니 아내를 너무 사랑하면 입덧을 대신하기도 한다더군.”

리엔은 남편이 입덧하는 게 사랑과는 상관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저 자신이 아이의 아버지임을 인정받고 싶은 심리 상태에서 비롯된 것임을 관련 책에서 읽은 적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는 좋은 분위기를 망치고 싶지 않아 웃으며 장난 반 진담 반으로 맞장구를 쳤다.

“카온도 나 대신 입덧해 줬으면 좋겠다.”

다이닝 룸에 정적이 내려앉았다.

공작가 사람들의 동공에 지진이 일었다.

그도 그럴 것이 리엔이 저번에 보란 듯 입덧을 한 것에 반해 카르시온은 너무도 멀쩡하지 않은가.

특히나 카르시온은 더 큰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내가 아버지한테 사랑으로 밀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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